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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 /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요점 정리
지은이 : 박용철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순수시
율격 : 내재율. 4음보격 바탕
어조 : 독백적 어조, 격정적이고 의지에 찬 어조
성격 : 낭만적(우수적) 감상적. 서정적, 의지적
구성 : 수미상관의 구조[선언 - 미련 - 불안 - 의지의 다짐]
1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화자의 결연한 의지)
2연 눈물 어려 비치는 슬픈 화자(화자의 안타까운 미련)
3연 바람마저 돌아다보는 구름을 훼방함(화자의 의지의 동요)
4연 '떠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반복(현실의 극복 의지)
제재 : 이별
주제 :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우울한 심정, 일제 강점하에서 조국을 떠나는 울분과 비애
특징 : '나 두 야'를 띄어 써 의미상의 효과를 거두고, 의문형 어미를 통해 감정을 표출하였고,
특이한 띄어쓰기로 정서를 표현하였다.
출전 : <시문학>(1930)
내용 연구
여기서 '배'는 서정적 자아를 나타내는데 정처 없이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시적 자아가 절박한 현실 상황에 놓여 있음을 암시함
나 두 야 간다.[떠남에 대한 망설임을 띄어 쓰기를 통해 나타내면서 심적 갈등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나'만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한 음절씩 띄어
쓴 것으로 봄- 호흡이 느려짐)]
나의 이 젊은 나이를[두운법 '나']
눈물로야 보낼 거냐.[설의법을 사용해서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음]
나 두 야 가련다.[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 그러나 실상 방향도 목표도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히 떠나고 싶어할
뿐이라는 점에서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늑한 이 항구인[사랑하는 고향을 말하는 원관념으로 시적 자아를 '배'로 나타냈기 때문임]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안개같이 물 어린 눈[막상 고향을 떠나려 하니 이 뿌옇게 흐려오는 것을 의미]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일제 강점하의 우리 민족].[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
: 떠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정든 고향과 사랑하던 사람들을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하는 감성적 행동 사이에서 빚어지는 서정적 자아의 고뇌와 갈등이 형상화되었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고향에 대한 그리운 심정으로 떠나기 싫어하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일제의 수탈로 인해 유랑하는 우리 민족의 슬픔과 북간도로 이주하는 당시의 상황이 시적 화자의 의식 구조에 담겨 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헤살부린다. 짖궂게 훼방한다).[바람이 훼방을 놓아 구름을 쫓아 버려 고향 생각에 잠길 수 없다는 말로 고향을 제대로 돌아다볼 수
없는 상황/ 망운지정(望雲之情 : 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이나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앞 대일 언덕'은 항구라는 뜻으로 쉴 곳이나 정해진 목적지, 혹은 지향해야 할 목표를 가리킨다.
시적 자아는 자신을 배에 비유하고 있으며 '앞 대일 언덕'이란 배를 댈 항구로서 정해진 목적지를 의미한다.
즉,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 대목은 일단 쉴 곳도, 정처도 없이 유랑해야 할 험난한 미래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 전체의 감상적인 분위기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이 구절은 지향해야 할 목표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어디론가 가고 싶어하는 시적 자아의 심정을 드러내 주는
구절로 이해하는 것이 옳음. ]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시적 화자가 미래 지향적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없는 갈등이 구체적으로 '눈물'로 형상화됨]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간다'는 구체적 행동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가련다'는 앞으로의 계획과 생각을 표현한 것임]
이해와 감상
김영랑과 함께 1930년대 시문학파를 이끌었던 박용철은 이 시를 자신의 문학의 출발점이라 했다.
1925년에 쓰여진 이 시는 당시 문단의 절망과 허무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1920년대의 허무와 절망이란 식민지 현실과 3·1운동 실패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박용철은 첫 연과 마지막 연을 동일한 어구로 반복하는 것과 동시에 `나 두 야 간다'라고 의도적으로 띄어 쓰기로
떠나가는 자신의 안타까움과 비장함을 강조했다.
화자가 떠나가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떠나가지 않으면 화자는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의 절박함이 있다는 것은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눈물로 가득한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가는 화자의 마음이 편할 수 없는 것은 `쫓겨가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다는 것은 절망의 눈물로 젊음을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조국강토와 민족을 버리고, 즉 `아늑한 항구를 버리고,
/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결국 절망적 상황에 쫓겨가는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떠나가서 닿는 곳도, 의지가 되어 줄 `앞 대일 언덕'도 없이 암담한 곳이기 때문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발에 익어 정든 산골짜기'뿐 아니라 바람에 모양 변하는 구름마저 화자에게는 정겹고 슬프게 보이는 것이다.
희망도 없는 곳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가는 젊은이의 비장한 각오와 심정을 `나 두 야 간다'라고 띄어 쓴 시행에서 엿볼 수 있다.
마치 희망적이지 못한 상황으로 쫓겨가는 슬픔과 회한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리라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하다.
이 시에 나타난 비애는 당대의 현실이나 삶의 표랑 의식과 관계가 있다.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과 떠남에도 `앞 대일 언덕' 같은 희망이 없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비애가
바로 이 시를 포함한 박용철 시의 주제적 특징이다. [해설: 이상숙]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경향파의 대항하여 순수 서정시를 고집한 박용철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그 율격은 4음보격(2음보도 보임)으로 되어 있다.
또 제 1,4연에서 '나'의 반복과 제 2연 1-2행의 첫음절 '안-'의 반복은 두운적(頭韻的) 요소로 음위율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제 2연 3-4행의 '-에 익은', 제 3연 2,4행에서의 '-인들, -거냐'의 반복도 일종의 운율적 요소로
이 시의 음악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는 암울한 일제 강점의 현실로 앞에서 젊은이가 눈물로만 세월을 보낼 수 없다는 강변(强辯)을 보여 주고 있다.
가혹한 일제 치하에서 갖은 억압과 수모를 당하면서 나라 잃은 원한을 가슴에 가득히 안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헐벗고 굶주린 채 사랑하는 조국, 정든 고향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민족사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일제 강점하의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작품인 셈인데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표면상으로는 미래 지향적인 의지를 지니고 '나 두 야 가련다'고 외치지만 그 내면에는 떠나지 못하는 심정이 진하게 깔려 있다.
이러한 갈등은 마지막 연에 와서 눈물로 변해 버린다.
암울한 일제 강점하에서 젊은이가 눈물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하면서도 자신은 먼저 울어 버리는 반어(反語),
이것이 바로 일제 강점하의 암담한 시대를 살아가던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심화 자료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시인. 본관은 충주(忠州). 아호는 용아(龍兒). 전라남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
아버지 하준(夏駿)과 어머니 고광 고씨(高光高氏, 혹은 長澤高氏)의 4남매 중 장남이다.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다가 바로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1920년 배재학당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 귀향하였다.
그 뒤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동경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어서,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몇 달 만에 자퇴하였다.
16세 때 울산(蔚山) 김씨 회숙(會淑)과 혼인하였다가 1929년 이혼하고, 1931년 5월 누이동생 봉자(鳳子)의 이화여자전문학교
친구였던 임정희(林貞姬)와 재혼하였다.
재학 중 수리과목에 재능을 보였는데,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오야마학원 재학 때에 사귄 김영랑(金永郎)과
교우로 관계하면서 비롯되었다.
문단 활동 이외의 경력은 전혀 없다.
1930년대에는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 詩文學≫ 3권, 1931년에는 ≪문예월간 文藝月刊≫ 4권, 1934년에는 ≪문학 文學≫ 3권 등 도합 10권을 간행하였다.
또한 그가 주재하였던 시문학사에서 1935년 같은 시문학동인이었던 정지용(鄭芝溶)의 ≪정지용시집≫과
김영랑의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문단 활동으로는 자신이 주축이 된 시문학동인 활동과 ‘해외문학파’,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하여 입센(Ibsen,H.) 원작의
≪인형의 집≫ 등 연극공연을 위한 몇 편의 희곡을 번역하였다.
정지용 등과 시집과 문예지를 간행하는 등 문학 활동에 전념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집은 내지 못하고 1938년 서울에서 후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싸늘한 이마〉·〈비내리는 날〉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뒤로 ≪문예월간≫·≪문학≫ 및 기타의 잡지에 많은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발표되지 않고 유고로 전하여지다가 뒤에 전집에 수록된 작품도 상당수에 달한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간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는 어딘가 정박지를
찾아 떠나가는 ‘배’에다 인생을 비유한 작품이다.
즉, 인정과 고향을 되돌아보는 현실과 ‘삶’의 행정(行程) 속에서 아무런 마련도 없이 또 다른 정박지를 향하여 떠나가는
이상과의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1938년 ≪삼천리문학 三千里文學≫에 발표된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널리 읽혀지는 그의 대표적인 평론으로서
그의 시작이론(詩作理論)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이나 김영랑의 시를 못 따르지만, ≪시문학≫·≪문예월간≫·≪문학≫ 등 문예지를 간행하였고, 방대한 역시편(譯詩篇) 등을 통하여
해외문학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큰 공적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서구문학사조에 편향되어 혼류를 이루었던 1920년대 문단을 크게 전환시켜 ‘살’과 ‘피’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보다 높은 차원의 시창작, 즉 ‘민족언어의 완성’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유해는 고향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우산리에 안장되었고, 광주공원에 영랑의 시비와 함께 그의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시비에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의 한 절이 새겨져 있다.
유작집으로 ≪박용철전집≫ 2권이 각각 1939·1940년 동광당서점에서 간행되었고,
대표적 평론으로 〈효과주의비평론강 效果主義批評論綱〉(1931)·〈문예시평 文藝時評〉(1931) 등이 있다.
≪참고문헌≫ 韓國現代文學史探訪(金容誠, 國民書館, 1973), 韓國現代詩人硏究·其他(鄭泰榕, 語文閣, 1976), 韓國現代詩人硏究(金軟東, 民音社, 1977),
韓國作家傳記硏究(李御寧, 同和出版公社, 1980), 朴龍喆의 人間性과 藝術(金珖燮, 朝光, 1940.8.), 朴龍喆과 나(金永郎, 自由文學, 1958.6.), 龍兒朴龍喆硏究(金允植,
學術院論文集 9, 197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문학파와 순수시(純粹詩)
시문학파는 <시문학> 발간에 참여한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등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흔히 순수시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이들은 20년대 경향시의 이념성에 반발하여 시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은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점에 착안, 시어의 조탁에 힘썼고 시의 음악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영롱하고 섬세한 서정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문학파의 순수시는 본래적인 의미의 순수시와는 자소 차이가 있다.
프랑스 상징주의에서 비롯된 순수시는 말의 뜻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미묘한 정신의 상태를 시어의 음악적 기능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비해 시문학파의 시는 시의 음악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최근에 박용철의 글이 발굴되었는데 평소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시문학파
1930년대 시전문지 ≪시문학 詩文學≫을 중심으로 순수시운동을 주도했던 유파.
그 핵심인물은 박용철(朴龍喆)과 김영랑(金永郎)이다.
여기에 정인보(鄭寅普)·변영로(卞榮魯)·이하윤(異河潤)·정지용(鄭芝溶)의 참여로 ≪시문학≫ 창간호가 발간되었고,
뒤에 김현구(金玄鳩)·신석정(辛夕汀)·허보(許保)가 새로 참가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문학파는 이들만을 지칭해야 할 것이나, 시문학파의 범위를 넓게 보는 입장에서는 이들과 경향을 같이하는
≪문예월간 文藝月刊≫·≪문학 文學≫·≪시원 詩苑≫에 참여한 문인들까지도 포함시켜서 시문학파를 해외문학파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문예월간≫이나 ≪문학≫은 범문단적인 종합 문예지였던 만큼 여기에 작품을 발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동인적(同人的)결속이나 이념적 유파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시문학≫ 동인들만으로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정치적 경향시(傾向詩)에 반발하여 문학에서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한 점이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1920년대의 감상적 낭만주의 시나 민요시 또는 카프의 경향시가 모두 자유시의 특성에 대한 명백한 자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시로서의 현대성을 논하기에 미흡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문학≫에 실린 김영랑·정지용·박용철 등의 작품에서는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조화에 의한 자유시가 쓰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에서 언어의 조탁(彫琢)이라는 면에 그들이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시의 언어가 산문이나 일상적인 언어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현대시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라면,
김영랑을 중심으로 한 시문학파가 이 방면에서 거둔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다.
또 뒤에 오는 시인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구문(構文)이란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대체로 1920년대의 시는
의미 구조 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영랑의 시에서는 의도적인 호음조(好音調)·음성상징(音聲象徵)·압운법(押韻法)·음보율(音步律) 등 음성 구조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또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 사이의 조화와 긴장을 통한 창조적 리듬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김영랑의 시는 김소월의 민요시보다도 한 걸음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현대성을 지니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특색으로 시문학파의 시에서 은유와 심상이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전(1920년대)의 시에도 은유나 심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문학파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1920년대의 은유나 심상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대부분인 데 비하여 시문학파의 은유나 심상은 시의 중요한 자산으로서
의식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정지용 등의 시적 성과를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시문학사에서 시문학파를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가진 입론(立論)이며,
시창작 이외에도 박용철의 시론이나 서구 시 번역 분야에서의 이하윤의 활동도 이들의 현대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참고문헌≫ 詩文學派硏究(金容稷, 西江大學校 人文科學論集 2, 1969), 龍兒朴龍喆硏究(金允植, 近代韓國文學硏究, 一志社,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붉디 붉은 그 꽃", 이 시를 들여다 볼수록 참 오묘한 힘을 느낀다.
시인의 눈이란 참 기묘해서 누에의 점 하나에도 생을 깨닫는다.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의 사물을 관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