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0일(토) 오후 5시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종주꾼들의 형색이 많이 달라졌다. 배낭을 새로 장만하고 옷차림도 제법 꾼답다. 박철우군은 큼직한 푸로들의 배낭을 메었는데 차림새와 무척 어울린다. "지리산고속"이 육십령 고개를 벗어날 때까지는 우리의 전용차량이 될 것같다. 옆자리에 마음씨 좋아보이는 중년의 산꾼이 탔다.
같은 산악시계를 찼길래 슬며시 고도계 조작법을 물으며 말을 붙였다. 백두대간 종주를 혼자 했고 오늘은 지리산 실상사를 깃점으로 백무동계곡을 거쳐 하동 외공마을로 빠지는
1박2일 코스라며 즐거워한다. 매번 단독 등반이고 혼자 비박을 한다니 겁도 없다.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 전문 산악꾼은 사람이 제일 무섭단다. 3시간 30분만에 정확히 인월 종점에 내려놓은 기사에게 박수를 쳤다. 미리 예약해둔 청솔회관에서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내일새벽식사(6시),점심도시락을 시켜놓으니
갈 일만 남았다.
10월1일(일) 오전 6시
6시에 순두부백반으로 아침을 먹은 후 각자 "록앤록"2개에 밥과 반찬을 담고 식당에서 마련한 밴으로
여원재로 향했다. 바람도 상쾌하고 농촌 들녁의 정경이 아름답다.
외국여행도 자주 다녔지만 우리의 산하가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여원재 표지기를 따라 종주를 시작했는데 얼마 안 가 길을 잃었다. 마을 입구에서 표지기 따라 거꾸로 내려가는 논둑길에서 길이 끊겼다. 모두들 흩어져 묘 2기가 있는 곳을 �는데 선두 탐색조가 바른길을 찾았다.
약 10여분 허비한 것같다. 그래선지 선두가 속도를 내어 고남산 정상을 향한다.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대장이 후미에서 호르라기를 불기로 되어 있는데 몇번 불어도 응답이 없다. 후미 셋이 표지기를 찾아보며 산행을 계속하는 수 밖에 없어 주위 풍경도 감상하며 사진도 찍어가며
중턱에 다달으니 뒤쪽에서 "야호"소리가 들린다. 선두(방교윤)가 잠간 사이에 딴길로 접어들어 헤매길 30분. 후미보다 늦게 중턱에 다달았다. 700m고지에서 내려다 본 여원재 벌판의 풍경이 한폭의 수채화 같다. 노란색과 초록이 어울어진 자연의 화폭. 누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잠깐 쉬고 있는데 김광휘군이 전화했다.
성묘왔다 가는길에 저녁이나 사주고 싶다니 얼마나 고마운지,저녁 먹을 당동마을 위치를 알려주는데
잘모르니 내일 근무도 감안 다시 연락하자며 조심을 당부한다. 고남산 816m도 왜그리 가파른지 무척 힘이 들었다.아침을 많이 먹어서일까.
산행 4시간반 쯤에 매요리에 도착했다.
질겁할 일이 일어났다.
이무웅군이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장비를 어께에 메고 내려가는 길로 올라 오고 있으니!! 와! 반가워 어찌된 일이냐니 정령치에서 사진 찍고 매요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나!
종주꾼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매요휴게소(?) 할멈의 좔좔 외는 산행정보에 놀라고 또 도움도 많았다. 배낭을 훑어보고는 "4시간 걸렸겠구먼" "새맥이재? 2시간이면 되" "오늘 복성이재까지 가겠구먼. 4시간이면 되는데 뭘" 이런 정보에 의거 새맥이재 당동마을회관서 잘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오전11시 조금 지났으니 1시쯤 도착해서 할 일이 없으니 4.7km를 더 가잔다. 그 4.7km가 600m고지에서 790m고지를 오르락 내리락 하니 여간 힘든 코스가 아니었다. 오늘 원 계획의 숙박지 새맥이재를 지나며 이장한테 못간다고 연락했다. 한편으론 농번기라서 폐만 끼칠 것 같았는데 잘됐다 싶다. 새맥이재에서 물이 바닦났다.
지도 도면에 새맥이재 바로 밑에 샘이 있길래 빈병을 모아 방교윤군이 담아왔다. 그 사이 조현우군은 대간길에 누어 코를 곤다. 시리봉(777m) 오르는 코스도 길다. 사치재에서 가파른 길을 한참 올랐기에 많이 지쳐 있었다. 김광휘군이 또 전화했다."어디고?" "우리 당동마을 지나와 버렸다. 종주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그렇다.미안하다." "야.이 귀신들 천천히 하지. 그럼 그냥 울산 가야겠다.""고맙데이-" 저녁 한끼 놓쳐버리고 친구 얼굴 한번 볼 기회 없애버리고......
복성이재에서 이무웅군이 차로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까지 태워다 주는데 그것도 고맙고 시원한 맥주도 대기해 놨으니 이런 호강이 있나 싶었다. 또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소주도 한잔하니 피로가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이무웅군이 밤 늦게 서울로 가야 한다며 출발했다.고마운 친구....
흥부마을이라서 그런지 민박집 주인 인심도 쏠쏠했다. 밤새 보일러를 가동시켜 등이 뜨거울 정도인데도 계속 "고"다. 창문을 열고 자는데 방기운은 차고 등은 뜨겁고 이불을 찼다 덮었다하며 피로를 녹였다.
10월2일(월) 6시20분쯤에 하영수군을 불렀다.
복성이재 부터 같이 등반하기로 한 하영수군에게 전화하니 벌써 문산휴게소란다. 도대체 몇시에 일어났길래...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복성이재로 갈 채비를 하는데 곧 들이닥쳤다. 흥부마을을 거쳐 2일째 등반점에 섰다. 7시30분이다.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을 오르는데 숲도 좋고 길이 순탄하게 오른다. 그런데 곧 키만한 철쭉들이 군락을 이룬 오솔길로 접어드니 봄에 꽃이 피면 장관일 것 같았다. 능선이 굽이치며 길기도하고 경사도 만만치않아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억새군락을 지나 오르니 정상이다.2시간이 걸린 거리다. 봉화산 표시석 뒷면에는 백두대간 지도를 각인해 놨고 현지점 표시도 있다. 갈길은 한참이다. 920고지에 올라서니 굽이치는 능선에 낮은 경사길이 이어진다. 억새,잡목,송림이 군락을 이룬 것처럼 띄엄띄엄 이어진다.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차가운 바람이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2시간 가까이 걸어 광대치를 지났다. 방교윤군이 점심을 하자길래 털썩 주저들 앉아 휴식 겸 점심을 먹었다. 물에 말아 먹는 밥이 잘도 넘어가고 맛도 있다. 이제 마지막 산인 월경산이 남았다. 980m가 넘는 깎아지른 정상을 우회하여 대간길이 이어졌다. 다들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곧이어 내리막이 엄청 급경사다. 중간 중간에 로프를 잡고 내려갈 만큼 경사가 급하다. 그래도 오르막 보다는 낫다 싶다. 광대치에서 한시간만에 드디어 이번 종주의 종점인 중치에 도착했다. 중치에서 하신마을까지 1시간 거리인데 다행이 하영수군의 차가 마중을 나와 2번에 걸쳐 꾼들을 날랐다. 친절한 30대의 젊은 아낙네가 부지런히 해다 바치는 부침개(찌짐)을 안주해 마시는 맥주의 맛!
오늘의 피로를 한방에 날려보냈다. 백운산 식당이라 써 붙였는데 민박도 하고 함양까지 등산객들을 실어 나르기도 하여 중치에선 무척 도움이
되는 집이었다. 다음 육십령까지의 종주시엔 부산팀과 함께 투숙하기로 했다. 함양읍에선 소고기국밥을 안 먹을 수 없어 유명한 대성식당에서 한그릇 뚝딱하곤 5시 차에 올랐다. 하영수군 말대로 진갑지난 늙은이들이 그룹으로 대간 종주하는 건 우리 밖에 없을거란 말에 한바탕 웃곤 bye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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