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지오 칸타빌레 

                            나호열

 

 

 



돌부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주 넘어졌다
너무 멀리 내다보고 걸으면 안돼
그리고 너무 빨리 내달려서도 안돼
나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멀리 내다보지도 않으면서
너무 빨리 달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 나의 발이 내려앉고
나의 발이 평발임을 알게 되었을 때
오래 걸을 수 없기에 
빨리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오래 걸을 수도 
빨리 달릴 수도 없는 나는 느리게
느리게 이곳에 당도했던 것이다
이미 꽃이 떨어져버린 나무 아래서
누군가 열매를 거두어 간 텅 빈 들판 앞에서
이제 나는 내 앞을 빨리 지나가는 음악을 듣는다
느리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운 것들은 느린 걸음을 가진 것인가
느리게 걸어온 까닭에
나는 빨리 지나가는 음악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긴 손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음악의 눈망울은
왜 또 그렇게 그렁그렁한가
아다지오와 칸타빌레가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강물의 악보가 얼마나 단순한가를 생각한다 
강물의 음표들을 들어올리는 새들의 비상과
건반 위로 내려앉는 노을의 화음이
모두 다 평발임을 깊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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