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올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서 이길 것 같나요? 아니면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이 새 대통령이 될 것 같나요?”
지난 학기 서울 성균관대의 한 인문학 강의를 온라인 수업으로 들은 20학번 A(23)씨는 “처음엔 화면 속 교수님이 올해 11월 치러지는 미 대선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2년 전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했다” “미 주가가 올해 3월 대폭락했다”는 등의 내용이 흘러나오자 그제야 올해가 아닌 2020년 미국 대선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했다.
A씨는 “강의를 들으며 한숨이 나왔다”며 “강의 질이 안 좋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미국이 대선을 다시 치를 때까지 영상을 재탕했다는 뜻 아니냐”고 했다.
코로나 때 온라인으로 했던 대학 강의가 대부분 오프라인(대면) 강의로 바뀐 지 3년이 지났다.
그러나 몇몇 대학에서는 온라인 강의에서 코로나 당시 녹화해 둔 동영상 강의를 ‘재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가 각 대학의 강좌 현황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2024학년도 2학기 기준 온라인 강좌를 가장 많이 개설한 곳은 성균관대였다.
성균관대는 총 1082개의 온라인 강좌를 개설했는데, 이는 전체 강좌의 37.9%다.
연세대는 460여 개(전체의 약 15%) 강의를, 중앙대는 229개(약 5%)를 온라인으로 개설했다.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는 실제로 듣는 것에 비해 집중도가 훨씬 떨어지는데다, 다시 찍지 않고 그대로 재활용하는 교수님들이 많아 솔직히 듣기 싫다”고 했다.
지난 1학기에 온라인으로 3과목을 신청했다는 연세대 경제학과 B(24)씨는 “한 강의는 교수님이 예전에 녹화했던 강의를 다시 썼는데, 동영상의 화질이나 음질이 현저히 떨어져 강의 내용을 식별하기조차 힘들었다”며 “교양 과목으로 신청했던 ‘수리통계학’ 과목도 온라인이었는데, 동영상을 통해서는 도무지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중간에 철회했다”고 했다. B
씨가 수강한 전공 과목을 담당한 교수는 “관련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 중에는 연평균 등록금이 1000만원에 가까운 대학도 있다.
온라인 강좌 개설 비율이 가장 높은 성균관대의 경우 2024년 9월 기준 1년 평균 등록금이 845만원이었고, 둘째로 온라인 비율이 높은 연세대는 919만원이었다.
서울 시내 한 대학 생명과학대에 다니는 C씨는 “내가 다니는 학과는 1년 등록금이 1300만원인데 전공 과목을 돌연 온라인으로 들으라고 하더니 거의 10년 전 강의를 재활용하더라”며 “등록금은 대체 어디다 쓰는지, 교수님들은 왜 업데이트를 안 해주시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에 한 사립대 교수는 “학문의 내용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학 입문’ 같은 학부 기본 과목은 과거에 촬영한 것을 다시 써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선호, 강의실 부족 등의 이유로 온라인 수업을 늘렸다고 설명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새내기인 24학번들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온라인 수업을 들었던 세대라 온라인 강의를 더 편하게 여긴다”고 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이 부족한 것도 온라인 강의를 운영하는 이유다.
성균관대는 “캠퍼스의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는 분위기”라고 온라인 강의 비율이 높은 이유를 설명했다.
온라인 강의를 남용하고 강의의 재활용이 잦아지면 학생들의 배울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결석하는 경우, 수강 희망 인원이 많은 경우 등엔 온라인 강의가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면서도 “이 또한 오프라인 수업처럼 잘 전달되도록 화질과 음향 품질 향상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학문 내용이나 사회 현상이 변화하고, 시류 변화가 중요한 강의들은 재빨리 업데이트해야 학생들의 교육권이 보장될 수 있다”고 했다.(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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