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혼시절이었던 1940년대초에 부모님들은 수중에 동전 두 닢을 가져본 일이 드물 만큼 가난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여러 조그마한 시골 교회로부터 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어느 일요일 두 분은 차를 몰고 50km 떨어진 곳에 설교를 하러 가셨다.
예배후에 한 교인이 문에서 전송하며 봉투 하나를 꺼냈다.
“사례금을 드릴 형편이 못돼 죄송합니다. 이건 오늘 아침 헌금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투를 열어보니 67센트가 들어 있었다.
“이거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되겠지만, 67센트를 벌기 위해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잖아.”
이렇게 아버지가 투덜거리자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그래요. 거기엔 제가 넣은 헌금 25센트도 포함되어 있다구요.”
“나도 25센트를 넣었어.”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어느 날 저녁,맡겨 둔 고양이를 데려 오려고 동물병원에 들렀는데 시골 출신의 그 곳 잡역부가 “안녕하슈 ?” 하고 내게 인사를 건냈다.
“형편없소이다. 출근길 버스에서 내내 서 있어야 했고,퇴근길에는 딱딱한 철제 의자밖에 없는 고물버스를 타야 했죠.
거기다 고양이 발을 꿰맨 치료비가 얼마나 들지도 모르니 정말 재수없는 날이오” 하고 내가 대꾸했다.
병원 잡역부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어야 불평도 하지요,안 그렇겠소 ?"
우리 집에는 개가 세 마리 있는데 저희들 사이에 대결과 경쟁이 여간 아니다.
제일 나이 위인 슈가는 낮잠자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묘책을 알고 있다.
제가 차지하고 싶은 자리에 다른 놈이 있으면 슈가는 뒷문쪽으로 뛰어가서 몇 번 나지막이 왕왕 짖는다.
그러면 자보와 딜리도 그리로 달려가서 무슨 일인가 살펴본다.
그러는 동안,슈가는 여전히 짖으면서 슬슬 뒷걸음질쳐서 제가 원하던 자리를 차지한다.
슈가가 늘 쓰는 계략인데도 번번이 두 놈이 속아 넘어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어느 날 저녁 내가 벽난로 앞에서 쉬고 있는데 슈가가 또 그 깜찍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몇 분 동안이나 문 가에서 계속 짖어 댔고 다른 두 마리도 따라 짖었다.
이번만은 참말로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일어나서 뒷문 쪽으로 가 보았다.
별일이 없길래 거실로 돌아와 보니 슈가는 바로 내가 앉아 있던 의자 위에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
시카고 근교로 이사했을 때 통학버스가 운행되어 기분이 좋았다.
더우기 항상 우리 집 앞에서 차를 멈추고 아들 마이크를 기다려주던 친절한 운전사 프랭크가 고맙기 짝이 없었다.
하루는 마이크가 아파서 밤새 한 잠도 못 잤다.
너무 지쳐 버스가 오기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커다란 종이에 몇 자 적어 프랭크가 볼 수 있도록 창문에 붙여 놓았다.
그날 아침 이웃사람이 나를 깨우더니 창 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집 앞에는 차를 몰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가 붙여 놓은 글을 읽느라고 속도를 줄이는 바람에 교통혼잡을 빚고 있었다.
반쯤 잠든 상태에서 긁적거려 놓은 글자를 다시 보니 : “오늘은 들르지 마세요,프랭크. 그는 아파서 집에 있어요.”
비행기가 플로리다주 탐파를 떠나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로 가는 도중 두 시간쯤 지났을 때 기내방송이 들려왔다.
“신사숙녀 여러분, 저는 이 여객기의 기장입니다.”
기장은 명백한 남부지방 액센트로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먼저 나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미니애폴리스의 현재 기온은 영하 29°C 입니다.
다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역풍으로 말미암아 도착시간이 20분 늦어지겠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여서 우리는 어머니가 쓸쓸해 하실까 몹시 안쓰러웠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지내자고 했더니 어머니는 기꺼이 응해 주셨다.
우리는 모두 공항까지 마중나가 어머니를 모셔왔다.
집에 와서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선물하려고 모아 두셨던 돈으로 산 금목걸이를 드리자 어머니는 눈물을 홀리시며,
“너희 아버지한테 선물을 못하는 것은 처음이구나”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날 밤 늦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와 남편이 나를 깨우길래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이층 계단 끝까지 올라가 보았다.
트리의 불빛이 깜박이고 있는 가운데 어머니는 평소 두 분이 좋아하셨던 노래들을 부르고 계셨다.
다음날 훨씬 명랑해지신 어머니께 간밤에는 음악감상을 잘했다고 말씀드렸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를 위해 부른거란다. 보이진 않지만 어디에선가 듣고 계시겠기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좋아하시던 노래를 모두 불렀단다.”
지금은 어머님마저 타계하셨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하면 언제나 그때 어머니가 부르시던 노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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