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
강은교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
‘이렇게’를 넣은 것이 신의 한 수.
시의 방관자였던 독자들이 ‘이렇게’를 보며 적극적인 행위자로 동참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나무들이 흔들리는 숲에서 나도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 내가 나무 넷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착시.
이것이 시인의 능력이며 리얼리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가서 우리 함께 싸우자! 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1970년대와 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서 항거했던 이 나라 풀뿌리 민초들의 저항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다.
존재와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양새가 어딘지 불교 철학과 닿아 있다.
시인도 그렇게 흔들리며 고개를 젓던 나무의 하나였기에 이렇게 빼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이 시에 나무들을 흔들리게 하는 ‘바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를 한 줄 한 줄 베끼다 보면 예전에 모르던 시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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