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이비인후과 병원은 대기실뿐만 아니라 진료실까지 늘 환자들로 붐빈다.
어느 날 나와 함께 병원에 간 여섯 살짜리 아들이 진료실 책상에 놓여 있는 명패(그 명패에는 한자로 『의학박사 전문의 이만진』이라고

쓰여 있었다)를 보더니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며 수선을 피웠다.
"읽어줄까 ? 병원에선 조용히 해야 해 ."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그러자 우리 집 개구쟁이는 명패에 쓰여 있는 한자를 집게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꼭꼭 짚어가며 이렇게 읽었다.
"병원에선 조용히 해야 해."





우리가 시골로 이사한 후 우리 집 고양이 새디는 남달리 쥐를 잘 잡게 됐다.
내가 우리 암고양이를 칭찬해주자 고양이는 잡은 쥐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어 남편이 버리기 편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 새디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잘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죽은 쥐가 소파 위의 TV리모컨 옆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물론 새디의 배려였다.





만성절을 맞아 슈퍼맨 복장을 한 남자 아이가 찾아와 과자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과자 보따리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애는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기 때문에 엄마가 대신 메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넌 슈퍼맨이잖니 ?"하고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그애는 가슴에 큼직하게 새겨진 'S'자를 내려다보고는 그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줌마,난 슈퍼맨이 아니에요.이건 그냥 파자마란 말이에요 !"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칼 립큰 2세는 리틀야구선수로 뛰던 어린시절부터 꽤 침착하고 당돌했던 모양이다.
"언젠가 마운드에서 투구할 때 그애가 4명의 타자에게 연속으로 사구(死球)를 냈어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코치가 칼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운드로 뛰어갔는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싱긋이 웃으면서 돌아왔어요.
칼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었어요. ‘처음부터 저 친구들이 너무 성가시게 굴지 못하게 해야잖아요 ?'"





고르바초프가 죽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자본주의 지옥과 사회주의 지옥 중 하나를 고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호기심이 나서 자본주의 지옥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몇 달 동안을 밤낮없이 악마들이 고르바초프한테 석탄을 쏟아붓는가 하면 포크로 찌르고 유황불 세례를 퍼붓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다시 베드로에게 가서 사회주의 지옥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사회주의 지옥엘 들어가 보니 공기가 서늘한데다 불기도 없길래 궁금해진 고르바초프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죄인들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여기 올 때는 심한 고문과 고통이 많았었죠. 그런데 그 후 얼마 안돼서 유황 부족현상이 생기더니 지금은 수입석탄을 쓰는데

그것 마저 없어지면 불을 못 피우게 생겼습니다."





오후 다섯 시 반이었다.
수퍼마켓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시무룩했다.

자기 차례가 오자 계산대 앞에 있던 손님이 월급으로 받은 수표로 식료품 값을 내려고 했다.
그러자 계산을 하고 있던 점원이 사정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더니 "2층 금고에서 돈을 더 가져와야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옆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자 시무룩하던 얼굴들이 일시에 환해졌다
"괜찮아요, 아가씨. 내가 산 것들은 어차피 내일 아침에 먹을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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