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대학병원 외과의 A 교수는 며칠 전 제자인 의대생 5명을 만났다. 그는 “복귀를 설득하자 그중 한 명이 ‘정부가 ‘필수 의료 패키지’ 같은 엉터리 정책을 먼저 폐지해야 한다’고 하더라. 이유를 물으니, ‘(지도부) 선배들의 판단이다. 우리는 거기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답하더라”라고 했다.
정부는 작년 2월 ‘필수 의료 (지원)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 진료과의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인상과 소송 부담 완화가 주 내용이었다. 이는 지난 20여 년간 의료계가 정부에 해결을 요구한 양대 숙원이었다.
정부는 당시 이 정책이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반발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릴 것으로 봤다. 의료정책연구원이 2023년 의대생 800명을 조사해 보니 52%는 “필수과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지만, ‘낮은 수가’(49.2%)와 ‘법적 보호 부재’(19.9%)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의대생 대표인 이선우씨는 지난 7일 수업 복귀를 거부하면서 “정부가 필수 의료 패키지를 먼저 철회하라”고 했다. 의대생의 핵심 요구를 담았다는 필수 의료 패키지가 되레 의대생의 ‘제1 타도 대상’이 된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불이 꺼진 채 의학서적이 놓여 있다.>
정부는 의대생이 복귀하면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의대생 대표는 “붕괴된 의료 전달 체계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복잡한 전달 체계 해결엔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의료계 내에서도 의대생 움직임에 대해 “무조건 버티자는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것 같다” “지금 의대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말 미스터리다”라는 말이 나온다.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은 지난달 28일 “정부가 소아 외과의 저수가 문제 등을 인식해 보상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가 전날 소아 외과 수술의 보상 강화 방안을 발표하자, 총 50여 명이 전부인 우리나라 소아 외과 의사들이 환영 성명을 낸 것이다. 소아 외과 처우 개선은 필수 의료 패키지 내용이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는 “필수 의료 패키지는 내용 자체로만 보면 필수과에 작지 않은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했다.
실제 정부는 작년부터 올 3월까지 필수 의료의 수가 인상에 건강보험 재정 1조590억원을 배정했다. 수가 인상을 위한 목표 투입액(연 2조원)의 53%가 이미 배정됐고, 필수과 의사들이 현장에서 ‘수가 인상’의 혜택을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정부에 따르면 소아(체중 1.5kg 미만)의 동맥관을 차단하는 ‘경피적 동맥관 개존 폐쇄술’은 수가가 212만원에서 최근 1060만원이 돼 5배로 올랐다. 소아 충수 절제술(맹장 수술)도 96만원에서 480만원이 돼 5배로 올랐다. 막힌 심장 혈관을 뚫기 위해 스텐트를 삽입하는 심장혈관 중재술도 기존 수가(스텐트 4개 삽입 시)가 226만원이었으나, 이젠 463만원이 돼 두 배로 인상됐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최근 필수 진료과 의사는 수술 부위 착오 등 어이없는 중과실을 범하지 않은 한 환자가 사망해도 처벌을 줄이거나 면제하는 의료 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안의 핵심 내용도 발표했다. 정부는 올 상반기 안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필수 의료 패키지엔 학생이 늘어난 의대에 2030년까지 국고 5조원을 들여 인력·시설·장비를 확충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정책에 따라 올해부터는 기존 소아과에 이어 내과·외과·흉부외과 등 총 9개 진료과 전공의의 수련 비용을 월 100만원씩 국가가 지원한다. 의대생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것들이다.
그런데 의정 갈등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정부의 필수 의료 패키지 효과가 점차 가시화되자,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이젠 환자 선택권 침해와 의료 질 저하를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내에선 “의대생과 전공의 지도부의 필수 의료 패키지 반대는 핑계일 뿐, 결국은 의대 정원을 줄여서 증원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라는 것”이라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미 상당수 과제가 이행 중인 상황에서 (의대생들이 요구하는) 필수 의료 패키지의 전면적 철회 주장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의대생들의 반발은 필수 의료 패키지 속 ‘비급여 진료 제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여기에는 도수 치료 등 비(非)중증·응급 치료의 실손보험 적용을 제한하고, 피부 시술을 의사 외 다른 직역에도 개방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이는 곧 의대생의 ‘미래 소득원’을 줄이는 것이어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의대생(본과 3학년)은 “필수 의료 패키지 안에 있는 진료 면허는 우리에게 족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진료 면허제는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를 따도 추후 1~2년간 수련을 하지 않은 일반의는 단독으로 환자 진료를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정부는 환자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의대생 입장에선 의대를 졸업하고 피부·미용 시장에 바로 진입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대에 온 것인데 협의도 없이 의사의 영역을 줄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250315)
2020년 미국 전역에서 흑인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BLM 시위’가 열렸을 때 워싱턴 DC 시위대가 집결한 곳은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Lafayette) 광장이다. 라파예트라는 이름은 이곳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걸쳐 도시·대학·공원·거리 등에 등장한다.
이름의 주인공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fayette, 1757~1834)은 프랑스 귀족 출신 군인이다. 열여섯 살 때 베르사유 궁정의 세도가인 노아이유 공작의 손녀와 결혼했다. 프랑스에서 탄탄한 미래가 보장돼 있었지만 1775년 미국 독립 전쟁이 터진 뒤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겠다는 의협심에 미국으로 향했다. 이후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는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 휘하에서 활약하며 영국군에 맞서 싸웠다.
<워싱턴DC 라파예트 공원에 있는 라파예트 후작 동상.>
워싱턴은 중립을 지키고 있던 프랑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라파예트를 참모로 중용했고, 1778년 프랑스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참전했다. 당시 라파예트가 없었다면 미국의 독립이 훨씬 늦어졌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는 독립 전쟁 승리의 공신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건국 초기부터 미국의 영웅이자 미국·프랑스 우정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1825년 라파예트가 영국에 큰 피해를 입혔던 벙커힐 전투 50주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했는데, 미국인들은 그를 환영하며 거리와 마을 이름에 ‘라파예트’를 붙였다고 한다. 현재도 인디애나·루이지애나·콜로라도·캘리포니아 등 여러 주에는 ‘라파예트’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들이 있다. 1834년 라파예트가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을 당시 그의 관 위에 미국에서 가져온 흙이 뿌려졌고, 무덤 곁에 성조기가 세워졌다. 그는 2002년 미국 명예 시민권을 받았다.(250313)
선진국이면서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이스라엘도 고민은 있다. 출산율을 견인하고 있는 ‘초정통파 유대인(하레디)’ 집단이 이스라엘 사회와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레디는 유대교 경전인 토라를 엄격히 따르는 삶을 추구하며, 세속적 가치와 문화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토라 구절을 들어 출산을 신의 뜻이자 제1의 의무로 여긴다. 하레디 가정의 평균 출산 자녀는 7명으로 이스라엘 전체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이스라엘 국민의 약 13%를 차지하는 하레디 인구는 2050년까지 30% 가까이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초정통파 유대인 집단인 '하레디' 사람들이 이스라엘 3대 순례 절기인 궨초막절궩 축제를 기념하며 유대인 전통 복장을 하고 자녀들과 길을 걷고 있다.>
문제는 하레디 인구 증가가 이스라엘 사회의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레디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유대교 전통과 유대인 정체성을 지키는 데 기여한다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됐다. 그러나 건국 초기 400여 명에 불과했던 면제 대상자는 하레디 인구가 증가하면서 급속도로 불어났고, 이들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비판은 날로 커졌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군 전사자가 속출하면서 하레디도 입대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하레디 정치 세력이 반발하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해 6월 하레디에 대한 징집 시행을 명령했지만, 올해 1월 기준 징병을 통보받은 1만여 명 중 실제 징집자는 338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 곳간이 하레디 뒤치다꺼리에 쓰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레디 남성의 절반은 평생 직업 없이 율법과 경전 연구에 매진하면서 국가 보조금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여성의 경우 80%가 일을 하지만, 주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고 노동 시간도 일반 유대인 여성에 비해 20% 적다. 그 때문에 하레디 인구 절반 이상이 빈곤층이고, 가구 소득의 26%는 아동 수당 등 복지 혜택이 차지한다.(250312)
성조기 디자인의 모자와 재킷을 입은 백인 중년 남성 캐릭터 ‘엉클 샘(샘 삼촌)’은 19세기 초반부터 미국이라는 나라를 상징해왔다. 미국에서 “엉클 샘에게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남자 이름에는 ‘톰(Tom)’도 있고 ‘존(John)’도 있는데, 왜 하필 ‘샘’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새뮤얼 윌슨(Samuel Wilson, 1766~1854)이라는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812년 발발한 미·영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뉴욕주에서 정육업을 하던 새뮤얼 윌슨은 미군과 계약을 맺고 소금에 절인 소고기를 납품했다. 새뮤얼이 공급한 육류 통조림엔 미국 제품이란 의미에서 ‘U.S’라는 도장이 찍혔는데, 군에 통조림을 배달하던 마부들은 US를 ‘새뮤얼 삼촌’(Uncle Samuel)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미군들도 이 통조림을 ‘새뮤얼 삼촌이 준 선물’로 받아들였고, 그와 관련이 없는 US 도장이 찍힌 군수 물자까지도 새뮤얼의 선물로 인식됐다.
1961년 미 하원은 새뮤얼 윌슨의 공로를 인정해 그가 ‘엉클 샘’의 기원이라는 점을 공식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새뮤얼 윌슨이 활동했던 뉴욕주 트로이시의 역할이 컸다. 트로이시는 새뮤얼 윌슨 기념 사업을 추진했고 현재까지 엉클 샘과 관련한 박물관, 동상, 묘지 등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 중이다.
다만 새뮤얼 윌슨이 ‘엉클 샘’의 기원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새뮤얼 윌슨이 미군에 납품 계약을 하기 전부터 ‘US’를 재치 있게 표현한 ‘엉클 샘’이 흔하게 사용됐다는 것이다. 당시 전쟁에 강제 징집된 병사가 정부를 비판하면서 이 표현이 언론 보도에 등장했다는 점 등이 증거로 제시된다.(250312)
캐나다 신임 총리에 오른 마크 카니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은행(BoE·영국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했다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인이 어떻게 영국은행 총재가 될 수 있었을까.
2013년 영국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차기 영국은행 총재로 당시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였던 카니를 발탁했다. 1694년 설립된 영국은행 300여 년 역사상 최초의 비영국인이었다. 영국은행 총재는 재무 장관 추천을 통해 총리가 승인하고 국왕이 최종 임명한다. 당시 카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정책을 펼쳐 선진국 중 금융 위기를 가장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를 발탁한 당시 영국 재무부 장관 조지 오스본은 캐나다가 영국의 연방 국가임을 강조하며 “영연방 캐나다 국적의 총재 선임에는 하자가 없다”고 했다. 카니는 총재 임명 이후 영국과 아일랜드 국적을 취득했다.
<차기 캐나다 총리로 선출된 마크 카니(60) 전(前) 캐나다 중앙은행 및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총재. >
그렇다면 한국은행도 외국인 총재를 임명할 수 있을까. 한국은행법상 총재의 국적을 규정한 조항은 없다. 국가공무원법 26조에는 “국가 안보 및 보안·기밀에 관계되는 분야를 제외하고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한은 관계자는 “한국은행의 업무가 국가 안보 분야인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은 역사상 외국인 총재가 임명된 전례가 없는 데다, 국가 경제를 좌우할 금융·금리 정책이 안보와 관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는 점에서 외국인을 임명하려면 상당한 논란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250311)
봄을 팔아서 나도 한 몫 챙겨야겠다 야생화도 지천으로 피어 있고 이름 모를 나무도 웬만큼 자라서 슬쩍 고개 들어 곁눈질하고 가까이 다가가 향기 맡는데 얼마를 받으면 좋을까 어제같이 눈 시린 봄, 하늘과 오늘같이 상쾌한 봄, 비도 적당한 값을 받아야겠다 들판의 익명으로 나온 풀들도 팔 다리 예쁘고 강가의 가명으로 나선 돌들도 눈빛이 고와서 잘 하면 한 밑천 마련할 수 있겠다 애교 많은 봄, 바람은 얼마를 줄까 앙탈부리는 봄, 새는 단골이 있으니 좀 낮춰 받을까 봄 계곡의 풍경 소리는 낯선 손님에게 좀 높여 받아도 되겠다 조만간 햇살 따갑기 전에 의자에 앉아 콧노래 부르려면 부지런히 봄을 팔아야겠다 봄에 나도 팔아야겠다 누가 거금을 주고 나를 사서 품고 갈 애틋한 사랑이 있을까 나도 당신, 봄을 사고 싶다
지난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한옥마을에 카우보이 옷을 입은 ‘보안관’이 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 8명이 한옥집 앞에서 큰소리로 얘기하자 보안관이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오후 5시가 되자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골목은 한산해졌다. 보안관들은 “관광 시간이 끝났습니다. 내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며 골목에서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지난 11일 ‘야간 통금 시간’ 전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모습.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북촌한옥마을(위 사진)은 오후 5시 통금 시간이 되자 한산해졌다(아래 사진). 카우보이 복장을 한 보안관들이 관광객들을 골목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작년 11월 서울 종로구가 북촌 일대에 ‘야간 통행 금지’ 제도를 시행한 이후 풍경이다. 관광객들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북촌의 주거 지역을 다닐 수 없다. 어길 경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한다. 통금 제도를 시행한 건 1988년 이후 37년 만이다. 7월부터는 관광버스 통행도 금지한다. 2023년 북촌을 찾은 관광객 수는 665만명. 주민 수의 1000배에 달하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소음, 주차난 등 문제가 불거졌고 종로구가 나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4개월간 가회동 지역의 유동 인구는 하루 평균 6593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62명(3.8%) 줄었다. 특히 야간 통금 시간의 유동 인구는 평균 5176명으로 1년 전보다 415명(7.4%) 줄었다. 통금 조치가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반면 낮 시간대(낮 12시~오후 5시)는 평균 1만5명으로 181명(1.8%) 증가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실제로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없지만 수시로 안내·계도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북촌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다카하시(21)씨는 “서울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 ‘저녁에 가면 안 된다’고 쓰여 있어 일찍 찾아왔다”고 했다. 관광 가이드들도 저녁 코스로 북촌을 빼고 있다고 한다.
북촌에 사는 주민들은 “이제 일상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류보람(43)씨는 “예전엔 차 좀 빼달라고 전화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젠 살 만하다”고 했다. 그는 “대문을 안 잠그면 관광객들이 들어와 깜짝깜짝 놀랐다”며 “집 마당에 드론이 들어온 적도 있다”고 했다. 주민 조모(49)씨는 “통금 이후 처음으로 저녁에 창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밤마다 담배 피우고 떠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속을 끓였다”며 “층간 소음보다 더한데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고 했다.
종로구에 따르면 소음, 쓰레기 등 문제로 북촌에서 접수된 주민 민원은 2018~2023년 1804건이었다. 하지만 통금을 실시한 이후 4달간 접수된 민원은 한 건도 없었다.
줄어들기만 하던 주민 수도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4400여 명이었던 가회동 인구는 작년 말 3800여 명까지 줄었다. 종로구 관계자는 “최근 전입 문의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며 “작년 말엔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북촌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울상이다. 북촌에서 8년째 한복 대여 가게를 하고 있는 김모(46)씨는 “한복은 2시간 단위로 빌려주는데 오후 5시부터 통금이라 3시면 손님이 끊긴다”며 “요즘 매출이 1년 전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일부 상인은 법원에 통금을 풀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일본이나 이탈리아처럼 관광객들에게 관광세를 받아 주민이나 상인들을 위해 쓰거나 계절에 따라 탄력적으로 통금 시간을 운영하는 방법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종로구는 “구가 나서서 북촌 가게들을 홍보하는 방안 등 보완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른바 ‘한옥스테이’ 숙박 업소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옥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옥스테이에 투숙하면 통금 시간에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며 “밤새 떠드는 단체 관광객들도 있다”고 했다.(250314)
한때 ‘밀폐 용기의 대명사’로 통한 국내 1위 밀폐 용기 업체 락앤락은 ‘상속세’ 때문에 회사가 매각된 이후 실적이 추락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1978년 설립한 락앤락은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베트남, 인도 등에서 인기를 얻었고, 미국 홈쇼핑 채널에서까지 대박을 냈다. 특히 2004년엔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창업주 김준일 회장이 4000억원(매각 대금 기준)이 넘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회사를 사모펀드에 넘긴 후 락앤락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홍콩계 사모펀드가 수익성을 앞세워 한국 공장은 물론 해외 공장도 대부분 매각한 뒤 생산은 중국 기업에 위탁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중국 OEM 제품인 데 실망해 등을 돌렸다. 2021년 5430억원까지 간 매출은 3년 만에 38%가 줄었다. 2023년부터는 적자를 냈다. 지난해엔 자진 상장폐지까지 갔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표 중소·중견 기업 중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가업을 포기하거나 기업을 매각한 곳이 적지 않다. 탄탄한 경영 능력을 자랑했던 업체들이 이 과정에서 위기를 겪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무역협회가 중소기업인 79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42.2%는 “상속세 문제 등을 이유로 가업 승계를 하지 않고 매각이나 폐업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국내 중소기업인의 절반가량이 과다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가업 승계를 고민하는 것이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생산 업체였던 쓰리세븐(777) 역시 상속 문제로 회사가 매각된 경우다. 1975년 설립 이후 33년 동안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던 회사다.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별세하자 유가족과 임직원은 상속세 150억원을 감당하기 어려워 제약 업체 중외홀딩스에 지분을 팔았다. 중외홀딩스는 이듬해 쓰리세븐을 다시 김형규 회장의 사위(김상묵 현 회장) 등이 설립한 티에이치홀딩스에 넘겼지만, 2003년 300억원 정도였던 회사 매출을 다시 회복하긴 쉽지 않았다. 2023년 매출은 160억원 정도다.
국내 최대 가구·인테리어 업체로 이름을 날렸던 한샘은 창업주 조창걸 전 명예회장의 직계가족 중 경영 후계자가 없고 막대한 상속세를 내기도 어려워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에 매각했다. 사모펀드에 팔린 이듬해에 회사는 적자를 냈고 2023년엔 다시 흑자를 회복했지만 매출은 매각 이전보다 줄었다.
1973년 설립해 한때 세계 1위 콘돔 생산 업체였던 유니더스는 상속세 때문에 회사가 매각되고 사실상 해체 절차를 밟은 경우다. 2015년 창업주가 별세하고 회사 경영권을 사모편드에 넘겼다. 유니더스는 이후 바이오제네틱스, 경남바이오파마 블루베리 NFT, 블레이드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명을 바꾸며 사업 다각화를 계속 시도했으나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사례가 거듭되자 중소기업계에선 “상속세 때문에 기술력 있는 업체들이 승계 과정에서 망가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상당수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1980, 1990년대에 창업했기에 상속 시점에 와 있다”면서 “지금 상속세를 개정하지 않으면 강소 기업 상당수가 해외에 팔리거나 사모펀드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250314)
“지구에 물이 없어진다면?(What will happen when Earth has no water?)”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어학원이 만 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레벨 테스트’ 영작 기출 문제다. 아이들은 이 학원에 다니려면 이런 작문 문제를 포함해 단어·문법·독해 문제를 약 1시간 만에 풀어야 한다. 일대일 영어 면접도 한다.
매년 말 치러지는 레벨 테스트에 수백 명이 응시하지만 입학 정원은 30~40명 수준이다. 한 번 불합격하면 수개월간 재응시도 못 한다.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 이른바 ‘7세 고시(만 5세)’라고 불린다. 이런 7세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만 4세 이하 아이들이 별도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고, 심지어 자녀를 레벨 테스트에 합격시키는 팁을 가르치는 ‘학부모 대상 인터넷 강의’까지 등장했다.
만 5세 어린이 10명 중 8명이 각종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간 통계 사각지대에 있던 영유아 사교육비 현황을 정부가 조사해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교육의 저(低)연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13일 이런 내용의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7~9월 만 6세 미만 영유아 가구 부모 1만32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로, 내년 본조사(국가승인통계)를 하기 전 시험 조사한 것이다.
조사 결과, 작년 7~9월 3개월간 전국 영유아들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원이며, 전체 사교육 참여율은 47.6%였다. 영유아 둘 중 하나는 사교육을 받는 것이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영유아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이다.
만 2세 이하(사교육 참여율 24.6%)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4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만 3세(50.3%)는 31만4000원, 만 4세(68.9%)는 38만4000원, 만 5세(81.2%)는 43만5000원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교육 참여율이 높아지고 비용도 늘어났다.
과목별 1인당 사교육비는 영어가 41만4000원으로 가장 높았고, 취미·교양(12만7000원), 체육(12만7000원), 음악(12만2000원) 순이었다. 어린이집·유치원 대신 가는 반일제 영어 학원(이른바 ‘영어 유치원’)의 1인당 월평균 비용은 154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1년으로 계산하면 1854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 평균 대학 등록금(683만원)의 세 배에 가깝다.
정부는 이날 ‘2024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작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조1000억원(7.7%) 증가했다. 학급별 사교육비 총액은 초등학교가 약 13조2000억원, 중학교가 7조8000억원, 고등학교가 8조1000억원이다.
초중고 학생 수는 2021년 532만명, 2022년 528만명, 2023년 521만명, 작년 513만명 등 빠르게 감소하는데 사교육비는 치솟는 것이다. 초중고 전체 사교육 참여율도 전년 대비 1.5%포인트 증가해 처음으로 80%를 넘었다.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이 87.7%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은 78%, 고등학생은 67.3%였다. 맞벌이 부부가 많고 저학년일수록 방과 후 음악·미술·체육 등 학원에서 취미·교양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초등학생 참여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9만2000원에 달했다. 학급별로 보면 초등학생이 50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4만1000원(9%) 늘어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중학생 월평균 사교육비는 62만8000원으로 전년 대비 3만2000원(5.3%), 고등학교는 77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3만3000원(4.4%) 증가했다.
가장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과목은 영어(26만4000원)로 나타났다. 다음은 수학(24만9000원), 국어(16만4000원), 사회·과학(14만6000원) 순이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했다.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7만6000원이고, 300만원 미만 가구는 20만5000원이었다.
전문가들은 공교육 부실과 정권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이 사교육비를 치솟게 한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의대 증원처럼 입시에 큰 영향을 주는 정부 정책이 정치권 상황에 따라 요동친 것도 영향을 줬다는 의견이 많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30~40대인 학부모들은 정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며 ‘실험 대상’이 된 경험을 한 세대이자, 그 난관을 사교육에 의존해 극복한 세대”라며 “공교육 불신이 가장 심한 세대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자녀에게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250314)
정부가 2028년부터 배우자와 자녀들이 각자 물려받은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 상속세를 도입하겠다고 12일 밝혔다. 고인이 남긴 유산 전체에 상속세를 물리고 유족들이 연대 책임을 지고 세금을 내는 방식의 현행 유산세 방식 상속세 체계를 도입한 지 75년 만에 전면 개편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11일 이 같은 내용의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상속세는 유산 금액에 따라 10~50%의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 세율 방식이기 때문에 유산취득세가 적용돼 유족별로 상속받은 금액이 나뉘면 세금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정부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고 그에 맞춰 자녀와 배우자 등 인적 공제를 확대할 경우 상속세 세수가 매년 2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상속세 개편에 맞춰 현재 1인당 5000만원인 자녀 공제 한도를 5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여야가 배우자가 상속받는 몫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20억원의 재산을 배우자 10억원, 자녀 두 명이 각 5억원씩 상속받을 경우 세금이 0으로 줄어들게 된다. 지금은 배우자의 법정 상속분(배우자 1.5 대 자녀 1명당 1의 비율)과 일괄공제 5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 약 6억4000여 만원에 대해 1억3000만원가량의 세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방식 과세를 위한 국세청 전산 시스템 정비 등 준비 기간을 거쳐 2028년 1월 1일 상속분부터 새 방식을 적용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달 안으로 이 같은 관련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4월 공청회를 거쳐 5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유산취득세 개편은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어서 실제 도입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다. 국세청 차장 출신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재부안으로 상속세를 개편한다면 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며 “유산취득세 전환은 시간을 갖고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75년 동안 유산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물렸던 이유는 상속세가 도입된 1950년 당시 농촌 중심 경제 구조에서 재산을 가문 단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전되고 핵가족 형태가 일반화하면서 낡은 제도가 됐다는 것이다. 황헌순 계명대 세무학과 교수는 “사회가 변하며 자녀들이 연대 책임 방식으로 세금을 내는 게 불합리하다는 인식이 퍼진 지 오래”라고 했다. 각자 받은 몫만큼 세금을 내는 증여와 과세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혼선을 빚었다.
상속세를 매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 회원국 중에서 유산세 방식을 택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국뿐이다. 실제 상속받은 재산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받은 만큼 낸다”는 과세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따라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부터 유산취득세 개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공약으로 채택했고 구체적인 청사진이 이날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개편 일정과 함께 자녀와 배우자 등 인적 공제 확대 방안도 내놨다. 배우자와 자녀 등이 받은 유산 전체를 기준으로 최소 10억원(일괄 공제 5억원+배우자 공제 5억~30억원)의 공제를 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물려받은 만큼 세금을 낸다”는 유산취득세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1인당 최대 5000만원의 자녀 공제는 1인당 최대 5억원으로 늘리고, 미성년자의 경우 19세가 될 때까지 남은 햇수에 5000만원을 곱한 금액만큼 한도를 더 높이기로 했다. 17세 자녀가 7억원을 상속받는 경우 공제액은 5억원에서 6억원으로 늘어난다.
배우자 공제는 여야가 한도를 없앤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번 정부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안은 배우자 공제를 최소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늘리되, 최대 30억원의 기존 한도는 유지한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10억원 이하를 상속받으면 전액 공제되고, 10억원을 초과할 경우 법정 상속분에 대해 30억원 한도로 공제해주겠다는 것이다. 법정 상속분은 유족 간 재산 분할 합의가 불발될 경우에 대비해 민법이 정해 놓은 상속 비율로 배우자가 자녀보다 1.5배 많다. 25억원을 배우자와 자녀 1명이 물려받는 경우 배우자 몫은 15억원이고 자녀 몫은 10억원이다. 배우자가 20억원, 자녀가 5억원을 물려받을 경우 배우자는 15억원까지 공제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짠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중산층 가족의 상속세 부담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부동산 세금 전문 업체인 아티웰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배우자 1명과 성인 자녀 2명이 25억원을 법정 상속분만큼씩 상속받는 경우 세 부담은 2억1857만원에서 6571만원으로 70% 줄어든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자녀가 많을수록 세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성이 15억원의 재산을 3명의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현행 제도는 공제액이 일괄 공제 5억원이 전부라 세금은 2억400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이 도입되면 자녀 1명당 각각 5억원의 공제가 적용돼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세수는 연평균 2조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인적 공제 확대로 1조7000억원, 유산취득세 도입에 따른 실효 세율 인하 효과로 3000억원 이상이다. 2조원은 한 해 상속세(2023년 기준 8조5000억원)의 24%쯤 된다.
고인 사망 후 9개월 이내 유족 간 협의를 거쳐 상속 재산을 분할하면 그에 맞춰 세금을 물리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협의가 되지 않을 경우 법정 상속분에 따른 상속을 전제로 유족 각자에게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도입 이후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먼 친척 등을 동원해 실제보다 상속받는 가족을 늘리는 ‘위장 분할’ 등 편법이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세금 납부 의무가 유지되는 ‘부과 제척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할 방침이다.(250313)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정부 고위 공직자에 대한 탄핵 시도는 모두 29차례 이뤄졌다.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탄핵이 인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13일 현재까지 탄핵 심판 사건 8건 모두 기각 결정이 났다. 대부분 합당한 사유 없이 정략적으로 밀어붙인 ‘졸속 탄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에서는 탄핵이 기각된 공직자에 대한 사법적 책임, 행정 공백으로 인한 정치적 책임, 세금 손실의 재정적 책임을 강제하는 수단이 없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제도적 허점을 악용(惡用)해 마구잡이로 줄탄핵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와 이성윤 의원이 작년 12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감사원장(최재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 만인 2023년 2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까지 연쇄 탄핵소추했다. 2년간 매달 1차례 이상 탄핵안이 나온 셈이다. 특정 고위 공직자를 겨냥해 2~3차례 반복적으로 탄핵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공직자 직무가 정지된 경우는 13건이다.
나머지 16건은 탄핵안이 철회되거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정치적 압박을 받은 공직자가 자진 사퇴하면서 탄핵안이 폐기된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2023년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자신을 겨냥한 탄핵안이 3차례나 거듭 발의되자 스스로 직(職)에서 물러났다. 이 전 위원장 후임인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 그다음인 이상인 전 방통위 위원장 직무대행도 탄핵안이 발의되자 자진 사퇴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도 마찬가지 경우다.
이들 탄핵소추의 상당수는 억지·졸속으로 진행됐다.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탄핵안에 “검찰청법 규정에 의해 탄핵한다”는 대목이 잘못 들어가 철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작은 오류”라고 했지만, 검사들까지 한꺼번에 탄핵하는 과정에서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을 잘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뒤이어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취임한 지 이틀 만에 탄핵됐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경우 “야당 대표를 노려봤다”는 것이 탄핵 사유에 들어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은 미확인 소문, 일방적 주장, 무혐의로 결론 난 사건 등으로 ‘탄핵 명단’에 올랐다.
헌재는 지금까지 8차례의 탄핵 심판 결정에서 “파면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사유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기각했다. 여권에선 탄핵 심판 ‘8전 8패’에 따른 정치적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잇따른 탄핵으로 고위 공직자의 직무가 정지돼 행정 공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서지영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국정 혼란, 행정 공백뿐만 아니라 대외 신뢰도 하락에 이르는 국가적 손실은 안중에도 없이 ‘묻지 마 탄핵 폭주’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공직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날 헌재가 최재해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하자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헌재가 최 감사원장의 일부 불법적 행위를 확인했다”고 했다.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법적 요건이 미비한 연쇄 탄핵에 대해 “무고(誣告)성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사법적 책임을 따지자면 직권 남용 권리 행사 방해에 가깝다”고 했다.
기각으로 끝난 탄핵 심판에 국민 세금이 낭비된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회가 탄핵 심판에 지출한 비용은 4억6024만원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도 탄핵을 공언하고 있다. 판사 출신인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사법 리스크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이재명 대표는 ‘묻지 마 줄탄핵’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고 있다”며 “제 한 몸 지키자고 국민 혈세를 마구 내다 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250314)
야구 팬들을 깨울 시간이 돌아왔다. 올해로 44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프로야구.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작년 우승 팀 KIA와 롯데 맞대결을 포함해 전국 5개 구장에서 시범 경기가 일제히 막을 올린다. 팀당 10경기씩 총 50경기가 열린다.
각 팀에는 마지막 전력 퍼즐을 맞출 기회다. 다만 시범 경기 성적이 정규 시즌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시범 경기 1위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건 역대 7번뿐, 최근은 2007년 SK(현 SSG)가 마지막이다. 작년 시범 경기 1위(8승1무) 두산은 정규 리그 4위로 내려앉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에 고개를 숙였다.
올해 시범 경기의 가장 큰 변화는 ‘피치클록’이다. 주자가 없으면 20초, 주자가 있으면 2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하는 만큼 투수들은 바빠질 전망이다. 타자 역시 33초 이내에 타석에 들어서야 하며, 타석당 타임아웃도 2번으로 제한된다. 위반 시엔 투수에게는 볼이,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가 주어진다.
지난 시즌 화제가 됐던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는 현장 의견에 따라 미세한 지표 조정이 있었다. 작년까지는 선수 신장 대비 상단 56.35%, 하단 27.64% 위치로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했는데, 올해는 이를 각각 0.6%p씩 낮췄다. 1㎝ 정도 스트라이크 존이 내려간 것에 불과하지만, 투수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 판정 범위가 조금 좁아졌다고 느낄 수 있다.
주루 플레이에도 변화가 생긴다. 기존엔 1루까지 주루 시 3피트 라인만 달려야 했지만, 이제는 1루 파울 라인 안쪽 흙 범위(45.72~60.96㎝)까지가 주로로 인정돼, 주자들이 보다 과감히 달릴 수 있게 됐다. 경기 도중 ‘충돌 사고’를 줄이면서도 역동적인 주루 플레이를 끌어내겠다는 목적이다.
한화 새로운 보금자리도 시범 경기에서 첫선을 보인다. 지난 5일 완공된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가 17일 한화와 삼성 시범 경기를 통해 홈경기 적응에 나선다. 한화는 지난겨울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엄상백과 4년 최대 78억원, 심우준과는 4년 최대 50억원에 계약하며 자원 보강을 했다. 한화 주장 채은성은 “모든 게 준비가 됐다. 이제 성적만 내면 된다”고 했다.
지난해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챔피언 KIA는 올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88홈런을 때려 낸 외국인 거포 패트릭 위즈덤을 영입하며 한층 더 무서워졌다. 외국인 에이스 투수 제임스 네일, 새로 영입된 아담 올러, 그리고 양현종·윤영철로 이어지는 4선발까지 확정을 지었다. 이범호 KIA 감독은 순조로운 재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의리 회복 전까지 5선발로 쓸 김도현과 황동하를 두고 고민 중이다. 정해영, 곽도규에 이어 조상우가 합류한 불펜진 역시 탄탄하다는 평가다.
준우승팀 삼성 역시 ‘좌완 파이어볼러’ 신인 배찬승을 비롯해, 캠프 기간 내내 화제였던 루키·유망주들의 신고식이 시범 경기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데니 레예스와 김무신(옛 김윤수), 중장거리 거포 김영웅 등 다수가 부상으로 개막에 맞춰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 빈틈을 신인과 2·3년 차 선수들로 발 빠르게 메울 수 있느냐가 삼성의 숙제다.
삼성처럼 부상·이탈 변수로 골머리를 앓는 팀도 적지 않다. SSG는 현역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영입한 미치 화이트가 허벅지 부상으로 시즌 초반 합류가 불투명해지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화이트가 빠지면 지난해 강속구를 앞세워 가능성을 인정받은 송영진, 팔꿈치 수술 이후 재기를 노리는 박종훈, 혹은 미국 트레이닝센터에서 구속을 끌어올려온 정동윤 같은 투수들이 빈자리 메우기에 나선다.
LG에서는 신인 김영우가 시속 150㎞대 강속구와 포크볼을 무기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마무리 기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KT 위즈는 강백호와 멜 로하스 주니어를 테이블세터로 시험 중이다. 포수 강백호가 1번 타자로 출루하고, 장타력이 뛰어난 로하스가 2번에 자리 잡으면서 폭발력을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시범 경기는 대부분 오후 1시 시작한다. 야간 경기 적응을 위해 13일 키움-SSG(인천)와 KT-NC(창원), 15일 KT-롯데(사직), 17일 삼성-한화(대전)와 SSG-KIA(광주) 경기는 오후 6시 시작한다. 팀별 출장 인원 제한은 없다. 연장전은 없고, 취소된 경기는 재편성되지 않는다. 시범 경기가 끝나면 각 팀은 막판 채비를 한 후 22일 정규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들어간다.(250308)
지난 1일 오후 경기 고양시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 습지에서 서식 중인 동식물을 기록한 생태관을 지나 보호구역으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서니 철책으로 막혀 있었다. 탐방객에게 문을 열어줬던 곳이지만 2021년 지뢰 사고가 발생한 후로는 출입이 통제됐다. 철책에는 ‘출입자는 지뢰로 인한 사고 발생 위험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본지가 6일 드론을 띄워 이 일대를 촬영해 보니,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잔가지 등 부유물로 한강과 연결된 물길이 꽉 막혀 있었다. 한강유역청 관계자는 “한강 하구로 밀려드는 도시 쓰레기가 습지에 쌓이고 있지만 지뢰 위험 때문에 관리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6일 오후 드론을 띄워 촬영한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내 물골(사진 가운데)에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잔가지 등 부유물이 가득 차 있다. 한강물이 드나드는 통로인 이곳에 쌓인 쓰레기를 계속 방치하면 주변 생태계가 오염되고 한강 수질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강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5.96㎢(약 180만평) 크기의 장항습지는 대륙 사이를 이동하는 철새의 중간 경유지이자 서식지다. 서해안의 높은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해 형성된 자연 하구(河口)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태적 중요도가 높아 ‘람사르 습지’에 지정되며 국제적으로 관리 필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하구 특성상 도시 쓰레기와 해양 쓰레기가 물가로 모이는데 환경부는 2021년 이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곳으로 흘러든 ‘북한 지뢰’ 때문이다.
장항습지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이었다가 지난 2018년 해제된 뒤 출입을 승인받은 농민, 환경 정화 작업자, 생태 탐방객 등에게 개방됐다. 일반인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던 과거에는 하구에 쓰레기가 쌓여도 치울 방법이 없었으나, 개방된 이후에는 정화 작업이 이뤄졌다. 환경부는 매년 2억원의 정화 작업 예산을 편성해 장항습지 일대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 왔으나 2021년 사고 이후로는 청소가 중단됐다.
지뢰 폭발 사고는 2021년 람사르 습지 지정 다음 달에 발생했다. 그해 6월 한 환경 단체가 습지 환경 정화 활동을 위해 들어갔다가 대인 지뢰가 폭발해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한강청 관계자는 “지뢰 사고 이후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의 지뢰가 일대에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돼 더 이상 환경 정화 작업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허가받은 농민만 일부 출입하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드론을 띄워 촬영한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내 물골에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잔가지 등 부유물이 가득 차 있다.>
우리 군은 주기적으로 지뢰를 탐지·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계속 지뢰가 내려오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목함 지뢰, 나뭇잎 지뢰 등 장항습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는 모두 지뢰탐지기로 탐지가 어려워 군에서도 얼마나 많은 유실 지뢰가 한강 하구 습지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제거된 지뢰 수도 군에서 비공개로 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장항습지에는 쓰레기 수백t이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로 습지 생태계가 파괴되고, 오염 물질이 한강으로 흘러들 수 있다.
장항습지는 멸종 위기 야생 생물 1급인 저어새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환경부의 2022년 ‘한강 하구 습지보호지역 생태계 모니터링’에서 2005~2021년 장항습지에 출현한 누적 생물종은 식물 455종, 조류 192종, 포유류 16종 등 총 1092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찰된 생물 가운데에는 저어새, 개리, 큰기러기, 재두루미, 흰꼬리수리, 금개구리, 삵 등 멸종 위기 보호종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면 환경부가 보전 계획을, 각 지자체가 실천 계획을 각각 수립한다. 장항습지의 경우 고양·김포·파주시가 정화 작업 등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환경부는 이달 중 제4차 한강하구 습지 보전 계획을 발표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도 시작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실행은 어려운 상황이다. 한강청 관계자는 “관리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지뢰 사고 등의 우려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만 됐을 뿐 대책 마련 없이 오염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250312)
☞람사르 습지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체결된 ‘습지 협약’에 따라 생태적 중요도를 인정받은 습지. 국내엔 강원 인제 대암산용늪, 경남 창녕 우포늪, 전남 순천만·보성갯벌 등 총 26곳, 203.189㎢가 지정돼 있다.
지난 5일 전북 전주시에 있는 전문대학인 전주비전대 실습동 1층의 약 200㎡ 규모 실습장. 각국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 29명이 산업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정밀 가공 장비인 선반(旋盤)·밀링 12대 앞에 2~3명씩 서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 미래모빌리티학과 외국인반 학생들로, 베트남 국적 18명, 미얀마인 10명, 방글라데시인 1명이었다. 이 가운데 여학생도 10명이다. 이들은 유창한 한국어 외에 간간이 모국어를 섞어 쓰면서 협업해 기기 작동을 익혀나갔다. 방글라데시 대학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다 그만두고 3년 전 전주비전대로 온 피알(26)씨는 “전주가 마음에 들어 전북 공장에 취직하고, 나중에 귀화 시험도 보고 싶다”며 “내가 방글라데시 학생 1호였는데, 고향에 소문이 퍼져 올해는 4명이나 들어왔다”고 했다.
<5일 전북 전주시 전주비전대 실습장에서 미래모빌리티학과 소속 외국인 학생들이 가공 장비 ‘선반’ 실습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한국 공장에서 오래 근무하며 나중에 귀화 시험도 보고 싶다”고 입 모아 말했다.>
전주비전대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가 운영하는 ‘뿌리산업 외국인 기술 인력 양성 대학’ 사업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외국인 학생 수를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는 학습 여건을 고려해 외국인 정원을 자율적으로 정하되, 매년 취업 실적과 교육 여건 등에 관한 평가를 정부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 프로그램으로 입학한 외국인 학생은 약 1년간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이후 2년 동안 자동차 부품, 기계 관련 공부를 한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해 주간엔 학교를 다니고 야간엔 편의점,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졸업 시험을 합격하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등에 취직하게 된다.
미래모빌리티학과의 외국인 신입생은 당초 30명 규모에서 2023년 50명, 작년 119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2학기까지 베트남, 미얀마 등지의 외국인 유학생을 총 120명 선발할 계획이다. 외국인 학생이 늘자, 교수와 실습 장비도 덩달아 늘었다. 이 학과는 2년 동안 교수를 2명 더 선발해 7명이 됐다. 선반·밀링 장비는 9개에서 12개로, 용접기는 12개에서 20개로 각각 늘렸다. 전주비전대 백일현 교수는 “졸업 시즌이 되면 호남권은 물론 영남권, 경기 안산 등의 공장에서 ‘3명쯤 보내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계속 온다”며 “외국인 학생이 없으면 이젠 교육계도, 산업계도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 졸업생은 다른 외국인 근로자에 비해 한국어 실력이 월등히 좋아 인력난에 허덕이는 국내 제조업체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뿌리산업 외국인 기술 인력 양성 대학엔 전주비전대, 거제대, 군장대(전북 군산) 등 12개 전문대의 기계, 자동차학과들이 참여 중이다. 프로그램 전체 신입생 수는 2021년 260명에서 2023년 500명, 작년 879명으로 크게 늘었다. 거제대를 비롯한 학교들은 신입생 유치를 위해 키르기스스탄 등 현지 대학에서 프로그램 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작년 기준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총 21만명인데, 교육부는 2027년까지 3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지자체도 학령인구 감소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의 경우 올해 일본, 중앙아시아 등 국가에서 ‘부산 대학 입학’ 순회 설명회를 갖고, 유학생이 졸업 후 부산에 정착하도록 법률·주거 등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부산시 관계자는 “제2 도시 부산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유학생이 부산의 경제 인구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253010)
전국 구치소와 교도소 등 교정 시설 과밀화가 날로 심각해지는 주요 원인이 마약 사범의 급증인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법무부가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교정 시설 수용률은 125.3%였다.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125명이 수용돼 있다는 것이다. 전국 교정 시설의 수용 인원은 6만2981명으로, 정원(5만250명)보다 1만2000명 이상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정 시설 수용률은 2019년 112.7%를 기록한 뒤 코로나 영향으로 주춤하다 2023년 118.4%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25%를 넘겼다. 법무부 관계자는 “수용 인원이 6만명을 넘어선 것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처음이고, 125% 이상 수용률도 약 30년 만의 최대치”라고 했다.
최근 늘어난 수용자 중 상당수는 마약 사범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교정 시설에 수용된 마약 사범은 2019년 3574명에서 지난해 6628명으로 5년 만에 85.5%가 늘었다. 코로나 사태로 전체 수용자가 줄었던 2020~2022년에도 마약 사범은 꾸준히 늘었고,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전년 대비 32.2%·17.6%나 급증했다. 전체 수용자 중 마약 사범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9년 6.6%에서 매년 증가해 작년엔 10.5%로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마약이 급격히 확산하고 이에 대응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검거한 마약 사범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법무부는 분석했다. 교정 당국 관계자는 “수용자 간 싸움과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크게 늘었다”며 “면회나 외부 진료 등 교정 공무원 업무도 덩달아 늘어 사무 직원을 보안 업무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수용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과밀 수용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사기 혐의로 인천구치소에 수감됐던 A씨는 16.19㎡(약 4.9평) 크기 거실에서 13명이 생활했다. 잠자는 공간이 1인당 55cm밖에 안 돼 수용자들끼리 어깨를 부딪치며 자야 했고, 실내 운동장의 과밀화로 1인당 하루 1시간씩의 운동 시간도 30분밖에 못 썼다고 주장했다.
전주교도소에 수용됐던 B씨의 경우 7~8명이 11.71㎡(약 3.5평) 크기 거실에 수용됐다. 평소 칼잠(똑바로 눕지 못해 옆으로 누워 자는 잠)이나 새우잠(몸을 쪼그리고 자는 잠)을 잘 수밖에 없고, 여름에는 냉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탈수 현상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국가가 수용자들을 1인당 2㎡ 미만 거실에 수용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1.25㎡, 1.46㎡ 면적에서 생활한 A씨와 B씨는 최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1심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교정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현재 5만250명인 수용 정원을 2028년까지 5만9265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교정 시설 신축·이전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 기한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적극적인 가석방·보석으로 수용 인원을 줄이는 방법도 있지만, 그 역시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어서 쉽지 않은 문제다.
연간 마약으로 단속된 인원이 2년 연속 2만명을 넘은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교정 시설 과밀화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적발된 마약 사범 수는 2021년 1만6153명에서 2022년 1만8395명, 2023년 2만7611명으로 급증했다. 2년 사이 70%가 넘게 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2만3022명으로 2년 연속 2만명을 넘겼다. 정부는 앞으로 연 2회 마약 범죄 합동 특별 단속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제1차 마약류 관리 기본 계획을 최근 채택하기도 했다. 마약 사범의 높은 재범률도 문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3년 마약 사범의 재범률은 32.8%였다. 세 명 중 한 명은 출소해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대형 로펌 한 변호사는 “최근 법원 안팎에서는 구치소와 교도소가 꽉 차서 판사들이 실형을 선고하고도 법정 구속을 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면서 “우리 사회의 마약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는 웃지 못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법무부는 도심에 인접한 교정 시설을 우선적으로 이전·확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검찰·경찰·관세청은 공항·항구 등 마약 밀수 경로를 집중 차단해 마약 유통망 붕괴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250311)
자녀가 아닌 배우자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확산하고 있다. 상속세는 부모에서 자녀로 부(富)가 세대 간 이전될 때 한 번만 걷자는 것이다. 상속세를 처음 도입한 영국을 비롯, 미국·프랑스·일본 등 주요국들은 배우자 상속에 대해 상속세를 면제해준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6일 비대위 회의에서 “함께 재산을 일군 배우자 간의 상속은 ‘세대 간 부 이전’이 아니다”라며 “배우자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했다. 권 위원장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배우자 상속에 과세하지 않는다”며 “한국도 이런 흐름에 맞춰 상속세의 징벌성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최소 10억원(일괄 공제 5억원+배우자 공제 최소 5억원)인 공제액을 최소 18억원(일괄 공제 8억원+배우자 공제 최소 10억원)으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중산층 표심을 공략하려는 야당이 배우자 공제 한도를 두 배로 늘리는 방안을 내자, 여당이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로 맞불을 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배우자 상속에 세금을 물리는 나라는 한국 등 12국뿐이다.
권 위원장은 또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 상속인이 실제 상속받은 만큼만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와 유산취득세 도입은 ‘패키지’로 함께 추진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제 공동체인 부부 간에 상속세를 물리는 OECD 12국 중에서도 한국의 세금 부담은 높다. 독일·그리스·네덜란드 등 11국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각자 물려받은 금액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리는 유산취득세 방식이다. 반면 한국은 유족들이 받은 상속 총액에 대해 세금을 매기고 유족들이 연대 책임을 지는 유산세 방식이다.
주요국이 배우자 상속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이유는 부의 세대 간 이전에 과세하는 상속세 본래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배우자에게 부가 이전될 때 세금 걷고, 자녀에게 이전될 때 또 걷는다면 세대 기준으로는 이중과세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배우자는 같은 세대인데 한 명이 죽었다고 다른 한 명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상속 세제 과세 방식별 공제 제도 비교 연구’ 보고서에서 “OECD의 많은 국가들은 배우자의 상속세를 전부 면제하고 있다”며 “부부 간 상속 재산의 이전은 동일 세대 간 이전이므로 ‘1세대 1회’ 과세 원칙의 관철, 혼인 생활 중 재산 축적을 위한 생존 배우자의 기여도 인정 등이 근거”라고 했다. 또 “(증여세를 물리지 않는) 이혼 시 재산 분할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배우자의 상속분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국가들 중에서도 독일, 벨기에, 그리스 등은 주식이나 보석 등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걷지만, 함께 거주한 주택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준다.
여야가 추진하는 배우자 상속세 완화·폐지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상속세 부담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본지가 부동산 세금 전문 업체인 아티웰스를 통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20억원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 2명이 법정 상속분대로 상속받을 경우 현행 세법상으로는 상속세 1억2887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야당안대로 공제액이 18억원으로 늘어나면 세금이 2910만원으로 줄어들고, 자녀 1인당 5억원까지 공제해주는 정부안이 통과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여당안이 채택될 경우 유족들은 재산 분할 합의를 거쳐 배우자가 유산을 전액 상속받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세무 전문가들 설명이다. 여당안대로 배우자 상속분을 전액 공제할 경우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안의 경우 배우자가 20억원을 상속받더라도 공제액이 법정 상속분(8억5714만원)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2910만원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다만 권 위원장이 이날 밝힌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가 대기업 총수 등 고액 자산가들의 수조원, 수천억원대 주식 상속 등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논의해 구체적인 배우자 상속세 면제 방식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이 이 같은 상속세 완화 방침을 밝힌 이날 민주당은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의원이 낸 ‘18억원 공제안’을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된 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안건 상정 권한을 가진 본회의에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다.
정부가 작년 7월 상속세 최고 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1인당 공제 한도를 5억원으로 높이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냈지만, 국회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최고 세율 인하를 ‘부자 감세’로 규정한 야당 반대 때문이다. 대주주 지분 상속 때 주식 가격을 20% 높이는 ‘최대 주주 할증’ 제도를 폐지하자는 정부안도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여당은 여전히 최고 세율 인하와 최대 주주 할증 폐지를 상속 세제 개편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패스트 트랙 카드를 쥔 민주당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합의 처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겠지만 국민의힘이 끝내 몽니를 부리면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당의 상속세 개정안 패스트 트랙 지정을 두고 “조기 대선을 위한 정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12월 세입예산 부수 법안으로 올라온 상속세 개편안들은 민주당이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50307)
직장인 김모(28)씨는 최근 서울 용산 블루스퀘어홀에서 상영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VIP석에서 관람하는 내내 황당한 기분이었다. 17만원에 예매한 최고 등급 좌석 위치가 2층 4열 구석이었다. 직전 공연 ‘킹키부츠’ 땐 한 단계 낮은 R등급으로 판매했던 곳이다. 김씨는 “오페라 글라스(관람용 안경)를 써도 배우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 무슨 VIP석이라는 건지 황당하다”고 했다.
만인(萬人)의 VIP화(化). 공연 업계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블루스퀘어홀의 VIP석 비율은 48%.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은 1층 전체가 최고 등급 (R·56%)이다.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55%), 송파 샤롯데씨어터(43%) 등 주요 공연장 모두 마찬가지다. 관람객들은 “VIP석이라며 2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을 받으면서 정작 VIP 대접은 못 받는다”며 한숨을 쉰다.
백화점·카드 업계에서 VIP 인플레이션은 ‘기본 전략’으로 통한다. 지난해 갤러리아·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VIP 매출 비중은 40~50%를 기록했다. 백화점들은 VIP 회원 규모 등을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VIP가 되는 기준은 높이지 않고, VIP 등급을 세분화하는 방식을 쓴다”고 했다. 실제 신세계백화점 VIP는 연 500만원 이상을 쓰면 될 수 있지만 등급은 트리니티·블랙다이아몬드·다이아몬드·플래티넘·골드·에메랄드·레드 7단계로 세분화돼 있다. 갤러리아는 7등급, 현대백화점은 6등급, 롯데백화점은 5등급으로 VIP를 나눈다.
4대 금융지주 계열사 카드사에서도 이용 실적 등을 바탕으로 ‘VIP 고객’ ‘우수 고객’이라 이름 붙이고 무이자 할부 혜택 등을 제공하지만, 일반 회원들이 받는 혜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예계·패션계·게임업계에서 VIP는 사실상 ‘일반 등급’과 동의어다. VVIP, VVVIP는 예사고 심지어 VVVVIP 등급까지 등장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특별 대접을 받는다는 착각을 주는 상술”이라고 했다.
스포츠계도 마찬가지다. 오는 22일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KBO 구단 10곳에서 유료 시즌권·멤버십 판매를 한다. 일정 금액을 받고 VIP 고객들에게 ‘선(先)예매’권을 주는데, 구단 중 5곳은 일부 고객에게 그보다 비싼 금액을 받고 ‘선선예매권’을 부여했다. 팬들은 “다음은 선선선, 선선선선예매권이냐”고 반발했다. 여행업계에서도 ‘1일 1미슐랭’ ‘전 일정 5성급 호텔’ ‘시크릿 파티’ 등 ‘특별한 일정’으로 판매하는 여행사 ‘VIP’ ‘하이엔드’ 상품이 전체의 25%가량이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VIP’가 되고 싶다는 욕망(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은 전 국민의 40% 가까이가 ‘특별한 지역’에 거주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지난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5119만명 중 1898만명(37%)이 특별시, 특별자치시·도, 특례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1946년 미 군정에 의해 ‘특별시’로 지정됐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행정구역명 ‘컬럼비아구(District of Columbia·D.C.)‘의 디스트릭트는 ‘특정 성격의 구역’이라는 의미지만, 일본이 이 지명을 ‘コロンビア特別區‘로 번역한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제주도가 관광·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 승격됐고 2012년 세종시가 특별자치시가 됐다. 2023년엔 강원도가 북한과 접경지라는 이유로, 지난해엔 전라북도가 농업 중심 경제를 특화한다는 명목으로 특별자치도가 됐다. 2022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인구 100만명 이상 기초자치단체는 일괄적으로 특례시가 됐다. 수원·용인·고양·창원·화성이 모두 특례시가 됐다. 현재 추진 중인 대구경북특별시(488만명), 경기북부특별자치도(360만명)까지 출범하면 전 국민의 절반 이상(53%가량)이 ‘특별 거주민’이 된다.
강형기 전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은 “재정·행정적 권한 강화는 미미한 수준인데도 내가 사는 지역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허영심 추종 풍조에 전 국토가 특별해지는 판국”이라고 했다. 김상돈 한국공공사회학회 대표는 “사장님·회장님·대표님·여사님·사모님 등 사적 ‘호칭 인플레이션’이 시장(市場)을 넘어 공공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250310)
지난달 25일 오전 9시 30분 경남 거제시 장목면 시방선착장. 평일인데도 선글라스를 낀 여행객 40여 명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캐리어와 낚싯대, 아이스 박스를 들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배 타고 8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이수도.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이수도. 주민 108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1박 3식' 아이디어로 지난해 관광객 13만명을 불러 모았다.
이 섬 민박집에 하룻밤 묵으면 제철 식재료로 만든 세 끼를 맛볼 수 있다.>
한때 무인도가 될 위기에 처했다가 ‘1박 3식’으로 유명해진 섬이다.
이 섬 민박집에 묵으면 섬 앞바다에서 난 해삼, 멍게 등으로 세 끼 밥을 차려준다. 비용은 1인당 10만원 정도다.
싱싱한 제철 음식을 맛보며 여유롭게 쉴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13만명이 찾았다. 마을 주민 수(108명)의 1200배다.
대구에서 왔다는 김채연(42)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수도를 알게 됐다”며 “회랑 해산물을 배불리 먹고 책도 읽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선착장 직원은 “주말에는 여행객이 1000명씩 찾아와 수시로 배를 띄운다”고 했다.
이수도는 38만㎡ 크기의 작은 섬이다. 1시간 30분이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대구, 멸치 등 해산물이 넘쳐 이수도(利水島·이로운 물의 섬)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후 변화 등으로 어획량이 줄고 주민들이 빠져나가면서 여느 섬처럼 ‘인구 소멸’ 위기를 겪었다. 1970년대 500여 명에 이르던 주민은 2000년 들어 50여 명까지 줄었다.
주민들은 2010년 마을을 살리기 위해 폐교를 펜션으로 꾸몄다. 하지만 작은 섬마을 펜션까지 찾아오는 관광객은 없었다. 그러던 2012년 이수도에서 민박집을 하던 배민자(67)씨가 “손님들에게 제철 음식으로 세 끼를 대접하자”는 아이디어를 내 ‘1박 3식’ 민박 상품이 탄생했다. 배씨는 “여행을 가면 엄마들은 항상 음식 걱정을 하게 된다”며 “남이 밥을 해주면 여행객들은 온전하게 쉴 수 있고 식재료까지 싱싱하면 금상첨화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후 소문이 나면서 다른 주민들도 하나둘 1박 3식을 내놓았다. 마을 78가구 중 16가구가 1박 3식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도와 거제시도 힘을 보탰다. 197억원을 들여 전망대와 출렁다리를 만들고 둘레길을 손봤다.
배씨가 운영하는 민박집을 찾아가 보니 상차림이 달랐다. 이수도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 도다리회에 낙지 탕탕이, 문어 숙회, 멍게, 굴찜, 양념 장어 구이, 전복 탕수, 백합탕 등 음식 가짓수만 10개가 넘었다.
제철 식재료를 쓰다 보니 철마다 메뉴가 다르다고 한다. 경남 거창에서 왔다는 손순옥(79)씨는 “주인장이 ‘모자라면 더 준다’고 하는데 도저히 더는 못 먹겠다”며 “맛도 좋고 인심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씨가 “방금 해녀가 잡아왔다”며 해삼을 썰어왔다.
경남도는 이수도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 올해부터 제2, 제3의 이수도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경남에는 552개 섬이 있는데 해마다 주민 수가 줄어들고 있다.
경남도가 주목하고 있는 섬은 통영시 산양읍의 추도다. 작년 5월 추도에선 2박 3일간 ‘제1회 추도 섬 영화제’가 열렸다. 8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에 전국에서 영화 마니아 240여 명이 찾아왔다. 추도에는 편의점이나 카페도 없다. 관객들은 팝콘 대신 남해안 톳과 미역으로 만든 비빔밥을 손에 들었다. ‘3일의 휴가’란 영화를 상영한 육상효 감독은 “바다와 섬, 영화가 어우러지는데 내가 본 영화제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경남도는 올해 9억원을 들여 추도를 영화의 섬으로 만들기로 했다. 정기적으로 영화제를 열 계획이다.
거제 일운면의 지심도는 ‘웨딩섬’으로 탈바꿈한다. 지심도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으로도 불린다.
주민들은 작년 11월 거제에 사는 세 커플을 초대해 ‘리마인드 결혼식’을 열었다. 성공 가능성을 발견한 경남도는 올해는 이런 섬마을 야외 결혼식을 세 차례 열기로 했다. 웨딩드레스와 메이크업, 웨딩 촬영도 무료로 지원한다. 이상훈 경남도 해양수산국장은 “특별한 섬을 계속 만들어 관광객도 유치하고 섬 경제도 살릴 것”이라고 했다.(250307)
정부가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방위산업 등 분야의 외국인 기술 인력을 한국으로 유치하겠다며 ‘반값 소득세’와 ‘가족 전체 동반 이주 허용’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정부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외국인정책위원회를 열어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수석 엔지니어급 인재를 1000명 이상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톱티어(Top-Tier) 비자’라는 새로운 비자 제도를 도입해 이달 중 시행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톱티어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한국에 사실상 무제한으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톱티어 비자를 받고 1년이 지나면 최장 5년간 체류할 수 있고 다른 직장으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거주 비자(F-2)로 바꿀 수 있다. 톱티어 비자 외국인은 배우자와 자녀, 부모는 물론 자기가 지정하는 가사 도우미 1인을 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 수 있다. 그러다 국내 거주 기간이 총 3년이 넘으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톱티어 비자 외국인이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세도 대폭 낮춰주기로 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한국인은 세전(稅前) 연봉에서 연말정산을 통해 소득공제를 하고 남은 금액에 대해 6~45%를 근로소득세로 낸다. 외국인 근로자는 조세 특례에 따라 세전 연봉의 최대 19%까지만 근로소득세로 낸다. 하지만 정부는 톱티어 비자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에게는 이에 더해 최장 10년간 근로소득세를 절반 더 깎아주기로 했다.
전세 자금 대출과 전세 보증도 각각 5억원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또 자녀가 다니고 싶어 하는 외국인 학교가 있으면 그 학교 정원이 다 찼어도 입학을 받아주고, 은행 계좌 개설, 휴대전화 개통, 주민센터 전입신고 때는 전담 기관 직원이 동행해 안내해주기로 했다. 톱티어 비자 특전은 대학 순위 세계 100위 이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글로벌 500대 기업 3년 이상 근무(전체 경력 8년 이상), 연봉 약 1억4000만원 이상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외국인에게 제공된다.
정부가 톱티어 비자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첨단 산업 두뇌 확보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주로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여 제조업·조선업·건설업 등 인력이 부족한 분야 노동력 공급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외국인정책위에서 “미국·일본·싱가포르 등 주요국들이 첨단 분야 인재 확보를 위해 과감한 유인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도 혁신을 주도할 해외 우수 인재들이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세계 100대 대학 중 한 곳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외국인에게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했더라도 일단 입국해 최장 2년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D-10-T(구직)’ 비자를 발급해 주기로 했다. 정부는 또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나라의 청년이나, 한국 정부가 경제 협력을 하고 있는 나라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 드림 비자’를 발급하기로 했다. 이 비자를 받고 들어온 외국 청년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준비한 기업 인턴십 등의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정부는 2028년에 11만6000여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요양보호사를 외국인으로 충원하는 대책도 내놨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요양보호사 비자(E-7-2)를 신설하고, 국내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해 취업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추가해서 정부는 여러 대학을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대학’으로 지정해 외국인 유학생들을 요양보호사로 길러내기로 했다. 한국으로 인력을 송출하는 협정이 돼 있는 17국에서 우수 인력을 뽑아 한국으로 데려온 뒤, ‘요양보호 전문 연수 과정’을 통해 요양보호사로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가동하기로 했다.(250306)
5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중국인 유학생이 강의실 앞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며 웃자, 그 모습을 본 한국인 학생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한국인 학생들은 “민폐 행동 아니냐” “정말 듣기 싫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캠퍼스 밖 식당가 앞에서 만난 학생은 한국어 없이 중국어로만 된 한 식당 간판을 보며 “친한 중국인 친구도 많지만, 이렇게 한국인 배려 없이 간판과 메뉴가 중국어로만 된 곳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30세대의 ‘반중(反中) 정서’는 컸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본지 조사에서 2030세대에게 국가별 선호도를 물었더니, 100점 만점에 중국은 30점이었다.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북한(28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43%가 중국을 협력 대상으로 봤는데, 20대와 30대는 각각 26%, 32%였다. 작년 말 기준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인은 95만8900명이다. 전체 외국인 10명 중 4명이 중국인이다. 그러나 청년 세대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일상 속 비호감을 넘어 반중으로 가고 있다고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연구팀은 분석했다.
2030세대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일상 경험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박모(26)씨는 “필수 수업도 아닌 한문 강독 교양 수업에 얌체처럼 중국인들이 몰려와 학점에 손해를 봤다”고 했다. 연세대생 양모(27)씨는 “전공 수업 중 중국인과 한 팀이 된 적이 있었는데, 발표 준비나 자료 조사도 하지 않고 무임승차했으면서 학점은 나랑 같아서 화가 났다”고 했다. 대구 지역 대학생 김모(28)씨는 “어릴 때부터 인터넷에서 중국 관광객들의 민폐 행동, 동북공정 문제를 접해 왔는데, 최근에는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빼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반중 정서를 가진 2030세대들은 한국인이 받아야 할 혜택을 중국인들이 빼앗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외항 선원으로 일하는 김모(37)씨는 “급여가 높아 세금도 많이 내는 편인데, 정부 정책은 세금을 자국민보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인에게 선심성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해외 체류 기간이 긴 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가 까다로운데, 외국인들에게는 의료 관광 오라고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고 했다. 반중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 A씨는 “중국은 대대적으로 한한령을 내리면서 한국산 문화나 제품은 배척하는 상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반중 집회에 나가 흔드는 태극기조차 ‘메이드인 차이나’라 적혀 있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34)씨는 “‘노 재팬(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이끈 86세대들은 우리가 일본 맥주를 마시거나 유니클로 옷을 사는 것도 ‘친일’이라 몰아세웠다”며 “그런데 청년들이 중국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덮어놓고 ‘혐중(嫌中)‘이라고 비판한다”고 했다.
격해지는 반중 정서에 국내에 체류하는 중화권 외국인들은 비상이다. 대만의 온라인 쇼핑몰 ‘쑹궈쇼핑(松果購物)’에서는 한글이나 영어로 ‘중국인이 아닙니다‘ ’나는 대만 사람‘이라 적힌 스티커 묶음이 10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현재 일시 품절 상태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대만인 리차이민(李采玟·27)씨는 “중국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대만인에게도 차별적인 행동을 한다”며 “대만이나 홍콩 출신들도 한국에서 중국어로 이야기할 때 목소리를 작게 내 사람들 눈에 최대한 안 띄게 노력한다”고 했다. 대만인 리지리씨는 “제주도 여행 중 중국어를 쓰니 식당 주인에게 불친절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며 “그 이후로 서울, 부산을 여행할 때마다 ‘나는 대만 사람’ 스티커를 가방에 붙이고 다녔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20·30대의 적대감과 비호감은 외교 노선에 대한 입장으로도 이어진다. 이번 조사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질문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0·30대 각 53%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고, ‘반대한다’는 응답은 각 47%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본지와 공동 조사를 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김한나(진주교대) 교수는 “노년층은 중국에 대한 거부감이 외교 정책에 대한 태도로는 이어지지 않는데, 2030세대에서는 다르게 나타났다”며 “청년 세대의 강한 반중 감정이 국가적 실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