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개월을 앞둔 약혼시절 그이는 나를 '가족들에게 인사시키는'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연세가 아흔 다섯이었던 그이 할머니는 상냥하고 매우 정정하셨는데, 한 가지 귀 어두운 사람이 대개 그러듯이 말씀하실 때면
목청껏 큰소리로 하셨다.
내가 거실에서 할머니의 아들딸 손자들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할머니는 그이를 한구석으로 데려가더니 조심해서 작게
낸다는 것이 그래도 여전히 큰 목소리로, “얘야,걱정할 것 없다. 네가 그 먼젓번 처녀와 찍었던 사진들은 내 진즉 치워 버렸느니라” 하셨다.
유럽행 전세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에는 몸집이 큼직한 부인네가 있었다.
항공사 직원이 여느 때와 같은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체중은요 ?”라고 물었다.
“80kg인데, 왜 그러시죠 ?” 여인이 되물었다.
“비행기 연료소비량을 계산하기 위해 섭니다.”
여인네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몸을 수그리고 귀엣말로 속삭였다.
“그럼 10kg 더 올리세요.”
밤 10시 30분. 고등학교 축구팀 코치인 나의 그날 귀가시간은 평소보다 3시간 반쯤 늦어 있었다.
내 팀의 아이 하나가 팔을 다쳐서 그 학생을 차에 태우고 이웃 도시 병원에 데려갔는데 경황이 없어 집에 늦겠다는 전화도 하지 못했다.
깜깜한 집 안에 들어 가전등을 켰다.
식탁 내 자리에는 상이 차려진 채였고 그 옆에는 커다란 그릇이 있었다.
시장기를 느끼며 자리에 앉아 그릇 뚜껑을 열었더니一 그 안에는 모래투성이의 쭈글쭈글 한 축구공만 하나 달랑 들어 있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우리 성당에서는 매 달 한번씩 특별 어린이 미사를 가지는데 이런 때면 네 살짜리 우리 딸애도
딴 아이들과 함께 성찬대 바로 앞에 앉는다.
나는 혹시나 우리 애가 무슨 말썽이나 일으키지 않을까 계속 마음 졸일 밖에 .
하루는 미사 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쪽으로 줄지어 나오는데 우리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함께 갔던 언니는 그애가 찾아올 테니 염려말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허리를 굽혀 경배하는 신부님만 남을 때까지도
우리 애는 안 보였다.
그러다가 신부님이 어찐지 너무 오래 허리를 굽히고 계신 듯 싶어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신부님 수단자락 바깥쪽으로 우리 아이 발이
빼꼼히 내보였다.
신부님은 딸아이 구두 끈을 매는 중이었다.
휴가를 함께 하고 나서 집사람은 휴가기간이 끝나 출근하고 나는 아직 기간이 남아 집에 있자니 정말 지겨웠다.
그래서 하루는 궁리 끝에 마누라를 놀라게 할 셈으로 설겆이를 하고 집안청소도 말끔히 해 치웠다.
집에 와서 보면 틀림없이 고마와서 어쩔 줄 모르며 떠받들어 줄 줄 알았는데 웬걸 정작 아내는 칭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나중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아니, 당신은 오늘 내가 말끔하게 치워 놓은 걸 알아보지도 못하는구려.”
번개처럼 나온 아내의 명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네, 당신 말이 맞아요. 집안 일이란 아무리 해도 생색이 안 난다구요. 이젠 아셨수 ?”
할아버지는 느긋하고 신중하신 성품인 반면 우리 할머니는 성질이 불 같으신 분.
어느 날 밤 닭장에 소동이 난 듯 시끌시끌한 소리가 나는 바람에 두 분은 잠이 깼다.
할머니가 자리를 박차고 닭장으로 뛰어가서 보니 커다랗고 시꺼먼 뱀 때문에 그 난리였다.
뱀을 잡을 만한 마땅한 것이 없어서 할머니는 맨발로 뱀 대가리를 밟아 눌렀다.
그렇게 하고 족히 15분은 서 있으니 그제서야 영감님이 그리로 오셨다.
흐트러지지 않은 차림으로 단추 하나 빼놓지 않고 채우신데다 회중시계까지도 제자리에 차고서.
엉망으로 헝클어진 모습에 잔뜩 골이나 있는 마나님을 보고 할아버지는 아주 재미있어 하시며, “그놈을 당신이 벌써 잡은 줄 알았더라면
내 이렇게 서두르지 않았을건데…”라고 놀리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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