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반도체특별법을 계기로 주 52시간제가 논란인 가운데, 기업들이 “모든 산업이 문제인데 반도체업에만 국한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4일 “주 52시간제의 근본 문제는 근무시간을 일주일 단위로만 계산한다는 것”이라며 “특정 산업·직군을 넘어 본질적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주 52시간제는 일주일 기본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하고, 연장 근로를 12시간 허용한다. 
연장 근로 한도를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규제하는 선진국은 없다. 
물론 보완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기업들은 “활용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보인다.


직원 300명이 넘는 경북의 한 제조 업체는 작년 상반기 주 52시간 근무로는 소화할 수 없는 양의 수출 주문이 들어왔다. 
주 64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 ‘특별 연장 근로’를 고용노동부에 신청해 간신히 주문을 맞췄다. 
문제는 하반기에 터졌다. 특별 연장 근로는 한 해 90일만 쓸 수 있는데, 주문이 또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한도를 다 쓴지라 특별 연장 근로를 다시 신청할 수 없었다. 
회사 측은 “지난해 한 나라에서 제품 수요가 갑자기 크게 늘었다”며 “기업은 이렇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주 52시간제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주문 예측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배관 설치 중소기업 A사는 “신청했다가 예측과 달리 일이 몰리지 않아 한도만 소진한 경험이 있다”며 “지금은 정말 급하면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주 52시간제 보완 효과가 있는 각종 유연 근무제도 도입률이 높지 않다. 
유연 근무제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 애초 취지지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어 주 52시간제의 경직성을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부에 따르면 도입 비율은 2024년 6월 기준 탄력 근로제 4.1%, 선택 근로제 2.7%, 재량 근로제 0.9%, 사업장 밖 간주 근로제 2.1%에 그쳤다. 
4가지 유연 근무제 유형을 모두 합쳐도 조사 대상인 전국 1인 이상 사업체 178만9100여 곳 중 9.8% 수준에 그친다.


기업들이 이런 보완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제도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20년 경력 중소기업 인사 담당자는 “유연 근무제에 대한 정부 가이드북을 세 번 정독했는데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만큼 절차가 복잡하다”며 “일을 하고자 또 다른 일을 감당하는 구조”라고 했다. 인사·노무 역량이 약한 중소기업이 도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보완책을 적용하려면 전산 시스템을 갖춰놓고, 몇 달 뒤 근무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한다는 점도 대표적 기피 요인으로 꼽힌다. 
자동차 부품 제조 중소기업 B사는 일이 많은 주의 근로시간을 늘리고, 일이 없는 주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탄력 근로제를 도입하기 위해 직원 동의를 받고 취업 규칙까지 바꿨다. 
하지만 직원들의 근태(勤怠)를 관리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이 없어 결국 제도 도입에는 실패했다. 
한 반도체 부품 회사는 주 52시간제 보완책으로 재량 근로제(언제 어떻게 일할지를 근로자가 결정하고, 근로시간 인정도 합의로 정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했지만, 막판에 포기했다.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재량 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업무 관련해 구체적이고 세세한 지시를 할 수 없다는 큰 문제점이 있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런 현실적 제약 때문에, 주 52시간제를 규정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지 7년이 지났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소상공인연합회, 벤처캐피탈협회 등 중소기업 관련 단체 12곳은 작년 12월 고용노동부에 “일주일 연장 근로 한도가 12시간으로 빡빡하게 막혀 있는 현재의 주 52시간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건의문을 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 부회장은 “산업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수요가 몰린다고 정규직을 왕창 뽑았다가 수요가 꺼지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2502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