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이병률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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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감정을 이처럼 절절하게 노래한 시도 드물 것이다. 
이 시는 사랑의 사건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역의 플랫폼에서 연인을 배웅하며 눈물을 삼키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였으나 그 빛의 양감(量感)이 늘 모자란 듯 느껴졌던 때가 있었고, 또 사랑의 빛이 분에 넘치게 넉넉해서 가슴이 벅찰 때도 있었다. 
그이가 마냥 좋아 그이가 가는 대로 똑같이 가고만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그이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 사랑의 몸이 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 사랑이 영원할 것을 예감한 적이 있었다. 사랑이 세차게 솟아오르던 때가 있었다.


시인은 시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에서 “사랑을 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생의 암호를 풀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러고 삽니까”라고 썼다. 
우리는 사랑을 감각하기 때문에 밤의 대문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꽃다발을 품에 안아 개화하고, 의지할 데를 잃어 빈 의자처럼 서고, 문장을 뜯어고치며 긴 편지를 쓴다. 
그리하여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다른 내가 된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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