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깻잎 100g의 소매가격은 3608원이었다. 지난 7월 1일만 해도 2049원이었는데, 3개월 만에 70% 이상 오른 것이다. 
깻잎뿐 아니라 배추, 상추 등 한국인의 식탁 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채소 가격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한 대형 마트 채소 바이어는 “폭염, 폭우가 반복되는 극한 기후가 채소 가격 상승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전 세계가 극한 기후에 따른 식재료값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폭염, 폭우, 가뭄 등으로 지중해에선 올리브가, 아프리카에선 코코아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특히 올해 여름 지구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것으로 조사되는 등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더위가 물가 상승을 불러온다는 의미의 신조어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을 일상적으로 쓰는 시대가 됐다.

 

 

<폭염을 비롯한 극한 기후가 불러온 물가 상승에 전 세계가 시름하고 있다. 
올해 코코아 주산지인 가나에 폭염과 가뭄, 병충해 등이 덮치면서 전 세계 초콜릿 가격이 폭등했다. 
가나 공무원이 가뭄과 병충해 피해를 당한 코코아나무의 잎을 들고 있는 모습.>



배추는 생육 기간이 통상 3개월 정도로 피해를 입으면 복구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배추와 비교해 생육 기간이 짧은 상추, 깻잎 가격도 고공 행진하는 이유는 뭘까. 
유통업계 관계자는 “극한 기후에 직격탄을 맞은 건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8월 장마로 상추, 깻잎 등 하우스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충청 지역 상추는 약 70%, 깻잎은 40~50%가 침수 피해를 입었어요. 밭을 갈아엎고 다시 심었는데, 이어진 폭염에 상추와 깻잎이 녹아내리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또 밭을 갈아엎었는데, 9월 중순 폭우로 상추 주산지인 논산, 익산 등이 또다시 침수 피해를 입었죠. 
폭우, 폭염, 폭우로 이어지는 극한 기후에 밭을 갈아엎고 다시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된 겁니다.” 
국내 대형 마트 관계자는 “현 기상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한 달을 가야 깻잎, 상추 등의 가격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여름(6~8월)은 국내 기상 관측망이 확대된 1973년 이후 전국 평균기온(25.6도), 평균 최저기온(21.7도), 평균 열대야일(20.2일) 모두 1위를 기록했다. 
9월에도 더위가 계속되면서 농작물의 작황이 부진해졌고, 출하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히트플레이션에 소비자, 식당 주인, 농부 모두 아우성이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기가 두렵다고 하고, 자영업자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에도 울분을 토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형 마트 관계자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물을 계속 쓰고, 인건비가 늘면서 농가들도 남는 게 없다고 난리”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심각한 가뭄을 겪은 그리스의 올리브밭이 황폐해진 모습이다>

 

히트플레이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연합(EU) 산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여름 지구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것으로 조사됐다. 
지중해 지역에 폭염과 심각한 가뭄이 나타나면서 스페인의 올리브 생산량은 40% 줄었다. 
지난 6월 올리브 가격은 작년 대비 27% 올랐다. 코코아 주산지인 아프리카 가나와 아이보리 코스트 또한 폭염과 가뭄에 병충해까지 덮치면서 초콜릿 가격이 올해 200% 이상 오르기도 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중국 신화통신은 “28가지의 채소 도매 평균 가격이 두 달 사이 40% 올랐다”며 “올해 여름은 평균 이상의 폭우와 폭염으로 채소 출하량이 줄었고, 이상 기후로 물류 가격도 높아져 채소 가격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타임지는 “기후 재앙에 따른 식재료값 인상으로 전 세계 많은 정부가 패닉 모드”라고 보도했다.


미국 코넬앳킨슨지속가능성센터와 캔자스대 등은 캔자스주 7000개 가까운 농장의 39년 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옥수수, 콩, 밀 생산량은 16~2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 사용량 증가, 인프라 추가 설치 등으로 농가의 순수익은 34%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글로벌 극한 기후가 농작물 생산량 증가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며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전 세계 농업 생산성이 지금보다 20%는 높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중앙은행은 폭염 때문에 앞으로 10년 동안 연간 식량 물가가 최대 3.2%포인트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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