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대간길을 10시간씩 걷다보면 아무리 우의가 좋다고 해도 옷이 젖기 마련이라 비오는 아침이 상쾌할 리가없다. 

아침밥을 먹는데 주인 남자가 자기집과 용추계곡을 소개하는 자작 앨범을 들고와 청산유수 같은 변설을 또 시작한다.  64살 먹은 이 주인은 뭐든지 막히는게 없고 사진설명이나 어떤 상황의 변경에는 자작시가 물 흐르듯이 줄줄 흘러나와 대꾸하고 맞장구 쳐주는데도 우리가 지친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한 번설은 오늘도 이어져 이 집을 짓게된 동기, 돌을 모으는 취미, 대간꾼들과의 친분,

이 집터가 얼마만큼 값이 올랐다는 자랑, 인터넷이나 지방지에 소개된 자신의 기사 등 도무지 끝이 안보인다.

 

 

 

 

 

버리미기재로 출발하기전에 식당 근처에 있는 선유동을 구경시켜 주겠단다.

선유동에 관한 설명도 최치원 글씨, 학천정 정자에 관한 설명, 이완용 각인 등 마치 그 옆을 흐르는 계곡물 처럼

막힘이없고 끝이없다.

 

 

 

 

 

산행 시작점인 버리미기재에 와서야 겨우 해방이 되니 안도의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버리미기재의 뜻이 “벌어 먹이기기”의 경상도 버전이 아니냐고 물으니 이 유식한 변설가는 “버리”란

보리의 옛 경상도말 이고 이 지방이 경사가 심해서 보리 한줄씩 밖에는 심지 못했다는 뜻이란다. 

확인을 위해서는 옛글을 가르치신 김영신 선생님을 모셔와야겠다. 

산행 점검을하고 출발하니 6:30분.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는 장성봉(915m), 악휘봉삼거리, 구왕봉(877m), 오늘의 하이라이트 희양산(998m)을

통과하는 18.8Km.  예상 시간은 10시간.  

첫 산은 장성봉이다.

 

 

 

 

 

 

길이 미끄럽고 경사가 심해 애를 먹으면서 올랐다. 

어제 11시간 40분을 걸은 탔인지 몸이 무겁워 정상 부근에 가서야 Death Point가 왔다.

드디어 장성봉(915m)에 도착했다. 

표고 455m를 예정대로 1시간 15분만에 올라왔다.

 

 

 

 

 

다음 봉우리는 악휘봉. 

5Km를 가야하는데 예상시간은 3시간 정도.

800m 전후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으나 군데군데 암릉이 많아 그저 발품으로만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안개로 시계가 겨우 몇 백미터 밖에 안된다. 

 아까운 경치를 모두 놓친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악휘봉은 정상을 올라가지는 않고 우회하면서 크게 돌아 미끄러운 바위들을 타며 은치재로 떨어진다.


 

 

 

 

 

큰 바위를 우회할 때는 이러한 철계단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은치재에서부터 봉암사 주지의 등산금지 팻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은치재를 지나 구왕봉(877m)으로....

              군데군데 산불로 조림사업을 다시해서 수종이 좋고 죽죽 곧다.


 

 

 

 

 

구왕봉(877m) 정상에 도착.  

비에 젖은 몸이 찹찹해 표정들이 밝지 못하다. 

구왕봉은 지름티재를 사이에 두고 희양산과 맞보고 있는데, 바위의 웅장함이나 산세가 희앙산에 못지않다.  

여기서 급경사로 표고 220m를 내려가야 지름티재 이고, 그곳에서 표고 350m를 올라가야 희양산이다.

특전단의 체력훈련이 따로 없다.  일부 대원이 지치는 모양이지만 할 수 없지.  그대로 갈 수 밖에...

 

 

 

 

 

지름티재로 내려섰다.  

옆에는 초소가 있어 봉암사 스님이 주말이면 등산객의 희양사 등산을 막는데 다행히 비가와서 오늘은 지키지를 않네.

희양사 바로 아래 있는 봉암사는 신라때부터 고승을 배출한 명사찰로서 일년에 4일밖에 산문을 열지않는

승려들의 수도장이다. 

그래서 희양산에 올라온 등산객의 “야호~~~”소리가 거슬린다고 그러는지, 아니면 희양산의 정기를

등산객이 야금야금 가져간다고 그러는지 등산을 금지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정상으로...

 

 

 

 

 

희양산 중턱에 서있는 멋있는 노송.   잠시 몸을 기대본다.


카메라가 우의안 배낭속에 있으니 한번 꺼내기가 귀찮아 사진이 점점 줄어, 둔한 필설로 바위들이나 암벽을

타는 장면들을 전달할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드디어 악명높은 희양산 암벽.

경사각도는 약 80도, 높이는 밧줄 6단에 약 100m.

바위 표면이 미끄러운데는 나무를 받혀놓은 곳도 있다.

오전 동안 비를 머금어 바위가 미끄러움 그 자체다.

한번 위를 쳐다보니 흠칫하다.

그러나 어쩌랴. 메달릴 수 밖에.

팔힘으로 당기고 발은 바위틈을 후빈다.

그동안 지쳤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  죽기 살기로 메달린다.

대장을 선두로 차례 차례.  다행히 사고없이 다들 올라왔다. 

대장은 전원이 무사한 것에 하느님과 봉암사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희열이란 바로 이런것 인가?

성취감을 맛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정말 평소에 안하던 “야호~~~”소리를 지르고 싶다.

 

 

 

 

 

1m 밖은 깎아지른 낭떠러지.

안개가 간간이 벗겨질때 맞은편 구왕봉의 웅장한 자태가 어른거린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끝났다.


 

 

 

 

 

신라때 축성된 희양산성 이다.   일부분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고구려와의 전쟁때 누비던 화랑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루봉 삼거리.

 오늘의 공식적인 산행 종점 이다.

 50분 걸려 숙박지가 있는 은티마을로 내려가고, 내일은 이곳까지 올라와서 산행이 시작된다.


 

 

 

 

 

은티마을 주막집에 도착하니 이집 주인 이종숙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오후 6:35분.  꼬빡 12시간을 걸었다.

주막집 안팎에는 선배 대간꾼들의 자취가 요란하다.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겠다고 하자 대간 한다는 사람치고 이종숙이라는 이름 모르면 간첩이라나. 

이 아줌씨의 구찌빤찌도 보통이 아니다.

자기 입 나빠진 것은 대간꾼들이 버려놨다나. 

대간꾼들이 버려놨는지 자기가 대간꾼들을 버려놨는지는 모를 일이다. 

부디 나빠지는건 입만으로 끝나길 바랄뿐이다.  

그렇잖아도 이 동리가 여자들의 기가 센 동리인데...

과부가 있냐고 묻자 올해 방년 70 이란다.

술도 앉은자리에서 권커니 자커니하며 소주 한병이 거뜬이다. 

얼큰하게 해주는 닭백숙에 소주 몇잔, 오고가는 구수한(?) 농담속에 피로가 사르르....


 

 

 

 

 

양말을 벗었더니 물집이 생겼네.

반창고나 하나 붙여볼까.

내가 뭣담시로 이고생을 하노?

배도 부른데 잠이나 자볼까.


                        < 3편에 계속 >

                                    3편의 하이라이트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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