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 수천억원짜리 초고가 기기가 즐비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올 1월 각 사업장에 신규 장비를 설치했다.
다름 아닌 ‘한강 뽀글이라면 기기’다.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기기인데 작년 말 시범 도입했다가 직원들의 반응이 좋자 전면 확대한 것이다.
올 4월엔 다이어트·건강에 부쩍 신경 쓰는 직원들을 위해 ‘웰핏 투고’라는 건강식 코너를 추가로 만들었다.
직원들은 매일 ‘저염 소이소스치킨덮밥(420㎉)’ ‘당뇨케어 간장돼지구이연근밥(510㎉)’ 같은 4종의 건강 도시락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밖에 나가면 워낙 인기가 많아 소위 ‘오픈런(개점하자마자 달려가는 것)’ 해야 먹을 수 있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 노티드 도넛, 쉐이크쉑 버거 같은 인기 메뉴를 주 1~2회 식사로 제공한다.
매달 2~3번은 아예 싸갈 수 있는 테이크아웃(Take-out)용으로 나눠준다.
이뿐 아니라 점심 시간에 사내 식당에 가면 한식부터 양식, 햄버거, 도시락 등 최대 12개 메뉴 중 하나를 골라 먹을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기도 화성 캠퍼스 사내 식당 테이크아웃(Take-out) 코너에서 한 직원이 선식, 시리얼, 베이커리, 프로틴(단백질) 음료, 유제품 등 다양한 메뉴를 살펴보고 있다.>
전체 직원이 7만7000여 명에 이르는 삼성 반도체가 하루에 제공하는 식사만 20만8000식(食)으로, 매일 쌀 6.7t(톤)에 포기김치만 4.6t이 나간다. 삼시 세끼 모두 무료다.
산업계에서 치열한 ‘밥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 기업부터 저비용 항공사에 이르기까지 ‘밥’이 우수 인재를 잡고, 또 충성 고객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 간 기술, 인재, 고객 쟁탈전이 뜨거운 가운데 ‘밥맛’이란 원초적 본능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행보는 ‘인재 쟁탈전’이 치열한 경쟁사 SK하이닉스를 의식한 것이다.
3만2000여 직원을 둔 SK하이닉스는 현재 CJ, 신세계, 삼성, 후니드, 진풍푸드 등 5곳의 사내 식당 운영 업체를 두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운영 업체끼리 경쟁을 유도해 식사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실제로 입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업체들은 요새 인기인 ‘두바이 초콜릿 만들기’ 같은 쿠킹 클래스부터 이성당 빵, 북창동순두부, 아비꼬카레 등 외부 인기 메뉴를 사내 식당으로 끌고 들어오는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는 큰 공장이 있다 보니 밖에 나가서 먹기도 쉽지 않고, 주로 안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며 “근무시간을 감안했을 때 밥에 대한 만족도가 하루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년 직원 가족 초청 행사를 열어 회사 구경을 시켜주고 사내 식당 밥도 꼭 먹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가족에게 사내 식당을 소개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가족들도 회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다 보니 우수 인재를 붙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산업계에서 치열한 ‘밥 경쟁’을 벌이는 또 하나의 분야는 바로 저(低)비용 항공사들이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등 총 8곳으로 최근 경쟁적으로 기내식 신메뉴를 내놓고 있다.
아직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만큼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저비용 항공사들이 ‘맛있는 밥’을 앞세워 고객을 유혹하는 것이다.
제주항공은 작년 말 강남 미쉐린 식당인 삼원가든과 손잡고 ‘소갈비찜 도시락’과 ‘떡갈비 도시락’에 제주 딱새우 비빔장을 제공하는 특선 메뉴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엔 K푸드 매운맛의 인기를 활용한 불닭 소스 메뉴를 추가로 내놨다.
티웨이항공은 올 4월 대체육을 사용한 비건(vegan) 기내식을, 에어서울은 올 6월 일식 셰프인 정호영과 함께 명란크림우동, 카레우동 기내식을 선보였다.
에어부산은 지역적 특색을 살려 부산 맛집인 유가솜씨 닭갈비와 손잡은 기내식을 출시했고, 진에어는 ‘승무원용 제육덮밥’ ‘승무원용 곤드레나물밥’ 등 실제 승무원이 먹는 것과 같은 특식으로 차별화 중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미쉐린 식당 메뉴는 출시 8개월 만에 전체 기내식 판매의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라며 “4시간 이상 중거리 비행에서 기내식을 사전 주문하는 탑승객도 점차 늘고 있다”고 했다.
초기에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던 저비용 항공사들이 점차 서비스·브랜드 경쟁으로 넘어가며 벌어지는 현상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같은 목적지라면 기내식을 보고 항공사를 고를 수 있을 만큼, 차별화된 밥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고 충성 고객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동시에 수익을 높여주는 중요한 추가 수입원이기도 하다”고 했다.(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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