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들이 초음파, 뇌파계에 이어 의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엑스레이 검사도 직접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 검사들은 지금도 수가(의료 서비스 가격)가 높고, 무엇보다 50조원에 달하는 ‘노인 의료’ 진입을 위한 필수 요소로 통한다. 
의사들은 오진 우려 등을 이유로 강력 반발하고 있어 양측의 ‘영상 검사 전쟁’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한의사들의 본격적인 엑스레이 사용을 선언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진단용 방사선 책임자 자격 기준’ 명단에 의사와 방사선사는 명시돼 있지만 한의사는 없다. 
정부 규정상 한의사는 사실상 엑스레이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의사협회는 “법원이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승인했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수원지법(2심)은 지난달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도 이날 오후 보도 자료를 내고 “수원지법 판결은 한의사의 엑스레이 골밀도 측정기의 보조적 사용이 형사 처벌을 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를 법원이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인정했다고 발표하는 것은 궤변이자 아전인수”라고 했다.


한의학계와 의학계의 입장이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은 ‘환자 피해’ 여부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엑스레이를 사용하면 환자가 염좌(타박상)인지 골절인지 정확히 알 수 있고 이에 맞춰 정확한 침, 뜸 시술 등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가 골절 여부를 알아보려고 다시 병·의원에 가서 영상 검사를 받은 뒤 한의원에 오는 불편을 겪고 있다”며 “진료비도 두 배 지출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김석희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한의사도 한의대 교육 과정을 통해 전문적인 엑스레이 교육을 받고 있고, 한의사 국가 고시에도 관련 문제가 출제된다”고 했다.

 

 




의료계 입장은 정반대다. 대한영상의학회 관계자는 “영상 검사 판독은 전공의를 거쳐 전임의(세부 과 전문의)가 돼서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 분야”라며 “전문적 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의 엑스레이 촬영은 과다 검사와 이로 인한 환자의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을 유발할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은 특히 오진 확률이 높아질 것을 우려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영상 검사 판독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라며 “평생 흉부 엑스레이 판독을 해온 의사도 간혹 (폐암의 시작일 수 있는) 미세한 폐 결절을 놓칠 때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오진으로 인해 치료 적기를 놓치면 피해는 100% 환자가 본다”며 “영상의학과 교수지만 자기 전공이 아닌 부위의 영상 판독은 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특수성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 법원은 엑스레이 외에도 한의사의 초음파, 뇌파계 사용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다. 
수도권의 한 법원장은 “한의사가 보조적 수단으로 영상 검사 기기를 사용했다면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라고 했다. 
한의사협회는 이런 판결 흐름을 타고 향후 한의사의 CT(컴퓨터 단층촬영) 사용도 검토할 방침이어서 영상 검사 기기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더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이를 양측의 ‘영역 다툼’으로 보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집계 결과, 2023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한 해 진료비는 약 50조원이었다. 
‘노인 의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영상 검사 기기 사용이 필수적이다. 
엑스레이로 뼈를, 초음파로 힘줄·인대를 검사한 뒤 도수 치료나 통증 주사 같은 치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노인의 치매나 파킨슨병 진단을 위해선 뇌파계 사용이 필요하다. 뇌파계는 뇌 활동을 파동 형태 그림으로 나타내는 의료기기다.


현재 ‘노인 의료’ 시장 확대의 과실은 의료계가 누리고 있다.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가 ‘정재영’이라 불리며 최고 인기과로 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그런데 한의원의 평균 매출은 2019년 이후 감소세다. 한의사의 평균 연봉(1억800만원)은 의사(2억3000만원)의 절반 밑이다. 
한의사는 영상 기기 사용을 불사하고, 의료계는 총력을 다해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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