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오어사(吾魚寺) 가는 길을 묻는다면
정일근
누가 오어사 가는 길을 묻는다면
마음이 내어주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해주리라
때가 되면 갈아야 하는 소모성 부품처럼
벌써 삶에서 너덜거리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고
일박의 한뎃잠으로도 쉽게 저려오는 가장의 등뼈
점점 멀리서 보아야 선명히 보이는 두 눈과
여기저기 돋아나는 불가항력의 흰머리카락
폄이 있으면 굽힘도 있음을 아는 굴신(屈伸)의 세월이 찾아와
아침 술국의 뜨거움도 가슴속에선 서늘해지는
어느새 그런 나이에 접어들었네
오래지 않아 불혹의 생이 찾아오려니
벼랑 사이 외줄에도 기우뚱거리지 않고
한 점 미혹 없이 걸어갈 수 있으랴
오전이 다 지나가고 오후의 시간이 시작되는 꽃밭에서
나는 어떤 향기와 색깔로 다시 피어날 수 있으랴
지치고 남루한 육신 자루를 동해 바닷가에 널어놓고
마음의 물고기를 따라 오어사 찾아가는 길
불혹 지나 지천명, 지천명 지나 이순
세월의 물살 유유히 헤엄쳐
저물기 전에 산문에 닿을 수 있다면
오어사 대웅전 빗꽃살 문양의 연꽃처럼
고색과 창연으로 나는 활짝 피어날 수 있으려니
누가 오어사 가는 길을 묻는다면
싱싱히 살아 앞장서는
내 마음의 물고기 한 마리 보여주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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