우리 사무실의 사환이 창 밖을 정신없이 내다보고 있길래, 대체 무엇에 그렇게 홀렸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저기 저 도로공사하는 인부 보이죠? 내가 글쎄 20분 동안이나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새 곡괭이질을 한번도 안했다구요!"
람브레타 오토바이 뒤에 모래자루를 싣고 매일 브라질 국경을 넘는 할머니가 있었다. 수상하게 여긴 세관원이 물었다. “그 자루 속에 뭐가 들었습니까?" “모래뿐이에요.” 세관원이 자루 속에 든 것을 쏟아보았지만 모래만 들어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세관원이 노부인에게 말했다. “할머니를 체포하거나 경찰에 고발하지 않을테니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밀수를 하기는 하지요?" “그럼요.” “무엇을 밀수합니까?” “람브레타 오토바이요."
11살 난 조니가 집을 떠나 여름캠프에 갔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편지 한 장 없어 조니의 부모는 좀 걱정이 되었다. 두 주째 접어들자 그들은 장거리전화를 걸어 아들을 대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조니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초조하게 몇 분을 기다렸다. 이윽고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조니는 얘기를 나눌 틈도 주지 않고 이렇게 간청했다. "빨리빨리 말하세요. 난 지금 3루에 있단 말예요."
“참으로 기묘한 일이로군.” 어느 회사 부장이 결근을 잘하는 직원에게 한마디했다. "중요한 크리켓시합이 있을 때면 꼭 자네 어머니께서 병환이 나시니 말야." 부하가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혹시 저의 어머니가 꾀병을 앓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도베르만 한 마리를 샀으면 하는데요.” 어떤 남자가 애완동물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아, 그래요. 참 좋은 놈이 한 마리 있죠." “잘됐군요. 그런데 주인한테 충실한 놈인가요?" “물론이죠. 그 녀석을 네 번이나 팔았는데 매번 우리 집으로 돌아왔으니까요."
나는 벽장을 정리하다가 내가 어린시절부터 소중히 간직해온, 낡고 먼지투성이인 그림백과사전 몇 권을 발견했다. 버리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그것을 헛간의 시렁에 얹어놓았다. 얼마 후 어린 손자들이 헛간에서 그 책들을 발견하고는 그림을 보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어느 날 오후에 마을 교회의 목사와 차를 마시고 있던 중 느닷없이 손자놈의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헛간에 가서 할아버지가 숨겨둔 그 지저분한 책을 봐도 돼요?"
할아버지는 은퇴하고 나서 낚시에 취미를 붙이셨다. 겨울에는 낚시도구를 손질하는 것이 일과였고 여름에는 먼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낚시터로 줄달음치셨다. 어느 날 저녁, 잡은 고기를 우리에게 나누어주려고 오신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범아, 세상에는 참 미친 사람들도 많더구나. 낚시를 하러 오늘 새벽 5시에 차를 몰고 공원을 지나다 보니 그 꼭두새벽부터 골프를 치려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난 말이요, 목요일밤마다 마을노래회에 참석해요.” 프랑스 농촌에서 한 농부가 이웃 사람에게 말했다. “재미있소?" “아, 그럼요. 카드도 하고, 술도 마시고, 여자들과 춤도 추지요." “그럼 노래는 언제 하나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지요."
어떤 소년이 자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들은 아들들보다 항상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나요?" “물론이지."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죠?"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이야." "그럼, 왜 제임스 와트의 아버지는 그걸 발명해내지 못했죠?"
만원 지하철 열차가 런던의 한 정거장에 멎었으나 기다리고 섰던 사람들은 도저히 더 탈 수 없었다. 플랫폼에 있던 한 사람이 “조금씩만 안쪽으로 더 들어가세요.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자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외쳤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 차 안에서 피곤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읽고 있는 건 어제 신문이요. 어제부터 여태까지 내리질 못하고 있단 말이오."
대학에 다니는 사촌 여동생 리나가 주말을 이용해 집에 와서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이 너무 어렵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라나가 다음주에 치러야 할 시험 걱정을 하자 그애의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잖아?" 하고 말했다. 리나는 어머니의 충고대로 연 사흘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그 다음 주말에 리나가 다시 집에 오자 어머니는 시험을 잘 치렀느냐고 물었다. “엄마, 내가 뭣 때문에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했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쉬운 시험은 처음이었어."
남학생 사교클럽의 몇몇 학생이 샐리라는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려고 애썼으나 모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행크라는 남학생이 자기가 샐리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으스대며 큰소리를 쳤다. 멋지게 뽑아 입은 행크는 카드 테이블 주위에 앉아 있는 우리들을 남겨 놓고 나가면서 사뭇 의기양양해했다. 그때 짐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데이트를 마치고 샐리네 집에 돌아와 있을 때쯤 해서 짐이 샐리에게 전화를 했다. 샐리가 전화를 받았다. 행크가 거기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짐이 공손하게 말했다. "아니, 행크를 바꿀 필요는 없어요. 내 셔츠를 돌려달란다고 전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나도 집에 가야 하니까요."
수학을 전공하는 내 딸이 학생들을 개인지도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의 개인지도에 관해서 묻는 것 같은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자기는 금요일과 토요일엔 하루 종일 다른 일이 있으니까 일요일 정오에나 만날 수 있겠다면서 전화를 건 사람에게 늘 하던 대로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생이 내 방으로 와서 하면 5달러 50센트고 학생 방에 가서 하는 경우엔 6달러라고. 그러나 그 전화는 약속을 해놓고 깜빡 잊어버린 데이트 상대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 친구 대답인즉, 그렇게 신나는 일까지 기대는 못했지만 하여간 만나고 싶다고
학교에서 미팅이 있었는데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처음 만난 자기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 그래서 그 학생은 친구에게 살짝 옆집으로 가서 전화 한 통만 걸어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 오자 그 전화를 받고 난 학생이 파트너한테 가서 말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막 연락이 와서 가봐야 되겠어요. 미안해서 어쩌지요?" 그러자 그 여학생이 발끈하면서 말했다. “잘됐군요. 당신 할머니가 안 돌아가시면 우리 할머니라도 돌아가시게 하려고 그랬는데."
미국 디파이언스대학의 교수부인회는 먼 곳에 사는 학부모들의 주문을 받아 기숙사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내는 각종 케이크를 만들어줌으로써 기금을 모으고 있다. 우리 부인회는 얼마 전 한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아들 앞으로 케이크를 보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그 학생의 어머니는 여느 학부모들처럼 케이크 위에다 “생일을 축하한다”라거나 “시험에 행운을 빈다"는 따위의 글로 장식을 하는 대신 이런 이색적인 글을 새겨달라고 주문했다: "제발 편지 좀 하렴.”
팔레스타인지방을 여행하던 한 관광객과 안내원이 갈릴리호수에 당도했다. 안내원이 “작은 목선으로 여기를 건너는 데 20달러를 받습니다" 하니까 관광객이 “너무 비싸군요" 하고 불평했다. “손님, 여긴 역사적으로 유명한 호수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줄은 알고 있소만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소 ?" “예수님이 이 호수 위를 걸어서 건너가셨단 말예요." “이렇게 뱃삯이 비싸니 물위를 걸을 수밖에!"
어떤 해병대위가 인솔한 중대가 80km의 행군을 기록적인 시간내에 끝마쳤다. 대위는 막사 앞에 병사들을 세워놓고 그들을 칭찬한 다음, 해병대의 빛나는 전통을 내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제군들, 본관은 이 행군을 다시 한번 실시하고자 한다. 해낼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 2보 앞으로 나서라.” 그러자 이등병 한 사람만 빼놓고 전 중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중대장은 놀라긴 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단 한 사람인 그 병사가 아직도 80km를 더 행군할 수 있는 원기와 용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칭찬해주었다. “80km를 더 걷는다구요?” 얼이 빠져버린 이등병이 중얼 거렸다. “중대장님, 전 단 두 발짝도 나갈 수 없는데요."
ROTC 하계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일이다. 훈련소 이발소에 갔더니 상고머리로 깎고 나오는 후보생들의 머리가 하나같이 쥐가 뜯어먹은 모양이었다. 우리 차례가 가까워올수록 이발사의 경험과 자격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의자에 앉는 순간 나는 우리의 걱정이 근거있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주인이 내 뒤에 서 있는 이발사에게 지시했다. “그 친구만 끝내고 넌 다시 구두나 닦아!”
신참 소위 시절 북아프리카 야전군사령부에 배속된 내가 당직사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 중에 잠꾸러기 연대장을 새벽 6시 정각에 깨우는 일도 들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 일을 맡게 된 날, 이른 새벽 연대장이 자는 1인용 텐트 앞에 섰다. 구식 군대가 길러낸 고집불통의 표본인 연대장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을 알리는 요란한 소리가 새나오고 있었다. “연대장님, 6시입니다. 일어나셔야 할 시간입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시 지금 몇 시니까 빨리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퉁명스럽고 못마땅해하는 목소리가 텐트 안에서 흘러나왔다. “자네는 시간만 말하게. 결정은 내가 할테니까.”
내 친구의 질녀가 남녀공학으로 바뀐 지 얼마 안된 예일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 아이가 최근 집에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오직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거예요. 남학생들이 끊임없이 문을 두들기며, 옛날 자기들이 쓰던 방을 우리들이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보고 싶다고 졸라대니까요. 계산을 해보니 작년에 이 방에서 생활했다는 남학생이 27명이나 되는군요.”
내가 옥스퍼드대학교를 다닐 때의 일. 하루는 밤이 꽤 늦어 기숙사 귀사시간이 넘은 시각에 기숙사 안으로 몰래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처럼 늦게 와 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날 따라와요.” 내가 그 사람을 불렀다. 한참 애를 써서 담을 넘어 기숙사로 들어선 뒤에 내가 “당신 담을 넘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군요”하고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요. 기숙사 사감은 열쇠를 갖고 다니니까요.”
우리 영문과 교수가 한번은 '동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들에게 동기를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교수가 물었다. “여러분이 매일 학교에 나오는 것은 무슨 동기에서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힘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무언가 성취하도록 자극하는겁니까?” 그가 갑자기 몸을 돌려 한 여학생에게 물었다. “무엇이 아침이면 학생을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지?" 엉겁결에 그 여학생이 대답했다. “우리 엄마가요.”
나는 미국 중서부의 어느 작고 보수적인 대학에 다녔는데 그 학교는 해마다 늦가을이면 정해진 날짜가 돼야만 기숙사에 난방을 해주었다. 어느 해는 겨울날씨 같은 추위가 일찍 닥쳐 우리는 난방을 해달라고 학교당국에 백방으로 건의를 했지만 헛수고였다. 냉방에서 며칠을 덜덜 떨며 지낸 우리는 비상대책을 강구했다. 여학생기숙사와 마주보고 있는 남학생기숙사도 역시 냉방인 것을 알고 기숙사 3층 창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난방을 해주지 않으면 남학생들의 체온을 빌리겠음.” 그러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히터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한 내 남동생은 룸메이트를 고르는 데 참고로 삼기 위한 질문서에 답을 써넣고 있었다. 그는 '당신은 매일 침대정돈을 합니까?'라고 묻는 항목과 ‘당신은 자신이 깔끔하다고 생각합니까?' 라는 항목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아는 어머니가 그것을 읽어보시고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자 동생이 말했다. “뭐라구요? 그러면 내가 깔끔하지 못한 녀석하고 짝이 돼도 좋단 말예요?”
지사학(地史學) 수업중에는 몇 시간에 걸쳐 화석을 다루며 공부해야 했다. 학생들은 누구나 화석을 조심스럽게 다루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아침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주 오래된 양치류 화석을 다루다가 그만 그것을 떨어뜨려 박살을 내버렸던 것이다. 내가 당황해서 사과를 하자 교수는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 화석은 100만 년이나 된걸세. 새것을 하나 살 때도 됐지!”
어느 날 저녁 문화인류학 교수가 두 개의 원시문화에 대해 거의 두 시간에 걸쳐 따분한 강의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새로 아빠가 된 한 학생이 조용히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수가 그 학생을 지적하며 방금 강의한 두 문화의 공통된 특징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 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졸린 음성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두 원시사회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새벽 3시 반에 아내가 남편에 게 아기 기저귀를 사오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미시간주 칼라마주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하루는 나이지리아에서 유학온 한 학생이 강의를 들으러 왔다가 생전 처음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무척 즐거워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좀 수줍어하면서 “지금 눈을 소재로 시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하고 말했다. 다음날은 눈이 더 많이 내렸다. 그는 부츠를 한 켤레 사 신었지만 쉴새 없이 미끄러지고 자빠지는 통에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후 또 한번 폭설이 내렸는데 이리저리 미로와 같이 파놓은 눈길을 따라가던 나는 그 나이지리아 학생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라이터선생님, 전 오늘 지난번에 쓴 그 시를 찢어버렸습니다."
지난 봄 우리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때, 입후보자들을 잘 모르는 나는 입후보자들이 내건 슬로건을 보고 내 마음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갖 가지 슬로건을 보니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눈에 띄었다. “제게 한 표를! -우리 어머니가 우리 동네에 이미 내가 당선됐다는 소문을 퍼뜨려 놓았습니다!” 개표 결과, 그 슬로건을 내건 사람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행동심리학 시간에 학생들은 각기 실험용 쥐 한 마리씩을 받았다. 한 학생은 자기 쥐에게 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그 쥐가 거의 인간에 가까운 지능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어느 날 파이의 임자는 파이가 새로운 재주를 배웠다고 떠들어댔다. 그는 파이를 보고 실험실 조교를 가리키며 “파이, 이 사람을 물어봐! 물어뜯어!” 하고 소리쳤다. 그런데 파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실험실 조교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가버렸다. 그러자 파이의 임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보라구. 내가 이 녀석한테 도덕을 가르쳤거든.”
음악학원의 학생 관현악단인 우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이름난 외부 초빙 지휘자를 맞이하여 모두 떨고 있었다. 첫날 첫 연습시간에 그 지휘자는 우리가 선택한 작품들을 연주해보게 했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의 연주가 끝나자 그 사람은 지휘봉을 내려놓고 잔기침을 하더니 빙그레 웃었다. 우리는 우리의 연주솜씨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하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지휘자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작곡가들이 의도한 대로 정확히 연주하는군요!” 우리는 으쓱해졌다. 그러나 그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연주한 멘델스존의 작품은 악몽 그 자체였고, 슈베르트의 곡은 오히려 미완성으로 끝내는 것이 더욱 좋을 뻔했고,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그야말로 비참했습니다.”
딸아이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자기가 기르던 화초와 금붕어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내게 맡겼다. 나는 화초를 가꾸는 일에는 영 서툴렀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화초들은 금방 시들어버렸고 나는 이 사실을 딸아이에게 지체없이 알렸다. 어느 날 딸아이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나는 금붕어 마저 죽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아빠는 무사하세요?”
우리는 작문시간에 로맨틱한 배경을 묘사하는 글을 써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원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들이 쓴 역작을 소리 높여 낭독했는데, 장작이 타면서 불꽃이 튀는 소리, 은은히 비추는 등불, 조용한 음악 등 흔히 듣는 표현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아주 이례적인 정경을 묘사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의 글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집안이 조용하다. 아이들이 다 나가고 없다.”
강의실에 들어선 내 친구는 흑판에 이런 호소문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물리학 교재를 분실했음. 절실하게 필요함. 되돌려주는 사람에게 손수 만든 식사를 대접하겠음. 전화번호 555-8627". 내 친구는 자기의 물리학교재를 꺼내놓고 반가운 반응을 기대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여학생은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은 지난 3시간 동안 내 책이 일곱 번이나 나타났단 말예요"
위스콘신대학교에 다니는 딸을 보러 그애가 자취를 하고 있는 학교 근처 하숙집으로 찾아갔다. 좀 늦게 도착했더니 딸은 없고 잠긴 문에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빠, 죄송해요. 수업이 있어서 나가요. 그렇지만 들어가서 편안하게 쉬고 계세요. 다음 숫자를 돌리시면 자물통이 열릴거예요. 1) 몇 년 전에 리크가 여섯 살이었나? 2) 27년 전의 엄마 나이 3) 1957년의 아빠 나이.” 물론 나는 곧 문을 열 수 있었다.
군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때의 일. CPX훈련으로 정신이 없던 어느 날 밤, 중대장의 호출전화를 받았다. 풀어놓고 있던 전투화, 탄띠, 철모 등을 허겁지겁 착용한 나는 옆에서 졸고 있는 통신장교에게 보고를 하고 상황실로 가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도중에 웬 장교가 나를 뚫어지게 쏘아보길래 황급히 경례를 붙였다. 상황실 문을 열고 막 보고를 하려는데 중대장의 호통이 떨어졌다. “이봐 오상병! 누가 자네를 그만큼 진급시켜 줬나?” “네?” 이쪽저쪽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좀 이상하다 싶어 번개 같은 동작으로 철모를 벗어보니까 맙소사, 대위 계급장이 붙어 있는 우리 통신장교 철모가 아닌가?
우리 스위스 연대의 장병 대부분이 부활절 휴가를 떠난 뒤 나는 멀찍이 떨어진 막사 한쪽 모퉁이에서 야간경계근무를 섰다. 별일 없으리라고 생각한 나는 초소에서 편안하게 드러누워 있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누가 어깨를 두드리는 바람에 눈을 뜬 나는 별을 잔뜩 단 장군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일어나 경례를 붙이려 했다. “괜찮아, 젊은 친구.” 장군은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넬 깨우는 사람이 선임하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야전근무기간을 끝낸 존스상병은 미군 모병센터에 재배치되어 신병들에게 그들이 정부로부터 받게될 혜택, 특히 미육군보험제도에 대해 알려주는 일을 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스상병은 거의 100%에 이르는 보험판매고를 기록했다. 어느 날 장교 한 사람이 그 비결을 물어 보는 대신 방 뒤쪽에 서서 존스상병의 판촉강의를 들어보았다. 존스상병은 신병들에게 미육군보험의 기본적인 사항을 설명한 다음 이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육군보험에 가입하고 나서 전투에 참가해 사망할 경우, 정부는 보험 수혜자에게 3만 50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여러분이 육군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전투에 참가해 사망할 경우에는 정부는 최고 3000달러만 지불하면 된다.” 존스상병은 신병들을 쓱 훑어보더니 말을 맺었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어느 쪽을 먼저 전투에 내보낼거라고 생각하는가 ?”
2차대전중 영국 선박에 대한 독일군의 공격이 절정에 이르자 영국 해군본부 작전실은 부산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군 여성봉사대원들은 벽에 걸린 커다란 대서양지도에 북쪽으로 항해중인 함정의 위치를 표시하는 깃발을 옮기느라 사다리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시찰 나온 고위인사를 당직장교가 작전실로 안내해 들어왔다. "각하, 어떻습니까?” 당직 장교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 고위인사가 대답했다. “저 여성봉사대원들에게 모두 바지를 입히든가, 아니면 호송선단을 몽땅 남대서양으로 이동시키든가 하게.”
내가 로디지아육군 훈련조교로 있을 때, 한 동료가 신병들을 부대내 매점에 데리고 가서 술을 한잔 샀다. 흥겹게 마시고 난 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그 동료는 자기가 신병들의 내무반에서 잠을 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열시간 전에 방을 깨끗이 정돈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동료는 신병들에게 침대를 거꾸로 엎으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검열을 하러 온 중대선임하사는 난장판을 보고 노발대발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선임하사님.” 동료가 나섰다. “내무반 청소상태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침대를 거꾸로 엎고 다시 치우라고 했습니다.” “그래? 좋아. 기강을 바로잡으려고 그랬다니.” 선임하사가 말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을 기대하진 말게. 아직 신병들이니까."
우리 고장의 육군지원예비군본부에 가니 좁은 길 옆 잔디밭 가장자리가 대형차량에 짓밟혀 있었다. 부근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조그마한 팻말이 진흙탕 속에 넘어져 있었다. 다음에 들렀을 때 그 팻말은 두 배나 큰 것으로 바뀌어 있었으나 잔디밭은 여전히 바퀴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 또 들렀을 때 망가진 곳은 보수되었고 새로운 잔디가 자라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위험- 지뢰가 잔디밭 가장자리에 묻혀 있음.”
2차대전중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 보병부대가 아직 전진을 못하고 묶여 있었다. 우리 캐나다군 홍보팀은 보도본부를 설치한 후에 기분을 한번 풀기로 했다. 유명한 종군기자 몇 명을 포함하여 각급 홍보관계자들이 참가하는 소프트볼 경기가 시작되었다. 3회가 끝났을 때 일단의 영국군이 길을 따라 행군해 오다가 이 '미친 캐나다군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국군 장교가 우리 심판을 불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심판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부들부들 떨며 이렇게 알렸다. “여러분, 경기를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영국 공병대가 이 운동장의 지뢰를 제거하러 왔습니다.”
서독 라인강변에 주둔한 영국육군의 중대장으로 있을 때 나는 사령관으로부터 다음 일요일 예배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장병들이 참석하게 유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장병들에게 교회에 꼭 나가라는 명령은 내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중대 선임하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랬더니 금요일날 중대내에 다음과 같은 공고가 나붙었다 : “완전군장 차림의 열병식훈련이 일요일 10시 15분에 실시됨. 중대장이 훈련 전에 중대를 검열할 것임. 일요일 예배 또한 10시 15분에 열림. 예배에 참석하는 자는 훈련에서 제외됨."
우리 소대가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한 사병이 총을 두 발이나 쏘고서도 목표물을 맞히지 못했다. 울화통이 터진 상사가 사병의 손에서 소총을 빼앗으면서 으르렁거렸다. “이런 멍텅구리 같으니 라구. 너는 눈도 없니? 잘 봐.” 상사는 총을 겨냥하고 쏘았지만 목표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맞았다. 그러자 상사는 사병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봤지? 이 바보야. 이게 바로 네가 쏜 방식이야.”
찰스왕세자가 해군대위로 복무하고 있는 군함에 다시 승선하기 위해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병 두 명에게 신문기자들이 접근했다. “찰스왕세자가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정말입니다.” 한 수병이 대꾸했다. “한 가지, 자기 양친 사진이 함장 실에 걸려 있는 유일한 사관이란 사실을 제외하면....”
육군에서 모의전투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부대장의 지프가 진흙탕에 빠져버렸다. 그 부대장은 병사 몇 명이 근처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걸 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미안합니다만 저희는 사망자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 병사가 대꾸했다. 그 부대장은 자기 운전병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일병! 가서 저기 시체 몇 구를 이리 끌고와서 차바퀴가 힘을 받도록 바퀴 밑에 밀어넣어" 부대장은 즉시 차를 밀어줄 병사들을 구할 수 있었다.
남편이 웰링턴의 국방참모대학에 다닐 때 그의 반에 발리라는 뚱보 친구가 있었다. 체중 때문에 종종 놀림을 받던 발리는 말을 타기로 했지만 그것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오전 커피 마시는 시간에 체중조절이 장교들의 화제가 되었다. “여보게.” 발리가 뻐기면서 말을 꺼냈다. “살을 빼는 데 승마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구." “맞는 말이야, 발리.” 한 장교가 되받았다. “자네 말은 체중이 최소한 20kg은 빠졌으니까 말이야.”
여자기숙사의 사감인 친구가 학기초에 사냥개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테사라는 이름의 이 강아지는 장난도 잘 쳤고 자기 여주인의 시간과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 기숙사에는 강아지와 똑같은 이름의 1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그 여학생의 어머니가 내 친구인 사감을 찾아와서 “요즘 테사는 어떻게 지내죠?”하고 물었다. “아주 잘 놀고 있어요. 그런데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요. 게다가 밤이면 담장 밑으로 기어나가서 길 건너에 있는 남학생기숙사를 찾아가려고 안달이랍니다.”
대학에 다니는 내 딸 리사는 10년이나 된 고물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이 차는 곧잘 달리기는 했지만 연료계기가 고장나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딸에게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면 몇 킬로미터나 달릴 수 있는지 알아 내서 그 거리를 달리고 나면 휘발유를 다시 채워 넣으라고 일렀다. 그런데 리사는 휘발유를 좀 적게 넣고 남는 돈을 다른 데 쓰려고 한번에 몇 달러어치의 휘발유밖에 넣지 않았다. 혹시 후미진 뒷길에서 기름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 우리가 그렇게 멋대로 기름을 넣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쇠귀에 경읽기였다. 어느 날, 딸이 밖에서 전화를 걸었다. 자동차를 도난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딸의 말투는 이상하게도 명랑했다. 나는 다음 얘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그런데 엄마, 경찰이 약 10km 떨어진 곳에서 내 차를 찾았대. 기름이 떨어져 있었대.”
캠퍼스 잔디밭에서 무심코 엿들은 얘기. “철학시험 잘 쳤니?” "응, 10문제 중 1문제만 좀 애매했어.” “야, 그러면 넌 틀림없이 A학점이야.” “아니야, 자신없어.” “왜?” “나머지 9문제는 캄캄했거든.”
조그만 대학마을에 있는, 학생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술집에서 '어버이날' 주말을 맞이하여 학교신문에 광고를 냈다: “이번 주말에는 우리 식당에서 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당신을 전혀 모르는 체하겠음.” 그러자 대학 교회에서 학교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냈다 “오는 일요일은 우리 교회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를 보시도록, 당신을 아주 잘 아는 체할 것임.”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종교, 왕족, 섹스, 미스터리의 각 요소를 두루 담은 짤막한 글 한편을 쓰라는 과제를 받았다. 이 햇병아리 작가들은 거의가 수업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끙끙 앓고 있었는데, 한 남학생만은 재빨리 해치우고 교실에서 나갔다. 그가 써낸 글은 “오, 하느님 맙소사, 공주님께서 임신하셨다! 범인은 누구일까?”였다.
러시아어 강의에 등록한 학생들이 개강 첫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의실에 몰려들었다. 학생들은 러시아어가 배우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강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러시아어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왔는데 그의 뒤에 개 한 마리가 따라 들어왔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 개를 보고 러시아말로 “앉아!” “일어서!” “재주넘어!”하고 명령했다. 개는 하나하나 어김없이 명령대로 움직였다. 교수는 이윽고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러시아어가 얼마나 쉬운지 보셨지요? 개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내가 훈련을 받고 있던 ROTC소총사격장에 솜씨가 형편없는 1학년 후보생이 한 명 있었다. 그 친구가 실탄 50발을 헛되이 써버리자 교관은 화가 치밀어 “야, 너는 널따란 헛간벽조차 맞히지 못할 놈이야! 나무 뒤에 가서 네 골통에나 대고 한 방 쏘지 그래?”하고 고함을 질렀다. 풋내기가 자취를 감춘 뒤 2, 3분쯤 지났을 때 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교관은 헐레벌떡 그쪽으로 뛰어갔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1학년생이 걸어나와 부동자세를 취했다. “죄송합니다, 교관님. 또 빗나갔습니다!”
사령관이 예하부대 식당을 검열하고 있었다. 한 신병 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령관이 물었다. “여기 식사가 어떤가?” “예, 식사때마다 음식을 놓고 서로 싸웁니다, 각하.” 사령관은 흐뭇했다. “허, 거참 반가운 일이군.”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각하.” 그 신병이 대답했다. “싸움에서 지는 쪽이 식사를 해야 하니까요."
일본을 향해 항진중인 군함 「리브스」호 함상에서 근무하던 내 동료 한 사람이 사소한 군기 위반으로 1계급 강등에다 벌금을 물고, 3주일 동안의 가외근무까지 하게 되었다. 얼마 후 7월 2일이면 21번째 생일을 맞게 되는 그는 밤마다 가외근무를 할 때면, “나를 강등시키고 벌금을 물릴 수는 있겠지만, 내 생일까지 빼앗아가지는 못하겠지”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하곤 했다. 7월 2일이 다가오자 그의 흥분은 한층 고조되었다. 그는 7월 1일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늘 하던 그 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내 생일까지 빼앗아가지는 못하겠지.” 다음날 아침, 그는 배가 날짜변경선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일어나 보니 7월 3일이 되어 있었다.
맥 사우어라는 친구가 해군에 복무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휴가를 얻어 조그만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그는 민간인 복장에다 더플백을 짊어지고 마을 한복판을 걸어갔다. 동네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와 마주친 처음 몇 사람은 별로 반가운 기색도 없이 “맥, 잘 있었나?” 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인사에 좀 실망하고 있던 차에 드디어 옛 친구 거스를 만나게 되었다. 거스만은 틀림없이 몹시 반가워하리라고 생각했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반색을 하면서 큰소리로 “야, 맥! 이거 참 반갑군!”하고는 맥이 들고 있는 더플백을 내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떠나는 길인가?”
2차대전중 여군으로 복무하던 어느 날 영국의 솔즈베리역에 도착해보니 갈아타야 할 기차가 멀리 떨어진 건너편 플랫폼에 벌써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내린 곳에서 그 플랫폼으로 가는 지하도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안타까운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기차를 놓치겠네!” 그러자 건장하게 생긴 한 수병이 나를 자기 어깨 위로 번쩍 들어올리더니, “비켜주세요! 아가씨가 기절했어요!” 하고 고함지르며 사람들을 뚫고 나가 기차가 떠나기 직전에 나를 객실 안에 내려주었다. “고마워요.” 내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기차를 타지 못했을거예요.” “천만에요, 아가씨.” 수병은 이렇게 대꾸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젊은 시절 해군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중상을 입은 수병 한 사람이 실려 왔다. 늘 그랬듯이 나는 수술준비를 하고 나서 환자로부터 수술승낙서를 받으려 했다. 그는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그 서류에 꼭 서명을 해야 하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꼭 해야 한다고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그는 마지못해 서명을 했다. 나는 그 서류를 다시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수병이 망설였던 까닭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준 서식은 시체부검의뢰서였던 것이다.
영국 재판소에 어떤 백작부인이 자기를 “암퇘지”라고 부른 상인을 데리고 와 고발했다. 판사가 그 상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자 상인은 “아니, 그러면 백작부인을 돼지라고 부를 수 없다는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렇소!”하고 판사가 대답하자 상인은, “그럼 한 가지 여쭤보겠는데요, 돼지를 백작부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물론 그렇게 부르는 것은 피고의 자유요." 그러자 그 상인, 백작부인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이렇게 한마디 했다. “안녕하시오? 백작부인,”
이것저것 한 보따리 사 가지고 와보니 남편은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돈을 물쓰듯 한 것 같은 죄책감에 꾸러미를 꽉 끌어안고 발끝으로 살금 살금 지나가는데, 남편이 눈을 뜨고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인플레이션이 당신에게 주는 영향을 불평하지 말고, 당신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좀 생각해요.”
의사들이란 괴이한 족속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일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하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다음 6개월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엄청난 액수의 청구서를 내놓는 것이다.
신혼부부가 미국 뉴저지주의 여름휴양지 애틀랜틱시티로 밀월여행을 갔다. 신부의 팔을 끼고 해변을 거닐고 있던 신랑이 바다를 보면서 즉흥시를 읊조렸다. “춤추어라, 너 깊고 짙푸른 바다여, 춤추어라!” 한참 눈을 반짝이며 바다를 바라보던 신부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쩜, 당신, 굉장한 분이셔! 당신 말에 파도가 춤추고 있잖아요!”
「10대 소년소녀를 위한 1001가지 요령」 이라는 저서에서 폴 스타이너가 충고하는 말 : “이발소에 가면 머리 깎은 모양이 제일 나쁜 이발사를 고를 것. 이발사들은 서로 머리를 깎아준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세상 참 불공평해.” 어떤 시인이 말했다. "어째서 ? ” 시인의 친구가 물었다. “글쎄, 예를 하나 들어보자구. 사람들은 은행장이 엉터리 시를 한 편 써도 전혀 개의치 않으면서 시인이 부도수표 한 장을 끊으면 야단법석을 떤단 말이야!”
갖가지 물건이 경매에 붙여지고 있는 열띤 경매장에서 갑자기 경매인이 긴급발표를 했다. “어떤 분이 이 방에서 1000달러가 들어 있는 지갑을 분실하셨습니다. 그것을 돌려주시는 분께는 사례로 200달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아무 응답이 없자, 이윽고 방 맨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210달러!”
윈스턴 처칠이 남긴 명언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상륙장에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들에서 싸우고 시가에서도 싸울 것이다. 우리는 산속에 들어가서도 싸울 것이다." 여하튼 우리 식구가 여름휴가를 갔을 때 이 말은 꼭 들어맞았다.
100kg이 넘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나이가 슈퍼마켓 야채부에 들어 와서 점원에게 한 통씩 파는 양배추를 반 통만 팔라고 우겨댔다. 점원이 지배인한테 가서, “있잖아요, 미련한 곰 같은 놈이 양배추 반 통을 팔라는거예요. 그 머저리한테 가서....”라고 하는데 지배인은 겁에 질린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점원 뒤를 보았다. 점원이 돌아보니 그 무섭게 생긴 손님이 자기 바로 뒤에 서서 자기를 욕하는 소리를 다 듣고 있지 않은가! 점원은 재빨리 지배인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신사분이 나머지 반 통을 사시겠다는군요."
한 기자가 100세가 넘은 어떤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인장께서는 그렇게 장수하시는 비결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밝힐 수 없네.” 노인이 대답했다. “난 이 문제를 놓고 지금 침대 제조회사 하나와 조반용 시리얼 제조회사 둘을 상대로 광고협상을 벌이고 있거든.”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남편이 자기를 정신적으로 얼마나 심하게 학대했던지 몸무게가 14kg이나 줄었다고 주장했다. 판사가 “이혼을 허가 함!”이라고 판결을 내리자 “오, 아직은 안돼요” 하며 여자가 이의를 제기했다. “살을 5kg 정도 더 빼야 되거든요.”
성당에 새로 신부가 부임해 왔는데 사제관의 가정부가 즉시 손을 봐야 할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신부님, 신부님 사제관의 지붕을 좀 수리해야겠어요. 또 신부님의 수도는 수압이 낮고 신부님의 아궁이는 불이 잘 들지 않아요.” “자 그만해요, 켈리부인.” 신부가 나무라듯 말했다. “부인은 여기서 일하신 지 5년이나 되지만 난 여기 온 지 불과 며칠밖에 안됩니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말고 우리 지붕, 우리 수도라고 하는 게 어떻겠어요?” 그후 몇 주일이 지나서 신부가 어떤 주교와 몇몇 신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켈리부인이 헐레벌떡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신부님, 신부님, 큰일났습니다. 우리 방에 생쥐가 한 마리 들어왔는데 그게 우리 침대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여행객이 훌륭한 전통을 지닌 오래된 호텔에 들러서 숙박료를 물어보았더니 “1층은 하루 50달러, 2층은 40달러, 3층은 30달러입니다” 하고 접수계원이 대답했다. 여행객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고맙다면서 나가려고 돌아섰다. “저희 호텔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접수계원의 물음에 그 손님이 대답했다. “아뇨, 퍽 훌륭합니다. 다만 층 수가 좀 적은 것이 아쉽군요."
어떤 레스토랑에 한 쌍의 남녀가 같이 앉아 있는데 가만히 보니 두 사람은 무척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여자가 흘끗 딴 쪽을 보는 사이에 웨이터가 그들 쪽으로 급히 달려와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댁의 남편이 방금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아녜요. 내 남편은 방금 저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군것질을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한 뚱보여인이 군것질을 줄일 묘방으로 날씬한 미녀의 사진을 냉장고 문 안에 붙여놓기로 했다. 이 방법은 과연 마력 같은 효과가 있어서 한 달 만에 몸무게를 4.5kg이나 줄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 여인의 남편은 그동안 너무 자주 냉장고 문을 열고 기웃거린 나머지 몸무게가 7kg이 늘었다나 !
영국 맨체스터에서 300명의 나체주의자들 앞에서 일요 설교를 한 적이 있는 목사가 방송대담에 나왔다.
벌거숭이들을 보고 민망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그런데 설교하다 보니, 도대체 어디다 헌금할 돈을 지니고 있을까 그게 궁금하더군요"
10년간 결혼생활을 해온 남자가 결혼상담소에 왔다. “갓 결혼했을 땐 난 매우 행복했지요.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면 우리 강아지는 먼저 와서 짖어대며 맴돌았고 아내는 슬리퍼를 갖다주곤 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죠. 슬리퍼는 개가 물어다주고 아내는 무서운 소리로 짖기만 하거든요.” “난 도무지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군요. 여전히 똑같은 대우를 받는데, 뭐가 문제란 말요?"
저녁에 방송국 구경을 하러 간 몇 쌍의 부부가 “신혼부부 게임”이란 TV프로그램에 출연해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드시고 싶은 음식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남자들이 답을 적고 부인들은 남편의 대 답을 알아맞히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햄버거란 답을 쓴 걸 알고 부인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의 대답이 갈비구이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린 거의 매일 저녁마다 햄버거를 먹잖아요?” "알아. 그걸 일주일에 한번만 먹었으면 좋겠단 말야."
환자 : “선생님, 우리 식구들은 내가 소시지를 좋아한다고 나보고 미쳤대요.” 의사 : “당치 않은 소리예요. 나도 소시지를 좋아하는걸요.” 환자 : “그래요? 그럼 선생님, 꼭 우리 집에 오셔서 제가 수집한 소시지 구경 좀 하세요. 수백 가지 모아놓았죠!"
외모가 단정한 한 남자가 거리를 다니는 몇몇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보고 기분이 상해서 옆에 있던 사람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애 좀 보세요. 저게 사냅니까, 계집앱니까?" "계집애예요. 제 딸이죠.”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저애의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쟤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예요 !"
어떤 저명인사가 서재에서 조간신문을 읽다가 큰소리로 부인을 불렀다. “여보, 엘리자베스, 이 가십란 읽었소? 이런 엉터리 기사가 어디 있어? 아, 글쎄, 당신이 짐을 싸 가지고 집을 나갔다는군. 여보!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해외복무 3년을 마치고 집 근처 기지에 방금 도착한 병사, 한시 바삐 아내가 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래서 상사에게 애원해서 두 시간만 갔다오라는 외출허가를 받았다. 그 병사는 여섯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귀대했다. “어째서 네 시간이나 무단이탈을 했나?” 상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그 병사, “글쎄 집에 도착했더니 집사람이 마침 목욕을 하고 있지 뭡니까? 제 군복이 젖어버려서 말리느라고 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말할 수 없이 질투가 심한 여자가 있었는데 매일 저녁 남편의 몸을 수색하고 양복저고리에서 조그만 머리카락 하나만 발견돼도 막 할퀴고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남편의 옷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눈물을 펑펑 쏟으며 통곡을 했다. “아이구, 이젠 대머리 계집년까지 좋아하는구나!”
어느 화랑을 찾아간 손님이 그림 한 점의 값을 물었다. 10만 달러라는 말을 들은 그 여자, “이게 10만 달러라고요? 정말 천만다행이군요. 난 이런 게 없어도 되니까요.”
호화로운 나이트클럽의 문지기가 그에게 팁 한푼 안 주고 나온 인색한 신사를 택시까지 정중히 안내하고는 상냥하게 말했다. “저, 손님, 댁에 가시는 동안 혹시 지갑을 잃어버리더라도 여기서 지갑을 꺼내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해두십시오."
경찰이 불로장생약이라고 떠벌리며 약을 파는 약장사를 사기꾼인 줄 알고 체포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1772년, 1829년, 1943년에도 똑같은 죄목으로 세 번이나 체포된 적이 있더라고,
“그동안 자동차 때문에 골치를 썩이셨다면서요?” 어떤 남자가 이웃 집 사람에게 물었다. “예, 그랬지요. 연료를 30% 절약할 수 있다는 카뷰레터와 50% 절약할 수 있다는 트랜스미션, 그리고 40% 절약할 수 있다는 스파크 플러그 한 세트를 새로 샀거든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한 60km쯤 달리다 보니 휘발유가 막 넘쳐흐르지 뭡니까?"
세 남자가 바다낚시를 갔다가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혔는데 셋이 다 헤엄을 쳐 무인도에 가 닿았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런대로 같이 지냈으나 1주일이 지나니까 농장을 경영하는 한 사람은 농장이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또 한 사나이는 뉴욕시에서 택시운전을 하던 사람인데 뉴욕시가 그리워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세번째 사나이는 아주 낙천가로서 사람 하나 없는 고도에 와 있으니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워 좋다며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하루는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이 바닷가로 산보를 갔다가 아주 오래된 등잔을 하나 주웠다. 그 등잔을 깨끗이 손질하고 나니까 그 속에서 요정이 하나 튀어나왔다. 요정은 세 사람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를 감옥에서 해방시켜줘서 고맙소. 보답으로 각자 무슨 소원이든 하나씩만 들어주리다.” 농장주인은 “나를 내 농장으로 돌려보내주시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쉭!” 소리가 나더니 그 사람이 사라져버렸다. 다음엔 택시운전사가 “나는 뉴욕으로 돌려보내주시오” 하고 말하자 그 택시운전사도 “쉭!”하고 사라져버렸다. “다음은 댁의 차례인데 댁의 소원은 무엇이죠?” 요정이 묻자 마지막으로 남은 사나이가 대답했다. “글쎄요. 그 두 친구들이 가버리니까 도무지 심심해서 못살겠소이다. 그 사람들이 다시 와줬으면 좋겠소.”
텍사스 목장주가 최신형 캐딜랙을 타고 가다가 소들을 끌고 길을 건너는 버몬트 농부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말을 걸었다. “가지신 땅이 얼마나 되지요?” “저 시냇가 오리나무 서 있는 끝에서부터 저 풀밭 언덕 위에 있는 낙엽송까지가 몽땅 내 땅이라오!” “음, 텍사스의 우리 집 목장으로 말하면, 내 픽업차로 하루 종일 달려도 끝까지 갈 수가 없을 정도지요!”
“그럴거요. 나도 왕년에 그런 고물차 때문에 속 좀 썩였지요."
호주의 일부 지역에서는 크게 부족한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물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 호주의 여자 코미디언 다프니 데이비스가 나이트클럽에서 이야기했다. “내륙의 건조한 지역으로 가면 1600km 쯤 들어가야 겨우 남자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지요. 그러나 남자를 찾았다 해도 그 남자가 찾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물이랍니다."
미국 텍사스주 러레이도에서 은행을 턴 멕시코인이 며칠 후 체포되었다. 그를 잡은 미국 보안관은 스페인어를 못했고 멕시코인 강도는 영어를 몰랐다. 그래서 지나가던 멕시코 사람이 통역을 맡게 되었다. 보안관은 은행 강도혐의자의 배에 권총을 들이대면서 통역을 맡은 멕시코인 에게 말했다. “이름이 마누엘 곤잘레스냐고 물어봐.” 통역하는 사람이 말했다. “그렇대요. 이름이 마누엘 곤잘레스래요.” "그럼 러레이도의 퍼스트 내셔널 은행에 간 적이 있느냐고 물어봐." "간 적이 있대요. 그리구 자기가 은행을 털었다고 고백하는뎁쇼.” 보안관이 총을 더욱 바짝 들이대면서 말했다. “됐어. 그러면 돈을 어디다 뒀는지 말하라고 그래. 불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길거라구.” 강도는 얼굴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스페인어로 중얼거렸다. “쏘지는 마십쇼. 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넷이나 있습니다. 돈은 집 뒤 우물에 숨겨뒀습죠.” 그러나 통역은 이렇게 말했다. “이놈이 글쎄, 나으리더러 닥치라는군요. 하나도 겁 안 난대요. 쏘래요. 쏴버려요.”
12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다가 런던으로 돌아온 한 영국군 장교가 명사들이 많이 모인 칵테일 파티에 참석했다. 파티에서 그전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매력적인 여성과 마주친 그는 어디서 만났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 “저, 아버님은 여전하신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가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하고 대답했다. “저런, 참 안됐습니다”라고 말한 장교는 그래도 어디서 만났는지 생각이 안 나 다시, “오라버니께서는 안녕하신가요?” 하고 물었다. “전 오빠는 없고 언니만 있는걸요.” 아름다운 여인이 대답했다. “참 그렇지. 내 정신 좀 봐. 그래 언니께서는 안녕하신가요?” 장교는 약간 당황하면서도 이젠 이 여자를 어디서 만났는지 알아낼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 숙녀가 대답했다. “그럼요. 건강하셔요. 아직 왕위 (王位)에 계시죠.”
얼간이 경찰 지망생이 필기시험에서는 낙제점수를 받았으나 경찰서장의 조카였기 때문에 시험관은 면접시험에서 쉬운 질문을 해서 합격시키기로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한 사람은 누구지?” 얼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달라고 하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 얼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취직이 됐다구. 시험관이 벌써 수사를 맡겼어!”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녀석이 자기에게 곧 사내동생이 생길거라고 선생님에게 줄곧 자랑을 했다. 꼬마가 하도 성화를 해서 하루는 임신중인 엄마가 아들에게 불룩한 배를 만져보게 했다. 엄마의 배를 만져본 꼬마는 그 이후로는 동생에 관해서 한마디도 말을 안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생님이 물어봤다. “말해봐. 사내동생이 생긴다더니 어떻게 된거야?” 다섯 살 먹은 그 꼬마는 얼굴빛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엄마가 동생을 먹어버린 것 같아요.”
인기 방송인인 조 가러졸라는 TV쇼를 하느라고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므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집에 좀 일찍 돌아갔다. 대문을 연 그의 딸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엄마, 아빠야!” "그래?” 엄마가 말했다. “채널 몇에 나오시니?”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공연중인 연극에 주인공이 강으로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다. 출연자가 무대 뒤로 뛰어내리면 음향효과를 맡은 아가씨가 물통으로 첨벙! 하는 효과음을 내기로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공연에서 효과 담당이 연출자의 신호를 놓쳐, 주인공이 뛰어내렸는데 첨벙! 하는 소리 대신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죽음 같은 정적이 무대를 감쌌다. 잠시 후에 주인공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강물이 꽁꽁 얼어붙어 버렸군!”
아버지는 1950년대 중반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 있는 엘멘도프공군기지에서 복무하셨다. 아버지와 같이 살던 우리 가족은 복무기간을 마치신 아버지와 함께 군용수송선인 「펀스턴」호를 타고 시애틀로 돌아왔다. 항해 중 아버지는 수송되는 부대의 지휘관으로서 사병들의 선실,취사장과 식당을 매일 검열하셨다. 어느 날 네 살 먹은 남동생 스튜어트가 검열 중인 아버지 뒤를 따라다녔다. 여느 때처럼 취사장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바닥엔 티끌 하나 없었고 식탁과 양념통들은 일직선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막 검열을 끝내시려는데 별안간 스튜어트가 지껄여댔다. "아빠 ! 식탁 밑에 붙어 있는 저 껌들을 보세요 !" 아버지는 스튜어트의 눈 높이까지 몸을 숙이시고는 몇 년을 묵었는지 돌처럼 딱딱해진 껌들이 식탁 밑바닥을 뒤덮고 있는 꼴을 보고 질겁하셨다 그날 늦도록 식당은 검열에 합격하지 못했는데 모르긴해도 그 껌들을 죄다 긁어낸 병사들은 내 어린 동생을 배 안에 있는 감방에 처넣고 싶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다소 거만한 우리 선장은 무슨 잡일을 시키고 싶을 때는 선장실을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거기 누구냐 ?"하고 불러대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한번은 노련한 고참선원 한 사람이 선장실을 지나가다가 또 그렇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식으로 부름을 받는 것이 불쾌했던 그 선원은 선장에게 큰 소리로 욕을 퍼붓고는 아랫층 갑판으로 재빨리 도망쳤다. 화가 치민 선장은 그 버릇없는 놈을 잡으려고 뛰쳐 나왔으나 선원은 이미 사라진 두였다. 선장은 "누가 욕을 했어 ?" 하며 아무도 없는 통로에 대고 소리쳤다. 그러자 "누구가 그랬지"하는 대꾸가 배의 저 아래에서 들려왔다.
2차대전 중 삼촌은 병력수송선의 군의관이었다. 어느 날 의과대학을 갓 나온 애송이 군의관 두명이 삼촌 밑에 배치되어 함께 항해하게 되었다. 젊은 군의관들은 삼촌에게 항상 정중히 대하면서도 왠지 삼촌을 한물간 의사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하루는 삼촌이 오전진료를 쉬기로 하고 두 젊은 군의관에게 환자들을 맡겼다. 점심 시간에 가서 보니 두 사람은 쩔쩔매면서 완전히 지쳐 있었고 진찰받으려는 환자들은 배를 반 바퀴 돌 만큼이나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두 사람을 딱하게 여긴 삼촌은 가서 쉬라고 이른 뒤 자신이 진료를 맡았다. 한 30분 후 두 젊은 군의관은 삼촌이 보통 때와 다름없이 태연한 모습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나타난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환자를 벌써 다 보셨습니까 ?" "그건 간단해" 삼촌이 대꾸했다. "연락병에게 '늙은이'가 또 나타났다고 줄을 따라가며 전하라고 했지.그랬더니 대다수 환자가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다고 생각을 바꾼 모양이야."
내가 산타마르가리다의 기갑연대에서 복무하고 있을 때, 우리 부대의 소령은 M47 전투차량에 싣고 다니는 네 개의 소화기는 왜 차량이 기지에 돌아올 때마다 항상 소화액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야외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찬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맥주병을 쌓아 놓고 그 위에 소화액을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탄산가스가 발생하면서 맥주병을 냉각시키기 때문이었다.
중서부지방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는 다른 사람들, 특히 장애자나 연장자에게 예절 바르게 행동하라고 배웠다. 나의 이런 생활습관은 보스턴으로 이사한 후에도 지속되었다. 보스턴에서는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내가 어느 할머니에게 내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섰다. 그때 내 맞은편에 앉았던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들의 대화는 단지 두 마디밖에 필요치 않았다. 내가 "위스콘신주 !"라고 하자그 젊은이는 "일리노이주 !"라고 대답했다.
장미가 한창 피는 철이면 19세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죽은 동생 해럴드의 무덤 앞에 장미가 꼭 한 송이 놓여 있는 것을 부모님이나 내가 더러 보곤 했다. 동생이 죽은 지 3년이 지날 때까지는 누가 갖다두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뒤에 결국은 알게 되었지만. 해럴드는 생전에 몸 상태가 괜찮을 때면 동네 세탁소에다 세탁물을 거두어다 주기도 하고 배달도 하여 용돈을 벌어 썼다. 그애는 언제나 세탁물을 배달하는 길에 장미가 아름다운 어느 단골손님 집 정원 앞에 잠깐 멈춰서서 장미꽃밭을 칭찬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 집 아줌마가 장미꽃다발을 주려고 했지만 내 동생은 번번이 사양하고 한 송이만 받아 단추구멍이나 모자띠에 꽂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좋아했다는 것이다. 동생이 죽은 뒤 이 친절한 아주머니는 “해럴드가 생전에 늘 한 송이만을 원했기 때문에” 장미를 딱 한 송이 그애 무덤에 놓아 주곤 했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동생이 그처럼 훈훈한 인정 속에 추모되고 있음을 알고서 우리 가족이 고맙고 흐뭇해했음은 물론이다.
2차대전중 나는 프랑스전선에서 적군의 공격에 탱크 몇 대를 잃었다. 여섯번째로 탱크를 잃자 나는 다른 연대의 어떤 장교의 당번병으로 전속되었다. 현지에 도착해서 이틀째 되던 날 밤, 독일군의 폭격을 받았다. 나는 독일군의 폭격이 있을 때마다 셔먼탱크의 안전성을 믿고 그 밑에 숨곤 했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트럭 밑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숨겼다. 공습이 끝난 다음 트럭 밑에서 기어나와 보니 트럭을 덮은 방수포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탄약 트럭"
남편과 함께 공군기지에서 열린 댄스파티에 참석했을 때 있었던 일. 한 젊은 사병이 우리 테이블 쪽으로 오더니 나에게 춤을 청했다. 그의 춤솜씨는 아주 훌륭했다. 그는 옛날 스텝과 최신의 스텝을 섞어가며 멋지게 나를 리드하는 것이었다. 그 사병과 나는 몇 번을 계속해서 함께 춤을 추었는데 그 젊은이가 또다시 내게 와서 춤을 청하자, 남편이 웃으면서 다음 차례는 자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나를 보고 어린 소년같이 환하게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인. 부인께서는 모습이나 춤추시는 것이 꼭 우리 어머니를 닳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한테서 춤을 배웠거든요. 어머니를 못 뵌 지가 벌써 2년이 됩니다. 부인 덕택에 저는 오늘 저녁에 정말 뜻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소속된 항공정찰편대가 극동지구에 주둔하고 있을 때, 나는 해군에 있는 친구하고 마닐라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었다. 한번은 저녁때 부둣가의 큰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한창 건설중에 있는 공중회전열차 시설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인부들을 보고 일이 다 끝나면 타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저희들끼리 뭔가 왁자지껄 떠들어대던 인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서투른 영어로 당장이라도 탈 수 있다고 했다. 공중회전열차에 올라탄 우리는 평생 겪어 보지 못할 아슬아슬한 경험을 했다. 드디어 열차가 멎자 인부들은 일제히 환성과 고함을 질렀다. 그들이 "안 떨어졌어 ! 안 떨어졌어 !" 하고 고함을 치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그 공중열차에 승객이 탄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고,시험 주행때 번번이 궤도에서 탈선하여 떨어지던 그 열차가 우리가 탔을 때 처음으로 제대로 궤도를 따라 돌았던 것이다.
제2차대전중의 어느 날 밤, 나는 포대의 지휘본부 외곽에서 보초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일대는 적군이 정찰활동을 벌이는 곳이었다. 우리는 프랑스의 한 과수원에 방치된 닭장 안을 초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벽에 등을 대고 서서 주위를 응시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조금 있다가 내 왼쪽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좀 떨어진 곳에서는 뭔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 소리가 간간이 계속되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동료들을 깨우느냐, 한바탕 총을 쏘아대느냐 아니면 그냥 기도를 드려야 하느냐 ? 나는 결국 맨끝의 것을 택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어젯밤 일어났던 일의 역력한 증거들이 내 눈앞에 널려 있었다. 사과나무에서 아직도 사과들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군 복무 중 나는 모기떼가 들끓는 국경지대로 배치되었다. 우리는 장비를 갖추고 순찰에 나서기 전 집합장소에 모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잠시 후 부대장이 절연테이프 한 뭉치를 가지고 나오더니 그것으로 각자 목에 걸고 다니는 개패를 한데 모아 붙이라고 명령했다. 우리가 계급,군번,혈액형이 적힌 둥근 쇠 인식표를 테이프로 붙이는 동안 부대장이 설명했다. "이것은 숲 속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그때 "정말 몰랐어"라는 소리가 대오 가운데서 들려왔다. "난 모기가 우리 혈액형을 읽지 못하도록 그러는 줄 알았지."
우리 고장의 육군지원예비군본부에 들렀을 때,좁은 길 옆에 심어 놓은 잔디밭 가장자리가 대형차량에 깔아뭉개져 있는 것을 보았다. 부근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조그마한 표지판이 진흙탕 속에 넘어져 있었다. 다음에 들렀을 때 그 표지판은 두 배나 큰 것으로 바뀌어져 있었으나 잔디밭은 여전히 바퀴자국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 다음에 또 들렀을 때 망가진 곳은 보수되었고 새로운 잔디가 자라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근처에 서 있는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위험-지뢰가 잔디밭 가장자리에 묻혀 있슴'
내 친구는 자기가 다니는 대학교 여학생들이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았다. 여학생들이 하나같이 "너무 어리석고, 천박하고, 멍청하거나, 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끊임없이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느 날 그 친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여자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찾아 헤맨 여자를 발견했다는 그 어마어마한 뉴스를 전하면서도 통 즐거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나 ?" 내가 물었다. "완벽한 여자를 찾았다고 하지 않았어 ?" "찾았지" 친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단 말이야."
싼타 바바라의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상담교사 자격을 얻기 위하여 나는 그룹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모임의 사회자는 참가자들의 가식 없는 정직한 대답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 나온 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 그는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좋습니다. 아주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어깨는 어째서 그렇게 움츠러들어 있지요 ?" 사회자가 따지고 들었다. 그 학생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고 실토하였다. 다음은 조용히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의 차례였다. 그 여학생은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굉장한 기분이에요." 여자가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은 아주 멋진 날이었거든요" "이 학생의 경우가 바로 어떤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드러내는 '보디 랭귀지'의 완벽한 예입니다." 사회자는 득의만면해서 외쳤다. "학생이 만약 그렇게 기분이 좋다면, 어째서 그런 모양으로 앉아 있습니까 ?" 하고 그는 물었다. "자리에 않다가 그만 슬랙스가 찢어져 버렸어요."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종알거렸다.
작곡과 교수인 내 친구는 음조를 정확히 알아맞히는 재능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러한 재능이 음악세계 밖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몰고 다니는 저 고물차를 보게나." 친구는 머리로 자기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속도계가 고장이 났거든. 그래서 차 뒤쪽에서 나는 배기음을 듣고 속도를 가늠한다네. 그 소리가 E플랫이면 시속 40km고 배기음이 G로 올라가면 65km지. 그리고 B플랫만 넘지 않으면 딱지를 뗄 염려는 없다네."
몇 년 전 알몸으로 줄달음치는 이른바 스트리킹이란 것이 각 대학에서 유행할 때 였다. 우리 대학에도 스토리킹을 한 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 학생은 도서관의 남자화장실에 들어와서는 옷을 홀랑 벗고 복도를 지나 시원한 밤공기를 가르며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왜 그 친구를 막지 않았어 ?" 도서관 입구에 앉아 들고나가는 책을 체크하는 건장한 남학생을 보고 도서관장이 나무랐다. "책을 한 권도 들고 있지 않던걸요." 그 남학생의 대꾸였다.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의 보조 사서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학생들인데,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어느 날 학생들이 통닭을 사는 문제에 관해 논쟁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어떤 학생이 말했다. "수탉을 먹어 본 사람은 없을걸." "먹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엄마." 그 학생이 말했다. "수퍼마켓에서 수탉을 살 수가 없잖아요" "포장을 끝낸 수탉이 수퍼 마켓에 도착하면 어느 것이 수탉고기인지 알 도리가 없지."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 학생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엄마, 포장 속에는 닭 가슴살이 있잖아요."
대학에 다니는 아들 리처드는 밤잠이 없는데다 아침 잠이 많은 아이라 자기가 듣는 강의가 모두 낮 12시나 되어야 시작되는 것을 기뻐했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되는 게 세상일이라 함께 기숙사 방을 쓰는 친구가 아침 일찍 강의가 있어 그가 맞춰 놓은 자명종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벽마다 통근열차를 타고 출근하는 남편이 물었다. "이르다면 몇 시를 이르다고 하는거야 ?" "일곱 시 반요." 리처드가 대답했다. "그거야 늦은거지. 네 시 반은 돼야 이르다고 할 수 있지." 그러자 밤잠이 없는 아들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그게 어째서 이른거에요 ? 늦은거지."
미국 오페라계의 대스타인 로버트 메릴씨는 푸치니작〈토스카〉공연 중 겪은 잊지 못할 사건을 이렇게 전한다. 토스카역을 맡은 스텔러 로먼양이 감옥 난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이 있었는데,물론 무대 밖의 매트리스위에 떨어지도록 되어있었다. 로먼양은 어느날 밤 공연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매트리스를 두장 더 깔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로먼양이 뛰어내리자 매트리스 두장의 탄력이 너무 세어 그가 도로 무대 위로 튕겨 올라 왔다. 결국 로먼양은 자살 장면을 재연해야만 했다.
내가 일하는 알루미늄 제조회사의 감독은 여류화학자다. 이 여감독이 어느날 알루미늄제품이 제조돼 나오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쓰고있던 가발이 알루미늄판 위에 떨어졌다. 판이 움직여 이동함에 따라 가발은 압연기에 끼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발이 알루미늄판에 묻어 나오는 윤활제를 깨끗이 흡수했기 때문에 그 알루미늄제품은 품질이 더 좋아졌고 따라서 값도 비싸게 받을 수 있었다. 연구조사 결과 과연 가발이 윤활제를 흡수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는데 공헌이 컸던 그 여감독의 월급은 파격적으로 인상됐다.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와서 궁지에 몰린 런던 템즈 상수도 관리 당국이 직원들에게 호소하는 광고를 그 기관지에 실었다. 「피크 타임에 런던一레딩간의 10분 통화료는 1.8파운드(약 1700원). 이 돈이면 2,500개의 변기를 세척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할 수 있고, 자동차 한대를 1주일 1회씩 25년간 세차하며 5,000명에게 하루 식수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원에 10년간 물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천 5백만마리의 전서구(傳書鳴) 一전화요금이 현재보다 더 오르면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비둘기 말입니다. 一를 멱 감길 만한 물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단골로 가는 슈퍼마켓은 매주 한번씩 신선한 버섯을 들여다 판매한다. 채소류 진열장은 온도와 습도가 완벽히 조절되고 있더라도 버섯은 흰색을 잃고 가장자리가 검어지게 마련이다. 버섯이 변색이 되면 주인은 으례 정가표를 고쳐 값을 반으로 매긴다. 어느날 아침 내가 채소류 판매장에 가보았더니 버섯이 진열된지 나흘이 넘었건만 정가표는 고쳐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정가표에는 주인이 ‘버섯’이라는 품명 앞에 ‘여러해 묵은’ 이라고 덧붙여 놓고 또 그밑에 줄을 둘씩이나 그어 놓은 사실이 눈에 띄었다. 오후에 그곳에 또 들러 보니 과연 버섯은 다 팔리고 하나도 없었다.
보스턴 셀틱스 농구팀의 코치인 토미 헤인존이 뉴잉글랜드 도매상인들의 아침회합에 나가 한 말씀하게 되었다. 그는 직원을 부리는 가장 좋은 비결은 각자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자기 맡은 일을 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우연한 경험담 하나를 소개했다. 헤인존은 여급에게 버터를 한 조각 더 달라고 청했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 한 분에게 한 조각씩만 드리기로 돼 있습니다.’’ 여급의 말이었다. "아니, 잠깐만! 버터가 더 없으면 나머지 빵을 어떻게 먹으란 말이오.” "손님 , 죄송합니다만 우리 식당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아가씬 내가 누군지 모르겠소 ?” “모르겠는데요.” "난 보스턴 셀틱스팀의 코치요. ” 여급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되받아 물었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모르겠는데.’’ “버터 나르는 사람은 바로 나라구요.”
하버드대학에 입학되어 학교 구내를 구경하던 중 안내원이 한 동상 앞에서 우릴 멈춰 세웠다. 동상의 받침대에는 "설립자 존 하버드, 1638년"이라 새겨져 있었다. 안내원은 그 동상을 가리키며 이 동상은 흔히 "세 가지 거짓말 동상"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했다. 그의 설명인즉, 첫째 ,조각가가 존 하버드의 사진을 구할 수 없어서 그 시대에 살던 어떤 점잖아 보이는 신사의 사진을 모델로 해서 새겼기 때문. 둘째 거짓말은 존 하버드가 하버드대학교의 설립자가 아니라 초창기에 상당한 재산을 기부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 . 또한 동상에 새겨진 연대도 흔히 상상하듯 그 사람이 죽은 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의 서재와 재산의 반을 대학에 기증한 연도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한층 더 아이로니칼한 사실은 그 동상 바로 옆에 하버드대학교의 모토인 Veritas(진리)라는 말이 들어 있는 하버드대학의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었던 것.
올해 대학 4학년이 된 딸 베스 앤과 그애와 같은 기숙사 방을 쓰고 있는 그애의 친구 킴은 전화 자동응답기를 사기로 했다. 자동응답기를 가설하고 2,3주가 지난 후, 그것이 과연 쓸모가 있더냐고 내가 물었다. 딸의 친구 킴이 대답했다. "우리가 밖에 나갔다가 기숙사에 돌아와서 '우리가 나간 사이에 그 남자가 전화했을는지도 몰라' 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이제 우리는 그가 전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돼버렸거든요."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 건망증이 심해서 '건망증 교수'로 통하는 교수가 있었다. 나는 과 사무실의 냉장고 안에 있는 케이크 상자 위에 그 교수의 자동차 열쇠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내가 그 열쇠를 집어들고 그 교수의 얼굴 앞에 대고 흔들어 보였더니 뜻밖에도 그는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는 것이었다. “냉장고에 열쇠를 넣어 둔 것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어쩌시려고요 ?” 하고 내가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자동차 열쇠가 문제가 아니라 마누라 생일케이크가 문제야. 그 상자 위에다 열쇠를 얹어 놓지 않으면 집에 갈 때 케이크 가지고 가는 걸 잊어버린단 말일세."
어느 날 딸의 기숙사를 찾아갔더니 딸은 외출하고 없었다. 이제 대학 1학년이니 격려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에서 필체를 속여서 딸을 칭찬하는 편지를 쓴 다음 그 끝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찬미자로부터'라고 써넣었다. 그런데 딸이 뒤에 나를 만나서 격려편지를 줘서 고맙다고 말하기에, 편지를 쓴 사람이 나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엄마, 그 편지의 필적이 부활절때의 토끼 아가씨,내가 흔들리는 이를 뽑았을 때 머리맡에 돈을 놓고 간 ‘이의 요정', 크리스마스때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필적하고 똑같은데 왜 모르겠수 ?"
대학에 다니는 사촌 여동생 리나가 주말을 이용해 집에 와서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이 너무 어렵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리나가 다음주에 치러야 할 시험 걱정을 하자 그애의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잖아 ?" 하고 말했다. 리나는 어머니의 충고대로 연 사흘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그 다음 주말에 리나가 다시 집에 오자 어머니는 시험을 잘 치렀느냐고 물었다. "엄마 내가 뭣 때문에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했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쉬운 시험은 처음이었어."
어떤 대학의 기숙사 사감으로 부임한 나는 계단 여러 곳에 으깨진 과일, 먹다 버린 피자,빈 음료수 깡통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감을 여러분들의 어머니처림 생각해 줘요" 라고 쓴 쪽지를 붙였다. 학생들이 쓰레기를 여기저기 마구 버리다가도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쪽지 밑에 빨랫감이 가득 찬 광주리 한 개와 집에서 구운 쿠키를 부탁한다는 메모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나와 룸메이트는 어질러 놓은 기숙사 방을 청소하는게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아버지가 다음 주 우리 여학생 기숙사로 찾아오겠다고 전화를 해, 할수없이 도착 바로 전날 방을 치우기로 작정 했다. 그애의 아버지가 오시기 며칠 전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니 방문에 이런 쪽지 가 붙어 있었다 : "얘들아, 며칠 일찍 도착했다. 한시간 후에 다시 오마. 아버지." 나는 후다닥 행동을 개시하여 널려진 옷을 옷장에 던져 넣고 가구의 먼지를 털어내고, 책장을 정리하고, 방바닥을 걸레로 훔쳤다. 친구 아버지가 다시 오기로 한 시간이 10분쯤 남았을 때 그애가 들어 와 침대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네 아빠가 곧 오실거야. 빨리 날 거들어 !" "며칠 후에 오신다는 거 너도 알잖아 ?" "그럼 저 쪽지는 누가 써놓은거야 ?" 친구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초등교육 전공분야의 필수과목인 율동 운동시간에 담당 여강사가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강사는 출석이 필수라고 강조하고 늦잠의 유혹 때문에 아침 8시 수업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잠자리에서 율동을 배울 수는 없는거예요." 한바탕 웃음이 장내를 횝쓸자 강사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급히 덧붙였다. "적어도 내가 가르치려고 하는 그런 종류의 율동은 말이에요."
아동발육성장을 강의하는 시간에 아기 출산에 대한 영화를 보여 주기 전, 출산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았다. 몇 명 안되는 남학생들 중 하나가 손을 들어 대답했다. "아내가 출산할 때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반쯤 돌아갔을 때 그 남학생이 기절해 버렸다. 의식이 들자 내가 물었다. "자넨 전에 출산을 보았다고 하지 않았나 ?"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랬었죠. 그때도 저는기절했었답니다."
심리학시간에 프로이트의 성격이론을 배우면서 인간의 충동이 어떻게 성본능과 공격본능에 의거하고 있느냐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모든 쾌감을 성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교수가 설명했다. 한 학생이 이에 대해 반론을 재기했다. "만일 프로이트가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 아침 제가 샤워를 한 뒤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꼈는데 그게 성적인 경험이란 말이죠 ? 그리고 아침을 배불리 먹고 원기를 찾은 것이나 하루종일 수업을 즐겁게 들은 것도 성적인 경험으로 볼 수 있겠군요 ?" 그때 뒷줄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넌 지나치게 성이 강하구나 !"
내가 다니는 대학교 학생들의 짖궂은 장난은 가끔 어머니의 대학시절 경험과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남학생들이 "팬티를 뺏어가자 !”고 외치면서 여자기숙사로 뛰어들어오던 날 밤의 소란 같은 것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 남학쟁생들이 여학생들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어머니의 대학시절과 양상이 달랐다. 내 방 친구는 보던 책에서 눈을 떼는 법도 없이 남학생들에게 차분히 팬티 있는 곳을 일러 주었던 것이다. "맨윗서랍 태권도복 밑에." 침입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물러갔다.
대학 3학년 때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여동생에게 새로운 생활을 자랑하며 먼저 함께 사는 친구들에 관해 얘기했다. 나와 친구들은 모두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한 애는 바이얼린을 켜고, 또 한 애는 트럼본, 또 하나는 타악기, 여기에다 내 바순을 합치면 우리들은 아파트 안에 구색 갖춘 관현악단을 꾸밀 수 있단 말이야. 이 위에 뭘 더 바라겠니 ?" 덤덤한 얼굴로 날 바라보던 여동생이 하는 말. "귀마개는 없어 ?"
내 딸 친구애가 한번은 자기고장 대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자기 동생을 놀래 주려고 작정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갈 때 누나도 같이 묻어 들어가 뒷자리에 좌석을 잡았다. 조금 강의를 진행하던 동생이 돌연 누나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강의를 멈춘 동생은 손가락으로 누나를 가리키며 "당장 나가 !" 하고 크게 소리질러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자 누나가 뒤에서, "너 엄마한테 이를거야 !"하고 꽥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채플힐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외과수술의 역사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질문의 초점은 위장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에 관한 것이었다. "위의 유문 절제수술을 최초로 성공시킨 사람은 누구죠 ?" 교수가 물었다. "닥터 빌로스 아닙니까 ?" 어떤 학생이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맞았어요. 그럼 그 수술이 왜 필요했는지 아십니까 ?" 하고 교수가 다시 묻자 한 학생이 대꾸했다. "위암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술을 한 해가 몇년이었는지 아십니까 ?" "1881년이었습니다." 한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 수술은 암으로 인해 장폐색을 일으킨 여자환자가 받았습니다. 자 그러면 그 환자는 어떻게 됐을까요 ?" 한동안 잠잠하다가 어떤 학생이 입을 열었다. "글쎄요. 지금쯤은 그 환자는 죽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9시 강의시간에 대 가느라고 나는 급히 손가방에 주섬주섬 책을 집어넣고 쾅 닫은 다음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학교 캠퍼스 안을 횡하게 뛰어가는데 학생 몇이 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마침내 강의실에 당도하니 친구 하나가 내 가방을 보고는, "자네 강의시간에 내내 잠을 자기로 작정했나 ?" 하고 물었다. 색깔이 요란한 큰 베개 끝이 가방 사이에 끼여서 강의실로 오는 동안 줄곧 대롱대롱 매달려 따라왔던 것이다.
딸아이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자기가 기르던 화초와 금붕어를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내게 맡겼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화초를 가꾸는 일이라면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화초들은 금방 시들어 버렸고 나는 이 사실을 딸아이에게 지체없이 알렸다. 어느 날 딸아이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금붕어마저 죽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는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아빠는 무사하세요 ?"
남편이 여러 가지 엄중한 정밀검사를 받기위해 병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검사대 위에 누워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간호원이 물었다. "이스턴 미시간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던 디지오반니 선생님이 아니세요 ? 1학년 때 선생님한테서 작문을 배웠어요" 긴 침묵이 흐른 뒤 남편은 가까스로 간호원에게 물어보았다. "그 과목에서 성적이 어땠지요 ?" "오, 전 B플러스를 받았어요." 명랑한 대답이 들려왔다. "살았구나 !" 남편이 안도의 숨을 내쉬자 검사가 시작되었다.
아리조나주립대학교에 다니는 내 친구는 인디언들의 수제 사슴 가죽신을 습관적으로 신고 다녔다. 어느 날 아침 중요한 ROTC검열을 받으려 서두르던 친구는 멍청하게시리 그 사슴가죽신을 꿰어 신고 뛰쳐 나갔다. 겸열 장교는 열을 따라 별탈없이 지나다가 그 친구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복장을 아래 위로 유심히 훑어 보았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이 꼴로 대체 뭘 하려는건가 ?" " 녜 ! 중대척후병입니다." 친구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좋아, 그대로 신도록" 민족한 표정으로 장교는 검열을 계속해 나갔다.
이제 막 대학입학허가서를 받은 딸애가 학고에 제출할 서류에 재대로 적어 넣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가지씩 점검하고 있었다. 기숙사 입사지원서를 훑어보던 나는 그애가 남녀 학생이 같이 쓰는 층에 있는 방을 신청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남녀가 욕실을 공동으로 쓰는 층일거라는 생각이 떠올라 딸애한테 남녀가 구분돼 있는 층을 고르라고 말했다. 딸애는 뭐라고 쫑알거리며 서류를 도로 가져 가서 내용을 고친 다음 내게 돌려줬다. "선택의 이유" 라는 마지막 설문에 대한 그애의 답 : "아빠가 그렇게 시켰슴."
나는 한때 미시간주 칼라마주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일이 있는데 하루는 나이지리아에서 유학온 한 학생이 강의를 들으러 나왔다가 생전 처음 눈 내리는 것을 보고 무척 즐거워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좀 수줍어하면서 "지금 눈을 소재로 시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하고 말했다. 그 다음날은 눈이 더 많이 내렸다. 그는 부츠를 한 켤레 사 신었지만 쉴 새 없이 미끄러지고 자빠지는 통에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후 또 한번 폭설이 내렸는데 이리저리 미로와 같이 파놓은 눈길을 따라가던 나는 그 나이지리아 학생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라이터선생님, 전 오늘 지난번에 쓴 그 시를 찢어 버렸습니다."
지난 가을, 전국대학미술전람회가 우리 대학에서 열렸고 나는 전시장 안내의원으로 일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전시물을 점검하던 나는 여인의 나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세상에 ! 짓궂은 관람객들이 젖가슴을 만져 손때가 새카맣게 묻어 있는 게 아닌가. 부리나케 관리실로 뛰어가 탈지면과 알콜을 얻어와선 열심히 때를 닦았다. 나상에 달라붙어 한참 때를 닦다가 느낌이 이상해 뒤를 돌아본 나는 그만 홍당무가 되고 말았다. 거기엔 첫 관람객인 중학생 세 명이 야릇한 웃음을 머금고 나를 구경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몹쓸 놈이 되고 말았다.
아들은 방학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가면서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몇 주일 뒤 아들과 장거리통화를 하다가 나는 수염이 많이 자랐느냐고 물었다. "수염을 계속 길러야 할지 깎아버려야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어요. 30명한테 턱수염을 기른 내 모습이 어떠냐고 물어 보았더니 글쎄 찬성과 반대가 꼭 반반이지 뭐예요." "남학생들은 찬성했을 것이고 여학생은 반대했겠구나 ?" 내가 추측했다. "어머니, 전 여학생들에게만 물어봤어요." 아들이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날 아침 내가 기거하는 남학생기숙사를 어정어정 걸어 나올 때 웬지 일진이 사나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선 강의 시작시간이 이미 지나버렸고, 강의실까지 거의 다 갔을 무렵에야 숙제를 잊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다가 교재도 엉뚱한 것을 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담당교수가 복도 아래로 허둥지둥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그 여교수의 강의를 빼먹을 심산으로 재빨리 화장실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누가 들어섰다. 주여 나를 보호하소서. 이젠 강의를 빼먹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우리는 여자화장실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어느 화창한 날 우리는 어슬렁어슬렁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철학강의실에 들어 갔다. 마음이 다른 곳에 팔려 있는 우리의 기분을 알아차린 교수는 혹시 누가 '무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교수는 백묵으로 칠판을 가로질러 줄을 그으면서 교실 왼쪽 벽을 따라 문 밖으로 나갔다. 15분이 지나도 교수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강의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틀 후 우리가 강의실에 다시 모였을 때 그 교수가 여전히 백묵으로 줄을 그으면서 걸어 들어왔다. 교실 오른쪽 벽을 따라 줄을 그어 가던 교수는 이틀 전에 긋기 시작한 선 끝에다 연결 시키더니 한 마디 했다. "이것이 ‘무한'에 대한 나의 정의일세"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정의에 따른다면 멋진 휴강법이었다.
내가 일하는 대학교사무실은 대학병원과 같은 건물에 있었다. 그래서 출근길에 환자용 식사를 수레에 싣고 가는 여종업원과 매일 마주치게 된다. 수레에는 4- 5인용 식사가 실려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침에는 식사가 첩첩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학생 환자들이 갑자기 늘어났음이 분명했다. "웬일이죠 ? 무슨 전염병이라도 퍼졌나요 ?" 내가 수레를 끄는 아가씨에게 물었다. "천만에요.중간고사 기간이에요."
나의 한 친구는 여름 휴가 때마다 켈리포니아주의 래슨볼캐닉국립공원에서 감시원으로 일했다. 어느 날 아침 순찰근무를 하는데 한 여행자가 다가오더니 자기가 방금 목격한 희귀종 새의 생김새를 대충 설명하면서 그게 무슨 새인지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좋은 수가 있어요. 제게 로저 토리 피터슨이 쓴「미국 서부의 야생조류 안내」라는 책이 있거든요.” 그러자 그 여행자는 실망했다는 듯이 대꾸했다. “소용없습니다. 그 책에는 그런 새가 없어요. 내가 바로 로저 토리 피터슨이거든요.”
우리 학교에서 독감이 번지자 대여섯 명의 임시교사가 수업을 맡게 되었다. 그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은 학생들과 교사들간의 세대차를 해소시켜 주는 재주 때문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학생들 사이에서 금방 인기를 얻었다.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그 선생님이 책상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쳐들어 보니 그 반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 아메리카인디언처럼 옆머리를 밀어버리고 가운데만 남은 머리털을 파란 색깔로 염색한 핑크스타일의 머리 모양을 뽐내며 서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 여학생을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을 때 학생들은 좋아 죽겠다고 웃어 댔다. “이봐요, 학생. 참 용케도 목숨만은 건진 모양이군.”
비가 오던 어느 날 애그니스수녀가 한참 운전 연습을 하고 있는데 자동차 타이어 하나가 펑크가 났다. 운전교사는 수녀를 보고 자기가 타이어를 갈아끼우는 동안 저쪽으로 가 계시라고 했다. 그러나 수녀는 그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타이어를 갈아끼우는 법을 배우는 것도 운전연습의 일부예요” 하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애그니스수녀가 평소에 기도를 드릴 때와 같은 자세로 흙탕물 속에서 무릎을 꿇고 타이어를 갈아끼우느라고 애를 쓰고 있는데 경찰차가 와서 멎었다. 경찰관은 민망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운전교사를 보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설마 하느님, 이 기적을 행하고 계신거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 ?"
나하고 남편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를 가서 극히 보수적인 동네에 정착했다. 이웃들은 자유기고가인 나를 별로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학교 사친회로부터 직업토론회에 나와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이웃간의 서먹서먹함이 마침내 사라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찍 참석을 해서 다른 두 사람의 남자 연사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 모임의 주최자가 날 보고 마지막 연사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때는 주연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주최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 하는 게 아닌가 ! "남자분들은 빨리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하거든요.”
하루는 내가 무대감독으로 있는 극장식 식당 에서「착하기도 하지, 찰리 브라운」이라는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마지막 안무공연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스누피'역을 맡은 배우가 개집의 지붕 위에서 늘 하던 대로 멋지게 뛰어내리다가 발목을 삐었다. 막이 내리자 나는 급히 뛰어가 봤다. 그때 마침 관객 중에서 한 부인이 뛰어올라와서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부인이 의사이신가요 ?" 하고 내가 되묻자 그 여자가 말했다. "의사보다 나을거예요. 수의사니까요”
흰개미 피해에 대한 무료검사를 해주는 해충박멸회사가 있어서 아버지가 전화로 예약을 했다. 검사원이 나와서 건물검사를 마치고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흰 개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뒤꼍에 있는 장작에는 우글거리고 있어요. 그걸 다 먹어치우면 틀림없이 집 쪽으로 몰려올겁니당.” 아버지는 잠시 잠자코 있다가 느린 남부 사투리로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당신이 내 놓은 비용견적을 볼 때 흰개미에게 따로 나뭇단을 사주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겠는걸요.”
아버지께서 심장병 때문에 농장을 팔고 혼잡한 시 변두리쪽으로 이사를 갔을 때, 우리는 당신이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실 것인지 걱정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지는 매우 마음이 편한 기색이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농장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접시닦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그 수수께끼를 풀어 주셨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이사온 곳은 사람들이 많이 북적거리지 않니 ? 그래서 사람을 피할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었단다. 그러다가 접시 닦을 시간에는 손님들이 모두 가버리고 식당이 텅텅 빌 것이라는 생각이 떠을랐어. 그래서 찾아가 보니 바로 거기가 혼자 있기 좋은 곳이 더구나. 지금은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그리고 내가 원하는 회수만큼 고독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
샬럿의 더글러스국제공항에서 아들의 도착을 기다리던 나는 사람을 태우게만 되어 있는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돼도 아들이 나타나지 않자 나는 공항 청사 안에 들어가 비행기 도착시간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차로 돌아와보니 자동차 앞유리창에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 딱지를 주머니에 집어넣다가 나는 내가 방금 터미널에 열쇠꾸러미를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열쇠를 찾으러 다시 들어갔다 나오니까 또 자동차 앞유리창에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근처에 경찰관이 서 있기에 나는 그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첫번째 딱지는 내가 잘못했으니까 당연히 받아야겠지만 두번째 것은 회수해 가야 옳지 않겠습니까 ?" "그러죠 !" 경찰관은 이렇게 말하며 내 손에서 딱지를 받아갔다. 이때 아들이 도착해서 우리가 막 차를 몰고 떠나려 하는데 그 경찰관이 차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저 사람이 혹시 마음이 변한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창문을 내렸다. "아주머니가 내게 친절하게 말씀해주신 걸 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거든요. 그래서 첫번째 딱지도 찢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가 말했다.
나는 트럭 운송회사 수리공으로 일했는데 이 회사는 24 시간 주야로 근무하는데다 1주일 내내 쉬는 날이 없었다. 그러니 주말에 하루라도 쉰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번은 내가 우리 작업반장하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동료 수리공 한 사람이 오더니 돌아오는 토요일은 하루 쉬겠노라고 했다. "이번 토요일이 결혼기념일인데 여태껏 아내하고 한번도 기념일을 함께 지낸 적이 없단 말입니다.” 그가 말했다. 반장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토요일은 쉬라고 했다. 다시 공장에 돌아와서 내가 그 친구에게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자,그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번 토요일이 일주년이야.”
남편은 대형 트럭을 모는데 한번은 폭이 좁은 다리를 반쯤 가다가 트럭이 고장이 나 멈춰 서고 말았다. 남편은 뒤따라 오는 차량들이 주의하도록 경고표지를 설치해 놓은 다음 운전석에 앉아서 견인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서 조그만 차 한 대가 뒤에서 다가오더니 경고표지를 넘어서 남편의 트럭 바로 뒤에 바싹 갖다 대었다. 놀란 남편이 얼른 운전대에서 내려와서 야단을 치려고 보니 그 차의 운전석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남편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할머니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밀어 줄까 ?"
내가 중학교 스쿨버스 운전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방학에 들어가는 날이면 아이들을 태우고 공원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렇게 외출을 할 때는 부모님들의 승낙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에게 승낙서용지를 줘서 보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의 부모가 이런 말을 적어 보냈다. : “우리 애들은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도 좋습니다. 추신 :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데려다주십시오.”
트럭운전수의 조수로 첫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운전수는 대형 트럭에 닭을 가득 싣고 닭 시장이 문을 닫기 전에 갖다주기 위해 차를 급히 몰았다. 그런데 도로에 미끄러운 곳이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개천으로 빠지고 말았다. 트럭이 뒤집히면서 수백 개나 되는 닭장이 사방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어서 트릭에서 기어나와 보니 놀란 닭들이 여기저기서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꼬꼬댁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 하고 내가 물었다. “글쎄다. 우선은 우리 생명을 구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지.” “그 다음엔요 ?” “한바탕 욕을 하면 돼.”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우리 아들 팀을 보면 사족을 못 쓴다. 우리 남편은 새벽 교대 일을 하기 때문에 오후 일찍 집에 돌아오게 되면 바로 때에 맞춰 팀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에게서 수없이 걸려 오는 전화를 받게 된다. 식구들이 메모용으로 쓰는 흑판에는 아들에게 수전이니, 샐리니 또는 제인이니 하는 여학생들한테 전화를 걸어주라는 메시지를 아무렇게 갈겨 적어 놓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소에 쓸데없는 짓거리를 결코 용납하려 들지 않는 남편이 한동안 아무 군말 없이 여학생들의 전화연락을 받아주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집에 돌아가 보니 흑판에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팀, 노스뷰고등학교 여학생 전원에게 전화하도록."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젠가 실랑이를 벌였는데 나는 그때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참 말다툼을 하다가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종이 두 장을 가지고 와,“좋소,우리 서로 어떤 점을 좋아하지 않는지 적어봅시다” 어머니가 그럼 그럽시다 하고 불평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쓰는 모습을 한참 눈을 부라리며 보다가 종이에 자기도 무엇인가 적었다. 어머니가 또 무엇인가 썼다. 아버지는 다시 어머니를 지켜보더니 다시 뭣인지 쓰기 시작했다. 두 분이 마침내 다 끝마치자 아버지가, "이제 그만 불만을 서로 교환해봅시다” 하고 제안했다. 두 분은 목록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의 '불평목록'을 힐끗 보더니, "제것 돌려 주세요” 하고 통사정을 했다. 아버지의 '불평 목록'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을 사랑하오” 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붐비는 네거리를 막 지나가려고 하는데 자전거를 탄 두 소년이 바로 눈앞을 스쳐갔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더니 뒤에 오던 차가 내 차의 뒷범퍼에 부딪쳤다. 소년들은 속력을 내어 길 아래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주차구역으로 가서 차를 세웠다. 뒷차도 나를 따라 왔다. 우리는 함께 파손된 부분을 살펴보았으나 다행히도 별것 아니었다. 뒷차 주인이 말했다. “가만히 계십시오. 내가 자전거 탄 녀석들을 붙잡을 테니까.” “그만 두세요. 벌써 멀리 갔을걸요.” “그렇긴해요. 허지만 녀석들이 오늘 저녁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죠. 내가 그 녀석들의 애비거든요.”
어느 날 내가 어떤 빌딩 현관에 다가가고 있는데 머리가 반백이 된 풍채 좋은 사람이 내 앞에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한 젊은 부인이 다가왔다. 그는 비켜서서 이 부인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여자가 말했다. “내가 숙녀라고 해서 문을 열어 주지는 마세요.” 그 사람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당신이 숙녀라고 해서 열어 드린 것이 아니고 내가 신사이기 때문에 열어 드린 겁니다.”
부활절 바로 전 주일, 우리 백화점은 온통 손님들로 붐벼 모두들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화가 나서 씩씩거린 사람은 TV부 지배인이었다. 며칠째 연거푸 오후만 되면 잘 차려입은 부인 하나가 와서 주간 연속드라마가 나오는 채널을 틀어 놓고는 주위 사람들에겐 아랑곳없다는 듯 마음 푹 놓고 앉아 시청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화딱지가 잔뜩 난 지배인이 물었다. “벌써 여러 날째 저희 가게에 와서 멜러드라마를 시청 하시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물론 말씀해 드리죠.” 부인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우리 텔리비전을 바로 이 가게에 맡겨 놨어요. 그걸 빨리 고쳐 주지 않으면 날마다 올거라구요 !”
어느 날 오후 내 친구는 자기 남편과 함께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던 중 자기 남편의 난폭한 운전버릇을 문제삼아 말다툼을 벌였다. 그래도 남편이 말을 듣지 않자 친구는 화가 나 “당신의 그런 난폭한 운전을 참고 견디며 사는 여자는 세상에 나뿐일거에요” 하고 내뱉었다. “내가 총각이었던 시절 수백 명의 여자들이 나와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를거야.” 친구 남편이 대꾸했다. 그러자 친구는 짐짓 정색을 하며 이렇게 침을 박았다.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교체되었다니 알 만하군요.”
체중이 자꾸 느니까 걱정이 된 남편은 조깅을 시작했다. 매서운 혹한인데도 불구하고 조깅에 나섰는데 그 차림이 가관이었다. 그는 긴 내의에다 스웻 슈트 그리고 타월 천의 팬티를 입었다. 거기다 셔츠 두 장에다 트레이닝복을 껴입고 그 위에 나일론 방풍복을 걸쳤다. 그리고 털모자에 큼지막한 털 귀마개까지 하고 있었다. "이거 보세요. 그렇게 껴입고 달리기를 하면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겠어요 ?” 하고 내가 물었다. “내가 지금 신경을 쓰는 것은 뛸 때 모습이 어떠냐가 아냐." 남편이 대답했다. "지쳐서 서 있을 때 모습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지"
나는 10대 때부터 골초였으나 내가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게 어느 날 갑자기 담배를 끊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체중이 불어나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멋적게 되었다. 친구가 혹시 용케 담배를 끊었다고 칭찬이라도 하면 나는 “하지만 이렇게 몸이 나는 것 좀 보라구”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나한테 던진 대답은 언제나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정진 말이었다. “이것 봐. 그런 걸 가지고 뭘 걱정을 하나 ? 대신 자네는 그 몸무게를 뺄 시간을 가질 만큼 수명이 늘지 않았나 ?”
주말치고는 유난히 정신을 못 차리게 바쁜 주말이었다. 그래서 집안 일은 월요일까지 미루기로 했다. 마침 의자에 몸을 도사리고 앉아 책을 보려고 하는데 옛 친구들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볼 일이 있어 왔는데 우리 집에 잠깐 들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서둘러서 먼지도 털고 진공 청소기로 청소를 하는 등 부산을 떨어야 했다. 급히 서둘렀는데도 부엌을 치우려고 할 때쯤에는 친구들이 당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급한 대로 설것이도 하지 않은 더러운 접시들을 모아다 오븐 속에 처넣고 나니 초인종이 울렸다. 옛 친구들이 손에 냉동 피자를 들고 문간에 서 있었다.
아내와 나는 연회장을 나오면서부터 다투기 시작했다. 우리가 차에 탔을 때는 험한 말이 빗발치듯 오갔다. 마침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거리가 별로 좋지 않은 곳이라서 우리는 일단 말다툼을 중지하고 차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말다툼을 시작했다. 아내는 정말로 흥분해서 씩씩거렸는데,내가 가시돋힌 말을 몇 마디 던지자 “당장 차를 세우고 날 내려 줘요 !”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길 옆에다 차를 세우자 아내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린 아내는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황급히 다시 차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좀더 안전한 데로 가서 내려 줘요.” 그 순간 우리는 함께 폭소를 터뜨렸고 말다툼도 끝이 났다.
우리가 일리노이주에 살고 있을 때 심한 폭설이 내렸다. 다음날 아침 아내의 차가 대문 앞 찻길로 빠져 나가다가 미끄러져 도랑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동네 정비업소의 견인트럭이 와서 끌어내 주었다. 몇 시간 후,시내에 나간 아내의 차가 또 눈 구덩이에 빠지자 아침에 왔던 견인트럭이 다시 가서 끌어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던 아내의 차가 다시 길 옆 눈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 견인트럭은 세번째 출동을 해야만 했다. 그날 밤 늦게 전화가 걸려와서 내가 받아 보니 정비업소에서 온 전화였다. “여보 ! 정비업소 사람이야 !” 내가 아내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제 견인트럭을 넣어 놓아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데 뭐라고 대답하지 ?”
나하고 데이트를 하던 남자가 자기 가족들에게 나를 인사시키려고 나를 데리고 자기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공항에서 그가 금속탐지기 앞을 통과하는데 경고음이 울렸다. 그래서 그가 열쇠꾸러미,시계, 쇠장식이 달린 혁대 따위를 다 따로 내놓았는데도 여전히 경고음이 울렸다. 경비원은 그가 손대지 않은 마지막 주머니 속의 것들을 꺼내 보라고 요구했다. 그이는 그제서야 마지못해 한숨을 쉬더니 벨벳 천으로 싼 금속제 보석함을 꺼내며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이는 여전히 보안검사 통로에 그대로 선 채 나에게 아내가 되어 주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청혼이 수락되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남편은 집에다 사무실을 차려놓고 조그만 청부업을 하고 있는데 자동차 운전중에도 전화를 쓸 수 있도록 자동차에 카폰을 설치했다. 남편은 새로 유행하는 이 문명의 이기를 가설해 놓고서 자기도 신기했던지 어느 날 오후에는 다섯 차례나 전화를 걸어 “나한테 연락온 거 없어 ?” 하고 묻는 것이었다. “당신이 아까 20분 전에 전화를 걸고 난 후로 전화 온 것 없어요” 하고 대답하면서 나는 남편이 언제쯤 그놈의 기계에 싫증이 나게 되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막 전화를 끊고 났는데 뜻밖에 남편이 바로 현관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 남편은 문 앞에 자동차를 세우고 전화를 했던 것이다.
남편이 즐겨 입는 청바지는 궁둥이가 다 해졌는데도 남편은 좀처럼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궁둥이에 알록달록한 헝겊을 대고 꿰매 주었더니 그래도 남편은 그 바지를 입고 다녔다. 어느 해 우리는 여행중에 뉴잉글랜드지방을 지나다가 어느 시골 식료품가게에 들렀다. 그 가게 문 앞에서 한 노인이 흔들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몸을 흔들며 더위를 잊고 있었다. 궁둥이에 알록달록한 헝겊을 댄 남편의 바지가 그 노인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노인이 큰소리로 외쳤다. “여보게 젊은이,자네 몸뚱이 중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많은 일을 하는지 알겠네 !”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해마다 정월 초하루에 열리는 장미행렬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장미행렬이 가장 잘 보이는 특별관람석에 자리잡고 구경을 했다. 그런데 꽃수레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 앞에 앉아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일어나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우리 시야가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가 우리 면전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나온 사진을 앞의 남자에게 건네주었더니 그 사람은 자기 엉덩이가 찍힌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뒤로 그는 행렬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여름에는 손자들이 방학을 이용해서 줄을 이어 우리 집에 오게 돼 있었다. 영감과 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적 의미가 있으면서 재미도 있을 일정을 짰다. 한번은 우리가 즐겨 가는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있는 과학에너지박물관엘 갔는데 우리가 태양열과 핵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시품을 보고서 아이들이 여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앞장 서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한참 찾다 보니 영감은 박물관 한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손자 아이 하나가 할아버지 곁으로 뛰어가면서 “할아버지,여기서 뭐 하세요 ?"하고 묻자 영감은 익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는 중이란다."
만삭이 거의 다 될 때쯤인데 나를 돌봐 주기로 돼 있던 담당 의사가 시외로 왕진을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의사가 자리를 비우자 진통이 오기 시작해서 나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모든 일이 졸지에 일어난지라 새로 나를 돌보게 될 의사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다. 살균조산복에다 장갑, 그리고 마스크를 한 낯선 사람이 분만실로 뛰어들어오더니 아기를 받은 다음 또 황급히 나가 버렸다. 그러자 남편이 나의 침대에 가까이 기대면서 음흉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 당신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서 구해준 그 복면의 사나이가 누구지 ?"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옛 친구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요즘 생활에 대해 내게 얘기해 주었다. 그분 말에 따르면 내 친구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두고 월급도 상당히 받고 있으며 꽤 많은 투자주식도 가지고 있다는 것 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자네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하고 물으셨다. 나는 아직 미혼이며 수입은 그만그만하고 시간이 나면 골프나 스키를 즐긴다고 하니까 그분은 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이는 다 같이 어쩔 수 없이 먹지만 성인이 된다는 것은 각자 선택에 달린 모양이군.”
대도시에서 태어난 나는 항상 바쁜 도시생활을 떠나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 가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새로 이사간 그 마을에서 텔리비전으로 일기예보를 처음으로 듣고서야 비로소 시골 생활이 얼마나 느긋한지 깨달았다. 텔리비전 화면에는 기상 상태를 설명하는 지도나 인공위성 사진도 없었다. 다만 자상하게 생긴 제법 나이든 예보 담당자가 이렇게 예보했다. “에一 비오고,또 오고, 또 비가 올겁니다 ! 정확하게 얼마나 오겠느냐구요 ? 여러분의 추측이나 저의 추측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겠지요. 그럼 여러분 안녕히 주무세요.”
로스앤젤레스공항으로 가는 도로에는 차량들이 붐비고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의 운전사는 우리 앞을 천천히 달리고 있는 승용차를 추월하려고 차선변경 깜박이를 켰다. 막 앞지르려고 하는데 앞 차를 운전하고 있던 여자가 차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왼쪽 차선으로 들어 가겠다는 신호에 틀림없었다. 우리 버스운전사는 차선 바꾸는 것을 포기하고 앞 차가 차선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앞 차는 차선을 바꾸지 않았고, 일분쯤 지난 뒤 창밖으로 내밀었던 손을 거두어 들였다. 우리 버스가 두번째로 추월을 시도하자 그 여자는 또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1분 후에 손을 거두어 들였다. “제발, 아가씨,빨리 마음을 정하쇼.” 우리 버스운전사가 답답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네 번이나 추월하려다 실패한 끝에 우리 버스는 마침내 속도를 내어 앞 차를 앞질러갔다. 버스가 앞차를 스쳐갈 때 내려다보니 그 여자는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다. 손톱 하나하나에 칠이 끝날 때마다 칠한 것을 말리기 위해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고 있었 던 것이다.
어느 일요일 예배 때의 일. 회중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교회 목사님이 1달러와 5달러짜리로 100달러를 광주리에 담아 돌리면서, 이 돈은 교회의 자선기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서, “제가 목사로 있으면서 지금껏 한 적이 없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하고 선언했다. 이 말과 할께 그는 돈광주리를 회중에게 돌리면서 부끄러워 말고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집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광주리가 다 돌고 난 다음에 들여다 보니까 그 속에는 그것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 보다 67달러가 더 많이 담겨 있었다.
나의 아들은 중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한편 며느리는 탁아소를 운영하면서 라마즈식 자연분만법을 지도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아이들이 넷이나 되는데 모두들 운동을 좋아한다. 따라서 늘 집안이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곳처럼 엉망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 집에 들른 나는 집안이 너무 깨끗한 것을 보고 아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아주 효과적으로 집안청소를 하는 방법을 마침내 알아냈습니다.” 아들이 대답했다. “간단한 방법이지요.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각자 쓰레기를 500개씩 주우라고 하는거예요 !”
우리 할머니가 텔리비전의 살인추리극을 보고 있었다. 극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할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삼촌이 요리점을 묻기 위해 건 전화였다. “5분 후에 다시 걸어라.”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요리책을 찾아가지고 와서 다시 텔리비전을 보고 계셨다. 그런데 살인범의 정체가 막 드러나려고 하는 순간 또 전화벨이 울렸다. “연필 준비해 !” 할머니는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지르셨다. “네,준비했습니다, 부인 !” 전화를 건 외판원이 놀라며 대꾸했다. “하루 종일 여러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만 이렇게 쉽게 주문을 받기는 처음입니다.”
우리 시아버지는 네브래스카주에서 카우보이로 일하신 적이 있다. 지금은 집에서 쉬고 계시지만 투박하고 과묵한 성격을 가지신 분이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나는 그분이 얼마나 과묵한 분인가를 잘 모르고 있었다. 시아버지께서 하루는 자동차로 시골 길을 달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트럭 한 대가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트럭에는 이웃에 사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트럭을 세운 다음 후진해서 차를 나란히 세웠다.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가던 길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