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동-섬>

 
 
 
 
                                                   1미터의 사랑
 
 
 
                                                                                   오탁번
 
 
 

            석 자 가웃 되는 1미터의 정확한 길이는

빛이 진공(眞空) 속에서 2억 9천 79만 2천 4백

58분의 1초 동안 진행된 거리라고 하는데,

그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그리움의 거리는

베틀 위의 팽팽한 눈썹줄이 잉아에 닿을 때

북에서 풀리는 비단실의 떨림이라도 되는지,

우리들 사랑의 이 영겁(永劫)과도 같이 멀기만 한

닿을 수 없는 허기진 목숨의 허공(虛空)속에는

칠월 초이렛날  미리내를 날으는 까막까치의

하마하마 기다리던 날갯질 소리 가득하지만,

내 약지(藥指)를 그대의 약지에 마주 비벼서

10조분(兆分)의 1미터의 목마름 죄다 지우고

운석(隕石) 떨어지고 화광(化光) 박히는 우주(宇宙) 속에서

미리내를 건너는 그리움이 금빛으로 물들 때,

아스라한 길녘 어느 1미터의 물이랑 위에

지필묵(紙筆墨)과 궁시(弓矢)와 실타래 가지런히 놓아서

애비에미 이별은 나비잠 속에서도 꿈꾸지 않을

외씨 같은 젖니 난 우리 아기의 첫 돌을 잡히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원태연

 

 


             내가 욕한다고 해서 같이 욕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욕 먹고 살 사람 아닙니다.

 

             나야 속상하니까, 하도 속이 상해 이제 욕밖에 안 나와 이러는 거지
             어느 누구도 그 사람 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렇게 따뜻하고 눈물이 나올 만큼 나를 아껴줬던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 인연이 아니라서 이렇게 된 거지,
             눈 씻고 찾아봐도 내게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따뜻한 눈으로 나를 봐줬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눈빛이 따스했는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살아도
             이 사람은 이해해주겠구나 생각들게 해주던,
             자기 몸 아픈 것보다 내 몸 더 챙겼던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
             주었던 한 사람입니다.

 

             아파도 내가 아프고 찢어져도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위로한답시고 그 사람 욕 하지 마십시오.

 

             내가 감기로 고생할 때 내 기침 소리에 그 사람 하도 가슴 아파해
             기침 한 번 마음껏 못하게 해주던 사람입니다.
             예쁜 옷 한벌 입혀주고 싶어서 쥐뿔도 없이 지켜왔던 자존심까지
             버릴 수 있게 해주던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얼마나 가슴 삭히며 살고 있겠습니까?

 

             자기가 알 텐데, 내가 지금 어떻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수 없을 텐데.
             언젠가 그 사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있어야 한다고, 멀리 있어야 아름답다고.."

 

        웃고 좀 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내가 왜 웃을수가 없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과 하도 웃어서 너무너무 행복해서 몇 년치 웃음을
             그때 다 웃어버려 지금 미소가 안 만들어진다는 걸.

 

             인연이 아닐 뿐이지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 사람 끝까지 나를 생각해줬던 사람입니다.
             마지막까지 눈물 안보여주려고 고개 숙이며 얘기하던 사람입니다.
             탁자에 그렇게 많은 눈물 떨구면서도 고개 한 번 안들고 억지로라도
             또박또박 얘기해 주던 사람입니다.

 

             울먹이며 얘기해서 무슨 얘긴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 사람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알 수 있게 해주던 사람입니다.

 

             있습니다, 그런 상황. 말할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헤어져야하는 상황이 있더란 말입니다. 인연이라고 합디다.
             이승의 인연이 아닌 사람들을 이연이라고들 합디다.
             그걸 어쩌겠습니까! 이승의 인연이 아니라는데,
             연이 여기까지밖에 안되는 인연이었던 것을.

 

             그런 사랑 나중에 다시 한 번 만나기를 바랄 수밖에...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연이 아니라서 그렇지, 인연이 아니라서 그렇지
             내게 그렇게 잘해주었던 사람 없습니다.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아무리 죽이니 살리니 해도 내게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런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정하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알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든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내가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추억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끝내 눈물 떨구고야 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 귀가 섹스 쪽으로 타락하고 있다
 
 
 
함민복
 
 
 
 
잘 벗겨지지 않아요.
-제비표(?) 페인트

알아서 빨아줘요
-대우 봉(?) 세탁기

구석구석 빨아줘요.
-삼성(?)세탁기

빨아주고 비벼주고 말려주고
-금성(?) 세탁기

우리는 그이가 다 빨아줘요
잘 빨아주니 새댁은 좋겠네
-럭키 슈퍼타이

무엇이, 무엇을 의도적으로 빠는 이 광고에
우리는 무엇을 꼭 집어넣으라고 욕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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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잠자다 깬 새벽에

아픈 어머니 생각이

절박하다

 

내 어릴 적

눈에 검불이 들어갔을 때

찬물로 입을 헹궈

내 눈동자를

내 혼을

가장 부드러운 살로

혀로

핥아주시던

 

 붉은 아궁이 앞에서

조속조속 졸 때에도

구들에서 굴뚝까지

당신의 눈에

불이 지나가고

 

칠석이면

두 손으로 곱게 빌던

그 돌부처가

이제는 당신의 눈동자로

들어앉아서

 

어느 생애에

내가 당신에게

목숨을 받지 않아서

무정한 참빗이라도 될까

 

어느 생애에야

내 혀가

그 돌 같은

눈동자를 다 쓸어낼까

 

목을 빼고 천천히

울고, 울어서

젖은 아침

 

 

 

시집 <맨발>

 

 

 

 

 

 

 

 

 

 

 

 

 
힘(力)
 

김 종 제
 

 


그러니까 말이여
네가 숨이 아직 붙어 있다고
힘(力) 자랑하지 말란 말이여
네 몸에 붙어 있는 것이
힘(力)이라고 착각하지 말란 말이다
힘(力)이란 무엇이냐
그러니까 우물가에서
우리 어머니가 물을 길어 올려
모여든 그네들의 항아리에
물 담아주는 것이 힘(力)이여
그러니까 이웃 논에
모내기 김매기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지 걷고 뛰어드는 것이
힘(力)이여
그려, 힘(力)이란 무엇이냐 하면
부싯돌이요 쏘시개랑께
그러니까 부싯돌이 팅기면
쏘시개에 불이 붙고
그놈의 불꽃이
거친 분노의 함성으로
들판으로 번지는 것을
아 그게 바로 힘(力)이여
달도 없고 별도 없고
이미 헤쳐 놓았던 길도 없고
한 조각 검은 그림자마저 남지 않은
칠흑의 천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한 점 불꽃이
힘(力)인 줄 여태 몰랐제
그러니까 말이여
언땅에서도 죽지 않고
비바람이 거셀수록 솟구쳐 일어나는
풀포기가 힘(力)이여
천길벼랑에서 떨어져서
밑바닥부터 뒤집어 엎어버리는
폭포가 힘(力)이여
앞만 보고 달려가다
목이 부러진 곧은 목지가
바로 그 무서운 힘(力)이여
아는가 자네 힘(力)이란
몸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고
마음 한곳에 모여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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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72
 
 
 
김영승

 

 



남들 안 입는 그런 옷을 입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왜 으스대는가.
왜 까부는가. 왜 어깨에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가. 왜 꼭 그렇게 미련을 떨어야 하는가.
하얀 가운을 걸치고 까만 망토를 걸치고 만원 버스를 타봐라. 만원 전철을 타봐라.
얼마나 쳐다보겠냐. 얼마나 창피하겠냐.
수녀복을 입고,죄수복을 입고, 별 넷 달린 군복을 입고……

왼쪽 손가락을 깊이 베어 며칠 병원을 다녔는데 어떤 파리 대가리같이 생긴 늙은,
늙지도 않은 의사새끼가 어중간한 반말이다. 아니 반말이다. 그래서 나도 반말을 했다.

"좀 어때?"
"응 괜찮어"
그랬더니 존댓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존댓말을 해줬다.
"내일 또 오십시오."
"그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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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록
                                                                            

                                                                   이영도                                                         
 
 
  
 

트인 하늘 아래

무성히 젊은 꿈들

 

휘느린 가지마다

가지마다 숨 가쁘다.

 

오월(五月)은 절로 겨워라.
우쭐대는 이 강산(江山).

 

 

                                                                                                                  - <청저집>(1954) -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현대시조, 구별배행 시조, 서정시, 감각적

◆ 주제 ⇒ 초여름에 느끼는 자연의 싱싱한 생동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하나의 구(句)를 한 행으로 삼은 이른 바 구별 배행 시조이다.

오월의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을 감각적인 표현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대하는 시인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무성하게 자라는 식물에서 '젊은 꿈'을 발견하는 시적 자아이기에 오월의 신록이 흥에 겨워 절로 우쭐대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의인화된 오월의 모습이 그것을 바라다보는 서정적 자아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오월의 신록을 바라보는 흥겨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종이에 연필로 그리고 색연필로 서명
48.5×31cm
1955

 

병원에 있으면서 이중섭은 자신의 모습을 자세하게 그린 자화상을 남겼다.

이 그림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미쳤다고 하자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렸다고 한다.
거울을 꺼내들고 즉석에서 그렸다는 이 그림은 최태응이 보관하다가

이중섭 사후에 조카 이영진에게 전해주었고

1999년 초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이중섭전이 열렸을 때 처음 공개되었다.

 

 

 

 

 

종이에 유채
30×41.7cm 1953~4년 무렵
홍익대학교 박물관

 

 

 

내가 만난 李仲燮

 

 

김춘수

 

 


광복동(光復洞)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李仲燮' 연작시

 

 

 

 

 

 

 

 

 

김춘수(金春洙) 시인의 몇 안되는 제주시편 중 한 편 들이다.

 ‘꽃’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77년 시집 ‘남천(南天)’에서

 ‘이중섭’ 연작시 9편을 발표하는데 이중에 4편이 서귀포를 시의 모태로 하고 있다.

 

그는 이 연작시를 통해 화가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1.4후퇴 후 북한을 탈출, 1951년 봄부터 약 6~7개월간의 서귀포 생활을 다뤘다.

이중섭의 서귀포에서의 절박하고 극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야마모토 마사꼬(山本方子, 77)라는 이 일본 여인은

한때 이남덕(李南德)이라는 이름의 한국 여인으로 살았던 적이 있다.

화가 이중섭의 아내로 한국에서 살던 몇 년간이었다.

이중섭의 아내가 되면서 마사꼬 여사는 한국이름으로 개명하였다.

 

 

 

시인 김춘수는 아내와 아이들의 ‘저희끼리 오돌오돌 떨고 있는”

표현처럼 이중섭에게서 아이들과 아내의 떪의 상태를 감지해 낸다.

또 “소리내어 아침마다 아내는 가고/ 忠武市 東湖洞/ 눈이 내린다”에서 보듯

흰색은 이중섭의 삶의 허무함, 순간적임, 텅빔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삶의 단아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1977년 연작시를 발표하기에 앞서 시인 김춘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제주에 수학여행을 다녀갔다.

 바다의 물빛이 매우 아름답고, 해안선 도처에 깔려 있는 유채꽃밭이 인상적이었다고

어느 평론집에선가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서귀포에 대한 대한 기억은 깎은 듯한 벼랑이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갈매기떼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고 했다.

여행 후 그는 한때 서귀포에 살았던 이중섭을 소재로 연작시를 쓰게 된것이다.

 

 

 

 

 

알루미늄 박지에 긁어 새기고 유채로 메운 뒤에 채색
9.8×15cm
1954년
미국 뉴욕 모던아트뮤지엄 소장

 

 

 

李仲燮 1

 

 

김춘수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번만 울어버린다.

오육도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 떨어지러라.

 

 

 

 

 

종이에 유채와 연필
32.5×49.8cm
1954년
개인소장

 

 

 

李仲燮 2

 

 

김춘수

 


아내는 두번이나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모발은 구름 위에 있다.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서귀포의 남쪽을 불고 있다.

서귀포의 남쪽
아내가 두고 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 마굿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은박지 그림
유화 <도원>의 구도를 그대로 은박지에 옮긴 그림이 있는데

이는 월남 시인 박남수가 소장하던 것이다.

 

 


李仲燮 3

 

 

김춘수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남쪽으로 쓸리는

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아내가 두고 간
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

가도 가도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바람아 불어라.

 

 

 

 

 

은박지 그림

뒷날 대작으로 완성할 것이니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며

아내에게 맡긴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李仲燮 4

 

 

김춘수

 

 


씨암탉은 씨암탉,
울지 않는다.

네잎 토끼풀 없고
바람만 분다.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의 바람아
봄 서귀포에서 이 세상의
제일 큰 쇠불알을 흔들어라
바람아.

 

 

 

 

 

 

 

 

 

 

 

 

 

 

 

 

 

  2006년도 최고의 시(詩) (The Best Poem of 2006) 

 




 

  "나는 검둥이 너는 흰둥이" ( I Black, You Colored.)  

 

  이 시는 UN이 선정한 2006년도 최고의 시 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어린 소년이 썼습니다.

  (This poem was nominated by UN as the best poem of 2006.

  And it’s written by an African Kid.)






       

나는 태어날 때 검둥이 When I born, I black.
나는 자라서도 검둥이 When I grow up, I black.
나는 햇빛에 타도 검둥이 When I go in Sun, I black.
나는 깜짝 놀래도 검둥이 When I scared, I black.
나는 병이 나도 검둥이 When I sick, I black.
그리고 나는 죽어도 검둥이 And when I die, I still black.


그리고 너희 백인들은 And you, white fellow.

네가 태어날 때 핑크색 When you born, you pink.
네가 자라면 흰색 When you grow up, you white.
네가 햇빛에 타면 빨간 색 When you go in sun, you red.
네가 추우면 샛 파란 색 When you cold, you blue.
네가 깜짝 놀래면 노란 색 When you scared, you yellow.
네가 병이 나면 초록색 When you sick, you green.
그리고 네가 죽으면 재색이 된다 And when you die, you gray.

이래도 너는 나를 유색인종이라 하냐?

And you calling me colored?













 

 

 

 

 

 

 

 




 작은 밭




평생 아이들 자라는 것만 보다가

퇴임하고 들어앉은 나에게

허구한 날 방구들만 지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아내가 불쑥 내민 호미 한 자루

하느님, 나는 손톱 밑에 흙을 묻혀본 적 없고

상추 한 잎 이웃과 나눈 일이 없습니다

아내가 얻어놓은 작은 밭이랑에

어떻게 아이들을 심을까요

내 서툰 호미질이

어린 상추싹을 다치게 할까 걱정입니다




 

 

 

 

 

독경



일하고 돌아와

발 씻고

나를 마주해 앉다


빈 마음자리에 차오르는

빛!




 

 

 

 



희망



그 별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나

모습을 드러낸다


      

정희성 - '돌아다보면 문득'시집 -













Chopin - Nocturne for Piano No.2 in E flat major Op.9-2
( 쇼팽 - 녹턴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기다리리,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 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By: Albena Markova





Autumn in Rodopi Mountain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Rodopi Mountain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By: Albena Markova




The Lake Isle of Innisfree

호반의 섬 이니스프리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서는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욋가지와 진흙으로 작은 오두막을 지으리라.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아홉 이랑 콩밭 일구며, 꿀벌 통도 하나 두고는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벌 떼 웅성대는 숲 속의 빈터에서 혼자 살리라.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가서 평화를 좀 누리려하네, 평화는 이슬이 나리 듯이,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안개가 드리워진 아침부터 어디선가 귀뚜라미 우는 저녁까지 고이 나리네.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한밤에는 모든 불빛이 가물거리고, 한낮에는 보랏빛 불꽃이 소리 없이 번지는 듯이,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해질녘에는 집을 찾는 홍방울새 나래 소리 넘치네.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밤에도 낮에도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호숫물이 낮게 철석이는 소리를 듣네.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ay,
나 지금 한 길가 회색빛 포도에 서 있을지라도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철석이는 소리를 듣네.




 



 

 

 

                                                                  함께 있는 때  
                                                                           

                                                                       이외수 





                                                                   
세상에 神의 사랑 가득한 줄은 

                                   풀을 보고 알 것인가 

                                   꽃을 보고 알 것인가 





                                    눈을 감아라 보이리니 


                                    척박한 땅에 자라난 

                                    그대 스스로 한 그루 나무 

                                    실낱같은 뿌리에 

                                    또 뿌리의 끝 





                                    하느님의 눈은 보이지 않고 

                                    다만 존재할 뿐 사람이여 

                                    정답다 우리 

                                    함께있는 때 





                                                                       



    접시꽃 당신<시: 도종환 낭송: 은빛호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소주 한 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참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소주 한 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

 

 

 

 

 

 

                                                 
















이렇게 햇볕이 좋은 날엔 무작정 길을 나서고 싶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아무 지향점도 없이 무작정 떠나고 보는 겁니다.
그렇게 떠났다간 다녀온 다음에 뒷감당을 어찌 하려느냐고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

저는 그 말을 무모하게 살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좀 더 낙관적으로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무작정 떠난 길에서 제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길가에 쑥부쟁이였습니다.
이 꽃을 흔히 '들국화'라고 부르는데 식물도감에 들국화라는 꽃은 없습니다.

쑥부쟁이 꽃 위에 내려앉은 나비가 연신 분주한 날갯짓을 멈추지 않습니다.
저도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할 일을 마무리 짓겠다는 뜻이 아니겠는지요.

쑥부쟁이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이란 뜻이랍니다.
불쟁이는 대장장이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불쟁이네 딸이 가을에야 돌아오는 사냥꾼을 기다리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는
쑥부쟁이는 가을에 피어납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가을 들어 쑥부쟁이 꽃과 처음 인사했을 때
드문드문 보이던 보랏빛 꽃들이
가을 내내 반가운 눈길 맞추다 보니
은현리 들길 산길에도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모든 꽃송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를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

- 정일근 시 '쑥부쟁이 사랑' 전문



얼마쯤 길을 더 가다가 이번엔 허수아비를 만났습니다.
허수아비가 저렇게 귀여서야 어디에 쓰겠습니까?
참새들이 놀라서 도망가기는커녕 저 아저씨 귀엽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려고
몰려올 것만 같은 아주 귀엽게 생긴 허수아비였습니다.

- 남재만 시 '허수아비' 전문두 손
그 열 손가락 안에
거머쥔들
얼마나 거뭐쥐겠는가

그래서
허수아비는
손을 비웠다.
아니 아니 숫제
손이 없다.

몇 사람이나 알까?
허수아비의 저 통쾌한
절대 자유 그리고
텅 빈 저 충만을



                                                                 


마을 앞을 지나가다보니 고추와 깻단을 말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즘엔 도시 골목에서도 고추 말리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가을 햇볕'이란 시에서 고추처럼 맵게 살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고추처럼 맵게 살기도 어렵지만, 입안이 매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을 달래주는
찬물이 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그냥 제 생긴 대로 사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는지요?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 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 안도현 시 '가을 햇볕' 전문

                                                                  

                                                                 


이번엔 벌써 벤 나락을 아스팔트 바닥에다 말리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벼가 쓰러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베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올해 예순아홉 살 되셨다는 이 할머니는 왔다 갔다 하시며 두 발로 벼를 펴 널고 계십니다.
말하자면 할머니의 두 발이 곡식을 펴 널거나 끌어 모으는데 쓰는 연장인 당그래인 셈이지요.

할머니에게는 나락 너는 일이 무슨 심심파적이라도 되시나 봅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한가한 날도 다 있구나 싶은 표정으로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을 바라보고고
섰노라니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더군요.


                                                                   


마을을 벗어나니 이번에는 완전히 이삭이 팬 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벼 이삭과 이삭이 고개를 맞대고, 이웃에게 살포시 기대고 사는 모습이
정다워 보입니다.

우리네 사람살이도 저 벼와 같아서 서로 기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이성부 시 '벼' 전문



밭일 가운데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마도 고추 따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친정에는 고추 농사를 많이 짓습니다.
어쩌다 여름에 친정에 가게 되면 일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지요.
땡볕 내려 쬘 때 고추밭에 들어가면 어찌나 더운지 그저 숨이 턱턱 막혀 옵니다.
이렇게 더운 곳에서 부모님들은 어떻게 참고 일하시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밭 가운데서 다정히 일하시는 두 내외분께 말을 붙였습니다.

"아주머니, 고추가 병충해를 많이 입었네요."
"예, 올 고추가 형평 없구만이라."

물음은 아주머니께 드렸는데 대답은 아저씨에게서 나옵니다.
여름에 더워서 고추밭일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다고 하자 아저씨가 대뜸
이렇게 물어 오셨습니다.

"도시 사는 아줌마가 고추밭 일을 해보기나 하셨어요?"

친정이 시골이라서 조금 해봤다고 했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동시에 피식하고 웃으시더군요.
민망한 마음을 감추려고 얼른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들길을 허위허위 걸어갑니다. 마을에서 저만치에서 걸어 나오던 아줌마와 들에서
일하던 아줌마가 만나 뭐라고 말을 주고받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동엽 시인의 시 '담배 연기처럼'을 읊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도 시인처럼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지만,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만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습니까? 칠순이 넘으신 나이에 아직도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 생각에 잠깐 마음이 울컥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급히 들녘으로 떠났던 하루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오늘이었습니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머릴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멀리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 다한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맷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 다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

- 신동엽 시 '담배 연기처럼' 전문


 



 

 


                                                                내가 늙었을 때

 



            내가 늙었을 때 난 넥타이를 던져 버릴 거야


                        양복도 벗어 던지고, 아침 여섯 시에

                        맞춰 놓은 시계도 꺼버릴 거야

                        아첨할 일도.

                        먹여 살릴 가족도, 화낼 일도 없을 거야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늙었을 때 난 들판으로 나가야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거야
                        물가의 강아지풀도 건드려 보고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도 떠 봐야지
                        소금쟁이들을 놀래키면서

                        해질 무렵에는 서쪽으로 갈 거야
                        노을이 내 딱딱해진 가슴을
                        수천 개의 반짝이는 조각들로 만드는 걸
                        느끼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제비꽃들과 함께 웃기도 할 거야
                        그리고 귀 기울여 듣는 산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거야

                        하지만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해야 할지도 몰라
                        나를 아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내가 늙어서 넥타이를 벗어 던졌을 때 말야


                                                                           【류시화의 잠언시집『지금 알고 있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에서】



 




     





        나를 지우고 / 오세영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그 강에 가고 싶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을 볼 일이다
                            무엇이 바쁜가
                            이만큼 살아서 마주 할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도 저 혼자 돌아 간다

                             그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길에 관한 명상 - 이외수

 

 

 

[1]..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선사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길을 간다
.

 

 

 


[3]..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

 

 


[4]..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5]..
지혜로운 자는 마음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Alone on the Road (나홀로 길을 걷네)

Svetlana



Trees at the Rec

Trees at the Rec By: Chris Spracklen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가는

그대는 바람이였네



세월은 덧없이 흘러

그대 얼굴이 잊혀 갈 때쯤

그대 떠나간 자리에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그대를 기다리리



눈이 내리면

늘 빈약한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대



잊혀진 추억들이

눈발 속에 흩날려도

아직은 황량한 그곳에 홀로 서서

잠 못 들던 숱한 밤의 노래를 부르리라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어둠 속에

서글펐던 지난날의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간

그대는 바람이었네





  기다림의 나무 / 이정하









Misty morning on the A37

Misty morning on the A37 By: Chris Spracklen











Lone tree in the mist

Lone tree in the mist By: Chris Spracklen











Misty morning, Martock

Misty morning, Martock By: Chris Spracklen











Evening glow

Evening glow By: Chris Spracklen











Start of the bluebells

Start of the bluebells By: Chris Spracklen









Moat walk, Great Chalfield Manor

Moat walk, Great Chalfield Manor By: Chris Spracklen 











Fence and path, The Vyne

Fence and path, The Vyne By: Chris Spracklen











Shady lane

Shady lane By: Chris Spracklen










Reflection in Loch Garten

Reflection in Loch Garten By: Chris Spracklen











House and pond, Lake District

House and pond, Lake District By: Chris Spracklen











Mist over Ullswater

Mist over Ullswater By: Chris Spracklen











Boathouse, Ullswater

Boathouse, Ullswater By: Chris Spracklen











Acer and Pantheon 2008

Acer and Pantheon 2008 By: Chris Spracklen











Turf bridge, Stourhead

Turf bridge, Stourhead By: Chris Spracklen











Bottom lake, Stourhead

Bottom lake, Stourhead By: Chris Spracklen











Bridge and colours, Stourhead

Bridge and colours, Stourhead By: Chris Spracklen











All the colours of autumn

All the colours of autumn By: Chris Spracklen











Classic autumnal beauty

Classic autumnal beauty By: Chris Spracklen











Acer and Pantheon

Acer and Pantheon By: Chris Spracklen











Blossom and tree, Stourhead

Blossom and tree, Stourhead By: Chris Spracklen











Do the swans know it's autumn?

Do the swans know it's autumn? By: Chris Spracklen











Robin at Stourhead

Robin at Stourhead By: Chris Spracklen











Little folly, Stourhead

Little folly, Stourhead By: Chris Spracklen











Golden glow, Stourhead

Golden glow, Stourhead By: Chris Spracklen











Sundown at Burrow Hump

Sundown at Burrow Hump By: Chris Spracklen











Sunset by Bridport

Sunset by Bridport By: Chris Spracklen 











Clump of trees

Clump of trees By: Chris Spracklen











Burrow Hill

Burrow Hill By: Chris Spracklen











Farm lane near Dittisham

Farm lane near Dittisham By: Chris Spracklen















Chris Spracklen Photography



Chris Spracklen: Photographer at photo.net



I'm a church pastor who's been shooting digitally for about 4 years ~ as of August 2006!

It's a hobby that helps me unwind and one   that overflows into my work, by way of cards,

posters, PowerPoint slides, etc. It's also a hobby that pays for itself as I've shot a

few weddings and sold a few images via my Photoase page. I've also had a few images

published in books and magazines, which is very satisfying. I've still got a great deal

to learn, but most of what I've picked up so far has been down to the very helpful tutorials

in Digital Photo magazine and the advice I've had from friends on Photo.net and the excellent

PhotoPoints site. Thanks for your thoughts and comments ~ I appreciate them all.

Best regards, Chris.   Personal home page/http://www.pbase.com/moorlands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1996년>



 

<사진출처 : 조블
바람처럼 (tellme22)님>


 

한계령 - 양희은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버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 -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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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IZONS CHIMERIQUES  -JEAN PHILIPPE

-= IMAGE 1 =-

                                                                                                                             ▲ 대원사 계곡 2005,6,15

 



 

산을 배경으로 구름을 짊어지고
내려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등을 떠밀며 바람이 말했다
정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야
제때에 내려가야 아름다운
노을을 등질 수 있지
하산길이 더 위험하거든

꽃을 피운 건 말간 물이듯
나를 키운 건 말간 눈물이었다
눈물을 이해하려 산을 오르면
땀으로 온몸애 젖는다
정상은 땀을 흘린 자에게
잠시 내어 주지만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 침묵하는 연습 *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조용히 웃던 그대는

                                       이 순

 

 

 



조용히 웃고 있던 그대를
세월이 가면 꽃이 지듯이
잊어버릴 줄 알았다.

잊어버려도
무난히 살아질 줄 알았다.

허나 그대를 다시 만난 순간
잊어버리려 그 오랜 세월을
절망의 꽃으로 단단히 장식했던
그것이 부질없던 맹세임을 알았다.

아직도 그대는 잔 물살 같은
고요한 웃음 밖에 지을 줄 모른다.

아직도 그대는 그 물결 위에
견딜 수 없는 그리움 하나 띄워놓고

이 세상 외로움 그대 것인 채
그렇게 조용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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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녁의 노래

    강은교



    저물녁에 우리는 가장 다정해진다.
    저물녁에 나뭇잎들은 가장 따뜻해지고
    저물녁에 물위의 집들은 가장 따뜻한 불을 켜기 시작한다.
    저물녁을 걷고 있는 이들이여
    저물녁에는 그대의 어머니가 그대를 기다리리라.
    저물녁에 그대는 가장 따뜻한 편지 한 장을 들고
    저물녁에 그대는 그 편지를 물의 우체국에서 부치리라.
    저물녁에는 그림자도 접고
    가장 따뜻한 물의 이불을 펴리라.
    모든 밤을 끌고
    어머니 곁에서.

     

     

     

     

     

     

     

     

     

    -= IMAGE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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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낮고, 느리게 살기


    우리들은 분명 문명의 혜택 속에서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 문명이 얼마나 야만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보려 하지 않는다

    느린 평화와 조촐한 행복
    끝없는 자유와 아름다운 창조
    따스한 사랑과 한없는 존경
    적막한 기다림과 오랜 그리움 같은 사람의 덕목들은
    이제 자취를 감춰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크고 빠르고
    거대하고 화려한 것들을 찾아 바쁘게 헤맨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마법의 손의 조종에 홀린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쫓아다닌다

    이것인가 싶으면 이게 아니고
    저것인가 싶으면 저게 아니다
    모두 바쁘게 흘러다니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진정한 소통은 막혀 있다
    노래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럴 때는 내가 왜 여기 이 자리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분명 무엇인가
    중요한 것들을 빼먹고 허둥지둥 살고 있다

    이 바쁜 때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흘끗거릴지 모르겠지만
    우린 좀 천천히 세상과 나를 들여다보며 가고 싶다
    아니 살고 싶다

    무엇이 그리 바쁜가
    어디를 어디로 왜
    그리 부산하게들 달려가는가

    저기 있는 산도 좀 보자
    저기 가는 저 노인의 발걸음이라도
    좀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저기 서 있는 나뭇가지에 수도 없이 피어나
    작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파리라도
    좀 한가하게 앉아 바라보자

    마른 땅에 떨어지는 한 줄기 빗방울
    허공을 흘러오는 작은 눈송이들
    한적한 공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저 들 끝에 묻어오는 소낙비
    저물어 어두운 골목길 흐린 불빛 속에서 새어나오는
    아내와 남편의 한가한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들은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챙기고 싶다
    좀 천천히 가고 싶다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을 보이고 싶다

    사람들이 모여들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이 번잡하고 빠르고 거대한 세상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 같은 한가한 그늘을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거기 와서 지친 몸들을 쉬게 하고 싶다

    수도 없이 많은 느티나무 이파리를 바라보며
    내가 사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며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 되게 하고도 싶다

    작고 느리고 따사로운 것들이
    세상을 천천히 오래오래 적시는 외로움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이 불러오는 오만과 독선으로
    인간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병들어 죽어간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자연에게 반문명적이다
    크고, 거대하고, 화려한 것들은 재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또 다른 얼굴을 하고 겁나게 달려온다

    작고, 낮고, 느린 것들은
    이 세상에 사소하고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인간들의 맨살에 천천히 가닿고 깊숙이 스민다
    우린 그렇게 시대착오적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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