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라도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속이 까맣게 타버릴 것이다. 
10년, 14년, 10년…. 크리스마스와 겨울방학 관객을 겨냥한 대극장 뮤지컬이 쏟아지는 연말연시, 1~2년 간격으로 다시 공연되는 작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오랜 기다림을 보상할 화제작도 관객과 만난다. 
브로드웨이 데뷔 10년 만에 뉴욕 프로덕션 그대로 한국 극장에서 선보이는 ‘알라딘’(제작 에스앤코), 14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틱틱붐’(신시컴퍼니),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전미도가 10년 만에 여주인공으로 돌아오는 ‘베르테르’(CJ ENM).
이래저래 꽉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오랜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의 매력을 형용사 3개로 요약한다면 ‘화려하다’, ‘행복하다’, ‘착하다’일 것이다. 
세계 2000만 관객이 본 오리지널 무대를 그대로 옮겨온 ‘레플리카’ 뮤지컬.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익숙한 ‘아라비안 나이츠’ ‘프린스 알리’ 같은 곡을 라이브 연주와 노래로 들으면 핏줄 속으로 흥겨움이 스며들어 온몸을 둥둥 울리며 흘러가는 듯 몸이 들썩인다. 
음악뿐 아니라 무대도 어느 한순간 화려하지 않은 때가 없다. 
특히 ‘알라딘’(김준수·서경수·박강현)이 램프를 가지러 들어간 신비의 동굴에서 요정 ‘지니’(정성화·정원영·강홍석)와 만나는 장면은 가장 놀랍다. 
특수 효과의 도움 없이 수작업으로 만든 황금빛 동굴과 보물이 수천개의 명품 크리스털을 사용한 의상과 함께 조명을 받아 반짝이면 그 빛이 객석까지 물결친다.

 

 




지니가 20여 분 몰아치듯 유머러스한 춤과 노래를 마치고 숨을 몰아쉬면 관객은 폭소하며 엄청난 환호를 보낸다. 

무대 위 알라딘과 ‘자스민’(이성경·민경아·최지혜) 공주가 마법 양탄자를 타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날아가며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를 부를 때면 보는 사람도 행복해진다. 
배배 꼬인 서사, 슬픈 결말의 이야기가 대접받는 시대, 힘든 일이 있어도 조금만 견디면 곧 악인은 벌을 받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착한 이야기는 오히려 귀해 더 반갑다. 
알라딘이 “너 어디서 왔니?” 하고 물으면 지니가 “잠실역 3번 출구”라고 답하는 식으로 한국 현지화된 대사들도 웃음 포인트다. 
가족이 함께 보기 딱 좋은 작품.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요절한 작곡가 조너선 라슨(1960~1996)은 뮤지컬 ‘렌트’의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 개막 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한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의 전설이 됐다. 
‘렌트’가 정체 모를 질병이 휩쓸던 세기말 뉴욕을 배경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꺾이지 않는 꿈을 노래했다면, 라슨의 유작인 ‘틱틱붐’은 서른 살을 앞두고 전도유망하다는 평가에도 이룬 것이 없어 자꾸 주눅이 드는 뮤지컬 작곡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제목은 시한폭탄 초침 소리처럼 조여오는 젊은 예술가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청각적으로 상징한다.

 

 



그가 죽은 지 6년 뒤인 2001년 미국에서 처음 공연했지만, 신시컴퍼니가 1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 이번 프로덕션은 마치 창작 초연 작품인 듯 완전히 새롭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맛깔나는 번역으로 이름난 황석희 번역가가 연극적인 대사와 가사들을 말맛을 살려 고쳐 썼고, 대본과 음악만 가져오는 ‘논 레플리카’ 라이선스 공연의 장점을 살려 3인극인 원작에 앙상블 배우 5명을 함께 무대에 올리면서 노래와 음악도 풍성해졌다. 
가로, 세로, 높이 모두 6m를 넘는 커다란 정글짐 같은 회전무대에 영리한 조명 사용과 역동적인 안무가 어우러져 차분한 이야기에 강약의 리듬감까지 입혔다.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한국 창작진만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서른이 됐는데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건데?” 배우의 꿈을 접고 마케팅 회사 임원으로 성공한 친구와 이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여자 친구가 물을 때, 주인공의 마음은 “모두 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 나만 계속 벽에 머리를 쿵쿵 처박고 있는 것” 같다. 
그 마음은 빨리도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30/90′, ‘노 모어’ 등 앤드루 가필드 주연의 동명 넷플릭스 영화로도 익숙한 노래들은 여전히 감미롭고 또 경쾌하다.

 

 




오래 관객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좋은 작품이기 때문. 
그래도 관객은 ‘뭐 새로운 건 없나’ 찾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내년 1월 개막하는 뮤지컬 ‘베르테르’의 팬들은 이 작품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라이브 무대에서 가장 놀라운 배우 전미도가 2015년 공연 이후 10년 만에 여주인공 ‘로테’로 돌아온다. 
2000년 초연 뒤 벌써 25년째, 베르테르의 주연배우들은 그동안 엄기준 ‘엄베르’, 유연석 ‘연베르’, 규현 ‘규베르’ 같은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우리 공연계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고선웅이 괴테의 원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각색한 대본과 가사, 피아노와 현악기 중심의 클래식 실내악처럼 아름다운 음악의 매력은 그대로다.(241210)


 

 

 

독도에 집쥐 수백 마리가 출몰해 환경부가 ‘소탕 작전’에 나섰다. 
시궁쥐로도 불리는 집쥐는 철새인 바다제비, 괭이갈매기의 알을 먹어치우는 잡식성이라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동물이다. 
이런 집쥐가 독도 전역에 퍼지면서 대대적으로 ‘쥐 잡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까지 된 것이다.


9일 환경부 산하 대구지방환경청 등에 따르면, 집쥐 소탕 용역을 맡은 조영석 대구대 생물교육과 교수는 지난달 독도 동도에 무인카메라 30대와 덫 30여 개, 서도에 무인카메라 1개와 덫 1개를 설치해 집쥐를 감시·포획 중이다. 

지난달 10~11일엔 동도에 설치해둔 덫에서 집쥐 14마리를 포획했다. 
독도에 집쥐가 늘면서 지속적으로 국가유산청 등에서 포획 작업을 진행해왔는데, 대구지방환경청이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집쥐 소탕 작전을 펼치게 된 것은 독도에 나날이 늘어나는 집쥐가 철새알을 훔쳐먹어 천연기념물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독도에는 100~200마리 정도의 집쥐가 서식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서도에서 처음 발견됐다. 
울릉도에서 서도 주민들의 숙소 공사를 위한 건축 자재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집쥐가 딸려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개체 수를 늘려온 집쥐는 헤엄을 쳐 동도로 건너갔다. 
조영석 교수는 “동도에는 서도보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건물도 많다”며 “음식물 쓰레기를 찾아 먹기도 쉽고 건물 틈새에 숨기도 좋아서 단체로 동도로 ‘이주’한 셈”이라고 했다.


국가유산청은 2019년부터 올해까지 집쥐 258마리를 잡았다. 
하지만 풍랑이 이는 등 날씨가 나빠지면 독도 접근이 어려웠고, 그때마다 번식력이 뛰어난 집쥐가 다시 세를 불렸다. 
집쥐는 암수 한쌍이 1년에 새끼를 최대 460마리까지도 낳는다. 
쥐약을 함부로 쓸 수도 없다. 천연기념물들이 쥐약을 먹고 죽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 교수팀은 집쥐의 목덜미를 때려 죽이는 신형 덫을 쓰고 있다. 
집쥐가 땅콩버터를 먹으려고 원통 형태의 덫 안으로 들어가 스위치를 건드리면 안쪽에서 망치가 튀어나와 쥐의 머리를 박살낸다. 
가스 연료를 한 번 충전하면 14~15번 정도 작동하는 덫이다.


조 교수팀은 11월 이후 풍랑 때문에 독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조 교수는 “가스를 지속적으로 충전해야 덫이 잘 가동할 텐데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며 “먹을 것이 없어 자연스럽게 개체 수가 감소하는 겨울을 박멸 기회로 보고 최대한 덫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241210)

 

 

 

올해 울산 태화강에 돌아온 연어가 2005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해수 온도 상승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울산시와 울주군 태화강생태관에 따르면, 올해 태화강에서 발견된 연어는 총 37마리로 집계됐다.

 

 

<지난달 4일 올해 처음으로 고향 울산 태화강으로 회귀한 연어가 포획됐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 회귀성 어류다. 
1급수 깨끗한 물에서 서식한다. 주로 9~11월 강을 타고 올라와 알을 낳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 양양 남대천, 삼척 오십천 등에서 연어를 볼 수 있다. 
1950년대 태화강에서는 주민들이 연어 낚시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화로 강물이 오염되면서 맥이 끊겼다.


울산시는 2000년 태화강에 어린 연어 5만 마리를 풀었고 3년 뒤 5마리가 돌아왔다. 
2010년부터는 매년 치어 50만 마리를 방류하고 있다. 덕분에 2014년에는 1827마리가 태화강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 “산업화로 오염됐던 태화강의 수질이 연어가 올 정도로 완전히 회복됐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연어 수는 이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45마리로 줄었고 올해는 37마리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태화강으로 돌아오는 연어가 줄어든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을 꼽았다. 연어는 13~16도 찬 바다에서 사는 냉수성 어종이다.


최종국 한국수산자원공단 동해생명자원센터 연구원은 “해수온이 상승해 연어 수 자체가 줄고 이동 경로도 바뀌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연어 수가 감소하는 추세”라고 했다.


울주군 태화강생태관 관계자는 “수년간 꾸준히 치어를 방류했고 수질도 더 개선됐다”며 “올여름 울산 앞바다에 고수온 경보가 내려지는 등 수온이 높아져 연어가 찾아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241206)


 

 

 

“최근의 개발 속도를 보면 ‘초지능(Super Intelligence)’이 5~20년 안에 개발될 것이다. AI에 대한 통제 방안을 한시라도 빨리 만들어야 한다.”(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제프리 힌턴)


“인공지능(AI)은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기술 중 하나인 만큼, 그 위험성을 매우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노벨화학상 수상자 데미스 허사비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와 노벨 화학상 수상자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 노벨상 시상식에서 단연 화두는 ‘AI’다. 
시상식장 인근에 모인 과학자들은 AI가 노벨 과학상을 휩쓴 것을 대화 테이블에 올리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AI에 대한 낙관론보다 우려가 더 묻어난다. 
올해 수상자들도 인터뷰와 강연에서 예상을 뛰어넘은 AI의 발전 속도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AI가 인류의 지능 수준을 뛰어넘어 ‘통제 불능’이 되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키우는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AI의 대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와 노벨화학상을 받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인류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 AI가 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7일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에서 개최된 노벨 물리·화학·경제학상 수상자 공동 기자회견에서 힌턴 교수는 “인간을 뛰어넘는 AI가 존재할 수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나와 허사비스 모두 초지능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것은 과대광고(hype)가 아니고, AI의 다른 문제를 숨기려고 하는 말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우리가 믿어온 것”이라고 했다. 
힌턴 교수는 “최근 AI의 개발 속도를 고려할 때 나는 5~20년 안에, 허사비스는 10년 안에 초지능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AI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됐다”고 했다. 그는 “AI 안전성을 보다 일찍 고민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힌턴 교수는 AI의 단기적 위협으로 ‘자율 살상 무기 체계(LAWS)’의 개발을 꼽았다. 
LAWS는 AI가 적을 스스로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는 체계다. 
힌턴 교수는 “각국 정부는 LAWS와 관련해 규제를 스스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며 “예컨대 유럽의 AI법은 AI의 군사적 활용을 제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이스라엘 등 주요 무기 공급국 간 군비경쟁이 심화하면서, 군사 AI 규제에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힌턴 교수는 AI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두머(Doomer·파멸론자)’로 꼽힌다. 
그는 2006년 ‘심층 학습(딥러닝)’ 개념을 창시한 후 AI 연구를 선도해 왔다. 
하지만 10여 년간 몸담았던 구글에서 지난해 4월 퇴사한 후 AI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현재 AI 개발 기업은 안전성 연구에 1% 정도의 역량만을 할애하고 있다”며 “컴퓨팅 능력의 최소 3분의 1은 AI 안전성 연구에 투입하도록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허사비스 CEO는 8일 수상자 강연에서 “AI가 인류의 가장 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AI 연구에 매진해 왔다. 
하지만 AI는 이중적인 성격의 기술이기 때문에 책임감 있고 안전하게 구축돼야 하며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AGI(범용 인공지능)만큼 혁신적인 기술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이나 전기의 발명처럼 엄청난 기술 개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 기술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AGI는 결국 궁극적인 범용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허사비스 CEO는 “언제나 나의 열정은 항상 오늘날처럼 과학적 발견을 도와주는 AI 도구를 개발하는 것이었고, AI가 질병, 에너지, 기후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인류가 발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이에 따른 위험성은 매우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허사비스 CEO는 정부와 시민사회에 ‘빠르고 민첩한’ AI 규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AI는 규제도 중요하지만, 규제를 올바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AI는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수년 전에 논의되던 규제를 지금 적용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또 “의료나 운송 분야에서 AI 규제를 적용하고,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따라 빠르게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AI를 무엇에 쓰고 싶은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인류 전체에 이익을 어떻게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 미 MIT 교수는 AI가 빅테크 등 소수 권력에 집중돼 세계적 불평등을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가장 부유한 국가는 가난한 국가에 비해 1인당 부(富)가 60~70배 많은데, 산업혁명 전에는 이 격차가 3~4배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이처럼 파괴적인 기술 변화는 막대한 격차를 만들고, 나는 AI가 실제로 세계 격차를 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AI는 개발도상국의 뒤처지는 근로자나 학생을 돕는 방식으로 사용될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AI는 그렇게 발전하고 있지 않다. AI는 매우 극소수의 국가, 사람들의 손에 집중되고 있으며 훨씬 큰 불평등을 부추길 것”이라고 했다.(241209)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선포한 비상계엄에 따라 계엄군에 참여한 군 주요 지휘관들은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해 “윗선의 지시를 받은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위헌적이라는 점에 공감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놓았다. 
검찰·경찰 등의 내란 수사로 이어진 이번 사태가 국민에게 던진 충격파가 엄청나 주요 계엄군 참여자들이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공개적으로 자기 고백에 나섰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일부 장성급을 포함한 계엄군 지휘관은 앞다퉈 유튜브나 언론 인터뷰에 나서 자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계엄군 장교단의 이런 행동을 두고 군 안팎에선 “정치에 휘둘렸던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군이 겪는 정치 트라우마와 관련해 군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 때의 국군기무사령부(현 방첩사령부) 해체 영향을 꼽는 사람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사찰과 계엄 준비 문건 작성 등을 명목으로 기무사를 해체했고 이 과정에서 관련 인원 200여 명을 조사했다. 
이들은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수년간 사건 수사와 재판에 얽혀 고통받았다. 
기무사 축소 과정에서 각 군으로 원대 복귀된 인사 중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군 통수권자와 상관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군인이지만, 정치권력의 부침에 따라 고위 장교단이 정치적 판단을 강요받는 환경에 빠졌다는 말이 나왔다.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한 특수전사령관 산하 이상현 1공수여단장이 회의 도중 안경을 벗은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다수의 군 간부는 기무사 해체의 트라우마가 상당하다”라며 “이 때문에 대통령과 장관의 명령일지라도 위법성에 대한 인식 때문에 명령 이행 곳곳에 저항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군이 평소 준비한 대로 전광석화처럼 명령만 이행했다면 계엄은 정말 성공했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역설적으로 군인들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적법한 명령인지 확신이 떨어지자 명령 이행을 느슨하게 한 것은 오히려 비상계엄 해제를 가능하게 한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12·3 비상계엄 발동 당시 지휘 라인에 있었던 군 당국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번 계엄은 이와 같은 트라우마성 저항 때문에 실패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 특수임무단 김현태(대령)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10시에 헬기 조종사에게 퇴근 지시를 해 헬기가 늦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대원들은) 11시 전에 집결했는데 제일 빠른 헬기가 11시 20분을 넘어 왔다”고 했다. 
김 단장은 “인원이 다 모인 상태에서 티맵(내비게이션 서비스)을 켜서 국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조를 확인했다”며 “티맵을 캡처해 노트펜으로 건물을 표시했다”고 했다. 
김 단장은 “부대원별로 무전기가 있었지만 몸싸움하는 상황에서 100여 명에게 다 전파되는지 의문이었다”며 “(국회 창문을 깨기 위해) 창문 가에서 보자고 했을 때 모인 게 30여 명이고, 나머지 50~60명은 교신이 잘 안 되고 있었다”고도 했다.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치밀한 준비도 없었고 계엄에 대한 공감도 떨어져 명령 체계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정치적 명령과 지시가 되풀이되면서 군이 실제 안보 위기에 작전 수행을 제대로 못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는 점이다. 
군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계엄 선포가 있었고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행하려 했지만, 출퇴근 문제 때문에 이를 뒤늦게 이행했다는 건 아찔한 이야기”라고 했다. 
김현태 707 단장 역시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고, 전투에서 이런 무능한 명령을 내렸다면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계엄 관련 지휘관급 인사들의 이른바 ‘양심 고백’이 자기 구명이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인들이 공식적인 자리를 통하지 않고 유튜브 방송이나 기자회견으로 자기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원칙적으로 군인 복무 기본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과 김현태 707 특임단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권유로 공익 신고 절차를 밟았다고 한다.(241211)


 

 

 

동네 인근에서 식음료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른바 ‘식자재 마트’가 불황의 틈을 뚫고 연일 매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국내 식자재 마트 중에서도 ‘빅3′ 업체들의 경우엔 지난 10년 사이 매출이 2~3배씩 늘었다.


무료 배송으로 무섭게 시장을 넓혀온 이커머스에 치여 국내 대형 마트는 잇단 실적 하락을 겪어왔다. 
반면 식자재 마트는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활용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식당이나 단체 위주로 식자재를 공급하던 식자재 마트가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소문이 났고, 최근엔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을 대거 흡수한 덕이다. 
최근엔 쿠팡이나 컬리 같은 이커머스 업체들처럼 새벽 배송까지 시작하면서 그 영역을 더욱 넓히고 있다.

 

 

<식자재왕도매마트 수원 호매실점을 찾은 소비자들이 신선 식품 코너에서 장을 보고 있는 모습. 
초저가 할인과 24시간 영업으로 식당 업체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까지 식자재 마트를 찾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1년까지 전국에 1743개의 식자재 마트가 운영됐었다. 
현재는 이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를 합친 370여 개보다 훨씬 많다.


5일 장보고 식자재 마트에서 30구짜리 계란 한 판 가격을 살펴봤다. 
6600원으로, A 대형 마트에서 내놓는 ‘최저가’ 상품 7680원보다 저렴했다. 
최근 식자재 마트가 매입하는 농수축산물은 이처럼 대형 마트가 자랑하는 최저가 상품보다 싼 경우가 적지 않다. 

식자재 마트 대부분이 산지서 직매입해 운송비와 보관비를 절감하고, 농수산품을 직접 당일에 현금으로 구매해 도매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가져올 수 있어서다.

 

 




‘미끼 상품’으로도 소비자를 유혹한다. 
한 식자재 마트 전단을 보면 ‘순두부 450원’ ‘배추 500원’같이 초저가 미끼 상품을 볼 수 있다. 
식자재 마트는 대형 마트와 달리 마트 주인이 개별 품목 가격을 일일이 조절할 수 있다. 
식자재 마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바로 찾을 만한 물건들은 초저가로 올려두고, 나머지 상품들은 대형 마트보다 100~200원씩 비싸게 받는 구조”라고 했다. 
농수산업 이해도가 높은 식자재 마트 경영인들이 대형 마트와 달리 당일 현금으로 매입하고 정산하는 구조를 활용해 도매가격에서 더 많이 할인을 받기도 한다.


물류 비용도 적게 든다. 
대형 마트는 농수산품을 구입한 뒤 중앙 물류 창고로 이동시키고 창고에 보관했다가 각 점포로 다시 내려보내는 중앙 물류 시스템이다. 
반면 식자재 마트는 산지에서 직매입해 마트에서 파는 식이라 유통 및 보관 비용이 절감된다.

 

 




대형 마트가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한 정부 규제에 밀리고,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에도 치이는 사이 식자재 마트가 그 틈새를 활용해 성장한 측면도 있다. 
식자재 마트는 사실상 준대규모 점포로 볼 수 있지만, 매장 면적 3000㎡ 이상 대형 마트가 아닌 데다 대형 마트가 개설한 기업형 수퍼마켓(SSM)도 아니어서 유통산업발전법상 규제 대상이 아니다. 
그 결과 대형 마트의 영업 시간 제한(밤 12시부터 오전 10시)도 받지 않고, 의무 휴업일도 따로 두지 않아도 된다.


매출은 덕분에 계속 성장세다. 
국내 최대 식자재 마트로 꼽히는 식자재왕 마트는 지난 2020년 공시를 시작했는데 그해 4545억원에서 2023년 8936억원으로 늘어났다. 
장보고 식자재 마트와 세계로 마트도 각각 2013년 1576억원에서 2023년 4528억원, 2013년 560억원에서 2023년 1252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대기업들도 식자재 마트 인수에 눈독들이고 있다. 
원재료의 수급·생산, 가공식품 제조를 넘어 유통·판매·단체 급식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마련할 수 있어서다. 
올해 식품기업 사조그룹은 식자재왕 마트를 운영하는 푸디스트를 2500억원에 인수했다. 
SPC는 자회사 SPC GFS를 통해 ‘몬즈컴퍼니’를 흡수 합병했다.(241206)


☞식자재 마트

음료와 식료품을 주로 취급하는 1000㎡(300평) 이상 3000㎡(907평) 미만의 유통 매장을 일컫는 말(대형 할인점 계열사 제외). 
유통산업발전법은 매장 면적이 3000㎡를 넘길 경우엔 대형 마트로 분류한다. 
대형 마트보다 점포 면적이 작아 현행법상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금지된 대형 마트와 달리 24시간 영업할 수 있다. 
월 2회 의무 휴업 없이 ‘연중 무휴’로도 운영 가능하다.


 

 

 

“교도소가 왜 기피 시설입니까? 범죄자가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 가족들도 오고 좋지요.”


4일 경북 청송군 진보면. 프랜차이즈 맘스터치 안에는 손님 10여 명이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직원 김모씨는 “주말에는 손님이 하루 100명씩 온다”며 “근처 교도소에서 일하는 공무원과 가족이 주 고객”이라고 했다.


진보면에는 교도소 4곳이 있다. 진보면 인구 6300명 중 교정직 공무원이 1600명이다. 
공무원 가족까지 더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교도소 가족이라고 한다. 
여기에 매년 3000~5000명이 수감자를 보려고 진보면을 찾는다. 
면 소재지이지만 군청이 있는 청송읍보다 사람이 북적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비비큐 카페 프리미엄도 최근 청송읍 대신 진보면에 매장을 열었다.

 

 

<대구 군위군이 지난달 21일 군부대 유치를 기원하며 연 콘서트 무대.>

 


맘스터치 건너편에 있는 키즈카페는 아이들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교정 공무원 가족이 늘어나면서 2020년 공공 도서관 1층에 키즈카페를 열었다.
군데군데 아파트도 있다. 비싼 곳은 전세가 1억4000만원(전용면적 84㎡)에 달했다.


이렇게 ‘교도소 효과’를 본 청송군은 여성 교도소를 추가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여성 교정 공무원들이 결혼한 뒤에도 정착할 수 있도록 키즈카페를 늘리고 어린이집, 유치원도 새로 단장하고 있다.


청송군처럼 인구가 줄어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선 교도소, 화장장, 군부대 등 이른바 ‘혐오 시설’이 ‘선호 시설’이 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지자체들 간 군부대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구시는 시내에 있는 군부대 5곳을 이전할 계획인데 대구 군위군, 경북 상주시·영천시·의성군 등 4곳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4곳 모두 인구가 줄어 고민인 지역이다.


인구 2만3000명인 군위군은 지난달 21일 군부대 유치를 기원하는 ‘군민 화합 콘서트’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군부대는 군위로”를 외쳤다. 군위군 관계자는 “군부대가 오면 군인 가족들 덕분에 침체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같은 날 상주시는 ‘노인의 날 기념식’ 행사 자리에서 군부대 유치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참석자 300여 명이 ‘군부대 이전지는 상주가 딱이군’이라고 쓴 수건을 펼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국방부가 이달 중 예비 후보지를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1~2월에는 이전 대상 지역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 연천군은 2027년 임진강 변에 반려동물 화장장을 갖춘 ‘서울 반려동물 테마파크’를 조성한다. 
12만㎡ 규모로 반려동물 놀이터, 훈련장 등이 함께 들어선다. 수도권에 반려동물 화장장이 생기는 것은 처음이다.


김덕현 연천군수가 작년 11월 서울시에 먼저 제안했고 서울시가 예산 562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연천군과 반려동물 화장장 부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서울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인구가 4만명인 연천군은 반려동물 테마파크가 들어서면 연간 3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경남 거창군은 지난 5월 화장장 부지를 남하면 대야리 일대로 정했다. 
지난 2월 후보지 공모에 마을 9곳이 뛰어들어 경쟁을 벌였다. 
거창군은 화장장이 들어설 마을에 3년간 인센티브 60억원을 약속했다. 
10년간 화장장 운영 수입의 20%를 나누고 매점과 식당, 카페 등 운영권도 마을 주민들에게 주기로 했다. 
신귀자 대야마을 이장은 “요즘 화장장은 공원처럼 지어 깔끔하다”며 “공장보다 화장장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은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유치하겠다”며 작년 10월 정부에 유치 신청서를 냈다. 주민 4000명 서명도 받았다. 
서생면에는 이미 원전 2기(새울 1·2호기)가 가동 중이고 2기(새울 3·4호기)를 짓고 있는데 2기를 더 유치하겠다는 것이다.(241206)

 

 

 

컵라면 매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작년 국내 매출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고 올해는 1조386억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10억개가 팔린 셈이다. 
10분 안에 1000원 안팎으로 한 끼를 해결해 주는 컵라면은 경기 불황일 때 잘 팔리는 대표 식품이다. 
업계에선 “값이 싸고 간편해 1997년 외환 위기, 2008년 리먼 사태를 비롯해 경기가 안 좋을 때마다 매출이 오르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아직 국내에서 봉지 라면과 컵라면 판매 비율은 7대3 정도다. 
하지만 1인 가구 증가에 불황까지 겹쳐 컵라면이 봉지 라면보다 성장세가 훨씬 가파르다. 
이런 소비자들을 겨냥해 식품 업계는 봉지 라면으로 팔던 제품을 컵라면으로도 내놓고, 800원짜리 초저가형 컵라면, 양을 8배 늘린 컵라면까지 내놓고 있다.

 

 




내수 부진으로 식품 업계 대부분이 고전하지만, 컵라면 매출은 최근 10년 사이 약 2배로 늘었다.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4년 6741억원이던 컵라면 매출은 올해 1조386억원까지 올라섰다. 
성장 속도만 보면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봉지 라면보다 컵라면이 빠르다. 
봉지 라면 판매량은 전년 대비 2022년엔 10.4%, 작년에는 4% 늘었지만, 컵라면은 2022년 15.7%, 작년 7.4% 증가했다. 
컵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농심 제품들도 최근 매출이 크게 늘었다. 
2020년부터 작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을 보면 김치사발면이 12.6%, 육개장사발면은 9.1%, 신라면 용기면은 5.9%를 기록했다.


컵라면 시장이 확대되자 라면 업체들은 잇따라 봉지 라면 제품을 컵라면으로도 내놓고 있다. 
농심은 주력 상품인 신라면블랙, 짜파게티 더블랙을 전자레인지에서도 익힐 수 있는 용기 면으로 만든 ‘신라면블랙사발’ ‘짜파게티 더블랙 사발면’을 내놨다. 마라 맛과 매운맛 컵라면도 잇따라 시장에 등장했다. 
올해 오뚜기는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협업해 ‘대파열라면’을 내놨고, 팔도는 종전 왕뚜껑에 마라 맛을 합친 ‘마라맛 킹뚜껑’, 삼양식품은 ‘간짬뽕 엑스 컵라면’을 출시했다.


소비자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닌데 컵라면 매출이 왜 늘었을까. 
업계에선 컵라면이 대표적 불황 식품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외식 물가가 치솟고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빠르고 싸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컵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라면 업체 관계자는 “인건비, 원재료 인상으로 김밥 한 줄에 5000원, 분식집 라면 한 그릇에 4500원이 일반화해 컵라면만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뛰어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컵라면은 봉지 라면보다 저렴하다. 대형 마트 기준으로 컵라면 대부분이 개당 1000원이 넘지 않는다. 
농심 육개장 사발면은 하나에 780원, 오뚜기 진라면 컵은 747원, 팔도 김치도시락 컵면은 870원 수준이다. 
라면 업계 관계자는 “가격만 따질 경우 봉지 라면보다 컵라면이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수요를 파악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편의점 업계도 ‘컵라면족’ 잡기에 힘을 쏟고 있다. 
컵라면을 조리할 수 있는 뜨거운 물과 바로 먹을 수 있는 테이블 등을 놓는 편의점은 PB(자체 브랜드) 컵라면도 확대하고 있다. 
GS25는 팔도점보도시락, 공간춘, 오모리점보도시락 등 특대형 시리즈 라면을 들여놨다. 
일반 컵라면보다 8배 이상 크게 만든 대용량 PB 컵라면이다. CU는 올해 초 880원짜리 초저가 육개장컵라면을 선보였다.


실제 편의점 GS25에서 올해 9월까지 판 라면 가운데 컵라면 비율은 80%나 됐다. 올해 GS25의 컵라면 매출은 작년과 비교해 19.6% 늘어났다. 
세븐일레븐의 올해 컵라면 매출도 작년보다 15% 늘었다. GS25 관계자는 “컵라면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컵라면을 살 때 삼각김밥이나 도시락을 할인해 주거나, 탄산음료를 주는 묶음 구성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틱톡 등에서는 한국의 컵라면을 소개하거나 맛있게 먹는 법을 담은 콘텐츠 조회가 많게는 수백만 회를 기록하기도 한다. 
라면을 흔히 컵라면과 동일시하는 미국 등에서도 한국 컵라면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농심은 지난달 미국 LA 제2 공장에 1억600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용기 면(컵라면) 라인을 증설해 가동 중이다. 
농심이 미국 법인에서 연간 생산 가능한 컵라면은 6억6000만개로 늘었다. 
농심 관계자는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건 봉지 라면보다 컵라면”이라며 “한국 라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컵라면 라인 증설을 결정했다”고 말했다.(241203)


 

 

 

번화가에서 구두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구두 신는 사람이 줄면서 구두 브랜드 매장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구두는 운동화와 달리 직접 신어보고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다. 
게다가 운동화보다 단가가 높아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백화점은 구두 매장의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백화점에서도 구두 매장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1층에 구두 매장이 자리를 잡고 있던 시절은 한참 전에 지나갔고, 지하나 지상 층으로 떠밀리다가 아예 퇴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3층에 있던 구두 매장은 6층으로 이동했다. 
자리만 옮긴 게 아니다. 이전까지 12개의 구두 브랜드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입점해 있었는데, 이동하면서 생존한 브랜드는 탠디와 금강 2개뿐이다. 
10개 브랜드가 짐을 싸서 나간 것이다. 더현대 서울은 지난 8월 입점 업체 개편을 하면서 3층에 있던 구두 구역을 절반으로 축소했다. 
이전까지 13개의 구두 브랜드가 있었는데, 9개가 퇴점했다. 살아남은 브랜드 4개 가운데 국내 구두 브랜드는 탠디 1개뿐이다.

 

 




구두 회사의 매출도 줄어들고 있다. 
금강제화 운영업체 금강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10년 전 매출은 3065억원이었는데, 올해 매출은 1063억원으로 줄었다. 
구두 신는 사람이 줄면서 2011년 1266곳이었던 서울의 구둣방(구두수선대)은 올해 9월 기준 763개로 줄었다.


백화점들은 구두 브랜드를 뺀 자리에 패션 브랜드나 최근 수요가 많은 러닝화 편집 매장을 넣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 7월 스니커즈(운동화) 특화 구역을 만들었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지난 3월 운동화 전문 브랜드를 대거 추가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구두를 신는 사람이 적어지면서 구두 매장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일부 명품 브랜드를 제외하면 구두를 파는 매장을 백화점에서 찾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241204)


 

 

 

올해 3분기 우리나라 25~34세 청년층 중 그냥 쉬었다고 답한 사람이 실업자보다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은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와 이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맞지 않는 ‘일자리 미스 매치’와 경기 악화로 청년층 일자리가 타격을 입은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위 수여식을 마친 졸업생이 취업 정보 게시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2일 한은이 발표한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 배경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올해 3분기 기준 ‘쉬었음’을 택한 청년은 42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33만6000명)보다 25.4% 늘어났다. 
올해 3분기 청년층 실업자(21만7000명)보다 그냥 쉰 청년층이 더 많은 것이다. 
쉬었음은 육아, 취업 준비, 심신 장애 등 별다른 이유가 없으면서, 일을 하고 있는 취업 상태도, 그렇다고 구직 활동 중인 실업 상태도 아닌 사람들을 뜻한다. 
쉬었음을 택했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통계청이 분류하는 ‘광의의 실업자’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취업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층 21만명을 따로 추려내 일을 그만둔 이유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청년층이 14만명으로 비자발적 중단(7만명)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경우는 일자리 미스 매치 등 구조적 영향이 컸다. 
청년층 고용의 질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큰 폭으로 하락한 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핵심 연령층(35~59세)의 고용의 질은 이전보다 좋아졌다. 
취업자의 학력이 일자리가 요구하는 학력보다 높은 ‘청년층 하향 취업률’도 꾸준히 상승해 최근에는 20%를 넘겼다.


비자발적으로 그만둔 경우는 구조적 문제 외에도 경기 부진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핵심 연령층의 고용률이 꾸준히 느는 데 반해 청년층 고용률은 감소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청년층의 쉬었음 상태가 길어지면 노동시장에서 영구 이탈하거나 ‘니트족(NEET·일하지 않거나 일할 의지도 없는 무직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1년 미만 단기 쉬었음 인구가 늘면, 3분기 정도가 지난 후 1년 이상 장기 쉬었음 인구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 쉬었음 상태가 길어질수록 근로를 희망하는 비율과 취업률도 낮아졌다.(241203)


 

 

 

“오늘 오후 1시까지 근조 화환 30개 정도 보내주실 수 있나요?”


지난 9일 오전 7시쯤 경기 과천의 한 대형 화원(花園)엔 오전 이른 시간부터 근조 화환을 대량 주문하는 전화가 잇따라 걸려왔다. 
직원 5명이 일하는 이 화원은 최근 동덕여대 사태 등 주요 집회 현장에 근조 화환을 납품하고 있다. 
화원을 10년 넘게 운영했다는 대표 이모씨는 “많을 때는 시위 현장에 나가는 근조 화환 주문만 한 번에 수백 개씩 들어올 때도 있다”고 했다. 
대형 화원인 이곳의 국화 냉장고가 심심찮게 동난다. 
이씨는 “근처 도매 꽃 시장에 가서 국화를 대량으로 사 오곤 한다”며 “아르바이트까지 동원, 10명이 넘게 밤을 새워야 주문을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각종 시위·집회에 단골로 등장하는 근조 화환이 화훼 농가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화훼 농가에선 “장례식·결혼식보다 시위 현장에 보내는 화환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근조 화환 시위는 200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충북 청원 오창산단 내 호수공원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청원군청 현관에서 근조 화환 시위를 한 것이 초창기 사례다. 
이후 각종 정치 집회에 산발적으로 등장하던 근조 화환은 2010년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서초동·여의도 집회의 ‘단골 소품’이 됐다. 
최근엔 아이돌 등 연예인 스캔들을 규탄하는 조화 시위로 연예 기획사가 밀집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 몸살을 앓고 있다.


시위 현장의 근조 화환은 정의·공정성·민주주의 등 주요 가치가 죽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추모사를 적던 리본엔 ‘공학 결사 반대’(동덕여대 시위) ‘사법부는 죽었다’(이재명 영장 기각 규탄) ‘한동훈 비대위는 트로이 목마’(한동훈 반대 시위) 같은 구호가 적힌다. 
한 화원 업주는 “2016년 김영란법 시행 이후 주춤한 화환 매출을 각종 집회가 먹여 살리고 있다”며 “시위에 화환을 보내는 아이디어를 누가 낸 것인지 몰라도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주도 “근조 화환은 도자기 화분이 원가에 포함되는 난(蘭) 같은 제품보다 마진이 훨씬 높은 ‘효자 품목’”이라고 했다.

 

 


<최근 근조 화환이 각종 시위·집회의 '필수 소품'으로 각광받으면서 화훼 농가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과거엔 정치·사회 관련 집회에 주로 등장하던 근조 화환이 요즘엔 연예인 팬들의 항의 수단으로까지 확장됐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 놓인 근조 화환들. 방탄소년단(BTS) 팬들이 하이브의 '방만 경영 논란'에 항의하며 보낸 것으로 '방탄 방패 쓰지 마라' '쉴 새 없는 오너 리스크'같은 문구가 리본에 적혔다.>

 


일부 화훼 업자는 ‘근조 화환’ ‘축하 화환’과 함께 ‘시위 화환’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상품 광고를 하고 있다. 
시위용 화환은 ‘무료 회수 서비스’를 해준다는 업체도 있다. 
다만 미신고 집회 현장에 화환을 보낼 경우 ‘불법 노상 적치물’로 간주돼 철거될 수 있다. 
화훼 업체들은 ‘시위 화환’ 주문이 들어올 경우 “미리 신고된 집회지요?”라고 확인하고 “미신고 집회의 경우 현장에서 철거될 가능성이 있다”고 안내하거나 아예 주문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화환을 집회·시위에 사용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합법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선거 기간 화환 설치를 금지하는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과도한 화환 시위가 ‘시각 공해’라는 시각도 적잖다. 실제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판사를 규탄하는 근조 화환 200개가량이 서초동에 몰려왔을 때, ‘유창훈 축사망’ ‘자손 대대로 천벌을’ 같은 문구가 지나친 인신공격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엔 성수동 주민들이 각종 아이돌 규탄 조화 시위에 “동네가 무슨 장례식장이냐”며 불편을 호소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모의 상징인 화환을 정치 구호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에 증오와 혐오가 개입하고 있다”며 “비방성 화환을 ‘표현의 자유’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때”라고 했다. 
반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단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을 모으는 것”이라며 “조화 시위는 비교적 평화로운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대중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한 한국적 문화”라고 했다.(241202)



 

 

 

우크라이나 군인 안톤 수슈코(40)는 지난 9월 왼쪽 허벅지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료진이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그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그가 감염된 세균(박테리아)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수퍼 박테리아’였기 때문이다. 
감염이 잡히는 데만 3주 넘게 걸렸다. 
이 병원의 외과장인 세르기 코술니코프는 AFP에 “부상을 입은 군인의 50%가 치료 전부터 항생제에 내성을 보인다”며 “항생제를 쓰려고 할수록 내성이 더 세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작년 10월 우크라이나 병사가 안면과 팔에 부상을 당하고 다리가 절단돼 병상에 누워 있다. 
부상당한 우크라이나 군인의 절반이 치료 전부터 항생제에 내성을 보인다고 한다. 
전쟁 시작 후 3년째가 되어 가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수퍼 박테리아’가 대거 출현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수퍼 박테리아가 전장에서 대대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약이다. 
1928년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 발견되면서 세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은 급감했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항생제가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면서 항생제로도 죽지 않는 세균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면 부상 치료를 위해 항생제가 대량으로 사용되고, 수퍼 박테리아가 대거 나타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2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째에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항생제에도 견딜 수 있는 수퍼 박테리아의 번식지가 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박테리아는 ‘클렙시엘라 폐렴균’이다.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세계에서 매년 약 500만명이 사망하는데, 그중 약 20%가 이 폐렴균이 사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스웨덴 룬드대 연구팀이 25일 국제 학술지 ‘감염 저널’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클렙시엘라 폐렴균 중 4분의 1은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를 이끈 크리스티안 리스벡 교수는 “이 박테리아로 인한 감염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으로는 치료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며 “환자들이 제대로 격리되고 치료받지 못하는 한, 감염 확산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역시 수퍼 박테리아의 온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포도상구균을 포함한 다양한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들이 병원과 상하수 등에서 발견된 것이다.

 

 




수퍼 박테리아가 생겨나는 가장 큰 원인은 항생제 오남용이다. 
세균들이 지속적으로 항생제에 노출되면서 내성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전쟁은 수퍼 박테리아가 번식되기에 최적의 환경으로 꼽힌다. 
전장에서는 병사들이 자주 부상을 입는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세균 감염을 막겠다며 적절한 검사 없이 항생제를 남발하다 보니 수퍼 박테리아가 번식하게 된다. 
실제로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라는 수퍼 박테리아가 많이 검출됐다. 
이 박테리아는 2003년에는 12%가 주요 항생제에 내성이 있었지만, 변이를 거듭해 2015년에는 내성률이 99.2%로 급증했다.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사망은 이미 세계적으로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2022년 국제 학술지 랜싯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2019년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사람은 495만명에 달한다. 
폐암(204만명)이나 치매(162만명)보다 더 치명적인 셈이다.


전쟁에서 자라난 수퍼 박테리아들이 외부로 퍼져나가면 항생제를 무력화시키고 글로벌 보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도망치고, 부상당한 군인과 민간인이 긴급 의료를 위해 대피하면서 수퍼 박테리아는 국경 너머로 퍼지고 있다”며 “최소 6개 유럽 국가와 일본에서 발견됐다″고 경고했다.(241130)




 

 

 

지난 27~28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진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가 대거 결항·지연되는 ‘항공대란’이 벌어졌다. 
특히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하고도 이륙이 늦어져 기내에서 2~3시간 이상 대기하는 경우가 속출했고, 승객들 사이에서 “도대체 언제 뜨는 거냐” “이럴 거면 비행기엔 왜 태웠느냐” 같은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항공 업계에선 이번 대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디아이싱(De-Icing)’을 꼽는다. 
눈이 많이 오면 항공기는 반드시 디아이싱 과정을 거친다. 
고온의 특수 용액을 강한 압력으로 항공기에 분사해 기체 표면에 쌓인 눈과 서리, 얼음을 제거하는 일이다. 
항공기에 눈이나 서리가 더 쌓이지 못하게 막는 ‘안티아이싱’(Anti-Icing)까지 한다. 
날개에 눈이 얼어붙어 있으면 항공기가 받는 공기 흐름이 달라져 비행에 필요한 양력을 제대로 얻지 못해 이륙이 어려워지고 최악의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디아이싱은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용액을 배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한데 인천공항에선 공간 마련에 제약이 따른다. 
이번 폭설로 항공기 디아이싱 수요는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디아이싱 작업을 처리할 공간과 장비가 충분하지 않아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디아이싱을 못한 항공기가 속출하고, 디아이싱 대기 항공기가 늘면서 연쇄적인 이륙 지연이 발생한 식이었다.


물론 최대 18.5㎝에 달하는 눈이 쌓인 폭설로 활주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데 시간이 걸렸고, 다수 비행기가 제때 이륙하지 못하면서 에어브리지(게이트와 항공기를 연결하는 이동식 통로) 등이 부족해졌다. 
하지만 이틀간 1000대 가까운 항공기가 결항·지연되고 승객이 기내에서 무한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진 데는 디아이싱 작업 지연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디아이싱은 승객이 탑승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디아이싱과 안티아이싱 효과가 길어야 1~2시간이기 때문이다. 
승객을 태우지 않은 상황에서 디아이싱을 하면 정작 이륙할 때 효과가 떨어져 버릴 수 있다.


디아이싱은 항공사와 계약을 맺고 지상에서 항공기를 지원하는 업체인 지상 조업사에서 담당한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이 자회사 형태로 둔 지상 조업사를 포함해 인천공항에 총 다섯 업체가 있다. 이들이 보유한 디아이싱 장비는 총 31대. 보통 장비 점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비행기 1대 당 장비 2대가 투입되고, 작업 시간은 15분 정도 걸린다.

 

 




일반적인 상황이면 대응이 가능했겠지만, 이번 폭설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습설(젖은 눈)’이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눈에 수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동체에 흡착됐고 이 때문에 한 대당 디아이싱 작업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고 했다. 
보통 15분 정도 걸리는 작업이 40분 정도로 길어졌다는 설명이다.


디아이싱 장소가 부족하고 한 번에 많은 항공기가 몰리며 이동 통로도 혼잡해져 더욱 시간 지체가 발생했다고 한다. 
디아이싱 작업을 마치고도 활주로로 나가지 못한 항공기가 발생할 정도였다. 
항공 업계에선 “공항이 제대로 이동로를 통제하지 못해 비행기끼리 동선이 엉키며 혼선이 벌어진 영향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아이싱 전용 장비는 크기에 따라 대당 5억~12억원씩 한다. 
지상조업사 측은 “이례적인 폭설에 대비해 많이 늘리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 항공 업계 관계자는 “기상이변으로 잦아질 폭설에 대비해 공항과 항공사, 당국이 함께 장비를 늘릴 방안을 마련하고, 항공기를 디아이싱 장소로 옮길 동선을 미리 짜놓는 등 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했다.(241130)


☞디아이싱(De-Icing)

항공기 표면에 붙은 얼음이나 눈을 특수 장비와 용액을 이용해 제거한 뒤 일정 시간 동안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는 작업. 
비행기는 날개 위아래를 흐르는 공기의 압력 차이로 발생하는 양력으로 비행한다. 
그런데 날개에 얼음이 맺히면 압력 분포가 달라져 정상적인 양력을 얻기 힘들고 이륙이 어려워지는 등 심각한 비행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내년도 입원 환자의 한 끼 값이 4600~5530원으로 정해졌다. 
입원 환자 식대(食代)는 정부에서 정하고, 보통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절반씩 부담한다. 
올해보다 3.6% 인상됐지만, 대다수 병원은 “최근 식자재·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는데, 라면·짜장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라고 호소한다. 
대한병원협회(병협) 산하 병원정책연구원은 최근 식비 문제와 관련해 각 병원 설문조사를 시작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 한 병원의 기본 환자식. 밥과 국, 반찬 4가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입원 환자 식대 세부 조정안’에 따르면, 내년 식비는 올해보다 3.6% 인상된다. 
‘일반식’ 기준 의원급 4600원, 병원급 5030원, 종합병원 5290원, 상급 종합병원 5530원이다. 
당뇨 등 식단 조절이 필요한 환자용인 ‘치료식’은 올해(6170~6960원)보다 200원 정도 오른 6390~7210원으로 책정됐다. 
의료 급여(생활 보호) 대상자의 내년 식대는 올해와 같은 4230원이다. 
이 금액은 개인이 0~20%만 부담한다. 식사 메뉴는 건강보험 환자와 같지만 병원은 4230원만 받는 것이다.


입원 환자 식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은 2006년이다. 
이전엔 각 병원이 값을 정했는데, 시민 단체 등에서 환자의 식대 부담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제도가 바뀌었다. 
2015년까지는 병원 형태와 관계없이 3390원(일반식 기준)으로 고정됐다. 
2015년 병원 규모 등에 따라 분류해 식대를 총액 기준 6%가량 인상한 뒤 2017년부터는 전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과 연동해 해마다 조정하고 있다. 
그 결과 2006~2025년 오른 금액이 1200~2200원이다.

 

 




문제는 식료품 물가와 인건비다. 
2023년만 해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6%였지만, 신선 식품 지수(생선·채소 등)는 6.8% 올랐다. 
경남 지역 A병원 관계자는 “많은 병원이 적자를 감수하며 끼니당 7000~9000원 수준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병협 등에 따르면 최근 입원 환자 식대 원가 보전율은 60% 안팎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병원이나 외주 업체가 떠안는다는 얘기다.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영양사·조리사 인건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병·의원이 자체 영양사·조리사를 고용할 경우 주는 영양사 가산은 640원, 조리사 가산은 590원에 불과하다. 
수도권 B병원 관계자는 “병원 영양사·조리사는 업무 강도가 더 높아 사직하는 사람이 있어도 새로 고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인석 병협 보험이사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2018~2020년에도 식대 인상률은 1%대에 그쳤다”며 “환자에게 최적의 식사를 제공하려면 식대 인상이 절실하다”고 했다.(241129)


 

 

 

중국 음식 프랜차이즈 A매장에서는 탕수육을 1만6800원에 판다. 하지만 배달앱에서는 같은 메뉴를 6%(1000원) 비싼 1만7800원에 팔고 있었다. 
B식당에서는 고기국수가 1만원이지만, 배달앱에 나온 같은 메뉴의 가격은 20% 비싼 1만2000원이었다.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C매장의 갈릭베이컨치즈샌드위치는 매장에서는 5400원, 배달 가격은 26% 비싼 6800원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탕수육보다 배달하기 힘든 품목이냐” “요즘 배달 메뉴 가격이 아무런 원칙도 없이 오르고 있다” 같은 불만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식음료 배달 수요가 급증한 사이 각종 프랜차이즈 본사와 음식점 업주들이 배달앱 등에 지불하는 수수료·배달비 부담을 이유로 앞다퉈 ‘이중가격제’를 도입하고 있다. 
매장 가격보다 배달하는 메뉴 가격을 더 비싸게 책정해 판매하는 것이다. 
1300여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속한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도 최근 전체 매출에서 배달 비중이 가장 큰 치킨 브랜드를 대상으로 이중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고 나섰다.

 

 




외식업계에서 ‘같은 메뉴=같은 가격’이라는 등식을 깨는 이중가격제가 확산하고 있지만, 가격 책정 방식에 아무런 원칙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본지가 서울에서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음식점 가격을 무작위로 비교한 결과, 매장 가격과 배달 가격의 차이는 적게는 4.9%에서 많게는 25.9%로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매장에서도 메뉴에 따라 배달 가격의 인상 폭이 다른 경우도 많았다.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매장이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배달앱에서 배달 메뉴 가격과 매장 가격이 다르다는 걸 소비자에게 공지하는 음식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6개월 동안 배달앱과 입점업체들이 ‘상생협의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깔아준 판 위에서 논의했지만, 애꿎은 소비자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이중가격제 공지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가격제 확산에도 정작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들은 매장 가격과 배달 메뉴 가격이 다르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음식점이 배달 가격은 매장 판매가보다 더 비싸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알리거나, 아예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이중가격제를 제대로 알리라는 권고를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틈을 이용해 업체들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에도 학생, 군경, 입주사 할인 등 특정 소비자를 상대로 한 이중가격제가 존재했다. 
커피 전문점과 일부 음식점은 포장해가는 경우 가격을 할인해주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확산 중인 이중가격제는 배달을 선택할 경우 매장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내는 구조다. 
배달 비용과 별개로 방문 대신 배달을 택했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같은 메뉴에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이다.


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 KFC, 파파이스, 프랭크버거 등은 올 들어 이중가격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등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와 일반 음식점들도 앞다퉈 배달 가격을 더 비싸게 책정하기 시작했다. 
롯데리아 더블한우 불고기버거 세트가 매장에서는 1만4500원인데, 배달 메뉴는 9% 비싼 1만5800원에 파는 식이다. 
정현식 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은 배달앱의 횡포를 지적하며 “배달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가격을) 모두 같게 인상하든지, 이중가격을 선택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배달앱에서 배달용과 매장용 메뉴 가격 차이를 명확하게 고지한 곳은 극히 일부다. 
맥도날드는 배달의민족 주문창에서 ‘배달 시 가격은 매장과 상이하다’라고 공지하고 있다. 
KFC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에서 ‘딜리버리 전용 판매가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공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일반 음식점과 커피 프랜차이즈 등은 배달 메뉴 가격을 매장 가격보다 비싸게 받으면서도 공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 차이도 제대로 모른 채 배달 메뉴를 시키고 있는 건 이중가격 공지가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일찌감치 이중가격제를 도입한 버거 업체를 시작으로 배달앱, 프랜차이즈산업협회, 외식업중앙회 등에 이중가격제와 관련한 권고를 했다. 
업체에는 주문 과정에서 이중가격제를 명확하게 표시하도록 권고하고, 배달앱과 협회 등에는 입점업체와 회원사에 이중가격제 교육과 홍보활동을 강화해달라고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소 귀에 경 읽기’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지고, 독점이나 담합 행위가 있지 않는 이상 원칙적으로 가격결정권은 판매자에게 있기 때문에 이중가격제 공지를 하라고 강하게 압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프랜차이즈 업체나 음식점주는 이중가격 도입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메뉴마다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가격제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이전부터 배달과 매장 가격을 다르게 책정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배달 메뉴 가격과 매장 가격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조사업체 고든 해스켓 리서치 어드바이저스가 지난해 미국의 25개 유명 레스토랑 브랜드의 배달 메뉴 가격을 조사한 결과 방문해서 먹을 때보다 평균 20%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버거 브랜드 웬디스의 매장 가격과 배달 메뉴 가격의 차이는 29%, 맥도날드는 27%로 조사됐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인 ‘누들스’의 경우 2020년 매장 가격과 배달 메뉴의 가격 차이가 10%였는데, 작년 그 차이를 25%로 늘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레스토랑들이 팬데믹을 거치며 배달 수요가 늘면서 배달 메뉴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중가격제 적용 업종이 외식업을 넘어 생필품 시장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영국 식료품 체인 아이슬란드(Iceland)는 화이트브레드를 1파운드에 파는데, 배달앱 저스트이트, 우버이츠 등에서는 2파운드에 팔고 있다. 
영국의 수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에서는 바나나를 1.75파운드에 파는데, 배달앱에선 6%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CNBC가 뉴욕의 한 마트에서 쇼핑을 하는 것과 배달을 시키는 것을 비교한 결과 같은 품목을 구입하는 데 매장에서는 152.68달러인 반면 배달용 금액은 177.99달러로 나와 있었다고 한다. 
매장에서 1.99달러에 파는 계란이 배달로 주문하면 2.29달러인 식이었다.(241127)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우리나라 핵심 산업 생산 기지가 몰려 있는 충남과 경기 남부 등에 전기를 공급할 핵심 송배전망인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가 마침내 준공됐다. 
40km에 불과한 거리이지만 첫 계획 당시 준공 시점으로부터는 12년 6개월, 사업에 착수한 때로 따지면 21년 9개월 만이다. 
지역 주민의 반발과 지방자치단체의 님비(Not in my backyard·우리 뒷마당은 안 된다)에 더해 중앙정부의 안일함, 사업자인 한국전력의 무기력까지 겹치며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AI(인공지능)의 확산과 전기차 보급,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등에 따라 송배전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건설 여건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 반대로 바다 위에 설치된 송전탑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의 서해대교 인근 구간 모습. 
당초 육상 송전선로로 설계됐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해상에 설치했다. 
송전탑 위치도 육상으로 예정됐다가 주민 반대로 바다 위에 설치물을 만들어 세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당초 2012년 6월이었던 송전선로 준공 시점은 12년 넘게 지연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8일 국내 최장기 송전망 지연 사업인 345kV(킬로볼트) 규모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가 전력 공급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업은 2003년 계획 수립 당시 2012년 6월 준공을 목표했지만, 주민 반발 등으로 2014년에야 공사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농작물 훼손, 철새 영향 등의 이유가 이어지며 공사는 멈추기 일쑤였다. 
준공 시기는 6차례 밀렸고, 12년(150개월) 지각 준공된 것이다. 국내 송배전망 건설 사상 역대 최장 지연 기록이다.


송배전망 공사 지연은 북당진~신탕정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인근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신송산변전소를 잇는 345kV 선로가 90개월 지연되는 것을 비롯해 주요 송배전망 31건 중 26건이 계획보다 늦게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송배전망 건설에 어려움이 커지며 북당진-신탕정의 기록을 깨는 공사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충남 당진시 송악읍에서 아산시 탕정면까지 41.3km를 잇는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는 2003년 제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 당시부터 지난해 발표한 제10차 전기본까지 20년 동안 빠짐없이 포함된 이른바 ‘화석’ 같은 송전선로다. 
인근 태안군에 있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아산 탕정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 디스플레이 단지 등으로 보내기 위해 추진됐다. 
하지만 사업 착수 후 11년이 지난 2014년에야 공사는 시작됐고, 착공 후에도 계속 일정이 밀리며 공사에만 10년이 걸렸다.


당초 당진시 중심을 지날 예정이었던 송전선로는 주민들의 반발 속에 아산만에 접한 송악읍과 신평면, 우강면을 잇는 선로로 바뀌었다. 
철탑을 더 세우고, 송전선이 길어지면서 건설비는 더 늘었다. 
2010년대 초 ‘밀양 송전탑 사태’가 전국적인 관심을 끌자 당진 지역 117개 단체는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강하게 반발했다. 
2013년 당진 시민 1300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대규모 집회에선 송전 철탑 모형을 부수고 불태우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산 구간부터 공사가 시작됐지만, 반발이 심한 당진에서는 3년 뒤인 2017년에서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면 단위별로 100억원이 넘는 기금과 지원 사업비를 약속한 뒤였다. 
사람을 피해 선로를 바닷가로 돌렸지만 이번에는 ‘철새’가 문제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송전탑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대책위에서는 겨울철에 삽교호를 찾는 철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섬과 섬 사이에 송전탑을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송전탑 위치를 애초 계획한 곳에서 옮기고 나서야 공사는 재개됐다.

 

 




철탑을 세우면서 추수를 앞둔 벼를 훼손하자 주민들은 “자식처럼 키운 농민 심정을 헤아리지 않았다”며 어깃장을 놨고, “당진시의 입구인 서해대교 경관을 해칠 수 없다”는 여론에 해저로 전선을 매설해야 했다. 예산은 0.5km 구간에 400억원 가까이 늘었다.


지방자치단체도 인허가 등을 내세워 발목을 잡았다. 
당진시는 환경단체의 요청에 월동 기간(12~3월) 중에는 공사 중지를 명령했고, 송전탑 부지로 들어가는 진입로 사용을 막고, 각종 건설 자재를 쌓지도 못하게 하면서 사실상 공사를 막았다.


이렇게 송배전망 건설이 지연되면서 입은 손실은 1조원이 넘는다. 
서부발전은 2016년과 2017년 차례로 1GW급 태안화력 9·10호기를 가동하기 시작했지만, 해당 선로 건설이 늦어지며 사실상 1.5개는 놀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한전의 부담이 됐다. 
한전 관계자는 “값싼 석탄화력발전 대신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가 돌아가면서 한전이 비싸게 전기를 산 비용만 지난 8년 동안 1조1727억원”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가격이 급등한 2022년에는 한 해에만 4000억원 넘게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전기 요금 인상에 따른 기업과 가정의 손해, 각종 사회적인 비용 등 간접적인 손해를 더하면 손실액은 훨씬 커질 것”이라고 했다.


발전소와 송전선로가 대거 설치된 곳에 추가로 신규 선로를 지으면서도 안일하게 접근한 정부나 국책 사업에 대한 책임 의식 없이 10년 넘게 질질 끈 한전 등의 총체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면 지중(地中)화라는 무리한 요구로 건설을 막은 지역 주민들도 비판을 받는다. 
345kV 송전선로 기준, 지상 선로와 지중 선로의 비용 차이는 1km당 225억8000만원에 달한다. 
만약 41.3km 중 지상 구간인 35km를 지중화했다면 7900억원을 더 투입해야 했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불과 40km 길이 송전선 건설에 21년이 걸린 것은 보상금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는 지역 주민들의 노골적인 시간 끌기, 손을 놓다시피 한 한전, 주민들의 눈치를 본 지자체, 갈등을 중재할 의지 없이 방관한 정부 등 모두의 책임”이라며 “한전과 지역 주민, 지자체 간의 적극적인 협상과 타결이 가능하도록 총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241129)


 

 

 

이차전지나 AI(인공지능) 등 유망 신산업 분야에 진출한다고 공시한 상장사 10곳 중 3곳은 공시만 해놓고 관련 사업 추진 실적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기업들은 주가를 띄우기 위해 허위·과장 공시를 일삼는 ‘양치기 소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금융 당국은 보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신사업 진행 상황 공시 점검 및 사업 진행 실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이차전지·AI·메타버스 등 7개 신사업 분야 진출을 선언한 86개 상장사 중 27사(31.4%)는 아무런 사업 추진 내역이 없었다. 
코스피 상장사가 3곳, 코스닥 상장사가 24곳이었다. 또 86곳 중 실제로 신사업 관련 매출이 발생한 기업은 16곳(18.6%)에 불과했다.

 

 




특히 사업 추진 실적이 전무한 27사 중 상당수는 재무·경영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13사는 최근 3년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7사는 자본 잠식 상태였다. 
기업 최대 주주가 수시로 바뀐 기업이 13곳, 횡령·배임이나 감사 의견 거절 등으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이 9곳이었다. 
공시 지연 등으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기업도 11곳에 달했다.

 

 


<여의도 금융감독원.>

 


금감원은 상장사들의 허위·과장 공시가 주가조작에 악용되는 사례도 적발했다. 
최근 15사에서 불공정거래 혐의가 확인돼 82명이 형사 조치됐고, 5사는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지금도 7사에 대한 불공정거래 조사와 8사에 대한 회계 감리가 진행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회사가 신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무·경영 안정성과 내부 통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며 “신사업 추진 사실만으로 급격한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241126)



 

 

 

별다른 글자 없이 한반도 모양 지도만 그린 상표는 실제 지도와 식별하기 어려워 상표로 등록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최근 조미김을 판매하는 성경식품이 한반도 모양 상표 등록을 불허한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특허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성경식품이 특허 출원한 '한반도 지도 모양' 상표. 
법원은 이 상표 등록을 거절한 특허청의 결정이 맞는다고 판결했다.>

 


25년 이상 조미김을 판매한 성경식품은 김 포장지에 한반도 지도 윤곽선을 본뜬 상표를 사용해 왔다. 
한반도 모양 그림 안에 ‘성경김’ ‘돌자반’ 등 문자를 넣은 형태다. 
성경식품은 2020년 기준 600억원 이상 연 매출을 올리며 조미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해, 이 상표의 인지도도 높은 상황이었다.


성경식품은 한반도 지도를 선으로 표현한 상표를 등록해 달라며 출원했지만, 특허청은 2020년 상표법상 등록할 수 없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에 해당한다며 거절했다. 
이에 불복해 낸 심판도 기각되자 2022년 소송을 제기했다. 
성경식품은 “해당 상표는 한반도 지도를 모티브로 상당한 생략과 변형을 거친 도형 상표”라며 “관련 상표를 오래 사용해 수요자들이 지도와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특허법원은 작년 4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성경식품의 실제 상표에는 지도와 문자가 결합돼 있는데, 특허청에 출원한 상표는 문자 없이 단순히 지도만 그려져 있어 두 가지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특허법원은 “성경식품이 출원한 상표가 일반 수요자에게 통념상 대한민국 지도로 인식되는 이상, 상품 출처의 표시로서 식별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특정인에게 이를 독점하도록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지도만으로 된 상표’의 해석, 상표의 식별력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특허청 손을 들어줬다.(241126)


 

 

 

올해 칠순인 최모씨는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주말에 북한산·청계산 등 순서를 정해 서울의 산을 오르는 것이다. 
등산 필수품은 지난 어버이날 자녀들이 선물해준 웨어러블(몸에 착용하는) 로봇. 
허리춤에 주머니를 차듯 로봇에 달린 밴드를 둘러 고정하고, 게 다리처럼 연결된 관절 부분을 양쪽 허벅지에 차면 준비 끝이다. 
덱(deck) 계단이나 오르막에선 로봇이 다리 힘을 보조해 힘들이지 않고 30분 이상 가뿐히 오를 수 있다. 내려올 땐 다리를 묵직하게 잡아줘 무릎 충격을 방지해 준다. 
최씨는 “관절염 때문에 10여 년 만에 산에 왔는데, 신세계가 따로 없다”고 했다. 
최씨가 착용한 것은 국내 스타트업이 지난 4월 출시한 보행 보조 로봇이다. 
걸음걸이가 불편한 노년층뿐 아니라 산악 구조대나 환경미화원 등 체력 소모가 큰 직업군에 요긴하다. 300만원 넘는 고가에도 출시 후 500대가량 판매됐다.


‘입는 로봇’인 웨어러블 로봇이 산업 현장을 넘어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허리와 허벅지에 차면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최근에는 다리에 적절한 힘을 가해 운동 효과를 극대화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동안엔 국내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 상품’으로 출시해 왔다. 
최근엔 삼성전자가 헬스케어 기업·기관을 상대로 한 웨어러블 로봇을 내놓으며 수요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웨어러블 로봇을 이용해 등산하는 사람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웨어러블 로봇은 기본적으로 내딛는 걸음 동작을 인식해 모터를 돌려 움직이는 게 기본 원리다.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방향 그대로 모터가 작동하면 적은 힘을 들여 걸을 수 있고, 모터가 반대로 작동하면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것처럼 저항을 느끼는 것이다. 
로봇 업계 관계자는 “로봇을 차고 걸으면 20㎏ 배낭이 8㎏ 정도로 느껴지고, 저항을 주면 다리 근력이 20~30%까지 강화된다”고 했다.


수년 전부터 웨어러블 로봇이 나왔지만, 그동안 무게와 불편한 착용감 때문에 상용하는 이들이 적었다. 
전시회에서 시연되는 정도에만 그쳤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이 4~5년 전 내놓은 로봇들은 무게가 3㎏ 안팎으로 무거웠고, 의자에 앉거나 다리를 벌릴 때 움직임이 불편한 단점이 있었다.

 

 




최근 들어 사람의 관절 움직임에 관한 데이터를 축적해 웨어러블 로봇 관절의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무게를 2.5㎏ 안팎으로 줄였고, 배터리 용량은 한 번에 5시간 이상 사용 가능하도록 늘었다. 
서울의 어지간한 산은 한 번 충전으로 등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 웨어러블 로봇과 스마트폰을 연동하는 앱이 속속 출시됐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보행 데이터를 입력하면, 걸음걸이 등에 따라 파워 걷기, 인터벌 걷기, 속도 집중 걷기 등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안받을 수 있다.

 

 


<올해 초 거동이 불편했던 65세 남성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웨어러블 로봇 '문워크 옴니'를 입고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웨어러블 로봇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노약자뿐 아니라 하체 운동이 필요한 중장년층까지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 제조사들은 노년층·장애인이 걷기 쉽도록 하는 기능뿐 아니라 하체 근육 강화 등 건강 관리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휴레이포지티브는 내달 중 웨어러블 로봇을 활용한 맞춤형 건강관리 앱 ‘밸런스’를 출시한다. 
이용자가 직접 입력한 신체 수치와 건강검진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운동 방식을 알려준다. 
강원대학교병원 암 치유센터 등이 이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최두아 대표는 “당뇨 환자의 경우 혈당 관리를 위해 하체 근육 강화가 필수지만 당뇨족이 있으면 오래 걸을수록 상처가 날 확률이 높아 치명적”이라며 “웨어러블 로봇 ‘봇핏’을 활용해 5분만 걸어도 수십 분을 걸은 운동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의료용으로도 웨어러블 로봇이 각광받고 있다. 
뇌성마비·뇌졸중·척수손상·근육병 등으로 걸음이 불편해진 환자들의 걷기 재활을 돕는 식이다. 
2017년 창업한 엔젤로보틱스는 환자의 재활 훈련에 쓰이는 로봇 ‘엔젤렉스’를 세브란스 재활병원 등에 공급하고 있다. 
엔젤로보틱스는 “고정된 트레드밀에서 걷는 동작을 반복하는 대신, 환자가 실제 지면을 느끼고 체중 이동을 할 수 있게 도와 회복에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241123)



 

 

 

 

 

 

 

정부가 내년에 대학생을 위한 국가장학금 예산을 올해보다 6000억원 가까이 늘린 5조3000여 억원으로 편성하면서, 이런 혜택에서 소외된 고졸 청년들의 박탈감이 심화하고 있다. 
청년층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대학생과 소수인 고졸 청년에 대한 지원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이것이 대학 진학을 더 부추겨 ‘학력 거품’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학생 학자금 지원에 견줄 수 있는 교육부의 고졸자 지원 사업은 ‘고교 취업 연계 장려금’ 정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청년에게 5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해야 하고, 1년 이상 근무한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반환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다. 
별다른 조건 없이 대학생이면 소득 구간에 따라 전체 대학생의 75%(내년 기준)에게 주는 대학생 학자금 지원과 차이가 크다. 
올해 교육부의 고교 취업 연계 장려금 예산은 1214억원이고, 내년 예산도 올해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반면 올해 교육부의 대학생 학자금 지원(국가장학금 I·다자녀장학금) 예산은 3조6655억원에 달한다. 
예산 규모가 이미 30배 넘게 차이 나는데, 내년부터 혜택을 받는 대학생을 기존 1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늘리겠다며 수천억원을 더 쏟아붓는다. 
대학생들은 국가장학금 외에도 근로 장학금 등 각종 장학금과 등록금·생활비 저리 대출 혜택도 받는다.


교육계에서는 “대학에 안 가면 손해인 사회 구조를 정부가 앞장서서 만드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작년 한국의 청년층(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69.7%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47.4%)을 훨씬 앞질러 1위를 기록했다.


배영찬 한양대 명예교수는 “비대한 장학금 사업으로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되는 청년까지 유입시키고, 이는 결국 노동시장에서 인력 미스매치를 일으켜 청년 실업을 유발하고 있다”며 “고졸 취업자 지원을 강화해 이 기형적 사회 구조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 안산에 사는 김주현(21)씨는 2022년 직업계고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 있는 한 중소기업에서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고 대학에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취업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뉴스에서 대학생 지원 사업 얘기가 나오면 소외감을 느낀다. 
같은 20대 청년임에도 김씨가 국가로부터 받은 지원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육부에서 주는 취업 연계 장려금은 졸업 후 곧바로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취업이 1년 늦어졌더니 지원 자격이 없다고 하더라”며 “지자체에서 주는 취업 지원금도 서울 회사에 취직했다는 이유로 지원 자격이 안 됐다”고 했다. 
그는 “각종 대학생 지원금이 넘친다는데, 저는 한 푼도 못 받다 보니 차별받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고졸 청년만을 타깃으로 한 정부 지원 사업은 대학생 지원 사업에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교육부의 ‘고교 취업 연계 장려금’ 정도가 대학생 학자금 지원과 지원 대상 측면에서 유사하다. 
직업계고 3학년 또는 일반고 3학년 중 직업교육에 6개월 참여한 이에 한해서 중소·중견기업 취업 시에 5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면 지원이 안 되는 등 여러 조건이 붙었다.


지원 액수도 학자금 지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대학 학자금을 주는 국가장학금(I유형)은 연간 지원액이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은 등록금 전액, 소득이 낮은 1~3구간은 570만원, 4~6구간은 420만원, 7~8구간은 350만원, 소득이 높은 9구간은 100만원이다. 
4년제 대학에 다니면 1~3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은 총 2280만원을 받는 셈이다. 
소득 중간값인 5구간(4인 가구 월 소득인정액 609만원)도 1680만원을 받는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장 취업에 뛰어든 고졸 청년 가정의 경제 사정은 대학생 가정보다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지원 액수 차이가 최대 4배가 넘는다.


대학생을 위한 장학금 사업은 이뿐만 아니다. 
근로 시간에 따라 학기당 최대 635만원을 받을 수 있는 대학생 근로 장학금 지원도 있다. 
정부는 이 사업 예산도 올해 4691억원에서 내년 6358억원으로 늘린다. 
이 외에 중소기업 취업 예정자에게 매 학기 200만원씩 장학금을 주는 중소기업 취업 연계 장학금과, 각종 대학생 창업 지원 사업도 많다. 
내년에는 대학생들 생활 주거비 부담을 줄이겠다며 월 20만원씩 주는 344억원 규모 주거 안정 장학금도 신설한다.


교육계에서는 대학생과 고졸 청년에 대한 이 같은 차별 지원이 한국을 ‘학벌 사회’로 만드는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1990년 33%였던 한국의 고교 졸업자 대학 진학률은 작년 72.8%까지 올랐다. 
반면 싱가포르나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권 국가의 대학 진학률은 30% 안팎 수준에 머문다. 
고등교육 이수가 필수인 직업을 택할 것이 아닌 이상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는 문화가 정착한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였던 미국도 최근 대학 인기가 시들하다. 
4년제 대학에 가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니 빨리 기업에서 실무를 익히며 전문성을 기르겠다는 청년들이 많아지며 대학 진학률이 2015년 69.2%에서 2022년 62%까지 떨어졌다. 
한 수도권 사립대 총장은 “교육의 질적 향상이 아니라 단순 장학금 퍼주기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며 “대학에는 등록금을 16년째 올리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등록금 수준을 낮게 유지하고, 세금으로 등록금을 지원하며 인기를 챙기는 것 아니냐”고 했다.


투표권이 생긴 고교 졸업자 4명 중 3명꼴로 대학에 진학하다 보니, 정치권이 이들만 공략한 포퓰리즘성 정책을 쏟아낸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내년 학자금 지원을 받는 대학생을 150만명까지 늘리겠다는 공약도 올해 초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추진한 것이다. 
올해 30조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이 발생할 전망인데도 청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국가장학금 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여론조사에서 18~29세의 6%만이 긍정 평가를 해 전 연령대에서 가장 지지율이 낮았다.


대학생과 달리 상대적으로 수가 적고 정치적으로 응집력도 낮은 고졸 청년들에게는 정치권이 관심을 덜 가진다는 것이다. 
신수연 전국특성화고노조 경기지부장은 “대학생에 비하면 고졸 청년을 타깃으로 한 지원 사업은 사실상 거의 없는 수준으로, 주변에 복지를 체감한다는 이가 드물다”며 “직업계고 재학생을 위한 자격증 지원금 예산마저도 올해 삭감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비대해진 대학생 지원 사업을 줄이고, 대신 고졸 취업 청년만을 겨냥한 사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야권에서는 국가장학금에서 소외된 대학 미진학 청년을 위해 고교 졸업 후 수백만원을 자기계발비 명목으로 주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역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과 함께, 청년 지원 사업이 지나치게 대학생에게로 무게추가 기운 상황에서 형평성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특성화고인 김포과학기술고 황영훈 교감은 “졸업 후 중소·중견기업에 취직하는 아이들 상당수가 임금 수준이 많이 낮은데도 정부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있다”며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직업인데도 관습적으로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는 사회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241123)

 

 

 

“대만은 유망주들을 해외로 보낸다. 국내에 두지 않고 다 보낸다. 
그리고 그 선수들을 국제 대회가 열리면 불러 모은다… 우리와는 생각이 다르다. 
우리는 어린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실정이고 대만은 오히려 보낸다. 그 부분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한국 야구 대표팀이 2024 프리미어 12 야구에서 대만과 일본에 완패하며 예선 탈락 고배를 마신 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이 지적한 문제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대만 선수들은 해외와 자국 리그를 활발하게 오가며 실력을 쌓고 있다는 인식이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 12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한 대표팀 류중일 감독과 선수들이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류 감독이 언급한 대목은 KBO(한국야구위원회) 규약 제107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교 및 아마추어 선수가 국내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곧장 (미국·일본 등) 해외 리그로 진출할 경우 국내 복귀 시 2년간은 국내 구단과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해외 진출 유망주 국내 복귀 2년 유예 조항’으로 불린다. 
1998년 아마추어 유망주의 무분별한 해외 유출을 막고 국내 리그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후 조금씩 수정됐지만 여전히 국내 유망주들의 조기 해외 진출과 조기 국내 복귀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통한다.


한 야구계 인사는 “실제로 빅 리그 제의를 받고도 도전했다 실패하면 국내 복귀도 (2년 유예 때문에) 어렵고 조기 진출 시 모교에 5년간 KBO 지원금이 끊어지는 등 불이익이 많아 망설이는 선수가 꽤 있다”고 전했다. 
올해 LA 다저스와 계약한 장현석을 비롯해 심준석, 조현빈 등은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고 해외 진출을 감행했다.


이 조항은 양면성이 있다. 우선 선수들 개인으로선 과감한 해외 진출을 꺼리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온 이학주, 손호영 등은 국내 복귀 후 2년간 무적(無籍) 신분으로 쉬거나 독립 구단에서 뛰다 국내 프로 구단에 복귀할 수 있었다. 
“선수의 권리와 잠재력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KBO나 국내 구단들은 “이런 조항이 없으면 초거대 자본을 앞세운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국내 특급 유망주들을 싹쓸이해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프로 야구가 고사할 것이란 우려다. 
한 지방 구단 관계자는 “가뜩이나 유망주 풀(pool)이 점점 작아지는데 이런 조항이 사라지면 ‘큰돈 받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보고 안 되면 국내로 돌아오자’는 인식이 파다해질 것”이라며 “리그 수준이 더 떨어지고 선수 몸값만 더 치솟을 것”이라고 했다.

 

 




이 조항이 일관성 있게 유지된 것도 아니다. 
지난 2007년 KBO는 해외 진출 선수 특별 지명 드래프트를 만들어 송승준, 추신수, 김병현, 최희섭 등 고교 졸업 후 메이저리그에 직행했던 일부 선수는 유예 기간 없이 곧바로 국내 리그에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선수들 간 형평성을 무시한 조치라는 비판도 있었다.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이미 일본에서도 (오타니 쇼헤이 등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 검증됐지만, 고교 유망주가 메이저리그에 직행해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과 한국 모두 자국 리그에서 실력을 쌓은 뒤 넘어가는 게 정석이 되고 있다”면서 “차라리 7시즌 이상 국내 리그에서 뛰어야 메이저리그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수정해 조기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문을 열어주는 게 선수와 리그 모두 ‘윈-윈’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프리미어 12 야구 대표팀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망주들을 선발하지 않은 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지만, 배지환, 장현석, 심준석 등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을 합류시켰다면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줬을 것이란 아쉬움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PLGA)는 한때 국내 대회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선수들 해외 투어 출전을 1년 3회로 제한했다가 선수들 권리와 국제 경쟁력을 억누른다는 지적이 나왔고 작년 문화체육관광부 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이를 폐지했다. 
야구계에선 “자국 리그가 활성화되지 않은 대만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긴 무리”라면서도 “KBO 2년 유예 조항에도 장단점이 있는 만큼 논의를 다시 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는 분위기다.(241120)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변화하고 있다. 
영종도를 걸어서 갈 수 있는 ‘제3연륙교’가 내년에 개통한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에 이어 육지와 영종도를 연결하는 세 번째 다리다. 
영종도와 강화도를 다리로 연결하고 강화도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강화도에서 생산한 상품을 바로 인천공항을 통해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인천공항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항공기 엔진정비공장이 생긴다. 
30여 년 전 인천 앞바다 작은 섬들을 매립해 만든 영종도가 이제 주변 지역까지 아우르는 ‘항공 도시’로 성장하는 것이다.

 

 


<내년 12월 개통할 ‘제3연륙교’의 조감도. 
인천 영종도와 청라국제도시를 연결한다. 영종대교, 인천대교와 달리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건널 수 있게 만든다. 높이 180m인 주탑 꼭대기에 전망대를 설치해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3연륙교는 영종도 중산동과 청라국제도시를 연결하는 길이 4.6㎞ 다리다. 
왕복 6차로 규모로 내년 12월 개통할 예정이다. 현재 공정률은 72%다. 최근 높이 180m 주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를 타야 이용할 수 있는 영종대교, 인천대교와 달리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건널 수 있게 만든다. 
걸어서 1시간~1시간 30분 정도면 다리를 건널 수 있다고 한다. 
주탑 꼭대기에 전망대를 만들어 세계적인 조망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 측은 “전망대에 올라가면 인천항은 물론 서울과 북한까지도 보일 것”이라고 했다.


제3연륙교는 임시로 붙인 이름이다. 정식 이름은 인천시 지명위원회가 내년 3~4월 결정할 계획이다. 
다리 이름을 놓고 청라국제도시 주민들과 영종도 주민들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청라 주민들은 다리 이름을 ‘청라대교’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영종도 주민들은 ‘영종하늘대교’를 선호한다.

 

 




서울과 영종도도 더 가까워진다. 제3연륙교를 이용하면 여의도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약 40분이면 갈 수 있다. 영종대교를 타는 것보다 최대 20분 정도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통행료는 내년 하반기에 결정될 전망이다. 
2000~4000원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영종‧청라 지역 주민들에게는 무료로 개방할 계획이다.


영종도와 강화도를 연결하는 ‘평화도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약 10㎞ 떨어진 두 섬을 연결해 영종도의 기능을 확대하고 시너지를 낸다는 구상이다.


1단계로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다리가 2026년 1월 개통한다. 길이 3.2㎞, 왕복 2차로 규모다. 
신도는 영종도와 강화도 사이에 있는 섬이다. 신도와 신도 옆에 있는 시도, 모도는 이미 다리로 연결돼 있어 3개 섬 주민 360여 명이 육지로 나가기 편리해진다. 
신도와 강화도 간 11㎞를 잇는 2단계 사업은 2030년 개통이 목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올 연말 산업통상자원부에 강화도 길상면 일대 10㎢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인천은 영종도, 청라국제도시, 송도국제도시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있는데 강화도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농촌 지역인 강화도에는 종자, 바이오, 스마트팜 분야 글로벌 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면 세금 감면, 용적률 상향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유리해진다. 
다만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과 가까운 강화도에 투자를 유치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천공항 쪽에는 항공 분야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운북동 일대 6만9000㎡ 부지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항공기 엔진 정비 공장을 짓고 있다. 
2027년 문을 열면 항공기 엔진을 연간 360개 정비할 수 있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국내 모든 항공사의 항공기 엔진을 정비할 수 있는 규모다.


이스라엘 최대 방산업체인 ‘IAI(이스라엘 에어로스페이스 인더스트리)’는 인천공항 안에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하는 공장을 연다. 
미국의 화물 전용 항공사인 애틀러스항공도 인천공항에 화물기 중정비센터를 짓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동북아 지역의 화물 허브인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했다. 
공항 근처 50만7700㎡ 부지에는 ‘영종항공 일반산업단지’가 내년 하반기 분양에 들어간다.


인천시는 현재 중구에 속해 있는 영종도를 분리해 2026년 ‘영종구’를 신설할 계획이다. 영종도 안에서 각종 민원 업무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종도에는 2017년 파라다이스시티와 올해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리조트가 문을 열어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7~9일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코리아′ 행사에는 관람객 7만1000여 명이 몰렸다. 
인천공항과 가까워 국제 마이스(전시·회의) 행사도 올해 31건 열렸다.(241122)



 

 

 

“여러분 박수 좀 주세요! 로봇이 마라톤을 완주하고 있습니다!” 
17일 오후 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 대회가 시작된 지 4시간 20분이 가까워질 무렵 상주시민운동장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결승전을 앞두고 마지막 코너를 도는 마라토너 사이에서 4족 보행 로봇 ‘라이보2′가 달리고 있었다. 
최종 기록은 4시간 19분 52초. 
로봇이 42.195km 일반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주한 것이다. ‘라이보2′에는 완주 메달도 걸렸다.


‘라이보2′는 카이스트(KAIST) 황보제민 교수 연구팀이 개발했다. 
로봇의 마라톤 완주는 도로 장애물을 피하고 주변 마라토너의 움직임을 감지하며 한 번 충전으로 40km 이상 달렸다는 의미다. 
연구팀 관계자는 “야간 경계, 험지 순찰, 배달 등 다양한 실용 분야에서 로봇의 기술이 한 단계 높아졌다”고 말했다.

 

 

<17일 경북 상주에서 열린 ‘상주 곶감 마라톤’에서 카이스트 연구팀이 개발한 4족 보행 로봇 ‘라이보2′가 다른 마라토너와 역주하고 있다. 
‘라이보2′는 42.195㎞를 4시간 19분 52초에 달려 세계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 로봇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몸통 앞뒤로 달린 2대의 카메라가 지형 지물을 감지하고, 방향은 근처에서 함께 달린 연구원이 무선으로 조종했다.>

 


상주 곶감 마라톤은 14km 지점과 28km 지점에 고도 50m 수준 언덕이 2회 반복되는 코스로,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도 난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행 로봇에게는 예상치 못한 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도전적인 과제였다. 
마라톤 코스는 주변에서 같이 달리는 연구원이 무선 장치로 명령을 내려 방향 전환을 지시했다. 
몸통 앞과 꼬리에 달린 2대의 카메라가 주변 지형 지물을 감지했다. 
또 관절에 달린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해 전력 소모량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4족 보행 로봇은 최근 모래, 얼음, 산지 등 다양한 지형에서 성능을 입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바퀴 기반 주행 로봇에 비해 주행 거리와 운용 시간이 짧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가상 환경에서 경사, 계단, 빙판길 등 다양한 환경을 갖춰 안정적 보행이 가능하도록 ‘라이보2′를 학습시켰다. 
특히 내리막길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베터리에 저장할 수 있도록 해 구동 시간을 늘렸다.

 

 




‘라이보2′도 마라톤 완주에 실패하며 쓴맛을 본 적이 있다. 
지난 지난 9월 ‘금산 인삼축제 마라톤 대회’에서 첫 도전에 나섰지만 37km 지점에서 배터리 방전으로 완주에 실패했다. 실험실 예상보다 10km 일찍 배터리가 소진된 것이다. 
연구진은 “실제 마라톤 코스에서 다른 주자들과 어울려 달리다 보니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감속과 가속을 자주 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이후 연구팀은 내부 구조를 개선해 배터리 용량을 33% 늘리는 등 기술적 보완에 주력했다. 
개선된 라이보2는 평지에서 직선으로 달릴 경우 최장 67km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지난 9월 KAIST의 4족보행 로봇 '라이보2'가 금산마라톤에서 뛰고 있다.>

 

한 번 충전으로 최장 8시간까지 달릴 수 있는 라이보 2의 ‘지구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경호 임무에 도입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인 사족 로봇과 달리 인공지능(AI)을 접목한 기술 덕분이다. 
라이보2 관련 논문의 공동 제1 저자인 이충인 박사는 “예를 들어 내리막길에서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베터리에 저장하는 기술은 AI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단순히 앞으로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바퀴와 달리 4족 보행이 가능한 동시에 에너지를 저장하게 만들려면 고도로 발달한 AI의 제어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4족 보행 로봇이 외부 부품이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제한적인 개선만 가능한 것과 달리 황보 교수 연구실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라이온로보틱스’와 공동 개발해 기구 설계부터 인공지능까지 모든 영역을 자체 개발하면서 종합적 발전이 가능했다. 
이 박사는 “마라톤 완주를 통해 도심 환경에서 라이보2가 안정적으로 배달, 순찰 같은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산악, 재난 환경에서도 세계 최고 보행 성능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241118)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는 언어나 운동 능력이 또래보다 늦는 발달 지연 아동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실손 보험으로 청구해 받으라”고 안내하고 있다. 
원래 발달 지연 치료는 소아과와 재활의학과, 정신과 등이 주로 맡는 분야다. 
이상하게 여긴 보험사가 현장 확인한 결과, 이 클리닉 운영에는 ‘브로커(중개인)’가 개입돼 있었다. 
의료 컨설팅을 하는 A 업체가 성형외과 원장에게 발달 클리닉 개설을 제안한 것이다.


A 업체와 성형외과는 “발달 클리닉 운영 매출액의 15%를 수수료 명목으로 A 업체에 지급하고 발달 클리닉 운영 전반을 A 업체에 일임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사실상 클리닉을 운영하는 A 업체는 학부모에게 과잉 진료를 권유하거나, 이미 호전된 아동이 불필요한 치료를 받도록 유도한다는 혐의를 받는다. 
또 고객 유치를 위해 환자를 소개한 이들에게 고액의 상품권을 제공하는 등 불법 환자 유인·알선 행위를 한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발달 지연 관련 실손 보험금은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브로커들이 이 영역이 돈이 된다고 생각해 점점 붙으며 생기는 문제”라고 했다.

 

 




실손 의료보험 누수 문제가 해마다 심각해지는 가운데 브로커들이 비급여를 보장해 주는 실손 보험의 허점을 파고들어 불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브로커란 의료 기관과 환자 사이에서 환자를 소개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중개인 등을 말한다. 
위 사례처럼 브로커들은 컨설팅이나 마케팅이라는 명분으로 의료 기관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한다.


브로커들이 노리는 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다. 
비급여는 필수 의료 위주의 급여 항목과는 달리 보건 당국의 관리를 거의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도수 치료나 비타민·영양 주사 비급여를 이용한 실손 보험 타먹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병원은 환자에게 비급여 치료를 권해 수익을 내고, 환자도 실손 보험으로 환급받으면 별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브로커까지 개입해서 실손 보험과 의료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예컨대, 브로커가 병원에서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환자를 모집해 오는 경우나 브로커가 의사 명의를 빌려 의료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피부 미용처럼 실손 보험에서 보상하지 않는 시술을 받은 후, 치료받은 것처럼 조작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도 브로커가 개입하는 사례가 많다. 
브로커들의 이런 행위는 보험 사기 방지 특별법, 의료법 등을 위반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로 처벌 대상이다.


최근 실손 보험 적자 원인이었던 백내장 수술 뒤에도 브로커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백내장 수술은 2022년 ‘입원이 불필요하다’는 대법원 판결로 과잉 진료가 어려워졌다.


보험업계에서는 “백내장 수술은 브로커들이 붙으면서 문제가 커졌는데, 이제 브로커들이 백내장 수술 분야를 넘어 다른 분야를 찾아 활개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서는 비급여 지급 보험금이 가파른 분야에서 브로커의 개입이 활발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발달 지연 과잉 의료 문제다. 발달 지연 관련 실손 보험금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전년 대비 41.8%, 28.9% 늘었다.


한방 병원이나 요양 병원 등도 브로커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한방 병원의 경우, 일부 보험 사기 브로커 조직이 실손 보험 보장이 안 되는 공진단 등을 처방받은 후 실손 보험에서 보상되는 항목으로 허위 청구하는 방식의 보험 사기 행위를 벌이고 있다.


브로커들이 의료 기관과 결탁해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부추기면서 실손 보험 누수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18일 본지가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메리츠화재)에서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실손 보험 지급 보험금은 4조8102억원으로 이 중 2조8392억원(59%)이 비급여로 나갔다.(241119)


 

 

 

내년에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자가 대폭 늘어나 전체 대학생의 75%가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전국 대학생 200만명 중 절반 정도가 받는데, 내년엔 1년 만에 50만명이 늘어 150만명이 받게 된다. 
국가장학금 총예산은 사상 처음 5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21일부터 ‘2025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대학생 국가장학금은 학생 가구의 소득(재산 포함)을 10구간으로 분류해 차등 지급한다. 
올해까지는 8구간 이하만 줬는데, 내년부턴 9구간 이하도 준다. 가장 소득이 높은 10구간을 제외하곤 9구간까지 모든 가구가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는 것이다. 
가장 소득이 적은 기초·차상위 가구는 등록금 전액을, 9구간은 100만원씩 받는다.


9구간의 월 소득 인정액은 1220만~1829만원(4인 가구 기준)이다. 
소득 인정액은 월 소득에다 부동산·차량 등 재산을 합해 환산한 금액으로, 국회예산정책처가 9구간의 월 소득 인정액을 통계청 소득 10분위(2023년 3분기)로 환산해보니 6~8분위(606만~806만원)에 속했다. 
월 소득 800만원이 넘는 가구 학생도 내년부터 연간 국가장학금 100만원을 받는 것이다. 
다자녀 가구 대학생에게 주는 장학금도 올해는 8구간 이하에 줬지만, 내년엔 9구간(최대 200만원)도 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펑크’가 심각한 상황에서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 결손분이 29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내년에도 세수 결손이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올 초 총선을 앞두고 ‘청년 지원’ 공약으로 내놓은 국가 장학금 확대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국가장학금 지원 구간을 8구간 이하에서 9구간 이하로 확대한 것은 대학생 자녀를 둔 중산층들의 국가장학금 체감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올해 국가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전체 대학생의 약 48%다. 둘 중 한 명은 지원을 아예 못 받는 셈이다. 
그간 대학생 사이에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인데도 아무 지원을 못 받는다”는 볼멘소리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세수 결손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원 대상을 갑작스레 50만명이나 늘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2025년도 예산안에서 내년 국가장학금 총예산으로 5조3134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4조7205억원에서 1년 만에 5929억원(12.5%)이 늘었다.


증액 예산 가운데 학자금 지원 대상을 기존 8구간 이하에서 9구간 이하로 확대해서 늘어난 부분이 3878억원이다. 나머지는 근로장학금 지원 대상 확대(1705억원), 대학생 주거비 지원 장학금 신설(344억원) 등 때문이다.


월 소득 800만원이 넘는 가정까지 국가에서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을 두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대학 취학률은 74.9%다. 4명 중 1명은 대학에 안 가는 상황에서 세금으로 대학에 가는 학생들만 폭넓게 지원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내년 장학금 지원 대상이 갑자기 급증한 것은 9구간에 그만큼 많은 가구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기존 지원 대상인 8구간 이하는 구간별 4만~17만명 정도인데, 9구간은 50만명에 달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교육계에선 “장학금 지원 대상을 9구간까지로 확대하려면 ‘구간 재설계’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그런 조치 없이 지원 대상만 확대해 버렸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도 최근 발간한 ‘2025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무분별한 국가장학금 확대가 불러올 문제를 지적했다. 
예정처는 “현행 9구간 범위가 넓어 과도한 재정 부담이 발생하고, 국가장학금은 지출 구조 조정이 어려운데 등록금 인상 등 단가 인상 유인이 있어 향후 예산 소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원 구간 재설계를 통해 정교한 지원을 도모하고, 급격한 재정 소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어렵게 확보한 대학 예산을 ‘포퓰리즘 정책’에 쓴다는 지적도 많다. 
교육부는 내년 고등교육 예산을 올해보다 1조802억원 늘어난 총 15조5574억원으로 편성했다. 
그런데 늘린 예산의 55%가 국가장학금에 투입됐다. 
대학 경쟁력 강화에 쓰일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예산 상당 부분이 장학금 증액에 투입된 것이다. 
한 수도권 사립대 총장은 “16년 넘게 ‘등록금 동결 정책’이 계속되면서 대학들 재정이 열악한데, 학생 등록금 지원에만 예산을 투입하는 게 맞느냐”면서 “정부가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등록금 동결’을 더 강요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이 비싸지면 정부의 국가 장학금 예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국가장학금 확대는 대학 입장에선 학생에게 받을 걸 세금으로 받는 것일 뿐, 수입에 변화가 전혀 없다”면서 “중국, 미국처럼 전반적인 대학 경쟁력 확대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241122)




 

 

 

라파엘 나달(38)이 23년 동안 누볐던 코트를 떠났다.


나달(세계 랭킹 154위)은 20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2024 데이비스컵 8강전에 스페인 대표팀 멤버로 출전했다. 
첫 단식 경기에 나선 그는 네덜란드 보틱 판더잔츠휠프(29·80위)에게 세트 점수 0대2(4-6 4-6)로 졌다.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 스페인을 4번 우승으로 이끌었던 나달이 이 대회 단식에서 패배한 것은 데뷔 무대였던 2004년 1라운드 이후 20년 만이었다. 데이비스컵 통산 단식 성적은 29승 2패.


스페인은 네덜란드에 1승 2패로 져 탈락했다. 
나달에 이어 2단식에 출전한 카를로스 알카라스(3위)가 승리했으나, 마지막 복식의 알카라스-마르셀 그라노예르스가 패배했다. 
나달은 동료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했으나 패색이 짙어지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데이비스컵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지난달 밝혔던 나달은 화려했던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기 후엔 코트에서 은퇴 행사가 열렸다. 
그는 “나는 꿈을 좇는 아이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꿈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 아이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광판엔 나달이 누렸던 영광의 순간들이 흘러갔다. 
세리나 윌리엄스, 앤디 머리, 노바크 조코비치, 로저 페더러(이상 테니스), 데이비드 베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상 축구) 등 스포츠계 스타들이 나달에게 찬사를 보내며 행운을 기원하는 영상 편지도 곁들여졌다. 
나달은 감회에 북받친 듯 눈가를 훔쳤다. 1만3000여 팬이 기립 박수로 작별 인사를 했다.


페더러(스위스)는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달에게 장문의 헌사를 띄우기도 했다. 
테니스 메이저 대회 통산 20승을 거뒀던 페더러는 “당신이 나를 이긴 적이 더 많았다. 클레이코트에선 당신의 뒷마당에 발을 디딘 것 같았다. 공이 라켓 끝에라도 맞기를 바라며 헤드의 사이즈를 바꾸기까지 했다”면서 “당신은 내가 테니스를 더 즐기게 했고, 스페인과 테니스계 전체를 자랑스럽게 했다”라고 말했다. 
페더러는 나달과 대결에선 16승 24패로 뒤졌다.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도 3승 6패로 밀렸다. 
페더러는 자신의 은퇴 경기였던 2022년 레이버컵에서 나달과 복식 조를 이뤘던 것을 회상하며 “당신은 라이벌이 아니라 파트너로 내 곁에 있었다. 내게 더없이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같은 코트에서 눈물을 나눈 것은 영원히 가장 특별한 순간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1986년 6월에 태어난 나달은 2005년 프랑스 오픈에서 처음 메이저 타이틀을 땄고, 2022년 프랑스 오픈까지 그랜드슬램(메이저) 단식에서 22번 우승했다. 
노바크 조코비치(37·세르비아)의 24회에 이어 역대 2위 기록이다. 
특히 나달은 프랑스 오픈에서만 14번 우승해 ‘클레이코트의 황제’로 불렸다. 
나달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회에서 단식 금메달을 걸며 앤드리 애거시(미국)에 이어 남자 선수로는 두 번째 ‘커리어 골든 슬램’을 달성했다. 
올해 조코비치가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따 세 번째 남자 골든 슬램 주인공이 됐다.


강한 체력, 빠른 발,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앞세웠던 나달은 30대 중반부터 여러 부상에 시달리며 내리막을 걸었다. 
지난 8월 파리 올림픽 이후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않다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이벤트 대회(식스 킹스 슬램)에 참가했는데, 알카라스와 조코비치에게 모두 0대2로 졌다. 
페더러에 이어 나달이 은퇴하면서 2000년대 세계 테니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빅 3′ 중에선 이제 조코비치만 남았다.(241121)



 

 

 

지난해 한국에 온 ‘이민자’ 증가율이 5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국 중 2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가 지난 14일 발표한 ‘국제이주전망 2024′에 따르면, 지난해 OECD 회원국에 이주한 사람은 650만명으로 2006년 집계 이후 사상 최다였다. 
미국이 118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국(74만명), 독일(69만명), 캐나다(47만명) 순이었다.


OECD의 ‘이민자’ 집계는 시민권·영주권 등을 얻어 해당 국가에 완전히 정착하는 영구 이민뿐 아니라 난민, 유학생, 단기 취업자까지 포괄한다. 
한국은 90일을 초과해 체류하는 등록 외국인 숫자를 매년 OECD에 보낸다. 
OECD 기준으로 지난해 한국에 온 ‘이민자’는 8만7100명. 2022년(5만7800명)보다 50.9% 늘어나 영국(52.9%)에 이어 둘째로 증가율이 높았다. 한국에 이어 호주(40%), 그리스(16%), 미국(13%) 순이었다.

 

 




한국의 증가율이 높았던 이유는 2022년부터 일손이 부족한 농어촌에서 짧게 일하고 귀국할 수 있는 계절 근로자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C-4 단기 비자 등의 각종 요건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사업장마다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을 종전 9명에서 12명으로 늘리고, 1개월 이상 일해야만 고용이 가능했던 요건도 1주일로 완화했다. 
정부 관계자는 “최장 3개월 체류 가능한 C-4 단기 비자, 8개월 머물 수 있는 E-8 장기 비자 발급자가 모두 늘었다”고 했다.


그 결과 한국의 근로 관련 ‘이민’은 2022년 5700명에서 2023년 1만2900명으로 전년 대비 129% 늘었다. 
정부는 올해부터 비전문 인력 취업 비자(E-9)를 기존 11만명에서 1만명 더 늘렸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취업 이민자가 증가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공부하러 온 외국인 유학생도 2013년 8만5923명에서 2023년 18만1842명으로 10년 새 111% 증가했다.


한류로 한국의 문화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외국인도 늘어나고 있고, 실제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총기 규제로 치안이 우수하고 음식도 맛있다” “대중교통이 첨단 과학 수준” 같은 ‘온라인 입소문’을 퍼뜨리면서 한국 이민의 인기도 올라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본지가 직접 만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은 한국의 장점으로 치안·교통·금융·의료·물가 등을 꼽았다.

 

 




한국에서 3년 차 영어 강사로 일하는 미국인 케이 시브라스(25)씨는 “의료 보험이 비싸 병원 갈 엄두도 못 내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싼 가격에 우수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며 “식료품도 뉴욕의 3분의 1 수준이고 외식도 부담이 없다. 한국은 의식주가 모두 우수한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했다. 
2011년부터 한국에서 사는 케냐인 필립 마카닝고(33)씨는 “내 고향과 달리 총기 사고도 없고, 소매치기 등 경범죄도 없어 살기 좋다”며 “항상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한국인들에게도 애정이 간다”고 했다. 
케냐는 각각 2015년과 2019년 대규모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했었다.


인터넷에도 한국을 극찬하는 게시물이 많다. 
한국에 거주하다 미국에 돌아왔다는 한 미국인은 “한국에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며 “한국 생활이 너무 그립다”고 했다. 
한 프랑스인은 “서울은 파리와 달리 밤거리를 걷다가 칼에 찔리거나 성폭행을 당할 걱정이 없는 곳”이라며 “서울에서 난생처음으로 밤거리를 마음대로 걸을 때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과 한류 열풍이 이민 증가세를 ‘쌍끌이’하고 있다”며 “저출산·고령화를 타개할 주요 대안으로서 이민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241120)

 


☞OECD의 ‘이민’ 집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6년부터 회원국 ‘이민’ 통계를 내고 있다. 
시민권·영주권을 받아 해당 국가에 완전히 정착하는 영구 이민뿐 아니라 난민이나 유학생, 단기 취업 외국인을 모두 포괄한다. 
한국 정부는 90일을 초과해 체류하는 ‘등록 외국인’ 숫자를 매년 OECD에 제출하고 있다.

 

 

 

일본 최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둘러싸고 7조엔(약 63조원)대 ‘쩐(錢)의 전쟁’이 불붙었다. 
캐나다의 유통 업체 알리멘타시옹 쿠시타르(ACT)가 세븐일레븐의 운영 업체인 세븐앤아이홀딩스에 인수를 제안하자, 이 회사의 창업자 가문이 비슷한 금액으로 주식 전부를 사겠다고 맞대응한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일본·미국·한국 등에서 8만4000개 점포를 가진 편의점이다. 시가총액은 약 6조3000억엔(약 56조8000억원)이다.


1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븐앤아이홀딩스 창업 가문의 자산 관리 회사인 이토흥업이 이 회사에 경영자 인수(MBO·Management Buyout)를 제안했다. 
주도하는 인물은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창업자 고(故) 이토 마사토시의 둘째 아들 이토 준로 부사장이다. 
경영자 인수는 회사의 경영진이 외부의 간섭을 줄이려는 의도로 회사 지분을 매수해 경영권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지분 8%를 보유한 창업 가문의 이토흥업은 공개 매수 방식으로 나머지 92%를 전량 인수해 비상장사로 전환하겠다고 제안했다. 매수 금액은 7조엔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본 최대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둘러싸고 7조엔(약 63조원)대 ‘쩐의 전쟁’이 붙었다. 
사진은 일본 도쿄에 있는 세븐일레븐 매장.>

 


창업 가문이 등장한 이유는 캐나다의 ACT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ACT는 지난 7월 세븐앤아이에 6조엔의 인수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했다. 
지난 9월 다시 인수 가격을 7조엔으로 높였으나, 세븐앤아이는 ‘독자 경영으로 2030년까지 매출을 30조엔까지 늘리겠다’며 재차 거절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인수 제안을 거부당한 ACT가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며 “주주 가운데는 (외국) 펀드가 적지 않아 세븐앤아이홀딩스로선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쿠시타르, 서클K와 같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ACT는 미국, 스웨덴 등 30국에서 1만700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편의점 시장의 점유율은 3.8%(점포수 기준)으로, 미국에서도 8.5%로 1위인 세븐앤아이에 이은 2위다. 
ACT가 인수에 성공하면 미국 1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점포 수 10만 개의 ‘메가 편의점 체인’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ACT는 2004년 이후로 74건에 달하는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며 급성장한 유통 기업이다.


세븐앤아이의 창업 가문은 ACT와 비슷하거나 좀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일본 언론에선 “7조엔보다 많은 9조엔대의 인수 규모를 제시했다는 설(說)도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창업 가문의 자산 관리 회사 이토흥업은 MUFJ, 미즈호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일본 시중은행 3곳에 대규모 융자를 요청했다. 
여기에 일본 2위 편의점인 패밀리마트를 운영하는 이토추상사에는 인수 참여를 요청했다.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가 자본으로 이어지면 일본 편의점 점포의 60%를 가진 거대 체인이 될 전망이다. 독과점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조엔대에 달하는 자금을 창업 가문 측에서 마련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투자 업계의 반응”이라고 보도했다.

 



매각을 결정할 세븐앤아이의 특별위원회는 “창업 가문과 캐나다 ACT의 제안은 물론이고, 매각 없는 독자 성장 전략 등을 모두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창업 가문이 ACT와 같은 금액을 써냈다고 무조건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이토 준로 부사장이 세븐앤아이의 경영진 중 한 명이긴 하지만, 최고경영자(CEO)는 아니다.


본래 미국 회사였던 세븐일레븐에서 일본 라이선스를 가져와, 1974년 도쿄에 점포를 연 인물이 이토 부사장의 아버지인 이토 마사토시 전 회장이다. 
1991년에는 세븐앤아이홀딩스가 미국 세븐일레븐을 인수했다. 
하지만 1992년 이토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2002년 장남인 이토 야스히사 전무는 회사를 떠났고 차남인 이토 준로도 경영에서 사실상 배제됐다가 2016년에야 주요 경영진의 한 명으로 복귀했다. 
세븐앤아이의 특별위원회를 좌우할 힘은 없는 것이다. 이토 준로 부사장은 현재 매각 관련한 경영 판단에선 배제된 상태다.


현재 세븐앤아이홀딩스의 주요 주주는 자산 관리 전문 신탁은행인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14.7%)과 일본카스터디은행(5%), 스테이트스트리트뱅크앤트러스트(2.8%) 등이다. 
실제 주식 소유주의 상당수가 외국 펀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241115)



 

 

 

올해 1~10월 비행기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간 여객 수가 2000만명을 돌파해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엔저 현상’으로 일본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까지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증가한 데다, 일본에서도 K뷰티나 K푸드 등을 찾아 한국으로 향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17일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올 1~10월 한국-일본 간 노선을 이용한 항공 승객은 2056만6186명으로 집계됐다. 
한국과 일본 양국을 출발·도착한 여객을 모두 합한 수치다. 작년 대비 33%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다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약 231만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엔저 효과로 한국인이 일본을 간 경우가 전체 여객의 80%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 21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카운터에서 여행객들이 수속을 위해 줄 서 있다.>

 


연간 기준으로도 올해 한일 항공 노선 이용객은 역대 최다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금까진 코로나 전이었던 지난 2018년의 2135만명이 최다였다. 
올해 월평균 200만명씩 양국을 오간 점을 감안하면 이달 중 이 기록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올 1~10월까지 한국의 국제선 여객 순위 ‘톱3′는 일본 나리타(도쿄)와 간사이(오사카), 후쿠오카 노선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 노선은 최근 수년간 항공사들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2019년 대대적으로 ‘일본 불매 운동’ 바람이 불었고, 이듬해부터는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수년간 적자가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엔저 현상이 이런 분위기를 뒤집었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엔저로 저렴한 여행과 쇼핑이 가능해지면서, 코로나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여행 수요가 일본으로 향한 것이다. 
아이폰 신제품이나 꼼데가르송·메종키츠네 의류, 위스키 등을 값싸게 구매하려는 쇼핑 수요도 대거 쏠렸다.


국내 항공사들도 발 빠르게 일본 주요 도시는 물론 마쓰야마·다카마쓰 등 소도시 노선을 속속 개설해 일본 여행 수요에 적극 대응했다. 
도쿄·오사카 같은 대도시에 다녀온 여행객을 겨냥해 소도시 여행으로 이끄는 ‘N차 여행’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제주항공·티웨이항공 등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일제히 경쟁에 뛰어들며 항공권 가격도 싸졌다.


항공 업계는 일본 여행을 가는 한국인뿐 아니라, 반대로 한국으로 오는 일본인들 역시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엔저 현상으로 해외 여행이 부담스럽지만, K뷰티와 K푸드 등 한류 경험을 원하는 현지의 일본인 역시 늘어난 한·일 노선을 타고 한국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LCC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일본 노선에서 일본인 승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안팎으로 히로시마 등 일부 노선은 5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본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가서 비행기를 타는 대신, 일단 한국으로 건너와서 인천국제공항을 경유해 제3국으로 향하는 환승객도 늘고 있다”고 했다.(241118)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요즘도 구인난에 시달린다.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해 힘을 싣겠다고까지 했지만, 정작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 공무원들은 파견을 꺼리기 때문이다. 
중앙 부처 과장급 공무원 A씨는 “저출산 고령화 업무는 일은 일대로 힘든데 당장 성과는 안 난다”며 “대통령이 언급한 인구부 신설도 기약 없이 힘이 빠져버린 마당에 누가 가려 하겠느냐”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10일 임기 반환점을 돈 가운데 최근 중앙 부처 공무원들의 사기 저하와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 안팎에 그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핵심 공약을 이행하는 부서에서도 ‘무사안일’ ‘방어주의’로 업무에 임하는 공무원이 늘었고, 이 때문에 공직 사회 전반의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업무량 많고 성과 내기 어려운 부처·TF(태스크포스) 파견은 기피 1순위다.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발표 이후 출범한 산업통상자원부 TF도 지원자가 없어 구성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세종시 관가에서 ‘유전 팠다가 안 나오면 감사당할 수 있다’ ‘정권 바뀌면 나중에 책잡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았고, 이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아예 업무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부서도 상당수다. 
본지가 지난 13일 오후 기재부·보건복지부·교육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환경부 등 주요 중앙 부처 7곳 중 대민(對民) 업무 비율이 높은 50과의 일반 전화로 걸어본 결과, 22곳(44%)만 전화를 받았고, 나머지 28곳(56%)은 연속 두 차례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기재부·복지부의 경우, 통화 시도 10번 중 7번(70%)은 연결이 안 됐다. 
한 국민의힘 보좌진은 “급히 부처에 문의할 게 있어서 전화해도 일반 전화로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연결이 안 된다”며 “전부터 이런 분위기가 없진 않았지만, 올해 총선 이후 연말로 갈수록 정부·여당 지지율이 점점 떨어지면서 업무 협조가 더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흔히 ‘승진 코스’라는 용산 대통령실 파견도 정부 출범 초기엔 선망 대상이었지만, 최근엔 기피처로 전락했다. 

중앙 부처 1급부터 사무관(5급)까지 용산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 파견을 꺼리는 상황이다.


중앙 부처 1급 간부 B씨는 올 초까지만 해도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가려고 애를 썼지만, 지난여름 이후 마음을 바꿨다. 
최근 부처 내에서 대통령실 파견 의향을 묻자 “허리도 안 좋고 불면증이 심하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고위직 공무원들이 ‘윤석열 정부 라인’으로 분류되는 것을 꺼려 몸을 사린다면, 4~5급은 과중한 업무 부담도 용산행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이다. 
서기관(4급) C씨는 “대통령실로 파견 가면 국회 출신 행정관들에게 치이면서 업무는 배 이상 늘어나고 가족과는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정권 바뀌면 찍힐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지금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벌써부터 부처 내에서 용산 파견은 금기어가 됐고, 파견 가는 직원은 ‘순장조’라 한다”고 했다.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비슷한 이유로 여당 파견도 꺼리는 분위기다. 
교육부 1급이 가는 국민의힘 수석 전문위원 자리도 두 달째 공석 상태다.


중앙 부처 국장급 D씨는 “요즘엔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 내리기도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좀 어렵거나 힘든 일을 지시하려고 했다가 ‘직장 내 갑질’로 신고당하는 경우도 봤고, 그것도 아니면 직원이 항의성으로 바로 병가·휴직을 내기도 한다”며 “관리자로선 본업무만 무탈하게 처리하는 게 우선이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밑에서도 원치 않는 만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서 핵심 공약 관련 정책·사업은 더욱 기피하는 분위기다. 
한 주요 부처 장관은 “정부 공약이자 부처 핵심 사업인데도 담당자가 전혀 의욕을 보이지 않아서 장관인 내가 직접 혼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는데,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며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결국 인사권 하나밖에 없어서 담당자를 교체했다”고 했다. 
다른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정부 공약 사업 담당 부서는 기피 대상이고, 정 보낼 사람이 없으면 해외 유학을 다녀온 이들에게 ‘누리고 왔으니 조금만 고생하라’며 떠맡기는 식”이라고 했다.


젊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업무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장·차관의 국회 일정에 따라나섰다가도 자신의 담당 업무와 관련한 국회의원 질의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먼저 퇴근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한 중앙 부처 과장급 E씨는 “한 달 전 휴가 결재를 받아놓은 직원이 있었고, 휴가 이틀 전 과에 큰 현안이 생겼다”며 “당연히 휴가를 미룰 줄 알았는데 휴가 전날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기에,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론 씁쓸했다”고 했다. 
추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업무 추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필수가 됐다. 
한 중앙 부처 국장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업무 지시가 내려오면 부처 실무진이 알아서 먼저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부터 살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다만 이런 변화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옹호론도 나온다. 
중앙 부처 사무관 F씨는 “공무원은 승진도 너무 오래 걸리고, 10년간 최저임금이 두 배가량 오를 동안 공무원 초과 근무 수당은 거의 그대로”라며 “그런데도 책임·의무·희생만 강조하면 똑똑한 인재들은 앞다퉈 공직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이 아닌 ‘더 많은 일’이 주어지는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공직 사회 일각에선 “대통령실·국회가 중앙 부처 공무원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무 지시나 업무 협조 요청이 과도할 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중앙 부처 공무원 G씨는 “최근엔 부처 홈페이지 등에 대통령 행보는 없고 장·차관 행보만 돋보이게 해놨다는 지적도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 극단적 여소야대 상황도 공무원들에겐 큰 부담이다. 
중앙 부처는 아니지만,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등과 관련해 야당의 표적이 된 방송통신위원회에선 최근 사무처 전체 직원의 35%가 직무 스트레스로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중앙 부처 과장급 H씨는 “요즘 국감 때 야당 의원실 요구를 보면 ‘부처 산하 공공 기관의 5년 치 회의 속기록을 모두 가져오라’는 식”이라며 “조금만 난색을 보여도 ‘국회를 무시하느냐’고 쏘아붙이니 난감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부패·공익제보센터를 만들어 공무원들로부터 ‘윤석열 정부 비리 의혹’을 수집한다고 밝혔다. 제보자에겐 법률 지원 등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공익제보자 권익보호위원장을 맡은 전현희 최고위원은 “레임덕을 방불케 하는 정권의 위기 상황에서 권력형 비리를 제보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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