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⑦] "치맛바람에도 철학이 있어야죠"
- 소프라노 조수미 키운 김말순씨
- 김덕한기자 ducky@chosun.com
입력 : 2005.05.10 18:42 / 수정 : 2005.05.10 18:42 -
- 조수미의 배짱과 대범한 성격은 어머니 김말순씨를 그대로 닮았다. "강단에서 그렇게 손짓을 해도 65세까지 무대에 서겠다고 고집 피우는 딸이 자랑스럽다"며 김씨는 싱긋 웃었다. /김창종기자 cj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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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김말순(69)씨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 심혈관 다섯 군데가 막혀 수술하지 않고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의사는 혀를 찼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치를 뻔했습니다.
- ” 심혈관을 떼내고 팔뚝의 혈관을 이식하는 7시간의 대수술.
- 그러나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에도 그는 오로지 로마에 있는 딸 수미 생각뿐이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모녀는 이미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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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소식에 모든 공연 스케줄을 취소하고 한국으로 날아오겠다는 딸에게 어머니는 전화통에 대고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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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성악가가 어떻게 사적인 일로 관객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있느냐고 야단을 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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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미가 내 자식이기에 앞서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연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여장부 김말순’은 언제고 이런 식이었다. 가진 거라곤 배짱과 끈기. 이거다 싶으면 한길로 매진했다. -
그렇게 해서 얻은 ‘대표작’이 세계 정상의 소프라노 조수미다.
서울 돈암동 기슭 단칸방에 살던 시절에도 그는 자식 교육이라면 물불을 안 가렸다. -
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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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니 더 잘 키운다”는 신념으로 뭉친 별난 어머니 덕에 수미는 피아노, 미술, 발레, 고전무용 안 해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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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머니의 안목엔 노래가 가장 뛰어났다. “목소리에 차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는 거지요.”
그때부턴 ‘스파르타’ 식으로 일관했다. 7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으면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
연습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딸의 숙제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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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의 여고시절엔 새벽 두 시까지 십자수를 놓고 있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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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할 겨를이 어디 있어요. 멋내는 것 좋아하면 딸자식 출세 못 시켜요.(웃음)”
딸이 서울대 음대에 수석 입학한 뒤에도 김씨의 ‘딸 관리’는 느슨해지지 않았다. -
“밤 10시 전 귀가, 남자친구는 사귀지 말 것!” 하지만 딸은 그예 사랑에 빠졌고, 성적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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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했지만 어머니로서 김씨의 결단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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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하나, 유학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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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떠나면서 수미는 울고불고 했지만 지금은 저에게 아주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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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간 지 3년 만인 1985년 나폴리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김씨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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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프로 무대에 데뷔하면서는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질다 역을 맡더니, 거장(巨匠) 카라얀으로부터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어머니는 그 순간 가슴으로부터 딸을 떠나보냈다.
“피아노 한번 쳐보는 게 소원이던 여고시절 꿈이 수미 덕에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지요. -
남들은 통상 ‘희생’이라고 합디다만,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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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음악사 문턱이 닳도록 악보를 사다 나르면서 아이가 보기 전에 제가 먼저 공부하고 건네줬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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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미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오늘은 뭘 배웠니?’ 하고 물었어요. 마치 도강하는 학생 같았죠.”
김씨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위로 언니들이 줄줄이 있어서 이름이 ‘말순(末順)’이다. 어린 시절에도 악바리였다. -
10남매의 치열한 ‘경쟁’ 속에도 악착같이 마산여고를 졸업했고, 대학에 가겠다며 상경했다가 신문사 오퍼레이터로 취직했다.
그의 ‘야심’을 눌러앉힌 건 결혼이다. -
“그 펄펄 끓는 에너지가 모두 자식들에게로 전이된 거죠. 극성엄마 된 건 당연해요. 나뿐이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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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못 배운 한(恨) 자식 통해 풀려는 그때 엄마들이 다 그랬지요. 그래도 그 시절엔 철학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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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억지로는 안 했지요. 대신 해볼 만하다 싶으면 죽어라고 달려드는 거예요. 설령 실패한다 해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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