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5시 경기 화성시 향남읍의 7층짜리 상가. 건물 1~2층엔 스타벅스, 3~5층엔 신경외과·피부과 등 병원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6~7층에는 해외 유학·수능 대비 입시 학원, 그리고 프리미엄 스터디 카페가 보였다. 인근 상가도 마찬가지다.
‘초중고 내신’ ‘수능 영어’ 간판을 내건 학원들이 즐비하고, 1층 편의점은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편의점 알바생 강모(24)씨는 “손님 10명 중 6~7명이 학교 마치고 학원 온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18일 오후 김포시 고촌읍 보름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학교를 마친 학생이 학원이 빼곡히 들어선 상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고촌읍은 서울 강서구와 맞닿아 있고 서울 목동 학원가에 차로 30분이면 도착하지만, 농어촌 특별전형 지역에 해당한다.>
2009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향남신도시 1지구엔 1만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근처 향남제약산업단지, 기아자동차 공장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초중고 10여 곳과 공공도서관, 공원이 있어 교육 환경이 좋다.
올해 서울대 합격자 배출 10위권 고교인 화성고도 차로 10분 거리다. 행정구역은 ‘읍’이지만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곳은 대학 입시에서 ‘농어촌 특별전형’ 대상 지역이다.
향남읍에서 18년간 장사를 하는 김모(66)씨는 “근처에 화성고가 있어서 여기 학원들이 엄청 잘되고, 부모들 대부분 인근 산업 단지에서 일한다”면서 “이 동네 애들이 농어촌 전형 대상인 건 의아하다”고 했다.
‘농어촌 특별전형’은 도시에 비해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돕기 위해 20년 전 도입된 제도다.
1994년 연세대를 시작으로 1996년 전국 대학에 확대됐다.
읍·면이나 도서·벽지 지역 고교생이 대상이다. 학생이 부모와 함께 해당 지역에 살면서 중·고교 6년을 다니면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급으로 개발된 읍·면 지역이 늘면서 이들 지역까지 ‘농어촌 특별전형’ 혜택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전형은 해당 전형 지원자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일반전형보다 입학이 수월한 편이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9360명(정원 외 포함)에 달했다.
보통 읍이나 군이 ‘시’로 승격하려면 인구가 5만명이 넘어야 하는데, 읍인데도 인구 5만명이 넘는 곳이 향남읍(8만명)을 비롯해 전국 19곳(2023년 기준)에 달한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남양주시 화도읍(11만명), 남양주시 진접읍·화성시 봉담읍·달성군 다사읍(9만명) 등이다.
인구 5만명이 사는 김포시 고촌읍도 행정구역은 경기도지만 서울 강서구와 맞닿아 있어 목동 학원가에 차로 30분이면 도착한다.
그래서 아예 농어촌 특별전형을 노리고 이사 가는 학부모들도 있다.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촌은 신이 내린 농어촌 전형 지역” “농어촌 전형을 생각해 고촌읍으로 이사 왔다”는 글도 올라온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인구 9만명)도 비슷한 경우다. 천안아산역이 있어 서울까지 KTX로 1시간, SRT로 40분 걸린다.
아산시 주민 4명 중 1명은 배방읍에 살 정도인데도 행정구역은 ‘읍’이라 ‘농어촌 특별전형’ 대상이다.
배방읍 인구가 크게 늘어 2019년엔 여러 동(洞)으로 나누는 논의가 진행됐지만, 주민 의견 수렴에서 약 90%가 반대해 무산되기도 했다.
세금 감면 등 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학부모들은 ‘농어촌 특별전형’을 포기해야 하는 점 때문에 반대했다고 한다.
2023년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하겠다’는 ‘메가시티’ 구상을 밝혔을 때도 ‘서울 김포구’가 되는 걸 반기는 반응도 많았지만 반면 대입에서 불리해진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컸다.
교육계에서는 “오히려 역차별을 낳는 농어촌 특별전형을 손볼 때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교육 환경이 열악하지 않은 읍·면 지역은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수험생의 ‘소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거론된다.(250319)
☞농어촌 특별전형
도시에 비해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돕기 위해, 교육부가 1996학년도부터 도입한 제도. 지방자치법상 읍·면 지역이거나 교육진흥법상 도서·벽지 지역이 해당된다.
학생이 부모와 함께 해당 지역에 살면서 중·고교 6년을 다녔거나, 학생 혼자 해당 지역에 살면서 초·중·고교 12년을 다녔으면 지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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