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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씨앗 - 이건 작지만 들어 있을 건 다 있어요.
02. 걱정 - 아빠가 출장을 가도 계속 남아 있는 거예요.
03. 인어공주 - 이건 아래랑 위랑 바뀌면 안 돼요.
04. 방귀 - 아빠가 제일 크고 그 다음이 나예요. 엄마가 제일 작아요.
05. 도장 - 여기 있는 글자는 읽기가 힘들어요.
06. 반상회 - 누가 너무 쉬 마려워서 엘리베이터에 쉬를 하면 사람들이 이걸 해요.
07. 어부바 - 엄마가 하면 동생이 안 보여요.
08. 시골 - 어른들이 어린이가 다 갈 때까지 보고 있어요.
09. 콩닥콩닥 - 내 양말에 빵구가 났는데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재요.
10. 손님 - 이 사람이 가고 나면 막 혼나요.
11. 새치기 - 이걸 하려면 아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12. 신호등 - 네모 안에 사람이 있어요.
13. 요술램프 - 이건 되게 작은데 여기 사는 주인은 되게 커요.
14. 세뱃돈 - 큰 건 엄마가 갖고 작은 건 내가 가져요.
15. 노래방 - 아빠가 일어나면 엄마가 책을 봐요.
16. 추억 - 사람들이 그 속에 많이 들어있어요.
17. 콧구멍 - 이건 딱 손가락만 해요.
18. 만세 - 엄마랑 목욕하면 이걸 꼭 해야 되요.
19. 정 - 이게 있으면 물건을 못 버려요.
20. 팔짱 - 우리 엄마가 기분 좋을 때 아빠한테 하는 거예요.
엄마가 무지 화나면 혼자서도 해요.
21. 풍선 - 어른들은 애들이 자꾸 해달라고 하면 머리 아프니까 싫어해요.
22. 탬버린 -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하고 어른들은 놀면서 이걸 해요.
23. 회전목마 - 엄마 앞에 오면 엄마가 막 손을 흔들어요.
24. 변신 - 엄마가 아빠랑 외출할 때 맨날 이걸 해요.
25. 광고 - 맨날 맛있다고 하고 맛없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26. 이름 - 엄마는 자기 걸 안 쓰고 내 걸 많이 써요.
27. 우정 - 차에 친구가 안 타면 안 탔다고 소리치는 거예요.
28. 낙서 - 내가 주인공이 되면 창피해요.
29. 산신령 - 이 사람은 물에 들어갔다 나와도 절대 옷이 안 젖어요.
30. 출동 - 이걸 할 땐 진짜 가까워도 차 타고 가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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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설탕을 넣어라. 누구나 그렇듯 중고등학교 매점에서 먹었던 라면을 그리워할 것이다. 또 학교때 매점 아주머니가 라면 끓이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물어본적이 있는데 그 진상은 라면 1개당 설탕 반스푼정도를 넣는 것이다. 이 맛은 라면 미식가라면 뭔가 확실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험해 보라. 라면에 후춧가루 전에 군 생활하는데 라면이 생겨서 취사장엘 갔다. 물론 취사장에서 불을 켜면 들키니깐 불은 끄고 라면을 뜯고 물도 대충 붓고 더듬더듬 근데 결정적으로 고춧가루를 넣는다는 게 그만 후추가루를 넣고 말았다! 그래서 라면을 끊이는데~앗! 실수로 넣은 후추의 맛이!!! 이럴 수가!! 상황도 상황이고 하니 당연히 맛있겠지 하실 분들(모르는 소리) 지금도 제대한지가 1년이 훨씬 넘었지만 야간에 가끔 이런 식으로 끊여 먹으면 추억도 새록새록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후춧가루가 왕창 들어간 라면! 한번 해보자. 라면 순하게 먹기 대단한 것은 아니고 집에 두부가 조금 있으면 꺼내서 얇게 잘라 라면 끓일 때 넣으면 라면이 순해진다. 두부를 너무 살짝 익히면 두부의 스리슬쩍 넘어가는 부드러운 맛을 못 느끼니 두부는 약간 오래 익힐 것. 라면과 깻잎의 조화!! 참치김밥의 경우 참치의 기름기를 빼기도 하지만 깻잎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라면을 끓이고 막판에 깻잎을 넣어주면 깻잎 특유의 고소한 향이 라면에 푹 베구 맛도 일품이다. 한봉지당 깻잎은 5~7매가 적당. 김을 넣어도 좋다. 바싹 마른 김을 다 끓인 후 뽀사넣으면 김특유의 향이 라면 맛을 돋궈준다. 라면을 두배 맛있게 라면에 식초를 아주 약간 넣는 것이다. 라면에 식초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라면에 감칠맛을 더할뿐더러 끝맛을 깔끔하게 만들어주고 결정적으로 라면의 독성을 제거해준다. 라면하나에 식초 한스픈 정도로 잡고 한번 실험해 보라. 스프를 넣을 때에 거품이 눈에 뜨이게 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품은 곧 독성물질을 뜻하는 것이니깐. 프로는 계란을 이렇게 푼다. 라면을 보다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계란을 넣는데 계란을 넣는 타이밍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보겠다. 계란은 미리 풀어서 그것에 깨소금과 참기름. 그리고 약간의 후추를 뿌려두면 준비끝~ 그 상태에서 라면이 거의 90프로 끓었을 시에 넣어주면 된다. 너무 일찍 넣으면 딱딱해지고 너무 나중에 넣으면 휙휙 겉돈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리고 뿌릴 때도 그냥 휙~~넣지 말고 가장자리서부터 한바퀴 돌리듯이 넣으면 훨씬 골고루 퍼지게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일반 분식점에서도 널리 이용되는 방법이다. 하나더 미적 효과를 중시하는 사람은 흰자는 위의 방법으로 풀고 노른자는 라면이 다 끓은 후에 불을 약하게 하고 면 위에 깨지지 않도록 살짝 올린 후 잠시 익힌다. 라면봉지와 같은 그림이 된다. 유난히 느끼한 것이 싫다면 면과 국물을 따로 끓이기도 싫고 라면의 기름기는 싫고 그렇다면 마늘 빻아놓은 것을 넣어보라. 우리나라 음식에 마늘 안 들어간 음식이 없거니와 실제 넣으면 뒷맛이 깔끔해지고 라면에서 이런 맛도 나오는구나.. 할 것이다. 마늘 좋아하는 사람은 필수 치즈를 넣어라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라면 완성직전 뜸들일 시간에 피자를 넣어보라. 피자를 넣고 뚜껑을 닫고 경건한 마음으로 식탁에 가져온 후 먹는다. 이때 라면위에 얻쳐진 치즈를 휘젓게 된다면 상상하지 못할 상황이 되니 금물, 치즈 얹힌 라면을 후루룩 먹으면 끝. 그냥 치즈대신 피자치즈를 잘게 잘라서 뿌려도 된다. 아 그릇에 옮겨서 뿌려도 된다. 본인은 항상 냄비 채로 먹기땜시... 각종 국을 이용하라 느지막이 일어났다면 지금 해는 중천에... 집에는 아무도 없고 밥도 없다. 혹시 집에서 살림(식순이?)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한 그릇도 안 되는 국이 냄비에 남아있다면 난감하게될 것이다. 먹자니 같이 먹을거리가 없고 안 먹자니 남기기도 모하고.. 이럴 때 과감히 라면에 응용하라. 라면을 위해 고기국물을 우려내는 것은 무모한 짓이지만 남아 있는 소고기무국에 라면을 끓이는 것은 결코 무모한 짓이 아니다. 술한잔 거하게 했으면 콩나물국을 찾아보라. 콩나물라면이 해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속이 허하면 어제꺼 먹다 남은 백숙 그릇을 보라. 그 국물로 라면을 끓이면 백숙보신라면 (?)쯤이 될 것이다. 비유가 허락한다면 모든 국이 가능하다. 이때는 국에 기본 양념이 되어있기 때문에 스프는 조금만 넣을 것. 스프가 원래 국의 맛을 버린다 싶으면 소금 혹은 간장으로 간을 해라. 비린내나는 라면에는 이렇게.. 역시나 보기 좋게 만든 라면이라도 비린내가 난다면 다 먹기 힘들 것이다. 이때는 커피를 조금만 넣어보라 실제 족발집에서도 돼지의 비린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커피를 넣는다. 비린내를 없애는 첨가물은 마늘, 생강, 심지어 레몬이나, 술을 넣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 식초는 저리 가라 - 타바스코소스 라면이라고 하면 모두 느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느끼하다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방법은 있다. 하나는 여러분들도 많이 알고 있는 식초! 그리고 또하나는 바로 타바스코 소스! 식초야 물론이고 타바스코 소스 역시 약간 신맛을 가지고 있다. 식초는 알고 계신 것처럼 티스푼으로 하나 정도, 타바스코 소스는 집에 돈이 많다면 많이 넣어도 괜찮지만 적당히 넣자. 피자헛 같은 곳의 타바스코소스는 정작 할인매장에서도 구입하려하면 비싸지만 잘 뒤지면 싼 종류의 타바스코 소스를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길 바란다. 진짜 깔끔한 라면을 먹고싶으세요? 국수 끓일 때 넣는 멸치다신물 아는가? 그걸 한 냄비 끓여서 PET병에다 넣고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배가 엄청 서럽다싶으면 냅다 꺼내서 라면 넣을 물 대신에 사용해 보라. 평소 라면의 느끼한 맛에 정을 못 붙이던 분들도 뻑 갈 것이다. 그냥 맹물라면은 쨉도 안 된다. 응용편으로 냉라면 계열의 라면도 만들 수 잇다. 멸치다신물이 너무 대단하다 생각되면 다시마 물도 괜찮다. 계란은 국물 맛을 버린다. 흔히들 라면엔 계란을 풀어서 끊인다. 라면에 계란을 넣지 않고 끓이는 이유는 둘중 하나. 첫째는 냉장고에 계란이 없어서 일 테고 둘째는 라면의 참맛을 알기 때문이다. 라면에 계란이 들어가면 맛을 버린다. 하지만 영양학 상으로는 라면 하나 만으론 영양이 부족하다. 국물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해도 500Kcal를 넘기기가 힘들다. 이래 가지고선 한끼 식사론 너무 부실하다. 하지만 라면 맛도 살리고 계란을 넣어 영양가도 보충하는 방법이 있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을 때 계란을 깨쳐서 넣긴 넣되 절대 젓가락으로 젓지 않는다.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면 환상적인 라면 본래의 맛과 함 께 얇게 펴진... 그러면서 국물도 혼탁 시키지 않는 계란도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달걀을 풀어서 넣어야 하는 음식으로 대표적인 것은 만두국이나, 계란국이다. 이 때 보통 파와 함께 완전히 풀어서 넣는 것으로 심심한 국물의 맛을 없애고 담백한 맛을 내기 위한 것이다. 라면을 보다 담백하길 원 한다면 계란을 푸는 것도 가능하다. 우유로 라면을 끊인다면.. 진짜 우유라면을 끓인다면 물 대신에 우유를 넣고 스프 대신 소금(혹은 간장정도)으로 간을 하는 것이다. 허나 이 방법은 너무 싸이코틱 라면으로 가는 얘기고. 우유를 전부 넣을 경우 라면은 사리곰탕이나 진국설렁탕등의 면을 사용한다. 물이 쉬 끓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맛은 매우 담백하고 진국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라면의 비릿한 맛을 없애기 위해 끓인 후 우유를 섞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라면의 강하고 매운맛을 없애고 부드럽게 만들어주기에 노약자, 어린이들에게 좋다 라면을 끓일 때물을 조금만 넣어 끓이고 마지막에 우유를 약 50~100ml 정도를 넣어주면 좀더 담백한 라면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우유대신 두유를 넣는 사례도 있으니 참고하길. 단 라면에 따라 피보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 라면! 쌈장을 넣구 끓여보라!! 라면에 쌈장 넣구 끓여 보았나? 우선 해물라면(흰색봉지)이 사용되고 다른 라면의 경우 맛을 책임질 수 없음을 유의하라. 우선 물을 팔팔 끓인다. 그리고 쌈장과 간장약간. 고추가루 듬뿍 거기다 스프까지 넣고 5분 정도 더 끓인다. 그 다음에 라면을 넣는다. 결과는 라면면발 하나하나에 쌈장특유의 구수한 맛이 스며들어가서 국물이 죽인다. 단 쌈장은 슈퍼 파는 것을 바로 투입하면 안되고 집에서 약간 손봐야 한다. (참기름과 마늘, 야채 약간등) 면발에 힘주기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은 시간이 흘러도 면발이 퍼지지 않고 꼬들꼬들하다. 그 비법을 공개한다. 사실은 이 방법은 잡지나 TV에서도 나온 방법으로 라면을 적당히 설익을 때까지 끓이다가 뚜껑을 덮고 불을 끈 채로 약 1분간 뜸을 들이는 것이다. 자주 먹는 라면이 면발이 확실히 다르다는 거 느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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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이 오리온 투니스고 오른쪽 사진이 롯데 치토스입니다. 역시 제품 용량은 40~42g으로 비슷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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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만에 카드 아홉 벌이 섞여진 순서를 기억해내 미국 메모리 그랜드마스터 대회 1회 챔피언이 된 스콧 핵우드가 그의 천재적인 기억력의 비밀을 공개한다. 이제 당신의 잠자고 있는 뇌세포를 깨울 차례다 |
적지 않고 기억한다! 쇼핑 리스트 식료품 마트나 음반가게에 갈 때 어쩌다 살 것을 미리 적어 놓은 리스트를 들고 가지 않으면 ‘어, 내가 뭘 사러 들어 왔더라’하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 적 있는가? 예전엔 안그랬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머릿속으로만 살 물건을 생각해놓고 비슷한 물건들이 많은 상점에 들어가면 정확히 무엇을 사려고 했는지 기억해 내기가 힘들어지지는 않는가? 기억력을 배가시키는 법 아침거리를 사러 식료품점에 가는 길이다. 평소라면 집을 나서기 전 식탁에 앉아 일일이 살 품목을 종이에 죽 적어 내려간다. 자, 이제부터 굳이 미리 종이에 적지 않고도 생생히 기억해낼 수 있다. 이렇게 한 번 해보라. 스칼렛 요한슨이 달랑 미니스커트만 하나 걸치고 한 손엔 우유를, 다른 한 손에는 빵을 들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젠 식료품점에 가서 살 식료품 리스트를 길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 완소 스칼렛 요한슨 양이 미니스커트만 입고 한 손엔 당신의 목을 적셔줄 우유를 다른 한 손엔 당신 배를 채워줄 일용할 식빵을 들고 있다는데 그 감사한 이미지를 어찌 쉽사리 지울 수 있겠는가. 이젠 마트에 갈 때 살 것을 적은 종이를 챙기는 대신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가자. 최근 만나는 그녀에 관한 디테일 어차피 모든 걸 다 기억할 수 없다면 다소 사소한 것들을 기억해라. 예를 들면 그녀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라던가 아니면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라던가. 분명 당신은 그녀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는 못한다. 하지만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그녀에 관한 사소한 디테일 몇 가지는 그녀를 당신 곁으로 죽 당겨줄 것이다. 주의할 점, 간혹 그녀가 말할 때 그녀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보다 그녀의 입술에 더 정신이 팔릴 수 있다. 기억력을 배가시키는 법 룸테크닉을 이용하라. 핵우드는 룸테크닉을 사용하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짧은 시간에 암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당신과 닮은 방을 하나 고른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녀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모두 그 방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본다. 실제로 그녀의 이야기가 재미있든 없든 간에 당신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꽤 재미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조깅을 좋아한다면 방 한구석에서 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또 그녀가 미국 TV시리즈 <섹스앤더시티>를 좋아한다고 하면 당신의 방에서 당신의 텔레비전으로 <섹스앤더시티>를 보고 있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단체 미팅에서 더욱 빛나는 기억력 핵우드는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주면 짧은 시간에 모두 기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기억력을 배가시키는 법 핵우드가 빠른 속도로 전달 받은 정보를 짧은 시간안에 모두 기억하는 비법은 정보의 흐름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입사 첫날 새로운 사람들을 수십 명 처음 만나는 자리를 생각해보자. 처음 보는 얼굴들이 줄줄이 서서 당신에게 소개되고 있다. 이때 그저 묵묵히 서서 듣고만 있어보라. 방금 소개받은 팀원들의 이름인데도 기억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때 무방비 상태로 정보를 전달받고 있지만 말고 스스로 흐름을 통제하도록 해보라. 첫번째, 두번째 사람이 소개된 후 한 세번째쯤 사람이 소개될 때 짧게 그에 관한 코멘트를 한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의 이름이나 그날 그의 옷차림, 또는 그를 닮은 연예인 등에 대해서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대꾸하는 동안 당신은 머릿속으로 처음 소개받은 두 명의 이름을 다시 되새길 시간을 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세번째마다 잠깐씩 멈춰 코멘트를 다는 식으로 하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소개 받아도 이름을 기억하기 쉬워진다. 그녀의 전화번호 우리 뇌의 버퍼가 처리할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단어를 따로따로 기억하려고 하기보다 각각을 서로 묶어서 더 큰 단위로 조합하면 전화번호 같은 긴 숫자열을 기억하기 쉬워진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 정신건강학과의 조지 W. 리복 박사의 말이다. 기억력을 배가시키는 법 각 숫자를 두 개 혹은 세 개로 묶어서 각 묶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전화번호 같은 경우는 이미 세 개나 네 개씩 묶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숫자들을 쉽게 기억하려면 이미 잘라진 묶음대로 기억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당신에게 의미 있는 숫자들을 골라 다시 묶어내면 기억하기가 더 간단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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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라는 숫자 (0) | 2008.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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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가 우스운 것이 골프라는 운동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참 기도 안 차고 운동 같지도 않은것이 라운딩하고 나면 한번 즐겁기를 하나, 친구간에 우정이 돈독 해지길 하나, 열은 열대로 받고,시간은 시간대로 날아가고,돈은 돈대로 들고....., 어디 그 돈 뿐인가? 내기 한답시고, 최소 몇만원 알토란 같은돈 남주고........ 농사 짓는데 놀러 다닌다고 손가락질은 제일 먼저 받지, 가뭄,수해 왔을때 골프채 들고 다니면 돌이라도 맞을 분위기지, 정권 한번 바뀌기만 해도 눈치 보느라 가재미 눈이 되질않나, 공무원들은 의당 아들내미 이름으로 부킹을 하고,,,, 열심히 연습 했다고 잘 맞기를 하나, 안한놈이 운으로 버디를 잡질 않나..... 공 한개 값이면 짜장면 곱배기가 한그릇......, 물에 빠트려도 의연한 척 허허....웃어야지, 인상 쓰면 인간성 의심 받지? (짜장면 한그릇 물에 쏟아 놓고 웃어봐라, 아마 미친놈 이라고 할테지). 웬수같은 골프채는 무슨 금딱지를 붙여놨나, 우라지게 비싸지, 드라이버 랍시고 작대기 하나가 33 인치 평면 컬러 TV 값 에다 비밀 병기 랍시고 몇 십만원..... 오늘 좋다고 해서 사 놓으면 내일 구형 이라고 또 신제품 사라하고.... 잔디 좀 걸었다고 드는 돈이 쌀 한 가마니, 그나마 한번 주말 부킹하고 치려면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까지 동원 해야하고, 노는 산 깍아 골프장 만들어도 ....` 좁은땅` 에 만든다고 욕먹고, 나무 심고 잔디 키워 놔도 농약 친다 욕먹고, 여름 이라 햇빛을 피 할수있나, 겨울이라고 누가 따스하게 손 한번 잡아주나, 땡볕에 눈보라에, 제대한지가 언제인데 툭 하면 산둥성이에서 각개전투... 물만 보면 피해 다녀야 하고, 공이 갈만한 자리에는 무슨 심술로 모래 웅덩이 파놓고....지랄이야... 홀은 꼭 처녀 엉덩이 꼭대기 같은 데다 콧구멍 만하게 뚫어놓고........ 잘 맞으면 `일 안하고 공만 쳤다` 욕먹고.., 안 맞으면` 운동신경 없다 욕먹고... 퍼팅 들어가면 돈독 올랐다` 욕 먹고.... 못 넣으면 소신 없다 욕 먹고,...길면 쓸데없이 힘쓴다, 잛으면 쫄았다고 욕먹고...,돈 몇푼 따면 곱배기로 밥 사야 하고, 돈 잃으면 밥 안사 주나 눈치 봐야하고, 집에 오면 알아서 왕비 비위 맞추느라 설거지 해야하고, 아들내미 성적 떨어져도 공치는 애비 잘못,...ㅈㅈ 골프쳐서 오더 따면 `누구나 `따는 오더 이고, 못 따면 "골프까지 쳤는데도.."라고 비아냥, 욕먹고, 안 맞아서 골프채 한번 집어 던졌다간 상종 못할 인간으로 찍히고, 신중하게 치면 늑장 플레이 라고 욕 먹고, 빨리 치면 `촐싹댄다` 욕 먹고, 화려하게 옷 입으면 `날라리냐?` 욕 먹고, 점잖게 입으면 `초상집 왔냐?` 고 욕먹고, 인물 좋으면서 잘치면 `제비 같은놈` 인물 좋으면서 못치면 `겉만 뻔드르 하다` 인물 나쁘면서 잘치면 `니가 그거라도 잘 해야지` 인물 나쁘면서 공도 못치면 `뭐하나 제대로 하는것이 없다`고, 농담하면 까분다고, 진지하면 열 받았냐고, 도우미 언니하고 농담 하면 시시덕 댄다고, 농담 안하면 분위기 망친다고, 싱글 하면 사업하는 놈이 공만 친다고 욕하고, 싱글 못하면 `그머리로 무슨 싱글?` 하고 욕하고 새 골프채 사서 잘치면 `돈이 썩어나냐?`고 욕먹고, 못치면 `돈으로 공치냐?`고 욕먹고, 새 골프채 안사면 `죽을때 돈다 싸갖고 갈거냐?`욕 먹고, 바이어가 공 치자해서 골프채 들고 나갈라면... 세관에 신고 해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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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88의 인생은
70대 나이가 되어도 40대 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허풍쟁이로 생각할것이다 미국의 노인학 전문의사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헨리 로지 박사와 76세의 변호사 크리스 두 사람이 공동으로 저술한 젊게 사는 법 -Younger Next Year- 라는 책은 이런 거짓말 같은 호언장담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디 실제로 이책은 '50-60대 환자들을 15년 동안 진료하면서 헨리박사가 직접 관찰한 결과이며 노 변호사가 일상중에 생생하게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크리스 변호사는 그 나이에 윈드 셔핑과 스키 항해를 즐기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저자는 정상적인 노화는 정상이 아니다라는 역설과 누구나 알고있는 상식을 거부한다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우리의 뇌를 속이라는 것이다 헨리박사는 생물학적으로는 은퇴나 노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다만 성장이나 퇴화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퇴화를 더디게 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우리가 평소 몸에 보내는 신호를 바꾸는 것이다 수백년 동안 인류는 조상으로부터 지금까지 생물학적인 진화를 거쳐오면서 우리의 뇌는 달리고 사냥하고 개척하고 웃고 놀고 스스로 치유하고 사랑하며 살아 남도록 만들어졌다 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부실하게 영양을 섭취하고 운동을 게을리하면 우리의 몸은 늘 그와 같은 상태를 겨울로 인식하여 최대한 빨리 생명력을 쇠퇴시켜 삶을 종료하라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 문제는 퇴화의 파도를 거꾸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사냥과 채집을 위해 봄에 하는 물리적인 운동을 꾸준히 계속해 우리의 뇌에 봄의 신호를 지속적으로 적극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반응은 우리의 몸이 더 건강해지고 날렵해지며 효율적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 운동을 평생 일주일에 6일씩 해야 한다
둘째 - 일주일 중에서 4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상당한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으로 땀 을 흘리는 동안 쏟아지는 수백개의 화학신호는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 강화와 수리의 메시지를 보내 고장난 곳을 치료하고 퇴화를 가로 막고 성장을 촉진시킨다 길고 느린 저 강도의 유산소운동은 인류초기 채집의 단계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대자연속을 배회하거나 숲길을 걸어다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포도당을 연료로 사용하는 고강도의 유산소 운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열대초원에서 무리지어 사냥하는 수렵단계의 육식동물로서의 기억을 일깨워 준다 이런 운동이야말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로 에너지가 넘치는 낙천적이며 젊어지는생물학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셋째 - 근력운동을 계속 해야 한다 근력운동을 게을리 하면 우리의 근육은 파열되고 발목에선 힘이 빠지며 다리가 쉽게 부러지는 등 무기력해져 대자연 속에서 속수 무책으로 쓰러져 버리고 말 것이다 앞서 세가지 조건은 앞으로 맞을 시간들을 젊게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불가결의 것들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노후를 품위있게 즐기며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넷째 - 적게 쓰고
다섯째 - 'Junk - food'에 안녕을 고해야 한다 'Junk-food'는 실속 없이 칼로리는 높으면서 영양가는 낮은 인스턴트 음식을 말 한다
여섯째 - 남과 나를 아끼는 생활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자주 만나 담소하며 따듯한 정을 나누고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칙들에 충실하면 99세까지 88 하게 살다가 2,3일 만에 생을 마감하는 99 88 234 의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저자는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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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하지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
홀딱벗고 홀딱벗고 이렇게 운다는거다. 홀딱 벗고 |
12라는 숫자 (0) | 2008.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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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의 인생은 (0) | 2008.08.31 |
할아버지 화이팅! (0) | 2008.08.31 |
[스크랩] 무조건 외워두면 좋은 영어... (0) | 2008.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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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의 인생은 (0) | 2008.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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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딱벗고 (0) | 2008.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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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 1000가지 (0) | 2008.07.13 |
훌딱벗고 (0) | 2008.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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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기 (0) | 2008.07.13 |
간혹 이런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하지?
1. 당근이지 You bet./ Absolutely. It is natural that...
2. 썰렁하군 That's a lame joke.
3. 분위기 망치게 (조지게) 하지마. 초치지마 Don't spoil the mood!
Don't rain my parade "Look before you leap"
4. 너나 잘 해 Why don't you mind your own business?
None of your business.
5. 내 성질 건드리지 마 Don't hit my nerve.
6. 뒷북치지마 Thanks for the history lesson.
7. 잘났어 정말 / 너 잘났다 You are something else!
8. 어제 필름이 끊겼어 I got blacked out yesterday.
9. 그 사람 그거 참 잘~ 됐다. 쌤통이다 It serves him right./He deserves it.
10. 그래 니 팔뚝 (또는 니 X) 굵다 Okay, You are the boss!
11. 죽을만큼 마셔보자 Let's go all the way!
12.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How could you do that to me?
13. 놀구 있네~~ 삽질 하네~~ Yeah. Right~ / Looking good~
14. 거기 물 좋다 That place rocks! That place kicks!
15. (문제의 답 등이) 너무 쉽네. 애개개 그게 다야? Is that it? That's it?
16. 너도 내 입장이 되어봐 Put yourself in my shoes.
17. 저리 가, 꺼져!, Take a hike!
18. 너 정말 치사하다 You are so cheap.
19. 음식 잘 먹었습니다. I've never eaten better.
20. 몇 시에 퇴근해요? What time do you call it a day?
21. 이 짓이 지겨워 죽겠어 This sucks!
22. 야, 친구 좋다는 게 뭐야? Come on, what are friends for?
23.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난다 .It was so touching, I almost cried.
24. 미안해 할 것까지는 없어. There's nothing to be sorry about.
25. 내게 고마워할 것까지는 없어. There's no need to thank me.
26.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It couldn't be better than this!
27. 메롱 Neh Neh Neh Boo Boo
28.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You won't be disappointed!
29. 나를 만만하게 보지마 Don't you think I am that easy. (you에 강세)
30. 니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That's what you always do.
31.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인간아 Consider your surroundings, you fool.
32. 두고보자. Just wait! I'll get (또는 pay) you back.
33.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You should've kept quiet.
34. 이번 한 번만 봐준다 I'm gonna let it slide only this time.
35. 쟤는 어디가도 굶어죽진 않겠다. He will never starve anywhere.
36.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면 다쳐 You'll get hurt if you try to know too much.
37. 제발 잘난 척 좀 그만해 Stop acting like you're all that. (all that은 최근에 많이씀)
38. 네가 없으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야 I feel like something is missing
39. 장난이 좀 심하군 The joke is too harsh.
40. 말장난 그만 합시다. Let's stop playing word games
41. 내가 만만하게 보여? Do I look like I am easy?
42. 다 엎어버리고 뛰쳐 나가고싶다. I just want to throw everything and run away
43. 여기 분위기 엄청 살벌하다.(삭막하다) The environment here is very heavy(hostile)
44. 몸이 찌뿌둥하다 I feel heavy
45. 오해 하지 마세요 Don't get me wrong.
47. 몸이 날아갈 것 같애./가뿐해 I feel light.
46. 기가막혀 말이 안나오네. It's so outrageous I can't say a word
48. 니 맘대로 하세요 Suit yourself.
49. 괜히 나만 실없는사람 되었잖아. It just made me look irresponsible
50. 허리가 삐걱했어. I hurt my back
51. 허리를 다쳤어요. I threw out my back.
52. 아직 옛날 실력 안 죽었어 I've still got it. (it은 옛날 실력을 의미)
53. 넌 이제 죽었어 You are dead meat!
54. 너 들으라고 한 소리 아냐 Don't take it personally.
55. 까꿍! Peekaboo! (삐까부; "삐"자에 강세: 아기들 얼를 때나 놀라게 할 때))
56. 알랑거리지마 Don't try to butter me up.
57. 배째 Sue me!
58. 그게 어딘데? That's better than nothing
59. 머리뚜껑이 열렸다. My head is about to open
60. 그녀는 이중 성격을 가졌어 She has a multi-personality (또는 split personality)
61. 내 일에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I hope you mind your own business
62.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고 싶다 I just want to go somewhere far away.
63. (나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예요? Don't you think you are too harsh?
64.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You don't have to do all that
65. 나도 맘이 편하지는 않아. I don't feel well about it, either.
66. 그다지 썩 내키지는 않는데.I don't feel right doing it (feel like로 바꾸면 단순한 감정)
67. 생각보다 '별로'인데... It's not as good as I thought (expected)
68. 몸살에 걸려 온몸이 쑤신다. My whole body aches.
69. 그 사람 똥배가 나왔어. He has a big belly.
70. 넌 내 밥이야 You are my food!
71. 저 사람은 인간이 왜 저래? What's wrong with him?
72. 바늘로 꼭꼭 찌르는 것 같다. It feels like a needle poking me
73. 걔 원래 그런 애야 He's usually like that.
74. 너 삐졌니? Are you mad at me? Are you pissed off?
75. 이 싸가지 없는 녀석아 You have no respect.
76. 그는 밥만 축낸다 You are not worth feeding.
77. 그는 성격이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다. He has an easy-going and cool attitude.
78. 있는 척 좀 하지 마. Don't act like you are rich.
79. 사람보면 아는척 좀 해봐라. Why don't you act like you know me?
80. 쟨 정말 짜다! 어떻게 밥 한번 안사니? He's so cheap. How can he not buy lunch once?
81. 너 공주병이구나.. You think you are all that? (필수 암기 구문)
82. 저 애는 내가 찍었어. That boy is mine. He is on my list.
83. 쟤는 날나리야... He is a player.
84. 그는 앞뒤가 꽉 막혔어. He is so stubborn.
85. 내 입장이 정말 난처해. My position is very uncomfortable.
86. 그 사람은 건방지게 굴어 He acts like he's all that. (all that 또 나왔죠?)
87. 쟤 손 좀 봐 줘야겠다 He needs a lesson.
88. 이 시계 참 신기하다 This watch is unique
89. 잘난체 하는 걸 아니꼬와서 못 보겠군! I can't look at him acting like he is all that.
90. 그녀는 마음을 잘 주지 않고 튕겨. She's playing hard to get
91. 그는 뒤로 호박씨 깐다. He does something in people's back
92. 야~~. 신난다... Yeah! This is fun!
93. 놔둬 그냥 그러다가 말겠지 뭐 Leave him alone. He'll stop it eventually.
94. 이 숙제 정말 짜증난다 This homework is very tedious
95. 그 사진 너무 야하다.. That picture is too sexy
96. 너무 오바 하지마 Don't go too far.
97. 쟤랑 걔랑 그렇고 그런 사이래. They are said to have a relationship
98. 걘 늘 요리조리 빠져나간단 말이야. He always gets away with stuff.
99. 그냥 그렇다고 해, 뭘 자꾸 따져? Just say it, don't argue
100.넌 왜 맨 날 그 모양이니? Why are you always like that?
101.뭐 이런 놈이 다 있어~! What kind of person is this!
102.저 사람 변태 아니야? Isn't he a pervert?
103.보자보자 하니 해도 너무 한다 I let it go, but this is too far
104.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Kids grow up fighting all the time.
105.어휴~ 난 이제 죽었다 Man.. I'm dead now.
106.걔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When I think about him, it hurts even now.
107.옷이 촌스럽다 Those clothes are out of style.
108.기본부터 돼 먹지 않았다. It was wrong from the beginning
109.지나가던 개도 웃겠다. A passing dog would even laugh
110.나 나이 헛 먹은 거 아냐! Do you think I've aged uselessly?
111.누구 맘대로? With whose permission?
112.니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니? If you're all that, how big could you be?
113.아! 사는 게 왜 이럴까. Why is my life like this?
114.그 여자는 너무 코가 높아 (콧대가 세다/도도하다). She's too snobby.
115.내 일은 내가 알아서 다 할거야. I'll take care of my business.
116.뭐 찔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Are you hiding something?
117.니 입만 입이냐? Do you think your mouth is the only mouth here?
118.내 방은 지저분해서 발 디딜 틈이 없어 My room is so messy, there is no place to step.
119.좋은 게 좋은 거지. If it nice, then it's nice
120.넌 꼭 그런 말만 골라 하는군. You always choose that type of words
121.찍어둔 사람 있습니까? Do you have someone in mind? (anyone: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
122.너 시치미 떼지마. Don't you try to lie. (you 에 강세)
123.친구랑 정이 많이 들었어요. I feel very close to my friend.
124.그거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There's something fishy about it.
125.느낌이 오는데. / 감이 잡히는데. I got a hunch.
126.그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다 He is full of self-confidence
127.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 줘. Hook me up if there's a good person.
128.팀웍이 중요하다혼자너무 튀지 마라. Teamwork is important, don't try to stick out.
129.난 쓸데없는 오해받기 싫어. I don't want to be accused unfairly.
130.네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참지? How do I control myself if I miss you?
131.우정이 갈수록 부실해진다. Our friendship is falling apart as time passes.
132.모든 게 귀찮어 Everything is a hassle.
133.누가 니 성격을 받아주겠니. Who would put up with your attitude?
134.감쪽같이 (사귀는 관계를) 속이다니... You hid your relationship to everyone.
135.결코 고의가 아니었다. I didn't mean to do that. / It's not what I mean.
136.넌 배신자다. You are a traitor!
137.다 티 난다. Everything shows./ It's too obvious. / You can't hide it.
138.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How long could it last?
139.좀 봐 주면서해라 (불쌍하다..) Be a little gentle with him.
140.너하곤 게임이 안 된다 (상대가 안 된다.) There is no game with you.
141.그래서?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니? So? What do you want me to do?
142.이젠 돌이킬 수가 없다. (소용없다) You can't turn back now.
143.농담도 (장난도) 사람 봐가면서 해라. Look who you are joking with.
144.네게 섭섭하다. I'm disappointed.
145.사랑이 식었구나 The love has died.
146.우리 사이가 애매하다.. I don't know what kind of relationship we have
147.이 엄살쟁이... You baby..
148.너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지 마 Don't try to put your mistakes on others.
149.까불고 있어, 다음부터는 까불지마. Don't try to joke anymore
150.야! 너 인물이 훤해졌구나 Hey, your face looks a lot better.
151.도대체가 끝이 안 보이네, 끝이... I don't see the end of this.
152.내 말 안 듣더니, 그래 꼴 좋다 You didn't listen to me, now look at you!
153.(비행기를 탔을때) 귀가 멍멍하다 My ears are muffled.
154.얌전한 남자아이. Calm and reserve boy. Sissy boy. (Sissy = sister-like)
155.화장 잘 받았다! Your make-up looks good!
156.너, 화장 떳어! Your make-up doesn't look good!
157.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돼 You're not supposed to talk like that
158.전 간지럼을 잘 타요 I am ticklish.
159.마음이 붕 떠 있어서 일이 손에 안 잡혀. I'm so excited, I can't work.
160.행복한 고민 하시네요 You have pleasant worries.
161.잔머리 돌리지 마 Don't try to take the easy way out.
162.친구 지간에 그런 게 어딨니? What is that between friends?
163.어휴! 넌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Ah, nobody can stop you.
164.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Lick your lips before you lie.
165.그 사람 참 분위기 있더라 He has a lot of charisma. / She has class. (무관사)
166.그 넘은 화를 자초했군 He asked for it!
167.외유내강 A steel hand in a velvet glove.
168.무게 잡지마 Don't try to act tough (최민수 같이)
169.수고하세요 Have a nice day! (더 나은 표현 있으면 알려주세요)
170.내 모든 걸 걸었어 I put everything into it
171.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It's fun picking out my favorite.
172.너에겐 내가 있잖아 But you've got me.
173.원샷! Bottoms up!
174.강심장이군 His heart is made of steel. (비슷하네요)
175.오늘은 내가 쏜다 Today, it's on me!
176.왜 너 찔리니? Why? You feel guilty?
177.여기서 지척에 살아 I live a stone's throw away from here.
178.난 원래 피자를 좋아해. Pizza is in my blood. (Poker is in my blood)
179.그녀에게 뿅갔어 I got a crush on her!
180.왜 나한테 화풀이야? Why are you taking it out on me?
181.말이 청산유수로군 He's a good talker
182.내숭 떨지마 Don't play innocent!
183.흔들리면 안돼. Don't waffle.
184.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야 The woman makes the man.
185.쪽 팔리는 줄 좀 알아라 Shame on you!
186.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 It could've been worse than that.
187.그는 골칫 덩어리야 He's a pain in the neck (속어로는 neck 대신 ass).
188.모든 일엔 다 때가 있다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189.그걸 꼭 말로 해야되니? Do I have to make it explicit?
190.좀 책임감을 가져라. Live a responsible life.
191.너 많이 컸다! You've come a long way!
192.기분 짱인데 I feel like a million!
193.난 타고난 체질이야 I was born for this.
194.아까워라! What a waste!
195.음매 기죽어! That hurts! What a blow to the ego!
196.맞장구 좀 쳐 주라. Back me up here.
197.괴롭히지 좀 마세요! Hey, get out of my hair!
198.잠깐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Have you got a minute to spare?
199.너 제정신이니? Are you out of your mind?
200.너 뭔가 믿는 구석이 있구나. You've got somebody behind you, huh?
201.이거 장난이 아닌데! Man, this isn't a joke!
202.간뎅이가 부었군 What a nerve!
할아버지 화이팅! (0) | 2008.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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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조건 외워두면 좋은 영어... (0) | 2008.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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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기 (0) | 2008.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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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김종태
달래 비슷하지도 않으면서
진짜 달래라고 진달래?
이름만 그럴싸한 것은
말만 그럴싸한 것보다 본질적 사기이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떠벌리는 철부지보다는
우린 사랑하잖아요 라고 명패를 목에 매달고
제 할일 다 했노라 하는 것은
철부지보다 미운 개구쟁이이다
짧은 봄밤
선홍빛 물드는 그리움은 나 몰라라 하고
그 진달랫빛 석 달 갈 줄 알고 나물만 캐는 사람은
진달래보다도 더 미운 개구쟁이 사기꾼이다
진달래 [korean rosebay]
Rhododendron mucronulatum
진달래과 낙엽관목
참꽃 또는 두견화라고도 한다. 산지의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 높이는 2∼3m이고 줄기 윗부분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작은가지는 연한 갈색이고 비늘조각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 모양의 바소꼴 또는 거꾸로 세운 바소꼴이며 길이가 4∼7cm이고 양끝이 좁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 표면에는 비늘 조각이 약간 있고, 뒷면에는 비늘 조각이 빽빽이 있으며 털이 없고, 잎자루는 길이가 6∼10mm이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가지 끝 부분의 곁눈에서 1개씩 나오지만 2∼5개가 모여 달리기도 한다. 화관은 벌어진 깔때기 모양이고 지름이 4∼5cm이며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연한 붉은 색이고 겉에 털이 있으며 끝이 5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10개이고 수술대 밑 부분에 흰색 털이 있으며, 암술은 1개이고 수술보다 훨씬 길다.
열매는 삭과이고 길이 2cm의 원통 모양이며 끝 부분에 암술대가 남아 있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고, 꽃은 이른봄에 꽃전을 만들어 먹거나 진달래술(두견주)을 담그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꽃을 영산홍(迎山紅)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해수·기관지염·감기로 인한 두통에 효과가 있고, 이뇨 작용이 있다.
한국·일본·중국·몽골·우수리 등지에 분포한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진달래(for. albiflorum)라고 하고, 작은 가지와 잎에 털이 있는 것을 털진달래(var. ciliatum)라고 하며 바닷가와 높은 산에서 흔히 자란다. 털진달래 중에서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털진달래(for. alba)라고 하며 해안 근처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잎이 둥글거나 넓은 타원 모양인 것을 왕진달래(var. latifolium)라고 한다.
바닷가 근처에서 자라는 것 중에서 잎에 윤기가 있고 양면에 사마귀 같은 돌기가 있는 것을 반들진달래(var. maritimum)라고 하고, 열매가 보다 가늘고 긴 것을 한라진달래(var. taquetii)라고 한다. 키가 작고 꽃도 작으며 5개의 수술이 있는 것을 제주진달래(R.saisiuense)라고 하며 한라산 정상 근처에서 자란다.
진달래를 지칭하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연달래, 꽃달래, 얀(온)달래, 반달래, 진달래 수달래 등 모두 달래자가 붙어 있다. 같은 진달래이지만 꽃의 느낌에 따라 다르게 불렀던 것 같다. 달래꽃보다 꽃빛깔이 진하다고 하여 진달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사람마다 그 때 그 때의 느낌에 따라 연달래, 얀달래라고 해도 옆에서 듣는 사람은 모두 진달래로 들을 수 있었으리라.
남도지방 은어에 앳된 처녀를 일컬어 연달래라 하고 성숙한 처녀는 진달래, 그리고 과년한 노처녀는 난달래라 한다. 나이에 따라 변하는 젖꼭지 빛깔에 비유한 짓궂은 표현이라고 하나 믿을 것이 못된다.
강원지방에서는 물가에서 자라는 산철쭉을 수달래라 한다. 물에서 자라는 진달래를 뜻하지만 진달래는 독성이 적어 먹을 수 있어도 산철쭉은 먹지 못한다.
진달래는 우리 땅 어디든지 자라지 않는 곳이 없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폭넓은 서식지를 갖고 있는 우리의 자생식물이다. 그래서 한 때는 우리 나라꽃으로 하자는 운동이 벌어진 때도 있었고, 북한의 경우 함박꽃나무(木蘭)로 바꾸기 전까지는 상징화로 아낌을 받았던 나무이다.
진달래는 확실히 아름다운 나무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진달래가 많은 땅은 그만큼 땅이 척박한 곳이다. 강 산성 토양에서도 견디는 수종이 바로 진달래과 식물이다. 다른 수종이 척박지를 피해 기름진 땅에 뿌리를 내리지만 진달래는 오히려 붉은 색채가 더욱 짙어져 동국의 봄을 장식한다.
진달래는 줄기를 꺾어 주면 도장지가 자라 오히려 더 많은 꽃이 핀다. 진달래는 가지 끝에 꽃눈이 밀집해 달린다. 늙은 나무는 가지가 섬세하고 끝에 한 두 송이의 꽃눈이 달리지만 도장지 끝에서는 십여 송이의 꽃눈이 달린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가지를 꺾인 등산로 주변의 진달래가 휠씬 탐스러운 꽃으로 피는 것이다.
진달래는 먹는 꽃이다. 그래서 진짜 꽃이라는 뜻으로 참꽃이라 부른다. 참꽃에 대해 못먹는 철쭉은 개꽃이라 부른다. 독성이 적은 진달래는 꽃잎을 먹을 수 있지만 독성이 강한 철쭉은 개꽃이라는 이름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진달래로 국수까지 빚어 먹었던 우리 선조들은 음식의 맛 뿐만 아니라 멋까지 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동국세시기에 진달래로 국수를 뽑아먹는 과정이 소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진달래는 우리 땅 어디든지 자라지 않는 곳이 없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폭넓은 서식지를 갖고 있는 우리의 자생식물이다. 그래서 한 때는 우리 나라꽃으로 하자는 운동이 벌어진 때도 있었고, 북한의 경우 함박꽃나무(木蘭)로 바꾸기 전까지는 상징화로 아낌을 받았던 나무이다. 진달래는 확실히 아름다운 나무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진달래가 많은 땅은 그만큼 땅이 척박한 곳이다. 강 산성 토양에서도 견디는 수종이 바로 진달래과 식물이다. 다른 수종이 척박지를 피해 기름진 땅에 뿌리를 내리지만 진달래는 오히려 붉은 색채가 더욱 짙어져 동국의 봄을 장식한다.
진달래는 줄기를 꺾어 주면 도장지가 자라 오히려 더 많은 꽃이 핀다. 진달래는 가지 끝에 꽃눈이 밀집해 달린다. 늙은 나무는 가지가 섬세하고 끝에 한 두 송이의 꽃눈이 달리지만 도장지 끝에서는 십여 송이의 꽃눈이 달린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가지를 꺾인 등산로 주변의 진달래가 휠씬 탐스러운 꽃으로 피는 것이다.
정원에 심어진 진달래도 가지를 잘라줄 필요가 있다. 도장지가 우뚝하면 봄철에 보다 탐스러운 짙은색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서 보는 관상식물이란 수백년 또는 수천년 동안 재배해 오는 동안 내병성, 내한성, 내습성 등 필요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도록 개량한 것들이다. 또 향기가 더욱 짙게 했거나 꽃이 탐스럽고 더 많이 달리도록 개량한 것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원예식물이 되었다. 진달래는 개량하지 않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관상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금 당장 정원에 심어도 그 어떤 나무보다 화려한 꽃을 피워 매년 봄소식을 알린다.
진달래는 먹는 꽃이다. 그래서 진짜 꽃이라는 뜻으로 참꽃이라 부른다. 참꽃에 대해 못먹는 철쭉은 개꽃이라 부른다. 독성이 적은 진달래는 꽃잎을 먹을 수 있지만 독성이 강한 철쭉은 개꽃이라는 이름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3월 삼짇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붙여 먹는다고 했다.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기름에 지져 먹는 먹는 것을 화전(花煎)이라 한다."
옛날에는 음력 삼월 삼짇날을 전후하여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또는 이웃끼리 가까운 산을 찾았다. 계곡에 솥뚜껑을 걸고 나뭇가지를 지펴 불을 붙인다. 따온 진달래꽃을 찹쌀반죽에 섞어 전을 붙이거나 찹쌀반죽 위에 꽃잎을 얹어 지져낸다.
남자들이 솥이며 그릇들을 지게에 져다 취사 준비를 마쳐주고 산을 내려가면 여인들의 오붓한 시간이 된다. 서로 시를 지어 노래하면 댓구에 따라 다른 사람이 시를 짓는다. 이런 놀이를 화전놀이라 했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삼월 삼짇날(重三)에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든다. 이것을 참기름에 지져내면 화전(花煎)이 된다."고 했다. 진달래로 국수까지 빚어 먹었던 우리 선조들은 음식의 맛 뿐만 아니라 멋까지 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동국세시기에 진달래로 국수를 뽑아먹는 과정이 소개돼 있어 눈길을 끈다.
오미자를 우려낸 붉은 국물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힘 것을 잘게 쓸어 넣는다. 거기다 꿀을 타고 잣과 진달래 꽃잎을 뛰운 것을 화면(花麵)이라 한다. 혹은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와 반죽하여 국수를 만들기도 한다. 또 녹두로 국수를 만들어 붉은색으로 물들이기도 하는데 꿀물에 띄운 것을 수면(水麵)이라 한다. 시절 음식으로서 제사에 쓴다.
삼월 삼짇날의 화전놀이는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부녀자들에게 이날 하루 소풍을 보내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억압된 조선시대의 폐쇄 사회에서도 삼월 삼짇날의 진달래 화전, 사월 초파일의 느티떡(楡葉餠), 오월 단오에는 수리취떡, 유월에는 장미꽃전, 구월구일 중양절에는 구절초나 국화로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
또 겨울에는 호박떡, 무시루떡, 곶감떡 같은 것을 쪄 시절음식으로 즐겼다. 그외 쑥이나, 미나리, 달래 같은 나물로 전을 붙여 먹기도 했다. 진달래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나는 갖가지 꽃과 나물로 시절음식을 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나주 선비 임백호(林白胡)는 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송도 명기 황진이(黃眞伊)의 무덤에 찾아가 제사를 지낸 분이다. 그의 화전놀이를 읊은 시에
개울가 큰 돌 위에 솥뚜껑 걸어 놓고
흰가루 참기름에 꽃전부쳐 집에 드니
가득한 봄볕 향기가 뱃속까지 스민다.
얼마나 운치있는 노래인가.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부녀자들에게 널리 불리워졌던 〈영남대가 내방가사(嶺南大家內房歌辭)〉 화전가(花煎歌) 편에는 "꽃술일랑 고이 두고 꽃잎만 따서 지져 먹고, 배부르면 진달래 꽃술로 꽃싸움(花戰)하자"고 노래하였다. 꽃술을 걸어 서로 잡아당겨 꽃밥이 떨어지는 쪽이 지게 된다. 편을 갈라서 하게 되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쪽이 이기게 된다. 이긴 쪽에서는 춤을 추고 진쪽은 벌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절을 찾아가 탑돌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때 성벽을 걷거나 다리를 밟으며 탑 주위를 도는 것은 무병 장수를 위한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다.
탐스럽게 핀 진달래 가지를 꺾어 꽃방망이(花棒)처럼 만들어서 앞서 가는 사람들을 때리면서 놀았는데 이 꽃다발을 여의화장(如意花杖)이라 했다. 진달래 꽃으로 선비의 머리를 치면 과거에 급제하고 기생의 등을 치면 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었다.
경상도에서는 진달래 나무 숲에 꽃귀신이 산다고 하여 봄철 진달래가 필 때는 어린이들을 산에 가지 못하게 말렸다. 또 얼굴이 뽀얀 문둥이가 진달래꽃을 먹고 사는데 어린이들이 다가와 꽃을 따면 잡아서 간을 내어 먹는다고도 했다. 아마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산에 함부로 가지 못하도록 이런 이야기를 꾸며낸 것으로 여겨진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진달래꽃이 피면 이름 없는 무덤에도 꽃다발이 놓인다. 시집 못가고 죽은 처녀 무덤에는 총각들이, 총각 무덤에는 처녀들이 진달래 꽃을 꽂아준다. 이렇게 하여 처녀, 총각 귀신을 달래지 않으면 원혼이 나타나 혼사를 망쳐 놓는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진달래의 한자 이름은 두견화(杜鵑花) 또는 척촉(척촉)이다. 여기에는 형을 그리워 하는 동생의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척=擲+躪 촉=觸+躪
옛날 중국의 촉(蜀)나라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자 계모가 들어 왔다. 게모의 학대로 형은 집을 쫓겨나고 말았다. 나중에는 동생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오고 말았다.
어느 따뜻한 봄날 동생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 새가 되었다. 그 새가 바로 두견새이다. 형를 찾아 헤매던 두견새는 매년 진달래꽃이 필 때면 고향을 찾아와 언제나 형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슬피 울었다.
촉나라로 돌아 갈꺼나! 촉나라로 돌아갈거나!
귀촉도(歸蜀道)! 귀촉도(歸蜀道)!
목이 찢어져라 슬피 울다가 마지막에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래서 진달래와 철쭉에는 지금도 붉은 피가 점점이 묻어 있다. 고사에서 말하는 두견화는 철쭉을 지칭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달래는 분명 아니다.
새 이름 두견은 두견이를 말한다. 우리 말이 한자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귀촉도는 소쩍새를 말한다. 같은 여름 철새이긴 하지만 분명 다른 새이다. 옛 사람들이 진달래와 철쭉을 따로 구분해서 쓰지 않았듯 새도 서로 다른 종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
두견화 전설에 대해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은 "두견화는 지극히 아름다운 꽃이지만 일반인들은 비극의 꽃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뻐꾸기의 피눈물 나는 울음 속에서 핀 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두견이도 소쩍새도 아니고 뻐꾸기로 기술돼 있다.
진달래 뿌리 삶은 물에 베를 물들이면 파르스럼한 잿빛으로 염색이 된다. 스님들의 정갈한 승복은 진달래 뿌리로 물들인 것을 으뜸으로 쳤다. 이러한 전통 염료기법이 어느 깊은 산의 암자에나 남아 있을까, 지금은 여간해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술은 진달래꽃으로 빚은 두견주(杜鵑酒)이다. 진달래꽃을 따다 꽃술을 따내고 독에 담고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버무려 그 위에 켜켜이 넣는다. 100일 쯤 지나면 향기가 물씬 풍기는 두견주(되강주)가 된다. 당진 면천의 되강주가 가장 이름났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중양절(重陽節)에 국화와 함께 진달래 뿌리로 술을 담궈 진달래 피는 삼월 삼짇날 마시는 술을 두견주라 한다"고 했다.
봄에 진달래꽃을 소주에 담가 두면 붉은 꽃물이 우러나와 맛과 빛이 우아하다. 한 컵을 불쑥 마시면 심한 현기증이 일어나면서 혼미에 빠진다. 반드시 1개월 이상 숙성시킨 뒤 마셔야 한다.
진달래꽃은 약재로도 쓰였다. 꽃을 말려서 가루로 만든 것을 꿀에 개어 환을 만든다. 이것을 하루 서너 알씩 먹으면 오래된 기관지염을 다스린다. 한방에서는 기관지염, 고혈압, 기침에 좋고 혈압을 내려주며, 신경통 루머티즘을 낫게 한다고 했다.
진달래
이영도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진달래산천
신동엽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남햇가,
두고 온 마을에선
언제인가, 눈먼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담배를 말으며
당신은 쓸쓸히 웃었지요.
지까다비 속에 든 누군가의
발목을
과수원 모래밭에선 보고 왔어요.
꽃 살이 튀는 산허리를 무너
온종일
탄환을 퍼부었지요.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그늘 밑엔
얼굴 고운 사람 하나
서늘히 잠들어 있었어요.
꽃다운 산골 비행기가
지나다
기관포 쏟아 놓고 가 버리더군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
그리움은 회올려
하늘에 불 붙도록.
뼛섬은 썩어
꽃죽 널리도록.
바람 따신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잔디밭에 담배갑 버려 던진 채
당신은 피
흘리고 있었어요.
진달래
박노해
겨울을 뚫고 왔다
우리는 봄의 전위
꽃샘추위에 얼어 떨어져도
봄날 철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외로운 겨울 산천에
봄불 내주고 시들기 위해 왔다
나 온몸으로 겨울 표적되어
오직 쓰러지기 위해 붉게 왔다
내 등뒤에 꽃피어 오는
너를 위하여
현실에서 보란 듯이 이루어낸
지난날 뜨거웠던 친구들을 보면
해냈구나 눈시울이 시큰하다
이런 중심 없는 시대에는
세상과의 불화를 견디기도 어렵겠지만
세상과의 화해도 그리 쉽지만은 안겠지
지금도 난 세상과 불화 중이지만
나 자신과는 참 고요하고 따뜻해
그래서 다시 길 떠나는가 봐
세상과의 화해가 자신과도 화해일 수 있다면
세상과 화해한 넌 지금
너 자신과 화해가 되니?
진달래 사연
봄바람이 들어 들뜬 아가씨를 두고 ‘참꽃’(진달래)에 볼때기 덴 년’ 이라는 속된 말이 있다. 만산홍(滿山紅)의 진달래로 두 볼에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니 진달래에 관한 이보다 감각적인 표현이 어느 다른 나라에 있을까 싶다. 이렇게 볼을 덴 처녀들은 진달래 한아름씩 꺽어들고 ‘진달래 무덤’을 찾아가 꽃을 꽂아주는 것이 진달래철 아가씨들의 은밀한 의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달래 무덤은 그 이름처럼 낭만적이진 못하다. 장가 못 가고 죽은 총각으로 외지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죽거나 객사한 소금장수 같은 연고 없는 무덤이다. 돌보지 않아 황폐해진 그 무덤에 연중 한 번 진달래철에 꽃무덤이 된다 하여 그런 고운 이름을 얻었을 뿐이다. 꽃을 꽂지 않은 처자에게는 장가 못 가고 죽은 이 몽달귀신의 해코지를 받는다는 금기가 없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장가 못 가고 죽은 원령에 대한 예쁘디예쁜 봄의 풍속이 아닐 수 없다.
진달래 약탈이라는 신나는 풍속도 있었다. 이 철이면 젊은나무꾼들은 나믓짐에 진달래를 촘촘히 꽂아 꽃짐을 지고 내려오게 마련이다. 짐짓 마을 여인네들이 모여 있는 동네 샘가 앞을 지나간다. 그중 왈가가닥 아줌마가 진달래 꽃짐 뒤로 슬금슬금 다가가서 이 젋으 ㄴ나무꾼의 바짓가랑이를 끌어내린다. 못 보일 것이 드러나 허둥지둥하면 샘가의 부녀부대가 폭소를 터뜨리며 습격하여 그 진달래꽃을 약탈해 간다.
이런 약탈을 당해야 장가를 갈 수 있고 또 품삯도 반품에서 온품으로 받을 수 있었으니 성인식(成人式)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역시 의식화된 진달래 약탈 습속이었다.
진달래 무덤이나 진달래 약탈은 심층에 섹스를 암시하는 감각적인 풍습이란 차원에서 공통되고 있다.
정신적 차원에서도 진달래는 선택 받았다. 옛 우리 선조들은 꽃을 볼 때 그 아름다움이나 현란함을 천하게 보고 그 기절(氣節)이나 지조를 귀하게 보았다. 그래서 마치 벼슬에 품작을 매기듯이 꽃에도 일품(一品)에서 구품(九品)까지 품작을 매겨 가까이하거나 멀리하기도 했다.세조 때 재상인 강희안 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보면 진달래는 정오품(正五品)에 랭킹되어 있으며 그만한 품작을 내린 이유는 이러하다. 진달래는 메마른 땅이나 바위 틈을 골라 피고 또 북향일수록 잘 피고 꽃빛깔도 진하다는 것을 든다. 곧 절신(節臣)이 궁지에서 임 향한 일편단심으로 붉게 간직하는 기절을 이꽃에서 보아낸 것이다.
진달래가 한국인의 정서에 차지해온 비중도 대단하다.
창밖에 우는 새야
어느 산에서 자고 왔느냐
응당 그 산중 일은 잘 알 터이니
진달래가 피었던가 피지 않았던가.
이것은 판서(判書) 서기보(徐箕輔)의 첩 죽서(竹西)가 열 살 때 지은 시다.
봄맞이 나른한 몸 가눌 길이 없어
진달래 꽃가지 아래 게으르게 앉아
꽃수염 헤아리고 다시 한 번 헤아린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김씨라는 규수 시인의 <춘사시春事詩>다.
이렇게 이 꽃에 사랑을 심고, 이 꽃에 품작을 주고, 이 꽃에 정을 태우는 것만으로 성에 차지않아진달래로 화전(花煎)을 부치고, 진달래로 화면(花麵)을 빚으며, 진달래로 화주(花酒)까지 담가먹었을까.
출처 : [기타] 이규태의 진달래 [신원문화사]뽑내고 싶은 한국인중에서...
북한의 나라꽃을 진달래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민중화가들이 북한의 국화 진달래를 그렸다고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국화는 진달래 가 아니고 등산인들이 산목련이라 부르는 함박꽃나무다.
사랑의 크기 (0) | 2008.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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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고급제품 (0) | 2008.05.06 |
[스크랩] 사람이 살아야 문화재 보존된다 - 유홍준 (0) | 2008.03.26 |
[스크랩] 산사의 미학 - 건축 (0) | 2008.03.26 |
[스크랩] [ 8회연재_①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북악산 서울 성곽 (0) | 2008.03.26 |
한국미술사 연구를 업으로 하는 서생이었던 내가 문화재청장을 맡을 때는 당연히 개인적인 욕심도 조금은 있게 마련이었다. 내게 그 욕심이란 문화재청이나 국립박물관에서 유물들을 움켜쥐고 ‘출입금지’ ‘들어가지 마시오’ 등 빨간 글씨의 경고문으로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자들에게도 좀처럼 공개하지 않고 있는 유물들을 내 맘껏 조사하고 싶은 바람이었다.
더욱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피력했던 “모든 건축물, 특히 목조건축물은 사람이 살아야 제대로 보존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출입금지를 문화재 보존의 능사로 삼고 있는 문화재 행정을 혁신해 보겠다는 뜻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문화재청장이 되면 우선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써 있는 문화재들이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보겠다, 그리고 미술사학도로서 유물을 면밀히 조사하는 특권도 누려 보겠다는 두 가지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04년 9월 3일 부임하자마자 이른바 초도순시를 하면서 경복궁을 찾아갔을 때 나는 아무 예고 없이 출입금지를 몇 개씩 달아놓은 경회루를 올라가 보자고 했다. 경복궁 관리소장은 매우 당황해 하면서 “먼지가 많을 텐데요”라며 나중에 올라갈 것을 권했다.
문화재 보존, 출입금지가 능사 아니다
나는 괜찮다며 쇠줄을 넘어 경회루 안쪽으로 들어갔다. 경회루에 오르는 순간 나는 피어오르는 먼지에 얼른 손으로 코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먼지의 두께는 최소 10cm는 되는 것 같았다. 이것이 출입금지를 능사로 삼은 보존책의 실태였다.
미술사학도로서 생전 처음 대한 경회루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누대의 넓이가 280평이나 되다니, 그 스케일에서 오는 장대함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더욱이 누대가 3단으로 구성되어 미닫이문, 여닫이문 그리고 분합문들이 갖가지로 연출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공간감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경회루만의 자랑이었다. 이 엄청난 공간을 40년간 묵혀 놓았다니!
그날 이후 경복궁 직원들은 일주일을 두고 먼지를 쓸고 닦았다. 먼지를 제거하고 보니 경회루 마루의 나무판들이 모두 말라비틀어진 죽음의 잿빛이었다. 더더군다나 군사독재 시절에 대통령의 연회를 연다고 마루에 카펫을 깔아 그 밑으로 좀이 슨 자국들이 처참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목조건축이 어떻게 병들고 죽어가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우선 궁궐지킴이, 궁궐길라잡이, 아름지기 등 문화재 자원봉사자들과 경회루 대청소와 마루바닥 길들이기를 공개행사로 벌였다. 자원봉사자들은 모두들 이 아름답고 황홀한 공간에 감탄하며 정성껏 물걸레, 마른 걸레로 닦았다. 나이 든 분들은 모두 초등학교 시절 교실 복도 마루 길들이기를 연상하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한 달간 갈고 닦은 결과 경회루 마루는 죽은 잿빛에서 짙은 갈색의 나무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사람들 드나들자 생기 되찾은 경회루
나는 경회루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하고 경회루의 잃어버린 담장을 복원한 다음, 2005년 4월부터 일반에게 개방하였다.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경회루 건물은 출입금지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기를 얻게 되었다. 모든 건물은 사람이 살고 있을 때 제대로 보존된다는 대원칙, 특히 목조건축은 사람의 손길과 살내음이 배어야 생기를 얻는다는 교훈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옛 정자 중에서 진주의 촉석루가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이유는 그 곳에서 항상 수십 명의 진주 시민과 답사객들이 쉬어가기 때문이다. 수많은 옛 가옥 중 종손과 종갓집 며느리가 지키고 있는 종택만은 고스란히 보존된 반면 빈집으로 남은 고가들은 해마다 보수 정비를 해도 을씨년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후 문화재청에서는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을 관람객들에게 개방했고, 창덕궁의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권역을 잇달아 개방했다. 도배장판을 해놓고 사람이 살지 않아 한 해 여름만 지나면 곰팡이가 피고, 한 해 겨울만 지나면 장판이 들고 일어서던 피해가 줄어들게 되었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아직도 ‘출입금지’가 만능의 보존책인 줄로 알고 문화재청은 옛 건물을 보존할 생각은 안하고 활용만 강조한다고 비판할 때면 정말로 속이 답답하다.
얼마 전 창덕궁의 내병조 구역의 건물에 사무실과 당직실 그리고 관리소장의 관사가 있는 것을 한 방송국에서 무슨 큰 문화재 파괴를 한 것인양 보도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좋게 말해서 견해 차이였고, 어떤 면에서는 일방적인 보도였다.
그것은 목조건축의 이런 생리를 모르고 보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실 자체가 왜곡되어 있었다. 창덕궁에 사무실과 당직실, 관사가 들어 있는 내병조 건물은 새로 지은 지 10년 밖에 안 되는 건물이다. 이 건물들은 창덕궁 인정전 주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그런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장기적으로 보존하기 위하여 사람(직원)들이 드나들고 숙직하며 살내음을 심어 넣기 위한 것이었다.
고궁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재예방이다. 그래서 숙직자를 반드시 두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관리소장이 창덕궁의 관사에서 산다는 것은 책임 있는 숙직자가 상근한다는 셈이다.
그런데 방송은 마치 몇 백년 된 건물에 살림집을 차린양 보도했다. 이후 문화재위원들이 와서 조사하고는 별 문제 없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다만 “언론에서 또 뭐라고 할지 모르니 관사로 사용하는 것은 중지하자”고들 했다. 나는 마지못해 내 뜻을 접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도 승복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뭐라 하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금이나 앞으로나 “모든 건축물은 사람이 살고 있을 때 제대로 보존된다”는 대원칙에서 우리의 옛 목조문화재들을 소중히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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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미학 - 건축
오늘 첫 시간 강의 내용은 ‘산사의 미학’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여러분들에게 우리나라 고건축 특히 사찰건축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강의를 준비를 했습니다. 산사라고 했을 적에 ‘산사가 산이 있는 곳에 절이 있으면 산사고 그것이 일본의 경우에는 안 그런가. 중국의 경우는 안 그런가’ 뭐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지만 산사의 전통을 갖게 되는 것은 정확하게 얘기해서 9세기를 넘어간 다음의 일입니다. 황룡사는 시내, 다운타운에 있었던 절의 구조였기 때문에 주변에 회랑을 두르고 높은 탑을 중심으로 건축이 조형이 됐던 겁니다.
이것이 산으로 들어가면서부터 9세기에 하대 신라에 들어와서 구산서문이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산사가 전개됩니다. 그것보다 먼저 전개되는 것이 의상대사의 화엄시찰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경주를 중심으로 해서 봤을 적에 화엄사나 부석사처럼 국경선 가까운 곳 쪽으로 큰 사찰을 지어서 국방의 목적으로 해서 대찰들을 지었던 것이 산사로 시작을 합니다마는 사실은 9세기에 하대 신라에 호족들이 발언을 해서 만들어 놓은 절들이 장흥 보림사의 대적광전 앞에 있는 9세기의 쌍탑 사찰인데 이와 같은 모습은 사실 해주에 있는 심원사처럼 산속에 그윽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산사의 개념으로 바뀌게 됩니다.
한국 산사는 깊은 산 속, 중·일은 산 꼭대기에
중국이나 일본에도 산에 절이 있습니다마는 그 산사의 의미가 우리하고는 상당히 다릅니다. 우선 산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산사의 형태가 다르고, 선암사나 이런 절에서 보이는 것처럼 높은 산이 아니고 깊은 산 중에 들어가 있는 것이 우리 산사가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얘기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있는 산사는 정말로 삼각형으로 서 있는 산 위에 꼭대기에 가서 있는 것인데 우리는 첩첩이 겹쳐져 있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서 아늑하게 자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산사의 개념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절이 들어앉을 적에 이와 같이 중앙에 정원을 놓고 ㅁ자로 집을 배치하고 그 다음에 이에 따라서 그 전각들을 증축을 하고 절의 사세에 따라 가지고 전각들을 짓게 되는데 거기에는 일정한 룰이 있었습니다.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을 들어가면 김봉렬 교수가 말하는 ‘산지 중정형, 산지에 있는 가운데 정원이 있는 형태다’하는 게 가운데 탑을 중심으로 해서 대웅전 앞에 만세루라고 하는 2층 누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야외 법당인데 때로는 거기에다가 불교 사물을 걸어놓고 북과 목어하고 운판을 걸어 놓은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기본적으로는 만세루가 야외 법당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검당과 적묵당이 배치되는데 적묵당은 선방이고 심검당은 부엌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절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고 있습니다마는 기본적으로는 대웅전, 적묵당, 만세루, 심검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절의 기본입니다.
그러니까 사찰을 만들 적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대웅전 하나만 있으면 되고 대웅전과 심검당 요사체만 있으면 되고 또 선방이 있고 야외 법당이 있고 그 다음에 목적에 따라서 나한을 모시고 있는 응진전이 참선하는 기도처가 되고 그 다음에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셔 놓은 곳에서 극락세계에 가게 해 달라고 빌 적에 명부전으로 가고 또 관음전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애로사항이 있으면 저분한테로 가서 빌고 그 다음에 조선 중기 이후에는 산신각을 뒤에 지어서 산신님, 칠성님 모시던 분들도 다 절로 흡합을 해서 불교가 끌어 앉게 되면서 사찰의 구조가 산의 산비탈을 이용하면서 자기 조형 사이트에 맞게 건물들을 배치를 해 놓아 가게 됩니다.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에 증축 사정에 따라서 지었는데 사실 이 현대 건축가들이 가서 봤을 적에는 가람배치가 아주 주변 환경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많은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도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마는 청령에 있는 관룡사 같은 절에 가서 보면 계속해서 증축을 해 놓았던 그 집들의 모습이 레벨까지 계산을 하고 사이즈까지 해서 보면 현대 건축가들이 누가 디자인을 했는가 하는 그런 찬사를 보내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큰 마당 만들며 주변 환경과 부조화
이런 좋은 전통을 갖고 있던 것이 20세기 그것도 20세기 후반 정확히 80년대 들어와서 다 망가져 버리기 시작합니다. 크고 호화로운 것을 좋아했던 그러한 풍조가 산사에 들어 와서 아늑한 공간으로 해서 아기자기하게 해 놓았던 것들을 전부 앞에다 큰 앞마당 심하게 얘기하면 군대 연병장처럼 엄청나게 큰 마당을 만들어 놓는 풍조가 들어오면서 우리 옛 사찰이 갖고 있었던 고즈넉한 맛을 다 죽이기 시작합니다.
진작에 문화재청에서 지정을 할 적에 부석사 무량수전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석사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을 하고 무량수전은 또 국보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해서 이 사이트를 변경시키지 못하게 했으면 지금 우리가 많은 것을 구제할 수 있었을 텐데 또 중요한 사찰은 그렇게 해서 지금 보호를 했습니다마는 지정되지 않은 건물만... 지정된 곳도 무위사나 이런 곳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주변 건물과 주변 환경이 맞지 않은 것으로 변해진 것이 최근 20~30년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옛날 비탈이 있다는 전제 하에 건물을 배치해서 자연 속에 건물이 들어가 같이 조화하던 것을 비탈의 조건을 되도록이면 평지에 가깝게 만들어 놓고 집을 지어놓으니까 주변 사이트와 입지 조건하고 건물하고 괴리감이 생기는 그러한 일들이 생겼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영암 월출산 지나서 강진에 있는 무위사라고 하는 절이 이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에 동백나무라든지 느티나무로 짜여져 있는 것이 아주 단아한 맞배지붕 집으로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은 양 옆을 다 터서 완전히 다 띄어 놓으니까 앞마당은 넓어졌지만 집은 덩그러니 허전하게 존재하고 있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워낙 건물 자체가 오래 되어서가 아니고 건물 자체가 이 측면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단아한 느낌을 주는 건물로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의 위용이 있기 때문에 주변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무위사라고 하는 말 값을 하는데 여기 이 기울기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 약간의 곡선이 보이고 있는데 이 측면관으로서 아름다운 것은 이것보다 예산에 있는 수덕사 대응전의 기울기가 고려시대 이 집이 훨씬 더 크기도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 앞에 있는 수덕사가 워낙에 제 책의 표현에 의하면 소림사 무대를 방불케 되어 있어서 그 쪽의 사진을 제가 쓰지를 않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이 기울기를 이렇게 지을 적에 보면 이따가 부석사의 무량수전의 경우에는 학이 날갯짓하고 올라갈 때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수덕사 대응전의 경우에는 학이 날갯짓하고 내려앉을 때에 그 날개의 모습이라는 표현을 써서 그래서 이것이 곡선이면서도 직선에 가까운 긴장감을 주게 됩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제하면서 아래쪽으로 내려앉는 그러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수덕사 하고 무위사의 면 분할을 보면 디자인적인 면 분할 뿐 아니라 둥근 기둥과 각진 기둥이 서로 교차를 해가면서 3D로 입면체로 해서 두드러지고 벽에 붙고 하는 리듬감까지 같이 어울리고 있기 때문에 건축 부재를 그대로 다 드러내 주면서 그로 인해서 건물이 갖고 있는 견고함도 노출시켜 주면서 우리 고건축이 목조건축이 갖고 있는 서까래와 대들보 부위를 전부 노출해 주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사찰 건물은 밖에서 보면 크지만 안에 들어가면 천장이 낮게 깔려 있어서 집이 굉장히 작아 보입니다.
안에 들어가 보면 높은 천장이 "시원"
그런데 우리 건축은 밖에서 보면 작은 것 같아도 신을 벗고 안에 들어갔을 적에는 천장으로 뚫려 있는 공간감이 워낙에 크게 감싸기 때문에 우리는 더 큰 공간감과 함께 건축 부재가 갖고 있는 싱싱한 노출이 천연스러움이 우리 건축미의 자연미와 함께 중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이중 서까래를 엮을 적에도 둥근 것이 속에 있으면 바깥에는 각이 진 것으로 내고 또 반대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마는 서까래를 낼 적에도 강약의 리듬 둥근 것과 또 각진 것의 리듬을 전부 보인 듯 보이지 않는 듯 활용을 해주는 것이 건축 낱낱부재에서도 특징입니다.
내소사에 들어가는 주차장에서 딱 보면 내소사 입구에 일주문이 보여 주고 안은 바로 보여 주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절이나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절들이 속이 깊기 때문에 처음에 보여 줄 적에는 그냥 와서 이 앞에서 딱 들어서게 되면 전나무 숲길로 1Km를 가고 그리고 가을에 가면 중간에 단풍나무들이 포진해 있고 저것이 끝나고 나면 벚꽃 나무 길을 지나서고 그 다음에 천왕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자리에 부여의 군수님도 와 계신데 부여의 무량사에 딱 갔을 적에 매표소에서 표 사서 들고 일주문 딱 들어갔을 적에 이 꺾어서 들어가는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그때 기분이 산사로 진입 할 적에 우리에게 주는 감동과 편안함 사실 거기부터가 건축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들어가는 이 길에서부터 건축적인 컨셉을 가지고 조형화 한 것을 이것을 무시해 버리고 자동차로 해서 획 들어가 버리고 난 다음에 그것은 건축으로 이용을 하고 사용을 했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거지요. 제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절에 갔을 적에는 여기에서부터 걸어가는 것으로 시작을 해야지 속세와 성역이 갖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가지고 나갈 적에나 들어올 적에나 그것을 느끼는 데에서 우리는 사찰 건축이 가지고 있는 묘미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내소사의 경우에는 요즘에 현대 시설을 또 이용을 해야 되는 것이 추세니까 이 길은 그대로 놓고 이 옆으로 해서 자동차 길을 따로 해서 놨기 때문에 내소사 진입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와도 바로 대웅전을 바로 보여주는 일은 없습니다. 돌계단을 지나서 봉래루라고 되어 있는 만세루 밑 계단으로 들어가면 이쪽에 심검당이 있고 저쪽에 적묵당이 있고 그리고 옆으로 이렇게 들어가면 대웅보전이 보이면서 이와 같이 앞마당에서 활짝 날개를 핀 팔자 지붕으로 만나는 게 뒤에 있는 능가산 그 중봉에 그 기세에 지지 않을 기세로 활짝 해서 뻗어 올리게 됩니다. 그것도 축대를 높이 쌓아 가지고서 번쩍 올려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만약에 이와 같은 산세 속에 무위사의 극락보존 같이 단아한 집을 놓았으면 집이 산세에 눌려서 아마 기운을 쓰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나라 사찰이 갖고 있는 것은 대개 한 네 가지 유형이 있는 중에 화엄사의 경우에는 각황전이 보여주는 것처럼 궁궐에 준할 수 있는 위엄을 갖추어 놓은 사찰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화엄사를 보면 마치 부처님을 왕과 같은 위상 속에서 궁궐에 모시는 것 같은 기분으로 모신 것입니다.
무위사 같은 절은 아주 고즈넉한 산사 속에서 선방과 함께 깊은 산속에 들어 가 있는 형상이 되고 그리고 부석사 같은 경우처럼 일망무제로 파노라마로 전개되어 있는 뷰를 전제로 해서 호방한 기상을 보여주는 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선암사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마치 안동 민속마을이나 하회마을 같은 그 마을을 형성함과 같은 분위기를 해 준 것이 있습니다. 아마 이 네 가지 중에 한 가지가 우리나라 산사가 들어가 앉는 그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화엄사 각황전 오르는 첫 계단 왜 가파른지
화엄사에 가서 보면 아래쪽에 이쪽에 각황전이 있고 지금 이쪽에 대웅전이 있는데 이 5층탑이 있는 이 아래가 계단이 보이잖아요. 계단이 이렇게 낮습니다. 이 아래쪽에서 계단으로 올라와야 위쪽으로 각황전하고 대웅전이 있으니까 더 위를 치켜 보는 게 되겠죠. 그런데 아래쪽 탑이 있는 마당에서 각황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그냥 이렇게 되어 있지 않고 이렇게 가파르게 올라갔다 5, 6개 올라 갔다. 그 다음에 옆으로 이렇게 기울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갖고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왜 처음부터 똑바로 쌓지 않고 한 5개의 계단은 이렇게 높이 쌓은 다음에 그 다음에 비스듬히 해 주었는가 그것을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법당으로 올라가는 그 길은 어찌됐든지 공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외나무다리를 건넌다든지 이런 기울기가 있는데 뒤꿈치를 허공에 매달고 살살 가게 한다든지 만세루 밑으로 긴다든지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계단을 그냥 뒤퉁맞게 올라가지 말고 조심스럽게 올라갔다가 편하게 올라가는 장치였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우리 문화에 대해서 뭔가 미심쩍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렇게 올라갔다 이렇게 된 것이 이렇게 쌓다 보니까 이렇게 쌓다가는 높아질 것 같으니까 이렇게 바꿨다’ ‘이렇게 처음에 5개 실수를 했다가 그 다음에 이렇게 바꿨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경우에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뭔가 다르게 알려주는 경우가 있거든요. 어떤 도자기의 아름다움도 미술사가가 얘기한 것 보다 그 도자기와 30년 동안 교감한 사람이 훨씬 더 멋진 얘기...제가 서산 마애불을 30년 지킨 아저씨 얘기가 어떤 미술사가의 얘기보다 더 우리에게 감동 있다고 얘기 하듯이 화엄사에 20몇 년 있었던 스님한테 물어봤어요. 만났을 적에 물어봤지요.
스님 화엄사 앞마당에서 각황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왜 가파르게 올라가다가 그 다음에 편안히 올라갈까요? 그랬더니 그 분 대답이 ‘아, 거기 계단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그러니까 그 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20년 동안 산 건데. 이것은 그 사람의 감각이 그 만큼 둔했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렇게 따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 계단의 구조였다고 하는 것인데 그 중에 어느 것이 답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그러한 이야기들이 우리들이 여태까지 화엄사에 관해서 쓴 책이라든지 답사기나 안내서 봤을 적에 그러한 이야기들은 빠져 있었는가. 이게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단지 기술적인 이야기들만 하고 있고 그것이 갖고 있는 전체, 거기에서 삶이 이루어지고 있고 종교 의식이 있고 하는 이러한 사용자 입장에서 이야기 했던 것이 없어지니까 우리들에게 그러한 섬세하게 읽혀지는 것이 누락된 것이 아니었나 하면서 저 자신은 질문으로 그것을 대신하겠습니다.
영암사 터가 갖고 있는 것은 지난 시간에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고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던 웅장한 산세 속에는 그것에 지지 않는 기세로 해서 들어갔던. 집은 없어졌지만 저 탑을 보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능히 알 수 있지요.
서산 개심사 윗쪽에 불만스러운 찻길
서산에 있는 개심사 세심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런 돌계단을 타고서 한 800미터를 계속계속해서 올라가는 거지요. 이게 지금 개심사의 경우에 이 위쪽으로 차길이 나있는데 지금 거기에도 저 자신은 조금 불만스러운 게 있습니다. 찻길을 내면서 좀더 바깥으로 더 뺐으면 좋은데 이 길을 올라가다 찻길하고 만나요. 그렇기 때문에 본래대로는 이 길로 쭉 올라가다 보면 대나무 신호대들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되면 바로 이런 길로 이 길로 해서 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들어가면 바로 만나는 것이 이 경지라고 하는 거울 鏡자에다가 못 池 자라고 해서 거울 못을 만나게 됩니다.
거울 못 鏡地 또는 映池 전부 다 거울 못이라는 뜻이고 이런 이름이 붙어있는 절에 거울 못이 붙어 있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청평사에 영지가 있지요. 그 영지를 바라보면 청평산이 그 연못 속에 참 아름답게 비칩니다. 불국사의 전설로 되어 있는 아사달 아사녀의 전설이 있는 영지에 가면 거기에 엄청난 콘도미니엄 짓다가 부도난 집이 있어서 아주 흉악하게 되어 있는데 그 괘능 옆으로 가면 있는 그 영지에 보면 그 영지에 토함사 자락이 전부 그림자로 이렇게 지고 있습니다. 여기 거울 못도 상황산 그림자가 받쳐 주기 때문에 전부 거울 못이라는 뜻입니다. 그림자 영자나 겨울 경자나 여기에 들어오면 옆으로 해서 통나무 외나무 다리로 해서 이렇게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앞에 여름철에 배롱나무가 굉장히 아름답게 큰 배롱나무가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점점 그윽하게 끌어 들여서 상왕산 개심사 해강 김규진이 쓴 만세루의 현판 이 안쪽에 보면 대웅보전, 심검당, 적묵당, 만세루로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앞에 있는 마당에는 꽃밭이 그냥 우리 학교나 집에서 보는 꽃밭과 같은 식의 아주 편안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뭐 절 집의 꽃밭이 다 그렇지 뭐 이 집만 그렇게 편한가 그렇게 또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불국사 앞마당에는 꽃밭이 없습니다. 아무데나 꽃밭을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고 그 꽃밭을 만들어 놨을 적에는 그 꽃밭이 이 절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 절대자가 갖고 있는 친절성을 극대화 할 것이냐 아니면 절대자가 갖고 있는 존엄의 가치를 극대화 할 것인가에 따라서 이 정원에 대한 플랜 자체가 달라져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개심사의 경우에는 경허스님이 썼던 선방 같은 데는 저 뒤로 산신각은 저 위에 느티나무 숲 위쪽으로 이렇게 퍼져 있게 되지요. 여기가 내장사인데 내장사 단풍이 이처럼 이발소 그림처럼 되어 있고 사실 이때에 가보면 사람만 바글거릴 뿐이지 이런 단풍은 못 봅니다마는 역시 만세루 밑으로 들어와서 대웅전하고 적묵당과 심검당으로 포치하고 있는 겁니다. 본래 여기 계단도 여기도 이렇게 평평하게 넓은 것이 아니고 중간에 꽃밭을 만들어서 배치를 했던 것인데 그것을 치웠습니다.
화려한 자연에는 화려하게 대응했던 가장 대표적인 게 내금강에 있는 보덕굴입니다. 이 외금강 옥류천 있는 금강산이 다 이렇게 생겼죠. 여기에 ‘이 산세에 지지 않을 암자 하나를 설계하시오’라고 했을 적에 조용하게 해야 될까? 아니면 보이지 않게 해야 될까?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을 수 있지요. 언제 지었는지 모릅니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 때부터 내려오고 최소한도 익재 이제현 그 시절에는 분명히 지었던 집이지요. 보덕굴이라고 하는 세 사람 들어가는 암자인데 7.2미터 바지랑대 위에 여기 창문 열려있는 이것만이 암자입니다. 그리고 이 암자를 가려면 지금 저는 이쪽에서 사진을 찍는데 같이 방북했던 고은 선생님이 먼저 이렇게 돌아서 이쪽에 지금 내려가고 있어요. 멀리서 보면 3층 집이지만 위에 있는 집들은 멀리서 보여질 게 외롭지 않게 보기 위한 장치이고 또 빗물이 내릴 적에 물받이로 해오는 기능일 것이고 여기 내려가서 여기 3명 들어가게 되면 벌써 흔들거리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철, 쇠줄을 가지고 허리띠를 양쪽으로 매가지고 집을 붙잡아 맺고 여기는 18개의 구리 동판을 가지고 이렇게 매어서 이렇게 바지랑대를 놓고 굴 자체는 암자 자체는 이 방 하나입니다. 옆에 이쪽 사진을 이렇게 해 놓으면 여기 ‘사회주의 건설만세’ 이렇게 큰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아늑하면서도 시야 툭터진 무량수전
이 집은 한옥 지붕이 어떤 식으로 지어도 네 가지 이상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 네 가지가 다 있습니다. 눈썹지붕, 팔작지붕, 맛배지붕, 우진각 지붕 그리고 단순하고 화려하고 단순하고 화려한 걸로 엮었습니다. 또 1층을 딱 올린 것은 우리가 3층 석탑이나 정림사탑처럼 1층은 껑충하게 올라가고 그 다음에 차곡차곡 해 주는 것과 같은 안정된 차감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게 잘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옛날 사람들이 한 것이 어쩌면 산에 가서 보면 좋은 절터는 다 스님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리고 거기에 지어진 집들은 그 산세에 맞춰서 있었던가 하는 것에 대해 가지고 산사의 미학이라고 하는 우리 개념 체제가 일찍이 정립돼서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미학이었다면 20세기 후반 21세기에 짓는 건축은 그 미학에 입각해서 지을 때 지금처럼 그냥 화려하고 큰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았을 텐데 특히 우리에게 너무나도 편안하게 해 놓은 것이 어떤 면에서 건축적인 의장이 미흡하게 들어간 것으로 오해되어 왔던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참으로 아쉬움을 남깁니다.
무량수전에 올라와서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눈길이 가는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 된 듯 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 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이게 3년전 수능 국어 시험에 나왔던 문장입니다.
무량수전이 여러분들이 가서 무량수전 팔작지붕의 기울기가 학이 날갯짓하고 올라가는 그 리드미컬 한 것을 보여주고 있고 그리고 여기에 주심포 집으로 해서 해놓은 것이 오직 필요한 것 이상의 군더더기는 하나도 붙여주지 않은 필요미 간결미가 지켜주고 있는 엄숙성. 이것이 이 건축의 요체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하는 로케이션이지요. 싸이트이지요. 싸이트에서 자리잡음인데 최순우 선생처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섰기 때문에 이 아름다움이 들어오는 것이고 이 시야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무량수전이 이 자리에 세워 진 거지요.
교토에 가면 ‘기요미즈데라’ 라고 하는 청수사라고 하는 절이 있는데 그 청수사라고 하는 절이 유명한 것은 그 절보다도 그 절에서 내려다보는 교토의 경관을 보여주는 것 때문에 청수사가 유명했습니다. 교토의 호텔 50층 자리 짓는 것 하고 이 기요미즈데라를 비롯한 교토 사찰하고 싸워서 결국은 15층으로 낮춰 놓았지요.
그러니까 지금도 교토 같은 곳에 50층을 짓겠다는 문화가 있는데 결국은 싸워서 또 이기는 문화가 있는 게 일본입니다. 한편으로는 지어야 된다고 하는 문화가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부석사 우리가 간혹 가다가 우리의 건축을 얘기하면 스케일을 얘기하는데 부석사 보다 더 큰 정원을 갖고 있는 절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저것을 다 자기의 정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여기에다가 이것을 지은 겁니다.
경복궁을 보고 자금성의 뭐 뒷간만하다고 얘기하지만 자금성이 어디 북악산, 인왕산 같은 산이 있습니까? 그것을 전제로 해서 지은 것이고 자금성 가 봐요. 처음부터 끝까지 뭐 때문에 갔다 왔는지 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처음에 본거나 끝에 가서 본거나 똑같잖아.
우리가 갖고 있는 산사 중에서 이런 시원한 눈 맛을 갖고 있었던 것이 여러 절중에서 부석사 하나로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 됩니다.
토사 막아주는 선암사 삼인당 연못
마지막으로 선암사를 가는데 선암사 입구에는 들어가면 삼인당이라고 하는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이 있는데 아직 일주문은 안 왔어요. 들어가는 진입로 자체가 건축이니까 이 연못이 있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토목공학적, 종교적, 미학적 여러 가지 조건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 연못이 있기 때문에 장마 때 물을 담가서 고아 가지고 속도를 줄여서 밑으로 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그 위에서 내려오는 경사 급한 데서 내려오는 물길에 그냥 토사가 생겨가지고 선암사 계곡으로 빠져 버렸을 거에요. 여기에 섬이 있는데 섬이 있기 때문에 물이 들어가서 한 대 때리면 물이 들어가서 때리면 여울이 져서 전체를 돌아 가지고서 나갑니다. 그러니까 물의 회로를 다 유도를 해주는 거지요. 또 섬이 있는 것은 섬이 있어야 연못이 커 보입니다. 이것이 섬이 없으면 연못이 요만한데 섬이 있음으로 해서 상상과 그 너머의 공간이 보이는 연출되는 겁니다.
조금 수준 높여서 얘기하면은 ‘루돌퍼 아르나이미’라는 사람이 쓴 ‘비주얼 퍼셉션’ 시각적 인식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보면 ‘인간의 시각적인 습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한 자세한 얘기들이 나오는 데 여기 무대라고 할 적에 본래 무대에서 가운데 시선이 많이 오지만 그 다음번에 많이 오는 곳은 저쪽입니다. 여기보다도 그래서 하무레트나 이런 연극을 보게 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뭐 하는 것은 저쪽 무대에서 이루어지고 칼 싸워서 죽이는 것은 다 이쪽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저쪽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제대로 오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고 이쪽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갑자기 무슨 사건이 나서 등장하는 사람. 이게 전부다가 오른쪽과 왼쪽에 대한 인간 심리에 대해서 나온 것을 그 사람이 그런 것을 다 분석을 한 분이에요. 그분이 ‘모든 물체는 공간 속에서 또 다른 공간감을 창출한다’ 서귀포 앞바다에서 그냥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 하고 거기에 참치잡이... 참치는 없겠지. 갈치잡이 배 세 개가 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공간감이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여기에도 이 속에 섬 하나를 넣어주는 것 하고 이것이 없는 것하고의 그 공간감의 차이를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종교적으로는 옛날 판유리가 나오기 전에 청동거울 말고 판유리 유리 거울로 색경으로 자기 전신을 비쳐볼 수 있는 것은 연못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뜻에서 心印 마음 心자에 도장印까지 포함해서 삼인당 이라고 하는 연못 이름을 갖고 있고 선암사에서는 이와 같은 연못이 6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암사 일주문으로 들어서게 되면 그 바로 앞에는 ‘육조고사’라고 하는 만세루의 이름이 써 있습니다. 추사의 제자 추사풍으로 썼기 때문에 이렇게 아주 굳세면서도 아주 힘 있고 개성적인 글씨를 썼어요. 육조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절. 달마 시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절. 그런 뜻이겠지요.
본래 선암사의 지금 23채의 당우가 있고 본래 50여채가 있었던 것인데 이 집이 처음 시작은 이렇게 시작했어요. 대웅전, 만세루, 심검당, 적묵당 4개로 시작했다가 명부전, 관음전, 응진전, 선방으로 이렇게 계속해서 뒤에 무전 이렇게 퍼져나갔습니다. 본래 마당이 이만했어요. 여기에 한 채 한 채 절 집을 지어 들어갔는데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포치가 되어 있어서 선암사에 가서 봤을 적에는 어떤 유서 깊은 마을을 온 것 같은 그런 편안함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선암사 뒷간 보물이든 국보든 지정 조사
선암사에 뒷간이 있는데 이 선암사 변소 내가 하여튼 보물이 되든 국보가 되든 하여튼 지정을 해야 된다고 지정 조사가 나갈 겁니다. 일본의 동복사라고 하는 절은 절의 뒷간은 국보로 지정이 됐어요. 여기에 써 있잖아요. ‘대변소 뒷간’ 하고. 이것을 요새 애들이 한문을 잘못 읽어서 깐디라고 읽어 가지고 선암사 깐디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 집은 지금도 사용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선암사에서는 화장실 냄새가 안 납니다. 그것은 그기류가 선암사 뒷간으로 해서 아래쪽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조계산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 그쪽으로 나지 선암사 안에서는 절대로 뒷간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선암사에는 천연덕스러운 데가 굉장히 많습니다. 선암사 저 위 달마전 위에 무락이 하나 있는데 동그란 무락이 하나 있었어요. 그걸로 사용했어. 그런데 당우가 늘어나고 사람이 늘어나니까 이 무락을 갈아야 되는 거에요. 그러면 요새 같으면 그거 걷어 내고서 이거 큰 것 놨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또 사람이 5채가 있다가 10채가 되고 20채가 됐다고 그럼 무락이 또 큰 거로 되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거 선암사는 어렵지 않게 했어요. 그냥 처음에 이거 쓰다가 많으니깐 놓았다가 4단 석조로 해가지고 지금 쓰고 있는 겁니다. 그게 지금 유명한 선암사 달마전의 4단 석조에요.
이집트에 가면 핫셉슈트라고 발음하기 힘든 여자 왕의 제사 지내던 장제전이라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계단이 하나인데 가까이 보면 둘로 끊어지면서 가는 곳이 있어요. 그것이 서양의 건축 속에서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 이집트의 3,500년 전에 핫셉슈트 장제전과 파르테논 신전 같은 석조 문화재로의 장엄미 단순성 속에서 필요한 부재 이상의 것은 들어가지 않는데 면 비례로도 그렇고 종묘를 보고 세계 건축가들이 놀랜 것이 기둥하고 지붕 벽면 외에 다른 공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단순한 공간으로 고요... 제사 지나는 공간이기 때문에 정밀하고 고요하면서도 엄숙해야 되는 것이거든요. ‘이 고요의 감정을 엄숙의 느낌을 건축으로 이와 같이 실현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여러분들이 종묘에 갔을 적에 보면 지금 박석이 깔려 있는데 종묘 문 앞에 딱 들어서면 이 종묘 앞에 월대라고 박석 깔려 있는 것이 우리 가슴 높이에서 옵니다.
여기 여러분이 서면 가슴 높이 내 가슴 높이에 묻혀 있는 거지요. 내가 섰는데 월대가 밑으로 있는 것 하고 내 가슴 높이에서 이렇게 전개되고 그 위에 지붕이 일직선으로 해서 쭉 단순하게 가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입니다. 이게 자기 선대를 제사 지내는 엄숙성을 그렇게 지켜왔어요. 가면 저기 혼유도 외에 옆에 박석들이 아주 울퉁불퉁 하게 된 것 가지고서는 사람들이 저걸 헐뜯어요. ‘한국 사람들 다 잘하는 마무리가 약해 갖고 이렇게 지저분하게 저것 반듯이 못 다듬는다’고 이렇게 얘기해요.
저 박석이 없어서 창덕궁 비원에 인정전 앞을 화강암을 돌을 짜 가지고서는 이렇게 쫙 깔려 있습니다. 가서 보십시오. 그 모양이 얼마나 못생겼는가. 또 경복궁에 한쪽에서는 거기에 이것을 화강암을 반듯하게 해서 놨다가 하루 만에 드러낸 일이 있어요. 눈이 부셔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박석은 난반사를 시켜 줍니다. 그리고 이 전체가 기울기가 있는데 근정전 앞에 있는 것도 그래요. 이 박석도 도로 포장하는 데 쓰는 네 치 두께의 판때기로 우리가 이번에 문화재청에서 강화도 석모도에서 박석 광산을 찾아 가지고 지금 우리가 전부 궁릉에 이것들을 전부다 보수할 계획인데 비가 왔을 적에 난반사를 시켜주기 때문에 경복궁이나 종묘 월대에 긍정전이나 월대에 갔을 때 종묘에 갔을 때 눈이 절대 부시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장마철에 비가 왔을 적에 얼마나 폭우가 쏟아집니까? 만약에 이게 화강암으로 쭉 했으면 하수도로 빠지지 못해서 역류 해 버릴 거에요. 그런데 이것은 박석을 따라서 꾸불탕 꾸불탕 이렇게 물길이 돌아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장도로 10미터 갈 것을 비포장 도로 80미터로 돌려 가지고 물길이 고였다 넘어갔다 고였다 넘어갔다 유속을 죽여가면서 빨아가는 효과를 합니다. 조상들의 그 깊은 뜻은 모르고 ‘다 잘했는데 왜 박석은 왜 저렇게’ 서양건축가들은 저렇게 정제된 곳에 이쪽에 돌판을 깔면서 모더니즘적 감각으로 이렇게 무질서한 것을 짜깁기를 해서 질서를 놓은 것. 이렇게 칭찬을 해가는 것은 아주 한국에 대해서 감탄할 만반의 준비를 한 사람들이 해석한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에 존경심이 없는 사람들은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얘기를 해 왔던 겁니다. 종묘, 그것이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첫 번째 되어 있는가 이 다음에 한번 가 보십시오. 이러한 풍광을 우리는 잊어 버렸죠. 더 이상 찾을 길이 없지요.
13개 지구 왕릉 묶어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왕릉도 그냥 왕릉이라고 하면 옛날 임금 묻힌데 묏자리 좋고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할는지 모르지만 왕릉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죽음의 공간을 가장 장엄하게 연출해 놓은 것이 왕릉입니다. 왕릉을 축소해서 놓으면 일반 민묘와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조선시대 사람들이 우리는 어차피 죽는데 그 죽음의 공간을 어떻게 장엄하는 것이 가장 성스럽고 그리고 망자에 대해서 살아남은 자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를 연출 해 놓은 최고의 형태의 건축적인 장치인 것입니다.
이 왕릉이 13개 지구에 능원묘 다 해서 100개가 넘습니다. 이런 공간이 서울 주변에 수도권에 있는 것이 이게 다 묶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이 저희 문화재청의 뜻이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왕릉은 밑에서 쳐다보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고 능치 위에 올라가서 보게 되면 조각에서부터 묏자리가 앉아 있는 주변모습하고 해서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기 때문에 어떤 능이든지 한군데는 능치 위로 올라가게 할 수 있는 개방시설을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구릉에 가서 아예 이쪽에 선조대왕 몽릉지구는 특별관람지역으로 천원 더 낸 사람은 그 속에 마음대로 가서 뒹굴든지 말든지 들어가게 개방을 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건축의 모든 제사 공간이나 능의 구조나 또는 절 집이나 다만 양반 가옥이나 이쪽에 대해가지고 제가 강의를 못했습니다마는 이런 시각 속에서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건축이 산사의 미학이 주고 있는 게 우리 시대의 건축이 주는 그 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현대의 느낌과 또 한편으로는 전통이 갖고 있는 위대함. 이것을 우리의 삶 공간에서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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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회연재_①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북악산 서울 성곽 | ||||||||||
-서울성곽- | ||||||||||
글 : 유홍준 문화재청장 서울 성곽 (사적 및 명승 제10호) 1392년 7월17일 개성 수창궁壽昌宮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대신들이 겨울철을 앞두고 공사를 일으킬 수 없다고 반대하자, 시기를 연기하여 궁궐과 종묘, 사직, 관공서 등을 건축한 뒤에 천도하기로 하였다. 이듬해(1393년) 정월에 권중화權中和가 풍수지리학상 계룡산이 새 도읍으로 가장 좋은 곳이라고 건의하자, 태조는 직접 무학대사無學大師와 지관들을 데리고 계룡산으로 내려가 신도新都를 정하고 각 도에서 인부를 차출하여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하륜河崙이 송나라 호순신胡舜臣의 지리서를 이용하여 계룡산 신도의 부당함을 상소하자 태조는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권중화, 정도전鄭道傳 등을 불러 하륜이 제기한 문제를 검토하도록 했다. 그 결과 계룡산이 신도로는 적절치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신도 후보지를 물색하기에 이르렀다.
신도 후보지가 저마다의 풍수 이론에 따라 이견이 크자 태조는 재위 3년(1394) 8월8일부터 13일까지, 무학대사를 대동하고 자신이 직접 현장을 시찰한 다음 지금의 서울 지역으로 천도할 것을 결정하였다. 태조는 곧바로 정도전을 한양에 파견하여 도시 건설 전체를 맡기고, 9월에는 신도조성도감新都造成都監, 신도읍 조성 임시 본부을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정도전은 권중화 등과 협력하여 종묘, 사직, 궁궐, 도로, 시장 등 도시계획을 작성하였고 그해 12월에 종묘의 터 닦기를 시작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약 10개월 후인 태조 4년(1395) 9월29일에 대묘와 새 궁궐이 완성되었다.(태조가 경복궁에 입주한 것은 12월 28일이었다.) 이 공사에 필요한 인력은 전국의 승려들을 동원하여 충당하였고, 한양과 가까운 경기도, 충청도의 민간 장정들은 농한기인 1, 2월과 8, 9월 가을에만 동원하였다.
경복궁, 종묘, 사직단 건립이 완성된 다음 달인 윤9월, 태조는 곧바로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함과 동시에 정도전에게 도성 축조 기본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이때에도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의견이 엇갈려 인왕산 선바위를 서울 성곽 안으로 할 것인가, 바깥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격렬히 대립하였다. 《조선불교통사》에 전해지는 일화에 의하면 양쪽의 주장이 너무 강하여 태조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어느 날 큰 눈이 내렸다. 이튿날 아침 한양의 안쪽은 눈이 녹은 반면에 바깥쪽은 여전히 녹지 않고 하얗게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눈 녹은 선을 따라 성곽의 선을 그었다고 한다. 그때 인왕산 선바위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서울 성곽 바깥쪽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결정된 서울 성곽은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59,500척(약 18.2km)이었다. 서울 성곽은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축조하기로 계획되었는데,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만 하기로 하고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396년 1, 2월 49일 동안에 걸친 1차 공사에는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등에서 11만8천 명을 동원하였다. 이때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는 전 해에 궁궐 공사 때 차출되었기 때문에 면제시켰고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도 국방상의 임무를 고려하여 동원하지 않았다. 1차 공사에서 서울 성곽은 대부분 완공되었고, 다만 동대문 지역은 웅덩이로 되어 있어 말뚝을 박고 돌을 채워 기초를 다져야 했기 때문에 늦어질 수밖에 없어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다.
성곽의 공사는 총 길이 59,500척을 600척(약 180m) 기준으로 모두 97구역으로 나누어 진행하였고, 각 구역을 북악산 산마루에서 동쪽으로 돌면서 천자문千字文의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천天 자부터 조민벌죄弔民罰罪의 조弔자까지 이름을 붙였다. 성곽 전체를 600척으로 나누면 97척 하고도 1,300척이 남는데 이는 인왕산 부근 자연 암반 절벽을 그대로 성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시 가을 농한기인 8, 9월에는 49일 동안 7만9천4백 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고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문루의 누각들은 공사 후 건축 기술이 뛰어난 승려들을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남대문은 2년 뒤인 태조 7년(1398)에야 준공되었다. 그후 27년이 지난 세종 4년(1422), 세종은 서울 성곽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 정비 작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는 결과적으로 성곽 전체를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이었으며, 1, 2월 농한기 38일 동안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천2백 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공사였고, 사망자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지금 서울 성곽의 기본 골격이다.
이후 서울 성곽을 재정비했던 숙종 30년(1704)까지 260년 동안 성곽은 부분적으로 보수했을 뿐 크게 붕괴된 곳은 없었다. 본래 서울 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구실을 하지 못했고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기 때문에 전란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다. 임진왜란의 경험을 토대로 인조는 서울 성곽과는 별도로 전쟁에 대비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과 강도성江都城, 강화도 산성을 수축하였다. 그러나 인조14년(1636)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에 맺은 ‘삼전도 맹약盟約’ 중에 ‘조선은 앞으로 기존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 성곽을 쌓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 서울 성곽은 방치된 상태로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근 70년 지난 숙종 30년(1704)에 이르러,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 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 이 공사는 6년에 걸쳐 시행되었고, 서울 성곽이 정비되자 숙종은 이듬해인 재위 37년(1711), 곧바로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수축하여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 성곽이다.
이후 고종36년(1899)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에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를 부설하기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려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2006년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서울 성곽을 가능한 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발간한 [북악산 서울성곽]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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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회연재_② ] 북악산 서울 성곽, 성벽에 관하여 ... | ||||||||||||||
글 : 유홍준 문화재청장 성벽에 새겨진 글자들 서울 성곽의 성벽 돌 중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들이 있다. 이는 대개 성벽 축조 당시 공사 구역을 표시한 것(천자문의 글자 劒, 崗, 辰 등), 공사 담당 군현(의령, 흥해 등), 그리고 공사 일자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 등을 표시한 것이다. 서울 성곽은 태조 5년(1396) 처음 쌓을 때부터 전체 59,500척(약18.2km)을 600척 단위로 나누어 총 97구역으로 구획하고 천자문 순서로 표시하였다. 북악산 정상에서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천天 자로 시작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조민벌죄弔民伐罪, 불쌍한 백성을 돕고 죄지은 자를 벌하다의 조弔 자에서 끝난다. 성벽 곳곳에는 ‘진자종면辰字終面, 진자 구역 끝지점’, ‘강자육백척崗字六百尺, 강자구역 600척’ 등 각 구역을 표시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조선 팔도 각 지역에서 인원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도道 또는 현縣의 담당 지역을 표시하여 ‘의령시면宜寧始面, 경상남도 의령 시작 지점’, ‘흥해시면興海始面,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 시작 지점’ 등의 글씨가 성벽 돌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공사 실명제는 이후에도 계속되어 후대에는 아예 감독관의 직책과 이름 및 날짜가 기록된 것도 있다. 가경 9년(1804년) 갑자 10월일嘉慶九年 甲子 十月日 패장牌將 오재민吳再敏, 감관監官 이동한李東翰 변수邊首, 기술자, 편수 용성휘龍聖輝 등을 기록한 글씨도 보인다. [청운대 부근 성벽에 새겨진 글자들로, 공사를 감독한 사람의 이름과 날짜를 적어 공사 실명제를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성벽 축조의 시대별 차이 [태조 5년(1396)의 성벽으로 큰 메주만 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다.] [세종 4년(1422)의 성벽으로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다.] [숙종 30년(1704)의 성벽으로 2자×2자의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으며, 장정 4명이 들 수 있는 무게이다.] 성벽의 구조 [ 곡장曲墻 또는 치성雉城 ]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로 성곽 중 일부를 자연 지세에 맞추어 돌출시킨 것을 치 또는 곡성이라고 부른다. 치雉는 생김새가 꿩의 머리처럼 돌출되었다고 해서 붙인 것이며, 각이 진 것을 치성이라고 하고 반원형으로 굽은 것을 곡장이라고 한다. [반원형 곡장, 각형 치] [ 여장女墻 ] 성곽 위의 담장을 여장 또는 성가퀴라고 부른다. 아군의 몸을 가리면서 적을 총이나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로 총격전이 잦아지면서 많이 축조되었다. 1개 여장을 1타라 부르며 1타에는 3개의 총 쏘는 구멍이 있다. 가까운 곳을 쏘는 근총안近銃眼 1개가 한가운데 있고, 양옆에는 먼 데를 쏘는 원총안遠銃眼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원총안은 대개 구멍을 수평으로 뚫은 반면 근총안은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 촛대바위와 청운대 사이 길게 돌출된 곡장] [곡장 위의 여장] ------------------------------------------------------------------------- *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발간한 [북악산 서울성곽]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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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들라로슈 Paul Delaroche,
[어린 순교자]The Young Martyr
원제목:A Christian Martyr Drowned in the Tiber During the Reign of Diocletian
디오클레티아누스( Diocletianus)왕조 하에서 티베르강에 던져저 죽은 그리스도 순교 소녀
(12)Andrew Wyeth, Master Bedroom
[밤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ce at Night
[춤추는 곰]Dancing Bears
Nighthawks
(16)Pablo Picasso, Blue Nude
View of Toledo
(18)Vincent van Gogh Starry Night over the Rhone
The Lady of Shalo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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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램프 수요 줄자 수제 유리공예품으로 승부
발상의 전환이 ‘오타루=유리’ 낳았다
“오타루에 와야만 살 수 있다” 아예 통신판매도 안 해
관광객 ‘쇼핑 필수품’ 인기… 지역 경제 부흥 이끌어
○ 지역 명물 상품으로 우뚝
창업자 아사하라 히사키치(淺原久吉)는 오사카(大阪)에서 유리공법을 배운 뒤 1901년 오타루로 터전을 옮겨 석유램프를 만들었다. 오타루가 홋카이도 개척의 관문으로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회사 이름은 ‘아사하라 가라스’.
그 뒤 그는 청어 잡이에 사용하는 ‘우키타마(부낭)’를 개발해 홋카이도 어업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는 평을 얻었다. 낙농 농가를 돌며 개량을 거듭한 뒤 내놓은 우유병은 공급이 달려 1911년에는 대량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세웠다.
2대 히사시게(久重)가 판매부문 책임자가 된 1940년대, 회사는 홋카이도 일대에 공장을 5개나 운영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는 법. 전기 보급과 함께 가정에서 석유램프가 밀려났고 어업이 쇠퇴하면서 부낭 수요도 격감했다. 플라스틱과 종이팩의 공습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오타루 경제도 차츰 쇠퇴해 갔다.
1970년, 25세에 가업을 잇게 된 현 사장 겐조 씨는 중대 결단을 내렸다. 악화된 경영을 타개하기 위해 문을 일단 닫고 새 출발을 하기로 한 것.
주변에서는 반대가 극심했지만 그는 “회사의 존재 방식이 변하고 있다”며 밀어붙였다.
“새 회사 이름은 듣기 쉬우면서도 강한 느낌을 주는 ‘기타(北)’를 넣기로 했습니다. ‘北’이란 한자가 좌우대칭이라 유리에 새기면 뒷면에서도 읽힌다는 것도 큰 이유였죠.”
1971년 ‘기타이치 가라스’가 탄생했다. 주력 상품도 램프가 아니라 도시생활인을 겨냥한 고급 수제 유리공예품으로 전환했다. 자신은 판매를 맡고 과거의 장인들에게 납품을 의뢰했다. 고객이 직접 램프 불빛의 장점을 체험케 하기 위해 찻집과 레스토랑을 열고 그 귀퉁이에서 유리공예품을 팔았다.
마침 전국에 배낭여행 바람이 불었다. 오타루의 유리제품은 배낭족의 선물용으로 팔려나가 전국에 전파됐다.
이렇게 해서 차츰 늘려간 매장이 현재 10곳, 총 6600m²의 공간에서 34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한다. 매출은 철따라 들쭉날쭉한 관광객 수와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한다.
○ 오타루와 운명을 같이하다
회사의 외형이 변하는 가운데서도 창업자로부터 겐조 씨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고객의 생활과 밀착한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제조업)’ 정신.
“회사도 시대와 함께 변해야 합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을 찾아 끊임없이 스스로 변신하는 것, 저는 그것이 창업자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타이치 가라스의 제품은 오타루 한정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 통신판매도 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제품 카탈로그도 없다. 고객이 직접 와서 보고 골라 달라는 것.
“도쿄(東京) 같은 곳에 매장을 내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고객들이 반대합니다. 기타이치 유리제품은 오타루에 와서 사는 게 좋다는 겁니다.”
3호관 내에서도 167개의 석유램프만으로 조명을 갖춘 레스토랑 ‘기타이치 홀’은 아사하라 사장의 자랑거리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단골들이 ‘오타루에 램프가 없다면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분들의 마음만큼 소중한 게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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