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 한국의 결혼 건수와 출생아 수가 모두 증가했다고 통계청이 28일 발표했다. 혼인은 전년 동기 대비 17% 늘어난 5만5910건, 출생아 수는 1.2% 증가한 5만6838명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이날 발표된 ‘2023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생 중 비혼 출생 비율이 5%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혼인 관계 밖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1만900명으로 전체의 4.7%였다. 한 해 전보다 1100명 늘었고 5년 전(2.2%)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비혼 출산을 선택한 유명인들.(왼쪽부터 시계방향) 연인 기욤 카네와 결혼하지 않고 딸을 낳은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 2020년 해외 한 정자은행에서 일본인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비혼 동거를 하며 아이를 낳은 일론 머스크(사진 가운데)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연인 그라임스(사진 왼쪽).>
이처럼 결혼의 테두리 밖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계속 늘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비혼 출생은 주요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매우 적다. 세계 최저인 출산율이 반등하지 않아 고전하는 한국이 비혼 출생에 대해 지나치게 비(非)우호적인 제도 및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비혼 출생 비율은 프랑스 62.2%, 영국 49.0%, 미국 41.2%, 호주 36.5% 등으로 대부분이 한국을 크게 웃돈다. 비혼 출생 비율이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여전히 보수적인 일본(2.4%)과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2.8%) 정도다.
OECD가 집계한 회원국 37국(38국 중 통계 없는 콜롬비아 제외) 중 29국은 비혼 출생 비율이 30%를 넘었다. 회원국 평균은 41.9%였다.
미국·유럽 등의 비혼 출생이 늘 지금처럼 많았던 것은 아니다. 미국만 해도 1960년대 비혼 출생 비율이 5%대였다. 현재 출생아 중 절반 정도가 결혼 밖에서 태어나는 영국도 1970년대엔 비혼 출생 비율이 7% 정도에 머물렀었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적 자립도가 올라가는 가운데 결혼이란 틀에 제한되지 않은 출산·육아의 인정이 출산율 제고에 득이 된다는 각국 정부의 제도 개정이 이뤄지면서 비혼 출생은 늘기 시작했다.
프랑스·영국 등은 동거 커플과 자녀가 혼인 가족과 같은 복지 혜택을 받도록 ‘가족’의 정의를 바꿨다. 미국·호주 등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체외 수정을 통해 출산할 길을 넓혀 싱글 여성에게도 비혼 출생의 기회를 늘려주고 있다. 호주국립대가 발간하는 학술 저널 이스트아시아포럼은 최근 “출산율을 반등시키지 못하는 한국이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에만 초점을 맞춘 그동안의 대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먼저 (저출생 대책 수립 과정에) 다양한 유형의 가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아이가 누워서 엄마의 코를 잡고 놀고 있다.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아이를 놀아주는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최근 서구권에서는 ‘자발적 싱글맘’을 뜻하는 ‘초이스맘’의 비혼 출산이 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법·제도의 부재로 OECD 평균 대비 비혼 출산률이 매우 낮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혼인신고 없이 동거만 하는 커플의 자녀가 일반적이지 않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선 유명인을 포함해 결혼 제도 밖에서 태어난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이들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다. 비혼 출생을 통해 엄마가 된 여성을 뜻하는 ‘초이스맘’이란 용어도 흔히 쓰인다.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이나 비동거 연인 사이에, 혹은 정자 기증을 받아 시술을 통해 아이를 낳은 싱글 여성 등을 두루 포함하는 용어다.
유명인 중에도 비혼 출생을 선택한 이들이 적지 않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캐나다 가수 그라임스는 3년 동안 동거하며 2020·2021년에 아들·딸(딸은 대리모 출산)을 낳았지만 결혼한 적이 없다. 프랑스 유명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두 명의 전 동거인 사이에 각각 아이를 한 명씩 낳았다. 또 다른 프랑스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 역시 영화감독 기욤 카네 사이에 두 아이가 있는데, 결혼하지 않은 채 2007년부터 동거 상태다.
유럽연합(EU) 중 비혼 출생 비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비(非)혼인 동거 커플이나 싱글 여성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잘 마련돼 있는 국가로 꼽힌다.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PACS(팍스)라고 불리는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이다. 1999년 도입된 팍스는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에게도 결혼과 유사한 법적 권리와 의무를 준다. 팍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일반 결혼 가정의 자녀들과 똑같이 무료 교육, 양육 수당 등의 복지 혜택을 받는다. 프랑스 비혼 출생 비율은 팍스 도입 전인 1998년 41.7%였다가 2020년 62.2%로 빠르게 상승했다. 팍스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출산율 하락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 1.76까지 내려갔던 프랑스 합계출산율은 2010년 2.02까지 반등했고 지금은 다소 내려가 1.8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영국도 혼인 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보수적이었던 가족 정책을 점차 바꿔나가고 있다. 2005년 프랑스와 비슷한 ‘시민 계약’ 제도를 도입해 동거 커플 등이 낳은 아이도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와 동일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여성 인권 신장에 이어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자립도가 높아진 것은 싱글 여성의 비혼 출생을 늘어나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처럼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필요가 줄자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일 필요 없이, ‘엄마와 아이’로만 이뤄진 가정을 선택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이 같은 사회적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비혼 여성에게도 결혼한 부부와 마찬가지의 보조생식술(IVF) 건강보험 혜택을 주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2021년 생명윤리법을 개정했다. 프랑스 정부의 개정안 검토 보고서는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영위하는 구성원 각자에게 동등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한다”고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는 태어날 아이의 알 권리 보장과 무분별한 정자 기증 문제를 막기 위해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정자 기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고 정부가 정자 기증자 신원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관리하는 등의 보완 장치를 두었다.
미국은 세금·연금 등에서 여전히 혼인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이 유리하지만 제도에 앞서 문화·사회적으로 비혼 출생이 정착한 경우다. 미 공영방송 NPR은 “결혼이라는 꼬리표 없이도 함께 살면서 파트너십을 맺고 자녀를 양육하는 생활양식이 이제는 일반적 현상이 됐다”고 했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소수자·다양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비혼 출생 가정에 대한 선입견을 희석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갤럽 설문에 따르면 ‘비혼 출생을 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미국인의 비율은 2002년 45%에서 2015년 61%로 올라갔다.
결혼했다가 이혼할 경우 법원의 재산 분할 명령, 막대한 변호사 비용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자녀를 갖더라도 결혼이란 ‘리스크’ 대신 ‘커플과 자녀’로만 이뤄진 생활공동체에 머물겠다는 이들이 미국엔 적지 않다. 1984년부터 배우 커트 러셀과 동거하며 둘 사이에 자녀 한 명을 낳아 기른 할리우드 스타 골디 혼은 지난해 CNN 인터뷰에서 “과거 이혼한 경험이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게 했다”며 “이혼은 항상 추하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나는 ‘원한다면 매일 (홀로 돌아갈)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240829)
☞비혼 출생
법률상 부부 사이가 아닌 이들 사이에서 이뤄진 출생. 동거·사실혼 관계의 커플 사이에 이뤄진 출생, 싱글 여성에 의한 출생 등을 포괄한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진화하면서 미국·유럽 등에선 계속 늘고 있다.
☞초이스맘
’자발적 싱글맘(single mother by choice)’의 줄임말. 결혼하지 않고 본인의 의지로 정자 기증 등을 통해 아이를 낳거나 입양해 키우는 여성을 가리킨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해 ‘자발적’이란 표현이 들어갔다. 1980년대 인공수정·입양 등을 통해 아이를 갖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엔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이 전통적인 가족 구조 밖에서 출산하는 일이 늘고 사회·문화적 인식이 변하면서 더 많이 쓰이게 됐다.
미국의 몽니가 체코 원전 수주에 발목을 잡는 이번 같은 일은 아직까지 세계 원전 업계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그동안 원전 수출 과정에서 볼 수 없던 일이 왜 지금, 한국에만 일어나는 것일까?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세계 시장에서 원전을 수출한 나라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에 우리나라까지 단 6국뿐이다.
<체코 신규원전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
러시아와 중국이 서방 원전 시장에서 퇴출당한 현실에서 남은 국가는 미국·프랑스·캐나다와 우리나라 4국이고,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를 제외한 국가로 따지면 핵무기가 없는 나라 중 원전을 수출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캐나다뿐이다. 캐나다도 독자적인 중수로 모델인 캔두형 모델로 수출에 나서면서 다른 나라의 수출 통제를 받을 필요는 없다. 이렇다 보니 핵무기도 없고, 독자 모델도 없는 우리나라만 원전 수출을 두고 다른 나라가 딴지를 거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1966년부터 상업용 원전을 가동하며 우리나라보다 오랜 원전 역사를 가진 일본도 합작 형식으로만 해외에 진출했을 뿐, 아직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한 경험은 없다.
1978년 고리 1호기 가동을 시작한 원전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이후 꾸준히 원전을 건설·운영하며 쌓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하며, 1940~50년대부터 원자력 기술을 개발해온 선진국들을 세계 원전 시장에서 위협하자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원전 업계 교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기존 핵무기 보유국이 각국으로 핵이 확산하는 일을 막기 위해 시작된 것에서 보듯 원전 수출 통제 지침을 내놓는 원자력공급국그룹(NSG)도 핵무기 보유국 위주로 운영되는 게 현실”이라며 “프랑스가 미국과 협상을 통해 1981년부터 자체적으로 수출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현재로선 미국 등 다른 나라 원전 수출 통제 절차를 지켜야 하는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240824)
☞원자력공급국그룹(NSG)
원자력 분야 수출 통제를 통해 핵무기 비확산에 기여하고자 1978년 만든 국제 조직으로 우리나라 등 세계 48국이 참여. NSG (Nuclear Suppliers Group) 지침에 따라 미국 모델에서 유래한 한국형 원전은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를 받는데 신고 권한이 웨스팅하우스에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대학생에 이어 초·중·고교생, 교사까지 피해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 불거지는 딥페이크 음란물 범죄는 청소년들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초보적인 수준의 범죄인데도, 현행 법률과 제도로는 막을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합성 음란물은 10년 전에도 유사한 형태로 있었다” “이미 예견돼 있던 범죄인데도 법 제도는 물론 여러 면에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 가운데 딥페이크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성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14조의 2′, 하나뿐이다.
이 조항은 지난 2019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불법 음란물이 대량 유포된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진 뒤에야 만들어졌다. 허위 영상물 반포(頒布·널리 퍼뜨림) 등을 처벌하는 규정으로,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 촬영 및 영상물을 음란하게 편집·합성하거나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유포할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혼자 만들어 혼자 보는 것은 처벌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것이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퍼뜨린 ‘공급’만 처벌하고 영상물을 소지하거나 구입하는 등 ‘수요’에 대해서는 전혀 제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 했다.
해외에선 이미 딥페이크 처벌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 법무부는 지난 4월 딥페이크로 음란물을 만들기만 해도 공유·유포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유명 딥페이크 포르노 사이트 두 곳이 영국에서 접속을 자진 차단했다고 한다. 미국 상원 의회에선 지난달 딥페이크 피해자들이 음란물로 본 피해를 보상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15만~25만달러까지 딥페이크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연방법에 근거가 생긴 것이다. 텍사스주와 사우스다코타주 등은 2022년부터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하는 사람을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240829)
☞딥페이크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들어진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AI로 다른 사람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한 이미지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22만명가량이 참여 중인 한 텔레그램 채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물이 확산한 혐의를 수사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익명성이 상당 부분 보장되는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온상이라고 보고 수사를 확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에서 유포하는 딥페이크 성범죄물 피해자 가운데는 중·고교생 등 미성년자뿐 아니라 대학생, 교사, 여군 등도 대거 포함돼 있다고 한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의 80%가량이 여성으로 추산된다. 경찰은 28일부터 7개월간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특별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2024'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일선 초·중·고와 대학가, 군대·회사에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딥페이크 영상물은 단순 장난이라 둘러대기도 하지만, 익명의 보호막에 기대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관계 당국에서는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며 “건전한 디지털 문화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교육 방안도 강구해 달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딥페이크 범죄 근절을 위한 국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당에 지시했다. 이 대표는 “피해자 보호 방안과 딥페이크 제작·배포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을 강구하라”고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주 정부에서 관련 보고를 받고 법률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인 이인선 여성가족위원장은 “기존 개인정보보호법과 명예훼손 법률로는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범죄 특수성을 제대로 규율하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구제 장치가 부족하다”며 “법적 제도를 강화하고 여성·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마약 범죄와 같은 수준으로 단속을 시작해야 한다”며 “관련 입법이 필요하면 국회와 협의해 추진하고, 기본적으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교육도 처벌과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우리 누구나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딥페이크 성범죄가 최근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면서 10·20대 여성 등 피해자들은 ‘죽고 싶다’며 우울과 불안을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가해자들에겐 한순간 장난이겠지만 피해자들은 인생 자체가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그냥 신기하고 재밌어서” “아는 여자애 사진을 넣으면 더 실감나니까” 같은 이유로 10대 사이에서 ‘놀이’처럼 무분별하게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터치 몇 번만으로 손쉽게 합성 영상을 만들어주는 앱이 속속 출시되면서 범죄 접근성은 높아졌고 경각심도 낮아졌다. 텔레그램 등 신원 추적이 힘든 경로를 통해 딥페이크 영상이 확산되면서, 유포자들 사이에선 “경찰에 걸리는 사람이 바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허위 영상물을 만들어 배포해 입건된 10대는 2021년 51명, 2022년 52명, 지난해 91명, 올해 1~7월 131명으로 3년 새 약 2.5배로 늘었다. 최근 4년간 입건된 피의자 중 절반이 넘는 325명(70.5%)이 10대였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내 아이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올해 1∼7월 초·중·고교 텔레그램 성 착취 신고를 10건 접수, 14세 이상 청소년 10명을 입건했다. 부산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부산 해운대구의 중학교에서는 3학년 학생 4명이 같은 학교 여학생 18명의 얼굴 사진에 다른 신체 이미지를 합성한 음란 사진을 만들어 공유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피해자 중에는 이 학교 교사 2명도 있었다. 이들은 AI를 활용해 합성한 사진 80여 장을 인스타그램 단체 대화방을 통해 공유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의 신상을 유포하거나, 피해자를 협박,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경찰은 “피해자에게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줄 뿐 아니라, 피해자가 정상적 학교·사회생활을 꾸려나가기 어렵게 만드는 악질 범죄”라고 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타인의 의사에 반해, 배포 목적으로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편집·합성물을 만들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지난 5월 딥페이크 성범죄물 유포가 적발된 서울대 졸업생 박모(39·구속)씨와 서울대 로스쿨 졸업생 강모(31·구속)씨를 비롯, 20~50대 남성 3명은 이에 따라 기소된 상태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지난 4월 같은 학교 여학생을 상대로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만든 19세 학생 B군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 명령을 내렸다. B군은 작년 4~5월 여학생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사진을 캡처한 후 텔레그램 딥페이크 합성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성 나체 사진에 피해자 얼굴을 합성하는 등 여학생 4명의 얼굴∙신체를 대상으로 7차례에 걸쳐 20여 장의 딥페이크물을 합성한 혐의를 받는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물리적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여대 김명주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 개인의 인격 자체가 말살되는 중범죄인 만큼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여성계에선 “가해자 엄벌뿐 아니라 어린 나이에 깊은 상처를 입는 피해자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240828)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일본, 미국 등 해외 주요국보다 매우 저렴하다. 해외에선 전기 요금을 꾸준히 현실화해 소비자들의 절약을 유도하는데, 한국전력은 전기를 너무 싼 값에 판매해 방만한 전기 사용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국제 에너지 가격 사이트인 글로벌페트롤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요금은 1kWh(킬로와트시)당 172.4원으로 148국 중 77위였다. 이탈리아(1kWh당 604.6원), 독일(532.3원), 영국(528.1원), 일본(284.4원), 미국(213.2원) 등 해외 주요국이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전기 요금이 비쌌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국 중에선 다섯째로 저렴했다. 캐나다(81위), 헝가리(91위), 멕시코(92위), 튀르키예(122위)만 주택용 전기 요금이 한국보다 쌌다. 이 외에도 우리보다 전기 요금이 싼 나라 중엔 아랍에미리트(103위), 러시아(113위), 사우디아라비아(123위) 같은 에너지 부국이 많다.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닥치기 전과 비교해 네덜란드는 120%, 독일은 73% 전기 요금을 인상하는 등 주요국이 요금을 대폭 올렸지만,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요금은 2021년 대비 37.2% 오르는 데 그쳤다.
해외 주요국은 에너지 요금에 부담을 느끼는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책을 만들면서도 전기 요금을 꾸준히 올려 절약을 유도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에너지 비용 급증에 대한 유럽 주요국의 정책 대응과 시사점’ 보고서는 “유럽의 지원책들은 대부분 전기 요금을 인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행됐다”며 “지원책 역시 에너지 바우처 지급처럼 대부분 일회성에 그치면서 시장에 왜곡을 초래하지 않고, 전기 요금이 가격 신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한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한 일본도 우리나라보다 전기 요금이 훨씬 비싸다”며 “주요국보다 턱없이 싼 전기 요금을 유지하며 제대로 된 가격 신호를 주지 못하다 보니, 한전은 파산할 지경이고 소비자들 사이에는 방만하게 전기를 쓰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고 했다.(240822)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성수역에 ‘난자 냉동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4층 건물 전면을 채운 분홍색 대형 현수막엔 ‘지금저장소’라고 적혀 있었다. 난임 치료로 유명한 서울의 한 병원이 난자 냉동 판촉 목적으로 지난 8일에 문을 연 이 점포엔 20일까지 1만명 넘는 여성이 방문했다. 매장 곳곳에서 20대 남녀 직원들이 방문객 여성들에게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을 던지며 난자 냉동 상담을 하고 있었다.
이날 팝업 스토어를 방문한 여성들은 “난자 냉동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인 줄 알았는데 상담을 받아보니 생각보다 안전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들은 ‘자궁내막증이 있어도 시술이 가능할까?’ ‘생리 주기가 불규칙한데 난자 냉동 시술이 가능할까’ ‘부작용은 없을까’ 같은 질문을 연발했고, 직원들은 “냉동 난자라도 수정(受精)·출산엔 지장이 없다”고 안내했다. 난자 채취 비용은 300만원 선, 난자 은행 보관 비용은 1년 20만~30만원 선이다.
과거 불치병 진단 등 극단적 상황을 앞두고 선택했던 난자 냉동이 2030 여성들의 ‘결혼 전 필수 옵션’으로 대중화하고 있다. 전국 의료 기관에서 보관 중인 냉동 난자 개수는 2020년 4만개가량에서 지난해 10만개가량으로 늘어났다. 결혼·취업·출산 등 인생 관문 연령이 전반적으로 늦춰지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난자를 보존하고 싶다’는 여성들의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작년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은 33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가장 높은 연령을 기록했다.
이날 ‘지금저장소’를 찾아 난자 냉동을 결심했다는 직장인 주모(30)씨는 “입시·취업 관문을 거치는 데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썼기에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다”며 “하지만 40대가 넘어서도 결혼하거나 아이를 갖고 싶을 수도 있기에 난자 냉동은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했다. 난자 냉동 전문 마리아병원 주창우 부원장은 “냉동 난자로 출산한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며 “냉동 난자로 첫째·둘째 아이를 낳은 여성들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가임 능력이 나이와 밀접하다고 말한다. 초혼 여성 평균 연령이 31.5세가 됐고, 40세 안팎 노산(老産)도 드물지 않아진 상황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난자는 자궁보다 훨씬 빨리 노화한다”며 “가임력이 유지되는 30대 초반의 젊은 난자를 채취해 보존하는 것이 향후 늦은 결혼을 생각했을 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쓸 수 있는 난자 개수는 100만~200만개.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난소가 노화해 인공수정을 위한 난자 채취가 어려워지기에 미리 난자를 냉동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난자보다 세포 구조가 단순한 정자를 냉동 보존하는 방안도 최근 각광받고 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결혼 연령도 높아지면서, 난임의 원인을 남성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전문가들 지적도 상당해지고 있다. 한 난임 클리닉 전문의는 “요즘 난임의 원인은 과로·음주·흡연 등으로 쇠약해진 남성에게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난임 원인의 절반 이상이 남성에게 있는데 남성 대상 클리닉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들도 난자·정자 냉동 사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관내 6개월 이상 거주한 20~49세 여성 650명을 대상으로 난자 동결 검사 시술비를 1회에 한해 최대 200만원 지원한다. 경기도는 도내 20~49세 600명을 대상으로 난자 동결에 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 남성 정자 채취 시술비도 최대 30만원 지원한다.(240822)
민주당은 당나귀, 공화당은 코끼리. 미국 양대 정당의 상징 동물로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곳곳에서 두 동물이 그려진 포스터나 옷을 볼 수 있다. 왜 하필 당나귀와 코끼리일까.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둘째날인 20일, 시카고 전당대회장에서 민주당의 상징인 당나귀 모양 모자를 쓴 지지자.>
민주당의 당나귀는 182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전신 ‘휘그당’이 민주당 앤드루 잭슨 후보를 비하하기 위해 붙인 별명 ‘잭애스(Jackass·멍청이)’에서 왔다. 잭애스는 원래 ‘수컷 당나귀’라는 뜻으로 동남부 테네시주의 시골 출신인 잭슨을 촌뜨기 이미지로 깎아내리기 위한 별명이었다.
하지만 잭슨은 이를 역이용했다. 당시 “국민이 미국을 통치하게 하라”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서민 정치를 표방했던 그는 ‘당나귀는 근면한 동물’이라면서 자신의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결국 잭슨은 승리했고 민주당은 당나귀를 당의 상징 동물로 삼았다.
공화당의 코끼리는 미국의 시사 만화가 토머스 내스트의 만평에서 시작됐다. 1874년 그가 한 주간지에 정치적 곤경에 처한 공화당 소속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을 뒷걸음질치다 구덩이에 빠지는 코끼리로 묘사한 그림이 인기를 끈 것이다.
이 그림 속에서 코끼리를 위협한 건 사자 탈을 쓴 당나귀, 즉 민주당을 의미했다. 공화당 관계자들은 발끈하기보다는 ‘코끼리는 힘이 세지만 점잖고 위엄 있는 동물’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이후 다른 만화가들도 공화당을 코끼리로 그리면서 당의 상징 동물로 굳어졌다.(240823)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엠폭스(MPOX)’에 대해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다. 중국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자국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엠폭스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막지 못하면 전 세계가 또다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엠폭스는 어떤 병이고 증상은 어떤지, 2022년 상황과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등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17일 콩고민주공화국 북쪽 니라곤고 종합 병원의 엠폭스 치료 센터 상담실 밖에서 환자들이 의료진의 말을 듣고 있다.>
Q1.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나
엠폭스는 1958년 싱가포르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데려와 실험실에서 사육하던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사람과 동물이 공통적으로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로, 1970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생후 9개월 남자아이에게서 인체 감염 사례가 처음 보고됐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풍토병으로 알려졌으나 2022년 5월 이후 유럽과 북미 등 풍토병과 관련 없는 지역에서의 감염 사례가 이례적으로 증가했다. 2022년 확산 초기에는 공식 명칭이 ‘원숭이 두창(Monkey Pox)’으로, 엠폭스(MPOX)는 약자로만 사용됐다. 그러나 ‘원숭이’라는 단어가 흑인 등을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된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WHO가 ‘엠폭스’를 공식 명칭으로 지정했다.
Q2. 감염 경로와 증상은 무엇인가
초기 증상은 독감과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열, 근육통, 탈진 등이 나타난다. 감염 이후 1~5일이 지나면서 얼굴을 시작으로 온몸에 울퉁불퉁한 수포성 발진이 생기는 것도 특징이다. 발진에는 고름이 들어차고 딱지가 생긴다. 엠폭스는 체액이나 침방울 등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염자와의 성관계나 감염자의 병변 부위를 접촉한 경우 전염될 수 있으며,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와 호흡을 통해 전염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WHO에 따르면 감염 후 2~4주가 지나면 자연 치유되나, 어린이와 임신부 등은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Q3. 2022년 확산 때와 다른 점은
지난 15일 스웨덴 보건 당국은 스톡홀름에서 치료받던 환자가 엠폭스 바이러스 ‘하위 계통(Clade) 1b’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022년 WHO의 PHEIC 선언 당시 ‘하위 계통 2′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최근에는 1b형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1b형 바이러스의 경우, 2형보다 전파가 빠르고 독성이 강하다는 특징으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엠폭스 1b형은 사망률이 10%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2년 엠폭스 창궐 당시와 달리 최근에는 15세 미만 어린이 감염자가 늘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확산 속도도 이미 올해 아프리카에서는 1만8700명 이상의 감염 사례와 500명 넘는 엠폭스 관련 사망자가 보고되며 지난해 수치를 넘어섰다.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도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튿날인 16일 파키스탄에서도 첫 감염자가 보고됐고, 18일에는 국외 여행 기록이 없는 33세 필리핀 남성이 엠폭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240820)
공영방송 KBS가 광복절 당일 0시에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 실황 영상을 내보낸 뒤 논란이 불거졌다. 이 오페라 1막에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에 기미가요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1904년 초연된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개항기의 일본 항구 나가사키가 배경이다. 이 오페라에서 묘사되는 일본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망상에 사로잡힌 침략 국가가 아니다. 거꾸로 자국 소녀를 보호할 힘조차 없는 초라한 약소국에 가깝다.
<지난 15일 오전 KBS TV가 방영한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주인공 초초상이 기모노를 입고 노래하는 장면.>
이를 보여주는 여주인공이 열다섯 살 일본 소녀인 초초상(나비부인)이다. 집안의 몰락으로 게이샤가 된 초초상은 미 해군 장교 핀커튼과 진실한 사랑이 가능할 것이라고 굳게 믿지만, 반대로 핀커튼에게 초초상은 ‘현지처’에 불과하다.
푸치니는 이 오페라를 쓰면서 일본 민요 ‘사쿠라 사쿠라’와 군가 ‘미야상 미야상(宮さん 宮さん)’ 등 다양한 선율을 사용했고, 오페라 1막에서 핀커튼과 초초상이 혼례를 올리는 장면에서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삽입했다. 일본 전통 혼례를 의미하기 위한 것이다. 푸치니가 기미가요 등 일본 선율을 많이 넣은 이유로 19세기 유럽에서 일본 미술이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현상을 뜻하는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으로 보기도 하고, 반대로 당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시각을 의미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반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오페라 1막에선 일본 국가만이 아니라 미국 국가도 나온다. 푸치니는 핀커튼의 활달한 성격 묘사를 위해서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도 사용했다.
핀커튼은 초초상과 혼례를 올리지만,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일말의 주저도 없이 미국 여성과 다시 정식으로 결혼한다. 이 오페라는 가해자 미국 남성과 희생자 일본 여성의 구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군주의 치세’를 의미하는 기미가요의 가사는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부터 전해졌다. 1869년 일본 군악대장이었던 영국 작곡가 존 윌리엄 펜튼(1828~1890)이 여기에 처음 곡조를 붙였다. 하지만 펜튼의 선율은 ‘진지함이 부족하다’ ‘부르기 힘들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1880년 일본 작곡가들이 새롭게 붙인 선율을 궁내성에서 승인했다. 당시 일본 해군 군악대장이었던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는 서양식 화성을 입혀서 이 곡을 편곡했고, 일본 정부는 1888년 에케르트의 기미가요를 공식 국가로 채택했다. 공교롭게도 에케르트는 1901년 대한제국 군악대 교사로 부임한 뒤 이듬해 대한제국 애국가도 작곡했다. 현재 그의 유해도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있다.
1945년 종전 이후 더글러스 맥아더 최고사령관의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에서 기미가요 금지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일본 국가로 계속 불리다가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기미가요는 일본 국가로 명문화됐다.(240817)
북한에서 당·정·군 간부, 외교관, 해외 주재원 등은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엘리트 계층이다. 이들이 동요한다는 것은 북한 정권이 가장 깊숙한 곳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일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엘리트층의 탈북이 이전 김정일 집권 시기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본지가 21일 통일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이 ‘단독 보호’ 대상으로 분류한 엘리트 탈북민은 관련 법령에 따라 집계를 시작한 1997년 7월 이후 현재까지 188명이다. 김정일 사망 시점(2011년 12월)까지 54명,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는 134명이다. ‘국정원 단독 보호’ 탈북민은 북한 이탈 주민 관련법에 따른 ‘국가 안전 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국정원장이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 주로 북한 외무성, 군, 정보기관, 체제 보위 기관 출신 엘리트다. 김정일 시대 14년보다 김정은 시대 13년에 엘리트 탈북이 집중돼 있다.
엘리트들의 동요는 전체 탈북민 숫자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김정일 시대 전체 탈북민 2만3027명 중 엘리트 비율은 0.23%인 반면, 김정은 시대 탈북민 1만985명 중 엘리트 비율은 1.22%로 5.3배에 달했다.
본지가 인터뷰한 엘리트 탈북민 6인은 “이미 핵심 계층 구성원들 사이에서 체제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김정은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김씨 왕조를 모두 겪었고,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인 2014~2020년 탈북했다.
외교관 출신 인사는 “자식만큼은 나와 부모님처럼 살게 하기 싫었다. 아직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리일규 참사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먼저 탈북한 선배 외교관 고영환·태영호의 한국 정착 생활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자유세계를 동경하고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제2, 제3 리일규’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240822)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인 주요 대기업이 고령화되고 있다. 최근 3년간 20대 이하 직원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50세 이상의 비중은 계속 늘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구 구조가 변한 데 더해, 기업 채용 방식이 대규모 신입 공채에서 경력직 수시 채용 위주로 바뀐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20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최근 3년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출한 회사 123개사의 임직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해당 기업군의 전체 임직원 141만7401명 중 20대 이하 직원은 30만6731명으로 2021년에 비해 1만5844명 줄었다. 전체 임직원 수는 3만8000명 늘었는데 20대 이하 직원만 급감한 것이다. 이에 2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도 21.6%로 2021년(23.4%) 대비 1.8%포인트 줄었다.
특히 IT·전기전자 업종 등 기존에 20대 직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업종과 유통·통신 등 서비스 업종에서 20대 이하 직원이 감소하고 50대 이상은 증가하는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IT·전기전자 업종의 20대 이하 직원 비율은 2021년 34.2%에서 지난해 28.9%로 하락한 반면, 50세 이상은 16.6%에서 19.8%로 늘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20대 이하 직원 수가 가장 많이 줄었다. 삼성전자의 20대 이하 직원은 지난해 7만2525명으로 2년 전보다 1만7372명(19%) 줄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3.7%에서 27.1%로 6.6%포인트 하락했다. LG디스플레이도 같은 기간 20대 이하 직원이 3만4929명에서 2만8493명으로 18% 줄었다.
이차전지 업종에서도 20대 이하 직원이 2021년 40.0%에서 지난해 34.2%로 5.8%포인트 줄었다. 반면 50대 이상 비율은 6%에서 7%로 늘었다. 유통업에서도 30대 미만 비율이 2021년 15.1%에서 지난해 12.5%로 줄었고, 같은 기간 통신업에서는 50세 이상 비율이 8.2%에서 11%로 늘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대기업들이 20대 신입 직원을 많이 뽑던 공채에서 경력직 위주의 수시 채용으로 채용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3월 100개 대기업을 분석한 결과 정기 공채 비율은 2019년 39.9%에서 2023년 35.8%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수시 채용 비율은 45.6%에서 48.3%로 늘었다. 또 채용 인원 중 고졸·대졸 등 신입 직원 비율은 2019년 47%에서 지난해 40.3%로 급감했다. 실제 삼성전자를 제외한 국내 4대 그룹은 신입 공채를 폐지하고, 경력직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반대로 중후장대(重厚長大) 제조 업종에서는 50세 이상 비율이 줄고 20대 비중이 늘어났다. 해당 업종들은 타 업종보다 50세 이상 비율이 높았지만, 최근 신사업과 연구·개발(R&D) 등을 중심으로 젊은 인력을 수혈하면서 연령 구조를 개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부품 업종의 경우 지난해 20대 이하 직원 수가 2021년보다 1만명쯤 늘었다. 전체에서의 비율도 18.7%에서 21.2%로 올랐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생산직 등에서 베이비 붐 세대가 대거 은퇴한 반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미래차 개발 등 신사업 분야에 젊은 인재 채용이 늘었다”고 했다.
조선·기계설비업은 같은 기간 전체 직원이 약 1만명 늘어 8만9566명을 기록했는데, 20대 이하 직원이 3500명 늘었다. 조선업계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수주 호황으로 R&D, 제조, 사무 등에서 젊은 인력을 대거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황이 부진한 철강업은 전체 직원이 2021년 3만1970명에서 지난해 2만8730명으로 줄었는데, 20대 이하는 4731명에서 4884명으로 소폭 증가해 비율도 14.8%에서 17%로 늘었다. 건설업도 지난해 전체 직원 수가 3만1239명으로 2년 새 2400명 늘어나는 동안 20대 이하는 795명 증가했다.(240821)
일본 아이돌 그룹들이 내한 공연을 펼치는 J팝 음악 축제가 국내 최초로 오는 11월 8일부터 사흘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다. 일본 아이돌 그룹 AKB48, 아타라시각코! 등 17팀이 내한한다. 지난달 30일 일부 출연진만 공개된 상황에서 발매된 예매 티켓은 5분 만에 매진됐다.
<K팝 뉴진스, 도쿄돔 이틀 공연에 9만명 몰려 - 걸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가 지난 6월 26일 일본 도쿄돔 공연에서 1980년대 일본 인기 가수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부르고 있다. 이틀간 열린 뉴진스 공연은 9만여 명 관객이 관람했다.>
K팝이 일본을 석권한 데 이어 J팝이 한국에 상륙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 ‘문화 국경’은 이미 무너졌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상대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문화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은 전혀 거리낄 일이 아니다. 최근 일본 도쿄돔에선 한국의 걸그룹 ‘뉴진스’가 이틀 공연으로 9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제는 J팝도 한국 음악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두 나라 젊은이들은 과거의 역사에 사로잡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한일 간 문화 교류에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치기 힘든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일본 최대 연예 기획사 자니즈(현 스타토엔터) 출신 7인조 보이그룹 나니와단시는 내년 1월 11·12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단독 내한 공연을 펼친다. 지난 2008년 보이그룹 ‘아라시’가 이틀간 4회 공연으로 세운 J팝 역대 최대 공연 동원 인원 3만명 기록을 깰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그동안 ‘J팝의 금역(禁域)’으로 통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일본 문화 개방 조치를 천명한 후, 2004년 전면 개방됐지만 국내 방송에서 일본 음악을 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튜브, OTT, 음악 플랫폼 등에서 음악을 자유롭게 골라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자생적인 팬덤이 생겨났다.
임희윤 평론가는 “과거에는 한국에서 일본 음악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적었다면, 최근엔 틱톡과 유튜브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음악의 국경이 급격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음 달 21~22일 500석 규모 서울 마포구 무신사 개러지에서 공연하는 도미오카 아이처럼 일본 내에선 유명하지 않지만 한국에서 먼저 유명해진 경우도 있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도미오카의 노래 ‘굿 바이바이’가 흥행했다. OTT에서 흥행한 애니메이션 작품 주제가를 부른 오피셜히게단디즘, 요아소비, 아도 등 J팝 가수들의 내한이 줄을 잇는 것도 특징이다.
국내 음원 시장에도 J팝 인기가 반영되고 있다. 국내 음원 플랫폼 지니뮤직에서 이용자들의 J팝 재생 수를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93%의 증가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가요를 비롯해 10개 음악 장르별 감상 비율에선 J팝이 1.2%로 재즈(0.6%)와 클래식(0.7%)을 제쳤다. 2018년 J팝은 0.4%에 불과했다.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역시 “지난 7월 한국 이용자들 사이 J팝 월간 재생 횟수가 전년 동기 대비 40% 성장했다”고 밝혔다. J팝을 좋아한다고 밝힌 박모(29)씨는 “2~3년 전만 해도 일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오타쿠’라고 놀림당했는데 이젠 거리에서 J팝 노래가 나와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국내 공연 기획사들도 J팝의 한국 상륙을 반기고 있다. 한 대형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일본 밴드는 영미권 밴드보다 이동 거리가 짧아 초청 비용이 적게 들고, 500~1만을 동원하는 다양한 체급의 팀이 풍성하다”며 “칼군무와 노래가 완벽한 한국 아이돌과 달리 일본 아이돌은 친근하고 예능에 가까운 무대를 선보인다. 색다른 매력이 마니아층을 결집시키는 것 같다”고 했다.
J팝도 한국을 세계 진출에 앞서 거쳐야 할 곳으로 보고 있다. 황선업 평론가는 “그동안 일본은 내수 시장만으로도 수익을 내기 충분했기에 한국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최근엔 달라졌다”면서 “한국에서 공연하면 인기가 대단한 그룹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이 J팝 내한 공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240821)
정치권과 노동계는 2019년 택시 기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택시기사 완전 월급제’를 법제화했다. 기존 사납금제가 택시 기사들을 과로로 내몰리게 해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사납금제는 택시 기사가 회사에 하루 13만~15만원을 입금하고 나머지를 갖는 방식이다. 또 택시 기사를 위해 우버 등 해외에서는 일반화된 모빌리티 서비스의 진출도 법으로 막았다.
<논란이 많은 택시월급제 시행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택시 회사 차고지에 택시들이 주차 되어 있다.>
월급제는 법인택시 기사의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고 200만원 이상 고정급을 지급하는 제도다. 법인택시 기사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월급제 도입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택시업계 노사(勞使)는 여야가 월급제 전국 시행 여부를 논의한 19일 “현실을 모르는 황당한 규제 때문에 택시 산업 전체가 공멸할 위기에 놓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택시회사 관계자는 “안 그래도 코로나 이후 경영난이 심각한데 매출과 상관없이 고정급을 주면 도산하는 회사가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월급 206만원을 주려면 택시 한 대당 월 5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한다. 보험료, 가스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해 법인택시의 월평균 매출이 500만원을 넘은 지역은 서울(509만원)이 유일했다.
택시 기사들도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내가 열심히 뛰어서 더 벌 수 있는데 굳이 월급제를 시행해야 하느냐” “모두 적당히 일하고 월급을 받으면 성실한 기사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60대 택시 기사 A씨는 “젊은 기사들은 요즘 잘나가는 배달업계로 빠져 나가고 현장에는 노인이나 ‘투잡’으로 잠깐씩 뛰는 기사들이 많다”며 “주 40시간 이상 일하라고 하면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시가 2022년 법인택시 기사 74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3.4%는 기존 사납금제를 선호했다. 월급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8.7%에 불과했다. 한국노총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과 민주노총 전국민주택시노조도 지난 6월 “월급제는 실현 불가능한 제도”라는 입장을 냈다.
교통 전문가들은 “택시 기사를 보호하려는 규제가 산업 경쟁력을 더 약화시켰고 코로나까지 겹치며 이제는 택시 회사와 기사의 생존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고 했다. 우버나 타다 등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할 때마다 택시 기사 보호를 명분으로 신규 서비스를 금지하는 규제를 단행했지만 택시 업계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택시 기사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택시업계의 위기 상황은 수치로 나타난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4년) 전국 법인택시 대수는 7만9291대에서 6만3562대로 1만5729대(20%) 감소했다. 택시기사 수는 같은 기간 10만2320명에서 7만679명으로 3만1641명(31%) 줄었다. 5년간 법인택시 기사 3명 중 1명이 업계를 떠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법인택시 가동률은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택시 10대 중 7대가 회사 차고에서 그냥 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택시 대수는 16만4000여 대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택시기사 완전 월급제 도입이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입법’이라는 비판도 있다. 민주노총이 택시기사들을 위한다며 월급제 전면 도입을 추진하자 노조 눈치를 본 정치권이 면밀한 검토 없이 법제화했다가 막상 시행할 때가 되니 ‘2년 유예’라는 어정쩡한 타협안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경기 지역 택시회사 관계자는 “법제화를 추진할 당시에도 ‘현실을 모르는 입법’이라고 반대를 했지만 정치권은 귓등으로 들었다. 유예 기간이 끝나는 2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이양덕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무는 “세계적으로 택시의 경영과 임금 구조를 이렇게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없다”며 “택배나 배달 등으로 인력 유출을 막으려면 파트타임 등 다양한 근로 형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지자체들이 지하철·버스 할인 정책을 펴 택시업계가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월급제를 시행하기 앞서 택시 회사를 통폐합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240820)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 19일 오후 3시 서울 동작구에 있는 기상청 내 기상 관측기(높이 1.5m)가 잰 기온은 36.5도였다. 같은 시각 기상청 직원이 아기 유모차쯤 되는 높이 75㎝에서 온도를 쟀더니 40도 가까이 올라갔다. 햇볕이 지표면에 반사되면서 나오는 복사열 때문에 아스팔트 바닥과 가까운 곳이 훨씬 더 뜨거웠던 것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지표면 -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5.3도를 기록한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광장에 설치된 햇빛 가리개(사진 위쪽 삼각형 모양) 아래 그늘(초록색 동그라미 모양)이 주변 노면의 높은 온도(빨간색)에 비해 낮은 온도를 뜻하는 초록색으로 표시돼 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온열 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19일 기준 올해 누적 온열 질환자는 2814명으로, 이 중 24명이 사망했다. 무더위를 일으키는 원인은 강한 햇볕, 뜨거운 열풍, 높은 습도다. 그러나 같은 폭염이라고 해도 ‘체감 더위’는 크게 차이 난다. 실제 피부로 느끼는 더위는 복사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표면과 떨어진 높이가 체감 더위와 밀접한 것이다. 특히 지표면에서 50㎝까지 구간은 복사열 강도가 지표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뜨겁다. 경우에 따라 지표면에서 1m까지도 40도 가깝게 기온이 올라 폭염 시 피해야 하는 ‘공포의 높이’에 해당한다.
19일 기상청이 이동식 관측 차량으로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오후 2~4시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노면(0㎝)과 높이 150㎝ 지점 기온을 각각 측정했다. 노면 온도는 최고 58.6도, 150㎝는 36.5도로 기온 차가 22.1도였다. 기상청이 매일 예보하는 기온은 전국 기상 관측기의 온도계가 설치된 높이 1.5m 부근을 기준으로 한다.
기상청 실측 값을 토대로 이날 높이별 최고 체감 기온을 산출해보니 밭일을 하려 몸을 웅크린 노인(노면에서 약 50㎝)은 47.8도, 유모차에 탄 아기(75㎝)는 42.4도까지 온도가 오른 공기를 쬘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m 높이에서 실제 예보하는 기온보다 ‘1m 아래’에선 체감상 40도에 육박하는 더 독한 더위를 경험하는 셈이다.
올해 온열 질환 추정 사망자 대부분은 폭염에 밭일을 나간 노인들이다. 모자를 쓰거나 팔 토시를 착용해도 내리쬐는 햇볕이 체온을 높인 데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까지 몸으로 그대로 받아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일 경남 밀양시에서 밭일을 하다 사망한 60대 여성은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체온이 41.1도에 달했다. 지난 4일과 8일 각각 광주광역시와 전북 진안군에서 밭일을 하다가 의식을 잃고 사망한 80대·90대 여성도 체온이 41~42도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은 땀샘 감소로 땀 배출이 적고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폭염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거리를 다니는 것도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모차에 앉으면 지표면과 가까운 데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유모차 내부에 갇혀 더 뜨거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신진대사율이 높아 열이 많은데, 땀으로 체열을 내보내는 능력은 낮다. 작은 체구로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오래 받으면 열사병 등 온열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
올여름은 한낮뿐 아니라 오전에도 온열 질환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시간대별 온열 질환 사고를 보면 오후 2~3시(10.7%), 오후 3~4시(10.5%), 오전 6~10시(10.6%)에 많았다. 밤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려 밤사이 기온이 별로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해가 뜨면 곧바로 기온이 치솟는 경향을 보인 탓이다. 복사열 강도도 오전부터 강하다. 19일 오전 11시 기준 최고 체감 기온은 경기 화성 36.8도, 인천 33.8도, 서울 33.1도 등으로 오전부터 이미 30도를 훌쩍 넘겼다. 한낮뿐 아니라 아침에도 온열 질환에 걸릴 수 있으니 안심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온열 질환을 피하려면 하루 중 가장 더운 낮(오후 12시~5시)에는 되도록 외출을 삼가야 한다. 열사병 등 온열 질환은 상태가 서서히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쓰러질 수 있기 때문에 몸에 열이 쌓이지 않도록 외출을 하더라도 햇볕 쬐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갈증을 느끼지 않아도 미리 물을 자주 마셔 탈수에도 대비해야 한다.(240820)
“저는 특별했어요. 요즘 배우는 상상도 못 하겠지. 내가 살았던 것과 비슷한 삶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요. 은퇴하는데 전혀 후회가 없어요.” “나는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잘생겼던 것 같아요. 여자들은 내게 사로잡혔어요. 내가 열여덟 살 때부터 쉰 살 때까지.” 알랭 들롱은 지난 2017년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의 직설 화법은 은퇴한 적이 없다.
‘프랑스 영화의 수수께끼 같은 천사’로 불렸던 세기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Alain Delon)이 18일 프랑스 두시(Douchy)에서 89세로 별세했다. 그의 세 자녀는 이날 “알랭 들롱이 나빠진 건강과 사투를 벌이다 자택에서 가족과 루보(반려견)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알랭 들롱이 1960년 주연 리플리 역을 맡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 친구 필립을 죽이고 요트를 몰아 항구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들롱은 이 영화로 세계적 스타덤에 올랐다.>
1950년대 이후 프랑스 ‘누벨바그(새로운 물결)’ 황금기를 이끈 대중 스타로 ‘태양은 가득히’ ‘암흑가의 두 사람’ ‘한밤의 암살자’ ‘볼사리노’ 등 영화 90편에 출연하며 전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영화학자 데이비드 톰슨은 알랭 들롱을 두고 “프랑스 영화의 수수께끼 같은 천사, 1967년에 겨우 서른두 살이었고, 어쩌면 여성적이었다. 하지만 치명적이거나 강력하다고 생각할 만큼 진지하고 깨끗했다. 들롱은 훌륭한 배우라기보다 ‘놀라운 존재감’ 그 자체”라고 했다.
1935년 알랭 파비앵 모리스 마르셀 들롱(본명)으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파리 외곽 소(Sceaux)에서 태어났으나 부모 이혼으로 네 살 때부터 위탁 가정에서 자라다 재혼한 어머니와도 살았다. 가출, 7번의 퇴학, 정육점 직원 등을 거쳐 17세에 입대, 베트남 사이공 해군 기지에서 복무하다 군 차량을 훔친 죄로 불명예 제대했다. 전역 후에는 파리의 도매시장인 레 알(Les Halles)에서 잡부로 일했고, 카페 종업원, 비서 등 다양한 삶을 살았다. 프랑스 여배우와 만나며 칸 영화제를 방문했다가 할리우드의 가장 유명한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눈에 들었다. 제작자가 영어를 배우라고 했지만, 그는 계약을 파기하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할리우드 영화에 그다지 많이 출연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다.
1957년 데뷔작 ‘여자가 다가올 때’ 이후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 작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관객들에게 이 미남 배우는 ‘톰 리플리’의 현실판처럼 인식됐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가 원작인 ‘태양은 가득히’는 부자 청년 디키 그린리프를 살해한 리플리의 이야기다. 거짓을 사실로 믿고 싶어하는 ‘리플리 증후군’의 그 리플리를 충실히 연기했다. 관객은 거짓말하는 살인자에게서 슬픔을 봤다. 방탕하고 천진난만한 부자를 경멸하며 동시에 동경하는 가난한 자의 슬픔. 작가 필리프 라브로는 들롱을 두고 “그는 기쁨보다 슬픔에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감독은 들롱에게 디키 역할을 제안했지만, 그는 리플리를 고집했다.
세계적 흥행은 한국도 비켜 가지 않았다. 영어권 제목인 ‘보랏빛 오후(Purple Noon)’ 대신 프랑스 제목을 충실히 의역한 ‘태양은 가득히(太陽がいっぱい)’를 그대로 쓴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미남 배우에게 ‘한국의 아랑 드롱’이라는 수식을 바치는 것도 이때 생긴 전통이다. 첫 영광은 당연히 배우 신성일이 가져갔다.
1967년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한밤의 암살자(Le Samourai)’에 트렌치 코트를 입은 ‘사고하는 범죄자’로 선풍을 일으켰다. 그가 가장 사랑한 장르는 ‘필름 누아르(범죄 영화)’. 1973년 작 ‘암흑가의 두 사람’은 결국 교수형당하는 범죄자 알랭 들롱과 그를 감싸는 보호감찰관 장 가뱅의 연기 호흡이 호평을 받았다. 들롱은 장 가뱅과 연기할 때 가장 빛났다.
“범죄자들, 배우가 되기 전부터 내 친구였다”실제로 범죄자와의 친분도 감추지 않았다. 그의 과거 보디가드가 총을 맞은 채 가방에 담겨 쓰레기장에서 발견되며 프랑스 사회는 알랭 들롱이 조연으로 나오는 ‘현실 범죄 드라마’를 보게 됐다. 들롱의 친구가 살인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내가 아는 갱스터 대부분은 배우가 되기 전부터 내 친구였다. 그들이 뭘하건 신경쓰지 않는다. 각자 자기 행동에 책임지면 된다.”
우익 정당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과 오랜 친구로 진보 노선을 거침없이 비판해 왔다. 특히 사형제 폐지와 동성 결혼 허용을 비판했다. 2019년 칸 영화제가 그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준다고 하자, 진보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세기의 미남’도 자연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스위스에서 요양을 해왔다. 그의 아들은 “스위스에 거주하는 아버지는 상황이 닥치면 주저하지 않고 안락사를 택할 것”이라 말했다.
수많은 여성과 결혼하거나 동거했지만, 그가 가장 사랑한 여성은 영화 ‘크리스틴’(1958)에 함께 출연한 독일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1938~1982)였다. 잡지 기자와 인터뷰하며 자살로 사망한 그녀를 떠올리면서 과거의 편지 문장을 꺼냈다. “비스콘티 감독은 우리가 서로 닮았다고 했었어. 분노, 두려움, 불안의 순간에 둘 다 미간에 V 자가 그려진다나. 렘브란트 자화상에 그려진 ‘렘브란트의 V’라고 하네. 하지만 지금 잠든 당신을 보면, ‘렘브란트의 V’는 사라졌어.” 이제는 그의 얼굴에서도 ‘렘브란트의 V’가 지워지고, 편안한 얼굴일 것이다.(240819)
지난 5월 음주 뺑소니를 일으켜 구속 기소된 가수 김호중(33)씨 사건 이후 국회에선 이른바 ‘술 타기’(음주 운전 사고 후 또 술 마시기)나 ‘운전자 바꿔치기’ 등을 방지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자 김씨의 극성 팬들은 국회의원들에게 “낙선 운동, 탄핵을 하겠다” “당신들은 악마 같다”며 전화·문자 폭탄 등을 날리고 있다. 의원과 보좌진은 “팬덤에 한번 좌표가 찍혀버리니 정상적 의정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은 최근 술 타기를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일명 ‘김호중 방지법’을 발의했다. 음주 운전으로 세 차례 적발되면 면허를 영구 박탈하거나, 술 타기를 아예 방지하는 조항도 담겼다. 민주당 서영교,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도 최근 취지가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김호중씨 팬들은 이런 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하거나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은 물론이고 지역 사무실에도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사무실 앞으로 달려가 시위하겠다고 위협하는 전화도 걸려온다.
박성훈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음주 뺑소니 혐의를 피하고자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했던 김씨 범행 수법이 상세히 알려져 모방 범죄도 속출했다”며 “국민 안전을 위해 낸 법률이지 특정인을 비난하겠다는 취지가 아닌데 이런 반응은 당혹스럽다”고 했다. 신영대·박성훈 의원이 낸 법률안 원문을 보면 김호중씨 이름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최근 문제가 된 술 타기 등에 따른 사회적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법률안에 사건 가해자·피해자 등 특정 인물 이름을 따 ‘○○○법’ 같은 별칭을 붙이는 것은 정치권에서 흔한 관례다. 그런데도 김호중씨 팬들은 “법이 통과되면 낙선 운동에 나서겠다”며 국회 입법예고 게시판에 1만 건 넘는 반대 글을 쏟아냈다. “반성하고 있는 젊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법이다” “왜 사람을 평생 죄인으로 만드냐” 같은 의견도 있었다. 18일 밤까지 박성훈 의원 법안에 6200여 개 반대 의견을 비롯, 서영교(4500여 개), 신영대(1300여 개) 의원도 ‘반대 폭탄’의 표적이 됐다.
전문가들은 극렬 팬덤 문화가 전화·문자 폭탄으로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 기능마저 마비시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과거엔 여야의 주류 정치인 팬덤이 비주류 의원들을 압박·제거하고자 이런 일을 했는데, 이제는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 교수는 “자기편이라면 불법·부도덕도 일단 옹호하고 보자는 그릇된 군중심리가 정치권에서 시작해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며 “각종 비리 정치인들이 ‘나는 무죄’ ‘마녀사냥’ ‘정치 탄압’이라고 무조건 주장하는 모습을 가수 팬클럽이 본받은 것”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팬덤이 국회의 입법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법안의 핵심인 모방 범죄 반복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댓글 테러로 입법 기관을 부당하게 압박하는 현상만 남았다”고 했다.
한편 일선 경찰은 음주 음전 혐의를 피하고자 ‘김호중 따라 하기’ 행태를 보이는 운전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교통과장은 “음주 운전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면 ‘방금 술을 마셨다’며 다 마신 술병을 흔드는 피의자가 많아졌다”고 했다. 음주 의심 차량이 경찰 추격을 피하다 인명 사고를 내거나, 고위 공직자까지 음주 측정을 거부하며 ‘버티기’를 하는 일도 벌어진다.(240819)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모(34)씨는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2월 회사를 그만둔 뒤 틈나는 대로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포장하거나 분류하는 단기 아르바이트가 이씨의 주요 수입원이고, 강아지 산책시키기와 고양이 돌봐주기 등 간단히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일주일에 30시간가량 일한다고 한다. 그는 “풀타임 알바를 하기엔 장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부담이 컸다”며 “일단 필요할 때마다 생활비를 벌면서 나만의 운동복 브랜드를 만들려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1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도로변에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들의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취업자 4명중 1명꼴로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였다. 주 36시간은 일반적으로 근로 조건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단시간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기업이 필요한 시간만큼만 사람을 고용하고, 근로자는 원하는 시간만큼 일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가 확산하고 있다. 주 5일 40시간씩 회사에 붙어 있는 정규 근로자보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빠르게 느는 것이다.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에 주당 36시간보다 적게 일한 단시간 근로자는 680만8000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7000명 늘었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0년 이후 7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달 전체 근로자 가운데 단시간 근로자 비율은 23.6%까지 뛰었다. 국내에서 일하는 사람 4명 중 1명은 단시간 근로자인 셈이다. 일주일에 1~17시간 일한 ‘초단시간 근로자’로 범위를 좁혀도 255만7000명이나 됐는데, 이 역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에 해당하는 ‘긱 워커(gig worker)’ 증가세는 특히 30대 이하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두드러졌다. 지난달 15~29세와 30대 단시간 근로자는 1년 전보다 각각 5만5000명, 7만명 늘었다. 30대 이하만 12만5000명 늘어난 것이다. 60대 이상도 13만2000명 증가했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 졸업반 김모(26)씨는 평일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취업을 준비하고 주말 이틀간은 편의점에서 14시간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김씨는 “취업하려면 2~3년은 준비해야 하는데, 이 기간에 놀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그때까지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청년층 긱 워커의 증가는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는 현상과 관련 있다. 기업들이 신입 사원 공개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수시 채용을 늘리면서 양질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목표하는 직장에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라도 벌고자 단시간 근로를 선택하고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청년들이 일자리를 잡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5개월로 1년 전(10.4개월)보다 한 달가량 늘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50%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며 “결국 일해야 할 청년 절반 정도는 사회생활의 시작부터 저숙련 단기 일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층과 더불어 긱 이코노미를 이끄는 주축인 고령층은 이미 대다수가 단시간 근로자다. 지난달 기준 70세 이상 가운데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는 135만6000명이었던 반면, 36시간 이상은 71만8000명에 불과했다. 정부에서 확대해 온 노인 일자리가 대부분 하루에 3~4시간 일하는 데다, 고령층이 많이 진출하는 요양 보호사도 보통 하루에 한 집당 3시간씩 방문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필요한 만큼만 일하려는 청년층 긱 워커와 달리, 고령층 사이에선 “일자리 정보가 부족해 원하는 시간보다 적게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이 나온다. 경기 부천시의 한 학원에서 주 6일 아침 3시간씩 청소하는 김모(72)씨는 “낮에도 일자리만 있으면 일하고 싶지만 정보가 없다”며 “학원 청소 자리도 아는 사람을 통해 연결받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 능력이 없는 고령층은 빨리 은퇴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탄탄히 해주고, 근로 능력과 의욕이 있으면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240820)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기업 등이 정규직을 쓰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단기 임시·계약직을 주로 고용하는 방식의 경제 형태. 1920년대 미국의 재즈 공연장에서 즉석으로 섭외한 연주자를 ‘긱(gig)’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 과거 배달, 대리운전 등에서 최근 컨설팅·전문직 등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직장인 최모(56)씨는 지난 10일 경기도 가평군으로 반려견을 포함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한 닭볶음탕 전문점을 찾았다. 그러나 정작 식당에 갔더니 “강아지는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짖어서 시끄럽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군청에 민원이 들어가면 과태료를 문다는 게 이유였다. 최씨는 차 안에서 인근 식당 4곳에 전화를 돌리고 나서야 “야외 좌석만 가능하다”는 식당을 찾았다. 그는 “온라인에 있는 후기에는 반려동물 동반이 된다고 한 식당도 정작 가보면 안 된다는 곳이 많다”며 “어느 식당은 야외만 되고, 어느 식당은 반드시 안고 있어야 된다고 하고 규정도 다 달라 전화를 꼭 해봐야 한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반려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식당과 카페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일반 손님들의 항의와 민원도 잦아졌다. 사진은 16일 경기도 양평의 한 카페에 반려동물 동반 손님들을 위한 안내 사항이 입간판으로 만들어져 있는 모습. 이 카페는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예스 펫 존(Yes pet zone)’과 동반이 불가능한 ‘노 펫 존(No pet zone)’으로 운영된다.>
휴가철 해외여행이 힘든 ‘펫캉스족’이 교외나 국내 휴양지로 몰리면서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업장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펫캉스족이 해마다 크게 늘며 일반 손님들의 불편함도 더 커졌고, 반려동물이 출입 가능한 공간이 야외 등으로 제한된 곳이 많아 펫캉스족은 여러 식당과 카페를 전전하고 있다. 게다가 ‘반려동물 동반’ 업장은 현행법에 따르면 사실상 불법이라, 업주들도 난감한 상황이다.
휴가철 ‘펫캉스족’이 해마다 늘며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식당과 카페도 늘고 있다. 그러면서 일반 손님들의 항의와 민원도 잦아졌다. 강원도 홍천의 한 카페 사장은 “반려동물 동반 카페인 것을 알고 온 손님이라도 워낙 카페 내에 개가 많고, 한번 짖기 시작하면 개들이 다 같이 짖어 난감할 때가 많다”며 “성수기엔 사람도 많아 더 혼란스럽다”고 했다.
휴가철 펫캉스족도 불편함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손님들의 항의에다 지자체 위생 단속 등으로 식당 규정이 자주 바뀌고, 반려동물 동반 입장의 규정도 업장마다 제각각이라 ‘식당 찾아 삼만 리’를 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윤모(29)씨는 “대부분 테라스 자리에만 반려견을 받는데, 요즘 같은 땡볕에 야외에 앉을 수는 없다”며 “실내 반려견 출입이 되는 곳을 찾아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뒤져본다”고 했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동반 출입 업장 자체가 사실상 불법이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동물 출입이 되는 경우 영업 공간과 동물이 머무는 공간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손님이 반려동물을 동반한 경우,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거나 매장 바깥에 반려동물을 묶어두어야 한다. 흔히 무릎에 개를 올려놓고 식사가 가능한 대부분의 ‘반려동물 동반’ 업장은 불법인 것이다. 야외인 테라스 역시 영업장 면적에 해당되는 경우 반려동물 출입이 안 된다. 불법 영업이 적발되면 업소는 영업 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는다.
이 때문에 반려동물 손님을 받다가 구청에서 단속을 나오면 한동안 받지 않다가 다시 허용하는 업장도 있고, 손님이 적은 평일에만 반려동물을 허용하기도 한다. 또 불법 영업인 것을 알지 못하고 반려동물을 받는 업장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식당 등의 주인과 반려인들은 정부가 나서 구체적인 규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한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22년 12월부터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하여 반려동물 동반 가능 음식점의 시범 운영을 2년간 한시 승인하고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동시에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공개했는데, 시범 사업 대상 업장이 아니더라도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불법은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식품이 진열되거나 제공될 때 이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덮개를 사용하고, 반려동물이 매장 내를 돌아다닐 때는 반드시 목줄을 착용하도록 하는 등의 규칙을 설정하고 있다. 이 같은 업소는 ’규제 정보 포털’ 웹사이트에서 ‘규제 샌드박스 현황’ → ‘반려동물 동반’을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240817)
인체의 노화가 44세와 60세에 집중적으로 진행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성별·인종과 관계없이 해당 시기에 노화를 유발하는 생체 분자가 급격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진은 인체의 단백질과 대사산물, 미생물 등 수천 가지 생체 분자와 미생물군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고 1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노화(Nature Aging)’에 밝혔다. 연구진은 심혈관, 근골격계 질환 등이 특정 연령대에 급격히 증가한다는 점에 주목해 생물학적 노화에 대한 대규모 추적 관찰을 실시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25~75세 참가자 108명을 대상으로 혈액과 대변, 피부, 구강과 비강 등에서 총 13만5289종의 생체 분자 샘플을 수집한 후 평균 1.8년(최장 6.8년)간 변화를 추적 관찰했다.
분석 결과 노화와 관련된 생체 분자들이 특정 시기에 급격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에 비례해 점진적으로 노화 관련 분자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40대 중반과 60대 초반에 급격한 노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특히 44세와 60세에 노화가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분석 초기에는 40대 중반의 급격한 변화가 여성들이 겪는 조기 폐경의 영향일 것으로 봤다. 그러나 성별과 인종을 구분해 분석해도 40대 중반과 60대 초반에 노화가 집중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40대 중반에는 심혈관 질환과 카페인 및 알코올 관련 대사 능력이 저하되고, 60대 초반에는 면역력과 신장 기능이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부와 근육 노화는 40대 중반과 60대 초반 모두 급격하게 발생했다.
다만 연구진은 44세와 60세에 노화 관련 생체 분자가 집중적으로 활성화되는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다. 연구진은 노화의 일부 원인이 생활 습관 등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40대와 60대에 건강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근육 손실이 심해지는 시기에는 운동을 늘리는 것과 같은 생활 방식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240816)
2014년 처음으로 유통되기 시작해 불과 8년 만인 2022년 국내 포도 시장 1위(재배 비율 41.4%)를 차지한 샤인머스캣 열풍이 주춤해지고 있다. 1위로 올라선 지 불과 2년 만인 올해 재배 비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 사이 물러나 있던 캠벨얼리와 거봉은 반격에 나섰다. 샤인머스캣은 기존 포도의 3~4배 가격을 받으면서도 달달한 맛을 무기로 입소문이 퍼졌지만, 많은 농가가 재배에 뛰어들자 가격이 하락했다. 농가들은 떨어진 단가를 보완하려 한정된 농지에 과도하게 많은 묘목을 심으면서 당도와 품질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 캠벨얼리와 거봉의 재배 비율은 샤인머스캣 등장 이후 처음으로 반등했다. 샤인머스캣의 전성기가 ‘2년 천하로 끝나는가’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1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샤인머스캣 포도. 몇 년 전만 해도 ‘명품 포도’ 취급을 받던 샤인머스캣은 국내에서 재배 농가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내리고, 소비자 선호도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는 처음으로 국내 샤인머스캣 재배 면적이 전년 대비 감소할 전망이다.>
샤인머스캣은 ‘포도계의 에르메스’ ‘망고맛 포도’라는 별칭을 얻으며 여름철 고급 과일로 성장해왔다. 샤인머스캣 인기가 유행처럼 번지자 빙수, 음료, 과자뿐 아니라 화장품에까지 활용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주로 팔리던 품종인 캠벨얼리, 거봉보다 2배 가까이 가격이 높아 귀농(歸農)한 많은 농사꾼들이 재배에 뛰어들었다.
샤인머스캣의 인기가 치솟자 내리막길을 걷던 포도 농가도 덩달아 활기를 띠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줄곧 줄어왔던 포도 재배 면적은 샤인머스캣의 인기로 2019년 1만2676ha(헥타르)로 반등했다. 이후 2023년 재배 면적은 1만4706ha로 나타나는 등 지속적으로 증가해 오고 있다. 전국 포도 재배 면적의 큰 비율은 샤인머스캣이 차지하고 있다. 2017년에는 전체 포도 중 샤인머스캣 비율이 4%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3.9%로 급증했다.
너도나도 샤인머스캣 재배에 뛰어들자, 가격도 낮아지고 품질 논란도 벌어졌다. 샤인머스캣이 채 성숙하기 전에 수확을 하거나, 한정된 농지에 과밀하게 묘목을 심는 등 농가가 이익만 과도하게 추구했기 때문이다. 포도 유명 산지인 김천시의 농가 사이에선 샤인머스캣의 적정 밭 용량으로 1980㎡(약 600평) 9000송이 정도가 권고된다. 하지만 농가들은 많이 심을수록 당장의 이익이 많이 나는 탓에, 1980㎡에 1만5000송이까지 심기도 했다. 땅의 영양분이 과일로 잘 전달되지 않아 당도도 떨어지고 크기도 작아지게 된다.
이 탓에 한때 한 송이에 2만원이 넘던 샤인머스캣은 2023년 기준 5000원까지 거래됐다. 올해 7월을 기준으로 하면 2kg당 2만4442원으로 거봉(2만3600원)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왔다. 갈수록 샤인머스캣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자, 포도 농가에서는 “샤인머스캣이 예전만큼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오가기도 한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은 2024년 샤인머스캣 재배 비율이 처음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전체 포도 중 샤인머스캣의 비율은 2021년 31.6%, 2022년 41.4%, 2023년 43.9%로 해마다 늘었지만, 2024년에는 처음으로 증가세가 꺾여 42.6%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치를 내놓은 것이다. 캠벨얼리와 거봉은 그 빈틈을 노리고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였던 두 품종은 2024년 다시 반등해 캠벨얼리가 29.4%, 거봉이 17.8%로 전망됐다.
유통업계에서도 캠벨얼리와 거봉에 다시금 눈을 돌리고 있다. 이마트는 여름 과일 기획전을 열어 캠벨얼리(1.5kg)와 거봉(1.4kg)을 모두 19900원에 판매 중이다. 쿠팡은 이번 달 초 포도 농가에서 직접 포도 28톤을 매입해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샤인머스캣 600g은 9990원, 캠벨얼리 1kg은 1만1990원, 거봉 600g은 9230원에 살 수 있다.(24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