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아침 라일락꽃을 한 아름 사서 커다란 꽃병에 가득 꽂아놓았었다.
저녁 무렵에는 온 집안이 꽃향내로 가득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지낸 봄철이 생각났고 우리 집 뒷마당에 있던 큰 라일락나무 숲이 생각났다.
나의 증조모님이 그 라일락나무들을 어떤 배에서 사 가지고, 집을 짓기 위한 나무들을 베기도 전에 뜰에 심으셨다고 한다.
그 후 증조부님이 통나무집을 지으시자 그 라일락나무들은 그 집 문간에 서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통나무집은 창고로 쓰여졌고 그 후에는 다시 도구들을 넣어두는 창고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라일락나무들만은 안 건드렸다
그 토요일날 아침 라일락꽃 향기가 되살려 준 추억은 너무도 그립고 애틋하여 나는 라일락나무를 구하러 나셨다.
시 변두리의 어느 작은 유치원엘 들렀더니 그곳을 돌보는 늙그수레한 사람이 있기에 라일락 얘기를 꺼냈다.
그 노인네는 얼굴까지 환하게 빛내며 반가와하더니 삽과 물통을 들고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노인의 집 뒤에는 라알락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150년 된 나무들이죠. 우리 증조모께서 옛 나라(영국)에 사는 동생을 이 나라로 부르며, 올 때 꼭 가져 오라고 일부러 시키신거라오."
이렇게 말한 노인은 숨을 깊이 들이켜 향기를 맡았다.
이어 "마당에 이런게 있다는 건 정말 훌륭한 일이 아니겠소 ? 마치 천국의 향기 같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다시 우리 집 뒷마당에 라일락꽃들을 갖게 되었다
외과 전문의 네 명이 휴식 시간에 둘러 앉아 어떤 수술 대상자가 가장 편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첫번째 의사는 회계사를 들었다.
"내 생각엔 회계사를 수술하는 것이 가장 쉬울 것 같아. 이 사람들 몸을 째보면 온통 숫자로 가득찼을테니 말이야."
두번째 의사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수술하는 데는 사서가 가장 편할 것 같아.열어보면 신체 내부가 모두 알파벳 순서대로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을테니"
세번째 의사가 끼어들었다.
"난 엔지니어가 제일 좋을 것 같아. 그 사람들은 수술한 일부 기관을 마무리하지 않고 수술을 끝내더라도 이해해줄테니까 말일세"
가장 경험이 많은 네번째 의사가 입을 열었다.
"난 역시 변호사가 수술하기에 제일 편할 것 같아. 변호사들이야 냉혹하니 심장도 없을 것이고 줏대가 없으니 등뼈도 없을 것이며
또 벨이 없으니 창자도 없을테니 말야. 그리고 머리와 엉덩이가 별차이 없어 .마음대로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편하겠나 ?"
언젠가 나는 내가 만든 게살 남비요리를 칭찬한 친구에게 그것을 만드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얼마 후에 그 친구로부터 점심초대를 받고서 집으로 찾아갔더니 나를 열광적으로 맞이해 주었다.
"루나, 무엇인지 맞추어 봐. 나는 오늘 네가 가르쳐 준 그 게살 요리를 준비했단 말이야."
식당으로 들어가면서 그 친구는 나에게 요리법을 약간 바꾸었다고 털어놓았다.
신선한 게살을 구할 수가 없어서 통조림 참치로 대신했고 미묘한 맛을 내는 소스 대신에 버섯수프를 썼다고 했다(만들기가 쉽기 때문에).
식료품점에서 요리 자료를 구입할 때 세리주와 껍질을 벗긴 아몬드는 깜빡 잊어 버렸다고 했다.
잠시 후에 우리를 초대한 친구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그 자랑스러운 요리에 큰 스푼을 집어 넣으면서 손님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만약에 이 요리가 맛이 없더라도 나를 탓하지 마세요. 나는 루나의 요리법을 따랐을 뿐이니까요.”
마거리트 대처여사가 영국수상이 되고 나서 체커스의 시골 수상관저에서 첫 오찬을 베풀었을 때.
그날 자원하여 음식 나르는 일을 한 젊은여성들은 어느 여성단체 회원들로, 모두들 약간씩 긴장해 있었다.
한참 오찬이 진행되던 중, 쟁반에 양고기를 가지고 온 한 아가씨가 손님쪽 접시 위로 쟁반을 너무 기울였기 때문에
고기가 쟁반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 바람에 소스며 고기 국물, 양다리 고기 등이 재상인 제프리 하우경한테 떨어져 하우경은 양복을 흠뻑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모두들 놀라 한참 침묵이 흘렀다.
다음 순간 그 음식 나르던 여자한테 얼른 달려간 사람은 대처여사.
대처수상은 그 여자 팔목을 꼭 붙들고, "자,아무 걱정 말아요, 아가씨. 이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 했다
내가 근무했던 하와이의 자연공원에서는 절벽 다이버들이 폭포안전요원 업무를 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싸늘한 날에는 헐렁한 보온용 스웨터를 덧입기 때문에 수영복 위에 단 안전요원 배지가 가려지곤 해서
외견상 그들이 안전관리요원인지 식별이 불가능했다.
어느날 물불을 안 가리는 세 소년이 놀러 왔는데 동료 안전요원인 낸시가 호숫가 얕은 곳으로 뛰어내리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어도
그들은 듣는 둥 마는 둥했다.
한술 더 떠서 그녀의 권위에 도전하듯이 한 소년이 반항적으로 말했다.
"자기가 무언데 이래라저래라 떠드는거야 ?"
"바로 이거다 "
낸시는 대답하면서 그녀의 안전요원 배지를 보여주려고 보온용 스웨터를 들어올렸다.
소년들의 놀란 눈동자를 보며 썰렁한 공기를 느낀 그녀는 자기가 그날 일찌감치 수영복을 벗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파티도 처음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러다 웬 어여쁜 젊은 여성이 얌전한 미소를 머금고 내게 다가왔다.
"브라운씨 아니신가요 ?”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나는 저 여자를 어디서 만났었던가 기억해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절 모르실거에요. 그렇지만 전 선생님을 위해 매일 기도를 드렸었죠.”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오래 전 2차 대전 때의 일이었다.
당시 그 여자는 케이프브리튼섬 마을의 여학생이었다고 했다.
"저의 아저씨 재스퍼씨를 아마 아실거에요.”
그 이름을 듣자 번뜩 기억이 되살아났다.
케이프브리튼에서 왔던 채스퍼라면 나처럼 캐나다 공군의 폭격기 편대장이었고 우리는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3년이나 함께 지냈었으니까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재스퍼아저씨가 포로로 잡히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전 학교 가는 길에 조약돌 하나를 접어들고 작은 개울 위 다리에서 그걸 물속에
던지며 아저씨를 위해 기도를 올렸어요.
매일 아침마다 그랬죠. 하루는 재스퍼아저씨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같은 수용소에 역시 노바스코샤 출신의 조종사가 한 분 더 늘었대요.
그래서 그때부터 전 그 시냇물에 조약돌을 두 개씩 던지며 두 분을 위해 짤막한 기도를 드렸지요.
그 뒤로 사람의 수가 늘어 전쟁이 끝날 때쯤엔 등교길에 조약돌을 던지며 기도를 드려준 사람 수가 일곱분이었어요.”
그 여자는 또 조용히 미소지었다.
“선생님께서 바로 그 조약돌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아시고 싶으셨을 듯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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