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농사꾼] <3> 경남 하동 김종관씨
녹차냉면으로 이룬 '부농의 꿈'
녹차수제비·만두… 10여가지 제품 개발
대리점 80곳 직접 개척… 연 2억원 넘는 순소득
하동=김홍수기자 hongsu@chosun.com
입력 : 2005.04.13 18:10 46' / 수정 : 2005.04.13 19:11 40'

지난 3월 말 매화꽃이 만발한 경남 하동 화개동천 계곡. 쌍계사를 마주 보고 있는 산비탈에 ㈜산골제다 농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 김종관씨가 수확을 앞둔 녹차나무 상태를 살피고 있다. 이곳의 야생 녹차나무는 키가 무릎 높이 밖에 안 되지만, 수령이 40-40년에 달한다. / 김홍수기자
농장 이름에 ‘주식회사’ 간판이 붙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농장주이자 대표이사인 김종관(43)씨를 만나자 궁금증은 곧 풀렸다. 6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김씨는 1만2000평의 야생 녹차 밭을 가꾼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농장 한쪽에 공장까지 차려 녹차냉면<사진> 등 녹차 가공 식품을 만들어 전국에 판다. 이에 따라 그는 연간 2억~3억원의 소득을 올린다.

김씨가 녹차 가공품으로 먹고 살게 된 사연은 이랬다. 그는 1980년 고교 졸업 후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 취업해 8개월간 직장생활하며 도회지 정착을 시도했다. 하지만, 도시생활은 실속도 없고 왠지 공허했다. “당시 월급이 13만원이었는데, 하숙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요. 밑 빠진 독 같은 생활이 너무 한심스러워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귀향 후 김씨는 산기슭에 무더기로 자생하고 있는 야생 녹차나무에 주목했다. 당시 야생 녹차 나무는 4~6월에만 주민 소득원이 됐다. 6월이 지나면 찻잎이 억세져 녹차용으로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센 녹차잎엔 엽록소와 탄닌 성분이 많아 기능성 식품으로서의 효용성은 녹차용 잎보다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녹차 엑기스를 추출해 상품화하면 돈이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동업자를 구해 제품 개발에 성공했지만, 판로가 개척되지 않아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은 생소한 엑기스 제품에 거부감을 보였어요. 참담한 실패였죠.”

야반도주해 4년여간 도망다니던 김씨는 사태가 정리된 뒤, 1996년 ㈜산골제다를 만들어 재기에 나섰다. 이번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형태로 개발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시행착오 끝에 녹차잎 분말과 녹차 원액을 밀가루에 혼합하는 방식으로 녹차냉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2년 8월엔 특허까지 받았다. 용기백배한 김씨는 국수, 수제비, 만두, 떡국,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 10여가지의 녹차 가공식품을 잇달아 개발했다.

김씨는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무리한 사업확장은 자제하고, 판로도 대형 유통업체는 배제한 채 독자적인 판매망을 구축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대기업과 손을 잡으면 당장은 편하게 돈을 벌지 몰라도 철저히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고집과 발품 덕분에 산골제다 녹차 가공식품을 파는 대리점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 현재 80여개에 이른다. 또 이곳 제품으로 만든 음식만 파는 음식점도 100여곳에 달해 제품의 안정적인 수요처도 확보됐다.


김씨의 성공은 지역사회 발전에도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녹차잎을 사시사철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주변 농가소득을 3배 이상 향상시켰다. 녹차 가공식품 재료로 들어가는 연간 30~40t의 녹차잎 중 김씨 농장에서 생산된 것은 10% 수준이며, 나머지 90%는 이웃 녹차 재배 농가들로부터 수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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