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살 김모씨는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다. 
2017년 무작정 서울로 온 그에게 저축은행은 연 10%대 금리로 400만원을 빌려줬다. 
그는 “몇 달 치 생활비를 어렵지 않게 빌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했다. 
카드사, 인터넷은행 등에서 돈을 빌려 쓰던 그의 빚은 결국 2850만원까지 불었다. 
김씨는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 조정을 받은 후,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국비 지원으로 영상 편집 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는 여전히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못하고, 대부분의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모습.>

 


김씨와 같은 20대 신용유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실에 따르면, 올 7월 말 한국신용정보원에 신용유의자로 등록된 20대는 6만5887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5만2580명)보다 25.3% 급증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빚에 미래를 저당 잡힌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신용유의자는 원금과 이자를 3개월 이상 못 내는 등의 이유로 한국신용정보원에 등록된 이를 말한다.


20대 신용유의자의 증가 속도는 다른 연령대보다 훨씬 빠르다. 
전체 신용유의자는 2021년 54만8730명에서 올 7월 59만2567명으로 약 8% 늘었다. 
20대 신용유의자 증가율(25.3%)이 전체 평균(8%)의 3배를 웃돈다.

 

 




청년들이 어마어마한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신용유의자까지는 아니지만 1개월 이상 빚을 연체한 청년 연체자 대다수는 수백만 원 정도의 대출을 갚지 못한 소액 연체자다. 
신용평가회사(CB)에 단기 연체 정보가 등록된 20대는 지난 7월 말 7만3379명이다. 
이 중 연체 금액이 ‘1000만원 이하’인 경우는 6만4624명으로 전체 연체자의 88%에 달했다. 
20대 연체자 10명 중 9명은 소액 채무자라는 뜻이다.


직업이나 자산이 부족한 20대는 은행 등 1금융권에서 빚을 내기는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받지만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카드사 등 2금융권에 발을 들였다가, 연체로 신음하는 잠재적 신용불량자가 되기 쉽다.

 

 




9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연령대별 카드사 리볼빙 잔액·연체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업 카드사 8곳에서 리볼빙을 이용한 회원 중 29세 이하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기준 2.2%로 집계됐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보다 연체율이 높은 연령대는 60대 이상(2.6%)밖에 없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최소 10%만 우선 갚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넘겨 갚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카드 대금을 갚기 어려운 이용자들이 일단은 당장 연체를 막기 위한 용도로 쓴다.


빚더미에 눌린 20대가 법원에 개인 회생을 신청하는 사례도 해마다 늘고 있다. 
작년 20대가 서울회생법원에 신청한 개인 회생 사건은 3278건으로 2022년(2255건)보다 45% 증가했다. 
2021년(1787건)과 비교하면 83% 늘었다.


전체 회생 신청자 중 20대 비율은 2021년 상반기 10.3%였던 것이, 작년 말에는 17%로 올랐다. 
회생법원은 “최근 가상 화폐·주식 투자 등으로 20대의 경제활동 영역이 확대된 결과”로 보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찾아… - 9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에서 열린 취업 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최근 고물가와 구직난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20대 청년층이 늘고 있다.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20대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생활고에 빚을 지게 된 청년들도 적지 않다. 
서울시복지재단 청년동행센터(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만 29세 이하 청년 중 처음 빚을 지게 된 원인으로 ‘생활비 마련 때문’이라는 응답이 59%로 과반을 넘었다. 
‘주거비’(18%)나 ‘사기 피해’(12%), ‘학자금’(10%)으로 빚을 지게 됐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젊은 시절에 신용 점수가 낮아져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면 결국 개인과 사회 모두에 악순환으로 작용하게 된다“며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나,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제도적 지원 등이 사회에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고 말했다.(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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