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따뜻한 시간 되세요


                                                 신현림

 



따뜻한 외투와 모자를 쓰면 바람이 불었고

따뜻한 가방을 메면 빵과 우유와 과일이 담겨 왔다

따뜻한 영화를 생각하면 비디오가 돌아가고

 

밥 딜런의 「유 빌롱 투 미」는

자동응답기에서 융단처럼 펼쳐진다

“고맙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군밤처럼 따뜻한 인사를 남기고

내가 만지면 기뻐 흐늘대는 문을 잠근다

아팠으나 따뜻했던 기억들이 떠밀려 온다

 

한겨울 유형지처럼 방은 추워도 책이 있어 아늑했지

아버지 어머니, 이만큼 따뜻한 이불도 없을 거야

형제 자매들, 이만큼 아름다운 나무도 없을 거야

지긋지긋했던 다툼도 이젠 뼈아프게 그립다

 

보길도 쓸쓸한 시월 들녘 사람이 반가워 울던 황소

그 큰 눈망울처럼 서글픈 해가 질 때나

정선 땅 굽이굽이 출렁이는 길 위에서

이 풍경이 바로 인생이야, 되뇌고

붉은 들꽃을 씹으며 목이 메어 나는 울었다

 

내 고향 부곡 역사(驛舍)와 철로 가에

눈이 퍼붓던 날은 생각해도 목이 메었다

목메게 아름다운 기억을 굴려가며

끝없는 시간, 끝없이 사라진 나날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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