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올해로 시행 3년을 맞았지만 건설 현장을 중심으로 사상자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실질적인 예방 조치보다 강력한 처벌 위주의 법 제정으로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당초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6일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위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35명으로, 전년(28명)보다 25% 증가했다. 
중처법 시행 첫해인 2022년(33명)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정부 건설공사 종합정보망(CSI)에 등록된 사망자 수를 집계한 자료로, 건설사는 법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CSI에 신고해야 한다.

 

 

<서울시내 한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1명 이상 사망하거나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혹은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으로, 지난해 1월부터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50억원 미만 현장)으로 확대 시행됐다.>

 

 

지난해 2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모두 1868명으로 중처법 시행 첫해인 2022년(1666명)과 비교하면 되레 12.1% 늘었다. 
중처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산업 재해가 줄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건설 경기 악화로 공사 현장 자체가 2년 전보다 크게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재해를 줄인다는 취지가 무색하다는 점이 더욱 뚜렷해진다. 
작년 1~11월 건축 착공 동(棟) 수는 10만1678동으로, 중처법 시행 첫해인 2022년 같은 기간(14만2969동)과 비교해 28.9% 급감했다.


다른 산업으로 넓혀봐도 중처법의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중대재해알림e에 따르면, 작년 3분기까지 제조업 현장 사망자는 134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23명)보다 8.9%(11명) 증가했다. 
운수·창고·통신업 역시 같은 기간 12명에서 19명으로 58%(7명) 늘었다.


시공능력평가 30위 이내의 한 중견 건설사는 지난해 안전 관리 비용으로 정해진 예산보다 50억원을 더 썼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준수하기 위한 안전 인력 인건비와 현장 컨설팅 비용 등이 공사비에 포함된 안전 관리 예산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이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대부분이 안전 관리자나 안전 감시단 등을 추가 투입하기 위한 인건비나 현장별 안전 컨설팅비로 쓰인다”며 “손실을 감수하면서 비용을 늘리고는 있지만, 많을 때는 1000명씩 동시에 투입되는 근로자를 다 관리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 소속 안전관리자 강모(42)씨는 매일 챙겨야 하는 서류만 안전점검회의(TBM) 일지, 안전보건관리업무 일지, 보호구 지급 대장, 각종 작업계획서 등 30종이 넘는다. 
강씨는 “중처법 시행 이후 하루 종일 서류를 꾸미느라 정작 현장을 순찰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며 “서류를 쓸 시간에 작업자들 안전모 잘 썼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게 사고를 막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건설을 비롯한 여러 산업 현장에서 사망·부상자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적으로 산업 재해를 줄이는 것보다 사후 처벌에 중점을 둔 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은 작업자의 안전모와 안전장갑 등이 놓여있는 인천의 한 건설 현장 모습.>

중처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됐지만, 산업 현장에선 여전히 사망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그 배경으로 ‘사전 예방’보다 ‘사후 처벌’에 방점을 둔 중처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 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중처법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안전 조치만 늘었다는 것이다. 
한 제조업체 안전 관리 담당자는 “중처법이 서류만 잘 작성하면 의무 위반을 피하는 구조여서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건설사들은 중처법 시행 이후 안전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고 있지만, 대부분 안전 관리자 인건비나 사고 예방을 위한 컨설팅비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중처법 시행 이후 경력이 있는 안전 관리자가 귀해져 인건비가 40% 넘게 올랐다”며 “공사비에 상한이 있으니 결국 근로자를 위한 직접적인 재해 예방 비용은 크게 늘리지 못한다”고 했다.


중처법 의무 사항인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이나 위험성 평가를 컨설팅하는 전문 업체들도 성행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중처법 시행 초기에 로펌 컨설팅 비용으로만 수십억 원을 썼다”며 “컨설팅 역시 사고 예방 방안보다는 대표이사의 형사 처벌을 피하는 방안에 집중됐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50억원 미만 건설 공사 현장으로도 중처법 적용이 확대되면서 법무법인, 노무법인, 안전 진단 기관뿐만 아니라 보험설계사까지 영세 업체들을 상대로 영업에 나서 ‘중처법 특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산업계에선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최저가 낙찰제와 불법 하도급, 인력 수급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처벌을 아무리 강화해도 중대 재해 근절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한 전문 건설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와 미숙련 근로자가 급증한 것도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라고 했다.(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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