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옆에 집을 짓고


                                한기팔(1937~2023)

 

 

 



바다 옆에

집을 짓고 살다 보니까

밤이면

파도소리, 슴새 울음소리 들으며

별빛 베고

섬 그늘 덮고 자느니

그리움이 병인 양 하여

잠 없는 밤

늙은 아내와

서로 기댈

따뜻한 등이 있어

서천에 기우는 등 시린 눈썹달이

시샘하며 엿보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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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팔 시인은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태어났다. 
시인은 시 ‘보목리(甫木里) 사람들’에서 “보오보오/ 물오리 떼 사뿐히 내려앉은/ 섶섬 그늘/ 만조때가 되거든 와서 보게”라고 써서 고향의 풍광을 소개했고, “이 시대의 양심인 양/ 아무 말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라고 써서 고향 사람들의 인품을 칭송했다.


파도 소리가 앞마당까지 철써덕철써덕 밀려오는 곳에 시인의 집이 있다. 
먼바다와 섬과 수평선을 바라보며 산다. 
시인은 “아침을 나는 새처럼/ 깨끗하게 살기 위하여”라고 노래하기도 했는데, 그런 새의 울음소리가 밤에도 들려왔을 것이다.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호젓하고 또 때로 적적하기도 했을 터이다. 
그래도 아내에게 의지할 수 있다. 등을 비스듬히 댈 아내의 따뜻한 등이 있다. 
시인이 “햇빛 고운 날/ 목련꽃 그늘에/ 늙은 아내와 앉으니/ 아내가 늙어서 예쁘다”라고 노래한 그 아내가 옆에 있다. 
서쪽 하늘에는 눈썹 모양의 달이 떴다. 깜깜한 공중에 홀로 있으니 기댈 데가 없어서 등이 시려 보인다. 
시인은 파도처럼 뒤척이다 이내 잠잠하게 있는 수평선처럼 고요한 잠에 들었을 것이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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