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낯설다
천양희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고 말할 때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가 좋아질 때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받침을 물끄러미 볼 때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할 때


소유를 자유로 바꾼 사람을 잊어버릴 때


슬픔을 이기려고 꽃 속에 얼굴을 묻을 때


목 놓은 바람 소리 나를 덮칠 때


먼 것이 있어서 살아 있다고 중얼거릴 때


남의 고통 앞에 '우리'라는 말을 쓰고 후회할 때


흰 구름으로 시름을 덮으려고 궁리할 때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쓸 때
나는 낯설다

 

 

*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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