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조선 왕실 궁궐의 편액(글씨를 써서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이 일본의 한 경매 사이트에 등장했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경복궁 선원전의 편액으로 추정됐다.
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유산을 찾으려 사이트를 검색하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비상이 걸렸다.
재단은 즉각 경매 중지를 요청하고, 소장자 측과 협상에 돌입했다.
강혜승 부장은 “이 유산은 조선 왕실의 유물이고, 반드시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고 설득한 끝에 국내로 무사히 들여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게임 회사 라이엇게임즈가 환수에 도움을 준 우리 문화유산.
①일본에서 돌아온 경복궁 선원전 편액. 가로 3.12m, 세로 1.4m. ②2018년 돌아온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 2023년 보물로 지정됐다. ③2014년 돌아온 18세기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 ④2022년 영국에서 사들인 조선 왕실 ‘보록'>
일본으로 반출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이 고국 품에 돌아왔다. 숨은 주인공이 있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을 받아 지난해 2월 편액을 환수할 수 있었다”고 3일 밝혔다.
전 세계 한 달 이용자 1억명 이상, 최대 동시 접속자 수 800만명에 달하는 최고 인기의 전투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제작사다.
이번에 돌아온 편액은 미국에 본사를 둔 ‘라이엇게임즈’가 환수에 도움을 준 7번째 유산이다.
외국 기업인 라이엇게임즈가 한국의 국외 문화유산 환수를 도운 건 2012년부터. 누적 후원 금액이 92억7000만원에 달한다.
조혁진 대표는 “놀이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우리 문화의 뿌리인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게임을 서비스하는 만큼 게임 유저들에게 문화의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도 컸다”고 했다.
덕분에 18세기 조선 불화 ‘석가삼존도’를 시작으로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竹冊)’ ‘척암선생문집 책판’ ‘백자이동궁명 사각호’ ‘중화궁인’, ‘보록(어보를 담는 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조혁진 라이엇게임즈 대표>
조 대표는 “기업이 한국에 진출한 초기부터 플레이어들에게 보답하고자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문화유산 지원에 집중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게임과 문화유산의 공통적 가치. “전 세계적으로 많이 사랑받는 문화인 게임을 통해 과거의 문화유산과 현대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 의미가 크다”는 것.
문화유산 환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그간 게임에 쓴 돈이 헛되지 않았다”고 환호한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조 대표는 “게이머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바뀌고 있고, 게임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연결 고리를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장영기 국가유산청 사무관은 “민간 기업에서 10년 넘게 국외 문화유산 환수를 지원하는 건 드문 사례”라고 전했다.
환수만 후원하는 게 아니다. 라이엇게임즈는 서울 문묘 및 성균관 안내판 개선, 미국 워싱턴 대한제국공사관 보수 공사 지원, 청소년 문화유산 체험 교육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문화유산국민신탁 소장 유물 특별전,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전 등 전시도 후원했다.
환수된 편액은 가로 3.12m, 세로 1.4m 크기로, 검은 바탕에 금빛으로 ‘선원(璿源)’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선원’은 ‘옥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중국 역사서 ‘구당서’에서 왕실을 옥으로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
선원전은 조선 시대 궁궐 내에서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경복궁 선원전은 1444년 창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됐고, 1695년 창덕궁에 선원전이 마련돼 어진을 봉안했다. 경복궁 선원전은 고종 대에 재건되면서 1868년 다시 세워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32년 조선총독부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를 짓기 위해 선원전을 헐어 사용하면서 수난을 겪었고, 그 후 선원전 편액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이번에 돌아온 편액은 각 궁궐의 선원전 건립·소실에 관한 정황과 관련 기록 등을 고려해볼 때, 1868년 고종 대에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 편액으로 추정된다.
편액 실물은 27일 오전 10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다.
조 대표는 “앞으로도 문화유산 환수와 국내 문화유산 보호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다.(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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