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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연필로 그리고 색연필로 서명
48.5×31cm
1955
병원에 있으면서 이중섭은 자신의 모습을 자세하게 그린 자화상을 남겼다.
이 그림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미쳤다고 하자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렸다고 한다.
거울을 꺼내들고 즉석에서 그렸다는 이 그림은 최태응이 보관하다가
이중섭 사후에 조카 이영진에게 전해주었고
1999년 초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이중섭전이 열렸을 때 처음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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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유채
30×41.7cm 1953~4년 무렵
홍익대학교 박물관
내가 만난 李仲燮
김춘수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李仲燮' 연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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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金春洙) 시인의 몇 안되는 제주시편 중 한 편 들이다.
‘꽃’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77년 시집 ‘남천(南天)’에서
‘이중섭’ 연작시 9편을 발표하는데 이중에 4편이 서귀포를 시의 모태로 하고 있다.
그는 이 연작시를 통해 화가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1.4후퇴 후 북한을 탈출, 1951년 봄부터 약 6~7개월간의 서귀포 생활을 다뤘다.
이중섭의 서귀포에서의 절박하고 극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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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마사꼬(山本方子, 77)라는 이 일본 여인은
한때 이남덕(李南德)이라는 이름의 한국 여인으로 살았던 적이 있다.
화가 이중섭의 아내로 한국에서 살던 몇 년간이었다.
이중섭의 아내가 되면서 마사꼬 여사는 한국이름으로 개명하였다.
시인 김춘수는 아내와 아이들의 ‘저희끼리 오돌오돌 떨고 있는”
표현처럼 이중섭에게서 아이들과 아내의 떪의 상태를 감지해 낸다.
또 “소리내어 아침마다 아내는 가고/ 忠武市 東湖洞/ 눈이 내린다”에서 보듯
흰색은 이중섭의 삶의 허무함, 순간적임, 텅빔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삶의 단아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1977년 연작시를 발표하기에 앞서 시인 김춘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제주에 수학여행을 다녀갔다.
바다의 물빛이 매우 아름답고, 해안선 도처에 깔려 있는 유채꽃밭이 인상적이었다고
어느 평론집에선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서귀포에 대한 대한 기억은 깎은 듯한 벼랑이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갈매기떼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고 했다.
여행 후 그는 한때 서귀포에 살았던 이중섭을 소재로 연작시를 쓰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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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박지에 긁어 새기고 유채로 메운 뒤에 채색
9.8×15cm
1954년
미국 뉴욕 모던아트뮤지엄 소장
李仲燮 1
김춘수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번만 울어버린다.
오육도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 떨어지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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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유채와 연필
32.5×49.8cm
1954년
개인소장
李仲燮 2
김춘수
아내는 두번이나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모발은 구름 위에 있다.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서귀포의 남쪽을 불고 있다.
서귀포의 남쪽
아내가 두고 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 마굿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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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박지 그림
유화 <도원>의 구도를 그대로 은박지에 옮긴 그림이 있는데
이는 월남 시인 박남수가 소장하던 것이다.
李仲燮 3
김춘수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남쪽으로 쓸리는
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아내가 두고 간
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가도 가도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바람아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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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박지 그림
뒷날 대작으로 완성할 것이니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며
아내에게 맡긴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李仲燮 4
김춘수
씨암탉은 씨암탉,
울지 않는다.
네잎 토끼풀 없고
바람만 분다.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의 바람아
봄 서귀포에서 이 세상의
제일 큰 쇠불알을 흔들어라
바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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