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산불이 사상 최악으로 번진 배경에는 강한 바람과 비가 적게 오는 봄철 건조기라는 기상 여건 외에도 불에 잘 타는 침엽수림과 ‘임도(林道)’ 부족이라는 우리나라 산림의 구조적 문제점도 있다.


침엽수는 기름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산불이 발생하면 불쏘시개나 화약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침엽수인 소나무 송진의 주요 구성 성분은 불에 타기 쉬운 탄화수소인 ‘테르펜’이다. 
송진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횃불의 연료로 사용됐을 정도로 인화성이 높다.

 

 


<잡히지 않는 불길 - 27일 오후 경북 영양군의 야산에 불길이 번져 연기가 자욱한 모습. 

산림 당국은 영양군에 진화 헬기 5대와 인력 563명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지만, 지속된 강풍과 건조한 날씨로 인해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또 산불 진화용 인력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산길인 임도가 제대로 조성됐다면 진화 작업이 수월했겠지만, 울창한 숲 경관을 해친다며 환경 단체와 산주들이 반대했던 게 대형 산불로 돌아왔다.


27일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산림(629만8134ha)에서 침엽수림이 차지하는 비율은 36.9%였다. 
침엽수림은 침엽수가 차지한 면적이 75% 이상인 숲을 뜻한다. 
한국은 단단한 화강암 지반을 둔 곳이 많아, 예전부터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잘 자랐다. 
침엽수는 뿌리가 넓게 퍼지며 땅을 붙잡고 있는 반면, 활엽수는 뿌리가 깊게 뿌리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과 안동시도 지반이 단단한 곳들로, 침엽수가 많이 자란다. 
산림청 관계자는 “경북 산림 일대를 가보면 흙을 3~4cm만 파내도 단단한 지반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안동시의 침엽수림 비율은 52.9%로 전국 평균보다 16%포인트나 높고, 의성군의 침엽수림 비율도 51.4%나 된다.

 

 




반면 경남 산청군과 하동군은 침엽수림 비율이 각각 37.6%, 38.8%로 전국 평균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 23일 산불이 발생했다가 이틀 만에 꺼진 충북 옥천군은 침엽수림 비율이 24.1%에 그친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우리나라는 불이 나면 순식간에 번져 나갈 연료를 산에 잔뜩 쌓아 놓은 셈”이라며 “바람과 기후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니, 나무 수종과 밀도 등이라도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산림 관리 차량이 다니는 임도는 산불이 났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대부분의 산은 헬기로 불을 끈다. 밤에는 헬기가 못 뜬다. 
낮이라도 바람·안개 등 날씨가 안 좋으면 마찬가지다. 하지만 임도가 있는 산은 소방차량이 올라갈 수 있다. 
사람이 15L 등짐펌프를 메고 1시간을 등반해 도착하는 산불 현장을 소방차는 3000L 물을 싣고 5분 만에 도착한다. 
산림청은 임도의 유무에 따라 산불 진화 효율이 5배 차이가 난다고 분석한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로부터 1m가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은 1.55㎡씩 증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은 임도가 적다는 것이다. 산 1ha당 4.1m 수준으로, 독일(54m)이나 일본(24.1m)보다 현저히 적다. 
최대 피해 지역인 경북 의성군의 산불 임도는 다 합쳐 봐야 710m일 정도로 턱없이 적다.


이번 산불 피해를 입은 울주군의 경우 임도 유무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폭 3m짜리 임도가 있는 화장산에서는 이틀 전 산불이 발생했을 때 헬기가 뜨지 못하는 밤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소방 차량 92대와 소방 대원 1240명이 밤새 물을 뿌려댔다. 그 결과 화재 발생 29시간 만에 ‘완전 진화’를 선언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울주군에 있는 대운산은 임도가 없는 탓에 엿새째 산불 진화에 애를 먹었다. 
낮에는 헬기로 물을 뿌리지만 헬기가 못 뜨는 밤이면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운산 일대 산불은 불이 난 지 128시간 만에야 진화에 성공했다.


앞서 2023년 경남 합천과 하동에 산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임도가 있는 합천은 야간 산불 진화율이 82%였지만, 임도가 없는 하동은 7%에 불과했다.


산이 많은 지역 지자체들은 임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이 사유지인 경우 산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환경 단체의 반대도 난관”이라고 했다.(250328)


 

 

 

“의성 하면 마늘인데 마늘도 집도 다 탔습니더. 앞으로 우째 살란 말인지….”


30일 오후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김민수(51)·김역수(47)씨 형제가 시커먼 재만 남은 마늘밭을 보며 한숨 쉬고 있었다. 
산불로 형제가 일군 마늘밭 1600㎡(약 500평)와 집 2채가 모두 불탔다. 
민수씨는 “집 문서만 챙겨서 대피소로 피했다”며 “집에 돌아와 보니 소 두 마리만 남아 있더라”고 했다. 소 두 마리도 털이 검게 탔다.

 

 

<지난 22일 의성군에서 발생해 안동시·청송군·영양군·영덕군까지 번졌던 산불이 지난 29일 진화됐다. 
30일 오후 경북 영덕군 수암리 인근 농가가 화마로 인해 전소되어 있다. 집 전체가 전소된 신은자씨가 한숨과 눈물을 보이고 있다.>

 


의성군 단촌면에서 마늘 농사를 하는 김명선(58)씨는 “마늘밭도 엉망이 됐는데 외국인 근로자 7명도 대구로 피난 가 남편과 둘이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북에선 지난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로 4만5000ha가 불타고, 이재민 3만4000여 명이 발생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주택 등 3600여 채와 논밭 1555ha, 농기계 1369대가 불탔다. 
키우던 한우 13마리, 돼지 2만4452마리, 닭 5만 마리, 염소 38마리도 불에 타 죽었다.

 

 

<30일 오후 경북 청송의 대표 관광지인 달기약수터와 인근 식당들이 산불 피해를 입었다. 
산불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식당 앞에서 주인이 답답함에 눈물을 보이고 있다.>

 


‘영덕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군 노물리 마을에선 불에 타 뼈대만 남은 배 12척을 볼 수 있었다. 
지난 25일 산불이 강풍을 타고 동해안을 덮치며 정박 중이던 배까지 불탄 것이다. 
이 마을 배 30여 척 중 12척이 불에 탔다. 주택 228채 중 170채도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있었다. 
하중광(72) 어촌계장은 “12월부터 5월까지 대게 철인데 배가 불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울먹였다. 
주민 정모씨는 “배가 산불에 타는 건 처음이라 기가 막힌다”며 “앞으로 뭘 먹고살지 막막하다”고 했다.


경주 이씨 집성촌인 안동 임하면 추목리 마을도 산불로 폐허가 돼 있었다. 
주택은 지붕이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앙기와 경운기 등 농기계도 불타 있었다. 
정경윤(62) 추목리 이장은 “추목리 90여 가구 중 80여 가구가 모두 불탔다”며 “전통 있던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청송군의 달기약수탕에도 산불이 덮쳤다. 
콘크리트 지붕을 씌운 약수탕은 화마를 피했지만 주변 음식점 30곳 중 27곳이 불탔다. 
경북도 관계자는 “피해가 너무 광범위해 돈으로 일일이 환산하기 불가능한 정도”라며 “앞으로 피해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30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항 인근 횟집과 주택들이 화재로 인해 전소되어 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판례 등에 따르면, 실화자를 잡더라도 실화자 개인에게 물릴 수 있는 손해배상액은 1억원 안팎 수준이다. 
2019년 강원 고성 산불 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기업인 한전을 상대로 3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14분의 1 수준인 27억원만 인정했다.


30일 현재 주불은 잡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게 산림 당국의 설명이다. 이날도 경북 현장에서 잇따라 잔불이 일어났다. 
산림청 관계자는 “통제 가능한 수준이지만 주불을 잡고서도 일주일 이상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기상청도 “당분간 전국이 건조한 가운데 바람이 강하게 불 것으로 보여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꽃샘추위에 더 서러운 이재민들… 약초도 마음도 시커멓게 타버려 - 30일 오후 경북 영덕군 영덕국민체육센터에 이재민들을 위한 텐트가 늘어서 있다(왼쪽). 산불로 집을 잃은 이들은 임시 거처로 마련된 텐트 안에 모여 앉아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오른쪽은 같은 날 오후 영덕군 수암리의 한 농가에서 주민이 새까맣게 탄 약재 뿌리를 들어 보이는 모습.>

 


불을 낸 실화(失火) 용의자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이날 의성 안평면에서 산불을 낸 혐의로 성묘객 A(5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A씨는 아내, 딸과 함께 조부모의 산소에 들렀다가 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딸은 “산소에 있는 나무가 잘 안 꺾여 라이터로 태우려다가 산불이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의성 산불은 안계면 과수원에서도 발생했는데, 의성군 관계자는 “용의자인 과수원 주인이 잠적한 상태”라고 전했다. 
산청군도 실화 용의자 조사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처음 불이 난 지역의 농장 주인은 참고인 조사에서 “예초기를 돌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불이 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240331)


 

 

 

[영남 산불 진화] 산불 피해 키운 3가지 원인과 대책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림의 3대 구조적 문제로 턱없이 부족한 ‘임도(林道)’와 헬기 등 열악한 산불 진화 ‘장비’, 불이 잘 붙을 수밖에 없는 침엽수림 위주의 산림 ‘수종(樹種)’을 꼽았다.


임도는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는 숲속 찻길을 말한다. 산불에 대비해 확보한다. 
임도가 없는 산은 소방차가 올라갈 수 없어 헬기로 불을 꺼야 하는데 효율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헬기는 안전상 밤에 뜰 수 없는 데다 낮에도 연기나 먼지가 짙으면 발이 묶인다. 
산림 당국은 이 때문에 이번 산불을 진압하는 데 애를 먹었다. 헬기를 총동원해 진화율을 올려 놓으면 밤에 다시 불이 번졌다. 
산림청은 “임도가 있는 산은 소방차가 숲속 깊이 들어가 밤에도 호스로 물을 뿌릴 수 있다”며 “산불 진화 효율이 5배 이상 높아진다”고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로부터 1m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이 1.55㎡씩 증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임도는 이어진 숲을 갈라 산불의 확산을 저지하는 ‘방화선’ 역할도 한다.

 

 

<30일 오전 경북 임하면 추목리에서 바라 본 야산이 산불로 인해 검게 변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임도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산림 1ha당 임도는 4.1m로 독일(54m)이나 일본(24.1m)보다 짧다. 
전체 국토 중 산림 비율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핀란드는 5.8m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의 산불 임도는 710m로 조사됐다. 안동과 경남 산청에는 산불 임도가 없다.

 

 

 

<29일 오전 경북 의성군의 한 야산에서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산불로 타버린 낙엽 등을 갈퀴로 헤치며 잔불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번에 산불이 난 울산 울주군은 임도 유무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지난 25일 산불이 난 울주군 화장산은 폭 3m짜리 임도가 있어 낮뿐 아니라 밤에도 진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소방차 92대와 대원 1240명이 밤새워 물을 뿌렸다. 그 결과, 불이 난 지 20시간 만에 주불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임도가 없는 근처 울주군 대운산은 지난 22일 불이 난 이후 128시간 만인 28일 불을 잡을 수 있었다.


2020년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림 특성을 고려한 임도 밀도 목표량 산정 연구’에서 “우리나라 산 1ha당 최소 6.8m의 임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면 임도 1만6000km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산림청은 올해 산불 진화 임도 91km를 늘리는 데만 1574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산이 사유지인 경우 산 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환경 단체의 반대도 넘어야 한다. 
강호상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교수는 “특별법을 만들어 산불이 나기 쉬운 지역은 산 주인의 동의 없이도 임도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산불을 효과적으로 끄려면 한꺼번에 많은 물을 뿌리는 게 중요하다”며 “찔끔찔끔 붓는 물은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수준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5000L 이상 물을 싣고 날 수 있는 대형 헬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 헬기 50대 중 담수 용량이 5000L 이상인 대형 헬기는 7대다. 
담수 용량이 1000∼5000L인 중형 헬기가 32대로 가장 많고, 11대는 1000L도 싣지 못한다.

 

 

 


대형 헬기 7대는 미국 시코르스키 S-64(담수량 8000L) 기종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2대는 정비 중이어서 이번 산불 때는 5대밖에 투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산림청의 주력 헬기인 러시아제 카모프(담수량 3000L)는 29대 중 16대만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이 끊겨 멈춰 서 있다고 한다.


이번에 지방자치단체나 군이 보유한 헬기도 동원했지만 이 헬기들은 담수 용량이 더 적다. 이 때문에 경남 산청에는 주한 미군 블랙호크·치누크 헬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까맣게 그을린 골프장 -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한 골프장 곳곳이 산불에 까맣게 그을린 모습.>

 


산림청은 지난해 발간한 ‘2023 봄철 전국 동시다발 산불백서’에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불을 막으려면 5000L 이상 대형 헬기가 최소 24대 필요하다”고 했다. 
전국 산림을 12개 구역으로 나누고 2대씩은 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산림청이 추가 도입한 헬기는 2대뿐이다. 그마저 중형 헬기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대형 헬기는 1대당 가격이 500억원이 넘는 데다 발주를 넣어도 도입까지 3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시코르스키 S-64 기종은 1대당 가격이 505억원에 달한다. 대형 헬기를 생산하는 나라도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손에 꼽을 정도라 물량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대형 헬기를 충분히 도입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군 헬기를 개조해 쓰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산불 피해를 자주 겪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 방위군에 ‘소방 전담팀’을 꾸려 대기한다.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시즌에는 블랙호크나 치누크 헬기를 산불 진화용으로 쓴다.

 

 



산불이 나면 진화 대원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산불 감시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매년 단기 일자리로 모집하다 보니 ‘노인 일자리’가 되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산불 감시원의 평균 연령은 61세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감시원에 대한 전문 교육을 강화하고 근무 형태를 무기 계약직으로 바꾸면 지원하는 청년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침엽수는 기름 성분인 송진을 품고 있기 때문에 산불이 발생하면 불쏘시개나 화약 역할을 한다. 
소나무 송진의 주요 성분은 불에 타기 쉬운 탄화수소인 ‘테르펜’이다. 
송진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횃불의 연료로 사용됐을 정도로 인화성이 높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나무는 활엽수에 비해 1.4배 더 뜨겁게 타고 불이 지속되는 시간도 2.4배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침엽수림이 넓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 산림(629만8134ha) 중 침엽수림이 차지하는 비율은 36.9%로 활엽수(31.8%)보다 높았다. 
우리나라는 단단한 화강암 지반이 많아, 예전부터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잘 자랐다. 
침엽수는 뿌리가 넓게 퍼져 단단한 땅에도 잘 자라는 반면 활엽수는 무른 땅에서 잘 자란다. 뿌리가 아래로 깊게 자라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과 안동시도 지반이 단단한 곳들로, 침엽수가 많이 자란다. 
산림청 관계자는 “경북 산림 일대를 가보면 흙을 3~4cm만 파내도 단단한 지반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안동시의 침엽수림 비율은 52.9%로 전국 평균보다 16%포인트 높고, 의성군의 침엽수림 비율도 51.4%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불탄 지역은 활엽수로 수종을 변경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간벌(間伐)’ 작업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간벌은 빽빽한 숲에서 나무를 솎아내는 것이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숲이 지나치게 빽빽하면 산불이 더 빠르게 퍼진다”며 “간벌을 하면 잡목이 줄어 진화 작업도 쉬워진다”고 했다. 
경남 산청 산불의 경우 나무와 수풀이 얽혀 있어 진화에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문화유산이 인근에 있거나 산불 위험이 높은 곳은 간벌로 나무 사이 간격을 띄워주고 일본처럼 방화림(防火林)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에 잘 타지 않는 수종을 선별해 방화림을 만든다. 
방화림으로는 주로 굴참나무,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등을 많이 쓴다. 
침엽수 사이사이에 이러한 방화림을 섞어 심어도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250331)


 

 

 

서울 용산구에 있는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지난해 2월 정신건강의학과 폐쇄 병동 문을 닫았다. 
폐쇄 병동은 중증·응급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는 병동으로, 대학병원 폐쇄 병동은 가장 병세가 심한 급성기 환자들이 입원한다. 
이 병원은 원래 21개 병상을 운영 중이었지만, 의정 갈등 사태 이후 전공의가 이탈해 의료진이 부족해지자 정신과 중증·응급 환자 수용을 잠정 중단한 것이다.


의정부성모병원 등 다른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정신과 병동을 없앴다. 
안석균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급성기 환자가 양질의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대학병원인데, 이제 그들이 갈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정신질환 환자는 늘었는데 정신병동은 폐쇄, 축소되고 있다.>

 


반면 정신 의료 기관에 일시적으로 강제 수용되는 응급 질환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7591건이던 ‘응급 입원’ 의뢰 건수는 지난해 1만8066건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응급 입원은 정신 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해하거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제3자가 의뢰해 정신 의료 기관에 일시 입원시키는 제도다.


우울증 등 경증 환자부터 조현병·망상 등 중증 환자까지 정신 질환자가 늘면서 정신과 치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정신과 치료의 인력이나 인프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정신 질환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수는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상급종합병원의 폐쇄 병상은 955개였는데 지난해엔 914개로 줄었다. 
같은 기간 상급종합병원 수는 42곳에서 47곳으로 늘어났다. 
다른 진료과에 비해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가 낮은 데다, 상급종합병원 자격 유지를 위한 요건에도 ‘폐쇄 병동을 갖추라’는 내용은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병동이 부족하다 보니 환자들이 서로 섞이면서 치료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다. 
조현병 등 중증·급성기 환자들과 이보다 덜 심각한 만성기 환자들이 한데 섞여 지내다 보니, 일부 환자는 생활 환경에 트라우마가 생겨 퇴원 후 재발하더라도 입원 치료를 거부하곤 한다. 
계속되는 자해로 2022년 정신과 폐쇄 병동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A씨는 “당시 입원해 조현병 환자와 같은 방을 썼는데,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각한 정신 질환자들에게는 외과 등 배후 진료과가 있는 대학병원 정신과 병상이 필요하다. 
홍창형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정신 질환자들이 수시로 실려온다”며 “정신 질환자는 낙상하고 자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일반 정신병원에선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골절과 장기 손상을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만성 환자들이 많이 찾는 일반 정신병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50병상 이상 정신병원의 모임인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관계자는 “민형사상 책임,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운영이 어려워 병원 문을 닫거나 병상 수를 줄이는 것을 검토하는 병원이 셀 수 없이 많다”며 “정신병원들이 줄도산하면 만성 환자들이 갈 곳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의료 복지 서비스가 늘어나기는커녕 환자들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은 늘어나고 있다. 2017년 990곳이었던 정신과 의원 수는 2023년 1688곳으로 70.5% 늘었다. 
동네마다 접근성 좋은 의원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신호지만, 제한된 정신과 전문의 인력이 상급종합병원과 병원급에서 개원가로 유출돼 문제다. 
의원에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가 2017년 1355명에서 2023년 2237명으로 882명(65.1%) 증가하는 동안, 상급종합병원·병원급의 정신과 전문의는 2048명에서 1865명으로 183명(8.9%) 감소했다. 
비교적 경증인 환자를 대하는 의원의 정신과 전문의 수가 중증 환자 중심의 병원들을 추월한 것이다.


지역별로는 정신과 전문의의 54.2%(2172명)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지방일수록 정신과 상담의 기회가 적은 것이다.


정신 질환 치유를 위한 공공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알코올·도박 등 중독 환자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지역별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전국 53곳에 있는데 직원은 도합 350명 정도다. 
센터 한 곳당 평균 6~7명의 직원이 수십~수백 명의 중독자를 관리하며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각 지자체 보건소에서도 지역 주민의 정신 건강 상담 등을 담당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설치돼 있지만, 만성적인 인력 부족 상태다. 
한 지자체 센터 관계자는 “정신 건강 업무가 아닌 지자체의 이벤트성 사업에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안용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지금 우리나라는 정신 질환 환자를 보호자·가족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구조”라며 “정신 질환자들이 적시에 적절한 조치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250329)


 

 

 

법원이 지난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허위 사실 공표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학계와 법조계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고법은 1심이 허위 사실 공표로 인정한 이 대표 발언을 허위 사실이 아닌 ‘인식·의견 표명’으로 봐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대표가 고(故) 김문기씨 사망 직후 “김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한 발언,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한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용도를 변경했다”는 발언 등에 대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몇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허위 사실 공표죄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앞으로 선거 무대를 ‘더 정교하고 대담한 거짓말’ 경연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선 “법이 정치인 말의 무게를 망각한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거짓말은 선진국일수록 정치 생명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정치인에게 치명적이다. 
과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불법 도청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거짓말이 문제가 돼 결국 하야했다. 
닉슨의 거짓말이 그의 몰락을 낳자 당시 미 언론에선 “닉슨이 닉슨을 잡았다”고 평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성 추문보다 사태 초기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한 거짓말이 탄핵소추 사유가 됐다. 
2022년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불명예 퇴진한 것도 성 추문 전력이 있는 인사를 보수당 원내부총무로 임명하면서 ‘성추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추궁에 거짓 해명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런데 이 대표 항소심 판결로 인해 앞으로 한국 선거판은 ‘인식·의견 표명’을 빙자한 허위 사실 공표로 더 혼탁해질 것이라고 정치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법부가 정치인의 거짓말을 ‘의견 표명’으로 해석한 것은 그 정도 거짓말은 할 수 있다는 일종의 면허증을 내준 셈”이라며 “이번 판결은 진영 양극화가 극심하고 감정·신념에 대한 호소가 사실보다도 중요해지는 ‘탈진실(Post-truth)화’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부는 이 대표의 김문기씨 관련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국토부 협박 발언을 허위 사실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이와 관련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권자는 보통 정치인의 발언을 전체적 맥락을 통해 이해한다”며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특정 발언 부분을 떼어내 인식·의견 표명이거나 과장된 표현이라면서 면죄부를 준 터라 유권자로 하여금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려는 판단을 포기하게 하는 셈”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1심 법원은 이 대표의 골프 관련 발언이 대장동 비리 의혹과의 연관성을 끊어내기 위해 관련 사진이 조작됐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은 국민의힘이 10명 단체 사진을 4명으로 확대해 공개한 것을 조작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이 대표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일반 유권자들은 ‘사진이 조작됐다’는 말을 들으면 ‘이 대표가 김씨와 골프 친 적이 없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이와 동떨어진 판단”이란 주장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번 판결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진영 지지를 바탕으로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고도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거짓말이란 지적이 거짓’이라는 식의 대담한 정쟁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로 권력의 거짓말이 더 대담해질 수 있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은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의심받는 피고인에게 관대한 판결이라 ‘당선을 위해 거짓말을 하려면 정교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줄 수 있다”고 했다. 
김승대 전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은 “법원은 정치적 고려보다 사실이 무엇인지를 가리는 게 우선”이라며 “법원이 유력 정치인 말의 무게를 망각한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했다.(250328)



 

 

 

세계 최강 축구 클럽을 가리는 2025 FIFA(국제축구연맹) 클럽 월드컵은 그야말로 ‘돈 잔치’다. 
6월 14일 미국에서 막을 올리는 이번 클럽 월드컵 우승팀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챔피언 아르헨티나 우승 상금(4200만달러)의 약 3배인 최대 1억2500만달러(약 1830억원)가량을 챙길 수 있다.


FIFA가 27일 총상금 10억달러(약 1조4650억원)가 걸려 있는 2025 클럽 월드컵 세부 상금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 대회는 32팀 체제로 확대해 처음 치르는 만큼 상금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7팀이 참가한 2023 클럽 월드컵 때는 우승 상금이 500만 달러였는데 이번 대회에서 25배로 늘어났다.


이번 클럽 월드컵 참가 팀은 출전료로만 최소 358만달러에서 최대 3819만달러를 받는다. 
이 액수는 FIFA가 마련한 상업 요소를 고려한 랭킹에 따라 결정되는데 유럽 클럽은 1281만~3819만달러, 남미는 1521만달러, 아프리카와 아시아, 북중미는 955만달러, 오세아니아 클럽은 358만달러를 받는다.

 

 




출전료뿐 아니라 성적에 따라 추가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조별 리그에서 1승을 할 때마다 200만달러를 챙기고, 비기면 100만달러를 수령한다. 
16강에 오르면 750만달러, 8강 1312만5000달러, 4강은 2100만달러를 추가로 받고, 준우승 팀엔 3000만달러, 우승 팀엔 4000만달러가 지급된다.


K리그 울산 HD는 AFC(아시아축구연맹)를 대표해 출전한다. 
울산은 출전료로만 955만달러(약 140억원)를 수령한다. 울산이 2024시즌 선수 연봉으로 지급한 금액이 209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클럽 월드컵 참가만으로도 팀 연봉의 3분의 2를 충당할 수 있는 셈이다. 
만약 울산이 조별 리그에서 1승 2무로 돌풍을 일으키며 16강에 올라갈 경우를 가정해 본다면 2105만달러(약 308억원)를 챙기며 한 해 구단 예산에 가까운 돈을 벌게 된다. 
울산은 이번 대회 F조에서 도르트문트(독일)와 플루미넨세(브라질), 마멜로디 선다운스(남아공)와 16강 진출을 다툰다.(250328)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니 나를 지브리 스타일로 바꿨다는 메시지가 수백 개 와 있었어요. 프로필을 바꿔봤습니다. 누군가 더 나은 그림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까요?”


미국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교체하며 이런 글을 올렸다. 
새 프로필 속 올트먼은 만화 주인공처럼 익숙한 모습이다. 짧게 비쭉비쭉 솟은 갈색 머리에, 크고 동그란 눈은 푸른색이지만 피부색은 동양인처럼 살구색이다.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4o를 이용해 2023년 8월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머그샷’을 각각 다른 풍으로 본지가 생성한 모습. 왼쪽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스타일로 만든 이미지고 오른쪽은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풍으로 제작한 그림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이하 지브리) 특유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화풍(畫風)으로 올트먼을 묘사한 것이다. 
지브리는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 히트작들로 영미권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올트먼의 새 프로필은 오픈AI가 지난 25일 생성형 AI(인공지능) 모델 ’챗GPT-4o’에 탑재한 이미지 생성기의 작품이다. 
이미지 생성기는 사진을 특정 애니메이션 제작사 혹은 만화가의 화풍으로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자신의 프로필을 바꾼 올트먼처럼 ‘스타워즈’ ‘대부’ ‘해리포터’ 등 유명한 영화의 명장면들을 지브리풍으로 바꾼 그림들이 소셜미디어에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다. 
국내 소셜미디어에도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와 봉준호 감독의 2019년작 ‘기생충’ 포스터를 지브리나 일본 만화 ‘도라에몽’ 화풍으로 변환한 그림들이 올라오고 있다.

 

 

<샘 올트먼(왼쪽) 미국 오픈AI CEO(최고경영자). 왼쪽은 실제 사진이고, 오른쪽은 그가 27일 X(옛 트위터)에 올린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화풍으로 그린 초상화다.>

 


본지가 실제로 챗GPT-4o 이용 요금을 결제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2023년 머그샷(수용기록부 사진)을 입력해보니 여러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트럼프를 각각 다르게 묘사한 그림들이 나왔다. 
지브리·디즈니 등 세계적 제작사는 물론 ‘심슨 가족‘(미국) ‘귀멸의 칼날‘(일본) 등 특정 작품에 나오는 인물처럼 그려달라는 요청도 가능했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려면 챗GPT-4o가 다양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활용해 화풍을 학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오픈AI가 지브리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 저작권 계약을 맺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미국 버라이어티 등 외신들은 “오픈AI와 지브리 모두 저작권 계약 관련 문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저명한 제작사나 만화의 화풍을 활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저작권 침해로 단언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후쿠이 겐사쿠 변호사는 27일 “(이미지 생성 기능이) 작풍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에 그치고, 지브리 영화 장면과 구체적으로 유사하지 않다면 저작권 침해로까지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며 “스타일이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문화청도 최근 발표한 ‘AI와 저작권’ 관련 지침에서 “화풍과 같은 아이디어는 저작권법 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소셜미디어에 밝혔다.


트럼프의 같은 사진을 한국 애니메이션 '뽀로로' 스타일로 그려달라고 하자 이런 이미지가 나왔다.

 

 


<2023년 8월 24일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교도소에서 촬영된 도널드 트럼프의 머그샷. 기사의 이미지들은 이 사진을 기반으로 챗GPT에게 다양한 스타일로 그려달라고 주문해 만든 것이다.>

 


일본 현지 매체들은 “(화풍 모방이) 당장은 재밌는 놀이로 여겨지지만 장기적으론 창작자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 “현행법 제도는 (저작권을) 침해하는 쪽에만 유리하다” 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지브리에서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창립자이자 간판 애니메이터인 미야자키 하야오(84) 감독은 과거 AI로 만든 애니메이션에 대해 “역겹고 소름이 끼친다”며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2016년 NHK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AI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까. 작품 자체가 삶에 대한 모독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기술을 내 작품에 접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오픈AI가 저작권 논란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인도 방송사 NDTV 등을 운영하는 아다니그룹은 지난 1월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오픈AI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존 그리셤, 데이비드 발다치, 마이클 코널리 등 유명 소설가들도 지난해 10월 오픈AI의 챗GPT가 훈련 과정에서 자신의 저작물을 무단 이용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미 뉴욕 연방지법은 최근 뉴욕타임스가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기각해달라는 오픈AI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26일 현지 매체 데드라인이 보도했다.



데이터를 분석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글과 사진 등 새 콘텐츠를 생성해내는 AI 모델을 말한다. 

기존 AI가 데이터를 학습해 대상을 모방했다면, 생성형 AI는 학습한 것을 토대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250328)


 

 

 

‘일상에서 우울감을 경험하는 국민이 매년 늘어 두 명 중 한 명은 우울감을 겪은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이 강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어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길 꺼리거나 정신건강의학과를 기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본지와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의 정신 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우울감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앞서 서울대가 진행했던 조사에서 11.5%(2018년), 26.2%(2021년)였으나 올해는 49.9%로 늘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자해를 하려는 생각을 한다’는 응답도 2018년에는 한 자릿수(4.6%)였는데 올해는 22.2%로 급증했다.

 

 




그러나 우울감이나 정신 건강 악화를 느낄 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참는 편’이란 답은 88.3%에 달했다. 
네 명 중 한 명(25.7%)은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증인 우울증을 방치하고 의료진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피하다 보면 중증 질환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윤영호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장(가정의학과 교수)은 “국민의 정신 건강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로 보고 정부, 기업, 학교 등이 ‘원 팀’으로 함께 해결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강모(26)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약 5년 동안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우울과 불안 등의 증상에 시달렸지만 병원에 한 번도 간 적 없다. 
강씨는 “마음이 힘들었지만 정신과 병·의원은 심각한 질환을 앓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며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 왠지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국민의 전반적인 정신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꺼리는 등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와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설문 조사에서 ‘정신 건강이 악화되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거나 약물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답이 71.5%에 달했다.


정신적 문제를 알렸다가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거나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큰 탓이다. 
응답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기록이 있으면 취업 및 사회생활에 불이익이 있다”(88.7%), “정신질환에 걸리면 몇몇 친구는 나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69.4%)라고 답했다. 
겉으로 드러나 적극적 치료를 받는 신체 질환과 달리 정신 질환은 ‘숨겨야 하는 병’으로 여기는 것이다.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22.2%), ‘직장 스트레스’(20.6%), ‘대인 관계’(12.7%), ‘취업·결혼·노후를 비롯한 미래 불안’(12.6%) 등 누구나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일들이었다.

 

 




정신 건강에 대한 낙인과 편견은 음지에서 질환을 키워가는 ‘그림자 환자’를 낳고 있다. 
로스쿨생 오모(27)씨는 “학업 스트레스로 정신과에서 한 번 상담을 받아봤지만 이후론 가지 않았다”며 “정신과에 다닌 사실이 알려지면 나중에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과 기록은 환자 본인만 열람할 수 있다. 제3자에 대한 정보 제공도 범죄 피의자 진료 기록 확인 등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한다. 
채용이나 임용, 승진, 대학 진학 등을 이유로는 건강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임신부 A씨는 “항상 기운이 없고 지쳐 산전 우울증 증세인가 했지만 처음엔 남편한테 말하기도 미안했다”며 “결국 정신과를 찾았지만 시댁과 친정에는 이런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장원석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부회장은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치료가 필요한 소아·청소년 중에도 친구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약을 안 먹는 경우가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보다는 낮아졌지만 꾸준한 치료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정신과 약물 치료에 대한 근거 없는 우려도 여전하다. 
직장인 김모(30)씨는 불안·공황 증세를 느껴 지난 1월 정신과에서 항우울제와 긴장을 낮춰주는 약물을 처방받았지만 일주일 뒤 복용을 중단했다. 
의료진은 “우울증 약을 꾸준히 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했지만, 김씨는 “우울증 약을 먹으면 뭔가 몽롱해지고 행동이 느려져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정신 건강 치료를 꺼리는 이유로는 비용에 대한 우려와 정보 부족도 적지 않았다. 
본지·서울대 조사에서 정신 건강과 관련해 외부 도움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호전될 것으로 생각’(45%·이하 복수 응답)이란 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비용 부담’(28.4%), ‘적절한 상담 기관을 몰라서’(19.6%) 등이었다. 
정부나 기업에 원하는 정신 건강 서비스로는 ‘무료 심리 상담’(73.8%), ‘정신 건강 교육’(45%), ‘직장 내 지원’(35.3%) 등이 꼽혔다. 
윤영호 서울대 교수는 “신체가 아프면 곧바로 병원을 찾듯이 정신 건강도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며 “정부, 지자체, 기업, 학교 등이 다 함께 정신 건강을 위한 환경 조성에 나서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250328)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는 4만2975㎡(약 1만3000평) 규모의 ‘동물 요양원’이 있다. 
늙거나 부상당해 거동조차 어려운 호랑이와 하이에나 등 맹수는 물론 산양과 공작새, 거북이 등 온갖 동물 1000여 마리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쌍둥이 동물 농장’의 사장 남우성(34)씨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이들을 먹이고 돌본다. 
아버지(69)가 사슴·소 몇 마리를 가지고 와 시작한 조그만 농장이 소문을 탔고, 전국에서 보기 흉하다며 외면당한 동물이 모여들어 이렇게 커졌다.

 

 

<강원도 강릉시에서 ‘쌍둥이 동물 농장’을 운영하는 남우성씨가 전국을 돌면서 거둔 다치고 병든 동물들. 
맨 왼쪽부터 대퇴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여덟 살 호랑이 ‘루시’. 또래에 비해 덩치가 왜소하다.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은 뒤 ‘보기 흉하다’는 관람객 민원에 경기 일산의 한 동물원 골방에 방치됐던 과나코. 맨 오른쪽은 어미에게 버림받은 뒤 2023년 경기 가평의 동물원에서 온 암·수사자 한 쌍의 모습.>

 


남씨는 20대 중반이었던 2016년 아버지와 이곳을 열었다. 
배우 꿈을 꾸면서 서울의 한 대학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지만, 9년 전 다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40여 년 전 아버지는 몸이 편찮은 어머니를 위해 녹용을 먹이겠다며 농장 옆 남는 터에 사슴 몇 마리를 키웠다. 
녹용을 먹고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가 쌍둥이 형제를 낳았다. 
이후 아버지는 ‘동물들을 보면 좋다’며 유기 동물들을 돌보기 위한 땅을 더 사들였다. 
농장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온 동네 가축이 남씨 농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남씨는 “놀러 온 아이들이 동물들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참 좋다”는 아버지 말에 결국 농장을 함께 운영하기로 결심하고 대학도 자퇴했다.

 

 


<지난 6일 오후 강릉 쌍둥이 동물 농장 실내 방사장에서 남우성씨가 유기견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

 


지난 6일 찾은 이 농장 한쪽에선 호랑이 ‘루시’(8세 암컷)가 뒷다리를 절룩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루시는 대구의 한 동물원에서 대퇴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구석에서 방치돼 천덕꾸러기 취급만 받았지만 남씨가 거둬들여 이 농장으로 왔다. 유일하게 동물원에서 이름이 붙은 동물이다. 
남씨는 “처음엔 동물들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는데, 사람과 동물의 수명이 같지 않으니 아프거나 죽음을 맞이했을 때 감정적 충격도 컸다”며 “가급적 동물에게 이름을 안 붙이려고 한다”고 했다.


경기 일산에서 데려온 과나코(6세 암컷)는 한쪽 눈이 없다. 눈이 아파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은 뒤 ‘무섭다’는 민원이 쏟아졌고, 창고에 숨어 지냈다. 
2023년 가평에서 데려온 세 살 암·수사자 남매도 있다. 남씨는 “(발견 당시) 비정한 어미에게 얻어맞아 눈 주위가 띵띵 부어 있었다”고 했다. 
경영난으로 폐업한 경남 부경동물원에서 구조된 열아홉 살짜리 암컷 백호도 이 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발견 당시엔 굶고 야위어 뼈가 다 드러났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했다. 
인간 나이로 따지면 아흔 살이 넘는 백호는 편안한 모습으로 졸고 있었다. 
남씨는 지금도 아버지와 전국 동물원을 돌면서 버려진 동물들을 거두고 있다.


전국에 버려진 반려동물들도 남씨 농장으로 모이고 있다. 
강아지·고양이는 물론 햄스터, 앵무새, 미어캣, 사막여우도 있다. 
전국에서 남씨 농장을 찾아 유기하는 경우도 많다. 남씨는 “직접 키우던 아이(반려동물)들이 아프기 시작하면 밤에 몰래 (농장 인근) 수풀에 버리고 가는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라며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고 했다.


입장료 9000원을 받지만 농장 운영은 쉽지 않다. 
남씨는 “날씨가 궂을 때는 관람객이 거의 없다”며 “사료 값을 충당하려고 아버지와 농사도 짓고 있다”고 했다. 
그는 ‘1호 동물 실버타운’을 꿈꾼다고 했다. “건강한 동물만 보여주는 동물원이 아니라, 아픈 동물도 함께 사는 곳이면 좋겠다”며 “병들었다고 생명에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늙고 병든 동물들이 여생을 편히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외딴 시골에서 동물원을 운영하기가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남씨는 “강릉 오지에서 동물원 한번 가려면 서울까지 1박 2일이 걸렸다”며 “강원도 인근에서 온 아이들이 동물들을 보고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볼 때는 힘든 것도 다 잊어버린다”고 했다.(250328)



 

 

 

충남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 광명초는 25일 오전 전교생 13명과 교직원 8명이 모여 ‘귀빈’ 조단(7)군을 맞았다. 최근 이 동네로 이사 온 조군이 광명초로 전학을 오며 유일했던 1학년 고유림(7)양의 동급생 친구가 됐다. 
유림양의 책걸상만 덩그러니 놓였던 1학년 교실은 조군이 새로 오며 활기를 찾았다. 
고양은 “함께 공부할 친구가 생겨 기쁘다”고 했다. 
학교는 이날 입학한 조군에게 입학 장학금 300만원을 전달했다. 고양도 지난 4일 입학 때 같은 장학금을 받았다.


이 학교 교직원과 지역 주민들에게는 고양과 조군의 입학이 단비 같은 소식이다. 
1937년 설립된 광명초는 90년 가까이 원산도 지역사회와 함께해 왔다. 
육지와 해저 터널로 연결돼 있고 주민도 1000명이 넘지만 이 학교 전교생은 15명에 불과하다. 
신입생을 유치하지 못하면 이 지역 유일 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사회와 동문회가 발 벗고 나서 3000만원을 모았다. 
이것으로 1인당 300만원씩 ‘입학 장학금’을 신설했다. ‘영어 특성화’ 교육을 내세우며 원어민 화상 영어 교육도 도입했다.

 

 




광명초는 인근 지역에 이런 혜택들을 적은 현수막 수십 장을 내걸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우연히 이 현수막을 본 고양 가족이 작년 오천면으로 이사를 온 데 이어 조군까지 전학 오는 성과를 냈다. 
송봉석 광명초 교장은 “초등학생은 장거리 통학이 어렵기 때문에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다는 건 더는 젊은 인구 유입이 안 된다는 의미”라며 “주민 입장에선 초등학교 폐교 여부가 지역의 앞날을 결정하는 일인 만큼 학생 유치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역사회가 십시일반 입학 장학금을 만드는 등 초등학생 유치전에 뛰어든 학교가 많아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2025학년도 초등학교 입학 아동은 35만6258명으로 10년 전보다 21.8%(9만9421명) 감소했다. 
올해 폐교 예정인 초중고는 49곳으로, 작년 33곳보다 16곳 늘었다. 
초등학교 폐교가 사실상 지역사회의 존망과 연결된 만큼 파격적인 입학 혜택을 내세우는 학교가 생겨나는 것이다.


전남 장성군 북이초도 올해 입학생 5명에게 장학금을 200만원씩 줬다. 
이 학교는 원래 올해 입학 예정자가 0명이었다. 가뜩이나 학생이 줄어 전교생이 35명밖에 안 됐는데 올해 아예 입학생이 없으면 폐교 위기에 내몰리는 것이다. 
이에 학교가 작년 말 ‘폐교 위기 대응팀’을 꾸려 대책 마련에 나섰고, 이 소식을 들은 총동문회가 1000만원을 모아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학교는 입학 장학금에다 ‘인라인 스케이트 1대 무료’ ‘방과 후 활동 전액 무료’ 등 각종 혜택도 주기로 했다. 

교직원들이 인근 주민들을 찾아가 열심히 홍보한 결과, 올해 5명이 입학하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민문순 북이초 교장은 “큰돈은 아니지만 부모님들이 아이 언어 치료도 하고 해외여행 기회도 준다고 하는 등 의미 있게 쓰려고 하더라”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입학 장학금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충남 서천군 지역 주민들도 한산초를 살리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올해 입학생 2명에게 1인당 330만원의 장학금을 줬다. 총동문회 200만원, 장학회 100만원, 지역 후원회 100만원, 지역 교회 60만원씩 쾌척한 덕분이다.


입학 장학금 외에도 다른 학교와 차별화되는 특별 활동을 내걸며 학생 유치에 나선 학교도 많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일초는 전교생 33명에게 승마 교육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작년 학교 안에 20m짜리 승마 트랙을 만들었다. 
충북 진천군 구정초는 교내에 골프 연습장을 만들어 전교생에게 골프 수업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학령인구 감소 추세를 견뎌내기 어려운 곳이 많다. 
충북 옥천군 군서초는 입학생이나 전학생에게 장학금 50만원을 주겠다고 했지만, 올해 입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개교 10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현재 전교생 31명인 충북 괴산군 감물초도 올해 입학 장학금 100만원을 신설하며 홍보 총력전에 나섰지만 입학생이 1명에 그쳤다.


교육계에서는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과 학교 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훈호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장거리 통학이 가능한 5~6학년 때는 규모가 있는 학교로 전학해 또래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250327)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매진 사례’가 이어지는 건 입장권만이 아니다. 
유통 기업 SPC삼립은 지난 20일 KBO(한국야구위원회)와 협업을 통해 출시한 ‘크보(KBO)빵’이 판매 사흘 만에 100만봉이 팔렸다고 23일 밝혔다. 
SPC삼립이 역대 출시한 제품 중 최단 기간 100만봉 돌파다.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크보빵>

 


크보빵은 지난해 역대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돌파하는 등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프로야구 구단들 특징을 담아 빵으로 구현한 제품이다. 
‘호랑이 초코롤’(KIA), ‘라이온즈 페스츄리’(삼성), ‘이글이글 핫투움바 브레드’(한화) 등 구단마다 빵 맛이 모두 다르게 정해져 있는 식이다. 
빵 봉지 안에는 구단 대표 선수·마스코트 등이 그려진 띠부씰(스티커)도 무작위로 들어 있어, 팬들은 원하는 선수 띠부씰을 획득하려 편의점 오픈런을 하고 빵을 수십 봉씩 사기도 한다. 이미 일부 편의점에서는 크보빵 품절 대란이 일고 있다. 
KT 고영표 등 현역 선수들도 “우리 팀 빵이 다 팔리고 없다” 등 크보빵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팬끼리 띠부씰 교환도 한다. 
소셜미디어 등에는 “삼성 선수들 띠부씰 있는데 한화 선수들과 교환하실 분” “KIA 김도영 있는데 SSG 박성한과 교환 원해요” 등 띠부씰 교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인기 선수의 띠부씰은 1만원 아래 가격에 중고 거래되기도 한다.


야구 팬들의 소소한 ‘빵 축제’지만 롯데 팬들은 울상이다. 
이번 크보빵은 롯데가 빠진 채 9개 구단으로만 제작됐기 때문이다. 
롯데 계열사인 롯데웰푸드가 제빵 사업을 해 경쟁 기업인 SPC삼립 제품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는 웅진식품이 지난 21일 출시한 ‘하늘보리 KBO 에디션’에서도 빠졌다. 롯데는 계열사 롯데칠성음료가 음료 사업을 한다. 
롯데 팬들은 “롯데도 알아서 빵을 내놓든지 하라. 다들 재밌게 즐기는데 우리만 뭐냐” “롯데만 크보에서 왕따당하는 기분” “KBO가 롯데랑 협업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등 아쉽다는 반응이다.(250324)



 

 

 

우리나라 숙취 해소제 제조사 절반 이상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요구한 ‘숙취 효능 시험’을 포기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효능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내에서도 “시중에 판매되는 숙취 해소제 절반 이상이 효과가 없는 ‘맹물 음료’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란 말이 돈다. 
정부 점검이 끝나는 올 6월까지 ‘효과 없음’ 판정을 받는 숙취 해소제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24일 식약처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 우리나라 숙취 해소제 제품은 177개였다. 
해소제는 음료 형태가 가장 많았고 젤리와 환(둥근 약)도 있었다. 
식약처는 올해 초 국내 숙취 해소제 제조사에 “각사의 숙취 해소제가 사람에게 실제 효과가 있는지를 시험한 ‘인체 적용 시험 결과’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시험 결과를 내지 않으면 향후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제품에 쓰지 못한다고 공지했다.

 

 




그런데 올 3월 기준, 인체 적용 시험에 응한 숙취 해소제 제품 수는 81개였다. 나머지 96개 제품(전체 54%)은 시험을 포기했다. 
식약처는 이 96개 제품을 만드는 회사 대부분을 현장 방문했고 업체들로부터 “앞으로 숙취 해소제를 만들 의향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 관계자는 “시험 결과를 내라는 식약처의 통보만으로 절반 이상의 숙취 해소제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 것”이라며 “효능에 자신이 있었다면 왜 시험을 거부했겠느냐”고 했다. 
시중의 숙취 해소제 절반이 사실상 ‘맹물 음료’였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현재 시험을 포기한 상품에 대해선 ‘숙취 해소제’ 라벨을 떼어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편의점·약국에서 많이 파는 메이저 숙취 해소제인 ‘컨디션’ ‘여명’ ‘모닝케어’ ‘상쾌환’ ‘레디큐’ 등은 인체 적용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정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체 적용 시험에 응한 81개 숙취 해소제 중에서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효능이 입증된 제품에 한해서만 계속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인체 적용 시험은 전국 19개 종합 병원에서 이뤄졌다. 
식약처의 권고 규정에 따르면, 각 제조사는 20~40대 남녀 시험 참가자를 저녁에 병원으로 모은 뒤 저녁을 제공해야 한다. 
저녁 식사 2시간 뒤에 자사 숙취 해소제를 섭취하게 하고 알코올 90g(소주 한 병 반)을 30분 안에 마시게 한다. 
이 시간에 안주는 새우깡 20개 정도로 최소한만 허용한다. 첫 잔을 마시고 난 뒤 바로 채혈을 하고, 이후 15시간이 지난 시점까지 총 8차례 채혈을 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와 아세트알데히드(숙취 유발 성분) 농도가 유의미하게 떨어졌을 경우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술이 센 ‘20대 남성’ 위주로 시험을 하거나 술은 적게, 물은 많이 먹게 하는 등의 꼼수를 쓴 사실이 적발되면 마찬가지로 숙취 해소제라는 문구를 박탈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오는 6월까지 81개 제품에 대한 인체 시험 결과서를 모두 검토해 적합 여부 판정을 내릴 계획”이라고 했다. 
추가로 탈락하는 ‘맹물 해소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탈락한 업체가 숙취 해소제라는 말 대신 ‘숙취 해결’ ‘숙취엔 ΟΟΟ(상품명)’라는 비슷한 말을 쓰는 것도 단속할 방침이다.


2023년 국내 숙취 해소제 판매액은 3473억원으로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2년 전인 2021년(2243억원)에 비해선 1200억원 늘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는 숙취 해소제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식약처는 지난 2020년 과학적 근거를 갖춰야만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후 4년 남짓한 유예 기간을 준 뒤 올 하반기부터는 숙취 해소제라는 광고 문구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250325)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영외고 앞 도로에 생긴 가로 18m, 세로 20m, 깊이 18m 규모 대형 싱크홀(땅 꺼짐 현상)에 매몰됐던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34)씨가 25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싱크홀로 생긴 지반 침하 공간은 약 6500㎥로, 최근 5년간 발생한 싱크홀 중 둘째로 크다.


전문가들은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만들어진 상·하수도 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의 시설 노후화 문제가 심각해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발밑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본지가 서울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도로 구간 6863km(보도·차도 181개 노선) 중 26.95%(약 1850km)가 지반 침하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반 약화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집중호우가 본격적으로 내리는 장마철도 아닌 봄에 대형 싱크홀 사고가 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강동구 명일초등학교 인근 도로에서 전날 발생한 싱크홀(땅 꺼짐) 사고 현장 모습.>

 


소방 당국은 싱크홀 사고가 난 지 18시간 만인 이날 오후 12시 36분 박씨를 수습했다. 
박씨가 발견된 곳은 싱크홀 하부, 지하철 9호선 공사장 터널 구간 바닥 부근으로, 싱크홀 중심에서 왼쪽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추락 직전 입고 있던 복장과 헬멧, 바이크 장화를 착용한 모습 그대로였다. 
소방 당국은 앞서 이날 오전 1시 37분쯤 싱크홀 아래 지하철 9호선 지하 터널 공사장에서 박씨의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이어 2시간 후인 오전 3시 30분에는 싱크홀 하부에 쌓인 토사 근처에서 번호판이 떨어진 오토바이도 발견했다.

 

 




소방은 싱크홀에 매몰됐던 박씨를 구조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6480t에 달하는 토사가 물과 섞여 진흙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로 싱크홀 하단을 막았기 때문이다. 
구조대원들은 잠수복을 입고 손으로 토사 수천 톤을 퍼내며 수색을 진행했지만, 싱크홀 인근 상단에 균열이 발견되고 약해진 지반으로 추가 붕괴 우려도 있어 한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다. 
소방 당국이 포클레인 2대와 구조대원 17명 등을 투입해 밤샘 배수 작업을 진행한 결과, 이날 오전 박씨를 발견했다. 
박씨는 대기 중이던 앰뷸런스로 옮겨져 인근 강동 중앙보훈병원으로 이송됐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싱크홀로 추락하는 오토바이 운전자 - 지난 24일 오후 6시 29분쯤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도로에 발생한 싱크홀에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씨가 추락하고 있는 모습.>

 


지인들에 따르면 2018년 부친을 사고로 잃은 박씨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먹여 살리겠다며 가장 역할을 도맡았다고 한다. 
낮에는 광고 회사에 다니고 퇴근하면 부업으로 배달 일을 했다. 박씨는 이날도 부업으로 배달하던 중 변을 당했다. 구조 작업을 기다리던 박씨 모친은 현장을 떠나는 앰뷸런스 뒤편에서 “우리 애기 엄마가 깨워줘야 해” “내 새끼 데려가야 돼”라며 통곡했다.


이번 사고는 상·하수도나 가스·통신 등 지하 매설물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수관의 부식으로 만들어진 구멍으로 물이 새면서 하수관 주변 흙을 쓸고 지나가면, 땅속 동공(洞空·땅속 빈 구멍)이 조금씩 커지게 된다. 
이 동공이 지상 충격 등으로 무너져 내릴 때 싱크홀이 발생한다. 
국토교통부의 ‘전국 땅 꺼짐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6년간 전국에서 1060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는데, 원인으로는 상·하수도 손상이 542건(51.1%)으로 가장 많았다.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싱크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싱크홀 중심부는 지하철 공사장 입구에서 불과 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공사 현장 인근엔 상·하수관, 통신선, 가스관, 송전선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이재혁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장은 “지하철 공사와 싱크홀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강동경찰서는 싱크홀 발생 원인과 9호선 연장 공사 과정에서 건설사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반에 레이더를 쏴 지하 내부를 파악하는 GPR(지표 투과 레이더)이라는 기술로 서울 전역의 싱크홀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 기술로 서울시가 훑는 구간만 연간 7200㎞에 달한다. 그러나 서울시가 운용하는 현행 GPR 레이더로는 지하 2~3m 깊이의 싱크홀만 찾을 수 있어, 이번 사건처럼 더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탐지하기가 어렵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시민들의 생명을 정말로 위협하는 싱크홀은 현 GPR 기술로는 탐지하기가 어렵다”며 “예산을 더 투입해 더 깊은 지하까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250326)


 

 

 

45세에 세계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탈환했던 복싱 전설 조지 포먼(76)이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미국 휴스턴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아버지는 친부가 아니었고, 빈민가에서 문제아로 자랐다. 스스로도 “폭력적 성향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절도를 하고 경찰에 쫓기던 중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번민했고, 우연히 “당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라는 직업 학교 광고를 보곤 진로를 정했다. 

직업학교에서 만난 복싱 코치(닥 브로더스) 권유(“그렇게 주먹을 잘 쓰면 복싱을 해보는 건 어떠니?”)로 운명적으로 글러브를 끼었다.

 

 

<조지 포먼이 1974년 10월 29일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 전날 계체량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크게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정글의 난투(Rumble in the Jungle)’. 1974년 자이르(현 콩고)에서 무하마드 알리(당시 32세)와 맞붙었던 경기다. 

포먼은 197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를 6번이나 다운시키며 벨트를 빼앗은 후 무적(40승 무패 37 KO승)을 구가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포먼이 이길 것이라 점쳤고, 혹시 알리가 맞다가 죽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전 세계 5000만명이 시청했던 세기의 대결.

 

 

<조지 포먼(오른쪽)이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나란히 주먹을 겨누고 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는 워낙 치열해 ‘정글의 난투’라 불렸다. 포먼은 8라운드에서 알리에게 인생 유일한 KO패를 당했다.>

 


알리는 날렵한 몸놀림과 로프 반동(Rope-a-dope)을 활용해 포먼 강펀치를 피하면서 체력을 소모시켰다. 

라운드가 지날수록 힘이 떨어진 포먼. 알리는 8라운드에 집중타를 날려 포먼을 링 위에 눕혔다. 

포먼 선수 생활에서 유일한 KO패. 경기 후 포먼은 “주심이 카운트를 빨리 셌다” “주심이 뇌물을 받았다” 등 근거 없는 항변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그는 “그냥 알리가 더 강했다고 했어야 하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경기 이야기는 나중에 다큐멘터리(When We Were Kings)로 만들어져 1996년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두 번째는 은퇴와 귀의(歸依). 알리와 재경기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는 1977년 지미 영에게 의외의 판정패를 당하자 28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포먼은 이 경기 후 스트레스성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임사(臨死) 체험을 통해 종교에 귀의했다. 

깨어난 포먼은 “다시 태어났어!”라고 외친 다음, 고향(휴스턴)에 교회를 세우고 목사로 일하면서 1984년 지역 사회를 위해 ‘조지 포먼 청소년 센터’도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이 이상해졌다’면서 걱정했다. ‘두 번째 조지(No.2 George)’라는 별명도 생겼다.


세 번째는 다시 찾은 챔피언 벨트. 1987년 그는 38세에 링으로 돌아왔다. 권투가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자선 활동 등에 돈이 필요하다는 속사정도 있었다. 

복귀 후 24연승을 거두고 42세에 당시 세계 챔피언 이밴더 홀리필드에게 도전했으나 판정패(12라운드). 45세였던 1994년 26세 마이클 무어러를 상대로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 경기에서 10라운드로 접어들 때까지 포먼은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던 순간, 포먼의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연달아 작렬하면서 극적인 역전 KO승을 거뒀다.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헤비급 챔피언이란 영예도 챙겼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1995년 챔피언 자리를 포기하고 두 번째 은퇴를 했다. 46세 169일이었다. 

1997년 본인 이름을 딴 ‘조지 포먼 그릴’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상표권을 1억3750만달러에 팔았다.

 

 

<45세이던 조지 포먼(빨간 글러브)이 1994년 11월 WBA-IBF 헤비급 통합 챔피언전에서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당시 26세)를 10라운드에 KO로 쓰러뜨린 뒤 승리를 선언받던 순간. 그는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 오늘밤 나를 보라”라고 말했다.>



포먼은 생애 초반엔 천부적 펀치력을 지닌 복서로 주목받았지만 나중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는 개척자로 인상을 심었다. 

“본성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알아냈어요. 어떤 사람이 될 건지는 스스로 선택한다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필생의 숙적인 알리와는 원수에서 친구로 변했다. “한때 알리를 거의 증오했어요. 복수하고 싶었죠. 하지만 친구가 됐고 아직도 그를 사랑합니다.” 

포먼(76승 5패)은 알리(56승 5패)보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고 더 위대한 전적(영국 BBC)을 남겼다. 알리는 이슬람교 신자였고, 포먼은 기독교 신자였지만,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포먼은 12명 자녀, 알리는 9명을 뒀으며 둘은 신앙에서 아버지로서 삶까지 많은 것을 얘기하면서 친해졌다. 

2016년 알리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먼은 장례식에 운구자로 참석했다. “우린 1974년 싸웠고 1981년 가장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이번 생애에 알리보다 더 가까운 사람은 없습니다.”(250324)

 

 

 

직장인 신모(36)씨는 이달 말 부과될 ‘2월분 아파트 관리비’가 얼마나 오를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겨울 관리비를 아끼려고 난방 시간을 줄이는 등의 노력을 했는데도 1월 관리비가 한 달 전보다 3만원가량 더 나와 30만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난방비 외에 전기료, 수도료가 모두 올랐고 청소비와 소독비, 심지어 승강기 유지비까지 인상됐다”며 “각종 생활 물가 인상으로 살림살이가 어렵다지만, 아파트 관리비만큼 많이 오른 것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국내 아파트 관리비가 일반 물가보다 2배 정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아파트 약 1200만 가구의 관리비 데이터를 보유한 관리비 고지·결제 대행 업체 ‘아파트아이’가 지난 10년간의 아파트 관리비를 조사한 결과, 전용면적 1㎡당 월평균 관리비는 2015년 2065원에서 지난해 2895원으로 40.2% 올랐다. 
같은 기간 정부가 집계한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20.3%)의 2배 수준이다. 
‘국민 평형’이라 불리는 전용면적 84㎡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가족이 지난해 1년간 낸 평균 관리비는 291만8000원으로 2015년(208만1000원)과 비교해 80만원 넘게 늘었다.

 

 




아파트 관리비를 구성하는 항목들이 최근 수년간 국내외 경제 상황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이슈가 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청소비와 경비비 등은 인건비 급등, 전기료와 난방비는 에너지 비용 증가 때문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각종 원자재비 상승으로 건설 공사비가 급등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아파트 관리비는 물가 인상의 ‘종합 세트’”라는 말도 나온다.


아파트아이 분석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전체 가구가 나눠 내는 공용 관리비 항목이 10년 간 41.9% 올랐다. 
청소·경비·미화·소독 같은 비용으로 최저임금을 포함해 인건비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항목들이다. 
지난 10년간 최저임금이 한 번도 내리지 않은 것처럼 공용 관리비도 꾸준히 우상향했다.

 

 




난방비, 전기료, 수도료 같은 개별 관리비는 10년간 29.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비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소폭 줄어들었지만, 최근 다시 오르는 추세다. 
비용 인상 요인에도 여론 눈치만 보면서 동결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전기료·가스비 등을 조정한 것이 아파트 관리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5년만 따지면 전기료는 47%, 난방비는 29% 급등해 갈수록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파트 시설을 수리하고 교체하는 데 쓰는 장기수선충당금은 10년 사이 무려 114.6% 뛰어 2배 이상이 됐다. 
수리에 필요한 원자재 비용이 올랐고, 인건비 영향도 있었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아파트가 노후화되는 데 따라서 유지·보수 수요도 늘어나는 게 장기수선충당금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별로는 세종시가 10년 전과 비교해 관리비가 67% 뛰어 인상 폭이 가장 컸다. 
전용 84㎡ 기준 연간 관리비가 140만원 가깝게 오른 셈이다. 
세종시 아파트 관리비가 유독 많이 오른 배경에 대해 아파트아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새로 공급된 아파트가 많고, 지역 난방 이용률도 다른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지난해 요금을 9.5% 인상한 바 있다. 
세종시 외에 관리비가 많이 오른 지역은 경북으로 63%였다. 가장 덜 오른 지역은 대구(32%)였고, 다음은 대전(33%), 울산·전북(36%) 순이었다.


시기별로는 9월 아파트 관리비가 10년 새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당 관리비가 2015년 1847원에서 작년 3015원으로 63% 뛰었다. 
기후변화로 여름철이 길어지면서 9월에도 에어컨을 사용하는 집이 많아진 영향이다. 
8월이 57%, 7월은 51% 오른 것도 에어컨 사용에 따른 전기료 상승이 관리비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250324)


 

 

 

일본 법무성이 이달부터 ‘독신증명서’를 본적지 아닌 거주지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혼인 감소로 고민하는 일본 정부가 ‘곤카쓰(구혼 활동)’를 지원하기 위해 꺼낸 카드다. 
한국에서는 낯선 ‘독신증명서’는 어디에 쓰는 것일까.


일본의 독신증명서는 말 그대로 ‘신청자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라는 사실을 공식 인증하는 문서다. 
성명과 생년월일, 본적지와 함께 ‘신청자가 민법 제732조(중혼의 금지)에 저촉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다른 나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공문서다. 
대부분 국가에는 한국의 가족관계증명서처럼 혼인 여부가 포함된 공문서가 있을 뿐, 미혼을 증명하는 별도의 공문서는 흔치 않다.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市)가 발행하는 '독신증명서'의 이미지>

 


요미우리신문은 “독신증명서 수요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며 “곤카쓰를 위해 결혼 정보 회사나 매칭 앱에 등록할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대형 결혼 정보 회사가 매년 수만 명 회원의 독신증명서를 받고, 요즘엔 매칭 앱에서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국 미혼율 1위인 도쿄도가 작년 내놓은 매칭 앱 ‘도쿄 엔무스비’는 독신증명서가 없으면 회원 등록이 안 된다.


일본에선 신혼부부 5쌍 가운데 1쌍이 매칭 앱에서 만나 결혼할 정도로 매칭 앱이 보편화됐다. 
그런데 매칭 앱에서는 기혼자가 미혼을 사칭하기도 하고 ‘로맨스 사기’도 벌어진다. 
일부 앱에서는 의도적으로 불륜을 조장하거나, 금전 거래가 오가는 불법 성매매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도쿄 엔무스비’처럼 결혼을 전제로 미혼 남녀의 만남을 돕는 앱은 독신증명서라는 공문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연애 감정을 악용해 금전을 갈취하는 로맨스 사기도 급증해 작년 피해액은 전년보다 100% 이상 증가한 397억엔(약 3900억원)에 달했다. 
그러자 독신증명서 없이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심리가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것이다.


독신증명서를 떼려면 지금까지는 본적지가 있는 고향에 직접 찾아가거나, 우편으로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정보 회사와 같은 민간 기업이 대신 발급받는 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제 집 근처 구청·시청에서 간편하게 증명서를 뗄 수 있게 됐으니 ‘곤카쓰’가 수월해지는 셈이다. 
다만 창구에서 반드시 ‘증명서 떼는 이유’를 물어볼 테니, 그리 유쾌하지 않은 문답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250322)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파리협약에서 세운 ‘1.5도 마지노선’이 결국 무너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9일 “2024년은 산업화 이전 대비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2도 밑으로 유지하며,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그런데 불과 9년 만에 ‘상승 폭 1.5도’라는 제한선이 깨진 것이다.


이날 WMO가 발표한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도가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175년간 지구 평균 기온을 관측한 이래 작년이 최고치”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의 뚜렷한 징후들이 일제히 정점을 찍었다”면서 작년이 가장 더운 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각종 지표들을 소개했다.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의 작년 농도는 지난 80만년 중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바닷속 열에너지 총량을 지칭하는 ‘해양 열량’은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바닷물이 더워지면서 해빙(海氷)이 줄고, 해수면 상승은 빨라졌다. 
북극 해빙의 면적은 지난 18년간 역대 최저치 기록을 매년 새로 썼고, 남극 해빙도 지난 3년간 최저 기록을 경신해 왔다. 
해수면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4.7㎜씩 높아졌다.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2.1㎜ 상승)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WMO는 이런 온난화 추세가 극심한 자연재해를 불러올 위험 신호라고 경고했다. 
다만 셀레스테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장기적인 온난화 억제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 건 아니다”라며 “작년에 나타난 현상은 지구에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파리협약에서 세운 목표는 장기적 추세를 염두에 둔 것이기에 작년 한 해만 보고 목표를 잃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난항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하면서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중 하나인 미국이 지난 1월 파리협약 탈퇴를 재차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집권 때도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중심의 정책을 폈다. 
오는 9월 각국이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발표를 앞둔 가운데, 미국의 탈퇴로 탄소 중립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2030 NDC를 지난 2021년 발표한 데 이어, 올해는 이보다 늘어난 목표치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파리협약에서 정한 ‘진전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NDC를 발표할 때는 목표치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년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현재 공백으로 있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의 정량적 감축 계획도 세워야 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장기 지구 온도 상승 수준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며, 올해 예정된 국가 기후 계획을 통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250320)


 

 

 

“3월 봄날인데 온 산이 단풍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어요. 여기가 소나무 무덤입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에서 만난 이수복(69)씨는 뒷산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절반 넘게 말라 죽으면서 푸른 산이 붉은 산이 됐다. 
이씨는 “불과 1~2년 새 벌어진 참사”라며 “어릴 적부터 봐온 소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의 한 소나무 숲. 소나무재선충병이 번지며 녹색 솔잎이 단풍이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다. 

경북도는 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일대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산 중턱에선 전기톱 소리가 요란했다. 산림청 직원 9명이 갈색으로 변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베어낸 소나무를 1m 크기로 잘라 차곡차곡 쌓은 뒤 살충제를 흠뻑 뿌렸다. 그 위에 천막을 덮어 씌웠다. 
황왕근 영주국유림관리소 산림보호팀장은 “이런 ‘소나무 무덤’이 이 산에만 4000개가 넘는다”며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될 판”이라고 했다.


그동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창궐했던 소나무 재선충병이 최근 경북 북부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안동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41만그루로 집계됐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안동 도산면, 녹전면, 예안면 등 3곳을 ‘방어선’으로 정하고 ‘방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병휘 안동시 산림과장은 “그동안 포항, 울진, 경주 등을 중심으로 번졌던 재선충병이 올해는 안동, 봉화 등 북부 지역까지 올라왔다”며 “자칫 소백산과 태백산을 넘어 재선충병 청정 지역인 강원도까지 확산될까 봐 ‘마지노선’을 치고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일대 야산에서 산림청 관계자들이 죽은 소나무를 모아 훈증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봉화군에선 작년 11월부터 소나무 1만2665그루를 베어냈다. 
봉화군 관계자는 “재선충병 증상을 보이는 소나무가 있으면 선제적으로 반경 1㎞ 안에 있는 소나무를 전부 베어내고 있다”며 “우리도 다 큰 소나무를 잘라내는 게 아깝지만 더 많은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눈 찔끔 감고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재선충은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에 기생하는 1㎜ 크기의 벌레다. 
나무의 수분 통로를 막아 감염된 소나무는 녹색 솔잎이 갈색으로 변한 뒤 결국 고사(枯死)한다. 번식력이 강해 재선충 한 쌍이 20일 뒤엔 20만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치료약이 없어 감염되면 100% 고사한다. 
재선충은 주로 솔수염하늘소를 타고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닌다. 이 때문에 감염된 소나무가 있으면 그 일대 숲의 소나무를 전부 베어 내고 솔수염하늘소와 애벌레를 박멸해야 한다. 
한혜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장은 “2004년 제주도에서 소나무 12그루가 재선충병에 걸렸는데 그 숫자가 10년 만에 4만5800배인 55만그루로 늘어난 적이 있다”며 “감염된 소나무를 완전히 제거해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일본에서 수입한 원목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경남 밀양, 경북 구미·포항·경주 등으로 확산해 2014년엔 218만그루가 고사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방제 작업에 나서 확산세가 꺾이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번지고 있다. 
경북 지역의 피해가 가장 크다. 경북도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지난 14일까지 경북 지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85만그루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39만9000그루)의 2배가 넘는다. 역대 최대다. 지난해 전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89만9000그루였는데 엇비슷한 수준이다.


재선충병이 확산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솔수염하늘소는 보통 5월이 되면 성충이 되는데 날이 따뜻해지며 그 시기가 5~11일 정도 당겨졌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20년 9.8도였던 전국 2~5월 평균 기온은 지난해 10.9도로 상승했다. 
2023년 이후 예산 부족 등 문제로 감염된 소나무를 100% 베어내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재선충병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수종 전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소나무만 있는 산에 다양한 나무를 섞어 심거나 재선충병에 걸리지 않는 참나무 등을 심자는 것이다. 
이주형 영남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재선충병을 먼저 겪은 일본에선 이미 산에서 소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지금 같은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50년 뒤에는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250321)


 

 

 

작년 결혼한 남녀 5쌍 중 1쌍은 피겨 여제 김연아(35)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30) 부부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 커플인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혼인 신고를 한 초혼(初婚) 부부는 17만8734쌍으로, 이 가운데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경우는 19.9%인 3만5616쌍이었다. 
관련 통계가 처음 나온 1990년대엔 이 비율이 8.8%에 그쳤는데 점차 올라 2023년 19.4%까지 올랐고 작년에 역대 최고치를 고쳐 쓴 것이다. 
동갑내기 부부 비율도 16.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피겨 여제 김연아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 부부(사진 왼쪽)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의 결혼이 작년 전체 초혼의 19.9%로 역대 최고 비율을 기록했다. 
배우 공효진과 가수 케빈 오 부부(오른쪽)처럼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초혼 부부도 405쌍에 달했다. >

 


반면 연상남·연하녀 부부 비율은 63.4%로 역대 최저다. 배우자의 나이보다 능력과 외모 등 다른 조건을 중시하는 20·30대 남녀가 늘면서 ‘연상 신랑+연하 신부’라는 오랜 통념이 깨진 결과라는 진단이 나온다. 
결혼 정보 업체 듀오 관계자는 “전문직 등 능력 있는 30대 초·중반 여성을 중심으로 예비 신랑의 나이보다 외모 등 다른 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남성들도 여성의 경제력을 따지는 경우가 늘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자주 맺어지고 있다”고 했다.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길로 접어들던 과거와 달리 맞벌이 부부 형태로 가정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경제력은 결혼 상대를 찾을 때 중시하는 핵심 조건으로 떠올랐다. 
30~3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0년만 해도 48.9%로 절반을 밑돌았는데, 작년 기준 비율은 75.7%로 높아졌다. 
30대 초반 여성 4명 중 3명은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뜻이다.

 

 




남자는 생계를 책임지는 바깥사람, 아내는 살림을 주로 맡는 안사람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2023년 기준 결혼 5년 이내 신혼부부 76만9067쌍 가운데 5.7%인 4만4182쌍은 아내만 일을 하고 남편은 살림 등을 하거나 쉬는 경우였다. 
같은 직장 여성 상사와 결혼하는 남성들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과장(43)은 입사 1년 선배인 여성 차장과 결혼했다. 
차장인 아내에게 회사에선 “차장님”이라고 부르고, 집에선 ‘ΟΟ씨’라고 한다. 
정부세종청사와 정부서울청사 등 관가에서도 여성 선배 공무원이 남성 후배와 ‘썸’을 타다 백년가약을 맺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가연 관계자는 “외모와 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이 늘면서 30대 초·중반 여성의 외모가 과거보다 대체로 젊어지고 있다는 점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어나는 요인”이라고 했다.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면서 초혼 부부의 남녀 나이 차이도 줄어드는 추세다. 
작년 초혼 남성의 평균 연령은 33.86세로 여성(31.55세)보다 2.31세 많다. 1990년만 해도 이 차이가 3.01세에 달했다.


의료 기술 발달로 30대 중·후반 여성의 출산이 늘어난 것도 연상녀·연하남 부부가 증가하는 이유로 꼽힌다. 
35~39세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2023년 43명으로 30년 전(13.5명)의 3.2배가 됐다.


남녀 모두 재혼(再婚)인 결혼은 작년 2만3022건으로 이 가운데 20.6%가 연상녀·연하남이 가정을 꾸린 경우다.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재혼 비율은 이미 2014년 20%를 넘었다. 
배우 공효진(45)과 가수 케빈오(35)처럼 아내가 남편보다 열 살 이상 많은 경우도 초혼 기준 405쌍, 재혼은 231쌍에 달했다.


연상녀·연하남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 
20년 전 세 살 연상 아내와 결혼한 신모(45)씨는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지인들이 아내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부르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편하게 ‘제수씨’나 ‘누님’이라고 한다”고 했다. 
듀오 관계자는 “연하남과 결혼한 여성들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 부각되는 ‘누나’라는 호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성사된 커플의 호칭은 ‘자기’ ‘여보’ ‘ΟΟ씨’ 등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초혼과 재혼을 포함한 지난해 혼인 건수는 22만2412건으로 전년 대비 14.8% 증가했다. 증가율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2차 베이비 붐 세대(1964~1974년생)의 자녀인 ‘2차 에코 붐 세대’인 1990년대 초반생들(1991~1995년 출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적령기(여성의 첫아이 출산 연령은 평균 33세)를 맞은 영향이 컸다.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거리 두기 규제로 결혼을 미루다 2년 전쯤 뒤늦게 부부가 된 ‘엔데믹(풍토병화) 커플’이 아이를 낳기 시작한 점도 한몫했다. 
박현정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30대 초반 인구가 증가한 것과 코로나19로 혼인이 감소했던 기저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혼인이 큰 폭으로 늘었다”며 “혼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대, 혼인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250321)

 

 

 

서울 송파구 보인고 3학년 360명 중 130명은 매주 토요일마다 학교에 나온다. 
이 학교는 주말에 국어·수학 자체 모의고사를 실시하는데, 강제가 아님에도 학생 3분의 1가량이 스스로 학교를 찾는 것이다. 
이 모의고사는 수능과 ‘판박이’다. 교사들이 기출 문제를 참고해 수능 문항 수와 동일하게 시험지를 준비하고, 시험 시간은 물론 종소리까지 실제 수능과 똑같다. 
오양욱 보인고 교감은 “한국 양궁 국가대표가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장을 실제 대회장이랑 똑같이 마련하고 현지어 안내 방송을 트는 것처럼, 우리도 매주 실전 같은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 학부모 사이에서 “수능을 볼 때 덜 긴장할 것 같다” “주말 학원비도 아껴 좋다”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첫해엔 20명 규모로 시작했는데, 작년 100명, 올해 130명 규모로 불어났다.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보인고등학교에서 3학년들이 1학년들에게 학교 생활에 대해 조언해 주고 있다. 

보인고는 선배와 후배들을 멘토·멘티로 묶어줘 후배들이 학교와 공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상업고에서 출발한 보인고(자율형사립고)는 교육계에서 신흥 명문고로 주목받는 학교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2021학년도 9명에서 21명(2022), 23명(2023), 33명(2024)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25학년도엔 38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외대부고(56명), 대원외고(52명) 등에 이어 전국 5위다.


1908년 개교한 보인고의 변신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다른 사립학교처럼 기업이나 사업가가 재단을 맡고 있던 게 아니어서, 2000년대 들어 학교 재정 위기가 심해졌다. 당시 이사장이었던 창립자의 며느리가 현재 보인고 이사장인 김석한(70)씨를 찾아 “죽고 나서 시아버님을 뵐 면목이 없다”며 학교 운영을 부탁했다. 
보인고 출신으로 인조 모피 기업 ‘인성하이텍’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김 이사장은 2004년부터 학교를 맡았다. 
그는 ‘시대가 변했는데 상고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2007년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시켰다.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선 우수한 교사를 선발하는 게 급선무였다. 
김 이사장은 서류, 시험, 강의 시연, 면접 등으로 이어지는 무려 9단계 전형을 거쳐 교사들을 뽑았다. 
김 이사장은 “전국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교사진을 꾸린다는 생각이었다”며 “한 번은 15명 선발에 1250명이 지원했는데, 그때 차에 항상 이력서를 넣어두고 어딜 가든 이력서 검토를 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또 체육관 신축과 본관 건물 수리 등 학교 환경 개선에 총 320억원을 들였다. 보인고는 2011년 자사고로 전환했다.

 

 




김 이사장은 “누군가 ‘기업 경영과 학교 경영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고객 만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며 “학교는 고객인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키면 된다.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사교육비를 덜어주면 된다”고 했다.


학교는 저녁 식사 후 6시 10분부터 9시 30분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데, 단순히 자습만 시키지 않는다. 
개인 연구를 해도 된다. 가령 ‘용수철 탄성 계산하기’ 같은 주제를 정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거나 실험을 한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오양욱 교감은 “선생님들이 아무리 생활기록부를 잘 써주려 해도 결국 아이들이 ‘재료’를 가져와야 한다”며 “학교에 책이랑 실험 기자재들이 다 있으니, 방과 후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공부, 실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인고 1~3학년 총 1100여 명 중 80%는 이런 야간 학습에 자율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두드러지는 대입 실적을 냈음에도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진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인성 교육을 강조해, 신입생이 들어오면 ‘어른에게 밝게 인사하라’고 가르친다. 
지난 17일 김 이사장이 보인고 교정에서 거닐자, 삼삼오오 학생들은 밝은 표정으로 허리를 90도 숙이며 “이사장님 안녕하세요!”라고 외쳤다. 
학교는 또 체력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전교생이 참여하는 반 대항 축구 리그제를 1년 내내 운영한다. 
‘오침 시간’도 학교 특색 중 하나다. 전교생이 오후에 30분 낮잠 자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함을 느끼는 학생이 많으니, 아예 낮잠을 자고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3학년과 신입생 1명씩 조를 짜 ‘멘토링’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1학년은 공부 방법, 학교 적응 노하우, 고민 같은 걸 3학년 선배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날 1학년 강은규(16)군은 3학년 문호준(18)군에게 “하루 7시간 자며 공부하고 있는데 적당한가요?”라고 물었고, 문군은 “개인마다 적당한 수면 시간은 다 다르니 주말에 6시간, 8시간 등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수면 시간을 찾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이런 식으로 신입생의 학교 적응을 도와 전학생을 크게 줄였다. 
5~6년 전엔 한 학년이 들어오면 1년 안에 30명이 전학을 갔지만, 지금은 1~2명 수준이다.(250321)


 

 

 

“탈모 약 복용 중인 군인인데 약이 떨어져 갑니다. 비대면 진료로 약을 배달받을 수 있을까요?” 
최근 한 비대면 진료 앱에 올라온 문의 글이다. 그러나 이 병사는 부대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비대면 진료는 받을 수 있지만, 탈모 약을 배송받을 수는 없었다.


정부가 비대면을 통한 의사 진료 후 원격 약 수령을 벽지, 도서 등 일부 지역에 허용하고 있지만, 약국이 주변에 없는 외진 지역에 위치한 군부대에서는 이런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총 1445명의 군 장병이 이 회사 앱을 통해 2380건의 약 배송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때는 코로나 사태로 정부가 퀵 서비스와 택배를 통한 약 원격 배송을 지역 제한을 두지 않고 허용했던 시기다. 
월평균 125건, 일평균 4건꼴로, 배송 방식은 택배와 퀵 배달이 각각 2021건, 339건이었다.


그러나 2023년 6월 정부는 약 배송은 원칙적으로 금지시켰다. 
정부는 당시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정착시키겠다”면서 섬·벽지 지역과 거동 불편자,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대리·재택 약 수령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닥터나우 집계 결과, 2023년 6월 이후 주변에 약국이나 병원이 없어 ‘오지’에 가까운 군부대에서는 비대면 약 배송 이용 실적이 제로(0)로 떨어졌다.


이는 인구가 적은 소규모 섬들만 비대면 약 배송 가능 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벽지도 일부 지자체의 ‘리’나 ‘길’ 단위로 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군 부대 숫자 자체가 적은 것이다.


앞서 2021년 10월~2023년 5월 군 장병들의 약 배송(2380건) 중 가장 많았던 건 여드름 관련 약(1041건)과 그 밖의 피부과 처방 약(566건), 감기·독감 약(159건), 코로나 약(138건), 탈모 약(88건), 이비인후과 약(73건), 내과 약(46건), 정신건강의학과 약(24건) 등이었다.


현재 진료가 필요한 장병들은 의무대에서 군의관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거나 군의관 승인하에 군 병원을 찾는다. 외출을 허가받고 민간 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복무 중인 한 병사는 “경미한 감기나 피부 약, 탈모 약 등을 처방받으려고 외출하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장병들이 민간 병의원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받고 약을 배송받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원격 약 배송은 번번이 약사들이 반대하고 정부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확대되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약 배송이 안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뿐이다. 
약사들은 대형 약국으로 약 배송이 쏠려 소규모 약국의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반발한다. 
또 배송 과정에서 의약품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으며, 의약품을 오남용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입장이다.(250319)

 

 

 

“매주 쪽지 시험 범위가 PPT 1000장이 넘는다.”


서울의 한 의대 본과 2학년 휴학 중인 A씨는 본지 통화에서 “의대는 공부량이 방대해서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치를 수도, 졸업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의대 족보는 각 과목의 기출 문제나 주요 필기 내용 10여 년 치를 묶어 놓은 자료를 말한다. 학생들이 만들어 공유한다. 
A씨는 “중간고사 공부 분량은 PPT 자료 수만 쪽인데 족보는 이를 10분의 1 정도로 축약해 준다”며 “족보 없이 혼자만 공부하면 F 학점을 맞고 유급당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이런 족보가 최근 의대생 복귀를 막는 주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족보는 의대 학생회나 동아리 선배들이 관리하는데, 복귀하는 의대생에겐 족보 접근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A씨는 “복귀한 의대생 중에 족보 없이 맨땅에 헤딩식으로 혼자 공부하다 지쳐서 다시 휴학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족보 제공권’을 가진 의대 학생회나 지도부는 의대생의 생살여탈권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은 작년부터 교육부에 “족보 등을 제공하는 ‘의대 교육 지원 센터’를 전국 40개 의대에 설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육부는 작년 10월 “각 의대에 센터 설치를 권고한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설치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가 연락한 의대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족보 없이는 의대 생활을 못 한다”고 했다. 
의대는 한 학기에 공부해야 수업 자료만 수만 쪽에 달할 정도로 다른 과들에 비해서도 공부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기출 문제와 수업의 핵심 내용이 담긴 족보는 의대생에게 중요하다. 
의대에서 족보가 ‘왕족(족보가 왕)’ ‘족생족사(족보에 살고 죽는다)’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족보 제공 배제’는 ‘배신자 낙인’과 함께 의대생의 수업 복귀를 가로막는 양대 장벽으로 통했다. 정부의 ‘족보 센터’ 설치는 이런 족보 문제를 해결해 학생 복귀율을 높이려는 취지다.


비수도권의 한 의대생(본과 2학년)은 본지 통화에서 “중간·기말고사 때 공부해야 할 과목이 1과목당 PPT 자료 1만쪽 정도”라며 “5과목을 들으면 5만쪽을 공부해야 하는데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학교는 이 족보를 (의대) 학생회가 제본 떠서 책으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며 “특히 신입생인 25학번은 이 족보를 못 받을까 봐 무서워서 수업에 못 들어온다고 들었다”고 했다.


의대생들은 “족보 생성에서 제외되는 건 동기, 선후배들에게 차단당하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족보는 의대의 ‘단체 생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의대생(본과 3학년)은 “우리 의대는 모든 학생이 족보를 만드는 ‘족원’으로 활동한다”며 “시험 때가 되면 각자 나눠서 시험 문제를 외운 뒤 끝나면 이를 취합하는 선배 ‘족장’에게 복원한 문제를 보고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의대 족보를 갱신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의대별로 제각각이었다. 
학생회가 하기도 했고, 각 의대 동아리 선배들이 관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의정 갈등을 거치면서 의대 학생회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의대 학생회 지도부가 개별 학생들의 수업 복귀를 막고 단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이 족보를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한양대 의대 TF라는 학생 단체는 작년 5월 학생들에게 수업 집단 거부에 참여하지 않으면 족보를 공유하지 않고, 족보 접근권도 영구 제한하겠다고 압박한 혐의로 교육부에 의해 경찰에 수사 의뢰된 바 있다.


의대생들은 “선후배와 동료들의 눈치, 전공의 선발 때 선배들의 입김 등 복귀를 주저하게 하는 여러 요인이 있고 족보 문제도 그중 하나”라며 “앞으로 교수님들의 시험 문제가 공개되고 이것을 학교가 모아 공유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각 의대가 족보 등을 제공하는 ‘의대 교육 지원 센터’를 설치했는지, 했다면 몇 군데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교육부는 처음부터 이 센터가 의대생들을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며 “설치를 권고한다는 말만 하고 설치 상황은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250320)

☞의대 족보

각 의대의 10여 년 치 기출 문제와 수업 핵심 내용이 담긴 자료.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시험 범위가 방대한 의대 학생에겐 필수 자료다.


 

 

 

국내 프로게임단 한화생명e스포츠가 올해 처음으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국제 대회 ‘퍼스트 스탠드’에서 첫 우승 팀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한화생명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롤파크에서 열린 2025 퍼스트 스탠드 결승전에서 유럽 팀 카르민 코프(KC)를 3 대1로 꺾고 우승컵을 들었다.

 

 


<(왼쪽부터)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한화생명e스포츠 ‘피넛’ 한왕호(27).>

 


퍼스트스탠드는 중국·북미 등 전 세계 5대 리그 우승팀이 모여 개최한 대회다. 
한화생명의 우승은 국내 리그가 세계 최정상임을 증명한 것이다. 
국내 선수의 실력만큼이나 전 세계 엔터·스포츠 업계가 국내 롤 프로리그(LCK)에 놀라는 점은 또 있다. 
고액 연봉을 받는 20대 남자 프로게이머 집단에서 사건·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해외 리그 관계자는 “한국 프로게이머는 단정한 외모에 술·담배도 거의 하지 않고 비속어도 잘 쓰지 않는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MZ세대 남자들의 우상인 프로게이머들은 대부분 10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연습생을 시작해 10대 후반에 데뷔한다. 
현재 1군에서 가장 어린 선수는 2007년생이다. 프로게이머로 성공한다면 20대 초반에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국내 e스포츠 업계에 따르면, 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7억원, S급 선수들의 연봉은 수십억 원대다.


국내 LCK 관계자들은 그 비결로 “10년 넘게 뛰고 있는 고참 3명이 모범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세 선수는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그리고 한화생명 소속으로 퍼스트 스탠드 우승을 한 ‘피넛’ 한왕호(27)다.

 

 

<T1 페이커 이상혁.>

 


e스포츠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5번 우승하며 우상이 된 페이커는 강한 승부욕과 자기 관리로 묵직한 아버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는 프로게이머 중 가장 많은 70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지만, 사치를 하거나 술·담배를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즐겨 읽고, 명상을 한다. 교보문고에 ‘페이커 추천 도서’ 코너가 있을 정도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내 행동이 후배와 팬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후배 선수들이 인터넷 방송에서 비속어를 쓰면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


그의 가족들도 ‘수퍼스타 가족이 보여야 할 모범의 정석’을 보여준다. 
공개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 가족들은 지난해 6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페이커 선수의 ‘전설의 전당’ 행사에도 “부담스럽다”며 불참했다. 대신 집을 후배 동료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이 쉬는 날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화려한 술집이 아닌 페이커의 집”이라며 “10~20대에는 친구나 선배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가장 잘나가는 페이커 선수가 바른 생활을 하다 보니 선수들의 분위기도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2022년 롤드컵 우승으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데프트는 어린 후배들을 다독이는 어머니 같은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한 팀에만 있었던 페이커와 달리 여러 팀을 옮겨 다닌 데프트는 재정이 불안정해 공중분해되는 팀과 성숙하지 못한 코치진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도맡았다.


해외 원정 경기에서 그의 숙소는 한국 선수들의 사랑방이다. 데프트는 외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며 컨디션을 챙겼다. 
코로나 시기에는 갈 곳 없는 후배들이 그의 숙소로 모여들자 4인 금지 원칙에 따라 자신이 집 밖으로 나갔다. 
이런 그의 리더십에 지난해 11월 군 입대를 앞두고 열린 송별회에는 1000여 명의 팬과 수십 명의 후배가 함께했다. 

‘스코어’ 고동빈 선수는 “데프트는 어리광을 부리기보다 남보다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아부었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였다”며 “그는 뛰어난 선수를 넘어 훌륭한 리더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피넛은 10번이 넘는 국내외 우승으로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게임에서는 자원을 많이 먹고, 상대를 이기는 선수가 돋보이지만, 그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후배들이 더 빛나며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 모습이 대치동 학부모 같다고 해서 ‘대치맘 리더십’으로 불린다. 
우승 트로피를 들 때도 그는 후배들이 먼저 들도록 배려한다. 오랜 기간 기복 없이 꾸준한 기량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한화생명의 전신인 락스 타이거즈의 막내로 시작한 그는 “형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후배에게 베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락스 시절 그의 동료 형들은 프로게임단 초기 적은 월급으로도 피넛이 먹고 싶다는 건 대부분 사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대부분이 일찍 선수 생활을 끝냈지만 피넛이 스타 선수로 성장해 나갈 때는 그 누구보다도 뿌듯해했다.


올해로 13년 된 LCK는 매년 규모가 커져 올해는 포스코, 우리은행, 벤츠 등이 후원하고 있다. 
라이엇코리아 관계자는 “만약 이 세 명의 선수가 사건·사고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면 후원사도, 게임단을 믿고 자식들을 보낼 부모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 고참 선배들 덕에 업계 후배들도 건강한 듯하다”고 말했다.(250319)

 

 

 

이상 고온과 고수온, 폭우 등이 잦아지면서 ‘금(金)사과’나 ‘금추(금+배추)’, ‘금징어(금+오징어)’ 등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연중 공급 불안정에 시달리게 된 식품·유통 업체들은 첨단 기술을 동원해 보관 기간을 늘리거나 재배 방식을 바꾸는 기술 전쟁에 속속 나서고 있다. 
단순히 좋은 상품을 찾기만 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직접 연구·개발에 뛰어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상 기온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폭염, 가뭄, 홍수는 연례행사가 됐다”면서 “업계에선 이제 이상 기온을 변수가 아닌 상수라고 보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갓 따온 그대로 사과’와 ‘갓 수확한 그대로 단단한 양파’를 19일부터 판매한다고 16일 밝혔다. ‘갓 따온’이란 말이 붙었지만 사실 이 사과는 작년 10월, 양파는 작년 6월에 수확한 상품이다. 
두 상품 모두 롯데마트가 CA(기체 제어) 저장고에 보관한 것이다. 수확한 직후에 바로 판매하지 않고 곧장 특수 저장고에 저장됐다.


CA 기술이 적용된 특수 저장고는 온도와 습도뿐 아니라, 공기 중 산소와 질소 비율 같은 기체 조성을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저장된 농산물의 노화를 억제하고 미생물과 곰팡이가 자라는 것을 막는다. 
농산물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보전 기간을 늘릴 수 있어 오랜 기간 갓 수확한 것 같은 신선함이 유지된다. 
최근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첨단 기술 중 하나다.

 

 

 


예전엔 보통 3~4월이면 저장해 둔 농산물의 물량이 줄고 신선도는 떨어져, 농산물 가격이 오르곤 했다. 
특히 올해는 작년에 수확한 사과가 이상 고온 때문에 전반적인 품질이 떨어지면서 사과 품귀 현상도 빚어질 수 있었다. 
이에 롯데마트는 보통 4월 중순 무렵 풀었던 CA 저장 사과를 올해는 한 달 정도 앞당겨 19일부터 출하하기로 했다. 이미 사과와 양파 수확이 끝난 시기지만, CA 기술로 저장한 부사 사과 500t과 양파 200t을 ‘갓 따온’이란 이름으로 팔면서 물가 상승을 막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마트 측의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사과와 양파 외에도 수박, 시금치도 CA 기술로 저장하고 있다. 
충북 증평에 있는 신선품질혁신센터에 총 1000여 t의 농산물 저장이 가능한 CA 저장고를 운영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앞으로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져도 CA 저장 농산물을 활용하면 농산물 가격을 저렴하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근 식품 업계는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는 김을 육지에서 양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고 해양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이전처럼 고품질의 김을 양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김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르자 공급을 안정화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김을 땅에서 양식하면 바다에서 양식할 때보다 해수 온도 상승이나 태풍, 영양염 고갈 같은 각종 악재에서 벗어나 온도와 환경을 제어하기도 편하고, 이를 통해 1년 내내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유지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CJ제일제당은 이에 최근 지방자치단체, 대학과 함께 김 육상 양식을 대규모로 산업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달 전라남도·해남군에 이어 이번 달에는 인천시·인천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CJ제일제당은 앞서 2018년 업계 최초로 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 2021년에는 수조에서 김을 배양하는 데 성공하고 2022년엔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에 적합한 전용 품종을 확보한 바 있다. 
CJ제일제당은 또한 제주도에서 어류 등을 양식하던 육상 양식장 개조에도 나섰다. 이를 통해 김 육상 양식 시설을 계속 확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동원F&B도 작년 10월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와 제주도 용암 해수를 활용한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제주도 용암 해수는 바닷물이 현무암 등 화산 암반층을 통해 오랜 기간 여과된 ‘염(鹽)지하수’다. 
마그네슘, 칼슘, 바나듐 등 광물 성분이 풍부하고 연중 16도 내외로 수온이 안정적이다. 
동원F&B는 용암 해수를 활용하면 김의 육상 양식이 쉬워질 것으로 보고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250317)


 

 

 

지난 10일 오후 5시 경기 화성시 향남읍의 7층짜리 상가. 건물 1~2층엔 스타벅스, 3~5층엔 신경외과·피부과 등 병원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6~7층에는 해외 유학·수능 대비 입시 학원, 그리고 프리미엄 스터디 카페가 보였다. 인근 상가도 마찬가지다. 

‘초중고 내신’ ‘수능 영어’ 간판을 내건 학원들이 즐비하고, 1층 편의점은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편의점 알바생 강모(24)씨는 “손님 10명 중 6~7명이 학교 마치고 학원 온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18일 오후 김포시 고촌읍 보름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학교를 마친 학생이 학원이 빼곡히 들어선 상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고촌읍은 서울 강서구와 맞닿아 있고 서울 목동 학원가에 차로 30분이면 도착하지만, 농어촌 특별전형 지역에 해당한다.>

 


2009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향남신도시 1지구엔 1만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근처 향남제약산업단지, 기아자동차 공장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초중고 10여 곳과 공공도서관, 공원이 있어 교육 환경이 좋다. 
올해 서울대 합격자 배출 10위권 고교인 화성고도 차로 10분 거리다. 행정구역은 ‘읍’이지만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곳은 대학 입시에서 ‘농어촌 특별전형’ 대상 지역이다.


향남읍에서 18년간 장사를 하는 김모(66)씨는 “근처에 화성고가 있어서 여기 학원들이 엄청 잘되고, 부모들 대부분 인근 산업 단지에서 일한다”면서 “이 동네 애들이 농어촌 전형 대상인 건 의아하다”고 했다.


‘농어촌 특별전형’은 도시에 비해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돕기 위해 20년 전 도입된 제도다. 
1994년 연세대를 시작으로 1996년 전국 대학에 확대됐다. 
읍·면이나 도서·벽지 지역 고교생이 대상이다. 학생이 부모와 함께 해당 지역에 살면서 중·고교 6년을 다니면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급으로 개발된 읍·면 지역이 늘면서 이들 지역까지 ‘농어촌 특별전형’ 혜택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전형은 해당 전형 지원자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일반전형보다 입학이 수월한 편이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9360명(정원 외 포함)에 달했다.


보통 읍이나 군이 ‘시’로 승격하려면 인구가 5만명이 넘어야 하는데, 읍인데도 인구 5만명이 넘는 곳이 향남읍(8만명)을 비롯해 전국 19곳(2023년 기준)에 달한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남양주시 화도읍(11만명), 남양주시 진접읍·화성시 봉담읍·달성군 다사읍(9만명) 등이다.


인구 5만명이 사는 김포시 고촌읍도 행정구역은 경기도지만 서울 강서구와 맞닿아 있어 목동 학원가에 차로 30분이면 도착한다. 
그래서 아예 농어촌 특별전형을 노리고 이사 가는 학부모들도 있다.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촌은 신이 내린 농어촌 전형 지역” “농어촌 전형을 생각해 고촌읍으로 이사 왔다”는 글도 올라온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인구 9만명)도 비슷한 경우다. 천안아산역이 있어 서울까지 KTX로 1시간, SRT로 40분 걸린다. 
아산시 주민 4명 중 1명은 배방읍에 살 정도인데도 행정구역은 ‘읍’이라 ‘농어촌 특별전형’ 대상이다. 
배방읍 인구가 크게 늘어 2019년엔 여러 동(洞)으로 나누는 논의가 진행됐지만, 주민 의견 수렴에서 약 90%가 반대해 무산되기도 했다. 
세금 감면 등 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학부모들은 ‘농어촌 특별전형’을 포기해야 하는 점 때문에 반대했다고 한다.


2023년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하겠다’는 ‘메가시티’ 구상을 밝혔을 때도 ‘서울 김포구’가 되는 걸 반기는 반응도 많았지만 반면 대입에서 불리해진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컸다.


교육계에서는 “오히려 역차별을 낳는 농어촌 특별전형을 손볼 때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교육 환경이 열악하지 않은 읍·면 지역은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수험생의 ‘소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거론된다.(250319)



☞농어촌 특별전형

도시에 비해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돕기 위해, 교육부가 1996학년도부터 도입한 제도. 지방자치법상 읍·면 지역이거나 교육진흥법상 도서·벽지 지역이 해당된다. 
학생이 부모와 함께 해당 지역에 살면서 중·고교 6년을 다녔거나, 학생 혼자 해당 지역에 살면서 초·중·고교 12년을 다녔으면 지원할 수 있다.

 

 

 

지난 15일 오전 경남 함양 지리산국립공원 벽소령대피소. 명선봉으로 오르는 코스 입구가 눈이 쌓인 채 ‘출입 금지’ 안내판으로 막혀 있었다. 
날이 건조한 1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산불 우려로 탐방로가 통제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명선봉 탐방로 반경 500m 이내로 반달가슴곰 1마리가 동면(冬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5월 등산객과 반달가슴곰이 마주쳤던 연하천대피소도 이 인근에 있다.


반달가슴곰은 4월 무렵부터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입산 통제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기간이라 더 자유롭게 먹이를 구하러 다닌다. 
탐방로가 열리고 곰이 구애 활동을 시작하는 5월이 되면 작년처럼 등산객과 반달가슴곰이 또다시 탐방로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탐방로 개방을 준비하는 4월 말부터 지리산국립공원 590곳에 ‘반달가슴곰 주의’ 현수막을 걸 예정”이라고 했다.

 

 

<반달가슴곰>

 


16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현재 반달가슴곰은 지리산과 덕유산에 각각 90마리, 3마리 등 총 93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위치 추적이 가능한 39마리(42%)의 동면 위치를 파악해보니 탐방로 반경 500m 이내에서 신호가 잡힌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 있는 1마리였다. 
보통 탐방로에서 곰 서식지까지 500m 이상 떨어져 있으면 ‘안전거리’가 확보됐다고 본다. 
그러나 위치 파악이 안 되는 곰이 54마리로 더 많은 데다, 반달가슴곰의 행동 권역이 105~130㎢ 정도로 넓기 때문에 이 안전거리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많다.


반달가슴곰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은 1996년 10월 정부가 우리 땅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반달가슴곰의 서식 흔적을 발표하면서 고조되기 시작했다. 
2000년 11월 무인 카메라에 찍힌 야생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방영되면서 복원 여론이 커졌다. 이듬해 국립환경과학원이 어린 사육곰 4마리를 지리산에 시험 방사했고, 2004년 국립공원공단이 이 프로젝트를 넘겨받아 러시아 연해주에서 토종 반달가슴곰과 유전자가 같은 어린 곰 6마리를 들여와 지리산에 풀어주면서 본격적으로 복원 사업에 돌입했다. 
백두대간에 오래 살아온 최상위 포식자인 곰을 복원시켜 정상적인 동물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머루·산딸기 같은 열매나 도토리를 먹기에 그 배설물이 지리산 식물 생태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주요 복원 사유로 꼽혔다.

 

 




복원 사업은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지리산을 기준으로 반달가슴곰의 최적 개체 수는 60마리, 최대 78마리다. 
환경부는 최소 존속 개체군(특정 생물 종이 최소 단위로 존속할 수 있는 개체 숫자)으로 2020년까지 50마리를 설정했다. 
2018년 56마리로 이미 이 숫자를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곰과의 안전한 공존’이라는 숙제를 던진 건 2015년 1월에 태어난 53번째 반달가슴곰인 ‘오삼이’다. 
세 번이나 지리산을 벗어나 9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갔고, 2022년엔 수도산에서도 70㎞가량 떨어진 충북 보은군 인근에 나타났다. 
결국 2023년 포획해 관리하기 위해 마취총을 쐈다가 계곡에 빠져 죽었다.

 

 




아직 국내에선 반달가슴곰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우려는 계속 커지고 있다. 
일본에선 야생곰으로 인한 인명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작년 5월 북부 이와테현 기타카미시 주택가 인근 숲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던 남성이 곰에게 안면을 찢겨 중상을 입었다. 
재작년 일본 환경성은 4~9월까지 6개월간 곰 습격 사건에 의한 사상자 수가 사망 2명을 포함해 109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016년엔 반달가슴곰이 산나물을 캐던 사람을 습격해 4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우리 정부 지침은 반달가슴곰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잃거나 문제를 지속적으로 일으킬 경우 야생에서 회수해 국립공원 보호 시설 안에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반달가슴곰을 백두대간 어디에서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서식지가 점점 넓어지는데, 더 큰 문제는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는 곰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안전 대책으로는 사람이 곰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250317)


 

 

 

대만에 거주하는 가브리엘·리디아 테오(35) 부부는 지난달 8일 반려견 올리브(7세·말티푸)와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해 2주간 한국 각 도시를 여행했다. 
반려동물용 캐리어에 올리브를 넣어 KTX를 타고 서울, 부산, 강원 평창, 경북 경주 등을 다녔다. 
부부는 “평창 온돌 숙소에서 올리브가 눈 맞은 발을 녹이며 좋아했다”며 “경주 한옥 숙소에선 반려동물과 욕조에 같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고 했다.

 

 

<작년 연말 독일의 대학원생 티파니 쳉씨가 반려견 토푸와 서울 북촌한옥마을을 방문해 찍은 사진. 둘 다 한복을 맞춰 입었다.>

 


반려동물과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해외에서 국내로 입국한 반려동물 수는 2022년 9185마리에서 2024년 1만4356마리로 2년 새 56.3% 증가했다. 
반려동물 동반 여행객들을 노려 주요 항공사가 반려동물 수송 서비스를 출시하는 한편, 호텔·카페·쇼핑몰도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가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독일의 대학원생 티파니 쳉(28)씨는 작년 연말 반려견 토푸(5세·몰티즈)와 5박 6일 한국을 찾았다. 
쳉씨는 5박 6일 동안 토푸와 한복을 맞춰 입고 북촌한옥마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반려동물과 입장할 수 있는 서울 강남구 별마당 도서관과 카페 등도 방문했다.

 

 

<지난 3월 대만의 가브리엘·리디아 테오 부부가 반려견 올리브와 경주 한옥마을을 방문해 찍은 사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은 어떻게 반려동물 친화적인 나라가 되었나”라며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며 반려동물 친화 공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NYT는 한국의 반려동물 유치원, 장례식장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 사는 리사 마리 요크(39)씨는 에밀리(8세·요크셔테리어)를 데리고 다음 달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요크씨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여행할 수 있는 아시아 국가를 찾던 중, 한국에 반려동물 동반 가능 숙소는 물론 반려동물 관련 문화가 발전했다는 내용을 보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한국에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식당·호텔·카페가 많다는 입소문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250317)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서울의 일상이 된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외국인 관광객들의 다크 투어리즘(역사적 비극이나 재난 현장을 찾아가는 관광)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외국인은 “방화·약탈·폭력이 없는 평화 시위가 인상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70년 번영을 구가해온 대한민국이 국제적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나라 안팎 지적이 나온다.


서울 도심에 11만명 가까운 인파가 몰린 지난 1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종각역 부근에선 탄핵 찬성 집회가 열렸다. 멍(김현정)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데이식스) 위플래시(에스파) 같은 가요가 흘러나왔다. 
인근 광화문역에서 진행된 탄핵 반대 집회에선 아파트(윤수일) 손에 손잡고(코리아나) 같은 노래가 들렸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현장. 외국인 관광객들이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외국인들은 “시위 현장이 위험할 줄 알았는데 K팝 콘서트장 같다”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독일인 미아(24)는 “도심 한복판에서 행인과 시위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인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한국의 계엄 사태 이후 시위가 일상이 된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화롭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했다. 
적잖은 서양 관광객은 자국 시위에선 흔한 방화나 폭력을 탄핵 찬반 집회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놀랍다고도 했다.


‘K팝 콘서트 같은 활기가 느껴진다’ ‘군중의 열기 속의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외국인들 입소문을 타고 아예 탄핵 시위 전용 관광 상품까지 출시됐다. 
한 한국인 가이드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현장에서 탄핵 찬성 진영의 관점으로 외국인들에게 “이곳이 12·3 비상계엄 사태 현장”이라며 일종의 다크투어리즘 해설을 한다.


“한국의 시민들은 12월 3일 밤 계엄 선포 이후 국회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도록 계엄군을 저지했고, 그 과정은 평화롭고 유쾌했다” “한국의 시민들이 그렇게 빠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배경엔 민주주의를 위해 끝없이 싸워온 역사가 있었다”는 설명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런 시위 현장 관광 상품을 홍보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싶은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투어합니다” “국회의사당 근처의 콘서트 같은 한국 시위를 안내해 드립니다”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입니다” 같은 문구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가이드도 있다.


인천국제공항이나 서울역에서 외국인들을 태우는 택시 기사들도 “사람이 제일 많은 시위 현장으로 가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적잖다. 
서울 시내 주요 호텔도 “집회 뷰(view)가 나오는 방으로 예약해달라”는 외국인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네덜란드 관광객 스테파니 쉬퍼는 처음엔 뮤지컬의 한 장면 같아 시위 행렬을 따라다니며 춤을 추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는 “시위 현장의 분위기에 익숙해질수록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울 줄은 몰랐는데, 한국이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미국인 앤 버텔슨(66)은 스톱더스틸(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 팻말을 드는 탄핵 반대 집회를 보고 자국의 집회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탄핵 반대 시위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떠올랐다”며 “마치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주요 외신이 계엄·탄핵 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가운데 시위 현장이 외국인들의 다크 투어리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에 씁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말 집회에 나온 한 대학생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250318)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대량 학살이나 재난 등 역사적 비극이 발생한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 ‘역사 교훈 여행’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서대문형무소, 비무장지대, 제주 4·3공원, 국립5·18민주묘지를 비롯,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 일본 히로시마 원폭 돔 등이 대표적 다크 투어리즘 명소다.

 

 

 

잠시 쓰러졌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이젠 진정한 셔틀콕 여왕(女王)이라 해도 어색함이 없는 경지다. 
안세영(23·삼성생명)이 17일(한국 시각)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열린 전영(全英)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2위 왕즈이(25·중국)에 세트 점수 2대1(13-21 21-18 21-18) 역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2023년에 이은 두 번째 우승. 2년 만에 우승컵을 되찾았다.


그녀는 한국 배드민턴 역사(여자 단식)를 끊임없이 새로 쓰고 있다. 
이번엔 한국 선수 최초 전영오픈 2회 우승.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제패. 아시안게임 우승에 이은 쾌거다. 올 들어선 무패에 20연승. 4대회 연속 우승이다. 
전영오픈은 1899년 시작한 국제 배드민턴 최고(最高·最古) 대회. 배드민턴계 ‘윔블던’으로 통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 버금간다. 안세영은 방수현(53·은퇴) 이후 27년 만인 2023년 이 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했고, 이를 2년 만에 재현했다. 남은 관심사는 과연 얼마나 더 전설을 써갈지다.

 

 

<절뚝이며 우승 뒤 "내가 여왕이로소이다" - 안세영이 17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수퍼 1000 전영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왕즈이(중국)를 2대1로 꺾은 직후 포효하고 있다. 
안세영은 압도적인 체력으로 막판 왕즈이의 범실을 3번 연속 유도해내면서 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 탈환은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부상 악령이 그녀를 괴롭혔다. 
전날 세계 3위 야마구치 아카네(28·일본)와 가진 4강전에서 허벅지 통증이 발발했다. 
결승전엔 오른쪽 허벅지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 나왔다. 독감까지 겹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무릎과 발목, 허벅지... 부상이 치명적 변수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 시작은 불안했다. 상대를 질리게 하는 철통 수비력이 흔들리자 왕즈이가 틈새를 파고들었다. 
범실도 잇따랐다. 13-21. 1세트는 완패였다. 이번 대회 두 번째 겪는 세트 허용.


그러나 굴복하지 않았다. 2세트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랠리에서 잇따라 점수를 따내며 왕즈이를 압박했다. 79회, 42회씩 주고받은 랠리를 이기면서 상대 기를 꺾었다. 21-18.


마지막 3세트. 벼랑 끝 세트를 낚아챈 기세를 몰아 왕즈이를 압도하려 했으나 오른쪽 허벅지에 이어 왼쪽 무릎마저 불편해지면서 아슬아슬한 승부가 이어졌다. 
관중들은 숨죽인 채 이 명승부를 지켜봤다. 9-9, 13-14, 15-16, 17-16, 18-18. 살얼음판을 걷던 승부에서 안세영은 끈질긴 체력전으로 왕즈이를 압박해 3연속 범실을 유도하면서 21-18로 기어이 승리를 쟁취했다. 
마지막 순간, 왕즈이 리턴이 선 밖으로 나가며 승리가 확정되자 안세영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흔들며 감격을 쏟아냈다. 
1시간 35분 혈전을 마무리하는 장면이었다. 안세영은 이후 “이제 내가 (전영오픈의) 여왕(Yes, I’m a queen now)”이라고 외치며 머리에 왕관을 쓰는 동작을 취하면서 관중들 호응도 이끌어냈다. 
전영오픈 홈페이지는 “대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BWF(세계배드민턴연맹)는 “안세영은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고, 통증에 몸을 굽히고 무릎을 움켜쥐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면서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끈질기게 경기를 펼쳤다”고 전했다. 
이어 “안세영은 다시 한번 꺾기가 매우 어려운 선수임을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안세영은 “오늘 경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경기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훨씬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2세트에서 온갖 감정이 떠올랐지만 포기하지 말라는 생각뿐이었다”면서 “그런 생각으로 계속 뛰었고, 결국 승리로 이어졌다”고 했다.


안세영은 올해 참가한 4개 국제 대회(말레이시아 오픈·인도 오픈·오를레앙 마스터스·전영오픈)를 모두 석권했다. 이 기간 중 42세트를 뛰어 39세트를 따냈다. 
안세영은 “더 강해지겠다. 반복에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일단은 한국식 숯불구이를 먹으며 우승을 자축하겠다”고 말했다.(250318)

 

 

 

지난해 12월 기준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原乳) 값은 전년 평균보다 6.17% 올랐다. 
그런데 시중에서 판매되는 우유의 소비자가격은 15.24%나 올랐다. 완제품 가격이 원재료 값보다 훨씬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대두유·카놀라유·옥수수 등 식용유의 원재료 값은 1년 전보다 12.93% 떨어진 반면, 식용유 제품값은 평균 12.67% 상승했다.

 

 

<14일 오전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매대에 진열된 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원재료나 인건비 상승을 틈타 제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는 식품업계의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욕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먹거리 지출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14일 본지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에서 원재료와 제품 가격 상승률을 비교할 수 있는 가공식품 21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년 동안 케첩과 마요네즈, 분유, 식용유, 우유 등 16품목의 제품값 상승 폭이 원재료보다 높았다. 
재료값에 비해 제품값이 적게 오른 품목은 햄과 맛김, 오렌지주스 등 5품목이었다. 
식품업체들이 밀가루나 원유, 원당 등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수준을 넘어 추가 이윤까지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분유는 원재료 가격이 24.65% 떨어졌지만 소비자가격은 9.58% 올랐다. 인건비·포장비 등 재료 이외의 다른 비용이 올라서 제품 가격을 올렸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원재료 가격 상승을 핑계로 제품값을 인상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식품업체들이 고물가 분위기에 편승해 연이어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정부가 리더십 부재로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름달 빵, 스타벅스 커피, 포카리스웨트, 빼빼로 과자.’

 

 



모두 식품업체가 올해 들어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등 부담이 커졌다며 가격을 올린 품목들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식품업체들이 연말연초만 되면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게 관행이 됐다”며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만 제품 가격에 반영하고, 정작 원재료 가격이 안정화됐을 때 제품 가격을 내리는 일은 없다”고 했다.


실제 본지가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에서 원재료와 제품값 상승률을 비교한 가공식품 21개 중에서는 지난해 원재료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제품값이 오른 품목이 10개나 됐다. 
토마토가 원재료인 케첩 가격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3년에는 주요 토마토 생산지인 이탈리아와 인도 등에서 작황이 부진했기 때문에 토마토 값이 크게 올랐다. 
하지만 작년에는 국제 토마토 수급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됐지만, 케첩 가격은 여전히 오름세다. 
지난 2023년 평균 대비 작년 12월 케첩 원재료 가격은 14.76% 떨어졌지만, 케첩 소비자가격은 되레 25.23% 올랐다.


식품업체들이 지난해 말 집중적으로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을 두고 12·3 비상계엄 사태와 연이은 탄핵에 따른 정치 혼란을 기회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품 물가를 관할하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매달 식품업체들을 만나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약발이 들지 않는 모양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계엄 이후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물가 관리를 책임져야 할 부서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보니, 업체들이 정부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식품업체들이 요청한 주요 원재료에 대해 할당관세와 부가가치세 면제 등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에도 식품업체들이 연초에 줄지어 가격을 인상한 것은 ‘그리드플레이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 초부터 식품업체가 수입하는 코코아 생두와 설탕, 오렌지 농축액, 토마토 페이스트, 가공용 옥수수 등 13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고, 다음 달 1일부터는 코코아 파우더와 기타조제 파인애플 등 6품목에 대해서도 할당관세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또 커피와 코코아를 수입할 때는 부가세 10%도 면세해준다.


정부는 식품업체의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해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최근 할당관세가 우리 농산물 시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용역에 나섰는데, 여기서 식품업체가 수입하는 할당관세에 관한 분석도 함께 수행하기로 했다. 
식품업체들이 할당관세를 받아 원재료를 들여와,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까지의 가격 변동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식품업체들이 할당관세로 원재료 가격 인상 부담을 덜었음에도 소비자 가격이 낮아지지 않으면 업체들이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업을 어르고 달래서 가격 인상을 자제시키는 것은 오늘 올릴 가격을 내일로 미루는 ‘조삼모사’에 가까운 조치”라며 “주요 원재료 가격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공개해 소비자들이 자체적으로 기업의 ‘그리드플레이션’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품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은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의 하나일 뿐이고, 그 외에도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요인이 많다”는 입장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가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라며 “인건비도 오르고 각종 포장재 비용과 물류비도 물가 상승에 따라 지속적으로 상승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른 영향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는 대부분 수입해서 쓰는데 최근 환율이 크게 상승해 부담이 커졌다”며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들의 저항을 잘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할 수밖에 없는 건 기업들도 버틸 재간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250315)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

탐욕(greed)과 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로 기업들이 원재료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것을 틈타 제품 가격을 더 많이 올리면서 전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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