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을 나갈 때 과장은 금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장부들을 집어넣고 있었다.
식사 후 돌아왔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거기 있었는데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모양이 무슨 애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 쭈그리고 앉아서 무얼 하고 있소 ?" 내가 물었다.
"당신이 어서 돌아오기를 빌고 있었지." 과장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금고의 자동문이 쾅 닫히어 과장의 넥타이 양 끝을 꽉 물어버렸던 것이다.
열쇠는 과장의 등 뒤 책상위에 놓여 있었는데 그의 팔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어느 날 밤 늦게 차를 몰고 뉴저지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뉴욕시에서 링컨터널로 들어가는 길은 으례 차가 조금씩 밀리곤 했다.
그런데 앞쪽 어디에서 차 한 대가 고장이 났는지 터널입구는 꽉 막혀 있었고 여러 차선을 따라 가던 차량들은 단 두 개의 차선으로 몰려가야만 했다.
그러자 차는 출퇴근 시간처럼 잔뜩 밀리게 되었고 신경질이 난 운전사들은 귀가 멍멍할 정도로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차가 밀리는 것보다 시끄러운 경적 때문에 더 기분이 언짢았다.
그때 새로 산 내 차에 앰프 성능이 좋은 테이프 테크가 부착되어 있다는 것이 생각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쇼팽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를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볼륨을 최고로 올리고 차창을 열었다.
곧 놀라운 반응이 나타났다. 가까이에 있던 차량들의 경적이 끊어졌고 이어서 뒤쪽 차량들의 경적도 잠잠해졌다.
차마다 차창이 열리고 운전사들이 좌석에 느긋하게 기대는 모습이 보였다.
그로부터 20분 동안 차량들은 질서정연하게 터널 입구를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이윽고 차량들이 제각기 자기네 차선으로 진입하게 되자 운전사들은 내차를 지나치면서 모두들 웃음띈 얼굴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
피아노의 거장 호로비츠의 연주는 분명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장소에서 감상되었겠지만 그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우를 받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내가 마침내 적합한 '결혼상대'를 만났다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동료들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나는 그 남자의 여러가지 장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책도 많이 읽었고 글쓰기도 좋아하고 유머감각도 풍부하고 요리도 아주 잘할 뿐아니라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자기가 직접 설계했대"
"게다가 아주 차분한 사람이야"
말을 마친 나는 동료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면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 한 동료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혼자 사는 편이 낫겠는걸."

 

 

 


나는 대학에 다닐 때 해변가에 있는 하숙집에 들었었다.
하숙집 여주인의 남편이 어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저녁 생선을 먹었다.
생선을 너무 많이 먹어 물린 나는 생선을 소파 밑으로 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선을 버리면 하숙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그것을 먹어치우곤 했다.
이렇게 아무 일 없이 한동안 잘 지냈는데 어느 날 여주인이 내 뒤로 살금살금 다다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봐요.학생.우리 집 고양이는 3주일 전에 트럭에 치여 죽었어요."

 

 

 


영국작가 엔터니 포웰은 어느 작가회의에 참가했다가 미국의 저명한 작가 고어 비달 바로 곁에 앉아 겪었던 경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함께 앉아서 회의중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었는데 고어 비달이 어떤 인도 대표로 온 작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그런데 비달의 설명이 재미있었다.
"나는 늘 어김없이 머리에 터번을 두른 사람 곁에 앉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찍으려고 드니까요."

 

 

 


워싱턴에서 포토맥강을 건너 남쪽 교외,즉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여러 역사적 건물들을 관광하다가 어떤 교회에 들렀다.
안내원은 조지 워싱턴이 그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다고 설명하면서 그가 앉았던 걸상을 가리켰다.
그러자 잠시 경건한 침묵이 흘렀다.
관광객들의 표정이 엄숙해지자 안내원은 신이 났다.
안내원은 당시 교회의 예배는 몹시 길었으며 세 시간씩이나 걸리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 관광객 가운데 누군가가 제법 큰소리로 중얼거려 엄숙한 분위기를 깨 버렸다.
"응,그러니까 조지 워싱턴이 여기서도 자고 갔군 !"
꽤 오래 됐다는 여관들은 저마다 조지 워싱턴이 자기네 여관에서 자고 갔다고 선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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