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계의 아나키스트, 조너선 반브룩(Jonathan Barnbrook)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당대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꼽히는 조너선 반브룩은정적인 서체 디자인에 고전미와 현대미가 조화를 이룬 생명력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맥락이 살아 숨 쉬는 역동성을 불어넣은 창조적 반골이다.
문화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팬들은 반브룩을 ‘행동하는 젊은 양심’이라 부른다.
예쁘장한 치즈케이크의 포장지, 고풍스러운 호텔의 로고, 서사적이면서 역동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게임 타이틀 등에 사용된 간결하면서도
특색 있는 글씨체.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글꼴을 꼽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메이슨(Mason)’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서체 중 하나다.
일반인들에게는 주로 ‘불법 복제’라는 형태로 애용돼왔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지만 말이다.
그리스의 건축 양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필사체에서 영감을 받아 고안했다는 메이슨은 ‘석공’이라는 뜻의 영문 동음어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하면 쉽게 납득이 가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웃지 못할 사연이 따로 있다.
1990년대 초 이 서체를 만든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조너선 반브룩(Jonathan Barnbrook)은 원래 미국의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을 본떠
‘맨슨(Mans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 디자인을 의뢰한 에미그레라는 회사는 지나치게 파격적이라 생각했는지 임의대로 ‘메이슨’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렸다.
이에 상처받은 반브룩은 다른 이의 압력 없이 자신의 서체를 제작하고 보급하기 위해 직접 회사를 차렸다.
이것이 바로 1997년 ‘바이러스 제조 공장(Virus Foundry)’이라는 스튜디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디자이너이자 문화 활동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반브룩을 런던의 중심가 소호에 자리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만나봤다.
서체에 정치사회적 숨결을 불어넣은 이단아
“제 스튜디오 이름은 서체도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확산될 수 있고 파괴력이 있다는 유사성을 염두에 두고 지었죠.
AIDS, 정치적 혼란 등의 의미도 내포돼 있답니다.” ‘이단적’, 혹은 ‘반미학적’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인물인 만큼 재기발랄하거나
반항기 넘치는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예상과 딴판이다.
차분한 말씨와 조용한 분위기가 ‘은둔형 샌님’을 연상케했다. 그의 스튜디오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소박했다.
아니, 이름값을 생각하면 허름한 쪽에 가까웠다.
흔히 ‘폰트(font)’라고 불리는 서체 디자인은 ‘메이슨 사건’을 계기로 반브룩을 꽤나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그의 주업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폰트는 불법으로 이용되는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요. 거의 30종을 개발했을 정도로 폰트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서체 디자인은 제 ‘밥벌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만족을 주는 의미 있는 작업이지요. 폰트엔 뭐랄까, 시대의 실험적인 정신이 배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변화상이 드러나죠.”
본디 서체 디자인은 정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반브룩표’ 글꼴엔 정치사회적인 관점이 녹아 있다.
맨슨을 비롯해 ‘배스터드(bastard)’와 같은 욕설, ‘프로작(Prozac)’과 같은 우울증 약 이름을 딴 것도 있을 만큼 반브룩은 범상치 않은 명칭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 역시 그의 정치 사회적 성향과 무관치 않다. 세태를 관찰하다 떠오르는 영감을 서체에 담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그의 디자인이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미로운 맥락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시각적으로도 출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글로벌 무대를 누비다
그의 튀는 감각은 서체뿐 아니라 광고, 포스터, 책, 기업 이미지(CI), 영상 등 다양한 영역의 상업적 그래픽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사치갤러리(영국), 모리미술관(일본), LA현대미술관(미국)등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 데이비드 보위의<히든(Heathen, 2002)>과 <리얼리티(Reality, 2003)>CD 앨범 작업도 맡았다.
기네스(흑맥주), 마쯔다(자동차), 고든 진(술) 등을 위한 쟁쟁한 광고 캠페인에도 그의 손길이 스쳐갔다.
일본 기업과는잡지와 직물,시계 디자인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특히 영국 미술계의 기린아 데미언 허스트와 함께 한 책 디자인 작업은 그를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놓았다.
긴 제목이 인상적인 허스트의 1997년도 작품집<IWanttoSpendtheRest of My Life Everywhere, with Everyone, one to one, Always, Forever, Now>는 둘이 함께 빚어낸 공식적인 첫 창작물. 뉴욕아트디렉터스클럽의 최고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반브룩과 허스트의 인연은 2000년 뉴욕 가고시안갤러리에서 열린 허스트의 전시회<Theories, Methods Models, Approaches, Results and Findings>에서도 이어졌다.
반브룩은 이 전시회의 초청장, 포스터 등 각종 인쇄물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이어 2001년엔 사치갤러리 주도로 기획한, 허스트에 대한 책 디자인도 했다.
허스트가현대 사회의 공포와 불안을 엽기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만큼 둘의 궁합이 잘 맞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 ▲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 데이빗 보위 ‘리얼리티 (Reality)’ 앨범, 2003. 메이슨 글꼴의 고딕체 버전, 1992. 석조(Stone Carving), 1998. 데미언 허스트 작품집 (I Want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Everywhere, with Everyone, one to one, Always, Forever, Now), 1997. 북한을 소재로 한 로고 ‘케이.제이.아이(KJI)’, 2004. 롯폰기힐스에 위치한 모리아트센터 로고, 2003.
비영리 활동도 생업처럼 하는 창조적 반골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줄곧 비양심적인 대기업과 브랜드를 비판해 온 그로서는 자신의 이름이디자인 세계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게 다소 껄끄럽다.
“전 지명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일한 적은 없습니다. 유명세는 제가 성취한 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겠죠.
데미언 허스트와 작업한 것도 그의 작품과 철학 세계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않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정당하게 평가해주길 원하는 마음과 유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묘하게 교차할 수 있다.
확실한 건 그가 싫어하는 단어목록엔 ‘대기업, 브랜드, 자본주의’ 등이 올라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성향을 뒷받침하는 비영리적 활동에 ‘생계형’ 디자인 작업 못지 않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소비 중독으로 몰아가는 세태를 비판하는 문화 운동 네트워크이자 잡지인 <애드버스터(Adbuster)>와 협력해 비상업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부정을 풍자하는 각종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2004년 서울에서 세계화의 병폐, 브랜드 숭배, 북한 문제 등 시대의 모순에 대해 통렬한 일침을 가한 <내일의 진실>이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오늘의 이단은 내일의 진실(Today’s heresy becomes tomorrow’s truth)”라는 문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버날(banal)’을 결합해 ‘세계화란 모든 걸 평범하게 만든다’는 시각을 담은 영상물 ‘글로버날라이제이션(globanalization),
KFC의 샌더스 대령을 북한의 지도자로 대체한 그래픽 등 재치와 유머가 섞인 그의 작품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자신감 없는 빈민층 소년이 꽃피운 재능
반브룩이 이처럼 남다르게 정치사회적 의식을갖고 행동하는 디자이너가 된 데에는 그의 성장 과정도 한몫했다.
잉글랜드 중남부의루턴(Luton)이란 도시에서 자란 그는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눈을 떴다.
그의 어머니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는데 육아에 힘쓸 시간이 별로 없었다.
세상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잘 몰랐던 그는 내성적인 데다자신감이 부족하고 몹시 심각한 편이었다.
비록 영국 예술계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세인트 센트럴마틴과 왕립예술대학(RCA)을 졸업했고 재학 시절에 주목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좌절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성격 문제가 컸어요.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낄 정도로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면접에서 자꾸떨어졌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일을 하면서 그런 면에서 많이 나아졌어요. 커뮤니케이션은 일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더군요.”
그런데 애초에 예술적 재능은 어떻게 키웠을까?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림 그리기에관심을 가진 건 일곱 살 때인가, 아주 어릴 때예요. 재능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공장 근로자였지만 예술적 기질이 다분하셨죠. 제 과제물이 형편없는 걸용납하지 못한 어머닌 가끔 숙제도 대신 해주셨어요.
저소득층 가정 출신이라 학교는다 공짜로 다녔죠. 운이 좋았어요.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단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는게 훨씬 나았으니까요.”
자신의 모순에 대해서조차 솔직담백한 영혼의 소유자
어쨌거나 그는 이미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그에게 일거리를 주는 ‘고객’은 영리 목적의 기업이 많다.
저소득층자녀를 배려하는 교육제도에 일차적인 수혜를 입었지만,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상업 프로젝트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반 자본주의, 반 브랜드를 외친다는게 다소 모순적이라는 시각에서 그도 자유롭진 않다.
하나 그 역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런던은 내가 성장한 루턴에서 약4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현실적인 환경에선) 수백만km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젠 나 자신이 노동력을 지배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는 데다 돈이 어떻게 흘러 다니는지 보노라면 화가 나기도 한다.”
자신은 디자인이라는 탈출구를 찾았지만이 세상엔 온갖 제약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느끼는 분노다.
“위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겠죠”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적어도 ‘행동하는 양심’인 것이다. 그리고 ‘돈이 안 되는 것’에도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아무리 스케일이 큰 일이라도 자신의 신념과 부합되지 않으면 과감히 거절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일례로 그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을 사용해왔다는 이유로 코카콜라의 프로젝트 제의를 퇴짜 놓은 일화는 업계에서 꽤 화제가 됐다.
행동하는 젊은 양심, 진화하는 세상을 꿈꾼다
“유토피아엔 장벽이 필요 없다(Real utopias don’t need walls)!” ‘디자인계의 아나키스트’라고도 불리는 반브룩은 자신의 전시회에서
이런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인간에게 보다 완벽한 세상을 바란다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그리고 정치가도 권력자도 아닌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좋은 인간, 좋은 디자이너로서 진화하는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할 따름이다.
“사실 간호사가 될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하지만 디자이너로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반브룩이라는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매개체는 역시 서체가 아닐까 싶다.
언뜻 들으면 도발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얼굴을 보면 인상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제된 열정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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