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회연재_② ] 북악산 서울 성곽, 성벽에 관하여 ...
글 : 유홍준 문화재청장


성벽에 새겨진 글자들
서울 성곽의 성벽 돌 중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들이 있다. 이는 대개 성벽 축조 당시 공사 구역을 표시한 것(천자문의 글자 劒, 崗, 辰 등), 공사 담당 군현(의령, 흥해 등), 그리고 공사 일자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 등을 표시한 것이다.
서울 성곽은 태조 5년(1396) 처음 쌓을 때부터 전체 59,500척(약18.2km)을 600척 단위로 나누어 총 97구역으로 구획하고 천자문 순서로 표시하였다. 북악산 정상에서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천天 자로 시작하여 낙산, 남산, 인왕산을 거쳐 조민벌죄弔民伐罪, 불쌍한 백성을 돕고 죄지은 자를 벌하다의 조弔 자에서 끝난다.
성벽 곳곳에는 ‘진자종면辰字終面, 진자 구역 끝지점’, ‘강자육백척崗字六百尺, 강자구역 600척’ 등 각 구역을 표시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조선 팔도 각 지역에서 인원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도道 또는 현縣의 담당 지역을 표시하여 ‘의령시면宜寧始面, 경상남도 의령 시작 지점’, ‘흥해시면興海始面,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 시작 지점’ 등의 글씨가 성벽 돌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공사 실명제는 이후에도 계속되어 후대에는 아예 감독관의 직책과 이름 및 날짜가 기록된 것도 있다.
가경 9년(1804년) 갑자 10월일嘉慶九年 甲子 十月日 패장牌將 오재민吳再敏, 감관監官 이동한李東翰 변수邊首, 기술자, 편수 용성휘龍聖輝 등을 기록한 글씨도 보인다.

[청운대 부근 성벽에 새겨진 글자들로, 공사를 감독한 사람의 이름과 날짜를 적어 공사 실명제를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성벽 축조의 시대별 차이

[태조 5년(1396)의 성벽으로 큰 메주만 한 크기의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다.]


[세종 4년(1422)의 성벽으로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다.]


[숙종 30년(1704)의 성벽으로 2자×2자의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으며, 장정 4명이 들 수 있는 무게이다.]


성벽의 구조
[ 곡장曲墻 또는 치성雉城 ]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로 성곽 중 일부를 자연 지세에 맞추어 돌출시킨 것을 치 또는 곡성이라고 부른다. 치雉는 생김새가 꿩의 머리처럼 돌출되었다고 해서 붙인 것이며, 각이 진 것을 치성이라고 하고 반원형으로 굽은 것을 곡장이라고 한다.

[반원형 곡장, 각형 치]


[ 여장女墻 ]
성곽 위의 담장을 여장 또는 성가퀴라고 부른다. 아군의 몸을 가리면서 적을 총이나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시설로 총격전이 잦아지면서 많이 축조되었다. 1개 여장을 1타라 부르며 1타에는 3개의 총 쏘는 구멍이 있다. 가까운 곳을 쏘는 근총안近銃眼 1개가 한가운데 있고, 양옆에는 먼 데를 쏘는 원총안遠銃眼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원총안은 대개 구멍을 수평으로 뚫은 반면 근총안은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 촛대바위와 청운대 사이 길게 돌출된 곡장]


[곡장 위의 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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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발간한 [북악산 서울성곽]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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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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