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落書)
            김종제
 



담벼락 같은 세상에 
누가 아무렇게나 갈겨 쓴 
글 같은 것들 
너를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제멋대로 그려 놓은 
기호나 부호 같은 것들 
아무도 해석할 수 없게 써 놓은 
암호 같은 것들 
눈 앞에 
저렇게 가득히 서 있는 것들 
나무 빼곡하게 들어선 숲 같은 것들 
물 가득 흐르는 강 같은 것들 
그 위로 날아가는 새들 
그 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 
지상에 누가 함부로 풀어 놓은 것들 
예고도 없이 흩날리는 눈발 같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뜨고 지는 일월(日月)이나 
변함없는 천지(天地) 같은 것들 
지울 수 없게 
아로새긴 *연비(聯臂) 같은 것들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들 
네 다리로 달려가는 것들 
대지를 돌아다니며 낙서하는 것들 
동굴 같은 세상에 
너를 갖고 싶다고 원한다는 
말 대신에 
손으로 발로 마음으로 
그려 놓은 무늬같은 것들 


*연비(聯臂) - 사랑하는 남녀끼리 몸의 은밀한 부분에 하는 문신  

 

 

 

 

 

'(詩)읊어 보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25]만찬(晩餐) / 함민복  (0) 2023.04.11
[3124]서시(序詩) / 이성복  (0) 2023.03.31
[3122]기차표를 끊으며 / 이정록  (0) 2023.03.11
[3121]한담 (閑談) / 이응관  (1) 2023.03.03
[3120]묵집에서 / 장석남  (0) 2023.02.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