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뭇잎

                   정현종

 

 

 

 

 

 


마른 나뭇잎을 본다.

살아서, 사람이 어떻게
마른 나뭇잎처럼 깨끗할 수 있으랴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고영민

 

 



겨울 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 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 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시 읽는 눈이 별빛처럼 빛나기를
 
                                               문   신

 



해 뜨지 않는 날이 백 일간 지속된다면 나는 캄캄한 살구나무 아래 누워 시를 읽을 것이다 비가 오면 심장까지 축축하게 젖도록 시를 읽을 것이다 도둑인 줄 알았다고 누군가 실없는 농을 걸어 오면 나는 벌써 시를 이만큼이나 훔쳤다고 쌓아 둔 시집을 보여 줄 것이다 또 누군가 나를 향해 한 마리 커다란 벌레 같다고 한다면 시에 맹목인 벌레가 될 것이다 야금야금 시를 읽다가 별빛도 달빛도 없이 내 안광으로만 시를 읽다가 마침내 눈빛이 시들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진다면 사흘이고 열흘이고 시를 새김질하다가 살구나무에 계절이 걸리는 것도 잊고 또 시를 읽을 것이다 그렇게 시를 읽다가 살구꽃 터지는 날을 골라 내 눈에도 환장하게 핏줄 터지고 말 것이다 시 읽는 일이 봄날의 자랑이 될 때까지 나는 캄캄한 살구나무 아래에 누워 시를 읽을 것이다

 

 

 

 

 

 

 

 

 

 

 

새들의 생존법칙

                           김복근

 



설계도 허가도 없이 동그란 집을 짓고 산다

작은 부리로 잔가지 자푸라기 물고 와

하늘이 보이는 숲속에서 별들을 노래한다

눈대중 어림잡아 아귀를 맞추면서

휘어져 굽은 둥지 무채색 깃털 깔고

무게를 줄여야 한다 새들의 저 생존법칙

대문도 달지 않고 문패도 없는 집에

잘 익은 달 하나가 슬며시 들어와

남몰래 잉태한 사랑 동그마한 알이 된다

울타리 없는 마을 등기하는 법도 없이

비스듬히 날아보는

나는 자유의 몸

바람이 지나가면서 뼈속마져 비워냈다

 

 

 

 

 

 

 

 

 

어두운 등불 아래서

                             오세영

 




한 겨울 밤

정갈한 백지 한 장을 앞에 두고 홀로

네게 편지를 쓴다.

그러나

바람이 문풍지를 울리자

터벅터벅 사막을 건너던 낙타의 고삐 줄이

한 순간 뚝 끊어져버리듯

밤바다를 건너던 돛대의 키가 불현듯 꺾여지듯

무심결에

툭,

부러지는 연필심.

그 몽당연필 하나를 들고

흔들리는 등불 앞에서 내 마음

아득하여라.

내 마음 막막하여라.



..............................
겨울의 적막한 한밤에 홀로 깨어 편지를 쓰는 시인이 있다. 
등불이 어둡다고 했으니 아마도 황촉 불빛, 즉 밀랍으로 만든 초를 켠 정도의 불빛 아래에서 시인은 편지를 쓰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편지’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서한(書翰)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시(詩) 한 편이라고 이해해도 좋겠다.

종이의 흰 빛과 밤의 어둠과 쓸쓸한 고요 사이를 희미하게 비추는 등불은 한껏 외롭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오고 느닷없이 연필심이 툭, 부러지고 만다. 
바람은 이내 등불의 불빛을 흔들어 놓고, 시인은 아득해진다. 
아득하다는 것은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 어찌할 방도가 없이 벌어진 것에서 생겨나는 감정이니, 조짐이나 예고 없이 마치 땅이 꺼지듯 일이 닥쳐 갑작스레 시름에 싸이고 하염없게 된 마음의 상태를 뜻하는 것일 테다.

‘불현듯’이라는 시어와 ‘무심결’이라는 시어에 눈길을 두게 된다. 
불현듯, 무심결에 일어나는, 뜻밖의 일은 삶에 끼어들고 뛰어들어 일상적인 것에 대해 이물감과 거리감을 갖게 한다.
-문태준<시인>



 

 

 

 

등대의 노래

강은교

 

 



너의 눈이 천 리를 안을 수 있다면


너의 눈이 천 리를 안아


내 언저리에 둘러 앉힐 수 있다면


나, 가리


천 리 함께 가리.

 

 

 

 

 

 

 

 

 

겨울 길을 간다 

                      이해인

 



겨울 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
새해를 맞이하며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읽었다. 
성직 수녀라는 특수한 신분, 수녀원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잉태된 시들이기에 그의 시를 읽기 전에 어떤 선입견이 있었다. 
간절하고 소박한 시구들을 찬찬히 음미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별다른 수식 없이 “겨울 길을 간다”로 시작되어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에 이르러 잠깐 쉬고 싶었다. 
계절의 변화를 이토록 간단히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봄날에 움트고 형형색색 피어나 땅과 하늘을 물들이다 여름에 만개하는 잎과 꽃들, 울창한 숲에 서식하는 벌레들이며 새들의 노래, 눈부신 빛과 그림자를 “호화롭던”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린 그 세련된 솜씨에 나는 감탄했다.


“서서히 옷을 벗으면”이라는 짧은 한 행을 읽었을 뿐인데 가을이 되어 잎을 떨군 나무들, 꽃이 진 자리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민들레의 영토를 개척한 클라우디아 이해인 수녀님. 새해에도 강건하시길…
최영미<시인.이미출판 대표>

 

 

 

 

 

눈뜬 장님
              오탁번

 

 


   연애할 때는 예쁜 것만 보였다

   결혼한 뒤에는 예쁜 것 미운 것

   반반씩 보였다

   10년 20년이 되니

   예쁜 것은 잘 안 보였다

   30년 40년 지나니

   미운 것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눈뜬장님이 됐다



   아내는 해가 갈수록

   눈이 점점 밝아지나 보다

   지난날이 빤히 보이는지

   그 옛날 내 구린 짓 죄다 까발리며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눈뜬장님 노약자한테

   그러면 

   못써!




 

 

 

 

사랑이란 말이야

                          김민소



사랑이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물이 드는 게야


그대 풋풋한 모습에
그대 친절한 말 한마디에
그대 부드러운 미소에
내 가슴 속 연둣빛이 물드는 게야
샛 노랗게, 새빨갛게


사랑이란
받는 기술을 배울 것이 아니라
하는 기술을 익히는 게야


나의 따뜻한 말로
나의 단아한 모습으로
나의 맑은 눈으로
그대 가슴 속이 시원해 지는 게야
청수처럼, 파도처럼
.
.
.

그래서, 사랑이란
서로가 존중과 배려라는 길을
매일 달려야 유지될 수 있는
마라톤 게임 같은 게야...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 만큼이 인생이다

 

 

 

 

 

 

 

 

 

 



 

 

 

 

고맙습니다, 따뜻한 시간 되세요


                                                 신현림

 



따뜻한 외투와 모자를 쓰면 바람이 불었고

따뜻한 가방을 메면 빵과 우유와 과일이 담겨 왔다

따뜻한 영화를 생각하면 비디오가 돌아가고

 

밥 딜런의 「유 빌롱 투 미」는

자동응답기에서 융단처럼 펼쳐진다

“고맙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군밤처럼 따뜻한 인사를 남기고

내가 만지면 기뻐 흐늘대는 문을 잠근다

아팠으나 따뜻했던 기억들이 떠밀려 온다

 

한겨울 유형지처럼 방은 추워도 책이 있어 아늑했지

아버지 어머니, 이만큼 따뜻한 이불도 없을 거야

형제 자매들, 이만큼 아름다운 나무도 없을 거야

지긋지긋했던 다툼도 이젠 뼈아프게 그립다

 

보길도 쓸쓸한 시월 들녘 사람이 반가워 울던 황소

그 큰 눈망울처럼 서글픈 해가 질 때나

정선 땅 굽이굽이 출렁이는 길 위에서

이 풍경이 바로 인생이야, 되뇌고

붉은 들꽃을 씹으며 목이 메어 나는 울었다

 

내 고향 부곡 역사(驛舍)와 철로 가에

눈이 퍼붓던 날은 생각해도 목이 메었다

목메게 아름다운 기억을 굴려가며

끝없는 시간, 끝없이 사라진 나날을 견딘다

 

 

 

 

 

 

 





 

 

 

 

 

 

 

 

 

나는 낯설다
천양희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고 말할 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가 좋아질 때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받침을 물끄러미 볼 때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할 때


소유를 자유로 바꾼 사람을 잊어버릴 때


슬픔을 이기려고 꽃 속에 얼굴을 묻을 때


목 놓은 바람 소리 나를 덮칠 때


먼 것이 있어서 살아 있다고 중얼거릴 때


남의 고통 앞에 '우리'라는 말을 쓰고 후회할 때


흰 구름으로 시름을 덮으려고 궁리할 때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쓸 때
나는 낯설다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가을밤 
         조용미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이 변했겠다 

 

마늘에 緣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사는 법
          홍관희

 

 



살다가

사는 법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멈춰 선 채

달리 사는 법이 있을까 하여
다른 길 위에 마음을 디뎌 보노라면

그 길을 가는 사람들도 더러는
길을 멈춰 선 채
주름 깊은 세월을 어루만지며

내가 지나온 길 위에
마음을 디뎌 보기도 하더라

마음은 그리 하더라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74]나는 낯설다 / 천양희  (2) 2024.11.25
[3173]가을밤 /조용미  (0) 2024.11.16
[3171]그의 시 / 도종환  (0) 2024.11.01
[3170]늦저녁의 버스킹 / 김종해  (0) 2024.10.26
[3169]학교 가는 길 / 정희성  (0) 2024.10.21

 

 

 

 

 

그의 시 
           도종환



그의 시는 비단처럼 화사하지 않다  

그의 시는 달변이지 않고  

세련된 기교로 탄성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그의 시는 연필로 쓴 시라서  

읽다가 조금 고쳐도 될 것 같다  

다소 어눌한 데가 있고 투박한 것은  

고향 언저리를 맴돌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잡곡밥처럼 따스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된다  

그가 뜨겁기보다 따스한 사람이라 그럴 것이다  

그는 시를 쓰다가 가만히 눈물을 흘리곤 한다는데  

그래서 그의 시를 읽다가 눈물 날 때 있다  

사는 건 고달프고 

많이들 외로워한다는 걸 그는 안다  

그 자신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는 동안 남을 용서하게 되는 것도 좋다  

그의 시는 깃발처럼 휘날리지 않고  

나팔 소리가 되어 전선으로 몰려가게 하지도 않는데  

어떤 때는 명치끝을 뜨겁게 하고  

주먹을 쥐게 한다



그의 눈빛이 맑기 때문이다

맑은 눈으로 차분하게

먼 노을을 응시하곤 하기 때문이다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73]가을밤 /조용미  (0) 2024.11.16
[3172]사는 법 / 홍관희  (0) 2024.11.05
[3170]늦저녁의 버스킹 / 김종해  (0) 2024.10.26
[3169]학교 가는 길 / 정희성  (0) 2024.10.21
[3168]이정하 / 비겁 5  (0) 2024.10.05

 

 

 

 

늦저녁의 버스킹

                           김종해

 

 

 


나뭇잎 떨어지는 저녁이 와서
내 몸속에 악기(樂器)가 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간 소리 내지 않았던 몇 개의 악기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동안
길은 더 저물고 등불은 깊어진다
나 오랫동안 먼 길 걸어왔음으로
길은 등 뒤에서 고단한 몸을 눕힌다
삶의 길이 서로 저마다 달라서
네거리는 저 혼자 신호등 불빛을 바꾼다
오늘밤 이곳이면 적당하다
이 거리에 자리를 펴리라
나뭇잎 떨어지고 해 지는 저녁
내 몸속의 악기를 모두 꺼내어 연주하리라
어둠 속의 비애여
아픔과 절망의 한 시절이여
나를 위해 내가 부르고 싶은 나의 노래
바람처럼 멀리 띄워 보내리라
사랑과 안식과 희망의 한때
나그네의 한철 시름도 담아보리라
저녁이 와서 길은 빨리 저물어 가는데
그동안 이 생에서 뛰놀았던 생의 환희
내 마음속에 내린 낙엽 한 장도
오늘밤 악기 위에 얹어서 노래하리라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72]사는 법 / 홍관희  (0) 2024.11.05
[3171]그의 시 / 도종환  (0) 2024.11.01
[3169]학교 가는 길 / 정희성  (0) 2024.10.21
[3168]이정하 / 비겁 5  (0) 2024.10.05
[3167]의자 / 박철  (0) 2024.10.01

 

 

 

 

학교 가는 길 
            -어느 학생의 말-

         정희성

 

 


모든 문제의 답은 학교에 있고 
정답은 언제나 근엄해서 
담임선생님의 얼굴 같지요 
답답한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삼차방정식보다 난해하게 변해 버린 
선생님의 표정을 읽으며
정답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아득해 
나는 가끔 다른 길을 갑니다
비록 험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즐거움도 있겠지 
생각하며 길모퉁이 돌아서면 
찍소리 말고 공부나 하라는 
어머니의 고함소리 멀어지고 
친구가 다닌다는 공장을 지나면 
신축공사장 인부들 
오락실 근처에선 재수할 때 만난 
친구의 옆보습도 보이지요 
무언가 고달파 보여도 
정답처럼 엄숙하지 않아서 
볼수록 정다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나는 교실로 돌아오곤 하지요 
그러면서 나는 자신에게 곧잘 
어리석은 질문을 던집니다 
ㅡ정답은 학교에만 있는가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71]그의 시 / 도종환  (0) 2024.11.01
[3170]늦저녁의 버스킹 / 김종해  (0) 2024.10.26
[3168]이정하 / 비겁 5  (0) 2024.10.05
[3167]의자 / 박철  (0) 2024.10.01
[3166]정직한 사람 / 박세현  (2) 2024.09.02

 

 

 

 

비겁 5 
        이정하 

 

 



 가야할때가언제인지분명히알고간다는사람 
 마치그때가오기를기다렸다는듯이 
 훌훌털고일어서는사람 
 그러면서또무슨말은그리많은지 
 사랑했네못잊을거네다시돌아올거네 
 떠나려면그냥떠나라공연히개폼잡지말고 
 너는가도내사랑엔흠집을내고싶지않나니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70]늦저녁의 버스킹 / 김종해  (0) 2024.10.26
[3169]학교 가는 길 / 정희성  (0) 2024.10.21
[3167]의자 / 박철  (0) 2024.10.01
[3166]정직한 사람 / 박세현  (2) 2024.09.02
[3165]여름편지 / 마종기  (0) 2024.08.15

 

 

 

 

의자
      박철

 

 



갈참나무 허리에

연선아 좋아해, 하고 새기는 일이나

원고지에 몇 자 적는 일이나

본질은 같다



의자 모서리를 움켜쥐고 그때 그 자리에

다시 노을이 젖어오고

나는 더 우회적으로 이 일을 생각한다



어떤 기적이 있어

기대앉은 의자에 새잎이 돋고

수맥이 흐르고

나는 둥둥 떠서

기어이 너에게 갈 수도 있다

 

 

이렇게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다. 
첫 사랑의 푸르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지금 그는 의자를 유심히 바라본다. 
의자는 낡은 정물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어쩌면 의자는 갈참나무를 켜서 만든 의자일지도 모른다.

갈참나무에는 “연선아 좋아해”라는 사랑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 해질녘에는 노을이 축축하게 의자에 앉는다. 
의자는 수많은 계절이 흐르고 지나가는 것을 보아왔다. 
그는 정물인 의자가 다시 활물(活物)로, 갈참나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파릇한 새잎처럼 새뜻하고, 두근거리고, 빛이 많아 찬란하고, 속마음이 둥둥 높게 떠서 가던 그 첫사랑의 때로, 순수한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묻는다.


박철 시인은 시 ‘소년에서’를 통해 그때의 어린 자아를 나무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멀리 대지에, 대지를 향하여, 대지를 이루고/ 너는 너 하나로 가득 자유와 생명을” 가꾸며 살라고 말한다. 
내게도, 모든 이들에게도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은, 어린아이가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테다.
-문태준<시인>

 

 

 

 

 

 

 

 

 



 

 

 

 

 

 

정직한 사람 
박세현

 

 



잿빛 슬래트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


서로 가녀린 정을 이어붙이며 살아가는 나라


떠나는 사람은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고


다시 오는 사람은 또 그만그만한 인생을 앞세우고


방 둘 부엌 하나인 사택으로 접어들어 살 같은 이웃이 된다


아직도 비어 있는 17호 사택의 벽바닥엔


정직한 사람이라고 씌어진 낙서와


그림책에서 오려낸 티티새 두 마리가


떠나간 주인의 생활을 회상하고 있다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68]이정하 / 비겁 5  (0) 2024.10.05
[3167]의자 / 박철  (0) 2024.10.01
[3165]여름편지 / 마종기  (0) 2024.08.15
[3164]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 이채  (0) 2024.08.01
[3163]우산 / 박연준  (0) 2024.07.26

 

 

 

 

여름편지 
마종기 
  

 



무모한 여름이여. 
꽃들은 여기저기서 
책임도 지지 못할 
임신을 하고, 
풀도, 나무도, 나도 
여름이면 도둑처럼 
지붕 위로 올라갔었다. 


지붕 위의 하늘은 
몇 개쯤이던가. 
애매한 맹세를 은근히 
사방에 흘리면서 
날개 빠른 새가 되어 
사방을 들뜨게 했다. 
아, 정말 들뜨게 했다. 
모든 약속이 아름답게 
향기처럼 우리를 울렸다. 


궁색한 여름이여. 
우리가 믿은 하늘은 
구름처럼 희고 
트럼펫 소리는 높고 낮게 
춤을 추었다. 
그리고 우리는 잤다. 
잠속에 내린 소낙비가 
여름을 적시고 
피부에 남은 물기가 
차갑게 외면할 때까지 
우리는 바람을 타고 있었다. 


파랑새도 굴뚝새도 
돌아가야 할 길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해부터 
늙기 시작했다.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67]의자 / 박철  (0) 2024.10.01
[3166]정직한 사람 / 박세현  (2) 2024.09.02
[3164]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 이채  (0) 2024.08.01
[3163]우산 / 박연준  (0) 2024.07.26
[3162]농무(農舞) / 신경림  (0) 2024.06.29

 

 

 

 

당신의 여름을 사랑합니다 
이채

 


겨울은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천사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신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66]정직한 사람 / 박세현  (2) 2024.09.02
[3165]여름편지 / 마종기  (0) 2024.08.15
[3163]우산 / 박연준  (0) 2024.07.26
[3162]농무(農舞) / 신경림  (0) 2024.06.29
[3161]숲 / 강은교  (0) 2024.06.18

 

 

 

 

우산
박연준(1980~)

 

 


우산은 너무 오랜 시간은 기다리지 못한다

이따금 한번씩은 비를 맞아야

동그랗게 휜 척추들을 깨우고, 주름을 펼 수 있다

우산은 많은 날들을 집 안 구석에서 기다리며 보낸다

눈을 감고, 기다리는 데 마음을 기울인다

벽에 매달린 우산은, 많은 비들을 기억한다

머리꼭지에서부터 등줄기, 온몸 구석구석 핥아주던

수많은 비의 혀들, 비의 투명한 율동을 기억한다

벽에 매달려 온몸을 접은 채,

그 많은 비들을 추억하며

그러나 우산은,

너무 오랜 시간은 기다리지 못한다

 


................
우산을 소재로 이런 시도 쓸 수 있구나. 
애정을 가지고 살펴보면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이 시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깜찍하고 발랄하고 감각적인 언어에서 젊음이 느껴진다. 
시인은 우산이 되어, 비를 기다리는 우산의 마음을 헤아린다. 
비가 오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우산이 하나도 없는 집은 없으리라.

우산을 발명한 뒤 인류는 더 바빠졌고 노동 착취는 더 심해졌다. 
비 오는 날, 동굴에만 집에만 갇혀있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우산처럼 고마우면서 얄미운 존재가 또 있을까. 
우리 집 신발장에는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은 우산이 두 개나 있다. 
너무 오래 펼치지 않은 우산을 최근에 꺼내 펼쳐 보았더니 색이 바래 보기 싫었다. 
너무 오래 우산을 기다리게 하지 말자.
-최영미<시인.이미출판 대표>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룟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강은교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

‘이렇게’를 넣은 것이 신의 한 수. 
시의 방관자였던 독자들이 ‘이렇게’를 보며 적극적인 행위자로 동참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나무들이 흔들리는 숲에서 나도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내가 나무 넷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착시. 
이것이 시인의 능력이며 리얼리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가서 우리 함께 싸우자! 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 항거했던 이 나라 풀뿌리 민초들의 저항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다. 
존재와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양새가 어딘지 불교 철학과 닿아 있다. 
시인도 그렇게 흔들리며 고개를 젓던 나무의 하나였기에 이렇게 빼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이 시에 나무들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를 한 줄 한 줄 베끼다 보면 예전에 모르던 시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바다 옆에 집을 짓고


                                한기팔(1937~2023)

 

 

 



바다 옆에

집을 짓고 살다 보니까

밤이면

파도소리, 슴새 울음소리 들으며

별빛 베고

섬 그늘 덮고 자느니

그리움이 병인 양 하여

잠 없는 밤

늙은 아내와

서로 기댈

따뜻한 등이 있어

서천에 기우는 등 시린 눈썹달이

시샘하며 엿보고 가네.

 

 

..........................................



한기팔 시인은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시 ‘보목리(甫木里) 사람들’에서 “보오보오/ 물오리 떼 사뿐히 내려앉은/ 섶섬 그늘/ 만조때가 되거든 와서 보게”라고 써서 고향의 풍광을 소개했고, “이 시대의 양심인 양/ 아무 말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라고 써서 고향 사람들의 인품을 칭송했다.


파도 소리가 앞마당까지 철써덕철써덕 밀려오는 곳에 시인의 집이 있다. 
먼바다와 섬과 수평선을 바라보며 산다. 
시인은 “아침을 나는 새처럼/ 깨끗하게 살기 위하여”라고 노래하기도 했는데, 그런 새의 울음소리가 밤에도 들려왔을 것이다.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호젓하고 또 때로 적적하기도 했을 터이다. 
그래도 아내에게 의지할 수 있다. 등을 비스듬히 댈 아내의 따뜻한 등이 있다. 
시인이 “햇빛 고운 날/ 목련꽃 그늘에/ 늙은 아내와 앉으니/ 아내가 늙어서 예쁘다”라고 노래한 그 아내가 옆에 있다. 
서쪽 하늘에는 눈썹 모양의 달이 떴다. 깜깜한 공중에 홀로 있으니 기댈 데가 없어서 등이 시려 보인다. 
시인은 파도처럼 뒤척이다 이내 잠잠하게 있는 수평선처럼 고요한 잠에 들었을 것이다.
-문태준<시인>

 

 

 

 

병(病)에게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이외수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 세상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시를 읽는다 
                 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꽃을 따르라 

                   정호승

 



돈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

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
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

벚꽃을 보라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
봄의 슬픔마저 찬란하지 않으냐

돈을 따르지 말고
지는 꽃을 따르라

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
가장 아름답다

 



.............................................
꽃이 오고 있다. 꽃이 와서 봄에게 새 의상(衣裳)을 입히고 있다. 산과 들에 헐벗은 구석이 사라지고 있다. 
시인은 봄날에는 꽃을 좇아서 꽃 가는 대로 같이 가라고 말한다. 
돈을 선호하지 말고 꽃을 애호하라고 말한다. 꽃을 맘껏 완상하라는 권유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숭상하라는 속뜻은 무엇일까. 
꽃에게는 개화와 낙화의 일기(日記)가 각각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 아닐까. 
우리의 일상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함께 있음을 잊지 말라는 뜻 아닐까. 
흐뭇하고 흡족한 때도 있고, 아프고 괴로운 때도 있듯이.


마음을 접어야 할 때와 손을 떼어야 할 때가 있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하는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꽃이 지는 시간이다.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 가운데 ‘반달’이라는 시를 또 좋아한다.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낙화는 보름달이 반달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 문태준 <시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