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남편의 찬 시중을 10년 동안이나 들다 보니 따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처럼 들춰 보지도 않던 요리책을 꺼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만들다 보면 소화가 잘 안되는 음식이 이것 저것 나오기도 하니까 남편이 점점 실망하는 눈치였다.
어느 날 오후 갑자기 화재자동경보기가 울리길래 난로 위에 기름을 올려 놓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허겁지겁 불길을 끈 다음,시커멓게 그을은 기름냄비를 식히기 위해 마당에 내다 놓았다. 
얼마 후에 밖을 내다보니 남편이 현관 앞 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시커멓게 탄 냄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부엌으로 들어서더니 단호하게 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도대체 뭘 만 들었는진 모르지만 난 그거 안먹을거야 !”

 

<전기의 무서움>



남편하고 나는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깥에서 다른 일로 약속을 할 때는 미리 시간을 잡아야만 둘 중의 한 사람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내가 남편에게 이런 쪽지를 남겨 놓았었다.
“목요일 11시에 의사한테 가 봐야 해요. 아이들은 당신거예요.”
다음날 아침에 보니 눈빛이 검은색인 남편이 이런 쪽지를 남겨 놓았다. 
“아이들이 내 것이라는 당신 말을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구려. 
나는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의 눈빛이 왜 파란가 하고 무척 궁금했었거든.”

 

 

<전공을 살린 창업>

 


네거리에서 정지신호가 떨어지자 차 한 대가 멎었는데 그 자동차 앞 부분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열심히 운전자를 보고 한참 손을 흔들어대자 그는 나를 보더니 차에서 내려서 보닛을 열어 보았다. 
속을 보니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엔진 위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는 상황이 어색하게 된 것을 얼른 알아차렸다. 
그는 고양이를 내게 건네 주면서 “아주머니, 이놈 잠깐만 안고 계세요” 하고 나서 보닛을 꽝 하고 닫고 차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고양이에게 '카뷰레터'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톱니 반지>


수퍼마켓이 몹시 붐비고 있었다. 
내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손님은 유난히 많은 물건을 샀다. 
점원이 지친 표정으로 그 여자의 마지막 봉지를 들어 올리는데 그만 밑이 빠지면서 봉지에 들었던 물건들이 마룻바닥에 와르르 쏟아지고 말았다.
그러자 점원은 손님을 보고 얼떨결에 이렇게 내뱉고 말았다. 
"요즘은 종이백을 만드는 게 전과 달리 몹시 약해서 탈이에요. 댁의 문 앞까지는 가서 터져야 정상인데 말예요 !”

 

 

<요즘 자전거>

 

 

누이가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자 아버지가 급히 물건을 사야 할 때만 쓰라고 신용카드를 보내 줬다. 
그런데 곧 그 '긴급용도'속에 새로운 스키 장비 구입, 라스베이거스로의 관광여행 따위가 들어 있는 게 드러나자 아버지는 실망을 하셨다. 
얼마 후 누이가 집에 와서 모두 식탁에 함께 앉게 되었다. 
아버지는 두리번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뭐가 타는 냄새가 나잖아 !" 하면서 누이의 핸드백을 보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뜨거운 그릇을 쥘 때 쓰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서 “바로 이거군 !” 하면서 누이가 정신없이 긁어댄 신용카드를 조심스럽게 집어 내더니 냉장고 문을 열고 얼른 집어 넣었다.
누이는 그제서야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리게 됐다.

 

<절묘한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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