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농사꾼] <6·끝> 참다래사업단 정운천 회장
생산~유통 전과정 한 사업단으로 묶어
"개방이 대세라면 차별화만이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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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이 처음 키위와 인연을 맺은 것은 80년대 초반. 고려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키위 묘목 수입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키위야말로 장래성 있고 돈 되는 품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전남 해남에 터를 잡고 직접 키위 농사를 시작했다. 만 5년5개월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며 키위 재배에 매달리던 정씨에게 첫 위기가 찾아왔다. 87년 태풍 셀마로 모든 것이 날아가는 큰 피해를 입은 것. 설상가상, 89년엔 키위시장 개방이란 날벼락이 떨어졌다.
위기 속에서도 정씨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대응해 나갔다. 첫째는 국내 키위산업의 일원화였다. 다국적 키위 기업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키위 생산부터 선별·포장·저장·유통·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사업단으로 일원화해 의사 결정과 조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탄생한 참다래사업단은 국내 최초의 농민주식회사였다.
둘째는 ‘적과의 동침’. 외환위기로 키위 판매량이 줄어들었을 때 경쟁국인 뉴질랜드와 과감히 손을 잡았다. 11월~다음 해 4월은 국산 키위를 생산·유통시키고, 5~10월까지는 뉴질랜드산을 수입·유통시키는 방식으로 계절과일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셋째는 차별화된 품질을 앞세운 유통망 장악. 키위를 따서 그냥 파는 게 아니라, 딴 후 숙성시켜 더 달고 부드럽게 만드는 ‘후숙(後熟)’ 과정을 개발했다. 이렇게 수입산과 차별화 한 품질을 가지고 백화점·할인점에서 직판 행사를 꾸준히 벌였고, 그 결과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넷째는 과감한 미래 투자와 신규사업 진출이다. 정씨는 외환위기 직후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구마를, 키위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택했다.
3년을 매달린 끝에 그는 고구마의 신선도와 품질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저장법과 세척 이후에도 붉고 싱싱한 고구마 본래의 색을 살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구마는 이제 변비·콜레스테롤 제거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고부가가치형 작물로 탈바꿈했다. 고구마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년 만에 사업단 전체 매출액의 40%를 웃돌 정도로 급성장했다.
정 회장은 “농산물 시장 개방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우리의 자연여건과 첨단기술을 활용한 차별화·고급화 전략만이 살 길”이라며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들에게 손 벌리지 않는 농업인들의 독립정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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