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이앤이’ 연탄 공장.
직원들이 서울의 마지막 연탄 공장인 이 공장을 철거하고 있었다.
1968년 이후 56년 동안 쉴 새 없이 연탄을 만들던 생산 라인이 하나둘 뜯겨나갔다.
굴착기가 연탄을 찍어내던 ‘쌍탄기’를 눌러 부수자 공장 직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한 번에 연탄 2장을 찍어낼 수 있어서 ‘쌍탄기’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삼천리이앤이 연탄공장의 모습.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직원들이 뜯겨나간 생산 라인을 올려다보고 있다. 공장 바닥은 56년간 쌓인 석탄 가루가 화석처럼 남아 있다. 서울의 마지막 연탄공장인 이곳이 폐업한 자리에는 반도체, IT(정보통신) 등 첨단 산업 기업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저걸로 밤새 연탄을 찍어낼 땐 힘들었지만 신이 났었어요. 우리 공장의 자랑이었는데….”
이 공장에서 45년 일한 김두용(75)씨 말이다.
공장 바닥은 석탄가루가 쌓여 새카맸다. 반백 년 켜켜이 쌓인 석탄가루가 단단하게 굳어 화석을 보는 것 같았다.
1970~1980년대에는 집집마다 연탄을 때 겨울을 났다.
서울 시민들은 많을 땐 하루에 1000만장씩 연탄을 썼다.
당시 이 공장에서는 하루에 연탄 200만장을 찍어냈다. 1987년 서울에만 크고 작은 연탄 공장이 18곳 있었다.
이후 아파트가 늘어나고 가스보일러가 보편화하면서 연탄을 찾는 이가 줄었다.
2000년대 들어 경영난에 빠진 연탄 공장들이 줄줄이 폐업하기 시작했다.
2020년 서울 금천구에 있던 연탄 공장이 문을 닫자 이 동대문구 공장이 서울 마지막 연탄 공장이 됐다.
연탄은 석탄 값, 인건비 등 원가가 판매가보다 높다.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버티는 구조다.
하지만 손님이 너무 줄어 공장을 돌리는 최소한의 비용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기름 값이 오를 때마다 반짝 손님이 늘기도 했지만 대세를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공장은 2020년부터 내리 4년간 적자를 냈다. 은행 빚을 내고 직원들 임금을 4년 연속 동결했다.
업체 관계자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도 넘겼는데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더라”고 했다.
그러다 지난해 동대문구가 공장 매각을 제안했고 회사는 3990㎡(약 1200평) 공장을 230억원에 팔았다.
동대문구는 “연탄 가루 때문에 문을 못 열고 살겠다”는 주민 민원이 잇따르자 예산을 들여 직접 공장을 사들였다.
동대문구는 연탄 공장이 떠난 부지에 반도체, IT(정보 통신) 등 첨단 산업 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주민 여론조사도 실시한다.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은 “연탄 공장이 이제 기회의 땅이 된다”고 했다.
공장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마지막 남은 직원 20명 중 9명은 퇴직했다.
2명은 수도권 마지막 연탄 공장인 경기 동두천 연탄 공장으로 이직했다.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이다. 나머지 9명은 철거 작업을 돕고 있다.
<1998년 서울 동대문구 삼천리 연탄 공장 모습.>
서울 곳곳에 연탄을 실어 나르던 배달원들은 택시 운전이나 공사 일 등을 하러 떠났다.
이들은 지난 7월 공장 가동을 중단한 날 마지막 회식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제 할 만큼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산업화에 한 역할 했잖아요” 소주 한잔 하며 서로 등을 두드렸다고 한다.
서울에서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은 1800가구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은 올겨울이 걱정이다. 노원구 상계동 덕릉로 일대는 아직 늦여름인데도 집집마다 연탄을 100~200장씩 쌓아두고 있었다.
주민 강월선(70)씨는 “연탄 공장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미리 올겨울을 버틸 연탄을 쟁여놨다”고 했다.
앞으로 주민들은 동두천 연탄 공장에서 만든 연탄을 주문해 써야 한다.
사회복지법인 연탄은행의 허기복 대표는 “배달 비용이 늘어나 한 장에 900원인 연탄 값이 1000원 이상으로 뛸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문동 주민들은 막상 공장이 떠난다고 하니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박승구(61) 주민자치회장은 “목에 낀 연탄 가루를 없앤다고 삼겹살을 참 많이 먹었는데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날 것 같다”고 했다.(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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