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 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 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해 뜨지 않는 날이 백 일간 지속된다면 나는 캄캄한 살구나무 아래 누워 시를 읽을 것이다 비가 오면 심장까지 축축하게 젖도록 시를 읽을 것이다 도둑인 줄 알았다고 누군가 실없는 농을 걸어 오면 나는 벌써 시를 이만큼이나 훔쳤다고 쌓아 둔 시집을 보여 줄 것이다 또 누군가 나를 향해 한 마리 커다란 벌레 같다고 한다면 시에 맹목인 벌레가 될 것이다 야금야금 시를 읽다가 별빛도 달빛도 없이 내 안광으로만 시를 읽다가 마침내 눈빛이 시들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진다면 사흘이고 열흘이고 시를 새김질하다가 살구나무에 계절이 걸리는 것도 잊고 또 시를 읽을 것이다 그렇게 시를 읽다가 살구꽃 터지는 날을 골라 내 눈에도 환장하게 핏줄 터지고 말 것이다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 나는 캄캄한 살구나무 아래에 누워 시를 읽을 것이다
.............................. 겨울의 적막한 한밤에 홀로 깨어 편지를 쓰는 시인이 있다. 등불이 어둡다고 했으니 아마도 황촉 불빛, 즉 밀랍으로 만든 초를 켠 정도의 불빛 아래에서 시인은 편지를 쓰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편지’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서한(書翰)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시(詩) 한 편이라고 이해해도 좋겠다.
종이의 흰 빛과 밤의 어둠과 쓸쓸한 고요 사이를 희미하게 비추는 등불은 한껏 외롭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오고 느닷없이 연필심이 툭, 부러지고 만다. 바람은 이내 등불의 불빛을 흔들어 놓고, 시인은 아득해진다. 아득하다는 것은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 어찌할 방도가 없이 벌어진 것에서 생겨나는 감정이니, 조짐이나 예고 없이 마치 땅이 꺼지듯 일이 닥쳐 갑작스레 시름에 싸이고 하염없게 된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일 테다.
‘불현듯’이라는 시어와 ‘무심결’이라는 시어에 눈길을 두게 된다. 불현듯, 무심결에 일어나는, 뜻밖의 일은 삶에 끼어들고 뛰어들어 일상적인 것에 대해 이물감과 거리감을 갖게 한다. -문태준<시인>
......................... 새해를 맞이하며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었다. 성직 수녀라는 특수한 신분, 수녀원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잉태된 시들이기에 그의 시를 읽기 전에 어떤 선입견이 있었다. 간절하고 소박한 시구들을 찬찬히 음미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별다른 수식 없이 “겨울 길을 간다”로 시작되어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에 이르러 잠깐 쉬고 싶었다. 계절의 변화를 이토록 간단히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봄날에 움트고 형형색색 피어나 땅과 하늘을 물들이다 여름에 만개하는 잎과 꽃들, 울창한 숲에 서식하는 벌레들이며 새들의 노래, 눈부신 빛과 그림자를 “호화롭던”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그 세련된 솜씨에 나는 감탄했다.
“서서히 옷을 벗으면”이라는 짧은 한 행을 읽었을 뿐인데 가을이 되어 잎을 떨군 나무들, 꽃이 진 자리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민들레의 영토를 개척한 클라우디아 이해인 수녀님. 새해에도 강건하시길… - 최영미<시인.이미출판 대표>
나뭇잎 떨어지는 저녁이 와서 내 몸속에 악기(樂器)가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간 소리 내지 않았던 몇 개의 악기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동안 길은 더 저물고 등불은 깊어진다 나 오랫동안 먼 길 걸어왔음으로 길은 등 뒤에서 고단한 몸을 눕힌다 삶의 길이 서로 저마다 달라서 네거리는 저 혼자 신호등 불빛을 바꾼다 오늘밤 이곳이면 적당하다 이 거리에 자리를 펴리라 나뭇잎 떨어지고 해 지는 저녁 내 몸속의 악기를 모두 꺼내어 연주하리라 어둠 속의 비애여 아픔과 절망의 한 시절이여 나를 위해 내가 부르고 싶은 나의 노래 바람처럼 멀리 띄워 보내리라 사랑과 안식과 희망의 한때 나그네의 한철 시름도 담아보리라 저녁이 와서 길은 빨리 저물어 가는데 그동안 이 생에서 뛰놀았던 생의 환희 내 마음속에 내린 낙엽 한 장도 오늘밤 악기 위에 얹어서 노래하리라
모든 문제의 답은 학교에 있고 정답은 언제나 근엄해서 담임선생님의 얼굴 같지요 답답한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삼차방정식보다 난해하게 변해 버린 선생님의 표정을 읽으며 정답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아득해 나는 가끔 다른 길을 갑니다 비록 험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즐거움도 있겠지 생각하며 길모퉁이 돌아서면 찍소리 말고 공부나 하라는 어머니의 고함소리 멀어지고 친구가 다닌다는 공장을 지나면 신축공사장 인부들 오락실 근처에선 재수할 때 만난 친구의 옆보습도 보이지요 무언가 고달파 보여도 정답처럼 엄숙하지 않아서 볼수록 정다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나는 교실로 돌아오곤 하지요 그러면서 나는 자신에게 곧잘 어리석은 질문을 던집니다 ㅡ정답은 학교에만 있는가
이렇게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다. 첫 사랑의 푸르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지금 그는 의자를 유심히 바라본다. 의자는 낡은 정물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어쩌면 의자는 갈참나무를 켜서 만든 의자일지도 모른다.
갈참나무에는 “연선아 좋아해”라는 사랑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 해질녘에는 노을이 축축하게 의자에 앉는다. 의자는 수많은 계절이 흐르고 지나가는 것을 보아왔다. 그는 정물인 의자가 다시 활물(活物)로, 갈참나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파릇한 새잎처럼 새뜻하고, 두근거리고, 빛이 많아 찬란하고, 속마음이 둥둥 높게 떠서 가던 그 첫사랑의 때로, 순수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묻는다.
박철 시인은 시 ‘소년에서’를 통해 그때의 어린 자아를 나무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멀리 대지에, 대지를 향하여, 대지를 이루고/ 너는 너 하나로 가득 자유와 생명을” 가꾸며 살라고 말한다. 내게도, 모든 이들에게도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은, 어린아이가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테다. -문태준<시인>
................ 우산을 소재로 이런 시도 쓸 수 있구나. 애정을 가지고 살펴보면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이 시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깜찍하고 발랄하고 감각적인 언어에서 젊음이 느껴진다. 시인은 우산이 되어, 비를 기다리는 우산의 마음을 헤아린다. 비가 오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우산이 하나도 없는 집은 없으리라.
우산을 발명한 뒤 인류는 더 바빠졌고 노동 착취는 더 심해졌다. 비 오는 날, 동굴에만 집에만 갇혀있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우산처럼 고마우면서 얄미운 존재가 또 있을까. 우리 집 신발장에는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은 우산이 두 개나 있다. 너무 오래 펼치지 않은 우산을 최근에 꺼내 펼쳐 보았더니 색이 바래 보기 싫었다. 너무 오래 우산을 기다리게 하지 말자. -최영미<시인.이미출판 대표>
‘이렇게’를 넣은 것이 신의 한 수. 시의 방관자였던 독자들이 ‘이렇게’를 보며 적극적인 행위자로 동참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나무들이 흔들리는 숲에서 나도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내가 나무 넷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착시. 이것이 시인의 능력이며 리얼리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가서 우리 함께 싸우자! 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 항거했던 이 나라 풀뿌리 민초들의 저항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다. 존재와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양새가 어딘지 불교 철학과 닿아 있다. 시인도 그렇게 흔들리며 고개를 젓던 나무의 하나였기에 이렇게 빼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이 시에 나무들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를 한 줄 한 줄 베끼다 보면 예전에 모르던 시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한기팔 시인은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시 ‘보목리(甫木里) 사람들’에서 “보오보오/ 물오리 떼 사뿐히 내려앉은/ 섶섬 그늘/ 만조때가 되거든 와서 보게”라고 써서 고향의 풍광을 소개했고, “이 시대의 양심인 양/ 아무 말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라고 써서 고향 사람들의 인품을 칭송했다.
파도 소리가 앞마당까지 철써덕철써덕 밀려오는 곳에 시인의 집이 있다. 먼바다와 섬과 수평선을 바라보며 산다. 시인은 “아침을 나는 새처럼/ 깨끗하게 살기 위하여”라고 노래하기도 했는데, 그런 새의 울음소리가 밤에도 들려왔을 것이다.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호젓하고 또 때로 적적하기도 했을 터이다. 그래도 아내에게 의지할 수 있다. 등을 비스듬히 댈 아내의 따뜻한 등이 있다. 시인이 “햇빛 고운 날/ 목련꽃 그늘에/ 늙은 아내와 앉으니/ 아내가 늙어서 예쁘다”라고 노래한 그 아내가 옆에 있다. 서쪽 하늘에는 눈썹 모양의 달이 떴다. 깜깜한 공중에 홀로 있으니 기댈 데가 없어서 등이 시려 보인다. 시인은 파도처럼 뒤척이다 이내 잠잠하게 있는 수평선처럼 고요한 잠에 들었을 것이다. -문태준<시인>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 꽃이 오고 있다. 꽃이 와서 봄에게 새 의상(衣裳)을 입히고 있다. 산과 들에 헐벗은 구석이 사라지고 있다. 시인은 봄날에는 꽃을 좇아서 꽃 가는 대로 같이 가라고 말한다. 돈을 선호하지 말고 꽃을 애호하라고 말한다. 꽃을 맘껏 완상하라는 권유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숭상하라는 속뜻은 무엇일까. 꽃에게는 개화와 낙화의 일기(日記)가 각각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 아닐까. 우리의 일상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함께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 아닐까. 흐뭇하고 흡족한 때도 있고, 아프고 괴로운 때도 있듯이.
마음을 접어야 할 때와 손을 떼어야 할 때가 있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꽃이 지는 시간이다.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 가운데 ‘반달’이라는 시를 또 좋아한다.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낙화는 보름달이 반달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