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볕 좋은 날 놀러가고 사람들 찾아오고 겨우 해는 드는가 밀린 빨래를 한다 금세 날이 꾸무럭거린다 내미는 해 노루 꽁지만하다 소한대한 추위 지나갔다지만 빨래줄에 널기가 무섭게 버쩍버썩 뼈를 곧추세운다 세상에 뼈 없는 것들 어디 있으랴 얼었다 녹았다 겨울 빨래는 말라간다 삶도 때로 그러하리 언젠가는 저 겨울 빨래처럼 뼈를 세우기도 풀리어 날리며 언 몸의 세상을 감싸주는 따뜻한 품안이 되기도 하리라 처마 끝 양철지붕 골마다 고드름이 반짝인다 지난 늦가을 잘 여물고 그 중 실하게 생긴 늙은 호박들 이 집 저 집 드리고 나머지 자투리들 슬슬 유통기한을 알린다 여기저기 짓물러간다 내 몸의 유통기한을 생각한다 호박을 자른다 보글보글 호박죽 익어간다 늙은 사내 하나 산골에 앉아 호박죽을 끓인다 문밖은 여전히 또 눈보라 처마 끝 풍경소리 나 여기 바람 부는 문밖 매달려 있다고 징징거린다
그대와 나 사이에 밥솥을 걸고 조금 기다린다. 지난여름을 울어 주던 뻐꾸기 소리를 생각하며 조금 더 기다린다, 기다림이 익기를. 생활은 양식과 같다고 밥솥에게 말하며 각자의 가슴에게 던지며 차가운 겨울엔 지난여름의 매미를 생각한다.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사랑을.
....................... 밥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뜸을 들이듯이 한동안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가슴이 추운 때에는 지난여름의 때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지난여름의 하늘을 울어주던 뻐꾸기 소리와 소낙비처럼 쏟아지던 매미의 울음소리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열매나 씨가 여물기를 가을의 끝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여물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사랑도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시인은 시 '사랑의 노래'에서 "사랑은 가슴속 스케치"이며 "사랑은/ 멀리 깨끗한 하늘이 되기를"이라고 썼다. 가슴속에 그린 첫 그림이 사랑이요, 만월(滿月)처럼 멀리 깨끗하게 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또한 사랑은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밥이다.(151221) -문태준<시인>
그대에게 가는 길은 내 절반을 쪼개는 일 시퍼런 도끼날이 숲을 죄다 흔들어도 하얗게 드러난 살결은 흰 꽃처럼 부시다
그대 곁에 남는 길은 불씨 한 점 살리는 일 바람이 외줄을 타는 곡예 같은 춤사위에 외마디 비명을 감춘 채 아낌없이 사위어 간다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은 기어이 재가 되는 일 화농으로 굳은 상처 달빛으로 닦다 보면 비로소 쌓이는 적멸, 솔씨 하나 묻는다
.................. 추위가 벌써부터 시퍼렇다. 겨울 채비에 바쁠 때 덜 마른 나무라도 많이 쪼개야 했다. 나무 때던 시절 얘기지만, 뒤란이며 마당귀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장작은 겨울 양식같이 든든했다. 나무들 속살이며 무늬도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절 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 장작은 불이요 꽃이다. 보고 있으면 모닥불 추억처럼 온몸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그대에게 가는 길'과 '그대 곁에 남는 길'과 '그대 안에 이르는 길'이 장작불로 다 모이는가. '절반을 쪼개'고 '불씨 한 점'을 살려내서 '기어이 재'가 되는 길. 그런 전소(全燒)의 깨끗한 사랑도 있지만 장작은 군고구마의 구수한 추억도 주었다. 찬바람 드셀수록 장작불 함께 쬐던 벗들이며 군고구마 같은 마음들이 그립다.(131129) - 정수자<시조시인>
그 나무를 오늘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내가 삭정이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이십 년 후에 내가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한쪽이 베어져 나간 나무 앞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덩굴손이 자라고 있는 것인지요 내가 아니면서 나의 일부인, 나의 의지와는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자라나 나를 온통 휘감았던 덩굴손에게 낫을 대던 날, 그해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을 용서한 것도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덩굴자락에 휘감긴 한쪽 가지를 쳐내고도 살아있는 저 나무를 보세요 무엇이든 쳐내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그해 여름, 그러나 이렇게 걸음을 멈추는 것은 잘려나간 가지가 아파오기 때문일까요 사라진 가지에 순간 꽃이 피어나기 때문일까요
늦가을 꽃의 마알간 낯바닥을 한참을 쪼그려 앉아 본다 벌들이 날아든 흔적은 없고 햇살과 바람만이 드나든 흔적이 숭숭하다 퇴적된 가루 분분한 홀몸에 눈길이 가고 나도 혼자라는 생각이 정수리에 꼼지락대는 순간, 꽃 속 꽃이 내어준 자리에 뛰어들었다. 혼자 고요한 꽃은, 누군가 뛰어든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꽃은 순간 화들짝 놀랐지만 나도 저도 이내 맑아졌다 곁이리라 화엄(華嚴)이리라
................ 맑은 낯을 한 꽃이 있다. 생명들의 기운이 점차 쇠락해지는 늦가을에 꽃의 얼굴을 본다. 그 어떤 것도 탐하지 않아 아주 고요한 내면으로 꽃은 있다. 자기를 잘 제어하면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넉넉하다고 느끼면서 꽃은 있다. 호수의 수면과도 같은 꽃의 조용하고 잠잠한 내부로 시인이 들어간다.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이 이끌려 이동한다는 뜻이다. 이끌려 눈길을 주고받고, 내심(內心)을 나눈다는 뜻이다.
홀로 지내느라 누군가를 수용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놀람이 없지 않았겠지만 꽃은 시인에게 곁을 허락한다. 그리고 다시 애초의 평온하고 깨끗하고 수수한 낯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귐이라면 상스럽지 않다. 이 꽃과 같은 영혼의 맑음과는 사귀고 싶다. - 문태준<시인>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요. 그대 집에 죽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고 냉기 가득한 그대 부엌 큰솥을 꺼내 국을 끓이세요. 어디선가 지쳐 돌아올 아이들에게 언제나 꽃이 피어 있는 따뜻한 국이 끓는 그대 집 문을 열어주세요. 문득 지나다 들르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당신 사랑으로 끓인 국 한 그릇 떠주세요. 그리고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목숨 바쳐 사랑하세요.
................. 고현혜 시인은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살면서 영어와 한국어로 시를 쓴다. 그는 시 '전업주부 시인'에서 "이제 시 쓰는 것보다/ 밥하는 게 더 쉬워요// 서점에서 서성이는 것보다/ 마켓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더 길고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 펴낸 그녀의 시집을 보니 모국어로 쓴 시편들이 높고 따뜻하고 특별하게 섬세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랑이 넘치는 집을 꿈꾼다. 화초가 싱싱하게 되살아나고, 부엌에는 온기가 가득한 그런 집을 꿈꾼다. 가족에게 따뜻한 국을 끓여 차려주는 사랑의 행위는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진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목숨 바쳐 사랑하세요."라고 쓴 시구(詩句)를 읽는 순간 "그녀의 하얀 팔이/ 내 지평선의 전부였다"라고 짧게 쓴 막스 자코브의 시 '지평선'이 떠올랐다. 때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살기도 한다.(150824) -문태준<시인>
어디로 흘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네 모든 바람이 저 숲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믿을 건 아무것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네.
바닥에 맨발로 서 있던 날도 많았지 독수리가 허공을 빙빙 도는 빈들에서 내 마음 움푹 패도록 그대를 생각하네.
.............. 낙수에 하염없이 취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에 나른히 빠진 채 비나 바라보던 시절, 시골집의 낙수는 지음(知音) 같았다. 초가든 기와든 지붕을 아는 낙수는 비의 굵기에 따라 리듬을 달리 한다. 그 중에도 처마 끝을 한참씩 잡고 있다 마침내 떨어지는 투신들! 투명한 망울 속에는 더 아슬하니 영롱한 풍경이 맺히다 지곤 했다. 우두커니 마루에서 낙수로 먼 편지를 적기도 했다.
'어디로 흘러야 할지'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지는 즈음이다. '모든 바람이' 가라는 숲도 믿을 수가 없다니 장마 같은 막막함에 갇혔던가. 닿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인지 '독수리가 허공을/ 빙빙 도는 빈들에서'도 발을 떼지 못 하니 속울음도 꽤나 우묵하겠다. 그렇게 '움푹 패도록/ 그대를 생각'한 게 언제인지, 낙수 잘 듣는 옛 처마 밑에 들고 싶은 때다. 그저 하염없이 낙수나 봐도 좋으려니. - 정수자<시조시인>
돌부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주 넘어졌다 너무 멀리 내다보고 걸으면 안돼 그리고 너무 빨리 내달려서도 안돼 나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멀리 내다보지도 않으면서 너무 빨리 달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 나의 발이 내려앉고 나의 발이 평발임을 알게 되었을 때 오래 걸을 수 없기에 빨리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오래 걸을 수도 빨리 달릴 수도 없는 나는 느리게 느리게 이곳에 당도했던 것이다 이미 꽃이 떨어져버린 나무 아래서 누군가 열매를 거두어 간 텅 빈 들판 앞에서 이제 나는 내 앞을 빨리 지나가는 음악을 듣는다 느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운 것들은 느린 걸음을 가진 것인가 느리게 걸어온 까닭에 나는 빨리 지나가는 음악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긴 손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음악의 눈망울은 왜 또 그렇게 그렁그렁한가 아다지오와 칸타빌레가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강물의 악보가 얼마나 단순한가를 생각한다 강물의 음표들을 들어올리는 새들의 비상과 건반 위로 내려앉는 노을의 화음이 모두 다 평발임을 깊이 생각한다
여남은 살 넘어가던 옥포면 다리목 발 빠른 트럭에게 길 먼저 내어주고 넉넉히 안으로 휘어진 논둑길 걷는다
길섶은 서툰데 마중 나온 유년 봄빛 자운영 꽃대 위로 꽃비 연신 내려앉고 명치 끝 툭, 치고 가는 굵은 바람 한 줄기
이팝꽃 휜 가지가 옛 기억 줄을 내려 아슴아슴 내려간다, 고치 같은 유년의 뜰 이적지 색 바래지 않은 종이배 몇 척 같은
...................... 이팝꽃이 한창이다. 가로수로 가꾸는 도시도 있어 벚꽃 후의 거리가 한참 동안 또 환하다. 이팝꽃을 보고 있으면 왠지 흐뭇하다. 흰쌀밥을 그것도 고봉으로 받은 것처럼 넉넉해진다. 조팝꽃은 잘고 푸석한 조밥 느낌의 안쓰러움이 있는데, 이팝꽃은 신수 훤히 핀 사람처럼 헌걸차게 듬직하다.
'마중 나온 유년 봄빛'도 그래서 더 '아슴아슴' 눈부셨을 거다. 꽃도 고봉이라 '휜 가지'에 기대 돌아보는 '유년의 뜰'도 하얗게 빛났을 거다. 쌀밥 추억은 옛이야기가 됐지만, 기름기 자르르한 햅쌀밥의 보얗고 보드라운 식감은 여전히 일품이다. 그러니 이팝꽃 아래 서면 '이적지 색 바래지 않은 종이배 몇 척 같은' 시간도 얻나 보다. 이팝꽃길로 걸어간 봄날, 어느 섶을 또 아슴아슴 피우려나. -정수자<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