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에 세계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탈환했던 복싱 전설 조지 포먼(76)이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미국 휴스턴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아버지는 친부가 아니었고, 빈민가에서 문제아로 자랐다. 스스로도 “폭력적 성향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절도를 하고 경찰에 쫓기던 중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번민했고, 우연히 “당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라는 직업 학교 광고를 보곤 진로를 정했다. 

직업학교에서 만난 복싱 코치(닥 브로더스) 권유(“그렇게 주먹을 잘 쓰면 복싱을 해보는 건 어떠니?”)로 운명적으로 글러브를 끼었다.

 

 

<조지 포먼이 1974년 10월 29일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 전날 계체량을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크게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정글의 난투(Rumble in the Jungle)’. 1974년 자이르(현 콩고)에서 무하마드 알리(당시 32세)와 맞붙었던 경기다. 

포먼은 1973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를 6번이나 다운시키며 벨트를 빼앗은 후 무적(40승 무패 37 KO승)을 구가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당연히 포먼이 이길 것이라 점쳤고, 혹시 알리가 맞다가 죽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 전 세계 5000만명이 시청했던 세기의 대결.

 

 

<조지 포먼(오른쪽)이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열린 세계 헤비급 챔피언 방어전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나란히 주먹을 겨누고 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는 워낙 치열해 ‘정글의 난투’라 불렸다. 포먼은 8라운드에서 알리에게 인생 유일한 KO패를 당했다.>

 


알리는 날렵한 몸놀림과 로프 반동(Rope-a-dope)을 활용해 포먼 강펀치를 피하면서 체력을 소모시켰다. 

라운드가 지날수록 힘이 떨어진 포먼. 알리는 8라운드에 집중타를 날려 포먼을 링 위에 눕혔다. 

포먼 선수 생활에서 유일한 KO패. 경기 후 포먼은 “주심이 카운트를 빨리 셌다” “주심이 뇌물을 받았다” 등 근거 없는 항변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그는 “그냥 알리가 더 강했다고 했어야 하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경기 이야기는 나중에 다큐멘터리(When We Were Kings)로 만들어져 1996년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

 


두 번째는 은퇴와 귀의(歸依). 알리와 재경기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는 1977년 지미 영에게 의외의 판정패를 당하자 28세에 은퇴를 선언했다. 

포먼은 이 경기 후 스트레스성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임사(臨死) 체험을 통해 종교에 귀의했다. 

깨어난 포먼은 “다시 태어났어!”라고 외친 다음, 고향(휴스턴)에 교회를 세우고 목사로 일하면서 1984년 지역 사회를 위해 ‘조지 포먼 청소년 센터’도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정신이 이상해졌다’면서 걱정했다. ‘두 번째 조지(No.2 George)’라는 별명도 생겼다.


세 번째는 다시 찾은 챔피언 벨트. 1987년 그는 38세에 링으로 돌아왔다. 권투가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자선 활동 등에 돈이 필요하다는 속사정도 있었다. 

복귀 후 24연승을 거두고 42세에 당시 세계 챔피언 이밴더 홀리필드에게 도전했으나 판정패(12라운드). 45세였던 1994년 26세 마이클 무어러를 상대로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 경기에서 10라운드로 접어들 때까지 포먼은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는가 싶던 순간, 포먼의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연달아 작렬하면서 극적인 역전 KO승을 거뒀다.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헤비급 챔피언이란 영예도 챙겼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1995년 챔피언 자리를 포기하고 두 번째 은퇴를 했다. 46세 169일이었다. 

1997년 본인 이름을 딴 ‘조지 포먼 그릴’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고 상표권을 1억3750만달러에 팔았다.

 

 

<45세이던 조지 포먼(빨간 글러브)이 1994년 11월 WBA-IBF 헤비급 통합 챔피언전에서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당시 26세)를 10라운드에 KO로 쓰러뜨린 뒤 승리를 선언받던 순간. 그는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 오늘밤 나를 보라”라고 말했다.>



포먼은 생애 초반엔 천부적 펀치력을 지닌 복서로 주목받았지만 나중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는 개척자로 인상을 심었다. 

“본성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알아냈어요. 어떤 사람이 될 건지는 스스로 선택한다는 걸.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필생의 숙적인 알리와는 원수에서 친구로 변했다. “한때 알리를 거의 증오했어요. 복수하고 싶었죠. 하지만 친구가 됐고 아직도 그를 사랑합니다.” 

포먼(76승 5패)은 알리(56승 5패)보다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고 더 위대한 전적(영국 BBC)을 남겼다. 알리는 이슬람교 신자였고, 포먼은 기독교 신자였지만,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포먼은 12명 자녀, 알리는 9명을 뒀으며 둘은 신앙에서 아버지로서 삶까지 많은 것을 얘기하면서 친해졌다. 

2016년 알리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먼은 장례식에 운구자로 참석했다. “우린 1974년 싸웠고 1981년 가장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이번 생애에 알리보다 더 가까운 사람은 없습니다.”(250324)

 

 

 

직장인 신모(36)씨는 이달 말 부과될 ‘2월분 아파트 관리비’가 얼마나 오를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겨울 관리비를 아끼려고 난방 시간을 줄이는 등의 노력을 했는데도 1월 관리비가 한 달 전보다 3만원가량 더 나와 30만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난방비 외에 전기료, 수도료가 모두 올랐고 청소비와 소독비, 심지어 승강기 유지비까지 인상됐다”며 “각종 생활 물가 인상으로 살림살이가 어렵다지만, 아파트 관리비만큼 많이 오른 것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국내 아파트 관리비가 일반 물가보다 2배 정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아파트 약 1200만 가구의 관리비 데이터를 보유한 관리비 고지·결제 대행 업체 ‘아파트아이’가 지난 10년간의 아파트 관리비를 조사한 결과, 전용면적 1㎡당 월평균 관리비는 2015년 2065원에서 지난해 2895원으로 40.2% 올랐다. 
같은 기간 정부가 집계한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20.3%)의 2배 수준이다. 
‘국민 평형’이라 불리는 전용면적 84㎡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가족이 지난해 1년간 낸 평균 관리비는 291만8000원으로 2015년(208만1000원)과 비교해 80만원 넘게 늘었다.

 

 




아파트 관리비를 구성하는 항목들이 최근 수년간 국내외 경제 상황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이슈가 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청소비와 경비비 등은 인건비 급등, 전기료와 난방비는 에너지 비용 증가 때문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각종 원자재비 상승으로 건설 공사비가 급등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아파트 관리비는 물가 인상의 ‘종합 세트’”라는 말도 나온다.


아파트아이 분석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전체 가구가 나눠 내는 공용 관리비 항목이 10년 간 41.9% 올랐다. 
청소·경비·미화·소독 같은 비용으로 최저임금을 포함해 인건비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항목들이다. 
지난 10년간 최저임금이 한 번도 내리지 않은 것처럼 공용 관리비도 꾸준히 우상향했다.

 

 




난방비, 전기료, 수도료 같은 개별 관리비는 10년간 29.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비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소폭 줄어들었지만, 최근 다시 오르는 추세다. 
비용 인상 요인에도 여론 눈치만 보면서 동결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전기료·가스비 등을 조정한 것이 아파트 관리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5년만 따지면 전기료는 47%, 난방비는 29% 급등해 갈수록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파트 시설을 수리하고 교체하는 데 쓰는 장기수선충당금은 10년 사이 무려 114.6% 뛰어 2배 이상이 됐다. 
수리에 필요한 원자재 비용이 올랐고, 인건비 영향도 있었다. 
또 시간이 흐를수록 아파트가 노후화되는 데 따라서 유지·보수 수요도 늘어나는 게 장기수선충당금 인상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별로는 세종시가 10년 전과 비교해 관리비가 67% 뛰어 인상 폭이 가장 컸다. 
전용 84㎡ 기준 연간 관리비가 140만원 가깝게 오른 셈이다. 
세종시 아파트 관리비가 유독 많이 오른 배경에 대해 아파트아이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새로 공급된 아파트가 많고, 지역 난방 이용률도 다른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지난해 요금을 9.5% 인상한 바 있다. 
세종시 외에 관리비가 많이 오른 지역은 경북으로 63%였다. 가장 덜 오른 지역은 대구(32%)였고, 다음은 대전(33%), 울산·전북(36%) 순이었다.


시기별로는 9월 아파트 관리비가 10년 새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당 관리비가 2015년 1847원에서 작년 3015원으로 63% 뛰었다. 
기후변화로 여름철이 길어지면서 9월에도 에어컨을 사용하는 집이 많아진 영향이다. 
8월이 57%, 7월은 51% 오른 것도 에어컨 사용에 따른 전기료 상승이 관리비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250324)


 

 

 

일본 법무성이 이달부터 ‘독신증명서’를 본적지 아닌 거주지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혼인 감소로 고민하는 일본 정부가 ‘곤카쓰(구혼 활동)’를 지원하기 위해 꺼낸 카드다. 
한국에서는 낯선 ‘독신증명서’는 어디에 쓰는 것일까.


일본의 독신증명서는 말 그대로 ‘신청자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자’라는 사실을 공식 인증하는 문서다. 
성명과 생년월일, 본적지와 함께 ‘신청자가 민법 제732조(중혼의 금지)에 저촉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다른 나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공문서다. 
대부분 국가에는 한국의 가족관계증명서처럼 혼인 여부가 포함된 공문서가 있을 뿐, 미혼을 증명하는 별도의 공문서는 흔치 않다.

 

 

<일본 지바현 가시와시(市)가 발행하는 '독신증명서'의 이미지>

 


요미우리신문은 “독신증명서 수요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며 “곤카쓰를 위해 결혼 정보 회사나 매칭 앱에 등록할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대형 결혼 정보 회사가 매년 수만 명 회원의 독신증명서를 받고, 요즘엔 매칭 앱에서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국 미혼율 1위인 도쿄도가 작년 내놓은 매칭 앱 ‘도쿄 엔무스비’는 독신증명서가 없으면 회원 등록이 안 된다.


일본에선 신혼부부 5쌍 가운데 1쌍이 매칭 앱에서 만나 결혼할 정도로 매칭 앱이 보편화됐다. 
그런데 매칭 앱에서는 기혼자가 미혼을 사칭하기도 하고 ‘로맨스 사기’도 벌어진다. 
일부 앱에서는 의도적으로 불륜을 조장하거나, 금전 거래가 오가는 불법 성매매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에 ‘도쿄 엔무스비’처럼 결혼을 전제로 미혼 남녀의 만남을 돕는 앱은 독신증명서라는 공문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연애 감정을 악용해 금전을 갈취하는 로맨스 사기도 급증해 작년 피해액은 전년보다 100% 이상 증가한 397억엔(약 3900억원)에 달했다. 
그러자 독신증명서 없이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심리가 일본 사회 전반에 퍼진 것이다.


독신증명서를 떼려면 지금까지는 본적지가 있는 고향에 직접 찾아가거나, 우편으로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정보 회사와 같은 민간 기업이 대신 발급받는 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제 집 근처 구청·시청에서 간편하게 증명서를 뗄 수 있게 됐으니 ‘곤카쓰’가 수월해지는 셈이다. 
다만 창구에서 반드시 ‘증명서 떼는 이유’를 물어볼 테니, 그리 유쾌하지 않은 문답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250322)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파리협약에서 세운 ‘1.5도 마지노선’이 결국 무너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9일 “2024년은 산업화 이전 대비 전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2도 밑으로 유지하며,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그런데 불과 9년 만에 ‘상승 폭 1.5도’라는 제한선이 깨진 것이다.


이날 WMO가 발표한 ‘전 지구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도가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175년간 지구 평균 기온을 관측한 이래 작년이 최고치”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의 뚜렷한 징후들이 일제히 정점을 찍었다”면서 작년이 가장 더운 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각종 지표들을 소개했다.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의 작년 농도는 지난 80만년 중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바닷속 열에너지 총량을 지칭하는 ‘해양 열량’은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바닷물이 더워지면서 해빙(海氷)이 줄고, 해수면 상승은 빨라졌다. 
북극 해빙의 면적은 지난 18년간 역대 최저치 기록을 매년 새로 썼고, 남극 해빙도 지난 3년간 최저 기록을 경신해 왔다. 
해수면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4.7㎜씩 높아졌다.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93년(2.1㎜ 상승)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WMO는 이런 온난화 추세가 극심한 자연재해를 불러올 위험 신호라고 경고했다. 
다만 셀레스테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장기적인 온난화 억제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 건 아니다”라며 “작년에 나타난 현상은 지구에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파리협약에서 세운 목표는 장기적 추세를 염두에 둔 것이기에 작년 한 해만 보고 목표를 잃었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난항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하면서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중 하나인 미국이 지난 1월 파리협약 탈퇴를 재차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집권 때도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고 화석연료 중심의 정책을 폈다. 
오는 9월 각국이 2035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발표를 앞둔 가운데, 미국의 탈퇴로 탄소 중립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겠다는 2030 NDC를 지난 2021년 발표한 데 이어, 올해는 이보다 늘어난 목표치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파리협약에서 정한 ‘진전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NDC를 발표할 때는 목표치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년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현재 공백으로 있는 2030년부터 2050년까지의 정량적 감축 계획도 세워야 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장기 지구 온도 상승 수준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며, 올해 예정된 국가 기후 계획을 통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250320)


 

 

 

“3월 봄날인데 온 산이 단풍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어요. 여기가 소나무 무덤입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에서 만난 이수복(69)씨는 뒷산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절반 넘게 말라 죽으면서 푸른 산이 붉은 산이 됐다. 
이씨는 “불과 1~2년 새 벌어진 참사”라며 “어릴 적부터 봐온 소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의 한 소나무 숲. 소나무재선충병이 번지며 녹색 솔잎이 단풍이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다. 

경북도는 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일대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산 중턱에선 전기톱 소리가 요란했다. 산림청 직원 9명이 갈색으로 변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베어낸 소나무를 1m 크기로 잘라 차곡차곡 쌓은 뒤 살충제를 흠뻑 뿌렸다. 그 위에 천막을 덮어 씌웠다. 
황왕근 영주국유림관리소 산림보호팀장은 “이런 ‘소나무 무덤’이 이 산에만 4000개가 넘는다”며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될 판”이라고 했다.


그동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창궐했던 소나무 재선충병이 최근 경북 북부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안동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41만그루로 집계됐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안동 도산면, 녹전면, 예안면 등 3곳을 ‘방어선’으로 정하고 ‘방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병휘 안동시 산림과장은 “그동안 포항, 울진, 경주 등을 중심으로 번졌던 재선충병이 올해는 안동, 봉화 등 북부 지역까지 올라왔다”며 “자칫 소백산과 태백산을 넘어 재선충병 청정 지역인 강원도까지 확산될까 봐 ‘마지노선’을 치고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일대 야산에서 산림청 관계자들이 죽은 소나무를 모아 훈증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봉화군에선 작년 11월부터 소나무 1만2665그루를 베어냈다. 
봉화군 관계자는 “재선충병 증상을 보이는 소나무가 있으면 선제적으로 반경 1㎞ 안에 있는 소나무를 전부 베어내고 있다”며 “우리도 다 큰 소나무를 잘라내는 게 아깝지만 더 많은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눈 찔끔 감고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재선충은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에 기생하는 1㎜ 크기의 벌레다. 
나무의 수분 통로를 막아 감염된 소나무는 녹색 솔잎이 갈색으로 변한 뒤 결국 고사(枯死)한다. 번식력이 강해 재선충 한 쌍이 20일 뒤엔 20만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치료약이 없어 감염되면 100% 고사한다. 
재선충은 주로 솔수염하늘소를 타고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닌다. 이 때문에 감염된 소나무가 있으면 그 일대 숲의 소나무를 전부 베어 내고 솔수염하늘소와 애벌레를 박멸해야 한다. 
한혜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장은 “2004년 제주도에서 소나무 12그루가 재선충병에 걸렸는데 그 숫자가 10년 만에 4만5800배인 55만그루로 늘어난 적이 있다”며 “감염된 소나무를 완전히 제거해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일본에서 수입한 원목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경남 밀양, 경북 구미·포항·경주 등으로 확산해 2014년엔 218만그루가 고사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방제 작업에 나서 확산세가 꺾이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번지고 있다. 
경북 지역의 피해가 가장 크다. 경북도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지난 14일까지 경북 지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85만그루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39만9000그루)의 2배가 넘는다. 역대 최대다. 지난해 전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89만9000그루였는데 엇비슷한 수준이다.


재선충병이 확산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솔수염하늘소는 보통 5월이 되면 성충이 되는데 날이 따뜻해지며 그 시기가 5~11일 정도 당겨졌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20년 9.8도였던 전국 2~5월 평균 기온은 지난해 10.9도로 상승했다. 
2023년 이후 예산 부족 등 문제로 감염된 소나무를 100% 베어내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재선충병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수종 전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소나무만 있는 산에 다양한 나무를 섞어 심거나 재선충병에 걸리지 않는 참나무 등을 심자는 것이다. 
이주형 영남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재선충병을 먼저 겪은 일본에선 이미 산에서 소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지금 같은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50년 뒤에는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250321)


 

 

 

작년 결혼한 남녀 5쌍 중 1쌍은 피겨 여제 김연아(35)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30) 부부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 커플인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혼인 신고를 한 초혼(初婚) 부부는 17만8734쌍으로, 이 가운데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경우는 19.9%인 3만5616쌍이었다. 
관련 통계가 처음 나온 1990년대엔 이 비율이 8.8%에 그쳤는데 점차 올라 2023년 19.4%까지 올랐고 작년에 역대 최고치를 고쳐 쓴 것이다. 
동갑내기 부부 비율도 16.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피겨 여제 김연아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 부부(사진 왼쪽)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의 결혼이 작년 전체 초혼의 19.9%로 역대 최고 비율을 기록했다. 
배우 공효진과 가수 케빈 오 부부(오른쪽)처럼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초혼 부부도 405쌍에 달했다. >

 


반면 연상남·연하녀 부부 비율은 63.4%로 역대 최저다. 배우자의 나이보다 능력과 외모 등 다른 조건을 중시하는 20·30대 남녀가 늘면서 ‘연상 신랑+연하 신부’라는 오랜 통념이 깨진 결과라는 진단이 나온다. 
결혼 정보 업체 듀오 관계자는 “전문직 등 능력 있는 30대 초·중반 여성을 중심으로 예비 신랑의 나이보다 외모 등 다른 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남성들도 여성의 경제력을 따지는 경우가 늘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자주 맺어지고 있다”고 했다.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길로 접어들던 과거와 달리 맞벌이 부부 형태로 가정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경제력은 결혼 상대를 찾을 때 중시하는 핵심 조건으로 떠올랐다. 
30~3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0년만 해도 48.9%로 절반을 밑돌았는데, 작년 기준 비율은 75.7%로 높아졌다. 
30대 초반 여성 4명 중 3명은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뜻이다.

 

 




남자는 생계를 책임지는 바깥사람, 아내는 살림을 주로 맡는 안사람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2023년 기준 결혼 5년 이내 신혼부부 76만9067쌍 가운데 5.7%인 4만4182쌍은 아내만 일을 하고 남편은 살림 등을 하거나 쉬는 경우였다. 
같은 직장 여성 상사와 결혼하는 남성들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과장(43)은 입사 1년 선배인 여성 차장과 결혼했다. 
차장인 아내에게 회사에선 “차장님”이라고 부르고, 집에선 ‘ΟΟ씨’라고 한다. 
정부세종청사와 정부서울청사 등 관가에서도 여성 선배 공무원이 남성 후배와 ‘썸’을 타다 백년가약을 맺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가연 관계자는 “외모와 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이 늘면서 30대 초·중반 여성의 외모가 과거보다 대체로 젊어지고 있다는 점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어나는 요인”이라고 했다.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면서 초혼 부부의 남녀 나이 차이도 줄어드는 추세다. 
작년 초혼 남성의 평균 연령은 33.86세로 여성(31.55세)보다 2.31세 많다. 1990년만 해도 이 차이가 3.01세에 달했다.


의료 기술 발달로 30대 중·후반 여성의 출산이 늘어난 것도 연상녀·연하남 부부가 증가하는 이유로 꼽힌다. 
35~39세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2023년 43명으로 30년 전(13.5명)의 3.2배가 됐다.


남녀 모두 재혼(再婚)인 결혼은 작년 2만3022건으로 이 가운데 20.6%가 연상녀·연하남이 가정을 꾸린 경우다.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재혼 비율은 이미 2014년 20%를 넘었다. 
배우 공효진(45)과 가수 케빈오(35)처럼 아내가 남편보다 열 살 이상 많은 경우도 초혼 기준 405쌍, 재혼은 231쌍에 달했다.


연상녀·연하남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 
20년 전 세 살 연상 아내와 결혼한 신모(45)씨는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지인들이 아내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부르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편하게 ‘제수씨’나 ‘누님’이라고 한다”고 했다. 
듀오 관계자는 “연하남과 결혼한 여성들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 부각되는 ‘누나’라는 호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성사된 커플의 호칭은 ‘자기’ ‘여보’ ‘ΟΟ씨’ 등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초혼과 재혼을 포함한 지난해 혼인 건수는 22만2412건으로 전년 대비 14.8% 증가했다. 증가율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2차 베이비 붐 세대(1964~1974년생)의 자녀인 ‘2차 에코 붐 세대’인 1990년대 초반생들(1991~1995년 출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적령기(여성의 첫아이 출산 연령은 평균 33세)를 맞은 영향이 컸다.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거리 두기 규제로 결혼을 미루다 2년 전쯤 뒤늦게 부부가 된 ‘엔데믹(풍토병화) 커플’이 아이를 낳기 시작한 점도 한몫했다. 
박현정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30대 초반 인구가 증가한 것과 코로나19로 혼인이 감소했던 기저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혼인이 큰 폭으로 늘었다”며 “혼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대, 혼인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250321)

 

 

 

서울 송파구 보인고 3학년 360명 중 130명은 매주 토요일마다 학교에 나온다. 
이 학교는 주말에 국어·수학 자체 모의고사를 실시하는데, 강제가 아님에도 학생 3분의 1가량이 스스로 학교를 찾는 것이다. 
이 모의고사는 수능과 ‘판박이’다. 교사들이 기출 문제를 참고해 수능 문항 수와 동일하게 시험지를 준비하고, 시험 시간은 물론 종소리까지 실제 수능과 똑같다. 
오양욱 보인고 교감은 “한국 양궁 국가대표가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장을 실제 대회장이랑 똑같이 마련하고 현지어 안내 방송을 트는 것처럼, 우리도 매주 실전 같은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 학부모 사이에서 “수능을 볼 때 덜 긴장할 것 같다” “주말 학원비도 아껴 좋다”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첫해엔 20명 규모로 시작했는데, 작년 100명, 올해 130명 규모로 불어났다.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보인고등학교에서 3학년들이 1학년들에게 학교 생활에 대해 조언해 주고 있다. 

보인고는 선배와 후배들을 멘토·멘티로 묶어줘 후배들이 학교와 공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상업고에서 출발한 보인고(자율형사립고)는 교육계에서 신흥 명문고로 주목받는 학교다. 
서울대 합격자 수가 2021학년도 9명에서 21명(2022), 23명(2023), 33명(2024)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2025학년도엔 38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외대부고(56명), 대원외고(52명) 등에 이어 전국 5위다.


1908년 개교한 보인고의 변신은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다른 사립학교처럼 기업이나 사업가가 재단을 맡고 있던 게 아니어서, 2000년대 들어 학교 재정 위기가 심해졌다. 당시 이사장이었던 창립자의 며느리가 현재 보인고 이사장인 김석한(70)씨를 찾아 “죽고 나서 시아버님을 뵐 면목이 없다”며 학교 운영을 부탁했다. 
보인고 출신으로 인조 모피 기업 ‘인성하이텍’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김 이사장은 2004년부터 학교를 맡았다. 
그는 ‘시대가 변했는데 상고로 남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2007년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시켰다.


좋은 학교로 만들기 위해선 우수한 교사를 선발하는 게 급선무였다. 
김 이사장은 서류, 시험, 강의 시연, 면접 등으로 이어지는 무려 9단계 전형을 거쳐 교사들을 뽑았다. 
김 이사장은 “전국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교사진을 꾸린다는 생각이었다”며 “한 번은 15명 선발에 1250명이 지원했는데, 그때 차에 항상 이력서를 넣어두고 어딜 가든 이력서 검토를 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또 체육관 신축과 본관 건물 수리 등 학교 환경 개선에 총 320억원을 들였다. 보인고는 2011년 자사고로 전환했다.

 

 




김 이사장은 “누군가 ‘기업 경영과 학교 경영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고객 만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며 “학교는 고객인 학생과 학부모를 만족시키면 된다.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사교육비를 덜어주면 된다”고 했다.


학교는 저녁 식사 후 6시 10분부터 9시 30분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데, 단순히 자습만 시키지 않는다. 
개인 연구를 해도 된다. 가령 ‘용수철 탄성 계산하기’ 같은 주제를 정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거나 실험을 한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오양욱 교감은 “선생님들이 아무리 생활기록부를 잘 써주려 해도 결국 아이들이 ‘재료’를 가져와야 한다”며 “학교에 책이랑 실험 기자재들이 다 있으니, 방과 후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공부, 실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인고 1~3학년 총 1100여 명 중 80%는 이런 야간 학습에 자율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두드러지는 대입 실적을 냈음에도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진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인성 교육을 강조해, 신입생이 들어오면 ‘어른에게 밝게 인사하라’고 가르친다. 
지난 17일 김 이사장이 보인고 교정에서 거닐자, 삼삼오오 학생들은 밝은 표정으로 허리를 90도 숙이며 “이사장님 안녕하세요!”라고 외쳤다. 
학교는 또 체력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전교생이 참여하는 반 대항 축구 리그제를 1년 내내 운영한다. 
‘오침 시간’도 학교 특색 중 하나다. 전교생이 오후에 30분 낮잠 자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함을 느끼는 학생이 많으니, 아예 낮잠을 자고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3학년과 신입생 1명씩 조를 짜 ‘멘토링’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1학년은 공부 방법, 학교 적응 노하우, 고민 같은 걸 3학년 선배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날 1학년 강은규(16)군은 3학년 문호준(18)군에게 “하루 7시간 자며 공부하고 있는데 적당한가요?”라고 물었고, 문군은 “개인마다 적당한 수면 시간은 다 다르니 주말에 6시간, 8시간 등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본인에게 맞는 수면 시간을 찾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이런 식으로 신입생의 학교 적응을 도와 전학생을 크게 줄였다. 
5~6년 전엔 한 학년이 들어오면 1년 안에 30명이 전학을 갔지만, 지금은 1~2명 수준이다.(250321)


 

 

 

“탈모 약 복용 중인 군인인데 약이 떨어져 갑니다. 비대면 진료로 약을 배달받을 수 있을까요?” 
최근 한 비대면 진료 앱에 올라온 문의 글이다. 그러나 이 병사는 부대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비대면 진료는 받을 수 있지만, 탈모 약을 배송받을 수는 없었다.


정부가 비대면을 통한 의사 진료 후 원격 약 수령을 벽지, 도서 등 일부 지역에 허용하고 있지만, 약국이 주변에 없는 외진 지역에 위치한 군부대에서는 이런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총 1445명의 군 장병이 이 회사 앱을 통해 2380건의 약 배송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때는 코로나 사태로 정부가 퀵 서비스와 택배를 통한 약 원격 배송을 지역 제한을 두지 않고 허용했던 시기다. 
월평균 125건, 일평균 4건꼴로, 배송 방식은 택배와 퀵 배달이 각각 2021건, 339건이었다.


그러나 2023년 6월 정부는 약 배송은 원칙적으로 금지시켰다. 
정부는 당시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정착시키겠다”면서 섬·벽지 지역과 거동 불편자,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대리·재택 약 수령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닥터나우 집계 결과, 2023년 6월 이후 주변에 약국이나 병원이 없어 ‘오지’에 가까운 군부대에서는 비대면 약 배송 이용 실적이 제로(0)로 떨어졌다.


이는 인구가 적은 소규모 섬들만 비대면 약 배송 가능 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벽지도 일부 지자체의 ‘리’나 ‘길’ 단위로 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군 부대 숫자 자체가 적은 것이다.


앞서 2021년 10월~2023년 5월 군 장병들의 약 배송(2380건) 중 가장 많았던 건 여드름 관련 약(1041건)과 그 밖의 피부과 처방 약(566건), 감기·독감 약(159건), 코로나 약(138건), 탈모 약(88건), 이비인후과 약(73건), 내과 약(46건), 정신건강의학과 약(24건) 등이었다.


현재 진료가 필요한 장병들은 의무대에서 군의관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거나 군의관 승인하에 군 병원을 찾는다. 외출을 허가받고 민간 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복무 중인 한 병사는 “경미한 감기나 피부 약, 탈모 약 등을 처방받으려고 외출하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장병들이 민간 병의원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받고 약을 배송받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원격 약 배송은 번번이 약사들이 반대하고 정부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확대되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약 배송이 안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뿐이다. 
약사들은 대형 약국으로 약 배송이 쏠려 소규모 약국의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반발한다. 
또 배송 과정에서 의약품이 변질될 가능성이 있으며, 의약품을 오남용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입장이다.(250319)

 

 

 

“매주 쪽지 시험 범위가 PPT 1000장이 넘는다.”


서울의 한 의대 본과 2학년 휴학 중인 A씨는 본지 통화에서 “의대는 공부량이 방대해서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치를 수도, 졸업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의대 족보는 각 과목의 기출 문제나 주요 필기 내용 10여 년 치를 묶어 놓은 자료를 말한다. 학생들이 만들어 공유한다. 
A씨는 “중간고사 공부 분량은 PPT 자료 수만 쪽인데 족보는 이를 10분의 1 정도로 축약해 준다”며 “족보 없이 혼자만 공부하면 F 학점을 맞고 유급당하기 십상”이라고 했다.


이런 족보가 최근 의대생 복귀를 막는 주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족보는 의대 학생회나 동아리 선배들이 관리하는데, 복귀하는 의대생에겐 족보 접근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A씨는 “복귀한 의대생 중에 족보 없이 맨땅에 헤딩식으로 혼자 공부하다 지쳐서 다시 휴학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봤다”고 했다. 
‘족보 제공권’을 가진 의대 학생회나 지도부는 의대생의 생살여탈권을 가졌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은 작년부터 교육부에 “족보 등을 제공하는 ‘의대 교육 지원 센터’를 전국 40개 의대에 설치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교육부는 작년 10월 “각 의대에 센터 설치를 권고한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설치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가 연락한 의대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족보 없이는 의대 생활을 못 한다”고 했다. 
의대는 한 학기에 공부해야 수업 자료만 수만 쪽에 달할 정도로 다른 과들에 비해서도 공부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기출 문제와 수업의 핵심 내용이 담긴 족보는 의대생에게 중요하다. 
의대에서 족보가 ‘왕족(족보가 왕)’ ‘족생족사(족보에 살고 죽는다)’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족보 제공 배제’는 ‘배신자 낙인’과 함께 의대생의 수업 복귀를 가로막는 양대 장벽으로 통했다. 정부의 ‘족보 센터’ 설치는 이런 족보 문제를 해결해 학생 복귀율을 높이려는 취지다.


비수도권의 한 의대생(본과 2학년)은 본지 통화에서 “중간·기말고사 때 공부해야 할 과목이 1과목당 PPT 자료 1만쪽 정도”라며 “5과목을 들으면 5만쪽을 공부해야 하는데 족보가 없으면 시험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학교는 이 족보를 (의대) 학생회가 제본 떠서 책으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며 “특히 신입생인 25학번은 이 족보를 못 받을까 봐 무서워서 수업에 못 들어온다고 들었다”고 했다.


의대생들은 “족보 생성에서 제외되는 건 동기, 선후배들에게 차단당하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족보는 의대의 ‘단체 생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의대생(본과 3학년)은 “우리 의대는 모든 학생이 족보를 만드는 ‘족원’으로 활동한다”며 “시험 때가 되면 각자 나눠서 시험 문제를 외운 뒤 끝나면 이를 취합하는 선배 ‘족장’에게 복원한 문제를 보고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의대 족보를 갱신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의대별로 제각각이었다. 
학생회가 하기도 했고, 각 의대 동아리 선배들이 관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의정 갈등을 거치면서 의대 학생회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의대 학생회 지도부가 개별 학생들의 수업 복귀를 막고 단일 대오를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이 족보를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한양대 의대 TF라는 학생 단체는 작년 5월 학생들에게 수업 집단 거부에 참여하지 않으면 족보를 공유하지 않고, 족보 접근권도 영구 제한하겠다고 압박한 혐의로 교육부에 의해 경찰에 수사 의뢰된 바 있다.


의대생들은 “선후배와 동료들의 눈치, 전공의 선발 때 선배들의 입김 등 복귀를 주저하게 하는 여러 요인이 있고 족보 문제도 그중 하나”라며 “앞으로 교수님들의 시험 문제가 공개되고 이것을 학교가 모아 공유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각 의대가 족보 등을 제공하는 ‘의대 교육 지원 센터’를 설치했는지, 했다면 몇 군데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교육부는 처음부터 이 센터가 의대생들을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며 “설치를 권고한다는 말만 하고 설치 상황은 챙기지 않았다”고 했다.(250320)

☞의대 족보

각 의대의 10여 년 치 기출 문제와 수업 핵심 내용이 담긴 자료.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시험 범위가 방대한 의대 학생에겐 필수 자료다.


 

 

 

국내 프로게임단 한화생명e스포츠가 올해 처음으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롤) 국제 대회 ‘퍼스트 스탠드’에서 첫 우승 팀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한화생명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롤파크에서 열린 2025 퍼스트 스탠드 결승전에서 유럽 팀 카르민 코프(KC)를 3 대1로 꺾고 우승컵을 들었다.

 

 


<(왼쪽부터)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한화생명e스포츠 ‘피넛’ 한왕호(27).>

 


퍼스트스탠드는 중국·북미 등 전 세계 5대 리그 우승팀이 모여 개최한 대회다. 
한화생명의 우승은 국내 리그가 세계 최정상임을 증명한 것이다. 
국내 선수의 실력만큼이나 전 세계 엔터·스포츠 업계가 국내 롤 프로리그(LCK)에 놀라는 점은 또 있다. 
고액 연봉을 받는 20대 남자 프로게이머 집단에서 사건·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해외 리그 관계자는 “한국 프로게이머는 단정한 외모에 술·담배도 거의 하지 않고 비속어도 잘 쓰지 않는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MZ세대 남자들의 우상인 프로게이머들은 대부분 10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연습생을 시작해 10대 후반에 데뷔한다. 
현재 1군에서 가장 어린 선수는 2007년생이다. 프로게이머로 성공한다면 20대 초반에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국내 e스포츠 업계에 따르면, 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7억원, S급 선수들의 연봉은 수십억 원대다.


국내 LCK 관계자들은 그 비결로 “10년 넘게 뛰고 있는 고참 3명이 모범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세 선수는 T1의 ‘페이커’ 이상혁(29),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그리고 한화생명 소속으로 퍼스트 스탠드 우승을 한 ‘피넛’ 한왕호(27)다.

 

 

<T1 페이커 이상혁.>

 


e스포츠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5번 우승하며 우상이 된 페이커는 강한 승부욕과 자기 관리로 묵직한 아버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는 프로게이머 중 가장 많은 70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지만, 사치를 하거나 술·담배를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즐겨 읽고, 명상을 한다. 교보문고에 ‘페이커 추천 도서’ 코너가 있을 정도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내 행동이 후배와 팬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후배 선수들이 인터넷 방송에서 비속어를 쓰면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


그의 가족들도 ‘수퍼스타 가족이 보여야 할 모범의 정석’을 보여준다. 
공개 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 가족들은 지난해 6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페이커 선수의 ‘전설의 전당’ 행사에도 “부담스럽다”며 불참했다. 대신 집을 후배 동료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이 쉬는 날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화려한 술집이 아닌 페이커의 집”이라며 “10~20대에는 친구나 선배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가장 잘나가는 페이커 선수가 바른 생활을 하다 보니 선수들의 분위기도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KT롤스터에 있다가 최근 군 복무를 앞두고 있는 ‘데프트’ 김혁규(29).>

 


2022년 롤드컵 우승으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데프트는 어린 후배들을 다독이는 어머니 같은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한 팀에만 있었던 페이커와 달리 여러 팀을 옮겨 다닌 데프트는 재정이 불안정해 공중분해되는 팀과 성숙하지 못한 코치진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도맡았다.


해외 원정 경기에서 그의 숙소는 한국 선수들의 사랑방이다. 데프트는 외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라면을 끓여주며 컨디션을 챙겼다. 
코로나 시기에는 갈 곳 없는 후배들이 그의 숙소로 모여들자 4인 금지 원칙에 따라 자신이 집 밖으로 나갔다. 
이런 그의 리더십에 지난해 11월 군 입대를 앞두고 열린 송별회에는 1000여 명의 팬과 수십 명의 후배가 함께했다. 

‘스코어’ 고동빈 선수는 “데프트는 어리광을 부리기보다 남보다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아부었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였다”며 “그는 뛰어난 선수를 넘어 훌륭한 리더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피넛은 10번이 넘는 국내외 우승으로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게임에서는 자원을 많이 먹고, 상대를 이기는 선수가 돋보이지만, 그는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후배들이 더 빛나며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 모습이 대치동 학부모 같다고 해서 ‘대치맘 리더십’으로 불린다. 
우승 트로피를 들 때도 그는 후배들이 먼저 들도록 배려한다. 오랜 기간 기복 없이 꾸준한 기량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한화생명의 전신인 락스 타이거즈의 막내로 시작한 그는 “형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후배에게 베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락스 시절 그의 동료 형들은 프로게임단 초기 적은 월급으로도 피넛이 먹고 싶다는 건 대부분 사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대부분이 일찍 선수 생활을 끝냈지만 피넛이 스타 선수로 성장해 나갈 때는 그 누구보다도 뿌듯해했다.


올해로 13년 된 LCK는 매년 규모가 커져 올해는 포스코, 우리은행, 벤츠 등이 후원하고 있다. 
라이엇코리아 관계자는 “만약 이 세 명의 선수가 사건·사고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면 후원사도, 게임단을 믿고 자식들을 보낼 부모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 고참 선배들 덕에 업계 후배들도 건강한 듯하다”고 말했다.(250319)

 

 

 

이상 고온과 고수온, 폭우 등이 잦아지면서 ‘금(金)사과’나 ‘금추(금+배추)’, ‘금징어(금+오징어)’ 등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연중 공급 불안정에 시달리게 된 식품·유통 업체들은 첨단 기술을 동원해 보관 기간을 늘리거나 재배 방식을 바꾸는 기술 전쟁에 속속 나서고 있다. 
단순히 좋은 상품을 찾기만 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직접 연구·개발에 뛰어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상 기온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폭염, 가뭄, 홍수는 연례행사가 됐다”면서 “업계에선 이제 이상 기온을 변수가 아닌 상수라고 보고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갓 따온 그대로 사과’와 ‘갓 수확한 그대로 단단한 양파’를 19일부터 판매한다고 16일 밝혔다. ‘갓 따온’이란 말이 붙었지만 사실 이 사과는 작년 10월, 양파는 작년 6월에 수확한 상품이다. 
두 상품 모두 롯데마트가 CA(기체 제어) 저장고에 보관한 것이다. 수확한 직후에 바로 판매하지 않고 곧장 특수 저장고에 저장됐다.


CA 기술이 적용된 특수 저장고는 온도와 습도뿐 아니라, 공기 중 산소와 질소 비율 같은 기체 조성을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저장된 농산물의 노화를 억제하고 미생물과 곰팡이가 자라는 것을 막는다. 
농산물을 신선하게 유지하는 보전 기간을 늘릴 수 있어 오랜 기간 갓 수확한 것 같은 신선함이 유지된다. 
최근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첨단 기술 중 하나다.

 

 

 


예전엔 보통 3~4월이면 저장해 둔 농산물의 물량이 줄고 신선도는 떨어져, 농산물 가격이 오르곤 했다. 
특히 올해는 작년에 수확한 사과가 이상 고온 때문에 전반적인 품질이 떨어지면서 사과 품귀 현상도 빚어질 수 있었다. 
이에 롯데마트는 보통 4월 중순 무렵 풀었던 CA 저장 사과를 올해는 한 달 정도 앞당겨 19일부터 출하하기로 했다. 이미 사과와 양파 수확이 끝난 시기지만, CA 기술로 저장한 부사 사과 500t과 양파 200t을 ‘갓 따온’이란 이름으로 팔면서 물가 상승을 막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마트 측의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사과와 양파 외에도 수박, 시금치도 CA 기술로 저장하고 있다. 
충북 증평에 있는 신선품질혁신센터에 총 1000여 t의 농산물 저장이 가능한 CA 저장고를 운영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앞으로 이상 기후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져도 CA 저장 농산물을 활용하면 농산물 가격을 저렴하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최근 식품 업계는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는 김을 육지에서 양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고 해양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이전처럼 고품질의 김을 양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 김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이 오르자 공급을 안정화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김을 땅에서 양식하면 바다에서 양식할 때보다 해수 온도 상승이나 태풍, 영양염 고갈 같은 각종 악재에서 벗어나 온도와 환경을 제어하기도 편하고, 이를 통해 1년 내내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 유지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CJ제일제당은 이에 최근 지방자치단체, 대학과 함께 김 육상 양식을 대규모로 산업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달 전라남도·해남군에 이어 이번 달에는 인천시·인천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CJ제일제당은 앞서 2018년 업계 최초로 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 2021년에는 수조에서 김을 배양하는 데 성공하고 2022년엔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에 적합한 전용 품종을 확보한 바 있다. 
CJ제일제당은 또한 제주도에서 어류 등을 양식하던 육상 양식장 개조에도 나섰다. 이를 통해 김 육상 양식 시설을 계속 확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동원F&B도 작년 10월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와 제주도 용암 해수를 활용한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제주도 용암 해수는 바닷물이 현무암 등 화산 암반층을 통해 오랜 기간 여과된 ‘염(鹽)지하수’다. 
마그네슘, 칼슘, 바나듐 등 광물 성분이 풍부하고 연중 16도 내외로 수온이 안정적이다. 
동원F&B는 용암 해수를 활용하면 김의 육상 양식이 쉬워질 것으로 보고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250317)


 

 

 

지난 10일 오후 5시 경기 화성시 향남읍의 7층짜리 상가. 건물 1~2층엔 스타벅스, 3~5층엔 신경외과·피부과 등 병원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6~7층에는 해외 유학·수능 대비 입시 학원, 그리고 프리미엄 스터디 카페가 보였다. 인근 상가도 마찬가지다. 

‘초중고 내신’ ‘수능 영어’ 간판을 내건 학원들이 즐비하고, 1층 편의점은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편의점 알바생 강모(24)씨는 “손님 10명 중 6~7명이 학교 마치고 학원 온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18일 오후 김포시 고촌읍 보름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학교를 마친 학생이 학원이 빼곡히 들어선 상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고촌읍은 서울 강서구와 맞닿아 있고 서울 목동 학원가에 차로 30분이면 도착하지만, 농어촌 특별전형 지역에 해당한다.>

 


2009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향남신도시 1지구엔 1만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근처 향남제약산업단지, 기아자동차 공장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초중고 10여 곳과 공공도서관, 공원이 있어 교육 환경이 좋다. 
올해 서울대 합격자 배출 10위권 고교인 화성고도 차로 10분 거리다. 행정구역은 ‘읍’이지만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이곳은 대학 입시에서 ‘농어촌 특별전형’ 대상 지역이다.


향남읍에서 18년간 장사를 하는 김모(66)씨는 “근처에 화성고가 있어서 여기 학원들이 엄청 잘되고, 부모들 대부분 인근 산업 단지에서 일한다”면서 “이 동네 애들이 농어촌 전형 대상인 건 의아하다”고 했다.


‘농어촌 특별전형’은 도시에 비해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돕기 위해 20년 전 도입된 제도다. 
1994년 연세대를 시작으로 1996년 전국 대학에 확대됐다. 
읍·면이나 도서·벽지 지역 고교생이 대상이다. 학생이 부모와 함께 해당 지역에 살면서 중·고교 6년을 다니면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급으로 개발된 읍·면 지역이 늘면서 이들 지역까지 ‘농어촌 특별전형’ 혜택을 주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전형은 해당 전형 지원자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일반전형보다 입학이 수월한 편이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9360명(정원 외 포함)에 달했다.


보통 읍이나 군이 ‘시’로 승격하려면 인구가 5만명이 넘어야 하는데, 읍인데도 인구 5만명이 넘는 곳이 향남읍(8만명)을 비롯해 전국 19곳(2023년 기준)에 달한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남양주시 화도읍(11만명), 남양주시 진접읍·화성시 봉담읍·달성군 다사읍(9만명) 등이다.


인구 5만명이 사는 김포시 고촌읍도 행정구역은 경기도지만 서울 강서구와 맞닿아 있어 목동 학원가에 차로 30분이면 도착한다. 
그래서 아예 농어촌 특별전형을 노리고 이사 가는 학부모들도 있다.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촌은 신이 내린 농어촌 전형 지역” “농어촌 전형을 생각해 고촌읍으로 이사 왔다”는 글도 올라온다.


충남 아산시 배방읍(인구 9만명)도 비슷한 경우다. 천안아산역이 있어 서울까지 KTX로 1시간, SRT로 40분 걸린다. 
아산시 주민 4명 중 1명은 배방읍에 살 정도인데도 행정구역은 ‘읍’이라 ‘농어촌 특별전형’ 대상이다. 
배방읍 인구가 크게 늘어 2019년엔 여러 동(洞)으로 나누는 논의가 진행됐지만, 주민 의견 수렴에서 약 90%가 반대해 무산되기도 했다. 
세금 감면 등 혜택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학부모들은 ‘농어촌 특별전형’을 포기해야 하는 점 때문에 반대했다고 한다.


2023년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하겠다’는 ‘메가시티’ 구상을 밝혔을 때도 ‘서울 김포구’가 되는 걸 반기는 반응도 많았지만 반면 대입에서 불리해진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컸다.


교육계에서는 “오히려 역차별을 낳는 농어촌 특별전형을 손볼 때가 됐다”는 의견이 많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교육 환경이 열악하지 않은 읍·면 지역은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수험생의 ‘소득’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거론된다.(250319)



☞농어촌 특별전형

도시에 비해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돕기 위해, 교육부가 1996학년도부터 도입한 제도. 지방자치법상 읍·면 지역이거나 교육진흥법상 도서·벽지 지역이 해당된다. 
학생이 부모와 함께 해당 지역에 살면서 중·고교 6년을 다녔거나, 학생 혼자 해당 지역에 살면서 초·중·고교 12년을 다녔으면 지원할 수 있다.

 

 

 

지난 15일 오전 경남 함양 지리산국립공원 벽소령대피소. 명선봉으로 오르는 코스 입구가 눈이 쌓인 채 ‘출입 금지’ 안내판으로 막혀 있었다. 
날이 건조한 1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산불 우려로 탐방로가 통제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명선봉 탐방로 반경 500m 이내로 반달가슴곰 1마리가 동면(冬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5월 등산객과 반달가슴곰이 마주쳤던 연하천대피소도 이 인근에 있다.


반달가슴곰은 4월 무렵부터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입산 통제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기간이라 더 자유롭게 먹이를 구하러 다닌다. 
탐방로가 열리고 곰이 구애 활동을 시작하는 5월이 되면 작년처럼 등산객과 반달가슴곰이 또다시 탐방로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탐방로 개방을 준비하는 4월 말부터 지리산국립공원 590곳에 ‘반달가슴곰 주의’ 현수막을 걸 예정”이라고 했다.

 

 

<반달가슴곰>

 


16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현재 반달가슴곰은 지리산과 덕유산에 각각 90마리, 3마리 등 총 93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위치 추적이 가능한 39마리(42%)의 동면 위치를 파악해보니 탐방로 반경 500m 이내에서 신호가 잡힌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 있는 1마리였다. 
보통 탐방로에서 곰 서식지까지 500m 이상 떨어져 있으면 ‘안전거리’가 확보됐다고 본다. 
그러나 위치 파악이 안 되는 곰이 54마리로 더 많은 데다, 반달가슴곰의 행동 권역이 105~130㎢ 정도로 넓기 때문에 이 안전거리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많다.


반달가슴곰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은 1996년 10월 정부가 우리 땅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반달가슴곰의 서식 흔적을 발표하면서 고조되기 시작했다. 
2000년 11월 무인 카메라에 찍힌 야생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방영되면서 복원 여론이 커졌다. 이듬해 국립환경과학원이 어린 사육곰 4마리를 지리산에 시험 방사했고, 2004년 국립공원공단이 이 프로젝트를 넘겨받아 러시아 연해주에서 토종 반달가슴곰과 유전자가 같은 어린 곰 6마리를 들여와 지리산에 풀어주면서 본격적으로 복원 사업에 돌입했다. 
백두대간에 오래 살아온 최상위 포식자인 곰을 복원시켜 정상적인 동물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머루·산딸기 같은 열매나 도토리를 먹기에 그 배설물이 지리산 식물 생태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주요 복원 사유로 꼽혔다.

 

 




복원 사업은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지리산을 기준으로 반달가슴곰의 최적 개체 수는 60마리, 최대 78마리다. 
환경부는 최소 존속 개체군(특정 생물 종이 최소 단위로 존속할 수 있는 개체 숫자)으로 2020년까지 50마리를 설정했다. 
2018년 56마리로 이미 이 숫자를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곰과의 안전한 공존’이라는 숙제를 던진 건 2015년 1월에 태어난 53번째 반달가슴곰인 ‘오삼이’다. 
세 번이나 지리산을 벗어나 9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으로 갔고, 2022년엔 수도산에서도 70㎞가량 떨어진 충북 보은군 인근에 나타났다. 
결국 2023년 포획해 관리하기 위해 마취총을 쐈다가 계곡에 빠져 죽었다.

 

 




아직 국내에선 반달가슴곰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우려는 계속 커지고 있다. 
일본에선 야생곰으로 인한 인명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작년 5월 북부 이와테현 기타카미시 주택가 인근 숲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던 남성이 곰에게 안면을 찢겨 중상을 입었다. 
재작년 일본 환경성은 4~9월까지 6개월간 곰 습격 사건에 의한 사상자 수가 사망 2명을 포함해 109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016년엔 반달가슴곰이 산나물을 캐던 사람을 습격해 4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우리 정부 지침은 반달가슴곰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잃거나 문제를 지속적으로 일으킬 경우 야생에서 회수해 국립공원 보호 시설 안에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반달가슴곰을 백두대간 어디에서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서식지가 점점 넓어지는데, 더 큰 문제는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는 곰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안전 대책으로는 사람이 곰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250317)


 

 

 

대만에 거주하는 가브리엘·리디아 테오(35) 부부는 지난달 8일 반려견 올리브(7세·말티푸)와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해 2주간 한국 각 도시를 여행했다. 
반려동물용 캐리어에 올리브를 넣어 KTX를 타고 서울, 부산, 강원 평창, 경북 경주 등을 다녔다. 
부부는 “평창 온돌 숙소에서 올리브가 눈 맞은 발을 녹이며 좋아했다”며 “경주 한옥 숙소에선 반려동물과 욕조에 같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고 했다.

 

 

<작년 연말 독일의 대학원생 티파니 쳉씨가 반려견 토푸와 서울 북촌한옥마을을 방문해 찍은 사진. 둘 다 한복을 맞춰 입었다.>

 


반려동물과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해외에서 국내로 입국한 반려동물 수는 2022년 9185마리에서 2024년 1만4356마리로 2년 새 56.3% 증가했다. 
반려동물 동반 여행객들을 노려 주요 항공사가 반려동물 수송 서비스를 출시하는 한편, 호텔·카페·쇼핑몰도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반려동물 문화가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독일의 대학원생 티파니 쳉(28)씨는 작년 연말 반려견 토푸(5세·몰티즈)와 5박 6일 한국을 찾았다. 
쳉씨는 5박 6일 동안 토푸와 한복을 맞춰 입고 북촌한옥마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고, 반려동물과 입장할 수 있는 서울 강남구 별마당 도서관과 카페 등도 방문했다.

 

 

<지난 3월 대만의 가브리엘·리디아 테오 부부가 반려견 올리브와 경주 한옥마을을 방문해 찍은 사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은 어떻게 반려동물 친화적인 나라가 되었나”라며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며 반려동물 친화 공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NYT는 한국의 반려동물 유치원, 장례식장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 사는 리사 마리 요크(39)씨는 에밀리(8세·요크셔테리어)를 데리고 다음 달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요크씨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여행할 수 있는 아시아 국가를 찾던 중, 한국에 반려동물 동반 가능 숙소는 물론 반려동물 관련 문화가 발전했다는 내용을 보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한국에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식당·호텔·카페가 많다는 입소문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250317)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서울의 일상이 된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외국인 관광객들의 다크 투어리즘(역사적 비극이나 재난 현장을 찾아가는 관광)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외국인은 “방화·약탈·폭력이 없는 평화 시위가 인상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70년 번영을 구가해온 대한민국이 국제적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나라 안팎 지적이 나온다.


서울 도심에 11만명 가까운 인파가 몰린 지난 15일 저녁, 서울 종로구 종각역 부근에선 탄핵 찬성 집회가 열렸다. 멍(김현정)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데이식스) 위플래시(에스파) 같은 가요가 흘러나왔다. 
인근 광화문역에서 진행된 탄핵 반대 집회에선 아파트(윤수일) 손에 손잡고(코리아나) 같은 노래가 들렸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현장. 외국인 관광객들이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외국인들은 “시위 현장이 위험할 줄 알았는데 K팝 콘서트장 같다”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독일인 미아(24)는 “도심 한복판에서 행인과 시위대가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인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한국의 계엄 사태 이후 시위가 일상이 된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대체로 평화롭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했다. 
적잖은 서양 관광객은 자국 시위에선 흔한 방화나 폭력을 탄핵 찬반 집회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놀랍다고도 했다.


‘K팝 콘서트 같은 활기가 느껴진다’ ‘군중의 열기 속의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외국인들 입소문을 타고 아예 탄핵 시위 전용 관광 상품까지 출시됐다. 
한 한국인 가이드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현장에서 탄핵 찬성 진영의 관점으로 외국인들에게 “이곳이 12·3 비상계엄 사태 현장”이라며 일종의 다크투어리즘 해설을 한다.


“한국의 시민들은 12월 3일 밤 계엄 선포 이후 국회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도록 계엄군을 저지했고, 그 과정은 평화롭고 유쾌했다” “한국의 시민들이 그렇게 빠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배경엔 민주주의를 위해 끝없이 싸워온 역사가 있었다”는 설명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런 시위 현장 관광 상품을 홍보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싶은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투어합니다” “국회의사당 근처의 콘서트 같은 한국 시위를 안내해 드립니다”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입니다” 같은 문구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가이드도 있다.


인천국제공항이나 서울역에서 외국인들을 태우는 택시 기사들도 “사람이 제일 많은 시위 현장으로 가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적잖다. 
서울 시내 주요 호텔도 “집회 뷰(view)가 나오는 방으로 예약해달라”는 외국인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네덜란드 관광객 스테파니 쉬퍼는 처음엔 뮤지컬의 한 장면 같아 시위 행렬을 따라다니며 춤을 추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는 “시위 현장의 분위기에 익숙해질수록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울 줄은 몰랐는데, 한국이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미국인 앤 버텔슨(66)은 스톱더스틸(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 팻말을 드는 탄핵 반대 집회를 보고 자국의 집회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탄핵 반대 시위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떠올랐다”며 “마치 블랙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주요 외신이 계엄·탄핵 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가운데 시위 현장이 외국인들의 다크 투어리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에 씁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말 집회에 나온 한 대학생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250318)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대량 학살이나 재난 등 역사적 비극이 발생한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 ‘역사 교훈 여행’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서대문형무소, 비무장지대, 제주 4·3공원, 국립5·18민주묘지를 비롯,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 일본 히로시마 원폭 돔 등이 대표적 다크 투어리즘 명소다.

 

 

 

잠시 쓰러졌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이젠 진정한 셔틀콕 여왕(女王)이라 해도 어색함이 없는 경지다. 
안세영(23·삼성생명)이 17일(한국 시각)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열린 전영(全英)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2위 왕즈이(25·중국)에 세트 점수 2대1(13-21 21-18 21-18) 역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2023년에 이은 두 번째 우승. 2년 만에 우승컵을 되찾았다.


그녀는 한국 배드민턴 역사(여자 단식)를 끊임없이 새로 쓰고 있다. 
이번엔 한국 선수 최초 전영오픈 2회 우승.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제패. 아시안게임 우승에 이은 쾌거다. 올 들어선 무패에 20연승. 4대회 연속 우승이다. 
전영오픈은 1899년 시작한 국제 배드민턴 최고(最高·最古) 대회. 배드민턴계 ‘윔블던’으로 통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 버금간다. 안세영은 방수현(53·은퇴) 이후 27년 만인 2023년 이 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했고, 이를 2년 만에 재현했다. 남은 관심사는 과연 얼마나 더 전설을 써갈지다.

 

 

<절뚝이며 우승 뒤 "내가 여왕이로소이다" - 안세영이 17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수퍼 1000 전영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왕즈이(중국)를 2대1로 꺾은 직후 포효하고 있다. 
안세영은 압도적인 체력으로 막판 왕즈이의 범실을 3번 연속 유도해내면서 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 탈환은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부상 악령이 그녀를 괴롭혔다. 
전날 세계 3위 야마구치 아카네(28·일본)와 가진 4강전에서 허벅지 통증이 발발했다. 
결승전엔 오른쪽 허벅지에 붕대를 둘둘 감은 채 나왔다. 독감까지 겹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무릎과 발목, 허벅지... 부상이 치명적 변수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 시작은 불안했다. 상대를 질리게 하는 철통 수비력이 흔들리자 왕즈이가 틈새를 파고들었다. 
범실도 잇따랐다. 13-21. 1세트는 완패였다. 이번 대회 두 번째 겪는 세트 허용.


그러나 굴복하지 않았다. 2세트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랠리에서 잇따라 점수를 따내며 왕즈이를 압박했다. 79회, 42회씩 주고받은 랠리를 이기면서 상대 기를 꺾었다. 21-18.


마지막 3세트. 벼랑 끝 세트를 낚아챈 기세를 몰아 왕즈이를 압도하려 했으나 오른쪽 허벅지에 이어 왼쪽 무릎마저 불편해지면서 아슬아슬한 승부가 이어졌다. 
관중들은 숨죽인 채 이 명승부를 지켜봤다. 9-9, 13-14, 15-16, 17-16, 18-18. 살얼음판을 걷던 승부에서 안세영은 끈질긴 체력전으로 왕즈이를 압박해 3연속 범실을 유도하면서 21-18로 기어이 승리를 쟁취했다. 
마지막 순간, 왕즈이 리턴이 선 밖으로 나가며 승리가 확정되자 안세영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흔들며 감격을 쏟아냈다. 
1시간 35분 혈전을 마무리하는 장면이었다. 안세영은 이후 “이제 내가 (전영오픈의) 여왕(Yes, I’m a queen now)”이라고 외치며 머리에 왕관을 쓰는 동작을 취하면서 관중들 호응도 이끌어냈다. 
전영오픈 홈페이지는 “대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BWF(세계배드민턴연맹)는 “안세영은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고, 통증에 몸을 굽히고 무릎을 움켜쥐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면서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끈질기게 경기를 펼쳤다”고 전했다. 
이어 “안세영은 다시 한번 꺾기가 매우 어려운 선수임을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안세영은 “오늘 경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경기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훨씬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2세트에서 온갖 감정이 떠올랐지만 포기하지 말라는 생각뿐이었다”면서 “그런 생각으로 계속 뛰었고, 결국 승리로 이어졌다”고 했다.


안세영은 올해 참가한 4개 국제 대회(말레이시아 오픈·인도 오픈·오를레앙 마스터스·전영오픈)를 모두 석권했다. 이 기간 중 42세트를 뛰어 39세트를 따냈다. 
안세영은 “더 강해지겠다. 반복에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면서 “일단은 한국식 숯불구이를 먹으며 우승을 자축하겠다”고 말했다.(250318)

 

 

 

지난해 12월 기준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原乳) 값은 전년 평균보다 6.17% 올랐다. 
그런데 시중에서 판매되는 우유의 소비자가격은 15.24%나 올랐다. 완제품 가격이 원재료 값보다 훨씬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대두유·카놀라유·옥수수 등 식용유의 원재료 값은 1년 전보다 12.93% 떨어진 반면, 식용유 제품값은 평균 12.67% 상승했다.

 

 

<14일 오전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매대에 진열된 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원재료나 인건비 상승을 틈타 제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는 식품업계의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욕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먹거리 지출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14일 본지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에서 원재료와 제품 가격 상승률을 비교할 수 있는 가공식품 21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년 동안 케첩과 마요네즈, 분유, 식용유, 우유 등 16품목의 제품값 상승 폭이 원재료보다 높았다. 
재료값에 비해 제품값이 적게 오른 품목은 햄과 맛김, 오렌지주스 등 5품목이었다. 
식품업체들이 밀가루나 원유, 원당 등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수준을 넘어 추가 이윤까지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분유는 원재료 가격이 24.65% 떨어졌지만 소비자가격은 9.58% 올랐다. 인건비·포장비 등 재료 이외의 다른 비용이 올라서 제품 가격을 올렸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원재료 가격 상승을 핑계로 제품값을 인상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식품업체들이 고물가 분위기에 편승해 연이어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정부가 리더십 부재로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름달 빵, 스타벅스 커피, 포카리스웨트, 빼빼로 과자.’

 

 



모두 식품업체가 올해 들어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등 부담이 커졌다며 가격을 올린 품목들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식품업체들이 연말연초만 되면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게 관행이 됐다”며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만 제품 가격에 반영하고, 정작 원재료 가격이 안정화됐을 때 제품 가격을 내리는 일은 없다”고 했다.


실제 본지가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에서 원재료와 제품값 상승률을 비교한 가공식품 21개 중에서는 지난해 원재료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제품값이 오른 품목이 10개나 됐다. 
토마토가 원재료인 케첩 가격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3년에는 주요 토마토 생산지인 이탈리아와 인도 등에서 작황이 부진했기 때문에 토마토 값이 크게 올랐다. 
하지만 작년에는 국제 토마토 수급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됐지만, 케첩 가격은 여전히 오름세다. 
지난 2023년 평균 대비 작년 12월 케첩 원재료 가격은 14.76% 떨어졌지만, 케첩 소비자가격은 되레 25.23% 올랐다.


식품업체들이 지난해 말 집중적으로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을 두고 12·3 비상계엄 사태와 연이은 탄핵에 따른 정치 혼란을 기회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품 물가를 관할하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매달 식품업체들을 만나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약발이 들지 않는 모양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계엄 이후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물가 관리를 책임져야 할 부서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보니, 업체들이 정부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식품업체들이 요청한 주요 원재료에 대해 할당관세와 부가가치세 면제 등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에도 식품업체들이 연초에 줄지어 가격을 인상한 것은 ‘그리드플레이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 초부터 식품업체가 수입하는 코코아 생두와 설탕, 오렌지 농축액, 토마토 페이스트, 가공용 옥수수 등 13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하고 있고, 다음 달 1일부터는 코코아 파우더와 기타조제 파인애플 등 6품목에 대해서도 할당관세를 적용해주기로 했다. 또 커피와 코코아를 수입할 때는 부가세 10%도 면세해준다.


정부는 식품업체의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해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최근 할당관세가 우리 농산물 시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용역에 나섰는데, 여기서 식품업체가 수입하는 할당관세에 관한 분석도 함께 수행하기로 했다. 
식품업체들이 할당관세를 받아 원재료를 들여와,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까지의 가격 변동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식품업체들이 할당관세로 원재료 가격 인상 부담을 덜었음에도 소비자 가격이 낮아지지 않으면 업체들이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기업을 어르고 달래서 가격 인상을 자제시키는 것은 오늘 올릴 가격을 내일로 미루는 ‘조삼모사’에 가까운 조치”라며 “주요 원재료 가격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공개해 소비자들이 자체적으로 기업의 ‘그리드플레이션’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품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은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의 하나일 뿐이고, 그 외에도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요인이 많다”는 입장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가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라며 “인건비도 오르고 각종 포장재 비용과 물류비도 물가 상승에 따라 지속적으로 상승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른 영향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는 대부분 수입해서 쓰는데 최근 환율이 크게 상승해 부담이 커졌다”며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들의 저항을 잘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할 수밖에 없는 건 기업들도 버틸 재간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250315)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

탐욕(greed)과 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로 기업들이 원재료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것을 틈타 제품 가격을 더 많이 올리면서 전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한국이 유엔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미수교국인 시리아와 수교하기로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정부는 시리아 과도정부 측과 관련 절차를 마무리 짓는 대로 이를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려 공식 처리할 방침이다. 지난해 쿠바에 이어 시리아까지 북한의 우방과 잇따라 손을 잡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191개 유엔 회원국(남북한 제외) 모두와 수교한 국가가 됐다. 
반면 북한의 수교국은 159국에 머물러 있고, 시리아에서도 공관원을 전원 철수시키는 등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본지에 “시리아 수교는 우리 외교 지평을 넓히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이날 “시리아와 수교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웠다”면서 “관련 절차를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달 정부 대표단의 시리아 방문 결과를 보고받고 수교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반군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에 축출되자, 우리 정부는 지난달 22년 만에 정부 대표단을 시리아에 보내 수교를 타진하고 협의를 진행해 왔다.


한국과 시리아의 수교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더 심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시리아는 대표적인 북한의 우방으로 꼽혀왔다. 아사드 정권은 1967년과 1973년 제3·4차 중동전쟁에서 북한 전투기 조종사 파병을 받고 탄도미사일·핵 개발 기술, 화학무기 등도 제공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자 시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은 전원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정부 측은 지난달 우리 정부 대표단 측에 “시리아 새 정권은 북한과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성일광 서강대 교수는 “북한의 중남미 거점 쿠바에 이어 중동 거점 시리아까지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북한의 심리적 타격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이번 시리아 수교로 남북을 제외한 유엔 회원국 191국과 모두 수교하게 됐다. 
교황청, 쿡제도, 니우에 등 유엔 비회원 3곳을 포함하면 시리아는 한국의 194번째 수교국이 된다. 
하지만 북한은 1991년 유엔에 가입할 무렵 수교한 159국에서 수교국을 늘리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 
수교는 했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수교국에 북한 공관을 설치하지 못한 경우도 대부분이다.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 공관도 영국, 러시아, 중국 등 소수 국가에 불과하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파병하면서 북한과 수교 관계인 영국 등 유럽국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면서 “북한은 앞으로 러시아에 더 밀착하며 의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는 2011년 ‘아랍의 봄’의 여파로 지난 13여 년간 내전을 겪어왔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8일 이슬람 무장 단체 HTS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며 정권을 잡았다. 현재 HTS 지도자인 아흐마드 알샤라 장군이 시리아 과도정부의 임시 대통령직을 맡고 있다.(250312)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한 학기만 가만히 있어라.”


올해 수도권 한 의대에 합격한 A씨는 지난달 술자리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24학번 선배들이 참석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전공의 선배들까지 여럿 몰려와 ‘의정 갈등’ 얘기를 꺼냈다. 
선배들은 “무조건 단일 대오”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A씨는 “너무 무섭고 당황했다”며 “이런데 학교에 어떻게 가겠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2026년 ‘증원 0명’을 내세우며 이달 말까지 의대생들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지만 좀처럼 의대생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증원 정책 수혜를 본 25학번 신입생들까지 수업을 거부하는 건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선배들의 강요 때문에 학교에 못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사람들은 “성인인 대학생이 어떻게 선배 압박에 수업 거부를 하느냐”며 의아해하지만, 도제식 수련이 많고 커뮤니티가 좁은 의료계 특성상 선배의 회유와 압박이 먹히고 있는 것이다.

 

 




을지대 의대 학생들은 최근 신입생을 대상으로 ‘1학기 수업 참여 여부’를 묻는 익명 설문조사를 수차례 진행했다. 
첫 조사에선 ‘수업을 듣고 싶다’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 나왔지만, 조사를 반복하고 결과를 공개하니 결국 ‘수업 거부’ 응답이 늘어났다고 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수업 거부’ 의견이 다수가 될 때까지 조사를 거듭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원 지역 한 의대 선배들은 학장이 주재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직후 신입생을 집합시켰다. 
이들은 신입생들에게 “의사 세계는 좁다. 한번 (배신자) 낙인찍히면 평생 간다”는 취지로 말하며 수업 거부 동참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서울대 의대 선배들은 25학번들을 모아놓고 ‘필수 의료 패키지’ 등 정부 의료 개혁의 문제점을 알리는 설명회를 열었다. 
이 밖에도 선배들이 보는 앞에서 휴학계를 쓰게 하거나, 휴학계 인증 사진을 취합하는 학교도 나왔다.


학교에 복귀하겠다는 학생을 공개 비판하며 ‘의료계 커뮤니티’에서 완전 배제하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14일 교육부에 신고됐다. 
건국대 본과 3학년 휴학생들은 지난달 입장문을 내고 “이탈자의 파국적인 행동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이탈자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며, 향후 모든 학문적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학교 본과 2학년 B씨는 “최근엔 ‘복귀자들은 빼고 단체 채팅방을 새로 만들 거니까 어차피 신상은 공개된다’는 공지를 받았다”면서 “휴학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국대 측은 14일 “수업 방해 부당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걸 확인했다”면서 “학칙에 따라 징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공지했다.


충청권 한 의대에서는 선배들이 ‘신입생 OT’를 연다고 하자 휴학을 종용당할까 봐 우려한 신입생 학부모가 대학 측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복귀한 의대생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각하다. 
C씨는 “복귀 의사를 표명하자 ‘시험 기출 문제’를 볼 수 있는 구글 드라이브 접근 권한이 없어졌다”면서 “메시지로 ‘소명할 기회를 드리는 게 우리(휴학생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니 이유를 말해보라’고 한다. 죄인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 본과 3학년 복귀자는 “이미 동기 선후배에게 너무 많은 조롱과 비난을 받고 있다”며 “전공의로 수련을 더 할 생각인데 이미 낙인이 찍혀 학회에서도, 병원이나 진료과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학부모들도 속이 탄다. 한 수도권 의대 25학번 학부모는 “선배들이 애를 불러내 ‘술 마시고 미팅이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는데, 수업 듣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면서 “힘들게 의대에 보내놨는데 마음대로 수업도 못 듣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작년 3월부터 ‘휴학 강요’ 등 의대생 괴롭힘 신고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4일까지 신고 사례 14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복귀자 명단과 욕설이 올라오고 있다.(250315)


 

 

 

서울 소재 대학병원 외과의 A 교수는 며칠 전 제자인 의대생 5명을 만났다. 
그는 “복귀를 설득하자 그중 한 명이 ‘정부가 ‘필수 의료 패키지’ 같은 엉터리 정책을 먼저 폐지해야 한다’고 하더라. 이유를 물으니, ‘(지도부) 선배들의 판단이다. 우리는 거기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답하더라”라고 했다.


정부는 작년 2월 ‘필수 의료 (지원)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 진료과의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인상과 소송 부담 완화가 주 내용이었다. 
이는 지난 20여 년간 의료계가 정부에 해결을 요구한 양대 숙원이었다.

 

 

 

 


정부는 당시 이 정책이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반발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릴 것으로 봤다. 
의료정책연구원이 2023년 의대생 800명을 조사해 보니 52%는 “필수과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지만, ‘낮은 수가’(49.2%)와 ‘법적 보호 부재’(19.9%) 때문에 망설여진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의대생 대표인 이선우씨는 지난 7일 수업 복귀를 거부하면서 “정부가 필수 의료 패키지를 먼저 철회하라”고 했다. 
의대생의 핵심 요구를 담았다는 필수 의료 패키지가 되레 의대생의 ‘제1 타도 대상’이 된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불이 꺼진 채 의학서적이 놓여 있다.>

 


정부는 의대생이 복귀하면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의대생 대표는 “붕괴된 의료 전달 체계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복잡한 전달 체계 해결엔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의료계 내에서도 의대생 움직임에 대해 “무조건 버티자는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것 같다” “지금 의대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정말 미스터리다”라는 말이 나온다.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은 지난달 28일 “정부가 소아 외과의 저수가 문제 등을 인식해 보상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가 전날 소아 외과 수술의 보상 강화 방안을 발표하자, 총 50여 명이 전부인 우리나라 소아 외과 의사들이 환영 성명을 낸 것이다. 소아 외과 처우 개선은 필수 의료 패키지 내용이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는 “필수 의료 패키지는 내용 자체로만 보면 필수과에 작지 않은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했다.

 

 




실제 정부는 작년부터 올 3월까지 필수 의료의 수가 인상에 건강보험 재정 1조590억원을 배정했다. 
수가 인상을 위한 목표 투입액(연 2조원)의 53%가 이미 배정됐고, 필수과 의사들이 현장에서 ‘수가 인상’의 혜택을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정부에 따르면 소아(체중 1.5kg 미만)의 동맥관을 차단하는 ‘경피적 동맥관 개존 폐쇄술’은 수가가 212만원에서 최근 1060만원이 돼 5배로 올랐다. 
소아 충수 절제술(맹장 수술)도 96만원에서 480만원이 돼 5배로 올랐다. 막힌 심장 혈관을 뚫기 위해 스텐트를 삽입하는 심장혈관 중재술도 기존 수가(스텐트 4개 삽입 시)가 226만원이었으나, 이젠 463만원이 돼 두 배로 인상됐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최근 필수 진료과 의사는 수술 부위 착오 등 어이없는 중과실을 범하지 않은 한 환자가 사망해도 처벌을 줄이거나 면제하는 의료 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안의 핵심 내용도 발표했다. 
정부는 올 상반기 안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필수 의료 패키지엔 학생이 늘어난 의대에 2030년까지 국고 5조원을 들여 인력·시설·장비를 확충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정책에 따라 올해부터는 기존 소아과에 이어 내과·외과·흉부외과 등 총 9개 진료과 전공의의 수련 비용을 월 100만원씩 국가가 지원한다. 의대생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것들이다.


그런데 의정 갈등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정부의 필수 의료 패키지 효과가 점차 가시화되자,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이젠 환자 선택권 침해와 의료 질 저하를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내에선 “의대생과 전공의 지도부의 필수 의료 패키지 반대는 핑계일 뿐, 결국은 의대 정원을 줄여서 증원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라는 것”이라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1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미 상당수 과제가 이행 중인 상황에서 (의대생들이 요구하는) 필수 의료 패키지의 전면적 철회 주장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의대생들의 반발은 필수 의료 패키지 속 ‘비급여 진료 제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여기에는 도수 치료 등 비(非)중증·응급 치료의 실손보험 적용을 제한하고, 피부 시술을 의사 외 다른 직역에도 개방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이는 곧 의대생의 ‘미래 소득원’을 줄이는 것이어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의대생(본과 3학년)은 “필수 의료 패키지 안에 있는 진료 면허는 우리에게 족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진료 면허제는 의대를 졸업해 의사 면허를 따도 추후 1~2년간 수련을 하지 않은 일반의는 단독으로 환자 진료를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정부는 환자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의대생 입장에선 의대를 졸업하고 피부·미용 시장에 바로 진입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대에 온 것인데 협의도 없이 의사의 영역을 줄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250315)

 

 

 

“주민 거주지입니다. 소곤소곤 대화해주세요.”


지난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한옥마을에 카우보이 옷을 입은 ‘보안관’이 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 8명이 한옥집 앞에서 큰소리로 얘기하자 보안관이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오후 5시가 되자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골목은 한산해졌다. 보안관들은 “관광 시간이 끝났습니다. 내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며 골목에서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지난 11일 ‘야간 통금 시간’ 전후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모습.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북촌한옥마을(위 사진)은 오후 5시 통금 시간이 되자 한산해졌다(아래 사진). 카우보이 복장을 한 보안관들이 관광객들을 골목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작년 11월 서울 종로구가 북촌 일대에 ‘야간 통행 금지’ 제도를 시행한 이후 풍경이다. 
관광객들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북촌의 주거 지역을 다닐 수 없다. 
어길 경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한다. 통금 제도를 시행한 건 1988년 이후 37년 만이다. 
7월부터는 관광버스 통행도 금지한다. 2023년 북촌을 찾은 관광객 수는 665만명. 주민 수의 1000배에 달하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소음, 주차난 등 문제가 불거졌고 종로구가 나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4개월간 가회동 지역의 유동 인구는 하루 평균 6593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62명(3.8%) 줄었다. 
특히 야간 통금 시간의 유동 인구는 평균 5176명으로 1년 전보다 415명(7.4%) 줄었다. 
통금 조치가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반면 낮 시간대(낮 12시~오후 5시)는 평균 1만5명으로 181명(1.8%) 증가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실제로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없지만 수시로 안내·계도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북촌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다카하시(21)씨는 “서울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 ‘저녁에 가면 안 된다’고 쓰여 있어 일찍 찾아왔다”고 했다. 
관광 가이드들도 저녁 코스로 북촌을 빼고 있다고 한다.


북촌에 사는 주민들은 “이제 일상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류보람(43)씨는 “예전엔 차 좀 빼달라고 전화하는 게 일이었는데 이젠 살 만하다”고 했다. 
그는 “대문을 안 잠그면 관광객들이 들어와 깜짝깜짝 놀랐다”며 “집 마당에 드론이 들어온 적도 있다”고 했다. 주민 조모(49)씨는 “통금 이후 처음으로 저녁에 창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밤마다 담배 피우고 떠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속을 끓였다”며 “층간 소음보다 더한데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고 했다.


종로구에 따르면 소음, 쓰레기 등 문제로 북촌에서 접수된 주민 민원은 2018~2023년 1804건이었다. 
하지만 통금을 실시한 이후 4달간 접수된 민원은 한 건도 없었다.


줄어들기만 하던 주민 수도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4400여 명이었던 가회동 인구는 작년 말 3800여 명까지 줄었다. 
종로구 관계자는 “최근 전입 문의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며 “작년 말엔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북촌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울상이다. 북촌에서 8년째 한복 대여 가게를 하고 있는 김모(46)씨는 “한복은 2시간 단위로 빌려주는데 오후 5시부터 통금이라 3시면 손님이 끊긴다”며 “요즘 매출이 1년 전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일부 상인은 법원에 통금을 풀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일본이나 이탈리아처럼 관광객들에게 관광세를 받아 주민이나 상인들을 위해 쓰거나 계절에 따라 탄력적으로 통금 시간을 운영하는 방법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종로구는 “구가 나서서 북촌 가게들을 홍보하는 방안 등 보완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른바 ‘한옥스테이’ 숙박 업소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옥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옥스테이에 투숙하면 통금 시간에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며 “밤새 떠드는 단체 관광객들도 있다”고 했다.(250314)





 

 

 

한때 ‘밀폐 용기의 대명사’로 통한 국내 1위 밀폐 용기 업체 락앤락은 ‘상속세’ 때문에 회사가 매각된 이후 실적이 추락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1978년 설립한 락앤락은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베트남, 인도 등에서 인기를 얻었고, 미국 홈쇼핑 채널에서까지 대박을 냈다. 
특히 2004년엔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창업주 김준일 회장이 4000억원(매각 대금 기준)이 넘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회사를 사모펀드에 넘긴 후 락앤락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홍콩계 사모펀드가 수익성을 앞세워 한국 공장은 물론 해외 공장도 대부분 매각한 뒤 생산은 중국 기업에 위탁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중국 OEM 제품인 데 실망해 등을 돌렸다. 2021년 5430억원까지 간 매출은 3년 만에 38%가 줄었다. 2023년부터는 적자를 냈다. 지난해엔 자진 상장폐지까지 갔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표 중소·중견 기업 중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감당하기 어려워 가업을 포기하거나 기업을 매각한 곳이 적지 않다. 
탄탄한 경영 능력을 자랑했던 업체들이 이 과정에서 위기를 겪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무역협회가 중소기업인 79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42.2%는 “상속세 문제 등을 이유로 가업 승계를 하지 않고 매각이나 폐업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국내 중소기업인의 절반가량이 과다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가업 승계를 고민하는 것이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생산 업체였던 쓰리세븐(777) 역시 상속 문제로 회사가 매각된 경우다. 
1975년 설립 이후 33년 동안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던 회사다.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별세하자 유가족과 임직원은 상속세 150억원을 감당하기 어려워 제약 업체 중외홀딩스에 지분을 팔았다. 
중외홀딩스는 이듬해 쓰리세븐을 다시 김형규 회장의 사위(김상묵 현 회장) 등이 설립한 티에이치홀딩스에 넘겼지만, 2003년 300억원 정도였던 회사 매출을 다시 회복하긴 쉽지 않았다. 2023년 매출은 160억원 정도다.

 

 




국내 최대 가구·인테리어 업체로 이름을 날렸던 한샘은 창업주 조창걸 전 명예회장의 직계가족 중 경영 후계자가 없고 막대한 상속세를 내기도 어려워 2021년 사모펀드 운용사에 매각했다. 
사모펀드에 팔린 이듬해에 회사는 적자를 냈고 2023년엔 다시 흑자를 회복했지만 매출은 매각 이전보다 줄었다.


1973년 설립해 한때 세계 1위 콘돔 생산 업체였던 유니더스는 상속세 때문에 회사가 매각되고 사실상 해체 절차를 밟은 경우다. 
2015년 창업주가 별세하고 회사 경영권을 사모편드에 넘겼다. 
유니더스는 이후 바이오제네틱스, 경남바이오파마 블루베리 NFT, 블레이드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명을 바꾸며 사업 다각화를 계속 시도했으나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사례가 거듭되자 중소기업계에선 “상속세 때문에 기술력 있는 업체들이 승계 과정에서 망가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상당수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1980, 1990년대에 창업했기에 상속 시점에 와 있다”면서 “지금 상속세를 개정하지 않으면 강소 기업 상당수가 해외에 팔리거나 사모펀드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250314)

 

 

 

“지구에 물이 없어진다면?(What will happen when Earth has no water?)”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어학원이 만 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레벨 테스트’ 영작 기출 문제다. 
아이들은 이 학원에 다니려면 이런 작문 문제를 포함해 단어·문법·독해 문제를 약 1시간 만에 풀어야 한다. 일대일 영어 면접도 한다.

 

 




매년 말 치러지는 레벨 테스트에 수백 명이 응시하지만 입학 정원은 30~40명 수준이다. 
한 번 불합격하면 수개월간 재응시도 못 한다.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 이른바 ‘7세 고시(만 5세)’라고 불린다. 
이런 7세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만 4세 이하 아이들이 별도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고, 심지어 자녀를 레벨 테스트에 합격시키는 팁을 가르치는 ‘학부모 대상 인터넷 강의’까지 등장했다.


만 5세 어린이 10명 중 8명이 각종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간 통계 사각지대에 있던 영유아 사교육비 현황을 정부가 조사해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교육의 저(低)연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13일 이런 내용의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7~9월 만 6세 미만 영유아 가구 부모 1만32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로, 내년 본조사(국가승인통계)를 하기 전 시험 조사한 것이다.


조사 결과, 작년 7~9월 3개월간 전국 영유아들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원이며, 전체 사교육 참여율은 47.6%였다. 
영유아 둘 중 하나는 사교육을 받는 것이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영유아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이다.


만 2세 이하(사교육 참여율 24.6%)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4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만 3세(50.3%)는 31만4000원, 만 4세(68.9%)는 38만4000원, 만 5세(81.2%)는 43만5000원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교육 참여율이 높아지고 비용도 늘어났다.


과목별 1인당 사교육비는 영어가 41만4000원으로 가장 높았고, 취미·교양(12만7000원), 체육(12만7000원), 음악(12만2000원) 순이었다. 
어린이집·유치원 대신 가는 반일제 영어 학원(이른바 ‘영어 유치원’)의 1인당 월평균 비용은 154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1년으로 계산하면 1854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 평균 대학 등록금(683만원)의 세 배에 가깝다.

 

 




정부는 이날 ‘2024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작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2조1000억원(7.7%) 증가했다. 학급별 사교육비 총액은 초등학교가 약 13조2000억원, 중학교가 7조8000억원, 고등학교가 8조1000억원이다.


초중고 학생 수는 2021년 532만명, 2022년 528만명, 2023년 521만명, 작년 513만명 등 빠르게 감소하는데 사교육비는 치솟는 것이다. 
초중고 전체 사교육 참여율도 전년 대비 1.5%포인트 증가해 처음으로 80%를 넘었다.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이 87.7%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은 78%, 고등학생은 67.3%였다. 
맞벌이 부부가 많고 저학년일수록 방과 후 음악·미술·체육 등 학원에서 취미·교양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초등학생 참여율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 기준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9만2000원에 달했다. 
학급별로 보면 초등학생이 50만4000원으로 전년 대비 4만1000원(9%) 늘어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중학생 월평균 사교육비는 62만8000원으로 전년 대비 3만2000원(5.3%), 고등학교는 77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3만3000원(4.4%) 증가했다.


가장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과목은 영어(26만4000원)로 나타났다. 다음은 수학(24만9000원), 국어(16만4000원), 사회·과학(14만6000원) 순이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가정일수록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했다.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7만6000원이고, 300만원 미만 가구는 20만5000원이었다.


전문가들은 공교육 부실과 정권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이 사교육비를 치솟게 한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의대 증원처럼 입시에 큰 영향을 주는 정부 정책이 정치권 상황에 따라 요동친 것도 영향을 줬다는 의견이 많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30~40대인 학부모들은 정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며 ‘실험 대상’이 된 경험을 한 세대이자, 그 난관을 사교육에 의존해 극복한 세대”라며 “공교육 불신이 가장 심한 세대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자녀에게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250314)

 

 

 

정부가 2028년부터 배우자와 자녀들이 각자 물려받은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 상속세를 도입하겠다고 12일 밝혔다. 
고인이 남긴 유산 전체에 상속세를 물리고 유족들이 연대 책임을 지고 세금을 내는 방식의 현행 유산세 방식 상속세 체계를 도입한 지 75년 만에 전면 개편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11일 이 같은 내용의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상속세는 유산 금액에 따라 10~50%의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 세율 방식이기 때문에 유산취득세가 적용돼 유족별로 상속받은 금액이 나뉘면 세금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정부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고 그에 맞춰 자녀와 배우자 등 인적 공제를 확대할 경우 상속세 세수가 매년 2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상속세 개편에 맞춰 현재 1인당 5000만원인 자녀 공제 한도를 5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여야가 배우자가 상속받는 몫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20억원의 재산을 배우자 10억원, 자녀 두 명이 각 5억원씩 상속받을 경우 세금이 0으로 줄어들게 된다. 
지금은 배우자의 법정 상속분(배우자 1.5 대 자녀 1명당 1의 비율)과 일괄공제 5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 약 6억4000여 만원에 대해 1억3000만원가량의 세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방식 과세를 위한 국세청 전산 시스템 정비 등 준비 기간을 거쳐 2028년 1월 1일 상속분부터 새 방식을 적용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달 안으로 이 같은 관련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4월 공청회를 거쳐 5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유산취득세 개편은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어서 실제 도입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다. 
국세청 차장 출신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기재부안으로 상속세를 개편한다면 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며 “유산취득세 전환은 시간을 갖고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75년 동안 유산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물렸던 이유는 상속세가 도입된 1950년 당시 농촌 중심 경제 구조에서 재산을 가문 단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전되고 핵가족 형태가 일반화하면서 낡은 제도가 됐다는 것이다. 
황헌순 계명대 세무학과 교수는 “사회가 변하며 자녀들이 연대 책임 방식으로 세금을 내는 게 불합리하다는 인식이 퍼진 지 오래”라고 했다. 
각자 받은 몫만큼 세금을 내는 증여와 과세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혼선을 빚었다.


상속세를 매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 회원국 중에서 유산세 방식을 택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국뿐이다. 
실제 상속받은 재산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받은 만큼 낸다”는 과세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따라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부터 유산취득세 개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공약으로 채택했고 구체적인 청사진이 이날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개편 일정과 함께 자녀와 배우자 등 인적 공제 확대 방안도 내놨다. 
배우자와 자녀 등이 받은 유산 전체를 기준으로 최소 10억원(일괄 공제 5억원+배우자 공제 5억~30억원)의 공제를 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물려받은 만큼 세금을 낸다”는 유산취득세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1인당 최대 5000만원의 자녀 공제는 1인당 최대 5억원으로 늘리고, 미성년자의 경우 19세가 될 때까지 남은 햇수에 5000만원을 곱한 금액만큼 한도를 더 높이기로 했다. 
17세 자녀가 7억원을 상속받는 경우 공제액은 5억원에서 6억원으로 늘어난다.

 

 




배우자 공제는 여야가 한도를 없앤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번 정부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안은 배우자 공제를 최소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늘리되, 최대 30억원의 기존 한도는 유지한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10억원 이하를 상속받으면 전액 공제되고, 10억원을 초과할 경우 법정 상속분에 대해 30억원 한도로 공제해주겠다는 것이다. 
법정 상속분은 유족 간 재산 분할 합의가 불발될 경우에 대비해 민법이 정해 놓은 상속 비율로 배우자가 자녀보다 1.5배 많다. 
25억원을 배우자와 자녀 1명이 물려받는 경우 배우자 몫은 15억원이고 자녀 몫은 10억원이다. 
배우자가 20억원, 자녀가 5억원을 물려받을 경우 배우자는 15억원까지 공제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짠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중산층 가족의 상속세 부담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부동산 세금 전문 업체인 아티웰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배우자 1명과 성인 자녀 2명이 25억원을 법정 상속분만큼씩 상속받는 경우 세 부담은 2억1857만원에서 6571만원으로 70% 줄어든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자녀가 많을수록 세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성이 15억원의 재산을 3명의 자녀에게 물려줄 경우 현행 제도는 공제액이 일괄 공제 5억원이 전부라 세금은 2억400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이 도입되면 자녀 1명당 각각 5억원의 공제가 적용돼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세수는 연평균 2조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인적 공제 확대로 1조7000억원, 유산취득세 도입에 따른 실효 세율 인하 효과로 3000억원 이상이다. 
2조원은 한 해 상속세(2023년 기준 8조5000억원)의 24%쯤 된다.


고인 사망 후 9개월 이내 유족 간 협의를 거쳐 상속 재산을 분할하면 그에 맞춰 세금을 물리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협의가 되지 않을 경우 법정 상속분에 따른 상속을 전제로 유족 각자에게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도입 이후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먼 친척 등을 동원해 실제보다 상속받는 가족을 늘리는 ‘위장 분할’ 등 편법이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세금 납부 의무가 유지되는 ‘부과 제척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할 방침이다.(250313)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정부 고위 공직자에 대한 탄핵 시도는 모두 29차례 이뤄졌다.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탄핵이 인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13일 현재까지 탄핵 심판 사건 8건 모두 기각 결정이 났다. 대부분 합당한 사유 없이 정략적으로 밀어붙인 ‘졸속 탄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에서는 탄핵이 기각된 공직자에 대한 사법적 책임, 행정 공백으로 인한 정치적 책임, 세금 손실의 재정적 책임을 강제하는 수단이 없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제도적 허점을 악용(惡用)해 마구잡이로 줄탄핵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와 이성윤 의원이 작년 12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감사원장(최재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 만인 2023년 2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까지 연쇄 탄핵소추했다. 
2년간 매달 1차례 이상 탄핵안이 나온 셈이다. 
특정 고위 공직자를 겨냥해 2~3차례 반복적으로 탄핵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공직자 직무가 정지된 경우는 13건이다.


나머지 16건은 탄핵안이 철회되거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정치적 압박을 받은 공직자가 자진 사퇴하면서 탄핵안이 폐기된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2023년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자신을 겨냥한 탄핵안이 3차례나 거듭 발의되자 스스로 직(職)에서 물러났다. 
이 전 위원장 후임인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 그다음인 이상인 전 방통위 위원장 직무대행도 탄핵안이 발의되자 자진 사퇴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도 마찬가지 경우다.

 

 




이들 탄핵소추의 상당수는 억지·졸속으로 진행됐다.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탄핵안에 “검찰청법 규정에 의해 탄핵한다”는 대목이 잘못 들어가 철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작은 오류”라고 했지만, 검사들까지 한꺼번에 탄핵하는 과정에서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을 잘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뒤이어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취임한 지 이틀 만에 탄핵됐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경우 “야당 대표를 노려봤다”는 것이 탄핵 사유에 들어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은 미확인 소문, 일방적 주장, 무혐의로 결론 난 사건 등으로 ‘탄핵 명단’에 올랐다.


헌재는 지금까지 8차례의 탄핵 심판 결정에서 “파면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사유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기각했다. 
여권에선 탄핵 심판 ‘8전 8패’에 따른 정치적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잇따른 탄핵으로 고위 공직자의 직무가 정지돼 행정 공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서지영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국정 혼란, 행정 공백뿐만 아니라 대외 신뢰도 하락에 이르는 국가적 손실은 안중에도 없이 ‘묻지 마 탄핵 폭주’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공직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날 헌재가 최재해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하자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헌재가 최 감사원장의 일부 불법적 행위를 확인했다”고 했다.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법적 요건이 미비한 연쇄 탄핵에 대해 “무고(誣告)성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사법적 책임을 따지자면 직권 남용 권리 행사 방해에 가깝다”고 했다.


기각으로 끝난 탄핵 심판에 국민 세금이 낭비된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국회가 탄핵 심판에 지출한 비용은 4억6024만원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도 탄핵을 공언하고 있다. 
판사 출신인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사법 리스크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이재명 대표는 ‘묻지 마 줄탄핵’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고 있다”며 “제 한 몸 지키자고 국민 혈세를 마구 내다 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250314)


 

 

 

야구 팬들을 깨울 시간이 돌아왔다. 올해로 44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프로야구.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작년 우승 팀 KIA와 롯데 맞대결을 포함해 전국 5개 구장에서 시범 경기가 일제히 막을 올린다. 팀당 10경기씩 총 50경기가 열린다.


각 팀에는 마지막 전력 퍼즐을 맞출 기회다. 다만 시범 경기 성적이 정규 시즌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시범 경기 1위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건 역대 7번뿐, 최근은 2007년 SK(현 SSG)가 마지막이다. 
작년 시범 경기 1위(8승1무) 두산은 정규 리그 4위로 내려앉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에 고개를 숙였다.


올해 시범 경기의 가장 큰 변화는 ‘피치클록’이다. 주자가 없으면 20초, 주자가 있으면 2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하는 만큼 투수들은 바빠질 전망이다. 
타자 역시 33초 이내에 타석에 들어서야 하며, 타석당 타임아웃도 2번으로 제한된다. 
위반 시엔 투수에게는 볼이,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가 주어진다.

 

 




지난 시즌 화제가 됐던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는 현장 의견에 따라 미세한 지표 조정이 있었다. 
작년까지는 선수 신장 대비 상단 56.35%, 하단 27.64% 위치로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했는데, 올해는 이를 각각 0.6%p씩 낮췄다. 
1㎝ 정도 스트라이크 존이 내려간 것에 불과하지만, 투수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 판정 범위가 조금 좁아졌다고 느낄 수 있다.


주루 플레이에도 변화가 생긴다. 기존엔 1루까지 주루 시 3피트 라인만 달려야 했지만, 이제는 1루 파울 라인 안쪽 흙 범위(45.72~60.96㎝)까지가 주로로 인정돼, 주자들이 보다 과감히 달릴 수 있게 됐다. 
경기 도중 ‘충돌 사고’를 줄이면서도 역동적인 주루 플레이를 끌어내겠다는 목적이다.


한화 새로운 보금자리도 시범 경기에서 첫선을 보인다. 
지난 5일 완공된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가 17일 한화와 삼성 시범 경기를 통해 홈경기 적응에 나선다. 
한화는 지난겨울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엄상백과 4년 최대 78억원, 심우준과는 4년 최대 50억원에 계약하며 자원 보강을 했다. 
한화 주장 채은성은 “모든 게 준비가 됐다. 이제 성적만 내면 된다”고 했다.


지난해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챔피언 KIA는 올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88홈런을 때려 낸 외국인 거포 패트릭 위즈덤을 영입하며 한층 더 무서워졌다. 외국인 에이스 투수 제임스 네일, 새로 영입된 아담 올러, 그리고 양현종·윤영철로 이어지는 4선발까지 확정을 지었다. 
이범호 KIA 감독은 순조로운 재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의리 회복 전까지 5선발로 쓸 김도현과 황동하를 두고 고민 중이다. 
정해영, 곽도규에 이어 조상우가 합류한 불펜진 역시 탄탄하다는 평가다.


준우승팀 삼성 역시 ‘좌완 파이어볼러’ 신인 배찬승을 비롯해, 캠프 기간 내내 화제였던 루키·유망주들의 신고식이 시범 경기에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데니 레예스와 김무신(옛 김윤수), 중장거리 거포 김영웅 등 다수가 부상으로 개막에 맞춰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 빈틈을 신인과 2·3년 차 선수들로 발 빠르게 메울 수 있느냐가 삼성의 숙제다.


삼성처럼 부상·이탈 변수로 골머리를 앓는 팀도 적지 않다. 
SSG는 현역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영입한 미치 화이트가 허벅지 부상으로 시즌 초반 합류가 불투명해지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화이트가 빠지면 지난해 강속구를 앞세워 가능성을 인정받은 송영진, 팔꿈치 수술 이후 재기를 노리는 박종훈, 혹은 미국 트레이닝센터에서 구속을 끌어올려온 정동윤 같은 투수들이 빈자리 메우기에 나선다.


LG에서는 신인 김영우가 시속 150㎞대 강속구와 포크볼을 무기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마무리 기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KT 위즈는 강백호와 멜 로하스 주니어를 테이블세터로 시험 중이다. 포수 강백호가 1번 타자로 출루하고, 장타력이 뛰어난 로하스가 2번에 자리 잡으면서 폭발력을 노리겠다는 계산이다.


시범 경기는 대부분 오후 1시 시작한다. 야간 경기 적응을 위해 13일 키움-SSG(인천)와 KT-NC(창원), 15일 KT-롯데(사직), 17일 삼성-한화(대전)와 SSG-KIA(광주) 경기는 오후 6시 시작한다. 
팀별 출장 인원 제한은 없다. 연장전은 없고, 취소된 경기는 재편성되지 않는다. 시범 경기가 끝나면 각 팀은 막판 채비를 한 후 22일 정규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들어간다.(250308)

 

 

 

지난 1일 오후 경기 고양시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 습지에서 서식 중인 동식물을 기록한 생태관을 지나 보호구역으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서니 철책으로 막혀 있었다. 
탐방객에게 문을 열어줬던 곳이지만 2021년 지뢰 사고가 발생한 후로는 출입이 통제됐다. 
철책에는 ‘출입자는 지뢰로 인한 사고 발생 위험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본지가 6일 드론을 띄워 이 일대를 촬영해 보니,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잔가지 등 부유물로 한강과 연결된 물길이 꽉 막혀 있었다. 
한강유역청 관계자는 “한강 하구로 밀려드는 도시 쓰레기가 습지에 쌓이고 있지만 지뢰 위험 때문에 관리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6일 오후 드론을 띄워 촬영한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내 물골(사진 가운데)에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잔가지 등 부유물이 가득 차 있다. 
한강물이 드나드는 통로인 이곳에 쌓인 쓰레기를 계속 방치하면 주변 생태계가 오염되고 한강 수질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강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5.96㎢(약 180만평) 크기의 장항습지는 대륙 사이를 이동하는 철새의 중간 경유지이자 서식지다. 
서해안의 높은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해 형성된 자연 하구(河口)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태적 중요도가 높아 ‘람사르 습지’에 지정되며 국제적으로 관리 필요성을 인정받은 곳이다. 
하구 특성상 도시 쓰레기와 해양 쓰레기가 물가로 모이는데 환경부는 2021년 이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곳으로 흘러든 ‘북한 지뢰’ 때문이다.

 

 




장항습지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이었다가 지난 2018년 해제된 뒤 출입을 승인받은 농민, 환경 정화 작업자, 생태 탐방객 등에게 개방됐다. 
일반인의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던 과거에는 하구에 쓰레기가 쌓여도 치울 방법이 없었으나, 개방된 이후에는 정화 작업이 이뤄졌다. 
환경부는 매년 2억원의 정화 작업 예산을 편성해 장항습지 일대에 쌓인 쓰레기를 치워 왔으나 2021년 사고 이후로는 청소가 중단됐다.


지뢰 폭발 사고는 2021년 람사르 습지 지정 다음 달에 발생했다. 
그해 6월 한 환경 단체가 습지 환경 정화 활동을 위해 들어갔다가 대인 지뢰가 폭발해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한강청 관계자는 “지뢰 사고 이후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의 지뢰가 일대에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돼 더 이상 환경 정화 작업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허가받은 농민만 일부 출입하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드론을 띄워 촬영한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내 물골에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잔가지 등 부유물이 가득 차 있다.>

 


우리 군은 주기적으로 지뢰를 탐지·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계속 지뢰가 내려오면서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목함 지뢰, 나뭇잎 지뢰 등 장항습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는 모두 지뢰탐지기로 탐지가 어려워 군에서도 얼마나 많은 유실 지뢰가 한강 하구 습지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제거된 지뢰 수도 군에서 비공개로 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장항습지에는 쓰레기 수백t이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수거되지 못한 쓰레기로 습지 생태계가 파괴되고, 오염 물질이 한강으로 흘러들 수 있다.


장항습지는 멸종 위기 야생 생물 1급인 저어새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환경부의 2022년 ‘한강 하구 습지보호지역 생태계 모니터링’에서 2005~2021년 장항습지에 출현한 누적 생물종은 식물 455종, 조류 192종, 포유류 16종 등 총 1092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찰된 생물 가운데에는 저어새, 개리, 큰기러기, 재두루미, 흰꼬리수리, 금개구리, 삵 등 멸종 위기 보호종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면 환경부가 보전 계획을, 각 지자체가 실천 계획을 각각 수립한다. 
장항습지의 경우 고양·김포·파주시가 정화 작업 등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환경부는 이달 중 제4차 한강하구 습지 보전 계획을 발표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도 시작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실행은 어려운 상황이다. 
한강청 관계자는 “관리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지뢰 사고 등의 우려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만 됐을 뿐 대책 마련 없이 오염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250312)

 


☞람사르 습지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체결된 ‘습지 협약’에 따라 생태적 중요도를 인정받은 습지. 
국내엔 강원 인제 대암산용늪, 경남 창녕 우포늪, 전남 순천만·보성갯벌 등 총 26곳, 203.189㎢가 지정돼 있다.


 

 

 

지난 5일 전북 전주시에 있는 전문대학인 전주비전대 실습동 1층의 약 200㎡ 규모 실습장. 
각국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 29명이 산업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정밀 가공 장비인 선반(旋盤)·밀링 12대 앞에 2~3명씩 서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 미래모빌리티학과 외국인반 학생들로, 베트남 국적 18명, 미얀마인 10명, 방글라데시인 1명이었다. 
이 가운데 여학생도 10명이다. 이들은 유창한 한국어 외에 간간이 모국어를 섞어 쓰면서 협업해 기기 작동을 익혀나갔다. 
방글라데시 대학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하다 그만두고 3년 전 전주비전대로 온 피알(26)씨는 “전주가 마음에 들어 전북 공장에 취직하고, 나중에 귀화 시험도 보고 싶다”며 “내가 방글라데시 학생 1호였는데, 고향에 소문이 퍼져 올해는 4명이나 들어왔다”고 했다.

 

 

<5일 전북 전주시 전주비전대 실습장에서 미래모빌리티학과 소속 외국인 학생들이 가공 장비 ‘선반’ 실습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한국 공장에서 오래 근무하며 나중에 귀화 시험도 보고 싶다”고 입 모아 말했다.>

 


전주비전대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가 운영하는 ‘뿌리산업 외국인 기술 인력 양성 대학’ 사업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외국인 학생 수를 급격히 늘려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는 학습 여건을 고려해 외국인 정원을 자율적으로 정하되, 매년 취업 실적과 교육 여건 등에 관한 평가를 정부로부터 받아야 한다. 
이 프로그램으로 입학한 외국인 학생은 약 1년간 어학당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이후 2년 동안 자동차 부품, 기계 관련 공부를 한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해 주간엔 학교를 다니고 야간엔 편의점,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졸업 시험을 합격하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등에 취직하게 된다.


미래모빌리티학과의 외국인 신입생은 당초 30명 규모에서 2023년 50명, 작년 119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2학기까지 베트남, 미얀마 등지의 외국인 유학생을 총 120명 선발할 계획이다. 
외국인 학생이 늘자, 교수와 실습 장비도 덩달아 늘었다. 이 학과는 2년 동안 교수를 2명 더 선발해 7명이 됐다. 
선반·밀링 장비는 9개에서 12개로, 용접기는 12개에서 20개로 각각 늘렸다. 
전주비전대 백일현 교수는 “졸업 시즌이 되면 호남권은 물론 영남권, 경기 안산 등의 공장에서 ‘3명쯤 보내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계속 온다”며 “외국인 학생이 없으면 이젠 교육계도, 산업계도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 졸업생은 다른 외국인 근로자에 비해 한국어 실력이 월등히 좋아 인력난에 허덕이는 국내 제조업체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뿌리산업 외국인 기술 인력 양성 대학엔 전주비전대, 거제대, 군장대(전북 군산) 등 12개 전문대의 기계, 자동차학과들이 참여 중이다. 
프로그램 전체 신입생 수는 2021년 260명에서 2023년 500명, 작년 879명으로 크게 늘었다. 
거제대를 비롯한 학교들은 신입생 유치를 위해 키르기스스탄 등 현지 대학에서 프로그램 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작년 기준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총 21만명인데, 교육부는 2027년까지 3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지자체도 학령인구 감소를 메우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의 경우 올해 일본, 중앙아시아 등 국가에서 ‘부산 대학 입학’ 순회 설명회를 갖고, 유학생이 졸업 후 부산에 정착하도록 법률·주거 등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부산시 관계자는 “제2 도시 부산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유학생이 부산의 경제 인구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253010)


 

 

 

전국 구치소와 교도소 등 교정 시설 과밀화가 날로 심각해지는 주요 원인이 마약 사범의 급증인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법무부가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교정 시설 수용률은 125.3%였다.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125명이 수용돼 있다는 것이다. 
전국 교정 시설의 수용 인원은 6만2981명으로, 정원(5만250명)보다 1만2000명 이상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정 시설 수용률은 2019년 112.7%를 기록한 뒤 코로나 영향으로 주춤하다 2023년 118.4%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25%를 넘겼다. 
법무부 관계자는 “수용 인원이 6만명을 넘어선 것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처음이고, 125% 이상 수용률도 약 30년 만의 최대치”라고 했다.


최근 늘어난 수용자 중 상당수는 마약 사범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교정 시설에 수용된 마약 사범은 2019년 3574명에서 지난해 6628명으로 5년 만에 85.5%가 늘었다. 
코로나 사태로 전체 수용자가 줄었던 2020~2022년에도 마약 사범은 꾸준히 늘었고,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전년 대비 32.2%·17.6%나 급증했다. 
전체 수용자 중 마약 사범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9년 6.6%에서 매년 증가해 작년엔 10.5%로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마약이 급격히 확산하고 이에 대응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검거한 마약 사범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법무부는 분석했다. 
교정 당국 관계자는 “수용자 간 싸움과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크게 늘었다”며 “면회나 외부 진료 등 교정 공무원 업무도 덩달아 늘어 사무 직원을 보안 업무에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수용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과밀 수용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사기 혐의로 인천구치소에 수감됐던 A씨는 16.19㎡(약 4.9평) 크기 거실에서 13명이 생활했다. 
잠자는 공간이 1인당 55cm밖에 안 돼 수용자들끼리 어깨를 부딪치며 자야 했고, 실내 운동장의 과밀화로 1인당 하루 1시간씩의 운동 시간도 30분밖에 못 썼다고 주장했다.


전주교도소에 수용됐던 B씨의 경우 7~8명이 11.71㎡(약 3.5평) 크기 거실에 수용됐다. 
평소 칼잠(똑바로 눕지 못해 옆으로 누워 자는 잠)이나 새우잠(몸을 쪼그리고 자는 잠)을 잘 수밖에 없고, 여름에는 냉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탈수 현상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국가가 수용자들을 1인당 2㎡ 미만 거실에 수용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1.25㎡, 1.46㎡ 면적에서 생활한 A씨와 B씨는 최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1심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교정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현재 5만250명인 수용 정원을 2028년까지 5만9265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교정 시설 신축·이전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 기한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적극적인 가석방·보석으로 수용 인원을 줄이는 방법도 있지만, 그 역시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어서 쉽지 않은 문제다.


연간 마약으로 단속된 인원이 2년 연속 2만명을 넘은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교정 시설 과밀화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적발된 마약 사범 수는 2021년 1만6153명에서 2022년 1만8395명, 2023년 2만7611명으로 급증했다. 
2년 사이 70%가 넘게 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2만3022명으로 2년 연속 2만명을 넘겼다. 
정부는 앞으로 연 2회 마약 범죄 합동 특별 단속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제1차 마약류 관리 기본 계획을 최근 채택하기도 했다. 
마약 사범의 높은 재범률도 문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3년 마약 사범의 재범률은 32.8%였다. 세 명 중 한 명은 출소해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대형 로펌 한 변호사는 “최근 법원 안팎에서는 구치소와 교도소가 꽉 차서 판사들이 실형을 선고하고도 법정 구속을 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면서 “우리 사회의 마약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는 웃지 못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법무부는 도심에 인접한 교정 시설을 우선적으로 이전·확장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검찰·경찰·관세청은 공항·항구 등 마약 밀수 경로를 집중 차단해 마약 유통망 붕괴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250311)

 

 

 

자녀가 아닌 배우자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확산하고 있다. 
상속세는 부모에서 자녀로 부(富)가 세대 간 이전될 때 한 번만 걷자는 것이다. 
상속세를 처음 도입한 영국을 비롯, 미국·프랑스·일본 등 주요국들은 배우자 상속에 대해 상속세를 면제해준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6일 비대위 회의에서 “함께 재산을 일군 배우자 간의 상속은 ‘세대 간 부 이전’이 아니다”라며 “배우자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했다. 
권 위원장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배우자 상속에 과세하지 않는다”며 “한국도 이런 흐름에 맞춰 상속세의 징벌성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최소 10억원(일괄 공제 5억원+배우자 공제 최소 5억원)인 공제액을 최소 18억원(일괄 공제 8억원+배우자 공제 최소 10억원)으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에 집 한 채를 가진 중산층 표심을 공략하려는 야당이 배우자 공제 한도를 두 배로 늘리는 방안을 내자, 여당이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로 맞불을 놨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배우자 상속에 세금을 물리는 나라는 한국 등 12국뿐이다.

 

 




권 위원장은 또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 상속인이 실제 상속받은 만큼만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와 유산취득세 도입은 ‘패키지’로 함께 추진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제 공동체인 부부 간에 상속세를 물리는 OECD 12국 중에서도 한국의 세금 부담은 높다. 
독일·그리스·네덜란드 등 11국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각자 물려받은 금액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리는 유산취득세 방식이다. 
반면 한국은 유족들이 받은 상속 총액에 대해 세금을 매기고 유족들이 연대 책임을 지는 유산세 방식이다.


주요국이 배우자 상속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이유는 부의 세대 간 이전에 과세하는 상속세 본래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배우자에게 부가 이전될 때 세금 걷고, 자녀에게 이전될 때 또 걷는다면 세대 기준으로는 이중과세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배우자는 같은 세대인데 한 명이 죽었다고 다른 한 명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상속 세제 과세 방식별 공제 제도 비교 연구’ 보고서에서 “OECD의 많은 국가들은 배우자의 상속세를 전부 면제하고 있다”며 “부부 간 상속 재산의 이전은 동일 세대 간 이전이므로 ‘1세대 1회’ 과세 원칙의 관철, 혼인 생활 중 재산 축적을 위한 생존 배우자의 기여도 인정 등이 근거”라고 했다. 
또 “(증여세를 물리지 않는) 이혼 시 재산 분할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배우자의 상속분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국가들 중에서도 독일, 벨기에, 그리스 등은 주식이나 보석 등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걷지만, 함께 거주한 주택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해준다.


여야가 추진하는 배우자 상속세 완화·폐지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상속세 부담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본지가 부동산 세금 전문 업체인 아티웰스를 통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20억원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 2명이 법정 상속분대로 상속받을 경우 현행 세법상으로는 상속세 1억2887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야당안대로 공제액이 18억원으로 늘어나면 세금이 2910만원으로 줄어들고, 자녀 1인당 5억원까지 공제해주는 정부안이 통과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여당안이 채택될 경우 유족들은 재산 분할 합의를 거쳐 배우자가 유산을 전액 상속받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세무 전문가들 설명이다. 
여당안대로 배우자 상속분을 전액 공제할 경우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안의 경우 배우자가 20억원을 상속받더라도 공제액이 법정 상속분(8억5714만원)을 넘을 수 없기 때문에 2910만원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다만 권 위원장이 이날 밝힌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가 대기업 총수 등 고액 자산가들의 수조원, 수천억원대 주식 상속 등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논의해 구체적인 배우자 상속세 면제 방식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이 이 같은 상속세 완화 방침을 밝힌 이날 민주당은 국세청 차장 출신인 임광현 의원이 낸 ‘18억원 공제안’을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된 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안건 상정 권한을 가진 본회의에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다.


정부가 작년 7월 상속세 최고 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1인당 공제 한도를 5억원으로 높이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냈지만, 국회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최고 세율 인하를 ‘부자 감세’로 규정한 야당 반대 때문이다. 
대주주 지분 상속 때 주식 가격을 20% 높이는 ‘최대 주주 할증’ 제도를 폐지하자는 정부안도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여당은 여전히 최고 세율 인하와 최대 주주 할증 폐지를 상속 세제 개편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패스트 트랙 카드를 쥔 민주당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합의 처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겠지만 국민의힘이 끝내 몽니를 부리면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다.


민주당의 상속세 개정안 패스트 트랙 지정을 두고 “조기 대선을 위한 정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12월 세입예산 부수 법안으로 올라온 상속세 개편안들은 민주당이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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