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30대 직장인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7세 이력서’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빼곡한 한 장의 이력서에는 ‘지린성 소년 코딩 대회 2등상’ ‘중국 전자학회 로봇 자격증 2급’ 등의 이력이 적혀 있었다. 
초등학생의 성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이 이력서를 차곡차곡 업데이트해 영재학교와 명문 중학교에 지원할 때 보낼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유명 영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7세 고시’라 부르는 영어 레벨 테스트를 치르는데, 중국의 학부모들은 ‘이공계 천재’를 키우기 위한 ‘7세 테크 이력서’를 만드는 중이다.


중국의 토종 인재인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40)은 17살에 명문대(저장대)에 입학한 천재로서, 결국 미국 실리콘밸리를 긴장하게 한 고성능 AI(인공지능) 모델을 선보였다. 
광둥성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량원펑의 성장 과정을 보면 중국의 중등교육이 ‘비평준화’ 방식과 ‘학교 간 경쟁’을 이용해 이공계 천재를 길러내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대학 시스템이 선택받은 소수의 인재에게 최고 석학을 붙여 초고속 인재 양성에 매진한다면, 중국의 초중고 교육 시스템은 학교 간의 인재 유치전(戰)을 통해 천재를 찾아내 길러내기에 집중한다 .

 

 

<중국 명문 중학교인 인민대 부속중학교 학생들.>

 


중국의 천재 발굴·육성 시스템은 초등학교 때부터 가동된다. 
베이징에선 2010년부터 인민대부속중학교 자오페이반(早培班·조기교육반)과 베이징8중학교의 팔소팔소(八少八素·베이징8중학교의 영재와 수재)반이 10~12세 영재 선발을 놓고 겨루고 있다. 
인민대부속중 출신의 A(32)씨는 “두 학교는 매년 200명 미만의 천재 소년들을 뽑는데, 지원자 가운데 2%에 불과한 고(高)지능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학부모 설득까지 한다”고 했다. 
자오페이반은 4년 동안 수학·물리·화학을 대학 수준까지 가르치고, 중국 명문대 학생들도 만나기 어려운 원사(院士·최고 과학자)들이 직접 과학기술 논문 작성을 지도한다. 
팔소팔소는 학습 진도는 자오페이반보다 약간 느리지만, 이공계의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고, 리더십·토론 교육도 가미한다.


중학생 나이인 15살 전후의 천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베이징(두 곳)·저장·장쑤·산시·안후이의 명문대 여섯 곳도 혈투를 벌인다. 
‘중국판 카이스트’인 안후이성 중국과학기술대는 매년 16세 미만 학생 50명을 받아 ‘소년반(班)’에서 학사 과정을 밟게 한다. 

량원펑의 후배인 저장대 출신 투자 업계 종사자는 “량원펑은 대학 조기 입학 사례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라면서 “지난해 12월 중국 증시에서 우량주로 편입된 반도체 설계 기업 ‘한우지’의 창립자 천톈스 등 중국 기술 기업 수장 상당수가 소년반 출신”이라고 했다. 
베이징대는 수학 영재반과 물리 인재 육성 계획에 따라 15세 이하 천재를 따로 받고, 시안교통대는 파격적으로 ‘이공계 천재’인 중학교 졸업생을 선발해 ‘예과 2년, 학부 4년, 석사 2년’ 과정을 밟게 한다.

 

 




보통의 중·고등학교도 ‘수재 골라내기’에 열중한다. 
량원펑은 중국의 가난한 시골 마을인 미리링촌(村)에서 태어났지만, 마을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역의 중점(重點) 중·고등학교인 ‘우촨 제1중’에 합격하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는 졸업생의 80%가 중·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만큼 지역 인재들을 흡수한 학교다. 
중국의 모든 중학생들은 고교 입학을 위해 매년 6월 중카오(中考)라 불리는 학업 수준 평가 시험을 봐야 한다. 
시험 성적 상위 5%는 지역 내 최고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베이징 차오양구(區) 쇼핑몰의 식당 주인은 “매일 저녁 6시쯤 인근 명문고인 인민대부속고등학교 학생들이 이곳에 몰려와 밥 먹는데 다들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베이징시의 사립·공립 실험학교(환경과 교사진이 우수한 학교)들도 매년 도시의 중학교 2학년생 중에 수학·물리·추론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선발해 자교로 유치한다. 
이를 ‘1+3 전형’이라고 부르는데, 선발된 아이는 중3부터 고등학교까지 4년을 새로운 학교에서 공부한다.


현재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중국의 바링허우(80년대생) 세대는 고속 경제 발전 시기에 성장하며 ‘공부해서 운명을 바꿨다’는 인식이 크다.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의 학부모들은 초등학생 자녀의 명문 중학교 ‘YL(優錄·특별 입학)’을 노리고 강도 높은 과학 교육을 시키고, 각종 과학기술 대회에 출전시킨다. 
중국 중소 도시 학부모들이 자녀를 대도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 전입’을 불사하는 등 ‘맹모삼천지교’도 종종 발생한다. 
중국은 ‘사교육 금지’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학원가에서는 ‘가정 서비스’ ‘개인 교사’ 등의 이름을 걸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40대 변호사 부부는 “우리 세대의 교육열과 재력이 중국의 AI 천재 군단을 만든다고 믿는다”고 했다.(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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