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출신 루스 체픈게티(30)가 13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9분56초 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세계 기록을 새로 쓰며 우승했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티지스트 아세파(28·에티오피아)가 작성한 2시간11분53초였는데, 이를 2분 가까이 앞당겼다. 여자 마라톤 ‘2시간10분’은 남자 마라톤 ‘2시간’의 벽과 비교되는 꿈의 기록으로 여겨져 왔다.
<루스 체픈게티가 13일(현지 시각) 여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미국 시카고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케냐 국기를 들고 달리며 기뻐하고 있다.>
체픈게티는 이날 첫 5km를 15분 만에 거침없이 내달렸고, 하프 지점을 1시간4분16초 만에 통과했다. 여자부 2위 수투메 케베데(30·에티오피아·2시간17분32초)를 7분 이상 앞서는 압도적 기록으로 골인했다. 이날 남자부 우승자 존 코리르(28·케냐)의 기록은 2시간2분44초였다. 이번 대회 남자부에서 여자부 우승자 체픈게티보다 더 빨리 달린 선수는 9명뿐이었다.
2017년 마라톤에 데뷔해 2019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체픈게티는 시카고 마라톤에서는 2021·2022년에 이어 올해 3번째로 우승했다. 지난해엔 준우승했다. 2022년 이 대회 우승 기록 2시간14분18초는 이번 대회 전까지 체픈게티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역대 여자 선수 중 넷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이날 4분 이상 단축했다.
이날 출발할 때 기온은 10도 정도였고 구름 낀 흐린 날씨에 바람이 적었다. 체픈게티는 “세계 기록은 꿈이었고 이제 실현됐다. 날씨가 완벽했고 나는 준비를 잘했다”며 “이 기록을 켈빈 킵툼에게 바친다”고 했다. 케냐 출신 킵툼은 작년 이 대회에서 2시간35초로 종전 기록을 34초 앞당기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서브2(2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의 거대한 벽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지난 2월 교통사고로 2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날 출발할 때 기온은 10도 정도였고 구름 낀 흐린 날씨에 바람이 적었다. 체픈게티는 “세계 기록은 꿈이었고 이제 실현됐다. 날씨가 완벽했고 나는 준비를 잘했다”며 “이 기록을 켈빈 킵툼에게 바친다”고 했다. 케냐 출신 킵툼은 작년 이 대회에서 2시간35초로 종전 기록을 34초 앞당기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서브2(2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의 거대한 벽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지난 2월 교통사고로 2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여자 마라톤 세계 기록은 최근 5년 사이 급격히 단축됐다. 2003년 폴라 래드클리프(51·영국)가 세운 2시간15분25초 기록이 16년 동안 유지되다가 2019년 브리지드 코스게이(30·케냐)가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14분4초로 경신했다. 이후 지난해 티지스트 아세파가 2시간 14·13·12분 벽을 한 번에 깼다.
최근 마라톤 기록이 극적으로 향상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수퍼 슈즈’다. 완충 기능과 복원력이 뛰어난 초경량 중창 소재와 뻣뻣한 탄소섬유를 활용해 스프링 효과를 만들어낸 고기능성 신발이다. 지면을 박찰 때 더 많은 추진력을 얻게 하며 에너지 손실을 줄여 기록 단축을 이끈다. 리듬과 균형, 보폭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체픈게티가 13일 자신이 세운 세계 신기록이 표시된 시간 기록계를 가리키고 있다.>
작년 티지스트 아세파는 여자 세계 기록을 세울 때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1을 신었다. 이날 체픈게티는 나이키 알파플라이3을 신고 아세파 기록을 깼다. 지난해 킵툼이 남자 세계 신기록을 작성할 때도 나이키 알파플라이3을 신었다. 지난 1월 시중에 발매된 알파플라이3은 추진력과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신발 전체 길이에 폭을 넓힌 탄소섬유판을 중(中)창에 삽입했고, 가벼우면서도 두꺼운 중창 소재를 썼다. 발 앞부분에는 내디딜 때 충격을 완화하고 다음 걸음을 이어가도록 돕는 에어 줌을 달았다. 이날 체픈게티의 우승으로 수퍼 슈즈 전쟁에서 나이키가 아디다스를 앞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퍼 슈즈는 2016년 처음 등장했다. 엘리우드 킵초게(40·케냐)가 나이키 베이퍼플라이 시제품을 신고 그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에너지 반환율을 높여주는 자체 개발 폼, 뛸 때 힘을 덜 들이도록 돕는 탄소섬유판이 장착됐다. 남자 마라톤 세계 기록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1년간 118초 단축됐는데, 수퍼 슈즈 등장 이후로는 8년간 142초를 단축했다. 2020년 세계육상연맹이 밑창 두께를 40㎜ 이하로 제한하고 탄소섬유판은 한 장만 허용하는 등 규정을 만들었으나, 장비 기술과 성능 발전에 의존하는 ‘신발 도핑’이란 논란도 여전하다. 한동안 세계 신기록을 쏟아내다 결국 2009년 금지된 전신 수영복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241015)
대당 수천억원짜리 초고가 기기가 즐비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올 1월 각 사업장에 신규 장비를 설치했다. 다름 아닌 ‘한강 뽀글이라면 기기’다.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기기인데 작년 말 시범 도입했다가 직원들의 반응이 좋자 전면 확대한 것이다. 올 4월엔 다이어트·건강에 부쩍 신경 쓰는 직원들을 위해 ‘웰핏 투고’라는 건강식 코너를 추가로 만들었다. 직원들은 매일 ‘저염 소이소스치킨덮밥(420㎉)’ ‘당뇨케어 간장돼지구이연근밥(510㎉)’ 같은 4종의 건강 도시락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밖에 나가면 워낙 인기가 많아 소위 ‘오픈런(개점하자마자 달려가는 것)’ 해야 먹을 수 있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 노티드 도넛, 쉐이크쉑 버거 같은 인기 메뉴를 주 1~2회 식사로 제공한다. 매달 2~3번은 아예 싸갈 수 있는 테이크아웃(Take-out)용으로 나눠준다. 이뿐 아니라 점심 시간에 사내 식당에 가면 한식부터 양식, 햄버거, 도시락 등 최대 12개 메뉴 중 하나를 골라 먹을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기도 화성 캠퍼스 사내 식당 테이크아웃(Take-out) 코너에서 한 직원이 선식, 시리얼, 베이커리, 프로틴(단백질) 음료, 유제품 등 다양한 메뉴를 살펴보고 있다.>
전체 직원이 7만7000여 명에 이르는 삼성 반도체가 하루에 제공하는 식사만 20만8000식(食)으로, 매일 쌀 6.7t(톤)에 포기김치만 4.6t이 나간다. 삼시 세끼 모두 무료다.
산업계에서 치열한 ‘밥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 기업부터 저비용 항공사에 이르기까지 ‘밥’이 우수 인재를 잡고, 또 충성 고객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 간 기술, 인재, 고객 쟁탈전이 뜨거운 가운데 ‘밥맛’이란 원초적 본능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행보는 ‘인재 쟁탈전’이 치열한 경쟁사 SK하이닉스를 의식한 것이다. 3만2000여 직원을 둔 SK하이닉스는 현재 CJ, 신세계, 삼성, 후니드, 진풍푸드 등 5곳의 사내 식당 운영 업체를 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운영 업체끼리 경쟁을 유도해 식사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실제로 입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업체들은 요새 인기인 ‘두바이 초콜릿 만들기’ 같은 쿠킹 클래스부터 이성당 빵, 북창동순두부, 아비꼬카레 등 외부 인기 메뉴를 사내 식당으로 끌고 들어오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는 큰 공장이 있다 보니 밖에 나가서 먹기도 쉽지 않고, 주로 안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며 “근무시간을 감안했을 때 밥에 대한 만족도가 하루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년 직원 가족 초청 행사를 열어 회사 구경을 시켜주고 사내 식당 밥도 꼭 먹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가족에게 사내 식당을 소개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가족들도 회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다 보니 우수 인재를 붙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산업계에서 치열한 ‘밥 경쟁’을 벌이는 또 하나의 분야는 바로 저(低)비용 항공사들이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등 총 8곳으로 최근 경쟁적으로 기내식 신메뉴를 내놓고 있다. 아직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만큼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저비용 항공사들이 ‘맛있는 밥’을 앞세워 고객을 유혹하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작년 말 강남 미쉐린 식당인 삼원가든과 손잡고 ‘소갈비찜 도시락’과 ‘떡갈비 도시락’에 제주 딱새우 비빔장을 제공하는 특선 메뉴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엔 K푸드 매운맛의 인기를 활용한 불닭 소스 메뉴를 추가로 내놨다. 티웨이항공은 올 4월 대체육을 사용한 비건(vegan) 기내식을, 에어서울은 올 6월 일식 셰프인 정호영과 함께 명란크림우동, 카레우동 기내식을 선보였다. 에어부산은 지역적 특색을 살려 부산 맛집인 유가솜씨 닭갈비와 손잡은 기내식을 출시했고, 진에어는 ‘승무원용 제육덮밥’ ‘승무원용 곤드레나물밥’ 등 실제 승무원이 먹는 것과 같은 특식으로 차별화 중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미쉐린 식당 메뉴는 출시 8개월 만에 전체 기내식 판매의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라며 “4시간 이상 중거리 비행에서 기내식을 사전 주문하는 탑승객도 점차 늘고 있다”고 했다.
초기에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던 저비용 항공사들이 점차 서비스·브랜드 경쟁으로 넘어가며 벌어지는 현상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같은 목적지라면 기내식을 보고 항공사를 고를 수 있을 만큼, 차별화된 밥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고 충성 고객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동시에 수익을 높여주는 중요한 추가 수입원이기도 하다”고 했다.(241007)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나이가 사상 처음으로 만 45세를 넘었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만 해도 ‘사오정(45세면 정년)’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45세는 중장년의 상징적 나이였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가 이어지면서 군(軍) 여단장급인 초임 대령이나 대기업 차장·부장급에 해당하는 45세가 전체 인구의 중간 연령대인 청년(靑年)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전라남도와 서울 도봉구 등 일부 지자체는 예산을 지원하는 청년 기준을 39세에서 45세로 확대했다.
4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 44.8세였던 주민등록인구 평균 나이는 올해 말 45세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월별로 보면 지난 2월 말 44.9세였던 평균 연령은 3월 말 45세가 됐고 지난달 말 45.2세로 늘어났다. 평균 연령이 2014년 말 40세를 넘어선 지 10년 만에 5세 늘어난 것이다. 통계청은 2022년 ‘장래 인구 추계’를 발표하면서 평균 연령이 내년에 45세를 넘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그 시기가 1년 앞당겨졌다.
45세는 53년 전인 1971년 김종필 당시 신임 국무총리의 나이였다. 그때만 해도 기대 수명이 62.7세로 당시 김 총리의 나이가 전 국민 10명 중 셋째로 많을 때였다. 하지만 올해 기대 수명은 84.5세로, 45세가 중간쯤 된다.
주민등록인구 평균 나이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8년 평균 나이는 37세였다. 연평균 0.5세씩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은 평균 연령이 11년 뒤인 2035년 50세, 2049년엔 55세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한국의 중위 연령(전체 인구를 한 줄로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사람의 나이)은 45.1세로 일본(49.4세)보다 낮지만, 영국(40세)·미국(38.3세)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
올해 45세가 된 1979년생은 고교 시절 ‘H.O.T.’ 같은 원조 아이돌에 열광하고 대학 입학 직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고전인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X세대(1970년대생)들이다. 가수 이효리·성시경,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 이동국 전 축구선수가 1979년생이다. ‘꼰대’ 소리를 들었던 과거의 45세들과 달리 요즘 45세들은 불필요한 회식을 삼가고 자유로운 패션 감각을 뽐내는 젊은 관리자로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을 뜻하는 ‘86세대’와 후배 MZ세대들 사이의 세대 갈등을 조정하는 중심에 이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X세대 문화의 끝자락을 주도한 요즘 45세가 사회 각 영역에서 ‘꼰대 문화’를 거부하고 수평적·개방적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40대 중반은 자신을 청년이라고 규정하고 직장에서 태도보다 성과에 집중하는 등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연공서열과 상명하복 문화가 남아 있던 2000년대에 사회 초년생 대열에 합류한 이들이 중간 관리자가 돼, 86세대의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MZ세대의 개인주의 문화로 이어지는 과도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사와 회의 준비 등 허드렛일을 사원·대리 등에게 맡겼던 과거 ‘부장님’들과 달리 학창 시절부터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익숙했던 요즘 부장들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자”는 경향이 강하다. 회사에서 상품 기획·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1979년생 대기업 A부장은 회의 자료 작성은 물론, 빔 프로젝터 설치 등 회의 준비까지 직접 처리한다. 야근은 필요할 경우 회사든 집이든 원하는 장소에서 알아서 한다고 한다. A부장은 “올해 들어 회식은 딱 두 번 했다”며 “어쩌다 한번 하는 거라 고급 고깃집에 가서 와인 두 병을 나눠 마시고 1시간 30분 만에 헤어졌다”고 했다. 그는 “캐릭터 인형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등 젊은 감각을 뽐내는 또래 부장도 많다”며 “나 정도는 ‘젊은 부장’ 축에도 못 낀다”고 했다. 또 다른 대기업 B차장(40)은 “10여 년 전 입사 당시만 해도 45세쯤 되는 부장들이 (양손의 한 손가락만 쓰는) 독수리 타법으로 보고서를 고치던 ‘꼰대’였는데, 요즘 부장들은 다르다”고 했다. 고승연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 40대 중반은 중년이라는 표현이 낯선 ‘후기 청년’”이라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40대 중반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위 ‘낀 세대’”라며 “집단주의적이고 서열을 중시하는 86세대와 달리 불합리한 간섭을 이해 못하는 MZ세대에 가까운 성향을 띠고 시대 변화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처럼 결재판을 집어던지거나 폭언에 가까운 잔소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 팀 질서 문란 행위나 비위 행동을 꼼꼼히 기록해뒀다가 근무 평정에 반영하는 냉정한 처분을 내리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B차장은 전했다. 그만큼 성과주의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IT 회사에 다니는 김모(30)씨는 “여름에 회사 부서 워크숍이 있었는데, 팀장 주도로 방 탈출 카페를 다녀왔다”며 “팀장이 2주씩 휴가를 가겠다고 먼저 선언하면서 휴가 쓰는 데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45세 전후 관리자들은 나이가 쌓이면 진급하는 ‘서열주의’를 깨는 데도 중심에 서 있다. 나이라는 전통적 계급장을 떼고 무한 경쟁을 하게 된 첫 중간 관리자 세대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차장·부장 등 직급이 공식적으로 없어지고 ‘책임’ 등으로 통합되면서 팀장·임원 승진을 놓고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과거보다 늘고 있다. 한 대기업 부장은 “과거에는 선배를 부하 직원으로 받으라고 하면 부담스러워 하거나 받더라도 아예 일을 안 시키는 방식으로 ‘예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깍듯이 존칭하되 일은 선후배를 따지지 않고 똑같이 시킨다”고 했다.(241005)
지난 2일 깻잎 100g의 소매가격은 3608원이었다. 지난 7월 1일만 해도 2049원이었는데, 3개월 만에 70% 이상 오른 것이다. 깻잎뿐 아니라 배추, 상추 등 한국인의 식탁 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채소 가격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한 대형 마트 채소 바이어는 “폭염, 폭우가 반복되는 극한 기후가 채소 가격 상승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전 세계가 극한 기후에 따른 식재료값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폭염, 폭우, 가뭄 등으로 지중해에선 올리브가, 아프리카에선 코코아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특히 올해 여름 지구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것으로 조사되는 등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더위가 물가 상승을 불러온다는 의미의 신조어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을 일상적으로 쓰는 시대가 됐다.
<폭염을 비롯한 극한 기후가 불러온 물가 상승에 전 세계가 시름하고 있다. 올해 코코아 주산지인 가나에 폭염과 가뭄, 병충해 등이 덮치면서 전 세계 초콜릿 가격이 폭등했다. 가나 공무원이 가뭄과 병충해 피해를 당한 코코아나무의 잎을 들고 있는 모습.>
배추는 생육 기간이 통상 3개월 정도로 피해를 입으면 복구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배추와 비교해 생육 기간이 짧은 상추, 깻잎 가격도 고공 행진하는 이유는 뭘까. 유통업계 관계자는 “극한 기후에 직격탄을 맞은 건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8월 장마로 상추, 깻잎 등 하우스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충청 지역 상추는 약 70%, 깻잎은 40~50%가 침수 피해를 입었어요. 밭을 갈아엎고 다시 심었는데, 이어진 폭염에 상추와 깻잎이 녹아내리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 밭을 갈아엎었는데, 9월 중순 폭우로 상추 주산지인 논산, 익산 등이 또다시 침수 피해를 입었죠. 폭우, 폭염, 폭우로 이어지는 극한 기후에 밭을 갈아엎고 다시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된 겁니다.” 국내 대형 마트 관계자는 “현 기상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한 달을 가야 깻잎, 상추 등의 가격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여름(6~8월)은 국내 기상 관측망이 확대된 1973년 이후 전국 평균기온(25.6도), 평균 최저기온(21.7도), 평균 열대야일(20.2일) 모두 1위를 기록했다. 9월에도 더위가 계속되면서 농작물의 작황이 부진해졌고, 출하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히트플레이션에 소비자, 식당 주인, 농부 모두 아우성이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기가 두렵다고 하고, 자영업자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도 울분을 토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물을 계속 쓰고, 인건비가 늘면서 농가들도 남는 게 없다고 난리”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심각한 가뭄을 겪은 그리스의 올리브밭이 황폐해진 모습이다>
히트플레이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연합(EU) 산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여름 지구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것으로 조사됐다. 지중해 지역에 폭염과 심각한 가뭄이 나타나면서 스페인의 올리브 생산량은 40% 줄었다. 지난 6월 올리브 가격은 작년 대비 27% 올랐다. 코코아 주산지인 아프리카 가나와 아이보리 코스트 또한 폭염과 가뭄에 병충해까지 덮치면서 초콜릿 가격이 올해 200% 이상 오르기도 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중국 신화통신은 “28가지의 채소 도매 평균 가격이 두 달 사이 40% 올랐다”며 “올해 여름은 평균 이상의 폭우와 폭염으로 채소 출하량이 줄었고, 이상 기후로 물류 가격도 높아져 채소 가격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타임지는 “기후 재앙에 따른 식재료값 인상으로 전 세계 많은 정부가 패닉 모드”라고 보도했다.
미국 코넬앳킨슨지속가능성센터와 캔자스대 등은 캔자스주 7000개 가까운 농장의 39년 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옥수수, 콩, 밀 생산량은 16~2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 사용량 증가, 인프라 추가 설치 등으로 농가의 순수익은 34%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글로벌 극한 기후가 농작물 생산량 증가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며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전 세계 농업 생산성이 지금보다 20%는 높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중앙은행은 폭염 때문에 앞으로 10년 동안 연간 식량 물가가 최대 3.2%포인트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241004)
올 들어 서울 도심에서 주말·휴일마다 대규모 집회가 반복되면서 시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본지가 올해 서울 시내 집회·시위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광화문 등 도심에서 집회가 열리지 않았던 주말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4일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오는 27일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한국교회 200만 연합 예배’(현장 100만명·온라인 100만명)가 열릴 예정이다.
대규모 도심 집회는 지난 3·1절 자유통일당이 광화문 일대에서 ‘자유 통일을 위한 천만 조직 국민 대회’(주최 측 추산 20만명)를 연 것을 시작으로 매주 계속되고 있다. 같은 달 30일엔 광화문 일대에서 개신교 단체의 1만명 규모 부활절 퍼레이드가 열렸고, 근로자의 날이었던 5월 1일엔 민주노총·한국노총이 광화문 등에서 전국 노동자 대회(9만명)를 열었다. 6월 1일엔 서울역 일대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권 규탄 집회(3만명)가, 8월 15일 광복절에는 자유통일당 등의 집회(5만 명)가 이어졌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자유통일당·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등 보수 단체 회원들이 개천절을 맞아 ‘대통령 불법 탄핵 저지를 위한 국민혁명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주말과 휴일마다 보수·진보 단체를 가리지 않고 광화문광장 등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달 5일엔 서울 보신각에서 이스라엘 규탄 집회가 열린다. 6일엔 이주노조 등이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11월 9일엔 양대 노총의 전국 노동자 대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린다. 주말·휴일마다 서울 도심의 고궁·미술관·공원 등에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은 “주말마다 ‘집회 지옥’에 갇힌다”며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인파와 고성으로 쾌적한 주말을 누릴 권리도 박탈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집회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이뤄지는 국내법상 도심 집회를 마땅히 제재할 방안도 없다.
지난 3일 오후 2시쯤 자유통일당 등의 ‘대통령 불법 탄핵 저지를 위한 광화문 국민혁명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선 “열불난다! 천불난다!” 구호가 귀를 찌를 듯했다. 단상에 올라간 연사가 “경찰들은 왜 차선을 안 열어주나? 전광훈 목사가 열어준다고 했다”고 외치자 집회 참여자들은 “문재인·이재명·조국 구속하라”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 등 팻말을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광화문역 앞에 주차된 경찰 소음 측정 차량 전광판은 집회가 지속되는 내내 90dB(데시벨) 안팎을 기록했고 때론 100dB에 육박하기도 했다. 80dB(기차 소음)은 만성 노출될 경우 청각 장애, 90dB(소음이 심한 공장)은 직업성 난청, 100dB(착암기)은 급성 청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동화면세점~시청역 방면 세종대로 차로는 통제돼 있었고 버스 등 차량은 모두 우회 중이었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도심 차량 통행 속도는 시속 14.9km를 기록했다.
광화문 인근 인도엔 플라스틱 의자, 돗자리나 신문 등을 깔고 앉은 집회 참가자들로 혼잡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들고 있는 대형 깃발에 시민들 얼굴이 부딪치는 일도 있었다. 술 냄새를 풍기던 한 참가자는 현장 경찰에게 “어른에게 도전하는 경찰은 공권력이 아니다”라고 했다.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어린이들을 감싸안고 황급히 현장을 떠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토요일이던 지난달 28일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총 등 진보 단체들로 구성된 전국민중행동과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준비위원회 등은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중구 숭례문 앞 도로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 후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을 마친 뒤 일부 참가자가 대통령실 인근에서 연막탄을 사용해 퍼포먼스를 하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어 1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2024년 백주대낮에 연막탄이 웬말이냐”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고 했다.
시민들은 “주말 나들이가 휴식이 아니라 형벌 같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인파와 소음, 쓰레기와 냄새로 점철된 ‘불쾌한 주말’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대학원생 김모(28)씨는 “휴일에 고궁을 좀 둘러보러 갈까 하면 집회 때문에 버스가 서울역에서 멈춰버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버스가 너무 막힌다”고 했다. 대학생 박모(26·서울 관악구)씨는 “용산부터 광화문까지 시위대가 끊이질 않으니 휴일엔 그냥 집에 있는 게 가장 편하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나라 꼴이 이게 뭐냐” “언제까지 이런 공해 집회를 참아줘야 하느냐”는 성토가 빗발친다.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는 “광장을 확보해야 한다” “광장을 빼앗기면 권력도 빼앗긴다”고 말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광장은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라며 “특정 진영의 권력 다툼의 장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오는 27일 주요 개신교단이 전국에서 100만명 신도를 동원, 광화문에서 ‘연합 예배’를 추진하는 데 대해선 “온전치 못한 주일 성수(聖守)” “세속적인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어긋난다” 같은 신학계 지적도 나온다.(241005)
수원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정모(45)씨는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를 수차례 내지 않은 ‘상습 연체자’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과태료를 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최근 3년간 속도 위반으로 세 차례, 총 12만원 과태료 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택배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인데 어떻게 과태료를 매번 내겠냐”며 “주변 택배 기사들도 ‘소액 과태료는 단속을 잘 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해서 일단 버텨볼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3년 3월 30일 서울 중랑구 망우로 상봉지하차도 앞 도로에 신호과속단속장비 및 후면 무인교통단속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경찰이 물린 과태료 중 실제 내는 비율은 절반을 겨우 넘는 53.6%(지난해)로 4일 나타났다. 과태료 부과액 2조2934억원 중 1조2284억원가량만 걷혔다. 누적 미수납액도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1조609억8600만원)했다. 정씨처럼 과태료를 내지 않고 ‘나 몰라’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기 때문이다. 경찰청이 부과하는 과태료는 속도나 신호, 주·정차 등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것이 가장 많다.
2022년 교통법규 위반으로 경찰이 징수한 과태료만 1조831억원이다. 2018년부터 무인(無人) 교통 단속 카메라를 대폭 늘려 부과 액수가 늘었다. 하지만 과태료는 벌금이나 과료(科料)와 달리 형벌이 아니다. 고액·상습 체납을 해도 강제 구인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전과도 남지 않는다. 단속 카메라에 찍힌들 운전자를 확인할 수 없으니 벌점도 부과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운전자를 확인해 부과하는 범칙금은 미납하면 면허를 정지당하기에 납부율이 90%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과태료를 체납하면 첫 달은 3%, 이후 매달 가산금 1.2%가 최장 60개월까지 부과된다. 가산금 상한선은 과태료의 75% 수준이다. 비교적 소액이기 때문에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 주차 위반으로 과태료 4만원이 부과됐다면 2년 동안 내지 않고 버틴다 해도 가산금은 1만2720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과태료를 내지 않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나 된다. 경찰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하나하나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2022년 현재 30만원 이상 교통 과태료를 체납한 사람은 누적 55만여 명, 100만원 이상 체납자는 16만여 명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과태료는 안 내더라도 벌점이 붙지 않아 차량 소유자들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십만 명을 일일이 찾아가 ‘꼭 납부해야 한다’고 독촉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현행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을 보면 1000만원 이상 고액, 3회 이상 1년 경과 상습 체납자는 유치장 등에 감치(監置)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에서 부과한 소액 과태료가 가산돼 1000만원 이상 고액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 일선 범죄 수사에 바쁜 경찰이 검찰청에 과태료 체납자 감치까지 신청할 여력도 거의 없다고 한다. 결국 국세징수법에 따라 차량 등 재산을 압류하는 방안을 써야 한다. 하지만 “경찰이 서민을 상대로 과도하게 법 집행을 한다” “생계 수단인 차를 압류하면 뭘 먹고 사느냐” 같은 반발에 부딪힐 때가 많아 쉽지 않다고 한다.
과태료가 미납된 지자체가 압류한 차량도 폐차해 버리면 그만이다. 출고 11년이 넘은 차량은 ‘차령 초과 말소 제도’를 이용해 압류 상태에서도 폐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태료 기록은 남지만 폐차하거나 새 차를 구입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누적 과태료 30만원 이상, 미납일 60일 이상이면 자동차 번호판을 압수하는 ‘영치’ 제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매년 수만 명인 과태료 체납자를 찾아가 번호판을 압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경찰과 지자체가 합동 단속팀을 매년 운영하지만, 상습 체납자가 소재 불명일 때도 흔해 실효가 거의 없는 조치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는 과태료를 낸 사람만 바보가 되는 구조”라며 “범칙금 중심으로 반드시 필요한 단속만 하거나, 과태료 미납 시 자동차 등록을 취소하는 등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241005)
내가 일하고 있는 여행사 사무실에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온다. 한번은 몹시 호들갑을 떠는 한 여자가 전화로 그리스의 우편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미안합니다. 여기는 여행사지 우체국이 아닙니다"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이렇게 따졌다. “그 회사에서 그리스에 사람들을 보낼 거 아닙니까?" “네, 보내긴 보내지요. 하지만 봉투에 넣어서 보내진 않거든요." 내가 대답했다.
사진사로 일하는 내 친구가 어느 병원에 가서 외과수술을 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나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려고 의사휴게실로 갔다. 휴게실에서 의사 두 사람이 자동차 배터리를 서로 연결해서 시동을 거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말투가 재미있었다. “우선 사망한 차에서 점퍼 케이블을 꺼내 기증하는 차에 연결시키는거야. 그리고..."
가정에 우유를 배달하는 운전사를 대신해서 내가 배달을 나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떤 집 앞에 차를 대고 그 집 주인의 주문기록을 보니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차고문에 뚫려 있는 개구멍에서 조그만 테리어 강아지 한 마리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트럭 위로 뛰어오르더니 도무지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그 강아지를 집어서 내려놓으려고 하는데 강아지의 목에 종이쪽지가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탈지우유 2리터와 카티지치즈 1파인트 주세요."
우리 아들이 걸음마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집사람이 내 직장에 아이를 데리고 온 일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엎드려 기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사장실로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사람과 나는 얼른 뛰어가서 붙잡았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동료 직원 하나가 집사람을 보고 말했다. "아주머니, 그애 아버지가 사장실에 들어갈 때 꼭 그런 식으로 들어가죠."
임신한 몸으로 모텔을 경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아침 6시 반 이전에는 되도록 초인종 소리가 울리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했다. 그래서 투숙객이 떠날 때도 열쇠를 방안에 놓고 떠나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런데도 어떤 손님들은 새벽 4시 반에도 나를 깨우곤 해서 몹시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현관문 바로 옆에 상자를 하나 갖다놓고 "열쇠는 이 속에 넣으세요"라고 써놓았다. 어느 날 아침 새벽 5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 보았더니 손님 한 명이 상냥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열쇠를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는 걸 알려주려고요."
수확을 앞두고 우리 농장에 트럭 운전사가 한 사람 더 필요했으므로 우리는 데이브가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채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에게 농장에 들어서는 길을 지나치기 쉬우니 지표로 삼을 만한 것을 하나 눈여겨 보아두라고 일러주었다. 데이브가 일을 시작한 첫날 그는 세 번 농장을 왔다갔다할 때까지는 길을 잘 찾아다녔다. 네번째로 농장으로 들어오려다가 그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지표가 될 만한 것을 정해놓으라고 했는데 정해놓지 않은 모양이지?" 그가 대답했다. "눈여겨보아둔 게 있었죠. 그런데 그놈의 소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더라구요."
내가 신문기사의 조판작업을 하고 있는데 입덧으로 인한 구역질이 시작되어 나는 휴가를 얻어 그날 하루를 쉬어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신문사에서는 나 대신 작업을 할 사람을 불러왔는데 그 사람은 내가 독감에 걸려 쉬는 줄 알고 감염을 막으려고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입에 마스크까지 하고 작업을 했다. 그것을 보고 동료 한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한다고 입덧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저녁, 내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몹시 붐비는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손님이 계산서와 돈을 내게 주며 잔돈은 가지라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낸 돈에는 나에게 주는 팁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음식값도 4달러나 모자랐다. 그래서 마침 식탁을 치우고 있던 동료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는 싱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그 손님은 다시 돌아올테니까.” 그의 손가락 끝에는 그 손님이 놓고 간 자동차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어느 날 한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밀크셰이크와 바나나 스플릿을 시키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께선 무얼 드시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저는 먹지 않겠어요. 다이어트중이거든요." 그러자 아들 하나가 불안한 표정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또 내 것을 뺏어먹으려고 그러는거지?"
물리치료사로서 일을 시작한 나는 수줍음을 타는 편이다. 나는 손님들을 치료해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좋아했지만 손님이 혹시 내 사생활에 대해 물어오면 당황하는 때가 종종 있다. 하루는 100살 먹은 할머니가 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결혼한 여자라는 걸 알고 아이가 있느냐고 묻길래 없다고 대답했더니 "왜 어린애를 안 갖지?" 하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둘 다 결혼해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처지라 시간이 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할머니가 아무 말이 없어서 나는 이제 됐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더니 내 손을 툭 치면서 말했다. “이봐요, 젊은이. 불과 15분밖엔 안 걸려."
붐비는 식당 안에서 종업원들 몇 사람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삐삐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삐삐로 손이 갔다. 그때 우리 옆 식탁에 앉은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두 총을 다시 집어넣으시죠. 총은 내가 먼저 뽑았으니까요."
보안요원인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경비원들이 근무를 제대로 하고 있나 감시하는 일이다. 어느 날 새벽 3시에 한 경비초소를 불시에 찾아갔더니 경비원이 책상에 앉아서 두 팔을 포개고 그 위에 머리를 얹고 있었다. 나는 그를 깨우려고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메모판을 떨어뜨려 보기도 하고 쓰레기통을 덜거덕거려 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더니 "아멘" 하고 말했다.
우리는 결혼 후 아내의 고향인 영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런던의 개트윅 공항에 도착하자 아내는 영국여권을 가졌기 때문에 내국인 검사창구로 가고 캐나다가 국적인 나는 외국인 창구로 가야 했기 때문에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내 차례가 되자 입국심사관이 여행목적이 뭐냐고 물었다. 그래서 “관광입니다. 신혼여행을 왔죠”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입국심사관은 내 주위를 살펴보더니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 참 이상하군요. 신혼여행은 부인과 함께 하는 법인데요."
우리 교회의 봉사단은 겨울이 되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모여 누비이불을 만든다. 그런데 최근 단원 가운데 한 사람인 아일린이 홑이불을 큰 박스로 하나 가득 가져와 해외에 가 있는 선교사들에게 보내게 그것들을 찢어 붕대로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서 그 홑이불들을 너비 5cm로 찢어 단정하게 말아 목적지로 보냈다. 몇 주 후 아일린은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붕대를 보내줘서 고마웠지만 홑이불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시 꿰매 붙여 홑이불로 만들어 잘 쓰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인쇄소에서 근무하는 우리들은 고객들에게 인쇄기계가 매우 복잡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가끔 있다. 한번은 우리 여직원이 어떤 여자손님에게 복사기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복사기는 확대, 축소는 물론 간추리기, 용지 크기 변경, 명암조절 기능 등이 갖춰져 있었다. “조작법은 아주 간단해요. 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명령만 하면 되거든요. 그러면 시키는 대로 해주니까요." 그러자 그 손님은 걱정이 사라진 듯 복사기 앞으로 가더니 이렇게 명령했다. “양면을 복사해라."
어느 날 나는 백화점의 가정용품부에서 상품에 쌓인 먼지를 털며 재고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작업 도중 들고 있던 큰 장식용 항아리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항아리는 단단한 타일바닥에 떨어져 몇 번 튕기더니 요란하게 소리를 내면서 통로를 따라 굴러갔다. 나는 허겁지겁 그 항아리를 잡으려다가 이번에는 항아리를 발로 차고 말았다. 그러자 항아리는 더 빨리 더 멀리 굴러가고 말았다. 항아리는 결국 바닥에 진열해 놓은 물건에 부딪힌 후에 멎었다. 그런데도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어떤 여자손님이 내게로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거 이리 줘요. 내가 살테니까."
내가 어느 날 박물관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어떤 부부가 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심이 각각 다른 것 같았다. 아내는 들어 오자마자 넋을 잃고 전시품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남편이란 사람은 안내데스크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우리 박물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남편되는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해서 박물관에 오시게 됐습니까?" 그러자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길을 가다가 잘못 들어왔을 뿐이오."
꽃가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조그만 우리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환히 알게 된다. 최근에는 한 총각이 한 여인에게 꾸준히 꽃다발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한참 열애중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로맨스는 시들어가고 있는 로맨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꽃을 받던 여인이 꽃가게에 들어오더니 그 남자 집에 보낼 큰 선인장 하나를 주문했다. 그 여인은 옆으로 비켜서더니 종이쪽지에 무어라고 적었다가 찢어버리기를 몇 차례 되풀이한 끝에 마침내 완성된 종이쪽지 하나를 화분에 붙였다. 그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걸 깔고 앉으라구요."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11일 발표된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평화상은 노벨의 고국 스웨덴이 아닌 이웃 나라 노르웨이에서 국제 분쟁 해결, 인권과 민주화에 기여한 이 및 기관에 주고 있다.
상을 주관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올해 “총 286명의 개인·단체 후보가 추천됐다”고 밝혔다. 지난해의 351명보다 많이 줄었지만, 수십 명 정도로 알려진 과학 분야보다 월등히 많다. 최고 기록은 2016년의 376명이다. 이렇게 후보가 많은 것은 추천권자가 다른 부문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법정에서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 생전 알렉세이 나발니의 모습>
노벨상 후보가 되려면 주최 측이 선정한 추천권자로부터 추천받아야 한다. 과학 분야의 경우 해당 분야 전문가로 한정하지만, 평화상 후보 추천권을 가진 사람은 각국 정치인과 장관급 인사, 학자, 국제 관계 및 국제법 연구소의 관계자 등 최소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매년 9월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평화상 후보자를 추천받고, 3월 말까지 20여 명의 최종 후보군(쇼트리스트·shortlist)을 추린다. 쇼트리스트에 오른 인물은 50년간 공개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추천자들이 언론에 자신이 누구를 후보로 미는지 밝히면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지난 2월 옥중 의문사한 러시아 민주화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기구, 국제사법재판소, 투옥된 위구르족 인권 운동가 일함 토티, 프란치스코 교황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1974년 “노벨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준다”는 규정이 생겼기 때문에 나발니는 받을 수 없다. 대신 그가 이끌던 러시아 인권 운동 단체 ‘반부패 재단’이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나발니의 아내 율리야 나발나야와 동료들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241011)
이스라엘이 최근 중동 전역으로 전선을 확대하자 지난 2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죽음을 부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폭력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법전과 성경에 적힌 격언으로 알려졌다. 유대교와 이슬람 경전에도 같은 내용의 구절이 있다.
<지난 2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신체 부위 중 왜 하필 눈과 이만 언급했을까.
이 표현은 후대 사람들이 짧은 격언으로 쓰기 위해 전체 내용을 요약한 말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상해(傷害)에 관한 규정에서 눈을 빠뜨린 경우, 뼈를 부러뜨린 경우, 이를 빠뜨린 경우, 뺨을 때린 경우 등을 나열하고 있다. 재판에 대해 언급한 구약성경 신명기에도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라고 적혀 있다. 죄에 합당한 판단을 내리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처럼 ‘상해를 가한 이상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을 담은 고대 원전(原典)은 꼭 눈과 이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후대 사람들은 왜 하필 눈과 이를 언급했을까. 이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보는 것과 먹는 것이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신체적 기능이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치료가 어려웠던 당시로선 가장 다치면 안 되는 부위가 상징적으로 언급됐다는 얘기다.(241008)
1일 일본 자민당 이시바 시게루 총재가 이끄는 새 내각이 공식 출범했다. 이시바 총리와 신임 장관들은 천황의 공식 임명을 받은 직후 총리 관저의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여성 장관 두 명을 제외하면 모두 연미복을 차려입었다. 일본 정치인들은 왜 공식 행사에서 꼭 연미복을 입을까?
일반적으로 턱시도보다 연미복이 더욱 격식 있는 정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옷의 정확한 명칭은 ‘모닝 드레스(morning dress)’로, 18세기 전후 영국 귀족들이 낮에 업무를 보고 승마할 때 입던 옷이다. 궁정에 들를 때 격식을 갖출 수 있도록 옷감이 길게 늘어져 엉덩이 부위를 가리지만, 승마할 땐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운데 부분이 갈라져 있다.
<1일 출범한 일본 이시바 시게루 내각 관료들이 총리 관저 계단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기 전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맨 앞줄 가운데가 이시바 신임 총리.>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으로 서구 열강들과 수교를 맺으면서 동등한 국제적 지위를 갖추기 위해 서양의 의복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이후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국가를 대표해 해외 국빈을 만나는 자리에선 꼭 모닝 드레스를 입으며, 특히 천황을 알현하는 자리에서는 이 복식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 생겼다. 일반인들도 자녀의 결혼식이나 학교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 빌려서 입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여성 국회의원은 보통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많이 입지만 요즘엔 활동하기 편한 양장도 많이 입는다.(241003)
한국 증시의 글로벌 ‘왕따’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과 중국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불을 지핀 글로벌 증시 랠리에서 한국 주식시장만 소외된 모습이다. 빠질 땐 더 빠지고, 오를 땐 덜 오르는 장세가 이어지자, 투자자들의 탈(脫)한국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2일 코스피가 1.2% 떨어진 2561.69로 마감했다. 지난 1년간 상승률은 6.5%로 주요국 증시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한국 코스피 상승률은 6.5%로 전 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확전 우려로 긴장감이 가득한 이스라엘 증시(13.8%)보다도 부진하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는 5.6% 떨어지며 최악의 성적을 냈다.
한국 주식시장은 올 상반기 인공지능(AI) 열풍이나 하반기 금리 인하 및 경기 부양 호재에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등 특정 종목군에 과도하게 쏠린 국내 증시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내년 도입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를 둘러싸고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국내 증시를 짓누른다.
글로벌 증시는 미국 금리 인하와 중국 경기 부양이라는 겹호재로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경기 호전세가 뚜렷한 미국 3대 지수는 연일 축포를 터뜨리고 있고, 중국 본토 증시는 6거래일 동안 25% 올라 지난 1년 반 동안의 부진을 단 1주일 만에 만회했다. 일본·대만·독일·인도의 대표 지수가 올해 초강세장을 지속했고, 지난달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까지 사상 최고치 기록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은 딴판이다. 지난 7월 초 2900선에 육박했던 코스피는 어느새 2500선으로 내려앉았다. 미국 경기 침체론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했던 지난 8월 5일 쇼크 이후에도 회복세가 더디다. 코스피는 8·5 쇼크 이후 5% 상승해 10~20% 오른 주요국 증시에 비해 크게 뒤진다. 한국 증시가 어느새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후진국형’ 증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안 보이고 마땅한 호재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증시 펀더멘털(기초 체력)인 기업들의 이익이 증가한다면 증시는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급감하는 기업 실적 전망이 발목을 잡는다. 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실적을 전망하는 상장사 249곳의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69조1780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 전망치보다 약 3조원 감소했다.
특히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23%를 차지하는 반도체 투 톱(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가 목표 주가를 ‘7만 전자’로 낮춘 데 이어 맥쿼리는 ‘6만 전자’로 조정했다. 지난 2일 삼성전자는 2023년 3월 16일 이후 처음으로 장중 ‘5만 전자’로 내려앉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외국인은 한국 증시를 ‘반도체 증시’로 여기는데, 반도체 겨울론이 불거지면서 한국 주식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주식시장에 신규 자금 유입이 거의 없어 점점 사막화되어 간다고 말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하루 평균 거래량은 15억주로, 2019년 이후 5년래 최저치다. 금투세 도입 논쟁이 길어지면서 자산가들은 관망하고, 일반 투자자들은 미국 등 해외로 주식 이민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 당시처럼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물량을 받아주는 개미 군단은 사라졌다. 올해 개인들이 순매도한 코스피 주식만 8조4000억원에 달한다.
분위기 반전을 기대했던 밸류업(기업 가치 개선) 지수도 결국 실망감을 안겼다. ‘고배당·저평가’ 종목들이 아니라 ‘저배당·고평가’ 종목들이 많아 수익 창출과 안정성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부실·적자 기업들이 제때 퇴출되지 않고 남아 시장 건전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처럼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차세대 기업들을 키워내지 못한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증시에선 삼성전자가 2000년부터 25년째 시가총액 1위를 유지할 만큼 산업 역동성이 떨어졌다. 반면 대만에선 아이폰 생산 업체인 폭스콘에서 반도체 기업 TSMC로 주도 주가 옮겨 갔고, 인도에서도 릴라이언스를 비롯한 IT 업체와 금융사들이 약진하고 있다.(241004)
‘90일이 지났습니다. 비밀번호를 변경해주세요’, ‘대소문자와 특수문자를 꼭 포함해서 설정해주세요’
그동안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을 속 터지게 만들었던 까다로운 ‘비밀번호 규칙’이 완화될 전망이다. 세계 각국과 기업들이 자체 비밀번호 규칙을 만들 때 표준으로 삼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17년 만에 위와 같은 비밀번호 관련 요구 사항을 더 이상 쓰지 말라는 새 지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안성과 해킹 방지 등을 이유로 인터넷 사이트들이 요구하는 복잡한 비밀번호는 노인 등에게 가장 큰 ‘디지털 장벽’ 중 하나였다. 현재 인터넷 업체 대부분이 쓰고 있는 ‘영문 대소문자·숫자·특수문자 1개 이상 포함’ ‘90일 이후 비밀번호 변경’ 같은 규정은 NIST가 2007년 내놓은 지침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이용하는 IT 기기와 인터넷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비밀번호를 잊지 않기 위해 기존 번호에 !나 @ 같은 추측하기 쉬운 특수문자를 돌려쓰거나, 아예 수첩이나 다른 곳에 적어두는 경우가 빈번하다. 복잡한 비밀번호가 오히려 보안성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 NIST는 지난달 공개한 ‘디지털 신원 지침(가이드라인)’ 개정안에서 ‘여러 문자유형을 섞어 쓰도록 하는 등 사용자에게 추가적인 비밀번호 규칙을 부과하는 행위’ ‘정기적으로 비밀번호 변경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기 사안으로 정했다.
NIST는 20년 가까이 인터넷 보안의 표준이 됐던 지침을 바꾼 이유에 대해 “인간은 복잡한 비밀을 기억하는 능력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암호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유형의 문자를 섞는 방식을 도입했지만, 유용하지 않고 기억을 못 해 발생하는 일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당초 IT 업계가 기대한 복잡한 비밀번호 유형은 ‘Vi@o^$90&54*’ 같은 난수형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기억하기 쉽게 영어 자판 왼손 위쪽에 있는 ‘qwer1234!’ ‘Qwer1234!@’ 등을 돌려 쓴다는 것이다. 또 비밀번호를 60~90일처럼 짧은 주기마다 변경하도록 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더 단순하고 누구나 유추하기 쉬운 비밀번호로 설정한다는 결론도 나왔다. NIST는 “비밀번호가 유출되지만 않았다면, 굳이 주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NIST는 비밀번호를 길게 만들 것을 권고했다. ‘B^$9t&5′처럼 복잡하지만 짧은 것보다는 ‘ReadTheNewspaper(신문을 읽다)’처럼 기억하기 쉽지만 긴 암호가 보안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NIST는 각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최소 8자, 최대 64자까지 암호를 허용할 것을 권장했다. 이외에도 모바일 인증번호, 생체인증 등을 활용한 2차 인증과 비밀번호 관리자 기능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비밀번호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에 새로운 보안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최근엔 지문, 얼굴인식과 같은 생체인증으로 온라인 서비스에 로그인을 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현재는 스마트폰의 ‘잠금’을 풀 때 주로 활용되는데, 이를 로그인 때도 적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애플·삼성 등 빅테크가 뭉쳐 만든 ‘패스키’ 방식이다. 이용자가 스마트폰에서 이메일·은행 앱을 열고 지문이나 얼굴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이용자는 복잡한 비밀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되고, 온라인에서 비밀번호가 해킹으로 유출될 가능성도 없다.
이용자마다 서비스 계정 수가 많아지고, 로그인 방식이 복잡해지면서 비밀번호를 관리하는 기능도 속속 나오고 있다. 애플은 최근에 ‘암호 앱’을 새로 만들었다. 내가 가진 앱과 웹페이지, 와이파이 등 각종 비밀번호와 유출 여부를 한 앱 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 구글도 비밀번호 관리자 기능을 통해 유출 여부를 이용자에게 전해주고 있다.(241004)
☞패스키
비밀번호를 대체하는 암호 방식이다. 비밀번호 대신 이용자가 갖고 있는 IT기기를 인증 수단으로 삼는 방식이다. 지문·얼굴 인식이나 핀번호 등으로 자신의 IT 기기에 접속하면, 비밀번호 입력 없이도 이메일·은행 등 각종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IT 기기를 도난당하지 않는 한, 해킹의 위험이 없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인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이달 중 한국에 출시된다.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지난해 4월 비만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지 1년 6개월 만이다. 제약사가 병의원과 약국에 공급하는 가격은 37만원대(4주 투약 기준)로 책정됐고, 유통 마진과 진료비 등을 포함해 환자가 실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80만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제약 업계는 위고비 출시가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하고 있다. 앞서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 등 유명 인사들이 위고비로 체중을 줄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1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위고비를 국내 출시하는 유통사는 15일부터 병의원과 약국 주문을 접수한다. 실제 환자에 대한 처방은 이달 하순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약은 펜처럼 생긴 주사제 방식으로 주 1회 투약하며 0.25㎎, 0.5㎎, 1.0㎎, 1.7㎎, 2.4㎎ 등 용량별로 5가지 제품이 있다. 적은 양부터 투약을 시작해 점차 늘려가는 방식으로 처방이 이뤄질 전망이다.
위고비의 국내 공급 가격은 37만원이고, 비만 치료제는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환자가 약가를 전액 부담한다. 이에 따라 유통 비용과 진료비, 처방비 등을 더하면 환자들의 실제 부담 비용은 월 80만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의료 기관마다 임의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어 편차가 크고, 출시 초기 수요에 따라 투약 비용이 변동될 수 있다”고 했다.
위고비는 원한다고 모두 처방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방 대상은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30㎏/㎡ 이상인 ‘비만 환자’다. 또 BMI 27㎏/㎡~30㎏/㎡ 미만 과체중이면서 한 가지 이상 동반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도 체중 감량 목적으로 처방할 수 있다.
위고비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소화 속도를 늦추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을 모방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해 식욕을 줄이고 포만감을 높여 체중 감량 효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앞서 2018년 국내 출시된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삭센다’도 GLP-1 계열로 분류된다. 하지만 투약 방식이 다르다. 매일 투약해야 하는 삭센다에 비해 위고비는 주 1회 투약으로 편리하고, 68주 투약 때 체중을 평균 14.8% 감량하는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투약 비용이 월 50만원 안팎인 삭센다는 56주 투약 기준으로 평균 7.5%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 현재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점유율 1위인 삭센다를 위고비가 곧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위고비가 흥행에 성공하면 경쟁사 일라이릴리의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의 국내 출시가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한다. 위고비처럼 주 1회 주사하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인 마운자로는 지난해 연말 미국에서 허가를 받은 이후 올해 2분기 만에 판매액이 43억4300만달러(약 5조9000억원)를 넘어선 ‘블록버스터(연매출 1조원 이상 약품)’다. 임상 시험에서 평균 22%(72주간 투약 기준) 체중 감량 효과를 거뒀다.
다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위고비 출시를 계기로 비만 치료제 남용 우려도 나온다. 박세은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출시 이전부터 환자들의 위고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해 ‘삭센다’ 출시 당시보다 더 심한 남용이 우려된다”며 “위고비 또한 부작용이 없지 않은 의약품으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며, 투약 중단 시 다시 살이 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241002)
주요 공기업, 준정부기관의 상임감사의 절반 이상이 정치권에서 온 ‘낙하산’ 인사로 집계됐다. 권력을 잡은 측에서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할 핵심 자리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하사품’처럼 내려보냈다는 얘기다. 대부분 감사들은 억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최근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은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특별한 금융 관련 경력이 없는데도 총선 출마가 좌절되자 차와 기사가 제공되는 연봉 3억원의 SGI서울보증 상근감사로 재직 중인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공분을 얻고 있다.
이를 계기로 본지가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금융위 산하 공공기관·준정부기관 40곳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상임감사 자리를 두고 있는 공공기관 28곳 가운데 공석인 5곳을 제외한 23곳 중 13곳(56%)에서 정치권 출신 감사가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 군·검·경·국정원 등 권력기관 출신 4명이 경력과는 전혀 상관 없는 에너지 공기업 상근감사로 일하고 있었다. 23명 중 17명(73%)은 ‘범정치권’ 인사로 채워진 것이다. 여야를 가릴 것도 없었다. 야당 때는 ‘낙하산 막자’를 외치다 여당이 되면 ‘낙하산 타자’로 돌변하고 마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현 정권 출신 인사는 4명이 최근 임명됐고, 문재인 정권 및 민주당 출신 인사도 3명이 아직도 재직 중이었다.
이들이 받는 금액도 상당했다. 이번 조사에서 나온 정치권에서 내려간 13명의 평균 연봉은 1억9160만원, 범정치권까지 포함한 17명은 1억8127만원을 받고 있었다.
상근감사 자리를 정권이 ‘보은성 인사’로 채우는 데 대한 비판이 과거에도 끊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상황이 변하지 않고 있다. 정치 권력이 공공의 영역을 도둑질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공공기관 상임감사는 기관장과 달리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내부적으로는 2인자의 권한을 갖는 ‘꽃보직’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공기관 중 상근감사를 두고 있는 곳은 대부분 비상장사다. 비상장사는 주주들의 감시를 덜 받기 때문에 상근감사의 전문성이 더 요구되지만, 오히려 견제가 느슨한 점을 악용해 낙하산 인사가 꽂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백상원 한국남동발전 감사는 경남일보 기자, 경상남도의회 도의원(1998~2006년) 출신으로 에너지 관련 경력은 전무하지만 지난달 감사로 임명됐다. 또 2010~2018년 충남 부여 군수가 주요 경력인 이용우 한국중부발전 상임감사도 지난달 임기를 시작했다. 한국가스기술공사에는 이명박 정부 경제수석실 행정관 출신인 송석훈 감사가 지난해 9월 내려왔고, 친박연대 출신인 윤상일 전 의원은 한국전력기술의 감사로 작년 2월 임명됐다.
민주당 출신으로 전 정권에서 임명돼 업무를 지속 중인 인사도 3명 있다. 임찬기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는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운영지원실장을 거쳐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냈다. 허완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감사는 차성수 전 금천구청장(더불어민주당)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이전 정부 때인 2021년 12월 임명돼 임기 2년은 지났으나 아직 감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정치권 출신 중 현 정권 인수위 또는 대통령실 출신은 4명으로, 이들은 모두 금융권 공공기관 감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은행·한국예탁결제원·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수출입은행으로 이 금융기관들의 감사 연봉은 2억원대에서 3억원대였다.
신용출 윤 대통령 인수위 위원은 연봉 3억4000만원인 한국예탁결제원 감사로 내려갔다. 특히 공공기관에 포함되지 않아 이번 조사에서는 빠졌지만, 김대남 전 행정관이 내려간 SGI서울보증처럼 겉으로는 공기업이 아니지만 대주주가 공기업이나 정부여서 사실상 정권의 입김이 좌우되는 업체들에도 정치권 출신 낙하산이 많이 있다. 검찰 수사관 출신으로 윤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주기환 전 대통령실 민생특보는 연봉 3억3000만원인 연합자산관리 감사 자리를 얻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계통은 상대적으로 고액 연봉이 많고 외부 노출도 적어 정치권 인사들이 선호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군·검·경·국정원 등 권력기관 출신도 많았다. 한국석유공사에는 검찰 직원 출신인 박공우 상근감사가 재직 중이다. 박 감사는 대검찰청 사무국장 시절,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징계에 반대하는 글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동서발전 감사위원으로 임명된 이철원 상임이사(전 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장)는 2020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 복무 시절 특혜 의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공공기관 감사가 ‘보은 인사’ 자리가 된 것은, 책임은 적고 대우는 좋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기관장을 감시하는 ‘2인자’이지만 기관장보다 업무 부담도 적고, 세간의 주목도가 훨씬 덜하기 때문이란 얘기다. 연봉은 최소 1억원 초반대이고 3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정치권 상임감사 중에 연봉이 1억원이 안 되는 경우는 석탄공사(9677만원) 딱 한 곳뿐이었지만 이 역시 1억원에서 300만원 남짓 모자랄 뿐이었다. 여기엔 판공비와 법인카드 등의 부수적인 혜택은 제외돼 있다. 공기업별로 보면 한국가스안전공사(1억5020만원), 한국남동발전(1억4557만원), 한국가스기술공사(1억3185만원) 등이다. 민주당 보좌관 출신인 김명수 한국남부발전 감사는 지난해 1억5486만원을 받았다.
공공기관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상근감사를 선임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주요 공공기관의 상임감사는 각 기관 임원추천위원회 추천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친다. 이후 대통령이나 장관이 임명한다. 그러나 업계에선 실질적인 경쟁 과정이 없는 형식상의 절차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비판 때문에 관련 법인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런 내용이 담긴 ‘낙하산 방지법’은 19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가 ‘낙하산 금지법’을 막고 있는 셈이다.(241004)
올해 1~7월 5억원 이상 대출을 받아 서울에서 집을 산 30~40대가 2021년 연간 전체의 3.7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출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2030세대 영끌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2021년과 달리 올해는 3040세대가 영끌 매수의 주축으로 떠올랐고, 대출 금액도 3년 전보다 급등했다. 이들은 거액의 빚을 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같은 인기 주거지의 고가 아파트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1일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실과 함께 올해 1~7월 서울에서 거래된 주택 3만2870건의 자금조달계획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3040세대가 5억원 이상을 빌려 집을 산 거래가 총 6562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1년 내내 3040세대가 5억원 이상 대출을 끼고 한 거래(1785건)보다 268% 증가한 것이다. 3040세대의 ‘고액 영끌’이 대출을 낀 전체 주택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2.1%로 2021년(4.5%)보다 급증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주택 수요자들 사이에서 서울 강남권 등 ‘똘똘한 한 채’는 결국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학습 효과’가 확산한 것이 3040세대의 고액 영끌로 나타났다”고 했다.
3040세대가 영끌을 주도하면서 올해 서울 전체 주택 거래에서 대출을 낀 거래 비율은 62.2%(2만444건)에 달했고, 평균 대출 금액은 4억7000만원으로 3년 전(2억7900만원)의 1.7배로 늘었다. 현재 집값이 6억원을 넘거나, 투기과열지구에서 집을 사는 사람은 자금조달계획서를 내야 한다. 서울 아파트 거래는 사실상 모두 포함된다.
맞벌이 직장인 김모(44)씨는 지난 7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를 23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주택담보대출 11억원에 신용대출 1억3000만원, 예금담보대출과 보험약관대출을 합쳐 4억3000만원 등 빚만 16억6000만원을 냈다. 자기자본은 서울 외곽 아파트를 판 돈과 주식 처분 대금을 합쳐 6억9000만원이 전부였다. 김씨는 “매달 이자만 400만원이 넘어 생활이 빠듯하지만, 부부 중 한 명 월급은 없는 셈치기로 했다”며 “자녀 교육이나 미래 자산 가치를 위해 무리해서라도 강남에 입성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해 강남권을 중심으로 서울 인기 주거지 아파트 값이 급등한 데는 김씨 같은 40대 고소득자의 ‘영끌 매수’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영끌 매수가 기승을 부렸던 2021년엔 대출로 서울에서 집을 산 거래 중 4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26.5%에 그쳤지만, 올해는 38.3%로 늘었다. 실제로 평균 대출 금액도 40대가 모든 세대 중 가장 많았다. 올해 1~7월 40대의 평균 대출 금액은 5억800만원으로, 3년 전(2억8800만원)과 비교해 76.4% 급증했다. 30대가 4억6200만원으로 뒤를 이었고, 50대(4억2900만원), 60대(4억700만원) 순이었다. 10억원 이상 빚을 내서 서울에 집을 산 ‘초영끌 투자’ 역시 40대가 681건으로 가장 많았다. 30대(301건)나 50대(216건)보다 배(倍) 이상 많은 것이다.
영끌 매수로 집을 사들이는 지역도 3년 전과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9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에 20대를 포함한 젊은 층의 영끌 매수가 집중됐다. 반면, 3040세대가 주도한 올해 영끌 매수는 고가 아파트 지역에 집중됐다. 3040세대가 5억원 이상 대출을 내 주택을 가장 많이 사들인 지역은 강남구(734건)였고, 이어 송파구(705건), 서초구(550건), 성동구(525건), 강동구(453건)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영끌 매수가 늘어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 15억원 넘는 고가 주택을 살 때도 대출이 가능해졌고, 올해 초부터 서울 아파트 값이 오름세로 돌아서자 대출을 활용한 ‘상급 지역 갈아타기’가 활발해진 탓”이라고 분석한다. 2020~21년 집값 폭등과 고금리에 따른 2022~23년 급락을 겪으며 ‘똘똘한 한 채는 다시 오른다’는 것을 체험한 30~40대 실수요자가 인기 주거지로 이동하려고 ‘영끌’에 나선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외곽 지역 1주택자가 대출을 활용해 마용성 지역으로 이사하고, 마용성에 살던 고소득 맞벌이 부부 등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며 강남권에 집을 마련하는 식이다. 서울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집값이 무섭게 뛰는 것을 경험한 30~40대는 10억원씩 대출을 받는 것에 별로 거리낌이 없다”며 “최대한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은행을 연결해 달라는 매수자가 많았다”고 했다.
문제는 경제 활동의 중심축인 3040세대의 영끌 열풍이 향후 국내 경제 전반의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 구매 시 자기자본 비중이 낮은 영끌족이 늘면 소득 중 상당 부분이 원리금 상환에 투입될 수밖에 없고, 이는 전반적인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적용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021년과 비교해 더 높다는 것도 내수 위축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3040세대 영끌족이 급증하면서 향후 서울 아파트 값이 급락할 경우 중산층 가계 경제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고 했다.(241002)
☞주택자금조달계획서
주택 매수자가 주택을 취득할 때 사용할 자금의 출처와 조달 방법을 신고하는 서류를 뜻한다. 주택 가액이 6억원 이상이거나, 투기과열지구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2021년에는 서울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였고, 올해는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이 12억원을 넘어 대부분이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고 있다.
재작년에 다니던 회사를 정년 퇴직한 남성 이은선(62·경기 의정부)씨는 지난 8일부터 의정부의 한 요양보호사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20~30년은 더 살 텐데 정년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요양보호사인 처제의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엔 ‘남자가 무슨 요양보호사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목욕을 돕거나 때론 용변까지 처리해줘야 하는 요양보호사 일이 여성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울산시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에서 남성 요양보호사 30여 명이 ‘직무 역량 강화’ 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강의를 들은 한 남성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후에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추가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남성 요양보호사가 요즘 늘고 있다”는 주변 권유에 이씨는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씨가 다니는 요양보호사학원의 남성 수강생 숫자는 전체의 20%다. 이씨는 “중풍이 심한 90대 장모, 함께 나이 들어갈 아내를 전문적으로 돌보기 위해서도 내가 자격증을 공부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A 요양보호사학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한 반 교육생 25명 중 남성은 2명 정도였지만 올해 들어 6~7명 정도까지 늘었다.
5060남성들이 요양보호업계에 뛰어들고 있다. 은퇴한 5060남성들은 그간 자영업이나 건물 관리직(경비), 택배나 택시 운전 같은 분야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곤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현업 남성 요양보호사 수는 2020년 2만4538명에서 지난 8월 기준 4만2672명으로 73% 증가했다. 남성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 수도 2020년 17만7051명에서 지난 7월 기준 30만4724명으로 72% 증가했다.
남성 요양보호사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에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경기도에서 활동 중인 한 60대 남성 요양 보호사는 “자영업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창업 비용이 드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망하기 딱 좋다”고 했다. 일선 요양보호사 학원 수강료는 80만~90만원 수준이고, 향후 취업하면 국가가 전액 환급해준다. 320시간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합격률은 90%에 육박한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5060 남성도 적잖다. 은퇴자 허영선(63·경기 남양주)씨는 지난해 11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허씨는 “뇌졸중에 걸린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비용도 많이 들 뿐더러 남의 손에 부모님을 맡기기도 편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자격증 취득 이후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가족요양급여 제도를 통해 시급 1만1000원 하루 3시간, 한 달 27일에 대한 급여 90만원을 수령한다. 몸이 편찮은 가족을 집에서 돌보고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야간 근무가 잦은 경비 업무나 사고 위험이 적잖은 택시·건설·택배보다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도 5060 남성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일부 5060 남성은 노인 요양원 창업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다. 사업가 김모(66)씨는 “향후 요양 산업이 유망할 것으로 판단돼 내가 직접 이 업의 속성을 알아보기 위해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노인장기 요양 등급자는 올해 105만명에서 2050년 297만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일선 요양업계에선 5060 남성 요양보호사의 유입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요양병원장은 “남성 노인들은 여성 요양보호사가 목욕을 시켜주거나 용변을 처리하는 일을 불편하게 여기곤 한다”며 “비교적 근력이 좋은 남성 요양보호사가 현장에서 환영받고 있다”고 했다. 일선 남성 요양보호사들은 “여성 요양보호사보다 훨씬 쉽게 구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정 방문 요양을 받는 남성 노인들에게 성희롱·성추행 등을 당하는 여성 요양보호사 문제도 5060 남성 요양보호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다만 올해 8월 기준 66만8309명인 전체 요양보호사 중 남성은 아직 4만2672명(6.3%)에 불과한 실정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고령화로 요양보호업 수요가 늘고 국가 재정 지원도 증가할 전망”이라며 “요양보호사 처우가 과거보다 나아지면서 5060 남성들의 유입도 향후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241002)
부산 금정구의 공설 봉안 시설인 영락공원에선 내년부터 매년 유골 1000~4000기가 ‘이사’해야 한다. 1995년 설립돼 유골 8만4000기를 봉안할 수 있는 이 추모 공원에선 화장(火葬)한 유골을 최장 30년 동안 봉안할 수 있는데, 내년 그 만기 시한이 닥치기 때문이다. 법률상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락공원을 비롯한 공설 추모 공원 대부분에서는 시설 포화를 막고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15~45년으로 봉안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실제 영락공원 봉안 시설의 포화율은 현재 87.2%.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국가 유공자 등을 위한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꽉 차 더 이상 일반 시민은 이용할 수 없다.
<최근 고령화로 사망자가 늘면서 수십 년 전 문을 연 전국 주요 공설 납골당들이 포화를 맞았다. 일부 납골당은 평균 30년(통상 15~45년)인 봉안 가능 기한이 도래한 유골에 대해 보관 연장을 위한 재계약에 나서거나 유족에게 반환하고 있다. 지난 29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연화장 실내 봉안 시설의 한 유골함에 ‘안치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유골 대이동’을 앞두고 유족들은 고민이 크다. 비교적 저렴한 공설 봉안 시설은 포화 상태가 많고, 비용도 2~10배 비싼 사설 시설로 옮기자니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경기도 한 공설 봉안당에서 계약 기간이 끝난 부모의 유골을 돌려받은 김모(71)씨는 “(부모님 유골을) 집 마당에 묻었다는 사람도 있고, 다른 납골당에 보냈다는 사람도 봤다”며 “내가 죽으면 관리할 사람도 없어 부모님 고향 땅에 뿌리려 한다”고 했다. 추모 공원 측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새로운 봉안 문의가 늘고 있지만, 오랜 기간 맡겨둔 유골을 찾아가지 않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부산시설공단 관계자는 “봉안 10~15년만 지나도 추모객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만기가 됐을 때 유골을 찾아가라고 안내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이 많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찾아가지 않는 유골은 절차를 거쳐 자체 처분할 수 있지만 일정 기간 따로 보관해야 하고, 나중에 혹시 모를 유족 항의가 있을 수도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박일도 한국장례협회장은 “전(全) 국토의 묘지화가 다시 우려되는 판”이라며 “장례 문화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코로나 때와 같은 ‘장례 대란’이 만성화될 수 있다”고 했다.
전국 유골 봉안 시설에서 고인의 유골을 맡아 보관하는 대략 30년 주기의 ‘만기’가 속속 도래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매장(埋葬) 위주 장례 문화가 있다가 ‘전 국토의 묘지화’ 우려가 커지며 1990년대 중반부터 화장 문화가 활성화됐다. 흔히 ‘납골당’이라는 봉안 시설 등을 갖춘 추모 공원도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년이 지나 새로운 유골을 받기 위한 기존 유골의 봉안 만기가 닥치면서 이른바 ‘조상님들의 대이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29일 경기 수원 영통구 수원시연화장의 실내 봉안당 곳곳에는 ‘봉안 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2000년에 설립된 이곳은 15년 계약 후 한 차례 연장해 최장 30년까지 유골을 봉안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영락공원은 최장 45년, 인천 부평 가족공원은 최장 30년 봉안할 수 있다.
당초 기한 없이 유골을 받아 봉안하던 전국의 추모 공원에선 수년 전부터 30년, 45년 등 최장 봉안 기간을 설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유골을 받을 공간 확보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장례를 치르게 된 유족들은 난감하다. 거주지나 고인(故人)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원정 봉안’을 가기도 한다. 3년 뒤 조부모의 유골 봉안 만기 시점이 다가온다는 최모(57)씨는 “부모님이 아신다면 속상하겠지만, 자식들에게 증조부모 유골까지 챙기게 할 수 없어 형제들과 상의해 자연에 유골을 뿌릴 예정”이라고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 사망자 가운데 화장 비율(화장률)은 93.6%에 달해 보편적 장사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고령화 등으로 사망자도 쏟아지고 있다. 2014년 26만8000명이던 연간 사망자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2022년 37만3000명에 달했고 지난해 35만3000명, 올 들어 7월까지 20만6000명을 기록 중이다.
이에 따라 설립된 지 수십년이 지난 전국 공설 봉안당은 상당수가 포화 상태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은 지난 2022년 코로나 때 봉안 시설의 99.6%가 차 더 이상 봉안이 불가능해졌다. 현재도 95.3%가 포화된 상태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부산추모공원도 봉안 시설 포화율이 95% 수준에 달했다.
추모 시설들에서 매년 만기가 도래해 재계약이 필요한 경우의 10% 정도는 유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미조치 유골’이 된다. 한 봉안당 관계자는 “미처분 유골을 줄이기 위해 안내문도 붙이고 우편과 전화, 인터넷 등 여러 방법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주인 없는 유골은 더 늘고 있다”고 했다. 경기 이천 시립 추모의집은 무연고 유골 수를 줄이기 위해 만기 도래 1년 전부터 등기우편, 문자 등으로 유족들에게 알리고 있다.
인구구조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만큼 장례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에 있는 묘지만큼은 아니지만 봉안당, 수목장 등으로 구성된 추모 공원 역시 공간이 많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줘야 한다. 따라서 이보다는 산이나 바다 등에 유골을 뿌리는 ‘산분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장례 관련 법에는 산분장과 관련한 규정이 없었지만, 내년부터 법 개정을 통해 산분장 개념이 제도화될 예정이다. 정부는 산분장을 장려하기 위해 구체적인 산분장 가능 구역 등을 지정할 방침이다. 한국장례협회에서는 꽃밭 등 특정 공간에 유골을 뿌리는 것으로 장례와 추모를 대체하는 ‘들꽃장’을 장려하고 있다.
제사 등 전통 문화가 간소화되는 추세에서 후손에게 봉안된 선대의 유골 관리를 맡기기도 난감하다는 반응도 많다. 복지부 관계자는 “유골을 특정 공간에 보관하는 이유는 유족들의 상실감을 달래고 추모하기 위함인데, 핵가족화로 추모할 가족도 많이 없는 현실”이라며 “온라인상에서 고인을 기리는 ‘디지털 추모 공간’을 활성화해 장례 문화를 아예 바꾸고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241001)
☞산분장(散粉葬)
화장한 유해를 산, 바다 등에 뿌리고 표지를 두지 않는 장사 방법. 산은 장사시설 내 지정 구역이나 유족 사유지 등에, 바다는 양식장·항로가 아닌 육지로부터 5㎞ 이상 떨어진 일정 구역 등에 뿌릴 수 있다. 강은 대부분 상수도 보호 구역이어서 권장하지 않는다.
A씨는 3세 아이가 달리는 버스에서 말을 듣지 않고 창문을 열려고 하자, 아이의 상의를 거칠게 뒤로 잡아당겨 앉혔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손가락으로 아이의 이마를 수차례 때렸다. 초등학교 3학년 교사인 B씨는 아이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자 “OO이는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1, 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 갔다만 했나 봐” 등의 말을 했다. A씨와 B 교사 모두 재판에 넘겨져 ‘아동 학대’로 인정됐다. 피해 아동들이 폭행으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받았고, 동급생들 앞에서 반복적으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는 취지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9일 ‘가정·학교 내 아동 학대 및 훈육 판단 지침서’를 제작해 배포한다고 밝혔다. 아동 학대에 관한 법원의 유무죄 판례와 불송치, 불입건 등 사례 총 172건을 담아 해설했다.
C씨의 아이는 달리는 승용차에서 떼를 쓰며 창문과 차량의 문을 열려고 했다. 어머니 C씨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아이를 떼어놓는 과정에서 얼굴 부분을 2차례 손으로 때렸다. 검찰은 “아동을 올바르게 양육하기 위한 정상적인 훈육 범위”라며 불기소 처분했다.
초등학교 D 교사는 교실에서 아이 2명이 손을 들지 않고 말하거나 떠들자 “너 감금이야”라면서 수업이 끝난 후에도 교실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D 교사가 미리 아이들에게 ‘떠들거나 잘못하면 교실에 남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겠다’고 했고, 교실 안에 남은 아이들의 행동을 크게 제약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정서적 학대가 아니라고 봤다.
지침서에 따르면, 가정 내 학대는 부모가 ‘훈육 목적’임을 주장하더라도 재판부가 양형 이유로 참작할 뿐 아동에게 미친 상해나 두려움·수치심 등을 고려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에서 교사의 훈육은 재판부가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한지’ ‘수단이나 방법이 적절한지’ ‘그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었는지’ 등을 근거로 판단하는 추세다. 2014년 시행된 아동학대처벌법은 가정과 학교 등에서 아동에 대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금지하고 처벌토록 했다.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벌어진 2020년 아동 학대 신고 건수는 1만6149건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만8292건으로 늘었다.(240930)
지난 24일 오전 10시 정각, 한 공연 사이트에서 가수 나훈아씨의 11월 16일 경남 진주 콘서트 예매가 개시됐다. 5200여석 좌석이 매진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본지 기자가 좌석을 선택하고 예매 버튼을 눌렀지만 ‘접속 대기 중’이라는 문구와 함께 수천명 대기자가 있다는 상태창만 나올 뿐이었다. 2분쯤 대기하자 ‘다른 고객님이 선택한 좌석입니다. 다른 좌석을 선택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나왔고, 곧 전석 매진됐다. 불과 수 시간 뒤 각종 중고 거래 사이트에 콘서트 매물이 쏟아졌다. 정가 16만5000원짜리 표가 40만원 넘는 가격에 나와 있었다. 지난 21~22일 열린 아이유 콘서트 티켓도 정가 12만원짜리 표가 25만원에 거래됐다.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공연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2022년 4224건으로 2년 새 11.8배로 증가했다. 프로스포츠 암표 신고 건수는 지난 8월 기준 5만1405건으로 2019년 6237건의 8.2배로 늘었다. 지난 20일 기아 타이거즈 경기 표 예매 사이트에선 이번 시즌 마지막 홈경기인 25일 경기까지 매진이었다.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1만4000원인 평일 일반석 티켓이 4만원, 4만5000원인 챔피언석은 12만원에 나와 있었다. KTX 등 열차 암표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추석 연휴 때도 서울~부산 편도 KTX 표(정가 5만9800원)를 10만원 넘는 가격에 판매한다는 중고 거래 판매자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공연·스포츠·교통수단 등을 가리지 않고 암표가 기승을 부린다. 암표상들은 티켓 예약 과정에서 명령을 자동으로 반복 입력하는 프로그램인 ‘매크로’로 티켓을 대량 확보한 뒤 웃돈을 얻어 암표를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좌석 선택, 보안 문자 입력, 결제 정보 입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소화하려면 일반인은 몇 분이 걸리지만 전문 업체들은 단 몇 초 만에 예약을 완료한다. 일각에선 아예 ‘티켓 대리 구매’를 내걸고 영업까지 하는 실정이다. 사실상 ‘변종 암표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기자들이 27일 한 티켓 대리 구매 업체 사이트에 접속했다. ‘최고의 예매 전문가들이 당신의 성공적인 예약을 책임진다’는 문구가 보였다. 나훈아씨 등 트로트 가수 콘서트부터, NCT 등 K팝 아이돌 콘서트, 외국 가수의 내한 공연까지 모두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 업체에 나훈아 콘서트 대리 예매를 문의해봤다. “표 원가를 제외하고 1장당 R석은 15만원, S석은 10만원”이라고 했다. 사실상 티켓 가격만큼의 구매 대행 수수료를 요구하는 셈이었다.
업체는 “1열 중앙부터 뒷열 사이드 순으로 예매를 시도한다”며 “예약에 실패할 경우에는 전액 환불을 보장한다”고 했다. ‘예약에 매크로를 사용하느냐’는 질문에는 “영업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불법 아니냐’는 질문에는 “콘서트 예매로 인해 지금까지 어떠한 사고나 문제는 일어난 적이 없다”며 “안심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가수 팬은 “100% 성공률이라니 그 정도 값을 치러도 만족한다”며 “티켓 예매 전쟁을 벌이느니 차라리 속 시원하게 돈을 주는 편이 낫다”고 했다.
현행 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을 보면 매크로를 이용해 구매한 암표를 판매하는 행위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정부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매크로 사용 자체는 불법이 아니고, 암표 판매 행위 자체를 입증하기도 만만치 않다. 주요 티켓 판매 사이트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YES24는 “매크로 프로그램 이용 여부는 현존 기술로 확인하기 쉽지 않다”고, 인터파크는 “안면 인식이나 지문 등 생체 인식 정보를 활용해야 매크로 사용을 간신히 근절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티켓 구매 대행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리 업체도 수년 새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문화 공연·스포츠 경기가 인기를 끌며 암표 판매를 목적으로 한 매크로 예매, 구매 대행 비중이 늘어나면서 개인이 정상적인 경로로 예매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며 “티켓 가격만큼의 구매 대행 수수료 지불이 일상화한다면 시장 자체가 망가지는 것”이라고 했다.(24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