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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앤디 워홀이 있다면 영국엔 피터 블레이크가 있다.
1967년 그 유명한 비틀스의 8집 앨범 재킷으로 센세이셔널한 명성을 얻은 그는 어느새 77세의 노화백이 되었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라 불리는 영국 문화의 전성기 중심에 있었던 피터 블레이크는 ‘영국 팝 아트의 대부’라 불릴 만큼 뚜렷한
업적을 남겼으며 2002년엔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1967년 그 유명한 비틀스의 8집 앨범 재킷으로 센세이셔널한 명성을 얻은 그는 어느새 77세의 노화백이 되었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앨범은 수많은 평론가들이 ‘대중음악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만큼 빼어난 명반이기도 하지만 독특한 재킷 커버 디자인으로도 꽤나
명성이 자자하다.
비틀스 멤버 4명을 포함해 칼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포크 가수 밥 딜런, 배우 메릴린 먼로, 오스카 와일드, 에드거 앨런 포와 같은 작가들,
심리학자 칼 융 등 문학•예술•철학계의 유명 인사 60여 명을 가상 로큰롤 밴드의 ‘관객’으로 등장시킨 커버 디자인은 신선한 시도와
대담한 소재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전 세계적으로 3천2백만 장이 넘는 경이적인 누적 판매고를 자랑하는 비틀스 8집 앨범의 커버 디자인을 맡은 인물은
영국 출신의 팝 아티스트이자 화가인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
당시 35세의 젊은 작가였던 그는 세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이후 오아시스, 로비 윌리엄스 등 쟁쟁한 음악인들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비틀스 8집 하나만 놓고 봐도 인세를 받았다면 금세 돈방석에 앉지 않았을까 싶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2백파운드에 판권을 넘기는
안타까운(?) 계약을 해버렸다.
인세로는 단 한 푼도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나 그는 어느새 77세의 노화백이 됐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채롭고 영양가 높은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연륜 깊은 노화백과 담소를 나누는 건 드물게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런던 해머 스미스에 자리한 그의 2층짜리 스튜디오는 다닥다닥 붙은 작은 방마다 책, 포스터, 마네킹, 가면 등 온갖 소장품과 흥미로운 작품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났다.
뜰이 내다보이는 부엌이 딸린 아담한 방에서 손수 홍차를 타면서 ‘2백파운드 에피소드’부터 차근히 들려주는 백발의 피터 블레이크는
마치 은퇴한 뒤 조용히 갤러리를 운영하는 산타클로스 같았다.
아마도 인세 계약을 체결했다거나 저작권에 대한 고려가 어떤 식으로든 반영됐다면 지금쯤 난 억만장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하하.
그런데 당시 비틀스의 기획사는 그래픽 디자인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결코 쉽진 않았죠. 지금으로부터 2년 전까지만 해도 8집 앨범 커버의 도안을 따로 찍어내는 일도 절대 허용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딱 한 번뿐이었고 요즘에는 그렇지 않아요.”
그가 또다시 푸대접을 받았을 리는 만무하다.
60년대 초부터 이미 제법 유명세를 탔던 그는 비틀스의 앨범을 계기로 ‘스타’가 된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영국 팝 아트의 대부’로 불릴 만큼
뚜렷한 업적을 남겼으며 2002년엔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스스로를 빗대 ‘나무’라고 표현한 적이 있듯이 그의 작품 세계엔 회화, 조각, 판화, 콜라주 등 실로 다양한 분야가 반영되었고
음악인들과의 작업은 수많은 시도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비틀스 앨범 작업도 흥미로웠어요. 원래 사이키델릭한 느낌의 커버 디자인을 제작했지만 새로운 걸 추구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바람에
내가 다시 맡았죠.
우린 앨범 커버를 장식할 인물을 선택하고 실물 크기 모형도 만들었습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적극적이었고, 힌두교에 관심이 많았던 조지 해리슨은 인도 인사들을 골랐는데, 링고 스타는 그의 성격답게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죠. 잘 알려진 얘기지만 히틀러와 간디, 예수는 원래 목록에 있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아 뺐습니다.”
내 맘에 꼭 드는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최근 그의 음악은 조지 거슈윈처럼 고전적인 느낌이 묻어나는데 그것도 멋지죠.”
공공연히 ‘열성 팬’임을 자처한 덕에 실제로 그는 브라이언 윌슨의 <게팅 인 오버 마이 헤드(Getting’ in over My Head, 2004년)>앨범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비치 보이스를 차치하더라도 그는 1950~60년대 미국 대중문화를 자신의 예술 세계로 적극 끌어들인 대표적인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 접어들자 영국에선 미국의 소비 문화가 젊은 세대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영화, 광고, 자동차, SF 등을 소재로
한 팝 아트가 태동했다.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라 불리는 영국 문화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중심에 있던 피터 블레이크는 엘비스 프레슬리, 메릴린 먼로, 제임스 딘 등 당대를 주름잡은 미국 대중문화 아이콘, 그리고 성냥갑, 레슬링 등
일상적 소재를 ‘팝’적인 느낌으로 담아낸 작품을 쏟아냈다.
“미국에 앤디 워홀이 있다면 영국엔 피터 블레이크가 있다” 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피터 블레이크가 처음으로 팝 아티스트로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영국의 공영방송 BBC 덕분이었다.
1961년 그가 동료 작가들과 함께 등장한 다큐멘터리 영화 <팝 고우즈 더 이즐(Pop Goes the Easel)>이 BBC에서 방송된 덕에 팝 아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폭된 것이다.
그에게 1961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해였다.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재스퍼 존스의 작품을 모방해 ‘예술계의 독창성에 대한 강박’을 빗댄 화제작 <퍼스트 리얼 타깃(The First Real Target)>이 바로 이 해에 선보였다.
그는 또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이 담긴 잡지를 든 채 서 있는 젊은 날의 자화상으로 <존 무어스 컨템포러리 아트> 전시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안타까운 향수의 미학
“괴짜지만 순수하고 정직한 단순함이 돋보이며, 약간 수줍음을 타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거의 어린아이와도 같은….”
2003년 피터 블레이크에 대한 책 <PB>를 펴낸 나탈리 러드는 그의 됨됨이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런 면모를 반영하듯 그의 작품은 꾸밈이 없는 게 특징이다. ‘냉소’나 ‘충돌’ 같은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의 취향을 숨기거나 비틀지 않고 솔직하게 경의를 표했다.
블레이크를 비롯한 영국의 1세대 팝 아티스트들이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 미국 작가들에 비해 보다 사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강하게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블레이크는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은 아픈 기억의 파편과 그 때문에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 섞인 그리움을 다수의 작품에 진지하게
담아냈다.
과거의 자아에 대한 추억인 동시에 직접 겪지도 못했고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에 대한 다소 역설적인 향수(nostalgia)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건조한 시선, 무표정한 얼굴이 인상적인 <만화를 읽는 어린이들(Children Reading Comics, 1954)>,
<에이비시 마이너(ABC Minors, 1955)> 등의 작품이 좋은 예다.
평론가들은 승전국인 미국과 달리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불안,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 등으로 혼란했던 영국 사회에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렇다. “전쟁은 잔인하게도 어린 시절을 앗아갔습니다. 난 겨우 예닐곱 살에 부모와 떨어져서 성장했어요.
어찌 보면 난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작품을 통해 재창조한 것이죠.”
언뜻 보면 콜라주 같지만 알고 보면 정교한 채색 작품인 그의 유명한 대표작 <발코니에서(On the Balcony, 1955~1957)> 역시 유년기의
자아에 대한 아릿한 마음이 느껴진다.
어린이 4명이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 미국 대중 잡지 <라이프> 표지 등 제각기 다른 이미지와 어우러져 있고 배경엔 청량음료, 통조림,
신문 등 시사적인 흐름을 반영하는 일상적 소비재들이 깔려 있다.
그림 한 장으로 전공을 바꾼 그래픽디자인학도 블레이크의 대중문화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려는 실험정신은 아마도 그의 배경과 관련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평범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영화를 몹시도 사랑했던 간호사 출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대중문화에 적극 노출됐다.
전쟁을 계기로 지인의 집에 맡겨져 부모와 떨어져 지냈던 그는 우연히 런던의 한 예술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어릴 땐 예술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며 “어떤 것을 전공하고 싶느냐고 묻기에 ‘회화’라고 말했지만 웬걸,
그래픽디자인을 하라고 권유하더라”고 웃음을 띠며 회상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도안과 서체 등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정작 왕립예술대학(RCA)에 들어갈 땐 ‘회화 전공’으로 입학했다.
“의외였어요. 사실 그래픽을 공부했기 때문에 회화는 단 1장만 제출했거든요.”
게다가 그는 바로 2년 동안 공군에서 근무(전후 당시의 의무) 하기 위해 떠나야 했기 때문에 정작 회화 공부를 시작했을 땐 ‘백지 상태’였다고 회고한다.
1956년 우등으로 RCA를 졸업한 그는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돌며 수학할 수 있는 기회까지 잡았다.
“내가 다양성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마도 우연찮게 디자인과 회화를 다 접하게 된 배경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예술계에 입문한 전후 세대라는 요소도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혼돈의 시기에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졌거든요. 문화의 충격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가치관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요. 나는 그런 문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회화적으로 소화한 것인 셈이죠.
그게 바로 팝 아트가 되었지요.” 이러한 배경 때문에 그는 화가이자 디자이너로 왕립미술원(Royal Academy)과 산업디자이너들의 단체인 RDI에 각각 이름을 올리는 독특한 이력까지 갖게 됐다.
만년을 즐기는 거장 미소
1969년 런던을 떠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바스로 이동한 블레이크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영국 시골의 경치를 비롯해 문학, 민속 등 영국의 전통을 기반으로 전원주의적 작품을 선보인 것.
1975년에는 ‘브러더후드 오브 루럴리스트(Brotherhood of Ruralists)’라는 전원주의 화가들의 단체를 창설하기도 한다.
1980년대부터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본연의 대중문화적 관심을 유쾌한 유머로 버무린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 <만남 – 안녕하시오, 호크니 선생(1981~1983)>이나 <마돈나 온 베니스 비치(1996)> 등은 이런 면모를 잘 드러낸다.
1997년, 65세가 된 그는 ‘깜짝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예술계를 떠나겠다는 게 아니라 ‘개념적’이고 ‘형식적’인 은퇴 선언으로 다분히 그다운 장난기가 어린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당시 런던과 맨체스터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던 그는 영국 근로자들이 정년퇴직할 나이인 65세를 맞이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그는 “그건 예술의 추잡한 속성, 다시 말해 질투, 욕망, 허욕 등과 결별하고 순수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활동을 펼쳐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2년 전부터 작가로서 ‘만년(late period)’에 돌입했다고 스스로 선을 그은 블레이크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스튜디오에서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20주년을 맞이한 제일모직의 빈폴(Bean Pole) 브랜드를 위한 판화 작업도 맡았다.
그는 ‘자전거를 탄 신사’로 응축되는 빈폴 로고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적인 느낌이 짙은 자전거를 응용한 판화 10점을 선보였고,
이는 실제 상품에도 반영됐다. 사실 그에게 자전거는 즐거운 추억인 동시에 악몽과도 같은 대상이다.
10대 시절, 그는 동 세대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전거에 몰두했는데, 아직도 얼굴에 상처가 남아 있을 만큼 끔찍한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도 그 나이에 사고를 당해 진로를 바꿨다지만 내게도 이혼, 부모님의 죽음과 더불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사건 중 하나였다”고 설명하며 “하지만 인생은 흘러가는 법”이라고 읊조렸다.
만년에 예술 활동을 유유히 만끽하는 동시에 자신이 다녔던 RCA에서 수학하고 있는 미술학도인 어린 딸을 지켜보는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블레이크.
딸의 실크 스크린 작품을 꺼내 보여주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노화백의 천진한 미소가 부디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하는 건 비단 그를 사랑하는 영국인들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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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당대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꼽히는 조너선 반브룩은정적인 서체 디자인에 고전미와 현대미가 조화를 이룬 생명력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맥락이 살아 숨 쉬는 역동성을 불어넣은 창조적 반골이다.
문화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팬들은 반브룩을 ‘행동하는 젊은 양심’이라 부른다.
예쁘장한 치즈케이크의 포장지, 고풍스러운 호텔의 로고, 서사적이면서 역동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게임 타이틀 등에 사용된 간결하면서도
특색 있는 글씨체.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글꼴을 꼽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메이슨(Mason)’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서체 중 하나다.
일반인들에게는 주로 ‘불법 복제’라는 형태로 애용돼왔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리스의 건축 양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필사체에서 영감을 받아 고안했다는 메이슨은 ‘석공’이라는 뜻의 영문 동음어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하면 쉽게 납득이 가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웃지 못할 사연이 따로 있다.
1990년대 초 이 서체를 만든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조너선 반브룩(Jonathan Barnbrook)은 원래 미국의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을 본떠
‘맨슨(Mans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 디자인을 의뢰한 에미그레라는 회사는 지나치게 파격적이라 생각했는지 임의대로 ‘메이슨’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이에 상처받은 반브룩은 다른 이의 압력 없이 자신의 서체를 제작하고 보급하기 위해 직접 회사를 차렸다.
이것이 바로 1997년 ‘바이러스 제조 공장(Virus Foundry)’이라는 스튜디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디자이너이자 문화 활동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반브룩을 런던의 중심가 소호에 자리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나봤다.
서체에 정치사회적 숨결을 불어넣은 이단아
“제 스튜디오 이름은 서체도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확산될 수 있고 파괴력이 있다는 유사성을 염두에 두고 지었죠.
AIDS, 정치적 혼란 등의 의미도 내포돼 있답니다.” ‘이단적’, 혹은 ‘반미학적’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인물인 만큼 재기발랄하거나
반항기 넘치는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예상과 딴판이다.
차분한 말씨와 조용한 분위기가 ‘은둔형 샌님’을 연상케했다. 그의 스튜디오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소박했다.
아니, 이름값을 생각하면 허름한 쪽에 가까웠다.
흔히 ‘폰트(font)’라고 불리는 서체 디자인은 ‘메이슨 사건’을 계기로 반브룩을 꽤나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그의 주업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폰트는 불법으로 이용되는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요. 거의 30종을 개발했을 정도로 폰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서체 디자인은 제 ‘밥벌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만족을 주는 의미 있는 작업이지요. 폰트엔 뭐랄까, 시대의 실험적인 정신이 배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변화상이 드러나죠.”
본디 서체 디자인은 정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반브룩표’ 글꼴엔 정치사회적인 관점이 녹아 있다.
맨슨을 비롯해 ‘배스터드(bastard)’와 같은 욕설, ‘프로작(Prozac)’과 같은 우울증 약 이름을 딴 것도 있을 만큼 반브룩은 범상치 않은 명칭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 역시 그의 정치 사회적 성향과 무관치 않다. 세태를 관찰하다 떠오르는 영감을 서체에 담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그의 디자인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미로운 맥락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도 출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글로벌 무대를 누비다
그의 튀는 감각은 서체뿐 아니라 광고, 포스터, 책, 기업 이미지(CI), 영상 등 다양한 영역의 상업적 그래픽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사치갤러리(영국), 모리미술관(일본), LA현대미술관(미국)등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 데이비드 보위의<히든(Heathen, 2002)>과 <리얼리티(Reality, 2003)>CD 앨범 작업도 맡았다.
기네스(흑맥주), 마쯔다(자동차), 고든 진(술) 등을 위한 쟁쟁한 광고 캠페인에도 그의 손길이 스쳐갔다.
일본 기업과는잡지와 직물,시계 디자인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특히 영국 미술계의 기린아 데미언 허스트와 함께 한 책 디자인 작업은 그를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놓았다.
긴 제목이 인상적인 허스트의 1997년도 작품집<IWanttoSpendtheRest of My Life Everywhere, with Everyone, one to one, Always, Forever, Now>는 둘이 함께 빚어낸 공식적인 첫 창작물. 뉴욕아트디렉터스클럽의 최고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반브룩과 허스트의 인연은 2000년 뉴욕 가고시안갤러리에서 열린 허스트의 전시회<Theories, Methods Models, Approaches, Results and Findings>에서도 이어졌다.
반브룩은 이 전시회의 초청장, 포스터 등 각종 인쇄물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이어 2001년엔 사치갤러리 주도로 기획한, 허스트에 대한 책 디자인도 했다.
허스트가현대 사회의 공포와 불안을 엽기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만큼 둘의 궁합이 잘 맞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줄곧 비양심적인 대기업과 브랜드를 비판해 온 그로서는 자신의 이름이디자인 세계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게 다소 껄끄럽다.
“전 지명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일한 적은 없습니다. 유명세는 제가 성취한 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겠죠.
데미언 허스트와 작업한 것도 그의 작품과 철학 세계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않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정당하게 평가해주길 원하는 마음과 유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묘하게 교차할 수 있다.
확실한 건 그가 싫어하는 단어목록엔 ‘대기업, 브랜드, 자본주의’ 등이 올라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성향을 뒷받침하는 비영리적 활동에 ‘생계형’ 디자인 작업 못지 않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소비 중독으로 몰아가는 세태를 비판하는 문화 운동 네트워크이자 잡지인 <애드버스터(Adbuster)>와 협력해 비상업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부정을 풍자하는 각종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2004년 서울에서 세계화의 병폐, 브랜드 숭배, 북한 문제 등 시대의 모순에 대해 통렬한 일침을 가한 <내일의 진실>이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오늘의 이단은 내일의 진실(Today’s heresy becomes tomorrow’s truth)”라는 문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버날(banal)’을 결합해 ‘세계화란 모든 걸 평범하게 만든다’는 시각을 담은 영상물 ‘글로버날라이제이션(globanalization),
KFC의 샌더스 대령을 북한의 지도자로 대체한 그래픽 등 재치와 유머가 섞인 그의 작품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자신감 없는 빈민층 소년이 꽃피운 재능
반브룩이 이처럼 남다르게 정치사회적 의식을갖고 행동하는 디자이너가 된 데에는 그의 성장 과정도 한몫했다.
잉글랜드 중남부의루턴(Luton)이란 도시에서 자란 그는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눈을 떴다.
그의 어머니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는데 육아에 힘쓸 시간이 별로 없었다.
세상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잘 몰랐던 그는 내성적인 데다자신감이 부족하고 몹시 심각한 편이었다.
비록 영국 예술계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세인트 센트럴마틴과 왕립예술대학(RCA)을 졸업했고 재학 시절에 주목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좌절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성격 문제가 컸어요.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낄 정도로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면접에서 자꾸떨어졌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일을 하면서 그런 면에서 많이 나아졌어요. 커뮤니케이션은 일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더군요.”
그런데 애초에 예술적 재능은 어떻게 키웠을까?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림 그리기에관심을 가진 건 일곱 살 때인가, 아주 어릴 때예요. 재능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공장 근로자였지만 예술적 기질이 다분하셨죠. 제 과제물이 형편없는 걸용납하지 못한 어머닌 가끔 숙제도 대신 해주셨어요.
저소득층 가정 출신이라 학교는다 공짜로 다녔죠. 운이 좋았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단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는게 훨씬 나았으니까요.”
자신의 모순에 대해서조차 솔직담백한 영혼의 소유자
어쨌거나 그는 이미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그에게 일거리를 주는 ‘고객’은 영리 목적의 기업이 많다.
저소득층자녀를 배려하는 교육제도에 일차적인 수혜를 입었지만,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상업 프로젝트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반 자본주의, 반 브랜드를 외친다는게 다소 모순적이라는 시각에서 그도 자유롭진 않다.
하나 그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런던은 내가 성장한 루턴에서 약4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현실적인 환경에선) 수백만km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젠 나 자신이 노동력을 지배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는 데다 돈이 어떻게 흘러 다니는지 보노라면 화가 나기도 한다.”
자신은 디자인이라는 탈출구를 찾았지만이 세상엔 온갖 제약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느끼는 분노다.
“위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겠죠”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적어도 ‘행동하는 양심’인 것이다. 그리고 ‘돈이 안 되는 것’에도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아무리 스케일이 큰 일이라도 자신의 신념과 부합되지 않으면 과감히 거절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일례로 그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을 사용해왔다는 이유로 코카콜라의 프로젝트 제의를 퇴짜 놓은 일화는 업계에서 꽤 화제가 됐다.
행동하는 젊은 양심, 진화하는 세상을 꿈꾼다
“유토피아엔 장벽이 필요 없다(Real utopias don’t need walls)!” ‘디자인계의 아나키스트’라고도 불리는 반브룩은 자신의 전시회에서
이런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인간에게 보다 완벽한 세상을 바란다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그리고 정치가도 권력자도 아닌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좋은 인간, 좋은 디자이너로서 진화하는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할 따름이다.
“사실 간호사가 될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하지만 디자이너로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반브룩이라는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매개체는 역시 서체가 아닐까 싶다.
언뜻 들으면 도발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얼굴을 보면 인상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제된 열정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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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고성연 기자 / 2010년 2월 vol.39
넓혀가는 디자이너는 흔치 않다.
의자로 대표되는 그의 디자인 세계는 첨단 디지털 기기부터 가전은 물론 주방 소품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채로운 편이다.
삼성전자와의 작업 덕에 한국이 무척 친숙하다는 모리슨과의 인터뷰는 영국인 특유의 자조적 유머가 가미된 그의 명쾌한 언변으로
인터뷰 내내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유쾌함을 자아냈다.
재스퍼 모리슨(50)은 어떨 땐 ‘참 수수하다’ 싶을 정도로 극도로 절제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다.
의자든 그릇이든 냉장고든 그의 디자인에선 기교 어린 장식이나 무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는 그의 디자인을 놓고 ‘심심하다’는 둥 ‘평범하다’는 둥 비판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회의론자들보다는 ‘재스퍼 모리슨표’ 디자인에 오랜 연정을 품어온 추종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의 팬들이 주장하듯 언뜻 보기엔 소박하지만 매일 마주해도 질리지 않은 순도 높은 정겨움과 우아한 단순미를 표출해내는 건 결코 녹록한 경지가 아니다.
그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라면 바로 ‘슈퍼 노멀(Super Normal)’에 근접하는 수준일 터다.
‘평범 속의 비범’을 뜻하는 슈퍼 노멀은 모리슨이 자신의 친구이자 명성 높은 일본의 산업디자이너 후쿠사와 나오토와 함께 설파해온 개념이다.
의도적인 외형상의 화려함을 배제하고 형태와 기능, 감수성의 삼박자를 균형 있게 갖춰 일상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디자인을 지향하자는 데
뜻을 모은 이들은 2006년 도쿄와 런던에서 <슈퍼 노멀>전(展)을 공동 개최했고 동일한 제하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한국에도 최근 번역서가 출간됐다).
모리슨에게 직접 설명해 달라고 하니 “동시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준 건 기쁘지만 사실 슈퍼 노멀은 이미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며 “우리가 한 일은 이름을 붙인 것뿐”이란다.
최근 런던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떠오른 북동부 해크니에 자리 잡은 그의 스튜디오는 ‘주인’의 디자인을 닮아서인지 정갈하고 세련된데다
편안한 느낌이 묻어났다.
그야말로 ‘슈퍼 노멀’의 강력한 지지자답다고나 할까. 하나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그가 디자인한 작품들을 볼 때) 공간의 고아한 품격보다는
그 공간을 소유한 인물이 선사하는 즐거움이 훨씬 컸다.
조용하고 느릿한 말투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모리슨은 좋고 싫음이 분명해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한(물론 인터뷰하는 입장에서는 기꺼운) 대상이었다.
영국인 특유의 자조적 유머가 가미된 그의 명쾌한 언변은 인터뷰 내내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유쾌함을 자아내는 효과를 빚어냈다.
결함까지도 용서하게 만드는 디자인의 힘
재스퍼 모리슨의 작품 가운데 현재는 시판되고 있지 않지만 한때 열성 팬을 양산했던 가전제품이
하나 있다.
바로 2003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독일 로벤타(Rowenta) 브랜드의 전기 주전자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세련된 담백함’이 주 무기인 이 제품은 흰색과 은회색의 조화와 깔끔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문제는 이 주전자가 제조상의 결점 때문인지 자주 고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젠 시중에선 볼 수 없는 제품인 만큼 그의 심정이 못내 궁금했다.
다소 껄끄러운 질문이었을 텐데도 그는 “누가 잘못했든 제조업체도, 우리 스튜디오도 불평을 많이 받았던 게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답하며
“그런데 답답하게도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잦은 고장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제품은 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기를 끌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제품은 그리 흔치 않다.
모리슨이 디자인한 주전자의 경우 고장이 나도 돈을 내고 다시 구매하거나 애정을 갖고 꾸준히 문의하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그는 “그것도 맞다”며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디자이너 본인만큼은 아니겠지만 제품 생산이 중단된 뒤에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디자인만큼은 엄청난 매력을 발산했다는 얘기다. 그 매력에 사로잡힌 이들 중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은 2005년 밀라노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이 주전자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와 함께 일하게 된 모리슨은 장식적 요소를 과감히 생략하는 그의 색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양문형 냉장고와 휴대폰을 선보였다.
유럽의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냉장고는 일본 최고 권위의 디자인 공모전 ‘굿 디자인 어워드 2007’에서 금상을 받았다.
이 같은 인연 덕분에 그에겐 한국이란 나라가 낯설지 않다.
그는 “삼성과 진행한 휴대폰과 냉장고 프로젝트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서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서울에 대한 기억이 굉장히 좋아
지금도 꽤나 그리워할 정도”라고 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의자와의 인연
그의 디자인 세계는 휴대폰과 같은 첨단 디지털 기기부터 가전은 물론 주방 소품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채로운 편이다.
그래도 ‘재스퍼 모리슨’이라고 하면 역시 의자를 빼놓을 수는 없을 듯하다.
의자는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친 그의 디자인 행보 속에 가장 뚜렷한 자취를 남긴 품목이다.
1980년대엔 플라이우드 체어(Plywood Chair), 1990년대엔 에어 체어(Air Chair)와 로패드 체어(Low-pad Chair), 2000년대 들어서는 폴딩 에어체어(Folding Air-Chair)와 코르크 패밀리(Cork Family)….
영국의 디자인 박물관에서 선정한 ‘세기의 의자들(A Century of Chairs)’ 목록을 보면 모리슨의 작품이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등장할 정도로 그는 의자 디자인에서 탄탄한 아성을 구축해왔다.
2004년 스위스의 가구 브랜드 비트라(Vitra)와 손잡고 내놓은 코르크 패밀리의 경우엔 재미난 탄생 일화도 있다.
포도주 사업자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코르코 마개 대신 플라스틱이나 금속 마개를 선택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코르크를 소재로 삼기로 한 것이다.
소재의 기능성과 질감을 위해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폴리프로필렌을 재료로 사용해온 그이기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 선택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플라스틱으로 의자를 만들 때 나무보다 에너지가 적게 든다”고 설명하며 “핵심은 어떤 소재를 택하든 수명이 길어야 한다는 점”이라 했다.
“어떤 재료가 환경을 위해 최적인지 선뜻 결정하긴 곤란해요. 하나 30년 뒤에도 쓸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건 아주 중요하죠.”
모리슨은 의자에 대한 ‘의지와 정열’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내게 의자를 디자인하는 건 이미 습관과도 같은 일이지요. 일간지에 나오는 십자 말풀이를 매일같이 하는 거랑 비슷해요.
산업디자이너로서 훌륭한 의자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난 그 일상적인 작업을 진심으로 즐깁니다.
물론 의자만 디자인해야 한다면 정말 지겹겠지만.”
그가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의자 중 하나는 덴마크 출신 한스 베그너의 1950년대 작품 CH-24.
알파벳 ‘Y’를 연상케 하는 등받이의 모양새 때문에 일명 ‘Y 체어’라고 불리는 의자로 역시 간결한 우아함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갖췄다.
할아버지의 거실에서 싹튼 단순미에 대한 매혹
도대체 그는 언제부터 단순함의 미학에 매료됐을까?
초기 작품부터 미니멀리즘과 실용주의에 입각한 그의 디자인 성향은 한 번도 비뚤어지지도 않고 줄곧 일관성을 띠어왔다.
“복잡하면 쓸모가 없어지는 게 많지 않나요?”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와 함께 이렇게 반문하며 “사실 디자인에 대해선 어린 시절 실용적인 단순미가 돋보이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꾸민 할아버지의 거실을 보기 전까지는 별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채광 효과를 고려해 설계된 그 거실에는 현대적인 느낌의 나무 소재 가구가 하얀 카펫 위에 놓여 있었는데, 빛이 들어오면 정말 아름다웠죠.
당시 영국에선 그런 인테리어가 흔치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꿈꾸지는 않았다.
게다가 특별히 재능이 있다고 여겨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어릴 때 학교에서 예술 분야에 소질을 드러낸 기억은 전혀 없어요.
조각과 그래픽 디자인을 즐기긴 했지만.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중대한 계기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디자인 공부를 하는 사촌의 작품을 보고 흥미를 느낀 것,
그리고 또 하나는 16세 때 런던 사우스켄싱턴에 있는 빅토리아 & 앨버트에서 열린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1878~1976: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의 전시회를 보고 반했기 때문이죠.”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일린 그레이의 작품을 보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발견했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그리하여 그는 킹스턴의 폴리테크닉 디자인 스쿨과 왕립예술학교(RCA)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공부를 하고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의 외가 쪽 인척(정확히 말하자면 모리슨의 이모가 영국 리빙업계의 ‘큰손’ 콘란 경의 전처였다.)이었던 테렌스 콘란 경조차도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그는 “테렌스 이모부가 ‘우리 집안에 또 다른 디자이너는 바라지 않는다(Not another designer in the family)’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며 “부모님도 결국에는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지만 가구를 스케치하면서 생활을 유지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지 우려해 처음엔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문화적 시야와 호기심 어린 관찰이 창조성의 바탕
다행히 그에겐 풍부한 문화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자산이 있었다.
‘런던 토박이’지만 어릴 적부터 해외 경험을 풍부하게 한 편이라 일찍이 시야가 트인 것이다.
“네 살 때인가, 아버지가 전근 가시는 바람에 가족이 모두 뉴욕으로 떠났는데, 당시 우린 거의 5일 정도 걸려 배를 타고 갔어요.
상당히 근사한 방식으로 뉴욕이란 도시에 첫인사를 한 거죠. 허드슨 강가에 있는 석조 주택에서 몇 년간 살았어요.
어린 시절, 이동이 잦고 바쁜 아버지 때문에 학교를 자주 옮겨 다녔는데, 그 때문에 아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내게 세상은 광활하기보다는 오히려 작고 친근하게 느껴졌죠.”
게다가 그는 대학원(RCA) 시절 베를린에서 장학금을 받고 수학하며 다문화적 시야를 보다 더 넓히는 기회도 가졌다.
졸업한 뒤 1986년 런던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린 그는 독일의 세계적인 미술 행사인 카셀 도큐멘타 전시회에서 로이터 뉴스센터를 디자인하는 작업으로 인정을 받으며 국제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독일의 문 손잡이 제조사인 FSB을 비롯, 하노버의 새로운 도시 교통 시스템인 위스트라(Ustra)에 참여해 버스 정류장 설계 컨설팅(1994)을 하고 하노버의 트램 디자인 프로젝트(1995)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독일과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카펠리니, 마지스, 플로스, 알레시 등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명품 가구업체들과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그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시기에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을 즐기지 못한 건 당연한 후유증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처럼 심각한 슬럼프를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은인’을 만났다.
그 인물은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거목이자 RCA의 명예교수를 지내기도 했던 비코 마지스트레티(Vico Magistretti, 1920~2006).
그는 어느 날 비행기에 오르는 계단 위에서 모리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 아나? 우리는 정말로 행운아들일세. 이처럼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지.”
창조적 결과물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지스트레티의 조언에 영향을 받아 그는 언제나 디자인 작업을 진지하게 대하면서도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비교적 젊을 때부터 주목을 받고 성공을 이룬 이들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흔히 그러듯이 모리슨도 작품에 대한 압박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나 보다.
그는 창의력이 남다르게 뛰어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 지가 불과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젠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영감이 떠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돼 한결 편해졌다”고 설명했다.
슈퍼 노멀에 대한 생각이 점차 정리되고 굳어지면서 스스로에게서도 자유로워진 눈치다.
그렇지만 행동 양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부터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의 다채로운 사물을 흡수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자신의 취미이자 특기라고 설명했다.
“별것 아닌 듯한 사물과 문제점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거죠. 진부한 말 같지만 모든 사물은 영감을 줍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나름 쓸모가 있죠. 예컨대 좋은 의자가 있고, 나쁜 의자가 있다고 칩시다.
일상에서 늘 접하는 의자가 도대체 왜 나쁜지에 대해 고민하면 아주 중요한 디자인의 단서가 되곤 한다는 겁니다.”
군더더기를 빼고 기본을 생각하라
세상엔 단순미를 내세우는 디자이너들이 많지만 모리슨처럼 평상심에서 우러나온 정제된 감성을 디자인에 투영시키는 ‘슈퍼 노멀’의 차원에서 진득하게 고민하고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이들은 흔치 않다.
어찌 보면 그러기가 힘든 세상이다. 제품의 홍수 속에서 디자인으로 승부하려면 ‘일단 튀어야’만 경쟁에서 치고 나갈 승산이 높아지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은 학교에서조차 학생들에게 미디어의 관심을 끄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다”며 “하루빨리 인정받고 무대에 뛰어들기를 원하는 예비 디자이너들 입장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깝다”고 개탄해 마지않았다.
“디자인의 기본은 내구성, 유용성과 같은 속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혁신’이니 뭐니 떠들어대면서 그 도구로 디자인을 이용해 과도하게 실험적인 모양새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유명세를 위한 쓸데없는 과욕과 허식을 버리고 기본에 충실할 때 진정 훌륭한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거듭 강조하는 그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일본의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을 이상적인 예로 꼽는다.
그래서 자신의 스타 브랜드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 무인양품의 디자인 작업에 신나고 기쁘게 임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 ‘이름값’을 둘러싼 모든 게임은 뒤로 접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없앤 실용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평범 속의 비범’을 뜻하는 슈퍼 노멀은 모리슨이 자신의 친구이자 명성 높은 일본의 산업디자이너 후쿠사와 나오토와 함께 설파해온 개념이다. 의도적인 외형상의 화려함을 배제하고 형태와 기능, 감수성의 삼박자를 균형 있게 갖춰 일상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디자인을 지향하자는 데 뜻을 모은 이들은 2006년 도쿄와 런던에서 <슈퍼 노멀>전(展)을 공동 개최했고 동일한 제하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한국에도 최근 번역서가 출간됐다).
모리슨에게 직접 설명해 달라고 하니 “동시대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준 건 기쁘지만 사실 슈퍼 노멀은 이미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며 “우리가 한 일은 이름을 붙인 것뿐”이란다.
최근 런던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떠오른 북동부 해크니에 자리 잡은 그의 스튜디오는 ‘주인’의 디자인을 닮아서인지 정갈하고 세련된데다 편안한 느낌이 묻어났다.
그야말로 ‘슈퍼 노멀’의 강력한 지지자답다고나 할까.
하나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그가 디자인한 작품들을 볼 때) 공간의 고아한 품격보다는 그 공간을 소유한 인물이 선사하는 즐거움이 훨씬 컸다.
조용하고 느릿한 말투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모리슨은 좋고 싫음이 분명해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한(물론 인터뷰하는 입장에서는 기꺼운) 대상이었다.
영국인 특유의 자조적 유머가 가미된 그의 명쾌한 언변은 인터뷰 내내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유쾌함을 자아내는 효과를 빚어냈다.
영국 팝 아트의 대부 Peter Blake (0) | 2011.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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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난지 한 달 가까이 되는데, 날씨도 덥고...
좀 재미난 이야기를 해야될 것 같아서;;;
다음은 독일 사진가 Jens Heilmann이 그린 '월드컵 공인구'입니다.
우루과이대회때부터 올해 남아공 월드컵 자블리니까지
이 그림을 보니; 축구공이 점점 완벽한 구가 되어 가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20세기 위대한 축구스타 중 누군가는 이 공을 찼겠죠.
Uruguay (2nd half), 1930
Italy, 1934
France, 1938
Brazil, 1950
Switzerland, 1954
Sweden, 1958
Chile, 1962
England, 1966
Mexico, 1970
West Germany, 1974
Argentina, 1978
Spain, 1982
Mexico, 1986
Italy, 1990
United States, 1994
France, 1998
South Korea, Japan, 2002
Germany, 2006
South Africa, 2010
Source: nytimes
*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아디다스 판이군요 (공식 스폰서이긴 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어렸을 때 차고 놀았던 공은 1970년 멕시코 대회 공인구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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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안이 텅 비어 보이는 조각(덩그니 일본표류기에서) (0) | 2010.12.18 |
기업이나 제품 브랜드에는 여러가지 로고가 있고, 그 기업을 상징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얼핏봐서는 잘 모르는 숨은 의미가 있는 기업 로고를 소개합니다.
소니의 바이오
앞의 va는 진동을 아날로그로 표시했고, 뒤의 두글자는 디지털을 뜻하는 1과 0으로 표현했습니다.
즉,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을 슬로건으로 내건 것입니다.
Amazon
황색의 화살표는 손님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스마일의 입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살표는 a 에서 z까지 모든 것을 취급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국제항공편으로서 알려진 FedEx는 E와 x 사이에 화살표가 있습니다. 보이나요?
이 화살표는 이 회사의 세일즈 포이튼인 스피드와 정확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니리버라 하면 식품, 음료수, 세제 등을 폭넓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로고에 아예 그림을 넣었다는...
각 그림에는 각각 의미가 있어 하트는 사랑을 새는 자유의 심볼을 뜻합니다.
Northwest
미국 항공회사인 노스웨스트 항공.
로고를 얼핏 보면 회사명의 앞글자인 N과 W를 융합시킨 것처럼 보이나, 실은 나침반으로 Northwest 북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Formula 1
F1 로고
F와 1 사이의 여백부분에 또 다른 1이 숨겨져 있습니다.
NBC
미국의 3대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방송국 NBC의 로고.
공작이 모티브입니다.
창업 당시 사업부가 6개 있었기 때문에 6개의 깃털이 그려졌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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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치바에 살 때 송전탑 근처에 살았는데,
편견일지는 모르겠으나, 전자파 등을 생각해서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송전탑은 그 형태가 다 똑같은데...
오늘 소개하는 송전탑은 고압송전선의 철탑 모양을 여러가지로 궁리한 「Land of Giants by Choi + Shine Architects」작품입니다.
이런 게 있다면 송전탑에 대해 보다 친근감을 느낄 뿐 더러 왠지 아트를 가까에서 본다는 느낌도 들거 같은데요^^
사실, 이건 실제 송전탑이 아니라..
아이슬랜드에서 고압송전선의 철탑을 테마로 이루어진 디자인 대회 입상 작품이라고 합니다.
멋지지 않나요.
입상작이므로 아직 현실화된 것은 아닌데요....
그냥 건축 아트로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제작한 곳은 미국의 건축사무소 「Choi + Shine Architects」로「Choi + Shine Architects - Portfolio」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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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뭘까요.
얼핏 착시현상이나 사진으로 무엇인가 장난친 것으로 보이나, 실은 하나의 완성된 조각입니다.
이 작품은 중간 부분을 과감하게 컷트해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바닷가에 놓여지면 몸체 부분에 수평선이 보이면서 독특한 맛을 내고 있습니다.
잘 보면 서로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작품도 한 번 보실까요.
뒷면에서 보면 또 색다른 맛이 납니다.
이 사람의 모든 작품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그게 바로 다리와 상체를 연결해주는 부분이 됩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조각가 'Bruno Catalano로
독특한 상상력이 빛을 발합니다.
아마도 숲에 놔두면 몸통으로 숲이 보이는 사나이가 될 지도 모르죠.
이 외의 작품은「Bruno Catalano」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runo Catal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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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그림 (0) | 2010.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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