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 넘는 회원권을 사라고 할 때는 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서 치고 골프장 이용료도 안 받을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 고통을 분담하자며 매년 뭉칫돈까지 내놓으라는군요.”
강원도 춘천의 휘슬링 락 골프장 회원권을 보유한 A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2500만원 연회비를 내라는 골프장 요구에 황제가 아니라 봉이 된 것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회원은 “연회비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기 때문에 골프장 이용료를 1년 치 선불로 2500만원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전엔 라운드당 세금 2만1120원만 냈다.
최고가 회원권을 자랑하던 경기 광주의 이스트밸리 골프장도 지난해 8월부터 연회비 1100만원을 받는다.
이 골프장 회원 B씨는 “느닷없이 5월에 골프장으로부터 명문 골프장 유지를 위해 동참해 달라며 연회비를 내라는 편지가 한 통 날아왔다”며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은 없을 것 같고 괜히 부킹(예약)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그냥 냈다”고 말했다.
10억원을 웃도는 초고가 회원권 골프장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처음엔 부과하지 않던 연회비 제도를 신설하며 이에 반발하는 회원들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2011년 13억원에 회원권을 분양한 휘슬링 락은 지난해 회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회칙을 변경한 다음 연회비를 받기 시작했다.
이스트밸리는 정관의 회비 변경 조항을 근거로 연회비를 부과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CJ나 현대차 등 대기업 운영 골프장들도 ‘명문의 품격을 유지하고 적자 일부를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연회비를 받고 있고, 2015년 프레지던츠컵을 치렀던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이 4월부터 2000만원의 연회비를 받기로 하는 등 상당수 고가 회원권 골프장들이 연회비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은 “적자의 50%는 광고 수익 등을 통해 보전하고, 나머지 50%는 회원들이 부담했으면 좋겠다. 명문 구장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회원들에게 보냈다.
이 골프장은 지난해 포스코그룹이 무려 3000억원을 넘게 주고 매입했으나 적자를 메울 방법이 마땅치 않자 결국 회원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회원권 거래 전문가는 “대중제 골프장의 코로나 기간 영업이익률이 30% 안팎으로 나오는 데 비해 회원제 골프장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것도 연회비 제도를 잇달아 도입하는 원인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골프장들은 만성 적자를 연회비 도입 이유로 삼고 있지만 석연치 않은 곳도 있다.
이스트밸리를 운영하는 청남관광의 경우 2021년 재무제표를 보면(지난해 감사보고서는 아직 공시되지 않았음) 관계 기업인 이스트밸리티엔텍(2016년 설립된 티타늄 가공기술 기반의 중소기업) 지분 투자에 대한 손실이 39억원 발생했다.
재무제표를 들여다본 전문가는 “청남관광이 2021년 코로나 특수 등으로 골프장에서 1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고도 관계기업 투자자산 손상차손으로 2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엉뚱한 곳에서 손해를 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스트밸리 측은 “관계기업 지분 투자는 골프장 영업이익에 전혀 반영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내장객을 기준으로 따질 경우에도 적자를 보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연회비 부과에 대한 회원들 불만은 다양하다.
“운영위 의결을 거친다고 하지만 회원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사측 인사들로 이뤄지지 않았겠느냐”(휘슬링 락) “연회비 도입 같은 중요 사안을 갑자기 회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명문 회원제 골프장의 운영 태도냐”(이스트밸리) “포스코에서 인수하기 전이라고 해도 송도 국제도시 개발 당시 세금 감면 등 상당한 혜택을 받았고 이미 빌라 분양 등으로 올린 수익도 크다”(잭 니클라우스) 등등 불만이 이어졌다.
이스트밸리 회원들은 한때 26억원까지 올랐던 회원권 시세가 연회비 도입 이후 16억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19억원대로 회복되는 등 급격한 변동성을 타면서 속앓이를 했다.
고가 골프장 회원들은 사회적 영향력이나 재력이 상당한 이가 많아 사회적 평판 등을 생각해 오히려 나서기 꺼리는 성향이 있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연회비 납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거래 전문 김윤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회비 변경이 가능하도록 한 두루뭉술한 약관이나 운영위 의결 등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계약상 불이행에 의한 손해배상을 다투는 과정이 간단치 않은 것도 문제점이다”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는 “주요 골프장에 대해 작년부터 불공정 약관 실태조사에 들어갔고 아직 진행 중이다”라며 “연회비만 국한해서 판단할 수 없지만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이라면 걸러낼 것이다”라고 밝혔다.(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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