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숙취 해소제 제조사 절반 이상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요구한 ‘숙취 효능 시험’을 포기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효능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포기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내에서도 “시중에 판매되는 숙취 해소제 절반 이상이 효과가 없는 ‘맹물 음료’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란 말이 돈다. 
정부 점검이 끝나는 올 6월까지 ‘효과 없음’ 판정을 받는 숙취 해소제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24일 식약처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 우리나라 숙취 해소제 제품은 177개였다. 
해소제는 음료 형태가 가장 많았고 젤리와 환(둥근 약)도 있었다. 
식약처는 올해 초 국내 숙취 해소제 제조사에 “각사의 숙취 해소제가 사람에게 실제 효과가 있는지를 시험한 ‘인체 적용 시험 결과’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시험 결과를 내지 않으면 향후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제품에 쓰지 못한다고 공지했다.

 

 




그런데 올 3월 기준, 인체 적용 시험에 응한 숙취 해소제 제품 수는 81개였다. 나머지 96개 제품(전체 54%)은 시험을 포기했다. 
식약처는 이 96개 제품을 만드는 회사 대부분을 현장 방문했고 업체들로부터 “앞으로 숙취 해소제를 만들 의향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 관계자는 “시험 결과를 내라는 식약처의 통보만으로 절반 이상의 숙취 해소제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간 것”이라며 “효능에 자신이 있었다면 왜 시험을 거부했겠느냐”고 했다. 
시중의 숙취 해소제 절반이 사실상 ‘맹물 음료’였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현재 시험을 포기한 상품에 대해선 ‘숙취 해소제’ 라벨을 떼어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편의점·약국에서 많이 파는 메이저 숙취 해소제인 ‘컨디션’ ‘여명’ ‘모닝케어’ ‘상쾌환’ ‘레디큐’ 등은 인체 적용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정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체 적용 시험에 응한 81개 숙취 해소제 중에서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효능이 입증된 제품에 한해서만 계속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인체 적용 시험은 전국 19개 종합 병원에서 이뤄졌다. 
식약처의 권고 규정에 따르면, 각 제조사는 20~40대 남녀 시험 참가자를 저녁에 병원으로 모은 뒤 저녁을 제공해야 한다. 
저녁 식사 2시간 뒤에 자사 숙취 해소제를 섭취하게 하고 알코올 90g(소주 한 병 반)을 30분 안에 마시게 한다. 
이 시간에 안주는 새우깡 20개 정도로 최소한만 허용한다. 첫 잔을 마시고 난 뒤 바로 채혈을 하고, 이후 15시간이 지난 시점까지 총 8차례 채혈을 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와 아세트알데히드(숙취 유발 성분) 농도가 유의미하게 떨어졌을 경우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술이 센 ‘20대 남성’ 위주로 시험을 하거나 술은 적게, 물은 많이 먹게 하는 등의 꼼수를 쓴 사실이 적발되면 마찬가지로 숙취 해소제라는 문구를 박탈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오는 6월까지 81개 제품에 대한 인체 시험 결과서를 모두 검토해 적합 여부 판정을 내릴 계획”이라고 했다. 
추가로 탈락하는 ‘맹물 해소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식약처는 탈락한 업체가 숙취 해소제라는 말 대신 ‘숙취 해결’ ‘숙취엔 ΟΟΟ(상품명)’라는 비슷한 말을 쓰는 것도 단속할 방침이다.


2023년 국내 숙취 해소제 판매액은 3473억원으로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2년 전인 2021년(2243억원)에 비해선 1200억원 늘었다. 하지만 “효과가 없는 숙취 해소제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식약처는 지난 2020년 과학적 근거를 갖춰야만 숙취 해소제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후 4년 남짓한 유예 기간을 준 뒤 올 하반기부터는 숙취 해소제라는 광고 문구 사용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250325)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영외고 앞 도로에 생긴 가로 18m, 세로 20m, 깊이 18m 규모 대형 싱크홀(땅 꺼짐 현상)에 매몰됐던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34)씨가 25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싱크홀로 생긴 지반 침하 공간은 약 6500㎥로, 최근 5년간 발생한 싱크홀 중 둘째로 크다.


전문가들은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만들어진 상·하수도 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의 시설 노후화 문제가 심각해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발밑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본지가 서울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도로 구간 6863km(보도·차도 181개 노선) 중 26.95%(약 1850km)가 지반 침하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반 약화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집중호우가 본격적으로 내리는 장마철도 아닌 봄에 대형 싱크홀 사고가 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5일 오전 서울 강동구 명일초등학교 인근 도로에서 전날 발생한 싱크홀(땅 꺼짐) 사고 현장 모습.>

 


소방 당국은 싱크홀 사고가 난 지 18시간 만인 이날 오후 12시 36분 박씨를 수습했다. 
박씨가 발견된 곳은 싱크홀 하부, 지하철 9호선 공사장 터널 구간 바닥 부근으로, 싱크홀 중심에서 왼쪽으로 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추락 직전 입고 있던 복장과 헬멧, 바이크 장화를 착용한 모습 그대로였다. 
소방 당국은 앞서 이날 오전 1시 37분쯤 싱크홀 아래 지하철 9호선 지하 터널 공사장에서 박씨의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이어 2시간 후인 오전 3시 30분에는 싱크홀 하부에 쌓인 토사 근처에서 번호판이 떨어진 오토바이도 발견했다.

 

 




소방은 싱크홀에 매몰됐던 박씨를 구조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6480t에 달하는 토사가 물과 섞여 진흙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로 싱크홀 하단을 막았기 때문이다. 
구조대원들은 잠수복을 입고 손으로 토사 수천 톤을 퍼내며 수색을 진행했지만, 싱크홀 인근 상단에 균열이 발견되고 약해진 지반으로 추가 붕괴 우려도 있어 한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다. 
소방 당국이 포클레인 2대와 구조대원 17명 등을 투입해 밤샘 배수 작업을 진행한 결과, 이날 오전 박씨를 발견했다. 
박씨는 대기 중이던 앰뷸런스로 옮겨져 인근 강동 중앙보훈병원으로 이송됐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싱크홀로 추락하는 오토바이 운전자 - 지난 24일 오후 6시 29분쯤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도로에 발생한 싱크홀에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씨가 추락하고 있는 모습.>

 


지인들에 따르면 2018년 부친을 사고로 잃은 박씨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먹여 살리겠다며 가장 역할을 도맡았다고 한다. 
낮에는 광고 회사에 다니고 퇴근하면 부업으로 배달 일을 했다. 박씨는 이날도 부업으로 배달하던 중 변을 당했다. 구조 작업을 기다리던 박씨 모친은 현장을 떠나는 앰뷸런스 뒤편에서 “우리 애기 엄마가 깨워줘야 해” “내 새끼 데려가야 돼”라며 통곡했다.


이번 사고는 상·하수도나 가스·통신 등 지하 매설물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수관의 부식으로 만들어진 구멍으로 물이 새면서 하수관 주변 흙을 쓸고 지나가면, 땅속 동공(洞空·땅속 빈 구멍)이 조금씩 커지게 된다. 
이 동공이 지상 충격 등으로 무너져 내릴 때 싱크홀이 발생한다. 
국토교통부의 ‘전국 땅 꺼짐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6년간 전국에서 1060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는데, 원인으로는 상·하수도 손상이 542건(51.1%)으로 가장 많았다.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싱크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싱크홀 중심부는 지하철 공사장 입구에서 불과 8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공사 현장 인근엔 상·하수관, 통신선, 가스관, 송전선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이재혁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 토목부장은 “지하철 공사와 싱크홀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강동경찰서는 싱크홀 발생 원인과 9호선 연장 공사 과정에서 건설사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반에 레이더를 쏴 지하 내부를 파악하는 GPR(지표 투과 레이더)이라는 기술로 서울 전역의 싱크홀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 기술로 서울시가 훑는 구간만 연간 7200㎞에 달한다. 그러나 서울시가 운용하는 현행 GPR 레이더로는 지하 2~3m 깊이의 싱크홀만 찾을 수 있어, 이번 사건처럼 더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탐지하기가 어렵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시민들의 생명을 정말로 위협하는 싱크홀은 현 GPR 기술로는 탐지하기가 어렵다”며 “예산을 더 투입해 더 깊은 지하까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250326)


 

 

[스피드 3Q]'파나마운하 항구' 美에 팔리기 직전, 中이 나선 이유는 뭘까

 


파나마운하 내 항구 운영권을 미국에 매각하려던 홍콩 기업의 거래에 중국 당국이 개입해 제동을 걸었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당국이 반(反)독점 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면서 다음 달 2일로 예상됐던 최종 계약 체결이 보류됐다”고 전했다. 
홍콩 CK허치슨홀딩스는 파나마운하의 두 항구를 운영하는 파나마포트컴퍼니(PPC) 지분 90% 등을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 측에 매각하기로 합의하고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파나마운하를 둘러싼 미·중 갈등의 양상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홍콩 CK 허치슨 홀딩스 자회사가 운영하는 파나마 운하 발보아항.>

 


Q1. 왜 항구 운영권을 팔고자 했나.

CK허치슨홀딩스가 정치적 위험을 줄이고 이익도 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홍콩 부호 리카싱이 설립한 청쿵그룹의 지주회사인 CK허치슨홀딩스는 항만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 고민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블랙록이 CK허치슨홀딩스의 항만 부문을 기존 평가 금액의 두 배 수준인 228억달러(약 33조5300억원)에 사들이겠다고 나섰다.


CK허치슨홀딩스 측은 “이번 거래는 순전히 상업적인 것으로, 파나마운하를 둘러싼 정치 뉴스와 무관하다”고 했다. 
다만 파나마운하 운영권을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CK허치슨홀딩스를 겨냥해 ‘운하가 사실상 중국 영향권에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점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Q2. 중국은 왜 반독점 조사에 나섰나.


파나마운하 항구를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카드로 쓰고자 했던 중국 지도부가 CK허치슨홀딩스에 ‘반역죄’를 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독점법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해외 거래라도 자국 시장에 영향이 있다면 제재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중국 화물이 많다는 점을 근거로 항구 운영권이 미국에 넘어가면 중국 수출입 기업들이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파나마운하는 중국 화물 운송량의 21%가 통과하는 곳이다.


Q3. 운하 둘러싼 미·중 갈등의 전망은.

중국의 요구가 일부 반영되는 형태로 거래가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이 반독점법 조사로 거래를 늦추고, 항구 매각이 중국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조건부 거래 승인’을 내리는 시나리오다. 
거래 무효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경우 미국도 강하게 대응하며 미·중 갈등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당분간 CK허치슨홀딩스에 대한 보복을 이어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CK허치슨홀딩스가 중국에 거래 사실을 사전에 알리지 않아 시진핑 주석이 분노했다”고 전했다. 
파나마운하를 둘러싼 경쟁에서 미국에 완패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중국 지도부가 ‘스토리 수정’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250331)


 

 

[깨알지식 Q]일본서 사랑받는 벚꽃, 國花일까?

일본 벚꽃 시즌이 시작됐다. NHK는 지난 23일 고치시·구마모토시를 시작으로 도쿄(24일), 후쿠오카(25일) 등 각지에서 벚꽃이 개화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 DC에도 벚꽃 축제가 한창이다. 워싱턴 DC의 벚꽃은 1912년 오자키 유키오 당시 도쿄 시장이 선물한 것으로 미·일 우호 관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벚꽃은 일본의 국화(國花)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엔 법률로 정해진 국화가 없다. 다만 봄에 만개하는 벚꽃과 가을에 피는 국화(菊花)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국화는 주로 격식적인 곳에 사용된다. 일본 황실 문장(紋章)은 국화를 본뜬 것이고, 일본 여권에도 국화 문양이 그려져 있다.

 

 

<2021년 3월 24일 일본 후쿠오카 규슈대 학생들이 벚꽃이 핀 거리에서 졸업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즐기기 시작한 건 헤이안 시대(794~1185)부터다. 
현지 임업 전문 매체 우디뉴스에 따르면, 벚꽃이 일본 기록에 처음 등장한 건 712년 집필된 역사서 고사기(古事記)다. 다만, 당시엔 벚꽃보다 중국(당나라)에서 온 매화가 더 귀중히 여겨졌다.


이후 894년 일본이 당나라에 보내던 사절단인 견당사(遣唐使)가 폐지된 것을 계기로 매화의 인기가 시들었고 벚꽃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봄 벚꽃을 구경하고 벚나무 아래에서 만찬을 갖는 ‘하나미(花見·꽃놀이)’ 문화도 이때 생겨났다. 
에도 시대(1603~1867) 들어선 서민들 사이에 원예가 유행해 도쿄 등 각지에 벚나무가 대량 심어지기 시작했다.


벚꽃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기원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로 퍼져나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에선 벚꽃을 ‘사쿠라’라고 부른다. ‘(꽃이) 피다’란 뜻의 ‘사쿠(咲く)’와 복수형 어미 ‘라(ら)’를 합쳐 본래 모든 꽃을 의미했었다는 설, 벚꽃이 피면 농사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과거 농경의 신을 일컫던 ‘사’에 신의 거처를 의미하는 ‘미쿠라(御座)’를 합성했다는 설 등이 있다.(250331)


 

 

美 LMO 감자, 한국 식탁에 오를까?

농진청 '수입 적합' 판정 내려

 

농촌진흥청이 미국산 ‘LMO(Living Modified Organism·번식 가능한 유전자변형농산물)’ 감자에 대해 재배 안전성 측면에서 ‘적합’ 판정을 내렸다. 
지난 2019년 국립수산과학원과 2020년 환경부에 이어 농진청이 안전성에 합격점을 주면서, 앞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체 위해성 평가만 통과하면 미국산 LMO 감자가 국내로 들어오게 된다.


다만 식약처의 평가는 통상 다른 부처의 평가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3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실제 LMO 감자 수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농산물 검역 절차라는 비관세 장벽을 낮춰서 미 트럼프 정부와의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4일 정부 관계 부처들에 따르면, 농진청은 지난달 21일 미국 감자 생산업체 ‘심플로트’가 개발한 LMO 감자인 ‘SPS-Y9’ 품종의 재배 안전성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식약처에 통보했다. 
심플로트가 지난 2018년 4월 해당 품종의 식용 목적 수입 허가를 요청한 지 7년 만이다.


LMO는 유전자변형농산물을 뜻하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일종이다. 
GMO는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개량해 새로운 특성을 갖추게 된 작물을 뜻한다. 
LMO는 GMO 중에서도 살아 있어 번식이 가능한 품종들을 일컫는다.


식품에 대한 수입 검역은 식약처에서 담당하는데, 식약처 요청에 따라 농진청 등 유관 부처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안전성을 심사해 그 결과를 식약처에 통보한다. 
미 LMO 감자에 대해서는 수산과학원과 환경부, 농진청이 해양과 환경, 재배 부분에서 안전성 평가를 했다. 
농진청 관계자는 “재배 안전성 측면에서 LMO 감자가 국내 작물과 섞여 유전자 체계를 교란할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해 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했다.

 

 




LMO 농산물 중 일부는 이미 국내에 수입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수입한 식용 LMO 작물은 옥수수(44만t)와 대두(42만t) 등 86만t이었다. 
또 사료용으로 옥수수(219만t)와 목화씨(11만3000t)를 합쳐 230만3000t이 수입됐다.


감자의 경우 지난해 국내 생산량(52만4000t)의 30%가량인 16만1000t이 수입됐지만, 아직 LMO 감자는 수입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적합 판정을 받은 감자는 프렌치프라이(감자튀김)처럼 ‘튀김’에 특화된 품종이다. 
감자를 자르면 얼마 안 가 갈색으로 변하는데, 심플로트 감자는 이 같은 갈변 현상을 상당 부분 해소한 것이다. 
또 튀겼을 때 발암 물질도 덜 나오도록 개량됐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다. 하지만 “LMO 감자를 먹으면 독성 물질이 축적될 우려가 있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성도 미지수”라는 주장 때문에 지난 2019년 국내에서 LMO 감자 수입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GMO반대전국행동, 농민의길, 전국먹거리연대 등 농민 단체들은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MO 감자 수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식약처는 유전자 변형 식품의 독성 물질이나 알레르기 유발 물질, 새로운 위해 요인, 영양소의 손실 여부 등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미 한 차례 논란이 있었던 만큼, 충분한 시일을 두고 철저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농진청의 적합 판정이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응해 농산물 검역 같은 비관세장벽을 낮추는 협상 카드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은 LMO 감자 수입 등 농산물 비관세 장벽 완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농진청 관계자는 “안전성 평가는 민간 위원들을 중심으로 과학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250325)


☞LMO

LMO는 ‘번식 가능한 유전자변형농산물(Living Modified Organism)’을 말한다. 유전자를 개량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유전자변형농산물) 가운데 살아 있어 번식 가능한 생물을 LMO, 번식이 불가능한 것을 Non-Living GMO로 구분한다. 
미국산 LMO 감자는 잘랐을 때 갈색으로 변하는 정도를 줄이고, 튀길 때 발암 물질이 덜 나오도록 개량됐다.

☞비관세 장벽

외국 물품에 수량 제한(쿼터)을 두거나 검역 절차를 까다롭게 적용하는 등 관세 부과 이외에 수입을 규제하는 수단을 비관세 장벽이라고 한다.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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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지식Q]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지브리'

이탈리아어 '기블리'에서 나온 말
'만화 업계 돌풍 일으키겠다' 의미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지브리풍‘으로 그린 자신의 AI 이미지를 온라인에 올리면서 저작권 논란이 일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세계적인 작품을 남겨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그렇다면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지브리‘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탈리아 카프로니사 군용기 '기블리'>

 


지브리는 만화가였던 미야자키 하야오, 스즈키 도시오, 다카하타 이사오가 함께 1985년 일본에서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이들이 스튜디오 이름을 고민하던 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탈리아의 사하라 군 정찰기 별명이 ‘지브리‘(ghibli)인데 이걸로 하자”고 제안했다. 
다카하타 감독이 “발음이 ‘기블리’ 아닌가”라고 했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이탈리아 친구가 지브리라고 했다”고 주장해 ‘지브리‘가 됐다. 나중에 정확한 발음은 ‘기블리‘임이 밝혀졌지만, 이미 지브리로 알려진 뒤였다.


이탈리아어 기블리는 ‘사막의 모래 폭풍‘을 뜻하는데, “애니메이션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기블리‘라는 말은 원래 아랍어에서 왔다. 리비아 사람들이 남쪽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끼블리‘라고 부르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 럭셔리카 브랜드 마세라티의 대표 세단 이름도 기블리다.


아버지가 2차 대전 때 일본군의 전투기 부품 생산 회사를 운영했던 미야자키 감독은 군용 무기에 방대한 지식과 애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돼지 파일럿이 등장하는 작품 ‘붉은 돼지‘, 비행기 설계사가 주인공인 ‘바람이 분다’ 등 많은 작품에 그가 디자인한 정교한 전투기와 군함이 등장한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나는 비행기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파괴의 도구로 쓰이는 것은 싫다”며 꾸준히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해 왔다.(250328)




 

 

[김은중의 인사이드 워싱턴]춘삼월 워싱턴 홀리는 일본 '벚꽃 외교'


150만명 찾는 워싱턴 벚꽃 축제… 100년전 美日 우호 묘목이 시초



미국 수도 워싱턴 DC엔 ‘벚꽃 축제’(3월 20일~4월 13일)가 한창이다. 
시내 곳곳과 유명 공원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시내 지하철과 버스 외벽은 만개한 벚꽃 그림으로 꾸며졌다. 
해마다 150만명이 워싱턴 DC를 찾아, 시의 연 관광 수입 3분의 1이 이때 발생할 정도다. 
워싱턴 DC의 벚꽃 축제는 일본 ‘사쿠라(벚꽃) 외교’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도시의 벚나무들은 100여 년 전인 1921년, 오자키 유키오 일본 도쿄 시장이 미·일 우호의 상징으로 선물한 묘목 3000여 그루가 시초가 됐다.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 DC의 '타이들 베이신' 지역에 벚꽃이 일부 피기 시작한 모습.>

 


워싱턴 DC에서 봄마다 만개하는 벚꽃은 미·일 관계를 강화하는 ‘소프트 파워’ 역할을 하고 있다. 
축제 기간 동안 미·일 기업들이 후원사로 참여하고, 다양한 일본 문화 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일본 최대 항공사 전일본공수(ANA)와 미국 아마존이 최상위 후원사 리스트에 올랐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 입기, 가두 행진, 사케 마시기 등 40여 개 부대 행사가 축제 기간 열린다. 
주미 일본문화원은 지난달 ‘하나미’(花見·꽃 구경)를 주제로 한 사진대회를 열었다. 
문화원이 지난 18일 마련한 조경가 론 헨더슨 일리노이공과대 교수의 벚꽃 강의에는 수백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소셜미디어에는 ‘벚꽃 축제 일식 맛집’ ‘워싱턴 DC에서 일본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같은 콘텐츠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일본 벚나무가 어떻게 워싱턴 DC의 명물로 거듭났는지를 추적하는 기획 기사를 단골로 다룬다.

 

 


<18일 미국 워싱턴 DC의 일본문화원에서 조경가인 론 헨더슨 일리노이대 교수(오른쪽)가 벚꽃 보존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벚꽃을 활용한 외교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는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벚나무 250그루를 추가 기증하면서 “벚나무가 수명(60년)보다 훨씬 넘는 100년의 세월 동안 워싱턴에서 살아남았다”며 “지역 주민들이 벚나무를 아끼고 보호해 온 것처럼 미·일 관계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 유력 인사들은 축제 기간 워싱턴 DC를 집중 찾아 아웃리치(친교) 활동을 한다. 
올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맞아, 일본의 움직임은 더 왕성해지고 있다. 
지난달 7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미국과 정상회담을 가진 일본은 미국과 고위 관료급 회담을 잇따라 갖고 있다. 올해 취임한 ‘안보 수장’ 오카노 마사타카 국가안전보장국장은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공개된 협의만 세 차례 가졌다.


워싱턴 DC의 정책 연구소들은 미·일 관계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쏟아내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에너지·첨단 기술 협력, 공군 유지·보수·운영(MRO) 등 미·일 관계 주제 행사를 이달에만 세 차례 열었다. 
스팀슨센터는 25일 ‘더 깊은 미·일 동맹’, 26일 일본 대사관·맨스필드재단은 ‘미·일 입법 협력’을 주제로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일본 사사카와재단 등은 일본을 연구하는 신진 학자·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방일 행사를 기획해 지일파(知日派)를 양성하고 있다.(250325)


 

 

[깨알지식Q] F-1, F-86… 전투기 번호 무슨 기준으로 붙일까

원칙은 개발된 순서대로 부여
불길한 숫자 올땐 건너뛰기도

미군이 6세대 전투기 이름을 ‘F-47′로 정한 건 도널드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제2차 대전 때 활약했던 P-47 전투기 숫자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 전투기 이름은 어떻게 붙일까. 
미국은 1962년 육해공군, 해병대가 중구난방으로 쓰던 군용기 명명 체계를 통일했다. 임무에 따라 F(Fighter·전투기), B(Bomber·폭격기), C(Cargo·수송기) 등으로 시작된다. 그중 복합 전투를 수행하는 F 시리즈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U.S. President Donald Trump delivers remarks, as an image of an F-47 sixth-generation fighter jet is displayed, in the Oval Office at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D.C., U.S., March 21, 2025. REUTERS>



F시리즈 번호는 개발된 순서에 따라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예외도 있고, 특정 이유로 숫자를 건너뛰기도 한다.


원칙상 F시리즈 1번은 미국이 1942년 최초 개발한 전투기 P-59가 받을 수 있었지만, 1962년 체계 통일 당시 이미 퇴역 수순이어서 F 시리즈에 들지 못했다. 
대신 해군이 쓰던 ‘FJ-3’이 첫 개명 절차를 밟아 ‘F-1′이란 이름을 받았다.


또 F-14는 순서상 F-13이 되어야 했지만, 숫자 13을 불길하게 여기는 서구권 인식 때문에 F-14가 됐다.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 F-35 역시 24번을 받을 차례였지만 실험기 때 사용했던 X-35의 숫자를 가져왔다. 
이번에 발표된 F-47도 원칙상 F-36이 돼야 했지만, 트럼프가 아름다운 숫자라고 한 ‘47′을 붙인 것이다.


6·25전쟁 당시 한반도를 누볐던 공군용 전투기 F-86은 F-1보다 앞서 개발된 기종으로, F-1을 제작하는 데 기반이 됐다. 하지만, 이미 F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 개명하지 않았다.


개명하지 않은 전투기 중에는 1950~1960년대 개발된 F-100~106도 있다. 이들은 공군이 처음으로 전투기 이름에 100을 사용해, ‘센추리(Century) 시리즈’로 부른다. 
또 1970~1980년대 개발된 F-14, F-15, F-16 등은 영어로 ‘틴(teen)’으로 끝나 ‘틴 시리즈’로 불린다.(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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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에 세계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탈환했던 복싱 전설 조지 포먼(76)이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미국 휴스턴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아버지는 친부가 아니었고, 빈민가에서 문제아로 자랐다. 스스로도 “폭력적 성향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절도를 하고 경찰에 쫓기던 중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번민했고, 우연히 “당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라는 직업 학교 광고를 보곤 진로를 정했다. 

직업학교에서 만난 복싱 코치(닥 브로더스) 권유(“그렇게 주먹을 잘 쓰면 복싱을 해보는 건 어떠니?”)로 운명적으로 글러브를 끼었다.

 

 

<조지 포먼이 1974년 10월 29일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 전날 계체량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크게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정글의 난투(Rumble in the Jungle)’. 1974년 자이르(현 콩고)에서 무하마드 알리(당시 32세)와 맞붙었던 경기다. 

포먼은 197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를 6번이나 다운시키며 벨트를 빼앗은 후 무적(40승 무패 37 KO승)을 구가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포먼이 이길 것이라 점쳤고, 혹시 알리가 맞다가 죽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전 세계 5000만명이 시청했던 세기의 대결.

 

 

<조지 포먼(오른쪽)이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나란히 주먹을 겨누고 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는 워낙 치열해 ‘정글의 난투’라 불렸다. 포먼은 8라운드에서 알리에게 인생 유일한 KO패를 당했다.>

 


알리는 날렵한 몸놀림과 로프 반동(Rope-a-dope)을 활용해 포먼 강펀치를 피하면서 체력을 소모시켰다. 

라운드가 지날수록 힘이 떨어진 포먼. 알리는 8라운드에 집중타를 날려 포먼을 링 위에 눕혔다. 

포먼 선수 생활에서 유일한 KO패. 경기 후 포먼은 “주심이 카운트를 빨리 셌다” “주심이 뇌물을 받았다” 등 근거 없는 항변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그는 “그냥 알리가 더 강했다고 했어야 하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경기 이야기는 나중에 다큐멘터리(When We Were Kings)로 만들어져 1996년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두 번째는 은퇴와 귀의(歸依). 알리와 재경기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는 1977년 지미 영에게 의외의 판정패를 당하자 28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포먼은 이 경기 후 스트레스성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임사(臨死) 체험을 통해 종교에 귀의했다. 

깨어난 포먼은 “다시 태어났어!”라고 외친 다음, 고향(휴스턴)에 교회를 세우고 목사로 일하면서 1984년 지역 사회를 위해 ‘조지 포먼 청소년 센터’도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이 이상해졌다’면서 걱정했다. ‘두 번째 조지(No.2 George)’라는 별명도 생겼다.


세 번째는 다시 찾은 챔피언 벨트. 1987년 그는 38세에 링으로 돌아왔다. 권투가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자선 활동 등에 돈이 필요하다는 속사정도 있었다. 

복귀 후 24연승을 거두고 42세에 당시 세계 챔피언 이밴더 홀리필드에게 도전했으나 판정패(12라운드). 45세였던 1994년 26세 마이클 무어러를 상대로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 경기에서 10라운드로 접어들 때까지 포먼은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던 순간, 포먼의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연달아 작렬하면서 극적인 역전 KO승을 거뒀다.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헤비급 챔피언이란 영예도 챙겼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1995년 챔피언 자리를 포기하고 두 번째 은퇴를 했다. 46세 169일이었다. 

1997년 본인 이름을 딴 ‘조지 포먼 그릴’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상표권을 1억3750만달러에 팔았다.

 

 

<45세이던 조지 포먼(빨간 글러브)이 1994년 11월 WBA-IBF 헤비급 통합 챔피언전에서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당시 26세)를 10라운드에 KO로 쓰러뜨린 뒤 승리를 선언받던 순간. 그는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 오늘밤 나를 보라”라고 말했다.>



포먼은 생애 초반엔 천부적 펀치력을 지닌 복서로 주목받았지만 나중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는 개척자로 인상을 심었다. 

“본성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알아냈어요. 어떤 사람이 될 건지는 스스로 선택한다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필생의 숙적인 알리와는 원수에서 친구로 변했다. “한때 알리를 거의 증오했어요. 복수하고 싶었죠. 하지만 친구가 됐고 아직도 그를 사랑합니다.” 

포먼(76승 5패)은 알리(56승 5패)보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고 더 위대한 전적(영국 BBC)을 남겼다. 알리는 이슬람교 신자였고, 포먼은 기독교 신자였지만,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포먼은 12명 자녀, 알리는 9명을 뒀으며 둘은 신앙에서 아버지로서 삶까지 많은 것을 얘기하면서 친해졌다. 

2016년 알리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먼은 장례식에 운구자로 참석했다. “우린 1974년 싸웠고 1981년 가장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이번 생애에 알리보다 더 가까운 사람은 없습니다.”(250324)

 

 

 

직장인 신모(36)씨는 이달 말 부과될 ‘2월분 아파트 관리비’가 얼마나 오를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겨울 관리비를 아끼려고 난방 시간을 줄이는 등의 노력을 했는데도 1월 관리비가 한 달 전보다 3만원가량 더 나와 30만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난방비 외에 전기료, 수도료가 모두 올랐고 청소비와 소독비, 심지어 승강기 유지비까지 인상됐다”며 “각종 생활 물가 인상으로 살림살이가 어렵다지만, 아파트 관리비만큼 많이 오른 것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국내 아파트 관리비가 일반 물가보다 2배 정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아파트 약 1200만 가구의 관리비 데이터를 보유한 관리비 고지·결제 대행 업체 ‘아파트아이’가 지난 10년간의 아파트 관리비를 조사한 결과, 전용면적 1㎡당 월평균 관리비는 2015년 2065원에서 지난해 2895원으로 40.2% 올랐다. 
같은 기간 정부가 집계한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20.3%)의 2배 수준이다. 
‘국민 평형’이라 불리는 전용면적 84㎡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가족이 지난해 1년간 낸 평균 관리비는 291만8000원으로 2015년(208만1000원)과 비교해 80만원 넘게 늘었다.

 

 




아파트 관리비를 구성하는 항목들이 최근 수년간 국내외 경제 상황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이슈가 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청소비와 경비비 등은 인건비 급등, 전기료와 난방비는 에너지 비용 증가 때문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각종 원자재비 상승으로 건설 공사비가 급등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아파트 관리비는 물가 인상의 ‘종합 세트’”라는 말도 나온다.


아파트아이 분석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전체 가구가 나눠 내는 공용 관리비 항목이 10년 간 41.9% 올랐다. 
청소·경비·미화·소독 같은 비용으로 최저임금을 포함해 인건비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항목들이다. 
지난 10년간 최저임금이 한 번도 내리지 않은 것처럼 공용 관리비도 꾸준히 우상향했다.

 

 




난방비, 전기료, 수도료 같은 개별 관리비는 10년간 29.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비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소폭 줄어들었지만, 최근 다시 오르는 추세다. 
비용 인상 요인에도 여론 눈치만 보면서 동결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전기료·가스비 등을 조정한 것이 아파트 관리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5년만 따지면 전기료는 47%, 난방비는 29% 급등해 갈수록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파트 시설을 수리하고 교체하는 데 쓰는 장기수선충당금은 10년 사이 무려 114.6% 뛰어 2배 이상이 됐다. 
수리에 필요한 원자재 비용이 올랐고, 인건비 영향도 있었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아파트가 노후화되는 데 따라서 유지·보수 수요도 늘어나는 게 장기수선충당금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별로는 세종시가 10년 전과 비교해 관리비가 67% 뛰어 인상 폭이 가장 컸다. 
전용 84㎡ 기준 연간 관리비가 140만원 가깝게 오른 셈이다. 
세종시 아파트 관리비가 유독 많이 오른 배경에 대해 아파트아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새로 공급된 아파트가 많고, 지역 난방 이용률도 다른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지난해 요금을 9.5% 인상한 바 있다. 
세종시 외에 관리비가 많이 오른 지역은 경북으로 63%였다. 가장 덜 오른 지역은 대구(32%)였고, 다음은 대전(33%), 울산·전북(36%) 순이었다.


시기별로는 9월 아파트 관리비가 10년 새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당 관리비가 2015년 1847원에서 작년 3015원으로 63% 뛰었다. 
기후변화로 여름철이 길어지면서 9월에도 에어컨을 사용하는 집이 많아진 영향이다. 
8월이 57%, 7월은 51% 오른 것도 에어컨 사용에 따른 전기료 상승이 관리비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2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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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법무성이 이달부터 ‘독신증명서’를 본적지 아닌 거주지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혼인 감소로 고민하는 일본 정부가 ‘곤카쓰(구혼 활동)’를 지원하기 위해 꺼낸 카드다. 
한국에서는 낯선 ‘독신증명서’는 어디에 쓰는 것일까.


일본의 독신증명서는 말 그대로 ‘신청자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라는 사실을 공식 인증하는 문서다. 
성명과 생년월일, 본적지와 함께 ‘신청자가 민법 제732조(중혼의 금지)에 저촉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다른 나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공문서다. 
대부분 국가에는 한국의 가족관계증명서처럼 혼인 여부가 포함된 공문서가 있을 뿐, 미혼을 증명하는 별도의 공문서는 흔치 않다.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市)가 발행하는 '독신증명서'의 이미지>

 


요미우리신문은 “독신증명서 수요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며 “곤카쓰를 위해 결혼 정보 회사나 매칭 앱에 등록할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대형 결혼 정보 회사가 매년 수만 명 회원의 독신증명서를 받고, 요즘엔 매칭 앱에서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국 미혼율 1위인 도쿄도가 작년 내놓은 매칭 앱 ‘도쿄 엔무스비’는 독신증명서가 없으면 회원 등록이 안 된다.


일본에선 신혼부부 5쌍 가운데 1쌍이 매칭 앱에서 만나 결혼할 정도로 매칭 앱이 보편화됐다. 
그런데 매칭 앱에서는 기혼자가 미혼을 사칭하기도 하고 ‘로맨스 사기’도 벌어진다. 
일부 앱에서는 의도적으로 불륜을 조장하거나, 금전 거래가 오가는 불법 성매매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도쿄 엔무스비’처럼 결혼을 전제로 미혼 남녀의 만남을 돕는 앱은 독신증명서라는 공문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연애 감정을 악용해 금전을 갈취하는 로맨스 사기도 급증해 작년 피해액은 전년보다 100% 이상 증가한 397억엔(약 3900억원)에 달했다. 
그러자 독신증명서 없이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심리가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것이다.


독신증명서를 떼려면 지금까지는 본적지가 있는 고향에 직접 찾아가거나, 우편으로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정보 회사와 같은 민간 기업이 대신 발급받는 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제 집 근처 구청·시청에서 간편하게 증명서를 뗄 수 있게 됐으니 ‘곤카쓰’가 수월해지는 셈이다. 
다만 창구에서 반드시 ‘증명서 떼는 이유’를 물어볼 테니, 그리 유쾌하지 않은 문답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250322)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파리협약에서 세운 ‘1.5도 마지노선’이 결국 무너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9일 “2024년은 산업화 이전 대비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2도 밑으로 유지하며,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그런데 불과 9년 만에 ‘상승 폭 1.5도’라는 제한선이 깨진 것이다.


이날 WMO가 발표한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도가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175년간 지구 평균 기온을 관측한 이래 작년이 최고치”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의 뚜렷한 징후들이 일제히 정점을 찍었다”면서 작년이 가장 더운 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각종 지표들을 소개했다.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의 작년 농도는 지난 80만년 중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바닷속 열에너지 총량을 지칭하는 ‘해양 열량’은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바닷물이 더워지면서 해빙(海氷)이 줄고, 해수면 상승은 빨라졌다. 
북극 해빙의 면적은 지난 18년간 역대 최저치 기록을 매년 새로 썼고, 남극 해빙도 지난 3년간 최저 기록을 경신해 왔다. 
해수면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4.7㎜씩 높아졌다.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2.1㎜ 상승)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WMO는 이런 온난화 추세가 극심한 자연재해를 불러올 위험 신호라고 경고했다. 
다만 셀레스테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장기적인 온난화 억제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 건 아니다”라며 “작년에 나타난 현상은 지구에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파리협약에서 세운 목표는 장기적 추세를 염두에 둔 것이기에 작년 한 해만 보고 목표를 잃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난항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하면서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중 하나인 미국이 지난 1월 파리협약 탈퇴를 재차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집권 때도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중심의 정책을 폈다. 
오는 9월 각국이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발표를 앞둔 가운데, 미국의 탈퇴로 탄소 중립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2030 NDC를 지난 2021년 발표한 데 이어, 올해는 이보다 늘어난 목표치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파리협약에서 정한 ‘진전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NDC를 발표할 때는 목표치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년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현재 공백으로 있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의 정량적 감축 계획도 세워야 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장기 지구 온도 상승 수준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며, 올해 예정된 국가 기후 계획을 통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250320)


 

 

 

“3월 봄날인데 온 산이 단풍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어요. 여기가 소나무 무덤입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에서 만난 이수복(69)씨는 뒷산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절반 넘게 말라 죽으면서 푸른 산이 붉은 산이 됐다. 
이씨는 “불과 1~2년 새 벌어진 참사”라며 “어릴 적부터 봐온 소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의 한 소나무 숲. 소나무재선충병이 번지며 녹색 솔잎이 단풍이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다. 

경북도는 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일대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산 중턱에선 전기톱 소리가 요란했다. 산림청 직원 9명이 갈색으로 변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베어낸 소나무를 1m 크기로 잘라 차곡차곡 쌓은 뒤 살충제를 흠뻑 뿌렸다. 그 위에 천막을 덮어 씌웠다. 
황왕근 영주국유림관리소 산림보호팀장은 “이런 ‘소나무 무덤’이 이 산에만 4000개가 넘는다”며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될 판”이라고 했다.


그동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창궐했던 소나무 재선충병이 최근 경북 북부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안동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41만그루로 집계됐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안동 도산면, 녹전면, 예안면 등 3곳을 ‘방어선’으로 정하고 ‘방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병휘 안동시 산림과장은 “그동안 포항, 울진, 경주 등을 중심으로 번졌던 재선충병이 올해는 안동, 봉화 등 북부 지역까지 올라왔다”며 “자칫 소백산과 태백산을 넘어 재선충병 청정 지역인 강원도까지 확산될까 봐 ‘마지노선’을 치고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일대 야산에서 산림청 관계자들이 죽은 소나무를 모아 훈증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봉화군에선 작년 11월부터 소나무 1만2665그루를 베어냈다. 
봉화군 관계자는 “재선충병 증상을 보이는 소나무가 있으면 선제적으로 반경 1㎞ 안에 있는 소나무를 전부 베어내고 있다”며 “우리도 다 큰 소나무를 잘라내는 게 아깝지만 더 많은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눈 찔끔 감고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재선충은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에 기생하는 1㎜ 크기의 벌레다. 
나무의 수분 통로를 막아 감염된 소나무는 녹색 솔잎이 갈색으로 변한 뒤 결국 고사(枯死)한다. 번식력이 강해 재선충 한 쌍이 20일 뒤엔 20만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치료약이 없어 감염되면 100% 고사한다. 
재선충은 주로 솔수염하늘소를 타고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닌다. 이 때문에 감염된 소나무가 있으면 그 일대 숲의 소나무를 전부 베어 내고 솔수염하늘소와 애벌레를 박멸해야 한다. 
한혜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장은 “2004년 제주도에서 소나무 12그루가 재선충병에 걸렸는데 그 숫자가 10년 만에 4만5800배인 55만그루로 늘어난 적이 있다”며 “감염된 소나무를 완전히 제거해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일본에서 수입한 원목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경남 밀양, 경북 구미·포항·경주 등으로 확산해 2014년엔 218만그루가 고사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방제 작업에 나서 확산세가 꺾이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번지고 있다. 
경북 지역의 피해가 가장 크다. 경북도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지난 14일까지 경북 지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85만그루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39만9000그루)의 2배가 넘는다. 역대 최대다. 지난해 전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89만9000그루였는데 엇비슷한 수준이다.


재선충병이 확산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솔수염하늘소는 보통 5월이 되면 성충이 되는데 날이 따뜻해지며 그 시기가 5~11일 정도 당겨졌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20년 9.8도였던 전국 2~5월 평균 기온은 지난해 10.9도로 상승했다. 
2023년 이후 예산 부족 등 문제로 감염된 소나무를 100% 베어내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재선충병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수종 전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소나무만 있는 산에 다양한 나무를 섞어 심거나 재선충병에 걸리지 않는 참나무 등을 심자는 것이다. 
이주형 영남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재선충병을 먼저 겪은 일본에선 이미 산에서 소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지금 같은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50년 뒤에는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250321)


 

 

 

 

그해 봄에
                 박준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가을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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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결혼한 남녀 5쌍 중 1쌍은 피겨 여제 김연아(35)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30) 부부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 커플인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혼인 신고를 한 초혼(初婚) 부부는 17만8734쌍으로, 이 가운데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경우는 19.9%인 3만5616쌍이었다. 
관련 통계가 처음 나온 1990년대엔 이 비율이 8.8%에 그쳤는데 점차 올라 2023년 19.4%까지 올랐고 작년에 역대 최고치를 고쳐 쓴 것이다. 
동갑내기 부부 비율도 16.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피겨 여제 김연아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 부부(사진 왼쪽)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의 결혼이 작년 전체 초혼의 19.9%로 역대 최고 비율을 기록했다. 
배우 공효진과 가수 케빈 오 부부(오른쪽)처럼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초혼 부부도 405쌍에 달했다. >

 


반면 연상남·연하녀 부부 비율은 63.4%로 역대 최저다. 배우자의 나이보다 능력과 외모 등 다른 조건을 중시하는 20·30대 남녀가 늘면서 ‘연상 신랑+연하 신부’라는 오랜 통념이 깨진 결과라는 진단이 나온다. 
결혼 정보 업체 듀오 관계자는 “전문직 등 능력 있는 30대 초·중반 여성을 중심으로 예비 신랑의 나이보다 외모 등 다른 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남성들도 여성의 경제력을 따지는 경우가 늘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자주 맺어지고 있다”고 했다.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길로 접어들던 과거와 달리 맞벌이 부부 형태로 가정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경제력은 결혼 상대를 찾을 때 중시하는 핵심 조건으로 떠올랐다. 
30~3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0년만 해도 48.9%로 절반을 밑돌았는데, 작년 기준 비율은 75.7%로 높아졌다. 
30대 초반 여성 4명 중 3명은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뜻이다.

 

 




남자는 생계를 책임지는 바깥사람, 아내는 살림을 주로 맡는 안사람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2023년 기준 결혼 5년 이내 신혼부부 76만9067쌍 가운데 5.7%인 4만4182쌍은 아내만 일을 하고 남편은 살림 등을 하거나 쉬는 경우였다. 
같은 직장 여성 상사와 결혼하는 남성들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과장(43)은 입사 1년 선배인 여성 차장과 결혼했다. 
차장인 아내에게 회사에선 “차장님”이라고 부르고, 집에선 ‘ΟΟ씨’라고 한다. 
정부세종청사와 정부서울청사 등 관가에서도 여성 선배 공무원이 남성 후배와 ‘썸’을 타다 백년가약을 맺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가연 관계자는 “외모와 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이 늘면서 30대 초·중반 여성의 외모가 과거보다 대체로 젊어지고 있다는 점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어나는 요인”이라고 했다.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면서 초혼 부부의 남녀 나이 차이도 줄어드는 추세다. 
작년 초혼 남성의 평균 연령은 33.86세로 여성(31.55세)보다 2.31세 많다. 1990년만 해도 이 차이가 3.01세에 달했다.


의료 기술 발달로 30대 중·후반 여성의 출산이 늘어난 것도 연상녀·연하남 부부가 증가하는 이유로 꼽힌다. 
35~39세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2023년 43명으로 30년 전(13.5명)의 3.2배가 됐다.


남녀 모두 재혼(再婚)인 결혼은 작년 2만3022건으로 이 가운데 20.6%가 연상녀·연하남이 가정을 꾸린 경우다.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재혼 비율은 이미 2014년 20%를 넘었다. 
배우 공효진(45)과 가수 케빈오(35)처럼 아내가 남편보다 열 살 이상 많은 경우도 초혼 기준 405쌍, 재혼은 231쌍에 달했다.


연상녀·연하남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 
20년 전 세 살 연상 아내와 결혼한 신모(45)씨는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지인들이 아내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부르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편하게 ‘제수씨’나 ‘누님’이라고 한다”고 했다. 
듀오 관계자는 “연하남과 결혼한 여성들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 부각되는 ‘누나’라는 호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성사된 커플의 호칭은 ‘자기’ ‘여보’ ‘ΟΟ씨’ 등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초혼과 재혼을 포함한 지난해 혼인 건수는 22만2412건으로 전년 대비 14.8% 증가했다. 증가율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2차 베이비 붐 세대(1964~1974년생)의 자녀인 ‘2차 에코 붐 세대’인 1990년대 초반생들(1991~1995년 출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적령기(여성의 첫아이 출산 연령은 평균 33세)를 맞은 영향이 컸다.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거리 두기 규제로 결혼을 미루다 2년 전쯤 뒤늦게 부부가 된 ‘엔데믹(풍토병화) 커플’이 아이를 낳기 시작한 점도 한몫했다. 
박현정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30대 초반 인구가 증가한 것과 코로나19로 혼인이 감소했던 기저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혼인이 큰 폭으로 늘었다”며 “혼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대, 혼인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250321)

 

 

 

서울 송파구 보인고 3학년 360명 중 130명은 매주 토요일마다 학교에 나온다. 
이 학교는 주말에 국어·수학 자체 모의고사를 실시하는데, 강제가 아님에도 학생 3분의 1가량이 스스로 학교를 찾는 것이다. 
이 모의고사는 수능과 ‘판박이’다. 교사들이 기출 문제를 참고해 수능 문항 수와 동일하게 시험지를 준비하고, 시험 시간은 물론 종소리까지 실제 수능과 똑같다. 
오양욱 보인고 교감은 “한국 양궁 국가대표가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장을 실제 대회장이랑 똑같이 마련하고 현지어 안내 방송을 트는 것처럼, 우리도 매주 실전 같은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 학부모 사이에서 “수능을 볼 때 덜 긴장할 것 같다” “주말 학원비도 아껴 좋다”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첫해엔 20명 규모로 시작했는데, 작년 100명, 올해 130명 규모로 불어났다.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보인고등학교에서 3학년들이 1학년들에게 학교 생활에 대해 조언해 주고 있다. 

보인고는 선배와 후배들을 멘토·멘티로 묶어줘 후배들이 학교와 공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상업고에서 출발한 보인고(자율형사립고)는 교육계에서 신흥 명문고로 주목받는 학교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2021학년도 9명에서 21명(2022), 23명(2023), 33명(2024)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25학년도엔 38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외대부고(56명), 대원외고(52명) 등에 이어 전국 5위다.


1908년 개교한 보인고의 변신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다른 사립학교처럼 기업이나 사업가가 재단을 맡고 있던 게 아니어서, 2000년대 들어 학교 재정 위기가 심해졌다. 당시 이사장이었던 창립자의 며느리가 현재 보인고 이사장인 김석한(70)씨를 찾아 “죽고 나서 시아버님을 뵐 면목이 없다”며 학교 운영을 부탁했다. 
보인고 출신으로 인조 모피 기업 ‘인성하이텍’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김 이사장은 2004년부터 학교를 맡았다. 
그는 ‘시대가 변했는데 상고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2007년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시켰다.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선 우수한 교사를 선발하는 게 급선무였다. 
김 이사장은 서류, 시험, 강의 시연, 면접 등으로 이어지는 무려 9단계 전형을 거쳐 교사들을 뽑았다. 
김 이사장은 “전국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교사진을 꾸린다는 생각이었다”며 “한 번은 15명 선발에 1250명이 지원했는데, 그때 차에 항상 이력서를 넣어두고 어딜 가든 이력서 검토를 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또 체육관 신축과 본관 건물 수리 등 학교 환경 개선에 총 320억원을 들였다. 보인고는 2011년 자사고로 전환했다.

 

 




김 이사장은 “누군가 ‘기업 경영과 학교 경영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고객 만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며 “학교는 고객인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키면 된다.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사교육비를 덜어주면 된다”고 했다.


학교는 저녁 식사 후 6시 10분부터 9시 30분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데, 단순히 자습만 시키지 않는다. 
개인 연구를 해도 된다. 가령 ‘용수철 탄성 계산하기’ 같은 주제를 정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거나 실험을 한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오양욱 교감은 “선생님들이 아무리 생활기록부를 잘 써주려 해도 결국 아이들이 ‘재료’를 가져와야 한다”며 “학교에 책이랑 실험 기자재들이 다 있으니, 방과 후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공부, 실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인고 1~3학년 총 1100여 명 중 80%는 이런 야간 학습에 자율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두드러지는 대입 실적을 냈음에도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진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인성 교육을 강조해, 신입생이 들어오면 ‘어른에게 밝게 인사하라’고 가르친다. 
지난 17일 김 이사장이 보인고 교정에서 거닐자, 삼삼오오 학생들은 밝은 표정으로 허리를 90도 숙이며 “이사장님 안녕하세요!”라고 외쳤다. 
학교는 또 체력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전교생이 참여하는 반 대항 축구 리그제를 1년 내내 운영한다. 
‘오침 시간’도 학교 특색 중 하나다. 전교생이 오후에 30분 낮잠 자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함을 느끼는 학생이 많으니, 아예 낮잠을 자고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3학년과 신입생 1명씩 조를 짜 ‘멘토링’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1학년은 공부 방법, 학교 적응 노하우, 고민 같은 걸 3학년 선배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날 1학년 강은규(16)군은 3학년 문호준(18)군에게 “하루 7시간 자며 공부하고 있는데 적당한가요?”라고 물었고, 문군은 “개인마다 적당한 수면 시간은 다 다르니 주말에 6시간, 8시간 등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수면 시간을 찾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이런 식으로 신입생의 학교 적응을 도와 전학생을 크게 줄였다. 
5~6년 전엔 한 학년이 들어오면 1년 안에 30명이 전학을 갔지만, 지금은 1~2명 수준이다.(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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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약 복용 중인 군인인데 약이 떨어져 갑니다. 비대면 진료로 약을 배달받을 수 있을까요?” 
최근 한 비대면 진료 앱에 올라온 문의 글이다. 그러나 이 병사는 부대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비대면 진료는 받을 수 있지만, 탈모 약을 배송받을 수는 없었다.


정부가 비대면을 통한 의사 진료 후 원격 약 수령을 벽지, 도서 등 일부 지역에 허용하고 있지만, 약국이 주변에 없는 외진 지역에 위치한 군부대에서는 이런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총 1445명의 군 장병이 이 회사 앱을 통해 2380건의 약 배송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때는 코로나 사태로 정부가 퀵 서비스와 택배를 통한 약 원격 배송을 지역 제한을 두지 않고 허용했던 시기다. 
월평균 125건, 일평균 4건꼴로, 배송 방식은 택배와 퀵 배달이 각각 2021건, 339건이었다.


그러나 2023년 6월 정부는 약 배송은 원칙적으로 금지시켰다. 
정부는 당시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정착시키겠다”면서 섬·벽지 지역과 거동 불편자,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대리·재택 약 수령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닥터나우 집계 결과, 2023년 6월 이후 주변에 약국이나 병원이 없어 ‘오지’에 가까운 군부대에서는 비대면 약 배송 이용 실적이 제로(0)로 떨어졌다.


이는 인구가 적은 소규모 섬들만 비대면 약 배송 가능 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벽지도 일부 지자체의 ‘리’나 ‘길’ 단위로 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군 부대 숫자 자체가 적은 것이다.


앞서 2021년 10월~2023년 5월 군 장병들의 약 배송(2380건) 중 가장 많았던 건 여드름 관련 약(1041건)과 그 밖의 피부과 처방 약(566건), 감기·독감 약(159건), 코로나 약(138건), 탈모 약(88건), 이비인후과 약(73건), 내과 약(46건), 정신건강의학과 약(24건) 등이었다.


현재 진료가 필요한 장병들은 의무대에서 군의관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거나 군의관 승인하에 군 병원을 찾는다. 외출을 허가받고 민간 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복무 중인 한 병사는 “경미한 감기나 피부 약, 탈모 약 등을 처방받으려고 외출하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장병들이 민간 병의원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받고 약을 배송받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원격 약 배송은 번번이 약사들이 반대하고 정부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확대되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약 배송이 안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뿐이다. 
약사들은 대형 약국으로 약 배송이 쏠려 소규모 약국의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반발한다. 
또 배송 과정에서 의약품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으며, 의약품을 오남용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입장이다.(250319)

 

 

 

“매주 쪽지 시험 범위가 PPT 1000장이 넘는다.”


서울의 한 의대 본과 2학년 휴학 중인 A씨는 본지 통화에서 “의대는 공부량이 방대해서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치를 수도, 졸업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의대 족보는 각 과목의 기출 문제나 주요 필기 내용 10여 년 치를 묶어 놓은 자료를 말한다. 학생들이 만들어 공유한다. 
A씨는 “중간고사 공부 분량은 PPT 자료 수만 쪽인데 족보는 이를 10분의 1 정도로 축약해 준다”며 “족보 없이 혼자만 공부하면 F 학점을 맞고 유급당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이런 족보가 최근 의대생 복귀를 막는 주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족보는 의대 학생회나 동아리 선배들이 관리하는데, 복귀하는 의대생에겐 족보 접근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A씨는 “복귀한 의대생 중에 족보 없이 맨땅에 헤딩식으로 혼자 공부하다 지쳐서 다시 휴학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족보 제공권’을 가진 의대 학생회나 지도부는 의대생의 생살여탈권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은 작년부터 교육부에 “족보 등을 제공하는 ‘의대 교육 지원 센터’를 전국 40개 의대에 설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육부는 작년 10월 “각 의대에 센터 설치를 권고한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설치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가 연락한 의대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족보 없이는 의대 생활을 못 한다”고 했다. 
의대는 한 학기에 공부해야 수업 자료만 수만 쪽에 달할 정도로 다른 과들에 비해서도 공부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기출 문제와 수업의 핵심 내용이 담긴 족보는 의대생에게 중요하다. 
의대에서 족보가 ‘왕족(족보가 왕)’ ‘족생족사(족보에 살고 죽는다)’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족보 제공 배제’는 ‘배신자 낙인’과 함께 의대생의 수업 복귀를 가로막는 양대 장벽으로 통했다. 정부의 ‘족보 센터’ 설치는 이런 족보 문제를 해결해 학생 복귀율을 높이려는 취지다.


비수도권의 한 의대생(본과 2학년)은 본지 통화에서 “중간·기말고사 때 공부해야 할 과목이 1과목당 PPT 자료 1만쪽 정도”라며 “5과목을 들으면 5만쪽을 공부해야 하는데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학교는 이 족보를 (의대) 학생회가 제본 떠서 책으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며 “특히 신입생인 25학번은 이 족보를 못 받을까 봐 무서워서 수업에 못 들어온다고 들었다”고 했다.


의대생들은 “족보 생성에서 제외되는 건 동기, 선후배들에게 차단당하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족보는 의대의 ‘단체 생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의대생(본과 3학년)은 “우리 의대는 모든 학생이 족보를 만드는 ‘족원’으로 활동한다”며 “시험 때가 되면 각자 나눠서 시험 문제를 외운 뒤 끝나면 이를 취합하는 선배 ‘족장’에게 복원한 문제를 보고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의대 족보를 갱신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의대별로 제각각이었다. 
학생회가 하기도 했고, 각 의대 동아리 선배들이 관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의정 갈등을 거치면서 의대 학생회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의대 학생회 지도부가 개별 학생들의 수업 복귀를 막고 단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이 족보를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한양대 의대 TF라는 학생 단체는 작년 5월 학생들에게 수업 집단 거부에 참여하지 않으면 족보를 공유하지 않고, 족보 접근권도 영구 제한하겠다고 압박한 혐의로 교육부에 의해 경찰에 수사 의뢰된 바 있다.


의대생들은 “선후배와 동료들의 눈치, 전공의 선발 때 선배들의 입김 등 복귀를 주저하게 하는 여러 요인이 있고 족보 문제도 그중 하나”라며 “앞으로 교수님들의 시험 문제가 공개되고 이것을 학교가 모아 공유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각 의대가 족보 등을 제공하는 ‘의대 교육 지원 센터’를 설치했는지, 했다면 몇 군데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교육부는 처음부터 이 센터가 의대생들을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며 “설치를 권고한다는 말만 하고 설치 상황은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250320)

☞의대 족보

각 의대의 10여 년 치 기출 문제와 수업 핵심 내용이 담긴 자료.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시험 범위가 방대한 의대 학생에겐 필수 자료다.


 

 

 

국내 프로게임단 한화생명e스포츠가 올해 처음으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국제 대회 ‘퍼스트 스탠드’에서 첫 우승 팀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한화생명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롤파크에서 열린 2025 퍼스트 스탠드 결승전에서 유럽 팀 카르민 코프(KC)를 3 대1로 꺾고 우승컵을 들었다.

 

 


<(왼쪽부터)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한화생명e스포츠 ‘피넛’ 한왕호(27).>

 


퍼스트스탠드는 중국·북미 등 전 세계 5대 리그 우승팀이 모여 개최한 대회다. 
한화생명의 우승은 국내 리그가 세계 최정상임을 증명한 것이다. 
국내 선수의 실력만큼이나 전 세계 엔터·스포츠 업계가 국내 롤 프로리그(LCK)에 놀라는 점은 또 있다. 
고액 연봉을 받는 20대 남자 프로게이머 집단에서 사건·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해외 리그 관계자는 “한국 프로게이머는 단정한 외모에 술·담배도 거의 하지 않고 비속어도 잘 쓰지 않는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MZ세대 남자들의 우상인 프로게이머들은 대부분 10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연습생을 시작해 10대 후반에 데뷔한다. 
현재 1군에서 가장 어린 선수는 2007년생이다. 프로게이머로 성공한다면 20대 초반에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국내 e스포츠 업계에 따르면, 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7억원, S급 선수들의 연봉은 수십억 원대다.


국내 LCK 관계자들은 그 비결로 “10년 넘게 뛰고 있는 고참 3명이 모범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세 선수는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그리고 한화생명 소속으로 퍼스트 스탠드 우승을 한 ‘피넛’ 한왕호(27)다.

 

 

<T1 페이커 이상혁.>

 


e스포츠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5번 우승하며 우상이 된 페이커는 강한 승부욕과 자기 관리로 묵직한 아버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는 프로게이머 중 가장 많은 70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지만, 사치를 하거나 술·담배를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즐겨 읽고, 명상을 한다. 교보문고에 ‘페이커 추천 도서’ 코너가 있을 정도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내 행동이 후배와 팬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후배 선수들이 인터넷 방송에서 비속어를 쓰면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


그의 가족들도 ‘수퍼스타 가족이 보여야 할 모범의 정석’을 보여준다. 
공개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 가족들은 지난해 6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페이커 선수의 ‘전설의 전당’ 행사에도 “부담스럽다”며 불참했다. 대신 집을 후배 동료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이 쉬는 날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화려한 술집이 아닌 페이커의 집”이라며 “10~20대에는 친구나 선배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가장 잘나가는 페이커 선수가 바른 생활을 하다 보니 선수들의 분위기도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2022년 롤드컵 우승으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데프트는 어린 후배들을 다독이는 어머니 같은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한 팀에만 있었던 페이커와 달리 여러 팀을 옮겨 다닌 데프트는 재정이 불안정해 공중분해되는 팀과 성숙하지 못한 코치진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도맡았다.


해외 원정 경기에서 그의 숙소는 한국 선수들의 사랑방이다. 데프트는 외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며 컨디션을 챙겼다. 
코로나 시기에는 갈 곳 없는 후배들이 그의 숙소로 모여들자 4인 금지 원칙에 따라 자신이 집 밖으로 나갔다. 
이런 그의 리더십에 지난해 11월 군 입대를 앞두고 열린 송별회에는 1000여 명의 팬과 수십 명의 후배가 함께했다. 

‘스코어’ 고동빈 선수는 “데프트는 어리광을 부리기보다 남보다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아부었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였다”며 “그는 뛰어난 선수를 넘어 훌륭한 리더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피넛은 10번이 넘는 국내외 우승으로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게임에서는 자원을 많이 먹고, 상대를 이기는 선수가 돋보이지만, 그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후배들이 더 빛나며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 모습이 대치동 학부모 같다고 해서 ‘대치맘 리더십’으로 불린다. 
우승 트로피를 들 때도 그는 후배들이 먼저 들도록 배려한다. 오랜 기간 기복 없이 꾸준한 기량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한화생명의 전신인 락스 타이거즈의 막내로 시작한 그는 “형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후배에게 베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락스 시절 그의 동료 형들은 프로게임단 초기 적은 월급으로도 피넛이 먹고 싶다는 건 대부분 사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대부분이 일찍 선수 생활을 끝냈지만 피넛이 스타 선수로 성장해 나갈 때는 그 누구보다도 뿌듯해했다.


올해로 13년 된 LCK는 매년 규모가 커져 올해는 포스코, 우리은행, 벤츠 등이 후원하고 있다. 
라이엇코리아 관계자는 “만약 이 세 명의 선수가 사건·사고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면 후원사도, 게임단을 믿고 자식들을 보낼 부모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 고참 선배들 덕에 업계 후배들도 건강한 듯하다”고 말했다.(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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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엔짜리 '신칸센 경기' 티켓 매진… 日 여자 프로레슬링 다시 인기

[김동현 기자의 방구석 도쿄통신]

 

지난달 15일 일본 도쿄에서 출발한 오사카행 신칸센 고속열차. 
모든 좌석이 승객들로 빼곡히 채워진 가운데 한 열차칸에 형형색색의 레슬링복을 입은 여성들이 올라탔다. 
이들은 양옆 좌석 사이 성인 한 명이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통로에서 서로에게 ‘헤드록’을 거는 등 난투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로레슬링 경기에 참가해 발차기를 하는 아라이 유키(오른쪽) 선수.>

 


일본 스포츠 단체 ‘도쿄여자프로레슬링’이 주최한 여자 프로레슬링 경기였다. 
경기 입장권(열차 좌석) 값이 장당 최고 6만엔(약 58만원)이었는데 전 좌석(70석)이 판매 개시 2시간여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일본 경제 호황기 전성기를 누렸던 여자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부활하고 있다고 NHK 등이 보도했다. 
선수 40여 명이 소속된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 ‘스타덤’은 최근 연간 매출 15억엔(약 147억원)을 올렸다. 
5년 전과 비교해 일곱 배 뛴 것이다. 스타덤을 비롯해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는 여자 프로레슬링 단체는 14곳으로 전성기였던 1980년대(2곳)보다도 크게 늘었다.

 

 

<일본 도쿄 가부키초의 공연장 신주쿠페이스에서 지난해 9월 열린 여자 프로 레슬링 경기 장면>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은 일본 경제의 대호황기였던 198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 건립된 요코하마 아레나 등 대규모 공연장들은 여자 프로레슬링 대회가 열릴 때마다 자리가 가득 찼다. 
하지만 1990년대 거품이 꺼지고 공식 리그(전일본여자프로레슬링)가 부도를 맞으면서 수십 년 간의 침체기를 겪었다.


그런 여자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다시 끌어올린 공신으로 지난해 8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극악여왕’이 꼽힌다. 
1980년대 죽도·사슬 등 무기를 들고 난폭한 퍼포먼스를 벌인 선수 ‘덤프 마쓰모토’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폭언·구타·성희롱 등 어두운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현지 넷플릭스 TV쇼 시청률 1위에 오를 정도로 흥행했다. 
이는 여자 프로레슬링에 대해 향수를 가진 장년층과 신선함을 느낀 젊은이들 모두를 경기장으로 이끌었다.


모처럼 부활 조짐을 보이자 여자 프로레슬링계도 바빠졌다. 
관련 단체들은 ‘신칸센 경기’처럼 이색 대회를 주최하는 것은 물론 편의점·화장품 등 기업들과 협업한 상품을 내놓으며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한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 팬은 “여자 프로레슬링은 단순 스포츠를 넘어 사회에 억압된 (일본 여성들의) 피로를 해소하게 해준다”고 했다. 
NHK는 “드라마의 히트뿐 아니라 ‘여자 프로레슬링을 계속 발전시키겠다’는 단체들의 열의가 열풍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250320)



 

 

[깨알지식Q] 폭격기 이름에 왜 '게이'를 붙였을까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 이름은 조종사 폴 티베츠 대령의 어머니 ‘이놀라 게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의미인 동성애자와는 관련이 없다.

 

 

<1945년 북태평양 마리아나제도에서 촬영된 B-29 전략폭격기 '이놀라 게이(Enola Gay)' 앞에 선 승무원들. 가운데 사람이 조종사 폴 티베츠.>

 


당시만 해도 게이는 ‘명랑한’ ‘쾌활한’이라는 원래 뜻으로 더 많이 쓰였다. 사람 이름에 쓰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동성애자라는 의미를 얻은 건 종전 이후다.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동성애자를 의학적 느낌이 강한 ‘호모섹슈얼(homosexual)’ 대신 밝고 긍정적이라는 뜻의 ‘게이’로 지칭한 데 따른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은 조종사의 행운을 비는 차원에서 항공기에 개인적 사연을 담은 이름을 붙이는 일이 많았다. 
폭격 임무를 25번 수행하는 동안 모든 승무원이 생존한 것으로 유명한 B-17 폭격기 ‘멤피스 벨(Memphis Belle)’도 조종사의 고향 멤피스의 아름다운(belle) 애인을 의미한다.(250320)

 

 

[What&Why] "바이든, 오토펜으로 서명… 민주당 의원 사면은 무효"

트럼프 "직접 서명해야 효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단행한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사면 조치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바이든이 직접 서명하지 않고, 자동 서명 기계인 ‘오토펜(autopen)’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바이든은 직접 서명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무슨 조치인지도 제대로 몰랐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최근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은 바이든의 서명이 있는 수천 페이지 문서를 분석한 결과, 사면 조치를 포함한 대부분이 오토펜으로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지난 1월 20일 퇴임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반(反)트럼프’ 인사인 리즈 체니, 애덤 시프, 애덤 킨징거, 제이미 라스킨 등 전현직 의원들이 정치 보복당할 것을 우려해 ‘선제적 사면’ 조치했다. 
트럼프는 이들이 “최고 수준의 수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밈'. 
바이든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놓여야 할 자리에 오토펜이 서명하는 사진이 대신 붙어 있다.>

 


트럼프가 말한 오토펜은 로봇 팔에 볼펜을 끼운 기계다. 
복제하고 싶은 서명을 한 번 저장해 두면 실제 필체와 똑같이 복제한다. 
미 역대 대통령이 연하장 등 대량 문서를 처리할 때나 부득이하게 자리에 없을 때 사용해 왔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250달러 정도에 판다.


토머스 제퍼슨(1801~1809년 재임) 전 대통령이 1803년 발명된 오토펜의 전신 ‘폴리그래프’를 처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토펜을 쓴다고 공식 인정한 건 제럴드 포드(1974~1977년 재임)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는 편지와 대통령 하사 기념품에만 오토펜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부재중 법안 서명에 오토펜을 사용했다. 
2011년 프랑스 G8 정상회담 출장 중이던 그는 회담 기간 동안 만료되는 애국법(Patriot Act) 일부 조항 연장을 위해 오토펜을 쓰도록 지시했다.

 

 

<미국에서 사무용으로 유통되고 있는 탁상형 오토펜 예시.>




트럼프 주장이 받아들여지긴 쉽지 않다. 
미 법무부 법률고문실은 2005년 오토펜으로 서명한 문서도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미 NBC방송은 “오토펜을 썼건 안 썼건 미 헌법상 전임 대통령이 승인한 사면을 후임이 철회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바이든이 실제 오토펜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증거가 있냐고 묻자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당신이 기자 아닌가. 직접 찾아보라”고 응수했다. 
트럼프는 자신도 오토펜 사용 사실을 인정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등 중요하지 않은 서류에만 썼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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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고온과 고수온, 폭우 등이 잦아지면서 ‘금(金)사과’나 ‘금추(금+배추)’, ‘금징어(금+오징어)’ 등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연중 공급 불안정에 시달리게 된 식품·유통 업체들은 첨단 기술을 동원해 보관 기간을 늘리거나 재배 방식을 바꾸는 기술 전쟁에 속속 나서고 있다. 
단순히 좋은 상품을 찾기만 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직접 연구·개발에 뛰어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상 기온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폭염, 가뭄, 홍수는 연례행사가 됐다”면서 “업계에선 이제 이상 기온을 변수가 아닌 상수라고 보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갓 따온 그대로 사과’와 ‘갓 수확한 그대로 단단한 양파’를 19일부터 판매한다고 16일 밝혔다. ‘갓 따온’이란 말이 붙었지만 사실 이 사과는 작년 10월, 양파는 작년 6월에 수확한 상품이다. 
두 상품 모두 롯데마트가 CA(기체 제어) 저장고에 보관한 것이다. 수확한 직후에 바로 판매하지 않고 곧장 특수 저장고에 저장됐다.


CA 기술이 적용된 특수 저장고는 온도와 습도뿐 아니라, 공기 중 산소와 질소 비율 같은 기체 조성을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저장된 농산물의 노화를 억제하고 미생물과 곰팡이가 자라는 것을 막는다. 
농산물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보전 기간을 늘릴 수 있어 오랜 기간 갓 수확한 것 같은 신선함이 유지된다. 
최근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첨단 기술 중 하나다.

 

 

 


예전엔 보통 3~4월이면 저장해 둔 농산물의 물량이 줄고 신선도는 떨어져, 농산물 가격이 오르곤 했다. 
특히 올해는 작년에 수확한 사과가 이상 고온 때문에 전반적인 품질이 떨어지면서 사과 품귀 현상도 빚어질 수 있었다. 
이에 롯데마트는 보통 4월 중순 무렵 풀었던 CA 저장 사과를 올해는 한 달 정도 앞당겨 19일부터 출하하기로 했다. 이미 사과와 양파 수확이 끝난 시기지만, CA 기술로 저장한 부사 사과 500t과 양파 200t을 ‘갓 따온’이란 이름으로 팔면서 물가 상승을 막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마트 측의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사과와 양파 외에도 수박, 시금치도 CA 기술로 저장하고 있다. 
충북 증평에 있는 신선품질혁신센터에 총 1000여 t의 농산물 저장이 가능한 CA 저장고를 운영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앞으로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져도 CA 저장 농산물을 활용하면 농산물 가격을 저렴하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근 식품 업계는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는 김을 육지에서 양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고 해양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이전처럼 고품질의 김을 양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김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르자 공급을 안정화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김을 땅에서 양식하면 바다에서 양식할 때보다 해수 온도 상승이나 태풍, 영양염 고갈 같은 각종 악재에서 벗어나 온도와 환경을 제어하기도 편하고, 이를 통해 1년 내내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유지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CJ제일제당은 이에 최근 지방자치단체, 대학과 함께 김 육상 양식을 대규모로 산업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달 전라남도·해남군에 이어 이번 달에는 인천시·인천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CJ제일제당은 앞서 2018년 업계 최초로 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 2021년에는 수조에서 김을 배양하는 데 성공하고 2022년엔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에 적합한 전용 품종을 확보한 바 있다. 
CJ제일제당은 또한 제주도에서 어류 등을 양식하던 육상 양식장 개조에도 나섰다. 이를 통해 김 육상 양식 시설을 계속 확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동원F&B도 작년 10월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와 제주도 용암 해수를 활용한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제주도 용암 해수는 바닷물이 현무암 등 화산 암반층을 통해 오랜 기간 여과된 ‘염(鹽)지하수’다. 
마그네슘, 칼슘, 바나듐 등 광물 성분이 풍부하고 연중 16도 내외로 수온이 안정적이다. 
동원F&B는 용암 해수를 활용하면 김의 육상 양식이 쉬워질 것으로 보고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2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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