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서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서시. 시집 ‘남해 금산’의 첫머리에 나오는 시인데, 젊은 날 이성복 시인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순수한 열정이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냥 그렇고 그런 상투적인 표현이 거의 없고,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 시다. ‘늦고 헐한’ 저녁. 싸구려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은 시인은 사랑을 (혹은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를 걷는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이 거리는 내게 낯설다.
그는 공감각적 심상에 아주 능한 시인이다. 2연의 3행을 보라. ‘새소리’(청각)가 ‘번쩍이며’(시각) 흘러내리고… ‘몸 뒤트는 풀밭’이라니. 참으로 창의적이며 애절한 묘사 아닌가. 그의 시는 마치 움직이는 그림 같다. 사랑이라는 진부한 감정을 이토록 새롭게 역동적으로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시인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사랑을 갈구하는 불안한 청춘의 어느 저녁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 -최영미<시인.이미출판 대표>
담벼락 같은 세상에 누가 아무렇게나 갈겨 쓴 글 같은 것들 너를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제멋대로 그려 놓은 기호나 부호 같은 것들 아무도 해석할 수 없게 써 놓은 암호 같은 것들 눈 앞에 저렇게 가득히 서 있는 것들 나무 빼곡하게 들어선 숲 같은 것들 물 가득 흐르는 강 같은 것들 그 위로 날아가는 새들 그 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 지상에 누가 함부로 풀어 놓은 것들 예고도 없이 흩날리는 눈발 같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뜨고 지는 일월(日月)이나 변함없는 천지(天地) 같은 것들 지울 수 없게 아로새긴 *연비(聯臂) 같은 것들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들 네 다리로 달려가는 것들 대지를 돌아다니며 낙서하는 것들 동굴 같은 세상에 너를 갖고 싶다고 원한다는 말 대신에 손으로 발로 마음으로 그려 놓은 무늬같은 것들
인간사 어느 구석에 불 사르지 않고 일궈낸 밭이 있었던가. 쓰러지고 일어서는 세월의 숨결 또한 그렇지 않던가. 그러나 불 태움도 증오라네. 정열로 위장된 파멸이라네. 사랑으로 가장한 미움이라네. 보게 구름밭 갈고 새 깃 흔적 무심히 지우는 허공의 넉넉함과 탁류 안고 더욱 깊어 가는 저 창해의 푸른 살림살이는 어떤가.
새삼 놀랄 일도 아닌 바로 이런 살림을 어디 마음만 낸다고 아무나 하는 짓들인가. 이런 일은 큰 사람이, 아주 큰 사람이 천태산쯤에 토굴 파고 화전 일구어 감자 먹고 낮잠 자다가 홀연히 깨어 흙벽 바라보고 싱긋이 웃으며 혼자서 암, 혼자서 마쳐버릴 살림살이지
소전으로 가는 길목 이십년째 잡화를 하는 신세계슈퍼 이층에 단란주점을 낸 소연이가 내 첫사랑이다. 지금은 만리장성이라는 중국집을 냈지만 장터 포주집 아들로 내가 성, 성 하며 쫓아다니던 어릴 적엔 순 건달로, 내게 그짓은 콩알을 넣고 해야 제맛이라고 가르쳐주던 덕기형과 결혼한 그 친구가 내 첫사랑이다. 나와 내 친구와 또 한 친구까지를 관통하고 다녀 지금껏 팽팽한 삼각을 유지해주는 그 피멍 같은 계집
장성 어느 재에서 한번만 주라고 한번만 주라고 탱탱 부은 내 보람을 개새끼야 개새끼야 하고 밀쳐내던 그 콩닥숨 단내가 탱자내음 같던 가시내 왜 남들은 다 줘놓고 나만 안 주냐고 열두 시간 비지땀 애걸해도 니가 봤냐 니가 봤냐며 꼬막처럼 닫힌 속살 열지 않던 짜디짠 벌교 가시내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더이상 소녀가 아닌 내 첫사랑. 선거 때면 똘마니들 동원도 한몫하고 재 너머 읍내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와 누구누구의 신장개업 구상까지도 환히 꿰는 영민한 읍내 형수 찾아가면 원없이 술 내주고 처진 가슴 부벼 날 꼬일 줄도 아는 그 희한한 내 첫사랑
지금도 홍계리 그 외등은 벌겋게 타오르고 있을까 장미꽃 넝쿨처럼 가시를 치며 담을 넘던 세 자매의 웃음소리 가쁜 숨쉬며 나는 어디쯤 달려 왔는가 굉음처럼 지나가버린 세월 긴 밤내 썼던 편지를 쫙쫙 찢어 날리던 그 철로변 꽃잎들은 다 날아갔을까
첫눈을 맞으며 세상의 나이를 잊으며 저벅저벅 당신에게 걸어가 기다림의 사립문을 밀고 싶습니다
겨울밤 늦은 식사를 들고 있을 당신에게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하고 싶습니다
우리들 해묵은 안부 사이에 때처럼 곱게 낀 감정의 성에를 당신의 잔기침 곁에 앉아 녹이고 싶습니다
부당하게 잊혀졌던 세월에 관해 그 세월의 안타까운 두께에 관해 당신의 속상한 침묵에 관해 이제 무엇이든 너그러운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첫눈을 맞으며 세상의 나이를 잊으며 저벅저벅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의 바람벽에 등불을 걸고 싶습니다
............................ 1953년 강원도 강릉 출생 관동대 국어교육학과와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1983년 [문예중앙]에 시 <오랑캐꽃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꿈꾸지 않는 자의 행복>, <길찾기>, <오늘 문득 나를 바꾸고 싶다>, <정선 아리랑>, <치악산>, <사경을 헤매다> 등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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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을 숨차게 달려왔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홀연 길을 잃고 세상과 두절되고 싶어진다.
열두 고개 넘어 맹수와 금강소나무와 산양이 산다는 경상북도 최북단 울진군 북면 두천리쯤의 태백 숲길이었으면 좋겠다.
무릎이 꺾인 채 길과 시간과 세간의 슬픔을 비껴 너와집 한 채처럼 주저앉고 싶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마침내 돌아가는 길마저 지우고 싶다.
첩첩의 농담으로 둘러싸인 능선 뒤편으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지도에도 없는 '강원남도 두천'이라는 곳, 누군들 한 번은 꿈꿔보지 않았을까. - 정끝별<시인.이화여대 교수>
돌아돌아 강진 어디쯤이었던가 청대 숲에 든 적이 잇다. 그때, 그때였지 그대의 손마디와 내 손마디가 서로를 아슬하게 잡고 걸었던 오래된 길 손 잡고 걷는 길은 늘 한 사람의 마음을 접는 것이어서 마디마다 힘주어 산 저들의 속을 닮아 마음 주는 사람은 속이 궁글고 많은 가지 중 하늘 택해 중심을 잡는 저들 앞에 서서 내가 선택해 걸었던 길들을 되짚어본다.
한 번 금 가면 발끝까지 쪼개지는 마음과 휘지 않는 말들도 내 앞에 앉혀보는 저녁 끄끝내 당신의 손마디가 아프게 부푸는 밤이다.
겨울 햇볕 좋은 날 놀러가고 사람들 찾아오고 겨우 해는 드는가 밀린 빨래를 한다 금세 날이 꾸무럭거린다 내미는 해 노루 꽁지만하다 소한대한 추위 지나갔다지만 빨래줄에 널기가 무섭게 버쩍버썩 뼈를 곧추세운다 세상에 뼈 없는 것들 어디 있으랴 얼었다 녹았다 겨울 빨래는 말라간다 삶도 때로 그러하리 언젠가는 저 겨울 빨래처럼 뼈를 세우기도 풀리어 날리며 언 몸의 세상을 감싸주는 따뜻한 품안이 되기도 하리라 처마 끝 양철지붕 골마다 고드름이 반짝인다 지난 늦가을 잘 여물고 그 중 실하게 생긴 늙은 호박들 이 집 저 집 드리고 나머지 자투리들 슬슬 유통기한을 알린다 여기저기 짓물러간다 내 몸의 유통기한을 생각한다 호박을 자른다 보글보글 호박죽 익어간다 늙은 사내 하나 산골에 앉아 호박죽을 끓인다 문밖은 여전히 또 눈보라 처마 끝 풍경소리 나 여기 바람 부는 문밖 매달려 있다고 징징거린다
그대와 나 사이에 밥솥을 걸고 조금 기다린다. 지난여름을 울어 주던 뻐꾸기 소리를 생각하며 조금 더 기다린다, 기다림이 익기를. 생활은 양식과 같다고 밥솥에게 말하며 각자의 가슴에게 던지며 차가운 겨울엔 지난여름의 매미를 생각한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사랑을.
....................... 밥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뜸을 들이듯이 한동안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가슴이 추운 때에는 지난여름의 때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지난여름의 하늘을 울어주던 뻐꾸기 소리와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매미의 울음소리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열매나 씨가 여물기를 가을의 끝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여물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시인은 시 '사랑의 노래'에서 "사랑은 가슴속 스케치"이며 "사랑은/ 멀리 깨끗한 하늘이 되기를"이라고 썼다. 가슴속에 그린 첫 그림이 사랑이요, 만월(滿月)처럼 멀리 깨끗하게 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또한 사랑은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밥이다.(151221) -문태준<시인>
그대에게 가는 길은 내 절반을 쪼개는 일 시퍼런 도끼날이 숲을 죄다 흔들어도 하얗게 드러난 살결은 흰 꽃처럼 부시다
그대 곁에 남는 길은 불씨 한 점 살리는 일 바람이 외줄을 타는 곡예 같은 춤사위에 외마디 비명을 감춘 채 아낌없이 사위어 간다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은 기어이 재가 되는 일 화농으로 굳은 상처 달빛으로 닦다 보면 비로소 쌓이는 적멸, 솔씨 하나 묻는다
.................. 추위가 벌써부터 시퍼렇다. 겨울 채비에 바쁠 때 덜 마른 나무라도 많이 쪼개야 했다. 나무 때던 시절 얘기지만, 뒤란이며 마당귀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장작은 겨울 양식같이 든든했다. 나무들 속살이며 무늬도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절 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 장작은 불이요 꽃이다. 보고 있으면 모닥불 추억처럼 온몸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그대에게 가는 길'과 '그대 곁에 남는 길'과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이 장작불로 다 모이는가. '절반을 쪼개'고 '불씨 한 점'을 살려내서 '기어이 재'가 되는 길. 그런 전소(全燒)의 깨끗한 사랑도 있지만 장작은 군고구마의 구수한 추억도 주었다. 찬바람 드셀수록 장작불 함께 쬐던 벗들이며 군고구마 같은 마음들이 그립다.(131129) - 정수자<시조시인>
그 나무를 오늘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내가 삭정이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이십 년 후에 내가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한쪽이 베어져 나간 나무 앞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덩굴손이 자라고 있는 것인지요 내가 아니면서 나의 일부인, 나의 의지와는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자라나 나를 온통 휘감았던 덩굴손에게 낫을 대던 날, 그해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을 용서한 것도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덩굴자락에 휘감긴 한쪽 가지를 쳐내고도 살아있는 저 나무를 보세요 무엇이든 쳐내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그해 여름, 그러나 이렇게 걸음을 멈추는 것은 잘려나간 가지가 아파오기 때문일까요 사라진 가지에 순간 꽃이 피어나기 때문일까요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본다 벌들이 날아든 흔적은 없고 햇살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길이 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준 자리에 뛰어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리라 화엄(華嚴)이리라
................ 맑은 낯을 한 꽃이 있다. 생명들의 기운이 점차 쇠락해지는 늦가을에 꽃의 얼굴을 본다.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아 아주 고요한 내면으로 꽃은 있다. 자기를 잘 제어하면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넉넉하다고 느끼면서 꽃은 있다. 호수의 수면과도 같은 꽃의 조용하고 잠잠한 내부로 시인이 들어간다.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이 이끌려 이동한다는 뜻이다. 이끌려 눈길을 주고받고, 내심(內心)을 나눈다는 뜻이다.
홀로 지내느라 누군가를 수용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놀람이 없지 않았겠지만 꽃은 시인에게 곁을 허락한다. 그리고 다시 애초의 평온하고 깨끗하고 수수한 낯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귐이라면 상스럽지 않다. 이 꽃과 같은 영혼의 맑음과는 사귀고 싶다. - 문태준<시인>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대 집에 죽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고 냉기 가득한 그대 부엌 큰솥을 꺼내 국을 끓이세요. 어디선가 지쳐 돌아올 아이들에게 언제나 꽃이 피어 있는 따뜻한 국이 끓는 그대 집 문을 열어주세요. 문득 지나다 들르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당신 사랑으로 끓인 국 한 그릇 떠주세요. 그리고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목숨 바쳐 사랑하세요.
................. 고현혜 시인은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살면서 영어와 한국어로 시를 쓴다. 그는 시 '전업주부 시인'에서 "이제 시 쓰는 것보다/ 밥하는 게 더 쉬워요// 서점에서 서성이는 것보다/ 마켓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더 길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 펴낸 그녀의 시집을 보니 모국어로 쓴 시편들이 높고 따뜻하고 특별하게 섬세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랑이 넘치는 집을 꿈꾼다. 화초가 싱싱하게 되살아나고, 부엌에는 온기가 가득한 그런 집을 꿈꾼다. 가족에게 따뜻한 국을 끓여 차려주는 사랑의 행위는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진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목숨 바쳐 사랑하세요."라고 쓴 시구(詩句)를 읽는 순간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라고 짧게 쓴 막스 자코브의 시 '지평선'이 떠올랐다. 때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살기도 한다.(150824) -문태준<시인>
어디로 흘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네 모든 바람이 저 숲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믿을 건 아무것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네.
바닥에 맨발로 서 있던 날도 많았지 독수리가 허공을 빙빙 도는 빈들에서 내 마음 움푹 패도록 그대를 생각하네.
.............. 낙수에 하염없이 취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에 나른히 빠진 채 비나 바라보던 시절, 시골집의 낙수는 지음(知音) 같았다. 초가든 기와든 지붕을 아는 낙수는 비의 굵기에 따라 리듬을 달리 한다. 그 중에도 처마 끝을 한참씩 잡고 있다 마침내 떨어지는 투신들! 투명한 망울 속에는 더 아슬하니 영롱한 풍경이 맺히다 지곤 했다. 우두커니 마루에서 낙수로 먼 편지를 적기도 했다.
'어디로 흘러야 할지'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지는 즈음이다. '모든 바람이' 가라는 숲도 믿을 수가 없다니 장마 같은 막막함에 갇혔던가. 닿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인지 '독수리가 허공을/ 빙빙 도는 빈들에서'도 발을 떼지 못 하니 속울음도 꽤나 우묵하겠다. 그렇게 '움푹 패도록/ 그대를 생각'한 게 언제인지, 낙수 잘 듣는 옛 처마 밑에 들고 싶은 때다. 그저 하염없이 낙수나 봐도 좋으려니. - 정수자<시조시인>
돌부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주 넘어졌다 너무 멀리 내다보고 걸으면 안돼 그리고 너무 빨리 내달려서도 안돼 나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멀리 내다보지도 않으면서 너무 빨리 달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 나의 발이 내려앉고 나의 발이 평발임을 알게 되었을 때 오래 걸을 수 없기에 빨리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오래 걸을 수도 빨리 달릴 수도 없는 나는 느리게 느리게 이곳에 당도했던 것이다 이미 꽃이 떨어져버린 나무 아래서 누군가 열매를 거두어 간 텅 빈 들판 앞에서 이제 나는 내 앞을 빨리 지나가는 음악을 듣는다 느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운 것들은 느린 걸음을 가진 것인가 느리게 걸어온 까닭에 나는 빨리 지나가는 음악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긴 손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음악의 눈망울은 왜 또 그렇게 그렁그렁한가 아다지오와 칸타빌레가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강물의 악보가 얼마나 단순한가를 생각한다 강물의 음표들을 들어올리는 새들의 비상과 건반 위로 내려앉는 노을의 화음이 모두 다 평발임을 깊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