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캐나다 룬레이크에 사는 누이동생을 만나본 다음 거기서 약 60km 떨어진 메도레이크라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타이어가 터지고 말았다.
여분의 타이어는 가지고 있었으나 잭이 없었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에서 덩치 큰 젊은이가 혼자 서 있으니 아무도 나를 도우려 하지 않을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반대방향에서 달려오던 차 한 대가 멎었다.
나이 지긋한 부인이 차에서 내려 다가오더니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 부인은 잭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타이어를 갈아끼우면서 혼자 있는 낯선 젊은이를 도우려고 차를 세우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부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웃으면서 차 안에 앉아 있는 백발의 할머니를 가리켰다.
“우리 어머니가 같이 타고 계시거든요.”





나는 13살때 내 코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도 내가 성형수술을 받는 데 동의하셨다.
유명한 성형외과를 찾아가서 의논을 했더니 의사는 수술이 간단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수술을 받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다음에 한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 수술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선생님은 왜 그렇게 큰 코를 수술하지 않으셨죠 ?”





우리 고모는 미국인과 결혼해서 캘리포니아에 사신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큰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큰아버지는 고모네 집에 국제전화를 거셨다.
고모부기 전화를 받자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큰아버지는 한참 망설이다가 “순애” 하고 고모 이름을 말했다.
고모부는 서툰 한국말로 고모는 일하러 나갔다고 말했다.
잠시 후 큰아버지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캘리포니아,펑 ?”





이발소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이발사가 25분 동안 어떤 젊은이의 숱이 많은 머리를 자르고 다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의자에 앉아 이발사에게 수도사처럼 가운데 부분이 모두 빠진 내 머리를 보이며 뒤와 옆만 조금 잘라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와 같은 경우에는 이발료를 할인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발사는 이렇게 대꾸했다.
“할인이라뇨? 손님에겐 머리카락을 찾는 수고료를 추가로 받아야겠는걸요."





나는 한동안 일요일 아침마다 같은 식당에 가서 아침 식사로 팬케이크를 시켜 먹곤 했다.
메뉴에는 '팬케이크 세 조각'이 라고 적혀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두 조각을 시켰다.
어느 날 나는 여종업원에게 내가 팬케이크를 두 조각만 시키는 것이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주방장은 선생님을 무척 좋아해요. 선생님이 오실 때 마다 팬케이크 한 장을 자기가 먹을 수 있으니까요.”





제주도 여행을 위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이륙했지만 내 자리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쪽으로 가서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리길래 뒤돌아 보니 여승무원이 봉지를 들고 서서 말했다.
“멀미가 심하신가 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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