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도에는 '상사화 축제' 가 한창이다.
특히, 백제불교의 본산지로서 호남의 유서깊은 천년고찰이며 우리나라 최대의 석산 군락지인 영광 불갑사 주변은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활짝 만개한 석산물결로 붉게 사태져 마치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해마다 8~9월 이맘때면, 불갑사뿐 아니라 함평의 용천사, 전북 순창의 강천사도 마찬가지로 상사화 축제로 뜨겁게 달아 오른다.
또한 선운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이르는 선운사 일대와 마애불이 있는 도솔암까지의 골짜기가 온통 붉은 꽃물결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어 연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상사화 축제인데 정작 주인공은 상사화가 아닌 석산(꽃무릇)인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석산은 번식력이 강해 군락지가 많지만 상사화는 번식력이 약해 군락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역시 강해야만 살아남는 것일까.
근래에 들어서는 석산을 상사화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향이 많아, 원래의 상사화는 석산에 밀려 오히려 제 이름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석산이 상사화와 비슷한 생육패턴을 가졌으므로 같은 종으로 취급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석산이라는 공식 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꽃의 이름과 혼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일부 사람들이 두 꽃을 혼동하는 이유는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는 것에 가장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제 이름을 찾아 불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단 두 꽃을 정확히 구분짓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위 꽃이 상사화이다.
↑위 꽃은 석산화이다.
두 꽃은 모양과 색깔로도 쉽게 구분이 되는 확연히 다른 꽃이다.
상사화는 연한 홍자색이고 또다른 상사화로 불리우는 석산은(중국 원예종에는 흰색꽃이 피는 품종도 있지만) 붉은색이다.
먼저 상사화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상사화(相思花.Magic Lily.Hardy cluster.Lycoris squamigera)는 수선화과의 다년초로 중국이 원산이며 개화기는 7~8월이며
키는 60Cm정도이다.
또 다른 상사화로 많이 알려져 있는 석산보다 개화시기가 빠르다.
영어로는 '매직 릴리(Magic lily)' 라 하며,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한다하여
상사화(相思花)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에 빗댄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개난초', '녹총' 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래 이미지는 상사화의 어린 새싹이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녹기 시작하는 이른 봄에 파릇파릇한 잎이 뭉치듯 올라오고 4월 즈음이면 빽빽히 자란다.
6∼7월이면 잎이 시들고, 흙과 섞이고 녹아버려 아예 흔적조차도 없이 사라진다.
이 후 장마철인 7월경에 길고 곧은 꽃대만 솟아 올라오고 장마가 끝나는 8월경이면 나리꽃을 닮은 연한 홍자색 꽃이 산형으로 4∼8개 정도가 달려 핀다.
화피는 밑 부분이 통 모양이고 6개로 갈라져서 비스듬히 퍼지며 갈라진 조각은 길이 5∼7cm의 거꾸로 세운 바소꼴이고
뒤로 약간 젖혀져 있다.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흔히 심는 상사화속은 모두 수선화과이다.
예전엔 백합과로 분류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백양꽃, 석산, 상사화, 개상사화, 흰상사화 등 5개종이 중부 이남에 많이 자생하고 있고, 종류에 따라 피는 시기는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7~10월까지가 개화기이다.
이 수선화속(Amaryllidaceae)에는 대략 13~20여종이 속해 있으며 한국에는 8종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상사화: Lycoris squamigera Maxim
붉노랑상사화: Lycoris flavescens M.Y.Kim & S.T.Lee
붉노랑상사화: Lycoris chinensis var. sinuolata K.H.Tae & S.C.Ko
흰상사화: Lycoris albiflora Koidz
위도상사화: Lycoris uydoensis M.Y.Kim
제주상사화: Lycoris chejuensis K.H.Tae & S.C.Ko
백양꽃: Lycoris sanguinea var. koreana (Nakai) T.Koyama
석산: Lycoris radiata (L`Herit) Herb
사모하다 사모하다
길어진 모가지로
먼데 하늘 쳐다보다
지쳐버린 슬픈 운명의 꽃
상사화..
풀잎 지고 꽃잎 지니 눈물꽃 상사화라네
붉게 젖은 눈망울에 노랗게 타버린 가슴이여
이룰 수 없는 사랑 애처러움에 흐느낀다..
시인들은 상사화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혼자만의 사랑.. 상사에 대한 얘기를 하다보니 시인 예이츠의 사랑이 떠오른다.
모드곤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 그녀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아름다운 모드곤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 예이츠는 청춘을 다 바쳐 열정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한다.
잔서가 기승을 부리는 늦여름,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연분홍 아리따운 모습으로 피어 더위에 지친 심신을 잠시나마 위로해 주는
꽃이 있으니 이름하여 상사화..
잎도 없이 잡초사이로 그저 꽃대만 길게 자라 곧게 세운 가녀린 자태로 행여 그리운 님이 오실까 수줍듯 분홍빛 발그레한 모습으로
목을 길게 뺀 상사화..
일년 중 단 하루 만남이 이루어지는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의 운명보다 더 모질어 천년을 살아도 단 하루도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처절히 어긋난 사랑이다.
옛부터 섬이나 해안 지방에서는 이꽃을 과부꽃이라하여 집에서 기르면 과부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심지 않는다고 한다.
- 상사화 전설 -
옛날 중국에 딸만 있는 약초캐는 사람이 조선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약초를 캐기 위해 조선에 당도하여
전국을 헤매다 결국 죽게 되어 딸에게 후대에라도 불로초를 구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다.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아가씨는, 꽃샘바람이 차가운 어느 이른 봄, 불로초를 찾아나서게 되고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아담한 산사에 이르러
그곳에서 수도에 정념하던 젊은 스님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 날 이 후, 아가씨는 스님을 보러 매일 산사를 찾았다.
먼발치에서라도 스님의 모습을 보기만해도 아가씨는 기뻤다.
어느 날 아가씨는 용기를 내어 스님에게 사랑을 고백을 했다.
하지만 불도에 정념하고 있던 스님에게 거절당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터. 불자의 몸으로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가씨의 고백을 냉정하게 거절한 후 스님은 수도를 하러 토굴로 들어가 버렸고, 아버지의 유언도 이루지 못하고 사랑까지 거절 당한
아가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나머지 그자리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죽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수도를 마친 스님은 토굴밖으로 나와서야 아가씨에 대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고, 그제서야 자신에게 수줍게 고백하던
홍조띤 아가씨의 아리따운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그리움과 죄책감에급기야 병을 얻어 죽었다.
그 후로 스님이 수도하던 토굴앞에는 젊은 스님처럼 싱그럽고 늠늠하게 잎이 올라오고, 무성하던 잎이 시들고 나면 긴 꽃대가 올라와
아가씨처럼 수줍듯 발그레한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아름다운 처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엾이 여겨 상사화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별, 이룰 수 없는 사랑, 육체의 쾌락이다.
이번에는 석산에 대해 알아보자.
석산은 수선화과의 다년초로 중국이 원산이며 개화기는 9~10월이고 키는 30~50cm정도이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하여 관상용으로 들여왔다가 남부지방의 사찰 등지에서 자라게 된 꽃이다.
상사화는 잎이 진 후에 꽃이 피지만, 이와 반대로 석산은 꽃이 진 다음 잎이 나온다.
석산(石蒜)은 돌틈에서 나오는 마늘모양의 뿌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꽃이 무리지어 핀다하여 꽃무릇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가을가재무릇', '붉은상사화', '용조화', '산오독', '산두초', '야산',
'바퀴잎상사화', '지옥꽃', '중꽃', '중무릇' 등 많은 이름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는 '지상의 마지막 잎까지 말라 없어진 곳에서 화려한 영광의 꽃을 피운다' 하여 '피안화(彼岸花)' 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빨간 꽃잎 사이로 수술이 길게 나와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갈고리같이 생긴 붉은색의 꽃이다.
백로(白露)무렵부터 피기 시작해 9월 말이면 절정을 이룬다.
석산을 사찰 인근에 많은 심는 이유가 있는데, 그 쓰임새가 요긴하기 때문이다.
석산의 뿌리에 방부 효과가 있어 뿌리에서 낸 즙을 물감에 풀어 탱화를 그리거나 단청을 하면 좀이 슬지도 않고
색이 바래지도 않는다고 한다.
또 전분을 채취하여 종이를 서로 붙이거나 책을 엮는데 필요한 강력본드로 이용하였는데, 리코닌성분의 살균력 때문에
이 풀로 붙인 한지는 수천년이 지나도록 좀이 슬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인쇄문화는 불경출판이 그 효시였으니, 불경을 인쇄, 제책하던 절에서 석산을 많이 심었던 것이다.
이 꽃은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며, 예로부터 꽃과 잎이 같이 자라지 않는다 해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 석산 전설 -
옛날 어느 깊은 산속의 괴괴함만이 감도는 아담한 산사에, 속세를 떠나 오직 불도 닦는데만 몰두하던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유난히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던 어느 여름날, 고요한 산사에 속세의 한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비가 너무 쏟아져 산아래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고 사찰 마당의 나무 아래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그 여인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때부터 스님의 혼자만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날이 갈수록 수행도 하지 않고 식음도 전폐한채, 오직 그 여인에 대한 연모에 시름시름 가슴앓이를 하던 스님은 급기야
석달 열흘만에 선혈을 토하며 쓰러졌고, 결국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함께 기거하던 노스님이 이를 불쌍히 여겨 양지쪽 언덕에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한포기의 풀이 자라났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긴 꽃줄기에서 선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이 바로 젊은 스님이 죽으며 흘린 피처럼 붉은 꽃 '석산' 이었다고 한다.
꽃말은 슬픈 생각이 듬, 슬펐던 기억, 괴로움, 당신 생각뿐.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나고 꽃은 7~8월 칠월 칠석 전후해서 피며
석산은 백로와 추분 사이인 9~10월에 꽃이 먼저 피고 잎은 꽃이 진뒤 10~11월에 나온다.
이처럼 두 꽃은 피는 시기와 꽃 모양, 색깔만 다를뿐, 두 꽃 모두 사찰 경내에 심어져 있다는 것과 모두 유독성 식물이고,
열매 또한 맺지 못하며 땅속 비늘 줄기는 약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알카로이드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해독, 가래 제거, 종기,
소아마비와 같이 마비로 인한 통증과 같은 중상에 처방한다는 등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절에 심는 꽃이나 나무는 대부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종류들인데, 상사화와 석산을 비롯하여 백당나무, 불두화, 수국 등이 그러하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들이 속세를 잊고 불도에 정념해야하는 스님들에게 걸맞는 꽃이기에 그런가 보다.
상대가 누구이건, 누군가를 사랑하며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은 고통이리라.
해바라기는 아폴론을 향한 그리움으로 언제나 태양만 바라본다.
능소화에는 임금을 향한 그리움으로 지쳐죽은 소화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달맞이 꽃은 달을 사랑하는 요정이 달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마다 달을 따라 홀로 외로이 꽃을 피운다.
모두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꽃들이다.
혼자만의 사랑은 언제나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일까.
그러나 사랑은 달콤한 고통, 희열의 고통이다.
마치 사랑의 숨바꼭질하는 연인처럼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상사화..
서로 영원히 만날수 없는 비련, 그래서 꽃말도 이룰 수 없는 사랑, 괴로움, 이별 등의 애절함으로 표현되었나 보다.
相思花
叢生靑葉 花前生
不緣相思 忽萎傾
莖逐慕情 如鶴首
落花三日 自悲貞
꽃 피기전에 잎이 무성하더니
인연 없는 상사인가 홀연 시들고
사모하는 정 학의 목같이 꽃대를 뻗다가
삼일만에 지는꽃 서글프기만 하구나.
요즘 한창인 꽃무릇, 그 환영같은 붉디 붉은 자태에 한번 매혹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