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데이비드 루디스가 두 시간 이상 직장에 늦게 출근해서 그의 상사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늘어놓았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잠이 깬 그는 부엌으로 가던 중 라디오 시계의 전깃줄에 걸려 넘어졌다.
시계는 시간을 다시 맞추어야 한다는 신호로 12 : 00이란 숫자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갈증을 풀고 난 그는 부엌의 전자오븐에 달려 있는 시계가 1 : 06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방으로 돌아와 시계를 1 : 06으로 맞추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알람소리에 잠이 깬 그는 평상시 하던 대로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그는 TV를 켜고서야 비로소 이른 아침 프로그램들이 끝났으며 그때가 오전10시 30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순간 그는 전자오븐의 1 : 06이 시간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그저께 밤 부리토(멕시코 음식의 일종)를 데우기 위해 전자오븐에 넣었다가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꺼내는 바람에 남은 1분 6초를 가리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약 6년에 걸쳐 우리 오두막 앞에 있는 경사진 땅을 평평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그 땅에 배드민턴 코트를 만들 생각이다.
매년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친척들을 초대해서 낙엽 모으기 모임을 갖는다.
5살부터 87세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집 근처의 길과 숲에 있는 낙엽을 긁어 비닐 주머니나 쓰레기통에 담은 후
이 행사의 기획담당인 25살의 내 딸 캐시가 지시하는 장소에 버린다.
그러면 어린 사촌들은 그 낙엽이 어서 발효되어 퇴비가 되도록 하기 위해 낙엽더미 위를 걸어다닌다.
어느 해인가 캐시와 내가 앞쪽 베란다에서 우리의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걱정 마라. 언젠가 넌 배드민턴을 칠 수 있을 거다." 내가 말했다.
캐시는 84세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난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배드민턴을 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캐나다 빅토리아에 있는 캐머선대학교 시청각시설과에 근무하는 나는 교무처장의 지시로 프리젠테이션을 할 학장에게
가장 좋은 TV와 VCR를 갖다주게 되었다.
학장의 집무실은 교무처 건물 2층에 있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시청각 장비는 이동용으로서 커다란 손수레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하필이면 교무처 건물에만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결국 나사를 전부 풀어 우선 TV부터 2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다음 VCR 장비를 떼어내 옮기고 다시 쇠로 만든 그 무거운 손수레와 길다란 케이블을 모두 2층으로 들고 올라갔다.
다시 손수레에 하나하나 나사로 고정시키고 케이블을 연결한 다음 수레를 밀고 학장실로 들어갔는데 그렇게 하는데 20분이 걸렸다.
학장이 장비를 훑어보고 한마디했다.
"훌륭해 보이는군.5분 후에 출발해야 하니까 지금 아래층에 있는 내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주게."
초등학교 아동들에게 포르투갈 선조들이 많은 발견을 했다고 가르쳐주면서 일곱살 먹은 아이에게 옛날 사람들이 배를 타고 탐험하면서
겪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여러 달 동안 언제 육지를 발견하게 될지, 언제 집에 돌아가게 될는지도 모르면서 배에서 지내야 했다.
그들은 병에 걸려도 약이 없었으며, 가지고 간 음식이 썩거나 다 떨어졌을 때는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또 배를 좀더 빨리 가게 하려 해도 바람이 불어주지 않으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옛날 사람들이 겪은 이런 갖가지 어려움을 얘기해주니까 그 소년은 호기심이 놀라움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애는 옛날 사람들을 멸시하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왜 그러니 ? 이해가 안되는 것이라도 있니 ?" 내가 물었다.
"네. 왜 그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았죠 ?" 소년이 대답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경마장에서 낯선 젊은 여사 하나가 빌리 프레비티에게, "당신이 광고부장인가요 ?”하고 물었다.
빌리가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여자는 자기가 4불짜리의 5-10티켓(이 티켓을 산 사람이 열번의 연속경주 가운데 5번째 경주부터
10번째 경주까지의 우승마를 차례로 다 맞추면 상금을 탐)을 사려는테 절반을 부담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하면서 덧붙였다.
"만일 우리가 맞출 경우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상금을 반씩 나누기로 해요."
빌리는 그 일을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난 그 여자를 따돌리기 위해 2불을 그냥 주고 경주가 끝나 집에 돌아갈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죠.
그러다가 그 여자가 4불짜리 티켓에 적던 우승 예상마 번호가 생각났지요. 그 여자는 7000불 이상의 상금을 탔답니다.
며칠 후에 나는 그 여자로부터 편지를 한 장 받았지요. 2불이 동봉되어 있는 편지에는,'당신은 나를 바람맞혔어요' 라고 쓰여 있더군요."
내가 태평양의 '낙원'이라는 미드웨이섬에 주둔하고 있을 때 그곳에는 1700명의 수병, 군인가족, 문관. 청부회사 노무자 등이
문명사회의 갖가지 불안에서 벗어나 화목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우리는 자동차가 없어 교통혼잡에 시달리는 일이 없었고 또 공해나 범죄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했고 교사 1 인당 학생수는 평균 15명이었다.
10대 청소년들은 동네에서 못된 짓을 할 궁리를 하기보다는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3세 이상은 모두가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여 자연히 누구나 건강한 혈색을 지니고 있었다. 연중 300일 이상이 쾌청한 날씨였다.
그래도 미해군당국이 1978년 미드웨이섬 주둔병력읕 대폭 감축시키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했다.
"문명세계로 다시 돌아가게 되어서 기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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