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 부처에서 재외공관에 보내는 주재관(駐在官) 상당수가 주재국 동향 파악이나 우리 국민·기업의 민원 해결 같은 주 업무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주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근무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있는 허술한 평가 제도와, 재외공관 근무를 ‘포상’처럼 생각하는 정부 부처들의 관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이 20일 공개한 ‘재외공관 운영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주미국대사관, 주중국대사관 등 주요 재외공관 14곳에 파견된 주재관 44명이 2022년 본국에 보낸 전문 4114건의 절반이 넘는 2143건(52.1%)이 주재국의 정부 문서나 언론 보도를 ‘복사·붙여넣기’ 하거나 번역·요약만 해서 보낸 문서, 또는 ‘일시 귀국 허가 신청’ ‘포상자 추천’ 같은 단순 행정 문서였다.
주재국의 주요 인사를 만나서 비공개 정보를 입수하거나 우리 국민이나 기업을 지원하는 행사를 열거나, 우리 국민·기업이 제기한 민원을 처리해 주는 등의 ‘핵심 활동’과 관련한 전문은 1971건(47.9%)으로 절반이 안 됐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
‘핵심 활동’의 비중은 주재관에 따라 편차가 극심했다.
2022년에 주프랑스대사관 재경관, 주중대사관 재경관, 주일본대사관 국세관, 주브라질대사관 상무관 등은 우리 국민·기업의 민원을 해결해준 실적이 ‘0건’이었다.
주일대사관 관세관은 본국에 보낸 전문 117건 중 108건(92.3%)이 일본 관세 당국이 우리 관세청과 맺은 협약에 따라 자동적으로 제공하는 동향 보고서를 요약한 것이었다.
이 관세관이 이 기간에 했다는 ‘민원 대응’ 14건 중 12건은 다른 기관으로 민원을 넘기거나, 전화상으로 또는 온라인으로 단순 정보를 제공한 것에 불과했다.
중국의 요소(尿素) 수출 제한 조치를 제때 파악하지 못해 국내에서 ‘요소수 대란’이 벌어지게 한 주재관들도 있었다.
주중대사관 관세관 등 경제 부처들이 중국에 파견한 주재관들은 2021년 9월 중국 정부가 요소의 원료인 석탄의 부족으로 요소 수출 제한 조치를 논의하고 10월 13일 수출 제한 조치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는데도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들은 10월 21일에야 한국 기업의 제보로 수출 제한 사태를 뒤늦게 알고 본국에 보고했다.
주뉴욕총영사관의 경찰영사는 2020년 관할 구역 내에 우리 국민이 24명 구금돼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1명도 면회를 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지만 사실상 방치한 것이다.
반면 주중대사관과 주일대사관, 주상하이총영사관 상무관은 2022년 한 해에만 각각 기업 민원을 40건 넘게 해결하는 등 발로 뛰고 있었다.
주중대사관 국세관, 주뉴욕총영사관 국세관 등은 본국에 보낸 전문의 90% 이상이 주재국 주요 인사와의 접촉 결과, 미공개 정보 입수, 기업 민원 해결 등 핵심 업무와 관련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제 일을 거의 하지 않는 주재관들에 대해 가해지는 불이익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재관에 대한 재외공관장들의 평가가 형식적이거나 온정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2022년 주재관의 90% 이상이 평가에서 5개 등급 가운데 1·2등급을 받았다.
2022년 주뉴욕총영사는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재관들의 업무 실적을 잘 모른다’며 주재관 6명에게 전 항목에서 최고 등급을 줬다.
근무일 218일 중 150일(68.8%)을 지각했는데도 ‘성실성’ 항목에 최고 등급을 받은 주재관도 있었다.
이 때문에 주재관들의 원소속 부처들조차 재외공관장들의 평가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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